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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날카롭고 무서운 톱날이 굉음을 내며 빙글빙글 돌아가자, 나와 동료들은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명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지 그 쇳덩어리는 거침없이 나와 동료들의 몸을 베어내고 우리는 맥없이 쓰러졌습니다. 뿌리가 끊어져 숨이 막히고 두려움과 공포로 뻗뻗하게 굳어가던 몸은 톱만큼이나 시끄러운 쇳덩이에 실려 줄로 단단히 메어졌습니다. 덜컹거리는 쇳덩이에 몸을 싣고 도착한 곳은 난생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는 ‘사람’이 만든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 안에 들어가 몸이 산산조각나는 순간 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습니다. 꿈 속인가.. 산에서 바라보던 하늘과 달, 동료들, 내 가지에 와서 쉬어가던 많은 새들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힘겹게 눈을 뜨니 나는 ‘마트’ 라는 곳 안에서 투명한 비닐에 싸여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나무가 아닌 '휴지'라 부릅니다. 나는 꽤 고급휴지입니다. 당연합니다. 나는 좋은 나무였으니까요. 피곤하고 기분도 안좋지만 조금 으쓱해지는 건 왜일까요.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나는 어떤 젊은 여자의 차에 실려 그녀의 집으로 갑니다. 아파트 한켠에서 그녀가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집안일을 마친 그녀는 따뜻한 차를 가지고 소파에 앉습니다. 오랜만에 조용한 장소에 있으려니 좋은 것보다는 적응이 안되는군요. 그런데 나를 데려온 그녀에게는 고민이 있나봅니다. 탁자 옆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보더니 울기 시작합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피부는 참 부드럽군요. 그녀가 세수를 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의 고양이가 나를 굴리며 놀기 시작합니다. 헉.. 날카로운 발톱.. 자주 보던 고라니에게는 이런 발톱이 없었는데.. 하지만 나무가 아니여서인지 더 이상 아픔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내 몸을 칼로 그을 때는 너무 아팠는데.. 휴지가 된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왜 울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집니다. 고양이가 나를 이리저리 굴리지만 않으면 더 생각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잠시 후 돌아온 그녀는 고양이에게서 나를 구해줍니다. 텔레비전 위에서 째깍째깍 들려오는 시계바늘소리를 듣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립니다. 소란스럽게 뛰어들어온 자그마한 여자아이는 그녀의 품에 안겨 학교에서의 일을 이야기합니다. 어찌나 재잘거리는지 밥을 먹을 때에도 멈추지 않는군요. 그리고 저는 또 고양이의 장난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높은 텔레비전 위에 어떻게 올라왔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녁을 먹은 뒤 그녀는 아이에게 양치질을 시켜준 후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저도 같이 듣습니다. 아이는 금새 잠이 들고 나도 잠들고 싶지만 휴지가 된 다음부터는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작은 방에 아이를 눕히고 나온 그녀는 탁자 안에 넣어놓았던 사진을 다시 꺼내어 한참을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울지 않는군요. 아이가 집에 있어서 울지않는 것인지.. 왠지 그녀가 좋은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던 사진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집니다.


