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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기술


  쟈스민 꽃이 폈다. 내 방에 들여놓은 지 삼 년이 지난 화분에 새하얀 꽃송이가 달렸다. 베트남에서 돌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화원에서 쟈스민 나무를 하나 샀다. 사려고 작정하고 사들인 건 아니었다. 꽃집 앞을 지나치다 그 꽃향기에 붙잡혔다. 베트남에서 맡았던 향이었다. 내 첫 번째 직장이 베트남 호치민에 있었다. 열 달 동안 그곳에서 일 했다. 음식도 맞지 않았고 날씨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식사 때마다 나오는 쟈스민 차는 나에게 더없는 고역이었다. 구수한 보리차가 그리웠다. 밥 먹기 전에 꽃차를 마시게 하는 이 나라의 고약한 취향이 나는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사람의 추억이라는 게 참 우스운 거였다. 상사가 “조 기사, 고마하고 한국 가자.” 하 길래 뒤도 안 돌아보고 짐을 싸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나였다. 방향제 탄 물 같다며 현지인이 가져다주는 차를 코를 막고 들이키던 나였는데 한국 땅에 있는 쟈스민 향은 나를 울게 했다. 까바짬 거리와 아보카도쥬스와 거리의 키 큰 나무들이 그리웠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홀로 택시를 탔다 정말 한국까지 택시 타고 올 뻔했던 날, 펑펑 울어 대는 나를 달래 숙소로 데려다 준 택시 아저씨와 외할머니를 닮았던 가정부 아줌마가 보고 싶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향기가 나를 떠나온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베트남에서도 그랬다. 통역이었던 베트남인 친구가 테마파크로 놀러 가자고 했다. 에버랜드 즘 되는 곳이라는 부연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오토바이로 2시간을 달려간 곳은 강서구에 있는 인공폭포와 같은 곳이었다.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물놀이의 기쁨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날씨가 서늘했다. 무서운 소나기가 아닌 부슬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테마파크 주변을 걷는데 축축한 흙과 젖은 풀잎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맡았던 냄새가 났다. 타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집이 그리웠다. 그리고 정확히 그 날부터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여행의 고단함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한인병원을 찾았다. 치과와 겸업을 하는 의사의 진단은 물갈이였다. 집에 가고 싶어 아픈 거라고 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에 쥘 수도 없는 향기는 나를 가지고 놀았다.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게 하고 다시 돌아가게 하고 또 다시 떠나게 했다. 심지어 갈 수도 없고, 가본 일도 없는 곳을 꿈꾸게 했다. 대학시절 해외봉사로 몽골에 갔다. 그곳에서는 별의 향이 났다. 별동별이 내 발 앞에 콩하고 떨어지는 기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기적을 바라지 않아도 될 만큼 몽골의 땅과 하늘은 가까웠다.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흘렀고 별동별이 수도 없이 꼬리를 물고 떨어졌다. 내 품으로 하나 둘, 내 눈으로 하나 둘, 내 코로 하나 둘. 별의 향이 진동했다. 별나라에 온 듯 했다.


   요즘도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한국은 그리고 서울은 하늘과 땅이 친하지 않아서 별을 찾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비 온 뒤 밤하늘은 그 때의 향기와 비슷한 향을 흐릿하게 풍긴다. 그럴 때면 나는 한국이 몽골 같고 별나라 같다. 우리는 집을 떠나 일정기간 다른 곳에서 머무는 일을 여행 또는 가출이라 부른다. 만 열아홉이 지나 합법적인 가출이 불가능 한 나는 이제 합법적인 여행만 남았다. 여행의 준비물은 건강한 콧구멍이고 여행의 결과물은 타임머신 기능을 탑재한 그 곳의 향기이다.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갔다 몽골로 갔다 별나라로까지 나를 데려다 주는 그때 그곳의 체취가 나는 고맙다. 




글쓴이 : 조은정

이메일 : ejj83@korea.kr

전화번호 : 010-4071-7451







■ 삼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난 목요일이 발인이었다. 갑작스러웠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가족과 식사를 하셨고 같이 콩을 고르셨다. 다들 호상이라 했다. 나도 그리 생각했다.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지 않으셔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랬다. 마지막이 되어 버린 저녁 식사 시간에 할머니가 동전 지갑에서 내 사진을 꺼내 "이 사진이 와 여기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가끔씩 꺼내 본다." 하셨다며 엄마가 말을 전했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모서리가 무뎌진 그 사진을 그저 멍하니 보다가 다시 할머니 지갑에 넣어두고 돌아섰다.


  삼일 동안 나는 때때로 할머니에게 향을 올렸고 조문객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며 먼 길 달려온 회사직원들에게 멋쩍게 우리 집 가족사를 읊어대며 보냈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렀다. 화장한 유골은 할아버지 옆에다 뿌려드렸다. 그렇게 아흔 살 우리 할머니의 시간이 끝이 났다.


  금요일, 출근과 함께 직장동료로부터 메신저 왔다. "괜찮아요?" 나는 그 질문이 우스웠다. '안 괜찮으면 어쩔 껀데?' 속으로 말했다. 모니터에 타이핑된 글자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였다. 사실 할머니를 보낸 그 삼일이 일이 가장 바쁜 시기였다. 집에 더 머무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바빴다.


  밀린 일을 처리하고 한숨 돌리니 사람들이 나에게 봉투를 건네기 시작했다. 못 가봐서 미안하다며. 흰 봉투에 찍혀있는 부의라는 글자가 나를 시리게 했다. 하루면 끝날 꺼라 생각한 봉투행렬은 며칠을 더 이어졌다. 장례식 뒤에 이어지는 부의 행렬이 할머니가 떠났다는 사실을 나에게 못 박았다. 그리고 "너, 정말 괜찮아?"라고 묻는 것 같았다.


  고향 집 소파에 할머니가 없다. 이제 나와 같은 뒷자리 핸드폰번호를 쓰는 가족이 없다. 할머니 손에 키워졌고 엄마 정보다 할머니한테 기대던 나였다.  그래도 그러함에도 스스로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다독일 수 있는 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글쓴이 : 조은정

이메일 : ejj83@korea.kr

전화번호 : 010-4071-7451



        

  • profile
    은유시인 2015.12.20 13:34
    여행의 기술이나 삼일 모두 깔끔한 필체로
    이런 담담한 어투의 글이 오히려 진한 감동을 가져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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