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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 



작은 낙원, 청사포



1. 갈매기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처지는 또 얼마나 희극적인가. 옷깃에 축축한 눈가를 묻으며 바다 냄새 맡고는 허허 웃는 내 모습.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다. 오십의 반절도 안 되는 내 역사는 모든 분야에서 예외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면 하얀 호랑이, 노란색 수박 같은 것 정도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소외감을 느껴야하는 그런 것. 소외감이라면 또 어떤 것인가.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다. 혼자만 몸이 하얀 호랑이는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보기에도 이상한 노란 수박은 그걸 먹고 싶은 생각은 안 들지만 신기해하는 사람들에 의해 연신 손가락으로 쿡쿡 쑤심을 당할 뿐이다. 그래도 난 겉보기에는 지나치게 하얗고 노란색이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다.

 다름 아닌 바다에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과연 주류의 범주에 낄 수 있는 것일까. 무언가가 너무 슬프고 서러울 때 보통의 사람들은 연인을 찾거나,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거나, 또는 그럴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부모님에게 전화를 한다. 나는 그런데 왜 바다에 갈 수밖에 없는 걸까. 왜 바다에 가서는 내리자마자 보이는 그 파란 것에 위로를 받고 앉아있었던 걸까. 정말 생각해볼수록 정상이 아니다. 나는 왜 스물 둘이 될 동안, 제대로 털어놓을 인물 하나 없이 그렇게 방파제 위에 앉아서 갈매기랑 이야기만 하고 있었나. 그런데 심지어 갈매기들도 서로 사이가 좋아보였다. 너희들은 좋겠다. 이렇게 좋은 바다에 매일 살면서 맛있는 회도 매일 먹고, 나 같이 특이한 울보도 가끔 볼 것 아니니. 갈매기들이 나를 보고 뭐라 생각했을까? ‘저 인간은 왜 혼자 왔지. 여기는 데이트코스인데. 여기만큼 좋은 바다 데이트 장소가 없지. 하늘 예뻐, 조용해, 방파제 지나 계단 조금만 내려오면 바로 파도가 치는데. 어라, 울고 있네. 정말 이상한 날이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다가가니 도망갔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어. 까칠한 갈매기들 같으니라고.

 그렇다. 나는 사실 숨기고 싶다. 내가 제일 잘하는 짓이 글로 나를 쓰는 것인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는 너무 하기가 힘들다. 아마도 이 슬픔과 고통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 아닐까. 극복하지 못한 이야기는 꺼내놓기 힘든 법이다. 땅속에서 덜 성숙한 매미가 계속 그렇게 몇 년이고 죽은 듯 잠자는 것처럼. , 진부해, 유치해, 별 것 없는 사람.

 



2. 태양

 

 소매에 콧물을 닦으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겨울의 비극적인 추위가 절정에 달했던 어느 날, 스물 두 해를 산 어떤 여자가, 바다를 보면서, 그 위에 작열하는 시간의 심판자에 대해, ‘저건 너무 야속한 것이야.’

 너무 미웠다. 나는 어디로든 숨고 싶어서, 그것도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청사포로 온 것인데 저 해는 왜 이렇게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일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눈이 부시지 않았다. 도심에서 타오르는 태양은 너무 아프게 눈을 찌르곤 했었는데, 바다위에 뜬 것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인간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바다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난 것이지만 그런 건 아닐까? 바다에서 유독 해가 눈부시지 않은 이유는, 자기가 나중에 져야할 때를 대비해서 잘 보여 두려고? 이를테면 번지점프하기 전에 떨어질 강물에게 말을 거는 행위. ‘나 곧 그 아래로 첨벙할테니 혹시 잘못 떨어지더라도 부드럽게 대해줘! 알다시피 나 오늘은 별로 눈부시지 않았어.’같은 것.





3. 흰둥이 등대


 동지 발견. 이 작은 육지에서 유일하게 혼자인 것을 찾은 순간이었다. 멀리서 딱 봐도 외로워 보이기에 한달음에 달려가 등 뒤로 가 그늘에 숨었다.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다. 파란 바다가 마치 쌓인 흰 눈처럼 눈부셨다. 계속 보고 있자니 이렇게 멋진 장소가 있나 싶었다. 지친 해가 수평선 너머 까무룩 져버리고 어둠이 밀물처럼 바다를 덮었을 때 유일하게 이곳에서 빛을 내어주는 존재. 길 잃은 물고기들에게는 친절한 안내자가, 밤낚시꾼들에게는 눈이, 어부들에게는 생명줄이 되어주는 고마운 아이. 흰둥이 등대의 그림자는 춥지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불기는 했지만 못 견딜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파도가 한 번 철썩일 때마다 갈매기가 날아가며 울어댔다. 하늘은 흰 물감 흘린 파란 도화지 같았고 바람에서는 소금 섞인 드라이아이스 냄새가 났다. 빨간 등대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흰둥이 등대보다 컸다. 나는 그런데 어쩐지 이 낮고 예쁜 것이 더 좋다.

