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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중이 절이 싫은데도 절에 있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내가 우리집이 싫은데도 우리집에 있는 이유, 돈이 없어서. 사실, 집이 속된 말로 거지 같지는 않다. 어떤 애는 할머니 집처럼 아늑하다고 했다. 그저 아늑하고 아늑하고 아늑하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빙 에둘러 말하더라. 주변 애 집 보다야 못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집이다. 이사 올 때 물건을 많이 버려야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돈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이사 온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예전에 살던 집보다 더 가파른 길이라 곤란하긴 했지만 학교를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건 축복 같은 일이었다. 더 이상 셔틀 버스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됐고, 늦은 날에 아빠 차를 타고 갈 때마다 듣는 기름값 이야기를 더는 듣지 않아도 됐고, 버스를 놓칠 일이 없어서 학원 수업을 2교시부터 듣지 않아도 됐다. 나는 자유로운 한 마리의 오소리처럼 순한 얼굴로 나를 건드리는 누군가를 물어 뜯을 준비만 하면 된다고, 그런 의욕 넘치고 세상 모르는 생각으로 조금 들떴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들뜬 마음에 어디로 이사를 왔는지 학교에서 애들에게 말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왜 거기로 이사갔어?”


“그 쪽으로 이사 가는 애 없는데”


“다 자기 집 있는 거 아닌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애의 옆자리 애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말하면 됐는데 그게 그렇게 안됐다. 이런 말로는 모멸감 따위 주지도 못하고 상대의 인성만 탄로나지만, 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아는 사람 없는 학교에서 이제야 거리라도 가까워졌는데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었다. 거리나 아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에서 기이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듣고 흘러갔다. 다음 일을 찾는 나에게 시선이 닿는 건 동물적인 감각이 부족해도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런 행동 말고는 버틸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버티기 태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므로. 그러므로 무엇이라도 잡고, 하고, 끝마치는 대로 다시 어떤 일이든 잡고, 하고, 다시 잡아야 했다. 그다지 슬픈 일이라고 생각 못할 만큼 기계화 된 패턴이었다.


 

다이소에서 산 오천원 짜리 딱딱한 슬리퍼로 산행길 같은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길을 빠르게 가려는 건 오기였다. 하지만 그날 따라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집 이야기를 꺼내서 상처 아닌 상처를 받고, 나는 집을 찾았다. 집으로 가면 무뎌질 수 있을 거야. 여기서 더 얼만큼 더. 그러나 더 무뎌지기 위해 나는 집으로 갔다. 열심히 오른 길의 마지막에는 내가 이사온 빌라가 있었고 나는 빌라 계단을 통해서 3층에 있는 우리집으로 가기 위해 퀴퀴한 냄새를 참았다.



우리집. 우리집. 세상에게 나의 우리집은 진짜 우리집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우리집이 진짜 우리집 같아서 나는 이 공간을 아껴주어야겠다고,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의 눈꺼풀을, 아파서 마스크를 쓰고 잠든 가장의 눈꺼풀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의 우리집으로 오기까지의 노력은 다 엄마가 쌓은 것이었다. 쫄딱 망하고 아빠는 러시아로 도망가고 우리는 시골에 있는 절 옆에서 살 때, 엄마는 젊은 스님들에게 눈치를 받으며 일을 도와줬다. 그때는 집의 대가가 일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나는 우리집의 가난을 사랑할 순 없지만, 우리집의 엄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이 곳이 싫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엄마는 돈이 없고, 그래서 당연히 이 곳을 떠날 돈도 없으며, 돈이 없어서 이 곳으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다. 중이 절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언니는 내가 이곳이 싫다고 하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했는데, 그 뒤에 우리는 똑같이 자조적으로 돈이 없어서 못 떠나는데,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우리집에 희망을 붙여본다. 희망은 원래 절망이었으니까. 이 공간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정들지도 모른다는 희망, 남들의 말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가난에 관계없는 ‘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우리집을 사랑하되 가난에 얽매이지 말자. 진짜 오소리가 되는 법을 차근차근 터득하자. 그런 낭만 아닌 낭만을 가져본다.


나는 우리집에 있다.




  • profile
    korean 2020.02.29 19:29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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