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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둔덕을 오르내리고




나의 옛 집에는 '중학생이 알아야 할 시'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연두색 우둘투둘한 표지에 굵은 명조체로 제목이 박힌 그 책을, 나는 무척  사랑하였다. 언제 그 책을 처음 읽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책에 얽힌 몇 가지 기억은 있다.


그 책의 엮은이들은 191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발표된 현대시 작품 중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을 엄선하고, 그 작품에 6~7줄 정도의 아주 간략한 해설을 덧붙였다. 작품이 먼저 나오고 마지막 문장 아래로 5줄 정도의 여백을 둔 후에야 해설이 나왔는데, 나 혼자 작품을 읽는 것과 해설을 읽고 작품을 읽는 것이 정말 달랐다.


대개의 문학가들이 그러하듯 그 해설은 객관성과 주관성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는데, 어떤 해설은 비유와 상징 등 학문적인 접근으로만 이루어졌고, 어떤 해설은 슬픔과 기쁨 등 정서적인 접근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시와 함께 그 상반되는 접근들을 읽어나가는 일이 즐거워서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었다.


한번은 그 책의 도움을 받은 일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국어 선생님은 임용 시험을 통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굉장히 젊은 분이셨다. 그분은 본인이 임용 시험을 공부하면서 정리했을 것이 분명한 한국 문학사를 두 쪽으로 정리한 프린트를 통하여 수업을 진행하셨다.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코흘리개들이 청록파니, 초현실주의니, 리얼리즘 따위를 알아들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무척 열성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갔는데, 모두 괴로워하는 그 시간에 나 혼자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었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미 거의 백년에 걸친 대표작들을 여러 번 탐독한 후였고, 프린트에 예시 작품으로 수록된 작품의 상당수는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원래 인간이란 자신이 아는 게 있으면 눈이 반짝이는 법인지라, 나는 그 시간이 무척 즐거웠고 좋았다.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갑자기 문득 설명을 멈추고 나에게 박두진 시인의 <해>의 첫 구절을 아느냐고 물으시는 게 아닌가! 당시 한참 유행하던 눈썹 위 일자 앞머리를 하던 나는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내 대답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그분은 기특한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으시더니 다시 설명을 이어가셨다. 다행히 다른 친구들은 모두 얕고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나의 이 대답은 오로지 선생님과 나만의 비밀로 간직될 수 있었다. 


나는 집에서는 혼자 조용히 시를 읽고 감동받으면서 학교에서는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고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를 부르다가 교무실에 불려 가 혼나기 일쑤인 이상한 이중 생활을 한동안 지속했다. 아마 그때 나와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문학에 감동받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짐작도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문학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감추고 음지(?)에서 문학을 읽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계기가 있다. 앞서 언급한 시집에서 나는 주요한 시인의 <빗소리>라는 작품을 가장 사랑하였다. 중학생 때 나에게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김억의 <봄은 간다>와 주요한의 <빗소리> 중에서 어떤 작품을 더 사랑하는가였는데, 언제나 간발의 차로 <빗소리>가 당선되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같이.

이지러진 달이 실날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주요한, <빗소리>

내면의 대결에서 언제나 이 작품이 당선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연물이 '비'이기 때문이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마치 한편의 동화처럼 비 내리는 순간을 표현한 이 작품이 정말 아름다웠다. 몇 번씩 눈으로 읽고,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고, 소리내어 시어들을 발음해 보기도 하다가, 나는 그것을 당시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나의 언니에게 말하고 말았다. 이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언니, 이 시 정말 좋다. 뭐야, 나는 시 같은 거 싫어. 의미 없어. 아니야, 언니, 이거 보면 진짜 좋아. 문학이 제일 싫어. 수학이 좋아. 아니, 언니, 그게...


그렇게 내가 그토록 고민하고 고민하여 선정한 '나의 인생 시'는 철저한 외면을 당하였고, 나는 마치 나 자신이 거부당한 듯한 서글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부터 문학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구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만 울고 감동받아야겠구나, 라고 되뇌었다. 시를 읽고 눈물 흘리는 문학 소녀와 맨손으로 교문 유리창을 깬 과격한 학생으로서의 이중 생활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그 낡은 시집은 이제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알뜰살뜰한 나의 어머니가 우리가 장성한 이후 중고 책방에 모든 책들을 넘기실 때 아마 함께 넘어갔을 것이다. 지금쯤 오래된 먼지 속에서 뒹굴고 있거나, 또 한명의 문학 소년소녀에게서 눈물을 쏙 빼놓고 있을지도. 내가 이 시기에 읽은 시집으로 지금까지 능구렁이처럼 문학 과목을 해결해왔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그 어린 날, 나의 마음을 울린 시와 단편소설들은 내 마음 속에 작은 둔덕을 쌓아 올렸고, 나는 요즘도 종종 그 둔덕에서 미끄럼틀을 탄다. 어릴 때처럼 여전히 재밌어서 나는 또 다시 둔덕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그 둔덕 위에는 나의 삶과 사랑과 아픔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내 고향 인천엔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내 고향 인천엔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았다. 북적북적과 바글바글이 이 도시에 적절한 부사였다. 버스는 항상 만원 버스였고, 종착지가 아닌 이상 자리에 앉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왕복 6차로의 도로는 언제나 자동차로 그득했고, 사거리, 육거리는 흔했다. 사거리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걸어다녔다. 대체 어디에 이 사람들이 숨어 있었을까,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밤이 찾아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생과 어른과 취객이 뒤섞인 거리에는 늘 안전과 위험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 정신 없는 거리를 몇 번이나 오가며 나는 성장했다.