아침이 되자 아이는 씻으랴 옷을 입으랴 정신이 없습니다. 여자아이인지라 옷을 고르는데 참 시간이 많이 걸리는군요. 아이가 좀 더 이쁜 옷을 입고싶다 떼를 쓰자, 그녀는 아이를 조용히 꾸짖으며 준비물을 챙겨줍니다. 3교시는 미술시간이라는데 휴지공예라는 것을 한다합니다. 고양이 발톱에 많이 뜯겨져나간 나를 그녀가 바라봅니다. 그녀와 하루만에 작별을 하게 되는군요. 물론 휴지라는 존재가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이 쓰고는 휴지통에 버려진채 소각장이라는 곳에 가게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세상에서 사라지다니.. 한 번 죽었던 몸이지만 그래도 또 다시 슬퍼집니다. 아이의 가방 안에 들어가기 전,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젠 울지말라고 하지만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아이의 가방 속에 납작하게 눌려 차소리에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귀를 기울입니다. 아빠가 보고싶다고 보채는 아이에게 그녀는 다음주 쉬는 날에 보러가자 하는군요. 사람의 사진이라면 사진 속 사람이 아이의 아빠일지 추측을 해봅니다. 등산 온 사람들 중에는 가족들이 많았었는데.. 나무였을 때의 기억을 더듬자 우울해집니다. 휴지의 생을 마감하면 나는 한줌 재가 되는 것인지.. 그래도 마트 안에서 친구들이 말하는 그 변기라는 그릇 안에 들어가 물 속에서 흩어지는 것보다는 낫다며 힘겹게 나를 위로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종소리와 많은 아이들의 소리만 들립니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무척이나 소란한 가운데 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가방문을 열고 나를 꺼냅니다. 휴지공예라는 게 뭔지 궁금해집니다. 주변의 다른 휴지들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나도 덩달아 걱정이 됩니다. 잠시 후 나는 여러 조각으로 뜯겨져나가 끈적하고 독한 냄새가 나는 것에 발려집니다. 불안하지만 아이가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는 애써 담담해지려 노력합니다. 뿔테안경을 낀 남자선생님이 아이에게 다가와 예쁜 카네이션이라고 칭찬합니다. 카네이션이 뭘까요..? 미술시간이 끝나자 나는 아이의 손에 들려져 교실 뒤쪽 선반 위에 놓여집니다. 어찌나 나를 조심조심 다루는지.. 아직은 휴지통에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아이를 바라보는데,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너무나도 이쁘게 다시 웃습니다. 나도 같이 웃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소란스럽던 교실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가고 문이 잠기자 조용해집니다. 내 옆의 다른 휴지들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봅니다. 산에서 가끔 보던 강아지도 있고 사람의 신발모양도 있고 집모양도 있습니다. 집모양의 동료는 튼튼하게 붙여지지 못했는지 조금씩 무너지는군요. 불쌍해라..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보다는, 내가 어떤 모양인지 더 궁금해집니다. 금요일이라 주말은 교실에서 보내야겠군요. 해가 따뜻하게 내리쬐는 밖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어느 새 이틀이 지나가고 나는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습니다. 원래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젠 더더욱 움직일 수 없겠군요. 아침이 되자 교실 안은 다시 아이들로 북적댑니다. 수업시간 내내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이도 중간중간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웃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만든 것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데 무너져버린 집 모양의 친구는 안타깝게도 휴지통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는 아이의 손에 들려 교실 밖을 나갑니다. 교문 앞에 그녀가 서있습니다. 하루밖에 보지 못한 그녀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집으로 와서 식탁 위에 올려집니다. 아이는 털이 달린 길다란 것을 들고 차가운 물을 내 몸 위에 바릅니다. 그리고 나는 축축해진 채로 자그마한 책방 책상 위에 조심조심 올려집니다. 고양이가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이 닫히고, 나는 내 몸에 발라진 물이 마를 때까지 그 방에 혼자 있었습니다. 공장과 마트에서 시달린지라 외롭다기보다는 참 조용하고 좋습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계 속의 뻐꾸기가 몇 번이나 울었는지.. 그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다가와 나를 들어올리며 바라봅니다. 그녀도 아이의 선생님처럼 나에게 이쁘다고 하는군요. 나의 어디가 어떻게 이쁜 것일까요? 고민하다 그녀의 뒤를 보니 귀여운 옷을 입은 아이가 보입니다. 어디를 가려는 것 같은데.. 그녀도 외출복을 입었습니다. 고양이가 나를 보고 싶은지 그녀의 다리에 매달려 보챕니다. 다행이도 그녀는 나를 고양이에게 주지 않고, 자그마한 박스 안에 솜뭉치들과 같이 넣습니다. 깜깜하지만 차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을 보니 어디론가 가는 것 같습니다. 어느 덧 차는 멈추고 초인종 소리가 들립니다. 아빠라고 외치는 아이와 그녀, 또 어떤 남자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아이가 보고 싶다던 아빠인가 봅니다. 사진 속의 남자가 궁금했는데 볼 수 있겠군요. 아이는 자신이 아빠를 주려 만들었다며 들뜬 목소리로 빨리 보여주고싶다 합니다. 그녀는 밥을 먹고 보여드리자 하지만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나봅니다. 상자뚜껑이 열리자 그렇게도 궁금하던 남자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이를 조금 닮은 것 같은 남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리고 나를 꺼내어 거실의 큰 장식장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안습니다. 그녀는 계속 그 모습을 보며 웃지만 남자가 바라보자 애써 웃지 않는군요. 남자도 그녀를 볼 때는 긴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밥을 먹은 세 사람은 거실로 나와 과일을 먹습니다.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던 아이가 하품을 하자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려하고, 남자는 늦어서 위험하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결국 그녀는 아이와 방에 들어가고 남자는 나에게 다가와 나를 다시 바라봅니다. 다음 날 아침, 오늘은 공휴일이라며 아이는 엄마아빠와 다 같이 놀이동산에 가자 떼를 쓰고 남자와 그녀는 아이와 집을 나섭니다. 아이에게 버릇없다 나무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녀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날 밤 남자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곰돌이 풍선을 들고와서 나를 한참이나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내가 남자의 집에 온 후, 그녀와 아이는 남자의 집에 오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가끔 남자가 그녀의 집에 가기도 합니다. 나는 남자의 집이 좋습니다. 장식장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 꽤 큼직한 산이 보이는데, 나무였을 때 바라보던 풍경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참 아름답습니다. 가끔 운이 좋으면 창문 앞으로 온 다람쥐나 새들을 보기도 합니다. 어느 덧 계절은 두 번바뀌었고 첫 눈이 내리던 날, 그녀와 아이는 큰 트럭을 타고 왔습니다. 큰 트럭에서 가방과 가구들이 나와 남자의 집에 옮겨지고, 이제 나는 그녀와 아이를 매일 봅니다.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고양이 때문에 나는 장식장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장식장 안은 먼지도 쌓이지 않고 좋습니다. 깔끔한 그녀가 장식장 유리를 매일 닦아주어 밖도 잘 보입니다.