 나는 흰둥이 그림자에 숨어서 내내 생각했다. ‘내가 만약 한 줄의 서문을 쓰게 된다면 이렇게 써야지. 나를 울리고 내 노여움을 사고 나를 분노하게 하는, 그리하여 나를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워하지 않겠노라. 그저 받아들이겠다. 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한탄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내 몫일 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와 그녀의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만들어졌기에. 내가 몇 시간이라도 굶으면 죽을 수 있었던 젖먹이일 때 나를 거둔 것이 그 사람들 아니던가. 나를 키운 건 이토록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엄마, 할머니, 별로 해준 것 없지만 그래도 고마운 담임선생님들 몇 분이다. 그러니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자. 그리워하지 말자.’ 라고.




4. 낚시인들

 

 청사포에 사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고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자리를 잡고 낮은 의자를 펴고 기다란 낚싯대를 펼쳐서 지렁이를 콕 끼워서 바다로 던졌다. 그 일련의 동작이 무슨 춤 동작 같았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낚시가 그렇게 중독성이 있는 오락이라던데,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들이 낚시하는 곳은 꽤 위험했다. 방파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서있었다. 아마도 저 곳이 물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었나 보다. 그래도 저렇게 방파제 위에 서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혼자서 낚시하거나 걷다가 테트라포드 사이에 빠져서 익사한 사람도 해마다 나온다. 일단 빠지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아무리 살려달라고 고함쳐도 잔인한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떨어질 때 다리라도 삐거나 부러지면 웬만해서는 높이 때문에 빠져나올 수가 없다.

 저렇게 위험한 곳에서도 즐겨지는 것이 낚시란 말인가. 내 아빠도 낚시를 좋아한다던데, 나는 아빠가 낚시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물며 같이 바다에 온 적도 없었다. 늘 이렇게 바다는 나 혼자 오거나 가끔 친구랑 같이 오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아는 아빠가 실은 다른 사람은 아닐까. 지구 어딘가에서 생판 모르는 남이 사실은 내가, 소연아, 네 아빠란다. 하고 나타나면 어떨까. 사실 진짜 내 아빠는 이년동안 지척에 살면서 딸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그런 아빠가 아니고, 낚시를 좋아한다면서 딸이랑 같이 바다도 한 번 갈 생각 않는 그런 아빠도 아닌, 그저 다른 어떤 아버지들처럼 평범하게 월급 받으면 용돈은 많이 못줘도 돈가스 하나 정도는 불러내서 썰어 먹이는 그런 아빠인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내 아빠가 그런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글 쓸 생각 안했겠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그가 무덤에 묻히기 전까지도 계속 쓸 것이다. 나에 대해서, 엄마 아빠에 대해서. , 유치해. 진부해. 나는 정말 별 것 없다.




5. 청사포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던가. , 바다. 나는 바다에 대해 쓰고 있다. 바다는 내게 무엇이지? 바다와 나의 연관성을 찾아본다. 그것은 저 멀리 서울 사람이 보기에는 특수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부산 태생인데 회를 못 먹음, 바닷가 근처에 산다, 사투리를 씀등이 될 수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릴 때부터 바다는 바다였다. 늘 그 자리에서 그냥 그렇게 파도치고 있는. 나는 유년기를 해운대 일대에서 보냈다. 앞에서 말했듯 내 가족은 다함께 바다에 간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해운대에 살면서 바다를 자주 간 적 없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올 여름 해운대에는 사상 최다의 피서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 반 바다 반인 뉴스 화면에서 더 자주 접했던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바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사실 그건 당시의 내 손톱만큼 짧은 삶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일련의 사건들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엄마 또는 아빠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외할머니가 대신 가주었다. 나를 구성하는 것의 오 할은 외할머니와의 기억이다. 그리움, 그리움 또 그리움. 그리움의 바다, 그리움의 심연, 언제쯤 헤어날 수 있을까. 헤어나고 싶지 않다.


 정말 진실한 사랑을 겪는다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이건 막연한 내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양파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배였다, 같은. 그냥 그 자리에 놓여있는 사물이 어느 날 어떤 다른상황에 놓인 나와 마주한 뒤로 송두리째 그 정체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차지도 않는 그런 경지.