고층 빌딩과 화려한 네온사인을 지나면 언덕 위 달과 가까운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도시는 이중적인 공간이다, 라고 느낀 것도 그 즈음이다. 화려함과 초라함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너무나 극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것은 과연 도시다운 냉정함이었다. 그래도 도시에서도 좋은 점은 있었다. 모든 편의시설이 가까운 것과 대중 교통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투 머치였다. 어딜 가나 투 머치한 사람들 덕분에 나의 등은 늘 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래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18년의 세월을 복잡한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도시가 아닌 곳은 낯설음 그 자체였다. 어린 나는 낯설음을 견딜 용기가 없었기에 그냥 그럭저럭 고향과 그 인접 지역에서 버티며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버스와 전철은 점점 더 힘들어졌고, 나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장소를 열심히 찾아다녔으나 만족스러운 곳을 찾지는 못했다. 하긴, 사람이 없는 장소가 존재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목표하는 대학교가 생겼다. 그 대학교는 국립대학교여서 학비가 매우 저렴했고, 또한 사범 대학 계열에서 인정받는 대학교였다. 당시 우리집의 형편이 가난해 질수록 나의 성적은 더욱 더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였기 때문에, 해당 대학교를 진학하는 데에 있어 전혀 무리가 없었다. 또한 그 학교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지방 도시의 '군'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무의식 안에서 나는 이 아픔 많은 도시를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목표가 정해지자 공부는 더욱 탄력이 붙어 성적은 쭉쭉 올라갔다.

대학교 1차 합격 후 면접을 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대학교에 들렀던 순간을 기억한다. 인천에서 자그마치 두 시간의 대장정을 달리고 나서야 우리는 도착했다. 그날은 몹시 추웠다. 낡은 떡볶이 코트의 팔부분은 보풀이 잔뜩 일어나 지저분했지만, 가장 단정한 외투였기에 나는 그것을 걸쳤다. 아마 부모님의 외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는 정말 시골에 위치해 있었다. 청원군 다락리. 나는 이 세상에 '동'만 있는 줄 알았다. 그만큼 내 세상은 좁았다. 대학교 주변은 높은 건물이 단 하나도 없었고, 상가도 아주 적어서 고요했다. 사람도 드문드문 있었다. 내가 살던 세상과 모든 것이 달랐다. 고개를 들자 하늘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도시에서 온 친구들은 이 학교를 답답해했다. 주말마다 서울로, 자신의 고향인 도시로, 인접한 도시인 청주나 대전으로, 학생들은 썰물 빠지듯 빠져 나갔다. 그러나 나는 점점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도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우선 하늘이 넓었고 사람이 적어서 언제나 한적했고 나무가 많았다. 학교를 산책하다가 기분이 내키면 벤치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은 아주 넓어서, 두 눈 가득 하늘이 가득했다. 밤이 되면 그 넓은 하늘은 반짝이는 별로 채워졌다. 자동차가 많이 없어서 공기가 맑은가, 이렇게 별이 잘 보이다니, 하고 처음에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지독한 문과쟁이인 나에게 과학 시간은 늘 힘겨운 것이었어서 별자리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별은 끝없이 반짝였고 그것은 아득한 아름다움으로 날 이끌었다.

시골에 살면서 나는 자연에 심취했다. 계절의 변화가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임을 뼈 저리게 느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행복했다.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낙엽이 물들고, 눈이 내리는 과정을 커다란 하늘 아래서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 삶은 나 자신을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생각보다 욕심이 없고, 생각보다 작은 것에 쉽게 행복해하며, 생각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부 이 시기에 깨달았다. 삶이 단순해졌고 그만큼 행복은 커졌다. 가끔씩 고향에 올라가면 이상한 답답증에 시달렸다.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시골에서 살고싶다'라는 문장이 아로새겨진 것은.

그리고 그 바람대로 나는 도시가 아닌 곳에 내 삶을 새롭게 뿌리내린다. 종종 사람들은 묻는다. 왜 도시에 살지 않느냐고,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의 삶이 답답하지 않느냐고. 그럼 나는 언제나 말한다. 아니라고, 이 삶이 정말 행복하고 좋다고. 그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다 있다고. 가끔씩 콧구멍에 도시 바람 쐬어주면 충분하다고. 나에게는 이 끝없이 펼쳐진 넓은 하늘이 가장 소중하다고.



박은혜 / parkss5722@naver.com / 010.2352.7099

  • profile
    korean 2020.02.29 19:27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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