오늘은 꽃구경을 한다며 그와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나갑니다. 나는 조용한 집안에서 고양이와 함께 나란히 창 밖 풍경을 바라봅니다. 산에 꽃들이 피어서인지 평소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나를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그와 그녀, 그리고 아이가 미소짓던 '카네이션'의 모습을 하고있는 나를 말입니다.


언젠가 볼 수 있을까요..?



착한 아들


사람들은 나를 바보라 부릅니다. 나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셀 수 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내 나이는 열 개가 넘어서 누가 몇 살이냐 물어보면 쉽게 대답을 못합니다. 그래서 나를 바보라고 하는 걸까요? 바보가 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그 말을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나는 엄마와 같이 삽니다. 엄마는 아침 일찍 밥을 차려주고 일을 나갑니다. 그래서 일어나보면 엄마는 없고 밥상만 이불 옆에 있습니다. 나는 엄마가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솟아오른 이불을 손바닥으로 팡팡 쳐서 가지런하게 합니다. 어차피 자면 이불은 또 이렇게 될 텐데.. 엄마가 왜 정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정리해놓으면 엄마가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줘서 매일마다 꼭 합니다.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나면 무척이나 심심합니다. 강아지랑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텐데.. 사달라고 계속 졸랐는데 엄마는 움직이지 않는 흰 강아지인형을 사왔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나를 졸졸 따라오지는 않지만 참 이쁘게 생겼습니다. 강아지를 껴안고 누워있다 심심하면 텔레비전을 봅니다. 한참을 보다가 눈이 아프면 이불 위에 누워 잠을 잡니다. 낮잠을 자다 깨면 엄마가 집에 와있을 때가 많습니다.