 나는 사람이 바글거리고 발전된 문화가 찬란히 빛나는 그 삭막한 서울을 동경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축축한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마을버스 2번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말린 해초들에게서 풍겨오는 비린 냄새와 불어오는 습한 바람, 차가운 햇살을 느낀 이후로, 어떤 지향점은 생각나지 않는다. 서울이라면 한강이 있을 테지만 그곳에서 해초를 건져 올리는 이는 없지 않은가. 돈과 사람만 너무 많은 거기에는 무엇보다, 등대가 없잖아.

 

 

 

송정으로

 

  

송정으로 가려면 해운대 바닷가를 거쳐야한다. 다른 길은 모르겠다. 나는 항상 그래왔다. 달맞이 길을 좋아해서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른다. 달맞이 길에는 근사한 포토 존이 있다. 저곳은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사진 속에 한 커플이 설정 샷을 찍고 있다. 내 기억으로 저 남자는 서울 말씨를 썼었는데 내가 듣기에 느끼했다. 그를 찍고 있는 여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봐, 이제 여기를 봐봐, 고개를 숙여봐, 좀 다른 포즈 없어? 하면서 셔터를 눌러댔었는데 남자보다 나이가 한참 어려 보였다. 한참을 저렇게 있었다. 그래서 나도 사진 찍고 싶었는데 못 찍었다.

 

 

 

1. 송정 등대 뒤편

 

 역시나 조용한 송정. 청사포보다 크고 시끄럽지만 해운대보다는 덜하다. 주변에 카페나 부대시설이 많아서 꽤 오래 머무르기에 좋다. 청사포와는 달리 모래밭이 있어서 여름철 해운대만큼이나 붐비는 곳. 나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끝 쪽으로 갔었다.

 송정은 이야깃거리가 많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왔던 엠티. 소중한 추억들. 나는 그때 동기들과 함께 민박집에서 시크릿의 아이두 아이두(맞는지?)를 췄었다. 지금 생각하니 폭소가 터져 나오는데, 그 몸짓들이 그립다. 이제 다시는 보고 듣지 못할 사람들의 모습들도. 그때는 그런 시간들이 앞으로도 많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추억할 뿐이다. 벌써 졸업여행 이야기가 나온다. 생각해보면 허무한 대학 시절. 가끔 술을 마셨고, 몇 편의 영화를 보았고, 몇 번 밤을 지새웠으며, 강의를 들었고, 글을 썼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지금은 쓴다. 빗소리를 들으며. 송정에도 비가 내리고 있겠지. 언젠가는 그곳에 뿌려 줘야하는데. 내 동생을 말이다.

 나는 혼자다. 사람 동생은 없고 지금 무지개다리를 건넌 개 동생이 있다. 이름은 차돌이인데 그건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이라 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지 나와 엄마는 구니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차돌이가 더 좋은 것 같다.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인데 왜 바꿔 불렀을까. 할머니는 내색 안 해도 서운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둘이 같이 있으니 다행이다. 저 사진을 보면 열두 살 먹은 개 동생 생각이 난다. 마지막으로 함께 외출했던 곳이 저곳이었다. 저 때만해도 건강했던 아이였는데. 등대 주변에서 바람 킁킁 들이키며 뛰어 다니는 모습이 선명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 날이 조금 추워서, 바람도 많이 불어서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개 동생을 안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구니야. 오늘은 그만 집에 가자. 다음에 또 데리고 와줄게. 오늘은 춥다. 다음에 오자?……

 

 정말 야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늘 당연하다고 여겼던 누군가가 환영처럼 희미해져가는 그 순간에도 나는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늘 떠나보내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퓨즈를 끊어버린다. 과부하가 걸리면 감당할 수 없으니까 겁쟁이처럼.

시간에도 일기 예보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해풍을 측정하고 날씨를 예측할 수 있듯이 내게도 불어 닥치는 크고 작은 파도를 감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412일 화요일

다시 송정으로


1.미포 문탠 로드 입구

 

 송정으로 가는 다른 길을 발견했다. 미포 철길. 원래부터 있던 길이었고 알고 있기도 했지만 송정으로 이어진다는 건 알지 못했다. 여행을 해야 했다. 수요일은 비가 온다고 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바다도 나쁘지 않다. 아니다, 이건 핑계다. 사실은 너무 갑갑해서 나왔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정말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그런데 그게 이사는 아니다. 그래봤자 해운대 안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떠도는 것은 고달프다. 키우는 고양이의 털 냄새가 위안이 되지 않을 때에는, 엄마의 푸념이 힘들 때는 나오는 것이 좋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미포 문탠 로드 입구까지는 버스로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서울에 사는 이모와 사촌 형제들과 왔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었다. 손에는 라떼를 한 잔 들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가로등 밑에 그늘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철길에는, 빛이 없었다.



