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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6 14:50

포도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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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황윤옥

   

  내게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생일이 되면 조촐한 파티로 축하를 해준다. 십 변 넘게 이어온 나만의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지난 여름 생일을 맞은 아이가 있었다. 예외없이 일찌감치 수업을 마치고 학원 교실 책상 위 지우개 가루를 대충 털어내고 신문지를 널따랗게 펼쳤다. 그리고 김밥이며 통닭, 떡볶이, 포도 등을 작은 무더기로 나누어 두었다. 공부에서 벗어난다는 즐거움에서인지 아이들의 입은 당체 다물어지질 않는다. 해맑은 미소를 바로 눈 앞에 두고 재미도 과히 나쁘진 않았다. 생일잔치가 끝나갈 무렵 오도옥하는 소리에 흠칫 놀란 눈길들이 일제히 나에게로 쏟아진다. 그러나 이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 아이들은 다시 수군거림 속으로 걸어갔다.

 “선생님, 포도 껍질도 씹어 드세요?”

 한 아이가  물어보니 다른 아이들의 눈길들도 다시금 나를 향했다. 씨앗이며 껍질까지 오독오독 씹어 먹는 모습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이나 동그란 눈으로 변한다. 난 뭐가 이상하냐는 듯 어깨를 한 번 움츠렸다 펴고는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그리곤 서너 알의 포도를 따서 입 속으로 가져갔다. 갑자기 물밀 듯 밀려오는 오래된 유년의 기억이 와락 일어나 주체할 길이 없었다. 앉은 김에 쉬어가랬다고 길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금오산 자락에 자리잡은 아주 자그마한 마을에서 난 유년시절을 보냈다. 시 승격이 되지 않은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마을이었다. 동네엔 작은 점방이 있었다. 점방 한 켠 은빛 양동이에는 먹음직스런 장밋빛을 띤 복숭아가 그득했다. 손톱만 살짝 갖다 대어도 껍질이 스르르 벗겨지며 달짝지근한 물이 흘러내릴 만큼 먹음직스러웠다. 그 옆으로는 일부러 누군가 하얀 가루를 묻혀 놓은 듯한 동글동글한 포도송이들이 제 집인양 자리잡고 있었다. 난 그런 과일들을 항상 코와 눈으로만 맛보아야했다. 지금처럼 살림살이가 넉넉한 편도 못되었으니 사 주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눈치가 빤해서 사 달라고 떼를 써 본 일도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어느 집이고 형편이 다 고만고만하였으니 남의 손에 들려서 올 일도 만무했다.

  한 쪽 다리가 없어 늘 왼쪽발로만 톡톡 뛰어다니시던 할머니, 동백기름을 발랐는지 쪽진 머리가 유난히도 반질거리던 주인 할머니. 가엾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부러움 가득한 시선만이 할머니를 향했다. 할머니의 손을 거쳐야만 비로소 다른 이들의 것이 될 수 있었기에. 난 아마도 점방 할머니가 동네에서 제일 부자일 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을 안방에 두신 할머니에게는 손자가 둘 있었다. 나보다 너댓 살 정도 나이가 어린 그 동생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남의 눈을 속여서라도 너무도 먹고싶었던 과일들이며, 온갖 맛있는 과자들도 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걔네들이 어린 마음에 무진장 부러웠었나보다.

  ‘나도 좀 저 과일들을 먹어보았으면......’

  강아지풀을 손에 쥐고 돌리며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믿은 것도 그 때 쯤이었을 게다. 하루종일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소원을 빌기도 했다. 그 땐 땅만 파도 한없이 돈이 쏟아져 나오는 허황한 꿈을 왜 그리도 많이 꾸었다. 돈이 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런 꿈으로 나를 데려가 위로해 주었나보다.

난 아직도 강아지풀에 대한 망상같은 믿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간절한 만큼 얻으려는 노력을 하게 될 터이니 그저 지어낸 말이라 치부해버리기엔 안타까운 사실이다. 그렇게 강아지풀을 ‘에이요에이요’ 주문을 외며 열심히 돌린 탓인지 나네게도 포도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둘째 오빠의 친구들이 풀칠해진 누런 밀가루 봉다리에 포도를 가득 사 가지고 온 것이다. 그 땐 엄마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에 일을 하러 가셨기 때문에 집안 일은 내가 도맡아 해야 했다. 오빠친구들이 사온 포도를 씻기 위해 펌프질을 했다. 두 바가지를 붓고 나서야 겨우겨우 펌프질을 하여 물을 길었다. 포도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그깟 힘든 펌프질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입가로 시큼한 포도맛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주책없는 침물이 연신 흘러내리곤 했었다.

그런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시치미를 뚝 떼고는 조롱조롱 물방울이 맺힌포도를 소쿠리에 담아 오빠들이 있는 방으로 갖다주었다. “같이 먹자” 라는 말을 오빠들의 말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였다. 그런데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없이 자기들끼리 먹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두컴컴한 정지 부뚜막 한 귀퉁이 쪼그려 앉아 기다려 보았다. 부쭈막의 냉기가 온 몸으로 파고 들었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낡아 헤질듯한 운동화를 질질 끌며 마당 한 가운데 놓인 들마루에 앉아 구름 한 점 없는 빈 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빠와 친구들이 나오는 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잘 있어라는 말만 건네고는 ‘아모레 태평양’이라고 씌여진 양철 대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용수철 튀듯이 방안으로 잽싸게 뛰어들어가 보았다. 포도가 조금이라도 남아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안고. 그러나 소투리엔 이미 알맹이가 쏙 빠져버린 포도 껍질만 뎅그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야속하고 섭섭했다.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소쿠리를 들고 서둘러 방을 나왔다. 아닌 척 했지만 속상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내 입안에서는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주책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도 치울 건 치워야한다. 오빠들을 원망하며 소쿠리를 들고 대문 밖에 있는 구정물 통 가까이 갔다. 도저히 그것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포도 껍질을 한 웅큼 쥐어들었다. 곧이어 혹시 누가 오나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그것을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비록 껍질 뿐이지만 언젠가 먹어본 그 포도맛이 느껴졌다. 맛있었다. 다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이번엔 아까조다 더 많이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씹었다. 새콤달콤했다. 그나마 껍질까지 다 먹지 않고 남겨 둔 오빠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사이 소쿠리는 말끔히 비워져갔다.

  지금은 제 철이 아니더라도 먹을 수 있는 흔한 포도이지만 난 아직도 포도만큼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는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포도엔 껍질에 영양가가 더 많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이는 건강을 위해 포도를 그렇게 먹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이젠 포도를 껍질뿐 아니라 알맹이까지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먹을 수 있음에 작은 행복감을 느낀다. 연보랏빛으로 채색되어 희미해져가는 유년의 그 추억마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두고 싶다.

 

황윤옥

tntjd7114@hanmail.net

010 8595 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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