집에 온 엄마는 내 얼굴을 씻어주고 머리도 감겨줍니다. 머리를 말려준 후 엄마는 내가 먹은 밥상을 치우고, 다시 밥을 하고 찌개도 끓입니다. 엄마와 같이 있는 저녁이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저녁을 먹은 후 나는 설겆이하고 청소하는 엄마를 바라봅니다. 밤이 되면 나는 엄마와 나란히 앉아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봅니다. 엄마와는 다르게 화장을 진하게 한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울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엄마가 열심히 봐서 나도 따라봅니다. 재미는 정말 없습니다.


엄마에게는 가끔 전화가 걸려옵니다. 나는 엄마의 전화기가 참 싫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엄마가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전화기에 대고 같은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돈을 곧 갚겠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엄마는 열여섯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며 초코케이크를 사주셨습니다. 열심히 입김을 불어 촛불을 끄는 나를 바라보며, 엄마가 이제 다 컸다고 기특하다 칭찬해주셨습니다. 착한 아들이라고.. 어서 효자가 되라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이불을 좀 더 열심히 정리해야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나서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를 끄고 눕는 엄마의 등을 보다, 더 착한 아들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엄마의 전화기를 멀리 버리고 오면 엄마가 힘들지 않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금은 밤이니까 나가지는 못하고 일단 엄마의 전화기를 숨기기로 합니다. 잠이 든 엄마가 깰까 조심조심 전화기를 들고 방을 나가 어디에 숨겨야할지 고민을 합니다. 세탁기 뚜껑을 열어보니 내 바지가 물 안에 있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머뭇거리다 전화기를 엉켜있는 바지 아래로 넣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엄마 옆에 눕는데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서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일어나보니 다른 날과 같이 엄마는 없고 밥상만 있습니다. 배가 고프지만 먼저 엄마의 전화기를 멀리 두고 와야합니다. 나는 엄마가 외출할 때 입혀주는 두꺼운 잠바를 입고 양말도 신습니다. 세탁기 안, 바지 사이에서 꺼낸 핸드폰은 물에 젖어 차갑지만 손에 꼭 쥐고 신발을 신습니다. 엄마가 절대 혼자 집 밖을 나가지 말라했는데.. 잠시 머뭇거립니다. 하지만 난 효자가 되야하니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니 눈이 많이 와서 세상이 온통 하얗습니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깁니다. 집 가까이 버리면 엄마가 전화기를 볼지도 모르니 더 멀리 가야합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까 망설이다 멀리 차가 보이는 곳으로 부지런히 걷는데 누가 내 팔을 잡습니다. 엄마가 가끔 같이 나가서 과자를 사주는 슈퍼 아주머니입니다. 아주머니는 혼자서 집을 나오면 어떻게 하냐며 나를 붙잡습니다. 엄마 전화기 버려야하는데.. 손에 꼭 쥔 전화기를 잠바주머니 안에 넣고, 내 팔을 잡아당기는 아주머니에게 끌려갑니다. 가게에 들어가니 과자가 너무 많습니다. 뚫어져라 과자를 보는 나를 가게 안쪽 방으로 데려간 아주머니가 초코파이와 우유를 주며 먹고있으라 합니다. 밥을 안먹어서 그런지 너무 달고 맛있습니다. 아주머니가 틀어준 만화를 보다 어느 새 나는 잠이 듭니다.


