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2
어제:
45
전체:
305,912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9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6.11.28 17:45

감자밥의 추억

조회 수 23 추천 수 2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늦은 밤. 시계는 벌써 9시를 가리킨다. 요란스레 울리는 전화벨. 남편이다.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며 저녁을 먹고 들어오겠단다. 야속한 남편. 좀 일찍 전화를 주면 나라도 먼저 밥을 먹었으련만. 괜히 남편을 기다리느라 밥을 먹이지 못한 내 뱃속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공부와 놀이에 열중해 있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느라 뱃속아 아릴 정도로 허전하다. 식탁을 보니 아까 밥솥에서 밥과 함께 익은 감자 네 개가 고스란히 접시에 담겨 있다. 남편이 오면 같이 먹으려고 남겨둔 것이었다.

남편은 유독 감자를 좋아했다. 고구마는 거의 입도 대지 않으면서 감자는 마니아처럼 좋아했다. 휴일이면 감자를 직접 갈아 감자전을 부쳐 먹기도 했다. 난 감자보다는 고구마를 좋아했는데, 남편이 간혹 만들어주는 감자전을 먹으니 제법 맛있었다. 아이들도 감자전을 좋아했다. 그래서 양념간장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살짝 넣고 조금씩 찍어 먹는 감자전이 어느새 우리 식구들의 주말 별식이 되었다. 그런 남편을 위해 남겨둔 감자였는데, 이제는 내가 먹어야 할 처지였다. 하루가 지난 삶은 감자처럼 볼품없는 것도 없다. 감자는 삶은 후에 바로 먹어야 제격이다.

그걸 생각하며 나는 감자를 먹기로 생각했다. 내 손길은 자연스레 감자로 다가갔다. 작고 동그란 감자를 하나 골라 구름처럼 새하얀 소금에 콕 찍어 먹었다.

입 안에 뭉클 감겨드는 감자의 속살. 소금의 짠 맛이 느껴지다가 어느새 밍밍한 감자 속살이 입 안에 흩어진다. 부드럽게 부서지는 감자 속살을 음미하다가 목이 메어 허브 차를 한 잔 끓여 같이 먹어보았다. 허브 차의 은근한 향이 감자 속살과 어우러지면서 제법 괜찮은 맛이 난다. 한 알을 거의 다 먹을 즈음, 아직도 남아 있는 감자알을 보다가 언뜻 감자밥을 해 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밥그릇에 감자를 넣고 숟가락으로 정성스레 으깨기 시작했다. 다 으깨진 감자 위에 밥을 적당히 넣고 다시 비비기 시작했다. 어느새 새하얀 밥과 감자가 알 맞춤하게 섞여 보기에도 훌륭한 감자밥이 되었다.

어느 정도 비벼지자 한 술 떠 볼까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한 숟가락 가득 감자밥을 떠서 입안으로 가져가니 혀끝에는 그리운 유년 시절의 향수가 진득하게 배어나왔다. 슬며시 감기는 눈. 감은 눈 사이로 예수 추억이 잔잔히 떠올랐다.

우리 형제자매는 다섯 명이었다. 게다가 삼촌들이 우리 집에 모여 들어 늘 집안은 시끌벅적했다. 자식들 다섯에 삼촌들의 밥과 옷가지 까지. 그 모든 살림을 엄마 혼자서 하셨다. 그래서 난 늘 엄마의 삶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 때론 왜 우리 집은 이렇게 번잡할까 하며 속상해 하기도 했다.

엄마는 간혹 많은 식구를 위하여 감자나 고구마를 푹 삶아 요깃거리로 내오시기도 했다. 난 주로 고구마를 좋아했지만, 엄마는 감자를 즐겨 드셨다. 간혹 감자와 밥을 섞은 감자밥을 드시곤 했는데, 어쩔 때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감자밥을 드시곤 했다.

그러나 난 감자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밥맛도 어딘가 모르게 심심한데다 연약하게 부서지는 감자의 속살이 밥알과 섞이는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지? 왜 엄마는 이걸 좋아하시는 걸까?'

엄마는 감자밥을 너무나 맛있게 드셨다. 특히 추운 겨울날이면 동치미 국물과 함께 감자밥을 즐겨 드셨는데, 드시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감자밥인 것 같았다. 늘 젖어 있었고 잔주름이 가득 찼던 엄마의 손. 그 투박한 손으로 감자밥을 드시던 엄마.

엄마는 늘 내가 남긴 감자밥을 혼자 드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맛있는 밥을 왜 안 먹느냐면서, 마치 내가 맛있는 것을 못 먹는 바보라는 듯 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면 난 의아스러워서 엄마 몰래 감자밥을 한 술 떠서 먹어보았다. 그러나 역시 맛없는 밥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때만 해도 감자나 고구마는 무척 싼 곡물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식구들에게 쌀 한 톨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당신의 밥에 감자를 섞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너무 맛있다며 너스레를 떠셨던 것일까?