2. 시작

 

 해가 느긋한 오후 312분경. 철로의 시작점에 발끝을 갖다 대었다. 입구에 꽃들과 함께 미포 철길의 상업적 개발을 반대한다는 시위 피켓이 서있었다. 길을 걷는 내내 봤던 내용의 글이었다. 2018년에는 시민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라고. 개발을 하고야 말겠다는 부산과 반대하고야 말겠다는 시민 단체. 굳이 들쑤셔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미 꽤 많이 아름다운 산책로인데.

  


3.

 

 길을 끝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항상 중간에서 바다만 보다가 돌아갔었다. 중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끝을 모른다. 두 시간 반이나 걸었는데 끝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확실히 아는 것은 시작점뿐이다. 소박하게 피어있던 꽃무리들. 신발 밑창에 생경하게 와 닿는 자갈의 감각들. 꺼진 가로등 몇 개. 아침처럼 밝았던 하늘. 나는 미포 철길의 얼마를 걷다 왔는지 잘 모른다. 나는 그러므로 어느 누구에게도, “나는 그날 미포 철길의 중간까지 갔다 왔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나는 그날 미포 철길의 어느 한 부분을 거니다 왔지.”라고 말 할 뿐.

 언제나 그렇듯, 끝에 무엇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설령 기다리는 것이 낭떠러지 절벽이라 해도.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밟을 나무판자길, 돌멩이가 내겐 더 중요하다. 무엇을 보았는지, 그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보다도, 바다. 어떤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봤는지.

 



4. 네 편이 되어줄게

 

 철길을 따라 걷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철로는 아스팔트처럼 잘 포장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단한 운동화를 신지 않으면 그리고 오래걸을 수 없다. 돌을 피해 철 위로만 걷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바다를 보며 걷다가 삐끗할 위험이 다분하다. 때문에 걸으면서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 귓가에 들리는 건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 사람들의 말소리, 파도소리, 새소리, 돌밭을 걷는 내 발소리뿐이었다. 철썩, 솨아. 솨아. 사각, 사각, 자박, 자박. 눈이 보여서 다행이었고, 귀가 멀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시야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몇 분 전 내게 카메라를 쥐어준 커플도 사라지고 없었다. 철저히 혼자였다. 나는 몇 걸음을 걷다가, 바람 냄새를 맡았고, 눈을 감았다가 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 습한 바람. 날리는 머리칼이 미세하게 젖어들었다. 간간히 나무들이 몸을 부대끼는 소리가 났고, 새가 웃었고, 바다는 해맑게 넘실거렸다. 멈춰 서서는 사진을 찍었다. 걸어갈 길을 찍었고, 바다를 찍었고, 걸어왔던 길을 찍었다.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홀로 선 청사포의 흰둥이 등대에 동질감을 느꼈던 나였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기나긴 길 위에서 바다를 보는 것은, 그 순간 내겐 꽤 멋진 일이었다. 무엇보다 갑갑하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면 하늘에 닿을 것 같았고, 코에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바다를 들이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평선이 무릎 맞은편에 있었다. 나는, 쓸쓸했지만 슬프지 않았다. 광활한 푸름 앞에서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어느 한 겨울날 청사포에서 위안을 받았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천식처럼 내 폐부를 갉아먹는 파란 우울은 바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야만 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바다는 얼마나 넓고, 고고한 수평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에 비하면 내 슬픔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것이지. 작디작은 것이지하는, 천치 같은 위안.


 내가 아홉 살 때 큰 이모와 사촌 언니 동생과 왔을 때는 딱 여기까지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차를 타고 광안리로 갔었다. 재작년에도 그곳에서 회를 먹었다. 부산에 살면서 회를 못 먹는 게 말이 안 돼! 하는 사촌 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유치원생이었을 때부터 편식이 심했다. 젤리도 아니면서 물렁거리는 것, 채소에 젓갈을 넣고 버무린 것, 해삼과 멍게처럼 요상하게 생긴 것은 삼키지를 못했다. 회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은 아마도, 다섯 살 때 아빠가 집 앞 트럭에서 사 온 오징어 회 때문인 걸로 안다. 이 때 오징어 회는 젤리도 아니면서 물렁거리는 것에 해당했다. 맛도 안 나고 비린데다가 입 안에서 이상하게 부서지는 식감이 매우 힘들었다. 광안리에서는 회를 얼마나 먹었더라. 회가 꽤 비쌌다. 세 접시인가 나왔는데 십 만원이 훌쩍 넘었던 것 같다. 몇 점 집어 먹었는데 회보다 스시에 손이 더 갔다. 회는, 아직은 아니었다. 그런데 산 낙지는 먹을 만 했다. 잘게 잘려서는 참기름이 뿌려진 걸 맛있게 먹는 사촌동생을 보고 먹었었는데, 고소했다.