얼마나 자고 있었을까요. 누가 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눈을 떠보니 엄마가 허둥대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내 얼굴과 팔다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어디 다친 데는 없냐 묻던 엄마는 이내 내 등짝을 매섭게 내려칩니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엄마는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다 나를 보더니 과자도 몇 개 삽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내 양말과 잠바를 벗겨 욕실로 데려가 씻겨줍니다. 젖은 머리를 말려보겠다며 수건으로 머리를 비비고있는데 엄마가 내 잠바 안에서 전화기를 꺼냅니다. 앗차! 전화기 멀리 버리고 와야하는데.. 엄마는 전화기를 보고 나를 한 번 바라보다, 조용히 전화기를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고 밥을 합니다. 혼날 줄 알고 잔뜩 움츠려있던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엄마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밥을 먹고난 후 엄마는 잠시 나갔다오겠다며 전화기를 들고 집 밖을 나갑니다. 엄마도 전화기를 버리고싶은 걸까요..? 그런데 밖이 많이 깜깜해지고 엄마가 보는 드라마도 끝이 났는데 엄마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추워서 텔레비전을 끄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서 계속 엄마를 기다립니다. 잠이 오면 안되는데.. 엄마 기다려야하는데.. 눈에 힘을 잔뜩 줘보지만 너무 졸립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엄마가 없습니다. 밥상도 없습니다. 부엌에 가서 엄마가 어제 사온 과자를 뜯어먹습니다. 엄마가 과자 많이 먹으면 이빨이 아파 병원에 가야한다 했지만 배가 고파서 다 먹어버립니다. 텔레비전을 보며 엄마를 기다리는데 엄마는 계속 오지 않습니다. 날이 깜깜해지자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엄마는 그냥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우두커니 문 앞에 서있는데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무서워서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아저씨 중 한 명이 내 이름을 부릅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은 나에게 잠바를 입혀주고 양말도 신겨주면서 같이 엄마를 보러가자 합니다. 아저씨들과 같이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굉장히 큰 병원입니다.


사람도 많고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는데 흰 옷을 입은 누나들이 나를 조심스럽게 어디로 데려갑니다. 병원 안과 달리 좀 추운 방에 가자, 누나들이 엄마에게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하라 합니다. 엄마가 어디를 가나? 어리둥절해 있는데 엄마가 조그만 침대 위에 누워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러봅니다. 아파서 자고있는지 엄마는 감은 눈을 뜨지 않습니다. 깨우면 안되는 걸까.. 난 아저씨들 눈치를 보며 슬며시 엄마를 흔들어보지만 엄마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흰 옷을 입은 누나들이 엄마를 계속 깨우는 나를 데리고 방 안을 나갑니다. 엄마랑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싶은데 누나들은 식당으로 나를 데려가 밥을 줍니다.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고있는데 누나들이 안먹고 나를 쳐다봐서 신경이 쓰입니다. 밥을 다 먹자 조그만 방에 데려가서 텔레비전을 틀어줍니다. 엄마는 왜 안오냐고 묻는데 누나들은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습니다. 한참을 만화를 보고있는데 똑같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다시 나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저씨들과 같이 간 곳에는 처음 보는 어떤 아저씨가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누나들이 아저씨에게 뭘 주고있는데, 엄마의 전화기와 가방입니다. 교통사고였다는 말에 처음 보는 아저씨가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내 얼굴을 한참 바라봅니다. 내 이름을 조용히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는 아저씨의 손을 피하려고 하는데, 똑같은 옷을 입은 아저씨가 아버지께 인사하라고 합니다. 입이 얼어붙은 것 같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처음 보는 아저씨가 아빠라고 부르면 된다며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큰 한숨을 내쉽니다. 나는 처음 보는 아빠를 따라 한참을 차를 타고 깜깜한 도로를 달립니다. 밤에 차를 타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해서 창문에 달라붙어 잘 보이지않는 창 밖을 보고있자니 아빠가 한숨 자라고 합니다. 나는 머쓱해져서 얌전히 앉아있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끝없이 달릴 것 같던 차는 어느 집 앞에 섭니다. 나는 아빠 뒤를 따라 깜깜한 집 안에 들어갑니다. 처음 보는 방이 낯설어 가만히 서있는데 아빠가 피곤하겠다며 이불을 깔아줍니다. 편히 자라며 토닥토닥 가슴팍을 두들겨주는 아빠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립니다.


