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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의 주파수

                                

홍콩의 해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충동적으로 유람선을 탔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유람선은 습한 홍콩의 공기를 가르고 어디론가 나를 데려갔다. 홍콩의 야경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관광객들이 터뜨리는 사진기의 플래시와 수많은 빌딩들이 내뿜는 빛 때문에 나는 수술대에 올라 모든 장기를 해부당하는 기분이었다. 도시 전체는 번쩍이면서 내 마음을 엑스레이로 찍어내고 있었다. 아마 온통 검은 바탕에 불편한 흰 뼈 조각들이 마음을 찌르고 있는 사진이 인쇄될 것이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한다. 이 도시에게 나는 잠시 머물다 탐욕만 채우고 돌아가는 관광객이겠지. 나는 홍콩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관광객밖에 되지 못했다.

유람선의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을 보면서 불편한 뼈 조각인 그를 떠올렸다. 나는 가난이라는 수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꾸미고 다녔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구원해줄 ‘나의 슈퍼맨’을 찾고 있었다. 나의 슈퍼맨이었던 그는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의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를 좋아했고 늘 다른 종류로 바뀌는 값비싼 시계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명품 구두가 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화려하고 멋진 나의 슈퍼맨이 내 찌든 가난의 흔적을 지워주길 기대했다. 그의 능력과 부가 처음에는 나를 구원하는 듯했다. 하지만 비밀을 가진 사람이 그렇듯 그것은 나의 숨통을 조여 왔고 나는 결국 홍콩으로 도망쳐 왔다.

유람선이 멈추어 섰고 침사추이 여행의 정점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 쇼가 시작되었다. 빌딩들은 경박스러운 중국 음악에 맞춰 레이저를 쏘아댔다.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던가. 빛이 어지럽게 겹치는 모습이 꼭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애쓰던 내 모습같이 느껴졌다. 일순간 화려한 불빛들이 초라해보였고 경쾌했던 음악소리도 처연한 곡소리 같이 들렸다. 행복해보였던 사람들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심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을 아니, 나를 구할 수가 없었다.

눈 수술을 하고 며칠간 햇빛을 볼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어둡고 냄새나는 방에서 나는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나는 장판을 뚫고 지각을 뚫고 내려가 저 깊은 맨틀까지 내려가 절망과 함께 대류하고 있었다. 그때 나를 구원한 것은 슈퍼맨이 아닌 구식 라디오였다. 창고에 버려져 있던 라디오는 내게 어떤 목소리들을 들려주었다. 나는 목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생김새마저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사람을 옷가지나 향수 냄새나 악세 사리 따위로 판단하는 법밖에 몰랐던 내게 라디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의 빛나는 구두코가 나를 구원해 줄 수 없음을 진즉에 눈치 채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침사추이 한 가운데서 구식 라디오를 좋아한다고 외쳐보았다. 나는 더 이상 홍콩의 늘어선 빌딩들처럼 화려해야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모든 것을 잘하는 슈퍼맨이 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라디오의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제 사람의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에게 나의 가난한 마음을 보여주어야겠다. 어디선가 구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잡음이 들린다.

 

 

소중한 그 날, 그 때, 그 곳

                                              

그 날은 네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비가 왔다. 우리는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셨고 너는 고백을 하려고 소주 한 병을 들이켰다. 나를 데려다 주는 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우산을 쓰고 걸었다. 나의 집 앞에 도착해 너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미 친구들의 귀띔으로 네가 날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백을 할 것 같아 나는 일부러 크게 웃었다. 너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러웠고 확신이 없었다. “나 너 좋아해”라는 낯간지러운 고백은 민망했다. 대답을 피하려고 했던 나를 붙잡고 너는 지금 당장 대답해달라고 했다. 그 상황을 피하려다 나는 얼떨결에 알겠다고 했고 우리는 그렇게 사귀기 시작했다.

연애 초반 나는 너와 만나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를 좋아하는 너의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벅찼다. 끊임없이 나를 기다려주며 배려하는 네 모습에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너에게 열정적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둘만 존재했던 것처럼. 나는 관계를 하나씩 지워나갔고 결국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와 함께 매일 밥을 먹고 24시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 얘기 해 봐도 이것이 너를 알기 이전의 관계들을 메우지 못했으므로 나는 집착하기 시작했다. 허전하고 외로웠다. 우리 사이에 큰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을 삼켰다.

헤어지자. 1년을 사귀었어도 한강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쌀쌀한 바람이 살을 에는 밤에 그곳에 갔다. 검은 강은 비밀을 품고 있는 양 넘실거렸고 너도 말하지 못한 무엇을 가득 안고 있는 듯이 울렁이고 있었다. 사귀자는 말도 헤어지자는 말도 너는 왜 그렇게 서둘러서 했을까. 시작도 끝도 내게는 너무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너는 단지 오늘 헤어짐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확신이라는 단어를 듣고 배신감이 솟구쳐 올랐다. 내가 널 바라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계획할 때 너는 홀로 헤어짐을 계획하고 있었을까 끊임없이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이별해야하는 이유를 묻는 나에게 너는 간단히 답했다. “마음이 식었어.” 그 한 문장에 너의 진심이 느껴져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할 말이 없었던 나는 “그래,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라며 도망쳤다.

나 헤어졌어. 사람들은 자주 나를 위로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겨우 말 한마디로 한때는 가족보다 깊은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네가 미안하다고 다 거짓말이었다고 할 것 같았다. 몇 개월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내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곤 했다. 이리 저리 뜯어보고 곱씹어 보느라 헤어진 그 날은 어제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별이 견딜 만했다. 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던 내가 밥도 잘 먹고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다녔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다녔지만 사실 너와 비슷한 사람만 봐도 심장이 요동친다. 너와 갔던 음식점을 지나칠 때면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생각하다 넋을 놓고 서있던 적도 많다.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너와 다시 사귀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네가 아닌 너와 함께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와 나는 뭐든 처음인 것이 많았다. 20살의 처음, 대학교의 첫 시작, 첫 연애였던 우리는 모든 것에 서툴렀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 비오는 날 너의 고백도 한강에서 헤어진 날도 돌이켜보면 어쩐지 좀 우습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비오는 날 우스꽝스럽게 웃고 한강에서 어쩔 수 없다는 시답잖은 그 말을 마지막 대사로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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