 걷다 보면 양 옆으로 나무가 많아서 숲속을 통과하는 느낌도 든다. 공기가 청량했다.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 철로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표식들이 보인다. 구 송정역까지 도보로 몇 분소요. 그리고 이상한 숫자들. 외계어 같은 것도 있었다. 아마도 공사하는 사람들만 아는 언어일 것이다.

 나는 돌 위를 걷기도 하고, 철길 한 가운데로 가 나무를 밟기도 했다. 조금 더 오래 걷다 보면, 상념과 잡념이 환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철길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 1이 된다. ‘이 길은 나 혼자 걷고 있다는 사실 2. 그리고 생겨나는 가설들. ‘사실은 이 철길은 운행이 정지된 것이 아니다.’, ‘저 앞에서 어느 순간 기차가 소음을 내며 달려온다.’ 그리고 영화 <박하사탕>의 설경구가 저 앞에서 외치는 것이다.

나 돌아-갈래!”

, 설경구. 연기 진짜 잘했는데. 설경구가 나온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옆에 사람이 없으면 이런 망상이 꽃을 피운다. 웃다가, 다시 밀려오는 씁쓸함.

 나는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아니 그 전에,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기는 할까. 돌아간다 해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5. 동행

 

 한 시간 정도를 걷다 보니 파도 소리가 심심했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꼽으려는데 왼쪽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때 다시 망상 2. ‘유튜브에서 본 영상산속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이 곰을 만남이 생각남.’ 그런데, 곰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은가. 곰이 아니라면 어떤 이상한 사람일수도 있는데? 예티 같은? 자연인 같은? 사실 오다가, 곰은 아니지만 곰처럼 큰 개를 봤다. 철로 바로 옆에 딱 붙은 판자 집이었는데 철망에 큼지막하게 <개 조 심>이라고 적혀있는 것이었다. 개가 커봐야 진돗개만 하겠지 했는데, 짖는 소리와 덩치가 정말 곰이었다.

 정체는 곰도, 개도 아닌 청설모였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다람쥐는 본 것 같은데, 그와 달리 청설모는 몸이 까맣고 꼬리털이 풍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여웠다! 다람쥐 과 동물이 귀여운 외모와 달리 꽤 사나운 걸로 알고 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도 여자애를 막 때리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 않았던가. 저 작은 몸으로! 그래도 귀여워서 사진 찍었는데, 그 소리에 줄행랑쳤다.

 청사포에서 만난 동물 친구는 까칠한 갈매기뿐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곰처럼 큰 개도 보고, 청설모도 보고, 철로 따라 걷던 까치도 봤다. 여기서 깨달은 몇 가지 교훈. (1.) 청설모는 귀여운 동물이다. (2.) 미포 철길은 혼자 걷기엔 조금 위험한 길인 것 같다.(낙석 주의, 인적이 드물다-사람 주의. 세상은 넓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은 많기에.)

그리고 (3.) 길이 정말 길다. 한 시간 정도야 혼자 사색하며 걷기에 더 없이 좋지만, 이 길은 도보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철로다. 때문에 혼자보다는 친구가, 친구보다는 연인끼리 오기에 더 좋은 곳인 것 같다. 힘들면 함께 앉아 쉴 곳이 있고, 예쁜 사진을 찍을 곳도 많다. 함께 바다를 보며 길을 걷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 일일까.

 에이. 불어오는 바람에 괜히 손이 시렸다. 손을 들어 하늘을 가려봤다. 손가락 틈으로 기우는 햇빛이 새어든다. 구름이 엉클어진 실처럼 펼쳐져있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길을 벗어나면 내 시야는 온통, 바다였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굽이치는 파도는 차분했다. 멋쩍어 웃음을 터뜨려도 모른 척 해주는 고마운 이.



6. 바다와 삶

 

 길을 걷다보면 여러 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해안가의 짠 냄새, 비릿한 특유의 바람 냄새, 고릿한 거름 냄새. 가끔 코를 찌르는 그 냄새는 텃밭에서 짙어진다.

 미포 철길은 나 같은 이에게는 산책로이고 연인에게는 낭만적인 길이지만, 누군가에겐 삶이었다. 할머니가 밭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글겅이질을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이 꽤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백발의 할머니는 팔에 힘을 주지도 않고 있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가만히 흙을 파거나, 덮거나, 만질 뿐이었다. 그 새에 습한 바람이 몇 번 불어왔고, 숲이 흔들렸다. 해가 기울어 주홍빛으로 산등성이를 물들이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였다. 할머니의 배경은 초록이 아니라 색 바랜 녹 빛이었다. 지는 해를 등지고서, 몇 시간이라도 그렇게 있을 것만 같았다. 석양에 둘러싸인 황혼이 서글펐다.