다시 감자밥을 입으로 가져간다. 심심한 맛이 입안 가득 몰려온다. 어쩌면 그것은 푸근한 시골의 맛인지도 모른다. 맑은 시냇물이 참나리 꽃을 희롱하며 흘러가는 작은 시골 마을의 정겨운 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가 단순히 한 톨의 쌀을 아끼기 위하여 감자밥을 드신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릴 적 고향 산천이 그리워서, 이모와 외삼촌들이 그리워서 감자밥을 즐겨 드신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내가 만든 감자밥은 조금씩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다가와 감자밥이라는 희한한 음식을 먹는 엄마를 연신 신기하게 쳐다본다. ‘엄마, 왜 그렇게 먹어라며 아들놈이 식탁 의자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본다.

잠시 그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마, 옛 시절에 우리 엄마도 내 눈동자를 그렇게 내려다보셨을 것이다.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던 엄마. 시집 간 딸을 늘 걱정하시는 엄마의 얼굴이 감자밥 사이로 아롱져 보였다.

엄마는 지금도 감자밥을 즐겨 드실까? 아마 드실 것이다.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드셨지만 지금은 고향의 맛을 잊어먹지 않기 위해 드실 것이다. 엄마의 부모 형제들이 수도 없이 많이 드셨던 그 감자밥을 여전히 드실 것이다.

감자밥에 어린 엄마의 얼굴. 그리고 내 유년시절의 잔잔한 그리움. 감자밥에 어린 고향의 푸근한 정이 어느새 집안에 곱다시 내려앉았다. 어느덧 내 나이도 40대 중반. 엄마를 만나면 왜 그때 감자밥을 드셨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건 그냥 한 때의 추억으로 돌리기 위해 남겨둬야겠다. 아직도 엄마와 나는 할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감자밥을 다 먹고 난 후, 시계를 보니 10시가 가까워 온다. 급히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이부자리를 깔았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있다. 그 봉지를 건네주며 남편은 너스레를 떤다.

낮에 트럭 행상에서 산거야. 감자가 무척 싸더라고.”

감자라고? 내가 사 놨는데?”

그랬어? 에이, 전화를 하지.”

그런 일로 어떻게 전화를 해?”

남편은 머쓱해진 표정으로 잠시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한다.

, 감자 풍년이네. 두고두고 먹지 머.”

나는 약간 눈을 흘기며 봉지를 열어 보았다. 굵고 커다란 감자가 이 십 개 정도 들어 있었다.

아휴, 주말마다 감자 전 부쳐 먹게 생겼네. 당신이 모두 다해!”

걱정 마셔. 내가 맛있게 부쳐 줄 테니까.”

난 감자를 냉장고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감자밥도 해먹고 감자전도 부쳐 먹고, 감자튀김도 해먹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우리 집은 온통 감자 반찬이다. 잘 됐네, . 할 반찬도 없었는데.”

남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욕실로 들어간다. 몰려 온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감자만 먹을 생각을 하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애들아, 그렇다고 엄마가 감자 반찬만 하겠니? 너희들 좋아하는 반찬도 해줄 테니 안심하고 자렴.”

그제야 아이들은 안심인 듯 제각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감자로 시작된 우리 집의 밤은 삶은 감자의 부드러운 속살처럼 부드럽게 잦아들었다. 베란다에는 감자 꽃처럼 하얀 달빛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16.11.29 21:49
    오랜만에 따스한 글을 읽어봅니다! ^^
  • profile
    korean 2017.01.01 21:57
    아!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습작을 거듭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6 file korean 2014.07.16 2769
113 제22회 한국인창작콘테스트_앵무새 죽이기, 끈질기게 후회하는 법 1 이오 2018.04.10 23
112 아무들의 아무들의 아무렇지 않은 누액 1 박미기 2018.02.26 23
» 감자밥의 추억 2 김대갑 2016.11.28 23
110 제 34차 창작콘테스트 수필공모 - 생각 주머니가 작다고? 1 file prince 2020.04.09 22
109 [제 33차 공모전]수필 부문-비가 알려준 세상 1 wlgus 2019.12.18 22
108 어두운 과거 1 작가뮤즈 2017.02.09 22
107 흙 그리고 논 외 1 1 소평 2018.08.10 22
106 유년의 추억ㅡ1ㅡ 1 빡샘 2017.02.01 22
105 회한 1 적극적방관자 2020.01.09 22
104 제 24차 창작콘테스트 - 스며들다. 1 내최 2018.08.01 22
103 제14차 <창작 콘테스트> 돈 좀 써라 //신정빈 2 Ravlitzen 2016.11.04 22
102 [제 32대 창작콘서트] 수필 공모 1 인공잔디 2019.12.09 21
101 [제 34차 한국인 창작 콘테스트 수필 공모 ]제목: 동상이몽 [同床異夢] 1편 1 보노우직 2020.04.10 21
100 제 34차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 _ 1.머터니티 블루 2. 낭독태교 1 minabab 2020.04.08 21
99 [제 32차 창작공모전] 수필부문 - 故최진리를 추모하며 외 1편 1 최리 2019.12.10 21
98 32회 창작 콘테스트 수필 응모 1 적극적방관자 2019.11.29 21
97 제29차 창작콘테스트 수필공모-Honey 1 genie7080 2019.06.10 21
96 수필공모 - 은행밥, 뻐끔뻐끔 1 유음 2018.08.10 21
95 제 24차 창작 콘테스트 소설 부문 응모/오래된 친구 외 1편 1 루하 2018.08.03 21
94 하와이 여행 (부제 : 해가 뜨네 카리브 해에) 1 박미기 2018.02.26 21
Board Pagination Prev 1 ...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