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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돌아온 메아리

 

  편찮으신 할아버님께 이제야 인사드리는 못난 손자를 용서해 주세요. 할아버지의 손자 주일이가 건강하게 장성해서, 약 60년 전 할아버지께서 몸 담으셨던 군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당시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대한민국의 위상은 드높아졌고, 그와 비례하여 군대 역시 모든 방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답니다. 덕분에 선배 전우님들에 비해 너무나도 좋은 환경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손자이지만,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할아버님과 선배님들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할아버님은 자랑스럽고 위풍당당한 해병대의 전사로서 6.25 전쟁에 참전하셨죠? 저는 2013년 10월 7일 입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 육군훈련소 보급근무대로 자대를 배치 받았어요. 창고병으로 군복무를 수행하고, 생활에 적응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전방부대의 일을 여러 면에서 비교해보곤 합니다. 그리고 전투근무지원부대의 특성상 지원 업무로 인해 전방부대보다 비교적 전투훈련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저는 몸은 덜 힘들지만 마음은 더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매일 부대로 전달되는 국방일보를 읽다보면, 다른 부대들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일주일 안팎으로 진행되는 유격, 혹한기 훈련과, 수시로 전개되는 전투태세 훈련, 그리고 봉사활동과 더불어 얼마 전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AI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 복구를 위한 병력 투입 등.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훈련들과 민생 안정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전우들을 떠올리면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어떤 점이 부럽냐고요? 창고에서 중고와 폐품을 받고, 야적장을 관리하다보면 ‘내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왔을까, 창고를 지키기 위해 왔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용감한 국군으로서 6.25 전쟁에 참전하셨던 할아버지와 1등 조교로 활약하셨던 아버지가 군대에서 하셨던 일에 비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보잘 것 없고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또 어린아이의 치기로 보실 수도 있지만, 기왕 하는 군복무라면 힘들기로 손꼽히는 부대에서 전우들과 함께 열심히 훈련하며,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북녘을 향해 가슴 쫙 펴고 ‘오늘도 우리가 있기에 대한민국은 안전하며, 가까운 미래에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힘차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슴과 머릿속에 수많은 조각들이 소용돌이치던 때,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린 날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업무지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제가 나라를 지키러 온 건지, 창고를 지키러 온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 말을 들으시고는 아버지가 그러셨죠? “주일아,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보직과 부대들이 있어. 만약 다른 병사들도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모든 장병들이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게 곧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분명 알고 있을 거야.”라고 말이죠. 별 말 아닌 걸로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 말씀이 순간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방에서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장병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데, 저는 그 전우들의 숭고한 정신까지 추락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자신이 무척 힘든 곳에서 대단한 훈련을 받았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조상님들께서 피와 땀을 흘려 지키신 우리의 조국에 이바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난 뒤, 저의 일상이 달라졌습니다. 평소보다 업무가 더욱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웃는 날도 무척 많아졌답니다. 이제 더 이상 제 보직과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회의감이나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아요. 오늘도 저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고,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정적로 군복무에 임할 테니까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댁이 논산인데 손자가 자대를 논산으로 배치 받아서 당신 아들 얼굴 더 볼 수 있게 됐다고, 저더러 효자라고 하시던 할아버지. 이제 진짜 효도를 실천할게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불신에서 믿음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 20년

 

  우리 집은 조금 유별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희 어머니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조금 유별나십니다. 왜 그러냐고요? 저희 어머니는 남들이 말하는 소의 ‘얼리어답터’이십니다. 음악, 영화, 패션부터 시작해서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의 IT기기까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본인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들은 남들보다 먼저 보고, 듣고 사용해봐야 직성이 풀리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지난 삶에서 수많은 문화 매체와 기기들이 사이좋게 또는 격렬한 전투를 거쳐 서로의 빈자리를 대체해왔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같은 얼리어답터의 피를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남들보다 빨리 최신 트렌드와 문명의 이기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정수기가 처음 출시되었던 그때 그 시절, 매일 수돗물을 끓여 보리차를 만들어 먹던 대다수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식당에서 정수기는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을 자동으로 정수해서 바로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기계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역시나 발 빠르게 정수기를 구입하셨습니다. 정수기 덕분에 어머니는 번거로이 마실 물을 만드는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다른 일들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셨답니다. 당시에 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초창기의 정수기와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새로운 물건을 대할 때의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른 특성 중 하나이자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칼 같은 성품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어머니는 한 번 아니다 싶은 건 뒤도 안 돌아보고 자신의 인생에서 소멸시키는 냉철한 분이기도 하십니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구매한 모든 물품에도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머니가 ‘얼리어답터’이시다 보니 먼저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해 본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듣고 참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때로는 매우 만족스럽지 못한 구매로 끝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안타깝게도 정수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즉, 초창기 정수기 시장이 형성되었을 무렵 정수기의 필터와 같은 기술적인 부분과 애프터서비스 및 고객관리 시스템은 지금보다 비교적 뒤떨어졌던 모양입니다. 잦은 고장과 미숙한 사후관리로 인해 어머니는 그 회사뿐만 아니라 정수기마저 불신하게 되셨고, 결국 정수기는 단기간에 우리 집의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다사다난했던 2010년이 지나고 2011년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엄마, 우리도 이제 정수기 한 대 사요. 요즘 정수기가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깨끗함은 기본이고, 냉·온수는 물론, 얼음 나오는 정수기까지 나왔어요. 더군다나 디자인도 엄청나게 예쁘고 다양한 데다 크기는 예전이랑 비교도 못 할 만큼 훨씬 작아졌어요! 애프터서비스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어이구! 얘가, 얘가! 온수는 커피포트에 물 끓여서 만들면 되고, 얼음이야 냉동고에 얼려서 먹으면 되지. 정수기가 작고 예뻐지면 뭐해? 정기적으로 직원이 집에 와서 관리해줘야 되지, 물이 제대로 정수가 되는지 안 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도 못 하지. 또 행여나 고장이라도 나면 A/S 받아야 하지. 집에서 끓여 먹는 보리차만큼 맛있고 안전한 물이 어디 있니? 엄마가 전에 아빠랑 너한테 얘기했었잖아. 정수기 처음 나왔을 때 겪었던 얘기. 예전처럼 똑같은 스트레스 받기 싫으니까 이제 정수기 얘기는 그만해!”