아가야, 꼭 기억하고 있어라. 있다가 내 죽거든, 화장해서 바다에 뿌리라. 어디 묻고 자시고 할 것 없다. 어차피 썩을 몸, 그냥 곱게 갈려서 어디든 갈란다.’

 

 내가 결혼하는 것 까지는 보고 죽겠다던 외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갈 무렵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하루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비타민을 꼭꼭 챙겨봤고, 티브이를 보며 부지런히 운동했고, 소식하려고 했다. 모든 것이 모순적이었다. 나는 내 할머니가 10만 명에 한 명 꼴로 발병하는 희귀병에 걸려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끔찍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저릿했다. 뺨이 시렸다.

 외할머니는, 나물을 무치다가는 자신의 부모를 한탄했고 방을 닦으면서 내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보고는 한숨을 쉬곤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는 먼저 간 남편 욕, 전화도 안하는 딸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고, 그러다가는 이대로 죽어버려야지, 살아서 뭐 하겠노.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할머니가 그럴 때마다, 할머니 그 동그란 뒷모습에다 대고, 아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오래 오래 살 거다, 백 살까지 살아야 된다, 했다. 할머니는 그런 내 말에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말라며 인상을 쓰고는 뒤돌아 슬며시 웃었다.

 어디서든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할머니를 바다로 보내주지 못했다. 어디든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본 가여운 내 할머니.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나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초라한 허수아비가 새에게 머리칼을 뜯어 먹히듯 그렇게.



7. 갈림길에서, 송정으로

 

 나는 자주 멈춰 섰다. 샛길로 빠져서 빛깔이 변한 바다를 보기도 했고, 표지판에 쓰인 글귀들을 읽었다. 시들이 몇 편 걸려있었다. 박목월의 나그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육사의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아이야, 우리 식탁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숲은 황금빛 들녘이었는데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바다의 빛깔은 시리도록 파란 색이 아니었다.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고, 노래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송정이었다. 위쪽 카페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이 기찻길 위를 지나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걸음을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걸은 시간이, 두 시간 반이었다. 3시의 미포 문탠로드 입구에서, 청사포를 지나, 530, 송정까지 온 것이다. 중간에 먼발치에서 흰둥이 등대도 보였다. 그 등대는 알까. 내가 이상한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미포 철길 위에서의 내 여행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갈림길이었다. 아마도 오른 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광안리가 나올 것이었다. 앞에서 말했듯, 끝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민 공원으로 조성된다고 했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 끝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철로 위에 흩어진 돌들이 자리를 옮긴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길이, 사실은 매 시각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갈림길에서 다시 바다를 만날 날이 올까. 언젠가는 마음먹고 올 것이었다. 그 때는,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옆에서 함께 보고, 듣고, 망상이든 몽상이든 같이 했으면. 그리고 그 때도 지금처럼 한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습하고 무거운 바람은 귓가에서 말을 걸고, 바다는 자장가처럼, 파도 소리를 들려주고는 밀려오고 밀려나갔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들은 몸서리 쳤고, 햇살은 다섯 시 쯤에 잠깐 주황색이었다. 바다를 만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색을 바꾸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마지막. 송정에서 하루살이와 함



