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할만한 이야기
줄놀이 같은 세상사에 몸을 싣고 끌러내렸다 당겼다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없는 묵은 고민들이 틈새를 꿰뚫어 예리하게 찾아든다.
다르다. 사람다운 것과 지혜로운 것 사이에서 방황힌다.
나의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건지 사람들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건지. 몽롱한 뇌를 두드린다.
너무도 맞고 너무도 잔혹하면서도 그 주어와 목적어가 자아내는 묘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무엇이 시체같은 몸뚱이를 걷게하고 식어빠진 심정을 달군단 말인가.
글 쓰는것을 참 좋아했는데 어느날부터 글을 안쓰게되었다.
다만 3-4줄이라도 적어놓고 나면 조금 덜어진 외로움에 고개를 끄덕여보기도 하던 날들...
해가 질 무렵에 거짓말처럼 밀려드는 땅거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조정하던 끈을 끊어버림과 같이 주저앉을 피로를 선사하고
때떄로 그리운 것들이, 외로운 것들이, 속상한 것들이 밀물이 된다.
그러면 나는 사랑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한다. 닳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날카로운 돌 두개가 닳아 예쁜 조약돌이 되지만 그 사이에는 틈이생기고 파도가 오가고 그러면 그들은 멀어지려나.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 내것이 아니었으니 잃을 것도 없는 삶이거늘 잠시 내것이었음에,
혹은 내가 잠시 누군가의 것이었음에 잃어버렸거나 버려졌거나 떠났거나 혹은 남겨진 것이다.
티비 속 드라마는 세상 가장 지혜롭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르친다.
그들은 불속으로도 뛰어들것만 같은 사랑을 하고 견뎌내고 이뤄낸다.
서로의 날에 마음이 베였을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겨내고 사랑하는 마음에 멍이 들었을땐..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겨낸다.
뒤돌아서면 그만인것을 시린 등 한번 보고 나면 그만인 것을.
같은 하늘아래 손못잡는게 그토록 미어져서 그렇게 사랑하고 또 사랑해낸다.
그렇게 배운것같다. 어리석게 사는 법을.
그렇게 적어둔것같다.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지하철 한켠
언젠가 몇번 퇴근시간. 지하철 같은 칸에 서로를 기대어 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곳이 서울인지라 그들의 차림새나 표정만 보아도 얼추 숨겨진 삶들이 읽혀질듯했는데
그렇게 우린 피로에 피로를 기대며 말없이 서로의 지친 이야기들을 보듬고 보이지않는 위로에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보다는 조금 한적하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런던의 튜브 한켠에
누군가에게 읽힐지모르는 말풍선을 고이 숨켜두고
아직 채 소화가 덜 된 저녁식사때문에 밀려오는 졸음을 꾸역꾸역 참아보는 저녁 8시.
이곳은 서울보다 어려운 암호들이 곳곳에 얽혀있다.
표정을 보아도 신발을 보아도 차림새를 보아도, 알수없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종종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무슨 꿈을 꾸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는 것.
별 것 없을지 모르는 이 소소한 호기심은 요새 내게 가장 큰 골칫덩어리이다.
각박한 현실과 짜여진 틀에서 간간히 숨을 쉬며 살아나가는 서울 지하철 속 피로들과는 달리
다소 자유분방하여 그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가늠조차할 수 없는 이들이 되려 안타까워보이는 것은 왜일지.
원하지 않는 내일일지언정 살아갈 다음 시간이 있는 피로가.
없어도 상관없을 내일을 살것만 같은 이 과부화된 피로들보단 나아보이는건 왜인지.
어떤 사랑을 하고 얼마나 따스한 안식처를 지녔는지.
무슨 꿈을 꾸고 얼마나 쫓으려 애쓰는지
눈길을 둘곳도 마음을 둘곳도, 소리없는 위로도 보이지 않는 포옹도 찾을 수 없는 런던의 튜브 한켠이 이토록 외로운 것은
아직 내가 외계인이어서인지.
혹은 상상조차 할 수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눌려 한없이 작아진 내가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건지도.
아무도 서로를 신경쓰지않는 사람들을 신경쓰고싶다.
분명한 존재일 공통점에 녹록해진 마음을 기댈 수 있다면 그땐.
그땐 세상에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게 훨씬. 더 많아져있을테다.
이름: 김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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