  이와 같은 대화가 잊을만하면 우리 가족의 대화 화두에 올랐지만, 어머니의 완고한 저항 앞에 아버지와 저는 번번이 무릎을 꿇어야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우리 집에도 정수기를 들여 놔야 할 불가피한 사정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집이 아니라 ‘우리 가게’였습니다. 갖은 노력과 오랜 기다림 끝에 어머니는 자신의 꿈이자 숙원이었던 ‘나만의 가게’를 차리셨습니다. 원룸 밀집 지역에 자리를 잡은 작은 돈가스 가게였는데 집에서처럼 자주, 그것도 식당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대량으로 보리차를 만들기엔 번거롭고 부담스러우셨던 모양입니다. 평생 정수기를 등한시할 것 같았던 어머니는 결국 몇 달 뒤, 고민 끝에 가게에 정수기를 들이도록 결정하셨습니다. 마침 가게 맞은편에 국내 굴지의 정수기 업체의 지사가 있어 그 회사의 제품을 사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가 가게와 가까이 있어 제품 구입 후 관리 및 A/S를 받는 데 더 용이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정수기의 기능과 효율성에 반신반의하셨던 어머니는 많이 불안해하셨습니다. 하긴, 2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손수 보리차를 만들어 오셨는데 하루아침에 정수기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고 나서도 어머니는 한동안 손님들한테 정수기 물을 떠다 줄 때마다 괜스레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가게 일을 도우러 가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서 정수기에 대한 공포감(?)을 씻어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이런 저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던 걸까요? 어머니의 철옹성 같던 마음의 벽이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지는 게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게에 정수기가 있어도 집에서 가져온 보리차를 드시던 어머니가 언제부턴가 정수기 물을 드시기 시작한 것은 물론, 손님들한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물을 떠다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을 목격한 순간 저는 마치 첫눈에 반한 여학생을 본 사춘기 소년처럼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정수기가 떡하니 있어도 집에서 가져온 보리차만 드시던 분이?”

  “어머, 엄마가 그랬니? 확실히 정수기가 20년 전이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아진 것 같더라. 관리해주시는 직원분도 친절하시고. 그 회사의 다른 직원분들도 이제 우리 가게 단골손님 됐어~!”

  “와······.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알고 보니 아버지와 제가 회사 일과 학교 수업으로 바빠 가게에 들르지 못했을 때, 가게의 정수기를 관리해주시는 코디 분으로부터 어머니가 많은 도움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안함과 부담스러움에 손사래를 치시던 어머니.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정수기 정기 검진이 있을 때마다 가게 일을 도와주시는 코디분의 진심 어린 도움에 큰 고마움을 느끼셨습니다. 어느새 세월은 흩날리는 낙엽처럼 쌓이고 쌓여 두 분은 절친한 친구가 되셨고,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역시 코디로 일하시기 전에 어머니처럼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한 경험이 있었고, 혼자서 일하는 어머니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축적된 인연과 우정이 어머니의 오랜 불신을 신뢰와 믿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때때로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두 분의 사연을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습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굳어져 버린 선입관과 편견,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 역시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얼음처럼 차갑던 어머니의 마음을 공감과 소통의 정으로 녹인 코디분의 진심처럼 말입니다. 저는 오늘도 두 분이 함께 찍으신 사진을 보며 미소를 머금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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