 백사장에 주저앉아 노래를 들었다. 중학교를 다닐 무렵 거의 매일 들었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노 리플라이, 센티멘탈 시너리, 마룬 파이브. 언제나 당신 곁에, 내 것이 되어 주세요. 나는 너의 것, 당신을 만나서 행운이에요한참 듣는데 옆을 보니 하루살이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기인 줄 알고 손사래를 치려했는데, 자세히 보니 늘 보던 그 얼굴이었다. 그냥 조금 있다가 가겠거니 했는데, 노래가 두 곡이 바뀔 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살이와 함께 바다를 봤다. 나는 하루살이라는 벌레가 그렇게 잘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거센 바닷바람이 몰아쳐도 꿋꿋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혼자가 아니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처음보다 많이 괜찮아졌다는 사실이다. 청사포에서 처음 서두를 시작할 그 때의 나와, 두 시간을 걷고 송정에서 하루살이와 함께 바다를 보는 나는 다르다. 달라졌다는 것,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바다는 또 내게 어떤 것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는 아직 내 단상의 길이가 짧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 글을 보는 어느 누구든, 참을 수 없을 만큼 갑갑하거나 우울의 깊이를 모를 때에는 가까운 바다로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바다에 간다고 해서 문제의 근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방파제를 뚫고 밀려오는 불행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광막한 푸름을 보고 있노라면 잠시 동안이나마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체한 속이, 들이킨 탄산으로 시원해지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을 달래고, 생각하면 된다. 너무 깊은 우울의 늪에 다리가 빠져버리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좋은 노래를 열 번 들으며 슬픔을 달래는 것보다, 파도 소리를 잠시 듣는 것이 더 효과가 좋다. 그것은 때로 술 한 잔과 함께 들이키는 안주가 되기도 하고, 홀로 거니는 이에게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말할 수 없는 절망의 숲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벙어리에게는 더 없이 친절한 등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다는, 조용하고 푸른 상태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야속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그럴 때면 말없이 등대 뒤로 가 숨거나, 갈매기가 바다를 걷는 모습을 구경하면 된다. 그들처럼 바다를 걷고 싶을 때엔 철길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손으로 하늘을 가려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시린 뺨을 닦아내면서, 물 머금은 솜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축축한 소매 끝을 말리면서, 그렇게.

 

 

 

 

 

 

우울의 덫에 걸려 넘어진 나를

동정하지도, 연민하지도 않고 그저 바라봐 준,

내 편이 되어 준 바다를 기억하며.

 

청사포에서 송정까지,

2016년 3월의 어느 날~4월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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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문우지정(文友之情)

 

 

1.

 

책은 독자에게 허락된 잠시간의 방랑이다. 그 종류와 형태는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 우리는 책 속에서 미치광이 여인이었다가, 샤로테를 사랑하는 어떤 청년이었다가, 수취인불명의 편지였다가, 옷장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되곤 한다. 때로 우리는 온전히 그들 자신이 되기도 하지만 3인칭의 시점에서 전쟁같은 서사를 관망하기도 한다. 영화와 달리 시각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는 텍스트는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변모한다.

사회 구조를 다루는 경우가 아니라면, 책 그자체 내에서 엄혹한 규율은 없다. 깔끔하게 절단된 네 각의 모서리를 가진 책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다. 책은 독자를 매개로 그 경계면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책 밖의 현실은 규율과 법, 장벽과 균형을 필요로 한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러나 때로 불공평하고 환상적이며, 지나치게 행복한 인물과 온통 불우함으로 뒤덮인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책은 읽는 이에게 감정을 안기어준다. 그것이 끝도 없는 슬픔이던, 행복이던, 깨달음이던간에 책은 읽는 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현실 세계의 정형화된 틀과 엄격한 상하 구조에 지친 마음에 자유, 위안과 휴식을 주는 책.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조건이다.

책은 저마다 다른 체취를 간직하고 있다. 접지의 종류와 사용된 잉크의 품질, 저서의 두께에 따라 그 향취가 다르고 양장인지, 반양장인지 혹은 무선제본인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펼치면 얼굴로 닿아오는 내음을 맡고 있으면 읽기도 전에 그 안온한 기분에 취하곤 한다. 나는 가볍지만 두께가 두껍고 질감이 거친 종이보다 적당히 아이보리빛이 돌고 윤기나는 미색지를 더 좋아한다. 사고 싶었던 책이 질이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충족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색이 바랬을 때 향이 짙어지는 것은 전자다. 매끈한 종이보다 더 예쁘게 바래는 것 같기도 하다. 같은 책이라 해도 인쇄 초판본에 더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2. 쓰는 이

 

 

