아직은 눈꺼풀 속의 어둠을 볼 시간, 새벽이에요. 반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새벽 공기가 스며들어요. 새벽잠을 방해하는 찬바람이 달갑지만은 않지만 눈을 비벼요. 안경을 써요. 모든 것이 흐릿해요.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아요. 그대를 위해 춥지 않은 겨울이었던, 따뜻한 내 옷을 추운 그대에게 건네주기 위한 구실이 필요했던 날들이 한 계절의 꿈만 같아요. 이 새벽이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이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그날을 마무리하는 새벽일뿐인 걸요. 시간을 돌리고 싶어요. 태엽을 감고 싶어요. 모래시계를 뒤집고 싶어요. 하지만 흐르기에 시간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기에 시간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요. 흐르는 것은 붙잡을 수 없어요. 단지 연어가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듯 흐르는 것에 역행할 뿐이죠.
기지개를 켜요. 새벽에 비가 왔는지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오작교처럼 밖에는 무지개가 떴어요. 알람이 울려요. 알람을 끄고 다시 누워요. 칠흑같이 어둡던새벽이 떠오르는 그대 생각과 함께 밝아져요. 밝다 못해 너무도 하얀, 창백한 새벽이 되어요. 이 창백함은 새벽이라는 시간 때문인지, 겨울이라는 계절 때문인지 온통 차갑기만 해요.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맨발은 어쩜 그리도 시린지 몰라요. 도통 몸을 일으킬 수가 없네요. 눈에선 하품을 핑계로 눈물이 흘러요.
가만히 누워 새벽이슬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요. 새벽이슬에도 그대와 맺은 투명한 추억이 있었거늘 지우면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기억들이 원망스럽기만 해요. 위태롭게 매달린 고드름 끝에도, 촉촉한 세 잎 클로버 가득했던 풀밭에도, 그대와 나눠 마신 소주의 마지막 한 방울에도 추억이 홍수를 이루죠.
홍수 뒤엔 가뭄이 오기 마련이에요. 내일도 다시 이슬에 담긴 추억에 나는 휩쓸리겠죠. 빠져 허우적대도 누구 하나 구해줄 사람 없겠죠. 오직 나 스스로 마르는 수밖에요. 창백한 새벽은 많은 것을 암시하죠. 홍수를, 가뭄을, 그리고 이별을요. 앞으로 수천 번의 새벽을 맞이해도 그 속에 어제 같은 이별은 이번 단 한 번뿐일 거예요. 한숨을 내쉬어요. 이 한숨 또한 이슬이 되겠죠. 홍수의 원인이 되겠죠. 내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고 있어요. 제발 나를 말려줘요. 한겨울의 홍수는 나에게만 있는 자연재해에요.
다시 나의 봄이 되어줘요. 벚꽃으로 비를 내려줘요. 제발요.
열심히 습작을 거듭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