어느 새 춥던 겨울은 지나가고 집 앞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아빠 집에 왔을 때 아빠는 엄마 가방을 보면서, 초록색 병에 든 썪은 냄새가 나는 물을 많이 마셨는데, 내가 실수로 몇 모금 먹고 토하는 것을 본 아빠는 그 후로 더 이상 마시지 않습니다. 가끔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엄마는 어디 있냐고 언제 오냐고 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엄마 이야기를 하면 아빠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해서 이제는 그냥 꾹 참습니다. 아빠는 시골에서 야채를 키웁니다. 아빠가 키우는 야채는 참 많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몇 명 있는데 얼굴이 까만 형도 있고, 피부가 아주 하얀 이쁜 누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가까이 못갔는데 형이랑 누나는 참 착합니다. 과자도 사주고 산딸기도 따줍니다. 얼굴이 흰 누나는 나보다도 말을 잘 못해서 내가 말을 가르쳐줄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아빠가 있는 시골은 엄마와 살던 집보다 좋습니다. 너무 귀여운 흰 강아지가 몇 마리나 있어서 심심하지도 않고, 집 앞에는 마당도 있어서 방에만 있지않아도 됩니다. 구름도 마음껏 볼 수 있고,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강도 있어서 물고기도 많이 구경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빠를 도와서 일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야채에 물도 주고 감자도 캡니다. 아빠가 효자라고 칭찬을 많이 해줘서 나는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지금은 쉬는 시간인데 아빠가 고구마를 구워줘서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열심히 야채도 기르고 재미있게 놀지만 나는 아빠의 전화기를 감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엄마와는 다르게 전화가 오면 주문이 들어왔다고 좋아하면서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적습니다. 아빠가 전화기를 좋아하니 나도 싫지는 않지만, 언젠가 전화기가 아빠를 힘들게 하면 꼭 멀리 가서 버리고 올 겁니다. 나는 착한 아들이니까요..



응모자 성명 : 최은수

이메일주소 : goodmind0024@hanmail.net

hp 연락처 : 010-869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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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시인 2015.12.20 21:44
    나무가 휴지로 가공되고 어린아이의 손에 의해 카네이션으로 변모할 때까지의 과정을 의인화하여 1인칭 동화로 구현하셨군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제기해 가는... 어쨌든 재미있습니다.

    착한아들은 지적 장애를 겪는 소년의 얘기군요.
    읽는 동안 남의 일이 아닌양 마음이 아파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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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왕따' 시켜줘서, 고마워 외 1편. 2 보통미소 2014.10.18 279
727 역설의 소통 좌민정 2014.12.07 278
726 어제, 오늘, 내일 재이 2015.04.10 273
725 넘어져도 무대위에서 외 1편 file 마술사 2015.02.10 270
724 포도껍질 오즈의마법사 2015.04.06 268
723 늘 옆에 있어 줄게요 작가가될거야 2014.09.01 266
» 제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보고싶습니다', '착한 아들' 1 프레리도그 2015.12.10 263
721 젊은 수필 마침 2014.12.07 262
720 Blurred lines 외 1편 mcK 2015.06.06 257
719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니? / 어디까지 용서할수 있니? 자유인 2014.12.08 257
718 여우가 되지 못한 곰 sandy94kr 2015.04.06 253
717 불나방 얼룩무늬뱀 2015.04.02 253
716 너랑 나는 같은 전공, 다른 모습 2 sadey 2014.10.16 252
715 어머니의 화초사랑외 1편 블랙로즈 2015.08.03 251
714 제10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공모 - '영정사진'외 1편 2 우지우 2016.02.19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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