문학은 삶의 무늬를 그리는 예술이다. 작가는 손으로 자신의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화가와 닮아있다. 글 쓰는 이는 화가처럼 섬세한 붓놀림으로 의뭉스런 미소를 띤 여인을, 아름다운 풍경을, 혹은 해바라기 꽃이 담긴 화병을 완벽하게 그려내지는 못할 지라도 글로 그것을 표현할 수는 있다. 적어도 그 화병이 왜 거기에 놓여 있어야 하는지, 눈 내린 설원이 인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인물을 그린다면 왜 그 인물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며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듣고 전한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많은 결들이 있다.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쓰거나 쓰고자 하는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서점 곳곳의 매대와 창고에 쌓여가는 서적들이 날마다 늘어가는 까닭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 우리들 글을 쓰는 사람은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많은 개개인 모두가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글쟁이들이 꼬챙이에 몸이 뚫려 푸줏간에 걸린 북어들처럼 모두 두 손을 가지런히 한 태도라니! 끔찍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글 쓸 때조차 거만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뽐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번지르르한 어휘들과 지나치게 현학적인 문장들이 과연 독자에게 좋은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을까. 좋은 글이 잘쓴 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잘 쓴 글좋은 글이 될 수는 없다. 최근 일본에서 최첨단 인공 지능 로봇 알파고가 쓴 글이 문학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의아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알파고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어떤 수준의 작품이던 나는 그것을 문학이라고 칭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계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따듯함은 히터, 보일러와 커피 자판기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2-1. 수많은 크레덴스들을 위하여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크레덴스는 악한 동물의 숙주가 되어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든다. 그를 파멸로 이끈 것은 양모의 오랜 학대다. 티나의 도움도, 뉴트의 다정한 말한마디도 그를 끝내 구원하지는 못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 곳곳에는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학대가 자행되고 있다. 너무도 많은 크레덴스들이 깊은 어둠속으로 침잠하고 있는 것이다. 허락된다면 나는,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나의 경우처럼, 최악은 자신이 그들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굶기고 때리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해주지 않는 것도 학대다. 그린델왈드처럼 가면을 쓰고 상처받은 이들을 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속에 내재된 폭력과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어떤 식으로든 나는 쓰고싶다. 티나와 뉴트처럼, ‘수많은 크레덴스들에게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3. 문우지정(文友之情)

 

커브를 도는 심야버스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다가 문득, 내 삶의 결은 골목 한켠에서 가만히 바람을 맞는 은행나무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계절에 따라 변모하지만 좁은 길가에서 그저 그렇게 서있기만 하는 나무. 넓은 대로변으로 가고싶지만, 거긴 너무 시끄러울 것 같고, 코 앞 벽면에 걸리는 현수막 풍경들도 나쁘지는 않다. 다리춤에 끝도 없이 쓰레기 봉지가 쌓여도 동틀녘이면 수거차가 가져가주고, 추운 가을 겨울에 나뭇잎을 떨어트려 발치를 덮고 있으면 어느새 미화원이 쓸어담아버리곤 하는 삶의 반복. 봄같은 애인이 온다한들 나무는 나무일테고, 겨울은 언제나 그래왔듯 살을 에일 것이다. 그래도 나무에게는 같은 나무들이 있어 외로워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연히 알게 된 문학 커뮤니티에는 문학 친구해요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장르별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구하는 장소인데, 졸업했거나 재학중인 문창과생인 경우가 많다. 그중 한 명은 모 예대 문창과 4학년생이었는데 채팅을 하다보니 알게된 사실은 그 학과 내 분위기가 굉장히 치열하다는 것이었다. 국내외적으로 문창과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주류로서의 문학의 입지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이 마당에 함께 글을 쓰고자 모인 문예창작과 청년들이 다름아닌 인터넷에 시 소설 같이 쓸 문친 구해요를 올리는 현상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전에 한번,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치열하게 경쟁해야한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은 선의의 경쟁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나는 같은 강의실에서 같은 교수님에게 수업을 들으며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글을 쓰는 문우끼리의 경쟁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밖에 나가 진정으로 경쟁해야하는 이들은 연령 불문, 전공 불문의 필자들.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다. 해마다 개최되는 각종 공모전과 신춘문예에 투고되는 작품만 수천, 수만편에 이르지 않는가. 지나가는 문장에서 어떤 작가는 우리의 진짜 경쟁자는 저기 저 멀리, 자이르에서 낮에는 물고기를 건져올리고 밤에는 책을 읽는 소년이에요.’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교육과정부터 전교 석차를 따지고 옆의 짝지를 눌러야 내가 올라설 수 있는 애벌레들로 키워졌지만, 우리는 그 꼭대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친구도, 동기도 아닌 文友로서의 우정이 긍정적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인정욕구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눈치보기 바쁜 것은 문우의 정이 아니다. 이해관계를 따지며 치켜세우고 자만과 우월감으로 큰소리 치는 것은 문우의 정이 아닐뿐더러 문학의 문을 두드리는 이의 자세또한 아니다. 옆에 앉은 문우가 정성을 다해 쓴 글을 진심으로 읽고, 함께 희미하기만 한 이 길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것. 각자 다른 삶의 결과 무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전위의 시이든, 외설이든, 동화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가고자 하는 길도, 글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각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결이며 무늬들이다. 경쟁에 우와 열을 가르고, 소중한 문우를 잃고서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어느 순간 거대한 애벌레 탑의 일원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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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부문: 수필

성명: 김소연

연락처: 010-5593-7181

주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반로 162-24 1층(대문에서 가까운 집)

메일: thdus181@naver.com


 

  • ?
    평범한하루 2017.04.26 01:33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공감되네요.. ㅠㅠ
  • profile
    korean 2017.04.30 19:26
    수필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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