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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 설치류와 나


 필자에게는 나이 5년 4개월을 먹은 기니피그가 한 마리 있다. 기니피그의 수명은 약 8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반려동물로 길러지는 기니피그는 3년만 키워도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수명이 길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5년 넘게 건강히 내 자식 키우듯 기니피그를 길러왔다. 10년 가까이 장수하기를 바라며 책임감을 가지고 시간과 돈과 애정을 듬뿍 투자해 정성껏 거두는 중이다.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만 해도 필자의 반려 동물에 대한 책임감 있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키울 줄은 몰랐다. 아마 필자의 무책임한 짓 때문에 그간 필자의 품을 거쳐 간 반려동물들 중 10대 후반부터 거둔 아이들을 제외하면 다들 고통스러운 생을 살다 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듯 커서도 회한이 들 만큼 그 시절의 필자는 어떠했고 반려동물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필자를 바뀌게 한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다름 아닌 햄스터 세 마리였다. 

 그 햄스터들은 어느 날 불쑥 필자 앞에 나타났다. 어머니께서 형제가 없는 필자를 위해 아는 분으로부터 공짜로 햄스터 세 마리를 얻어 오신 것이었다. 처음에는 큰 플라스틱 함지 안에 담아 키웠지만 얼마 후 쳇바퀴와 먹이통, 물통 그리고 은신처까지 갖춰진 근사한 우리를 사옴으로써 필자 네도 제법 햄스터를 키우는 티가 나기 시작했다.

 필자 네 가족이야 이 작은 동물들을 즐겁게 구경했지만 정작 햄스터들은 필자 네처럼 단란하지 못했다. 게다가 말이 좋아 구경이지 실은 주인들과 햄스터들의 관계는 별로 좋지 못했다. 그들은 필자든 어머니든 가족들 중 누구 한 명의 손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겨우 손으로 잡으면 종종 손을 이빨로 물어 뜯고는 했다. 필자도 세 번이나 물렸었다. 이렇듯 햄스터들은 주인들에 대해 나날이 초초함과 경계의 구름을 더해갔다.

 어느 날 보니 세 마리의 햄스터들이 두 패로 갈라져 있었다. 제일 몸집이 컸던 햄순이와 중간 크기의 햄돌이가 한패가 되어 지속적으로 제일 작은 아이였던 햄진이를 공격했다. 결국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햄진이만 따로 우리에서 꺼내 다른 곳에 넣어 놓으셨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무리로 돌려보냈는데,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햄진이가 죽어있었다. 게다가 그냥 죽은 것이 아니었다. 햄순이와 햄돌이가 잔인하게 몸을 물어뜯어 머릿속이 깨끗하게 텅 빈 채 죽어있었다.

 처음에는 왜 애들이 자기 동족을 그토록 잔혹하게 죽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의문은 오래오래 필자의 뇌리를 맴돌았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한참 후 나이를 좀 더 먹고 나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원래 햄스터는 단신 생활을 즐기는 동물로 무리를 짓더라도 암수 한 쌍으로 길러야 하는데 필자는 무식하게 세 마리 전부 한 집안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당연히 서열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하루하루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졌다. 게다가 설치류는 그 특성상 개와 달리 스킨십을 신중히 하며 길들여야 했는데 그 당시 아무것도 몰랐으니 무턱대고 잡기에 바빴다. 그랬으니 오죽 주인이 무서웠을까? 물론 그 흔한 사랑 쟁탈전이나 양육강식이 원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엉망인 사육 환경이었다. 청소를 자주 해주었다 해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충족해주지 않았다.

 만약 처음부터 햄스터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하고 키웠더라면 세 마리를 한집 살이 시키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무지도 죄라면 죄고 무지한 주인을 만나 햄스터들만 엄청 고생했다. 그냥 집 잘 치워주고 밥만 주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동물들은 각 동물 별로 살아가는 특성이 다 달라서 그 점을 잘 숙지하고 키워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음을 그때는 전혀 몰랐었다.


 한편 햄진이를 그렇게 죽여 놓고도 햄순이와 햄돌이는 마치 저희 세상 만난 듯 연인인 마냥 꼭 붙어 다녔다. 저러다 진짜 임신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을 만큼 사랑 놀음이 아주 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마리를 갈라놓는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사건의 당사자이신 어머니는 무척 미안해하는 얼굴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미안해. 엄마가 햄스터 집을 청소하다가 그만 햄돌이를 놓쳤지 뭐니. 얼마나 빠른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어."

 뭐, 별로 그렇게 마음 쓰지는 않았다. 이미 도망간 놈. 게다가 집안도 아닌 집밖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찾나? 그 이후 햄순이는 홀로 그 큰 철장을 지키며 남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남은 세월이란, 만약 필자가 조금만 더 자각을 했더라면 제 명에 갈 수도 있었을 생을 반감한 세월이었다. 어쩌다 필자 같이 못난 주인을 만나 홀로 외로이 그 큰 집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는지. 그 아이 주먹 크기의 회색 털 뭉치는 필자의 잘못으로 죽었다.

 필자는 햄스터에게 싫증이 난 나머지 물도, 먹이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필자 본인이 생각해도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참 몰인정했다. 결국 햄순이는 갈증과 배고픔으로 그 짧은 생을 마감했다.

 막상 남은 한 마리마저 가버리자 언제 귀찮아하며 무심했냐는 듯 엄청난 죄책감이 가슴을 덮쳤다. 그 무지했던 어린 날에도 자기 잘못으로 죽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 하나로 "애완동물은 반려동물이며 키우는 자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도리를 일찍 깨치지 못해 죄 없는 짐승을 그렇게 보낸 것이 지금도 후회스럽다.


 그때 얻은 교훈과 자기 책망은 그 이후 10대 후반부터 키우기 시작한 우렁이, 미꾸라지, 금붕어, 기니피그 등 내 앞을 거쳐 간 반려 동물들을 전적으로 책임지며 어떻게든 제 명에 죽을 때까지 돌봐 주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햄스터를 세 마리나 희생시키면서 얻은 변화다.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생명은 내게 여전히 죄책감을 안겨 준다.


수필 2. 파충류와 나


 필자의 유아기 시절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중 똑같은 모습을 찍은 사진이 두 장 있다. 장난감들로 난장판처럼 어질러진 작은 방안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필자는 그 앞에 앉아 빨대를 문 채 어린이 프로를 보고 있는 사진이다. 그 사진의 오른쪽 밑에 보면 육각형의 투명한 어항이 있는데 바로 필자와 맨 처음으로 연을 맺은 동물, 거북이 '거돌이'와 '거순이'의 집이다.

 이 둘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이 없다. 그 애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시기의 필자의 나이는 겨우 7살이었고 그로부터 1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 도시로 이사 오기 전에, 그러니까 필자가 대도시 외곽의 시골에서 살적의 기억은 아주 작은 조각들로만 흩어져 있다. 그 조각들 중 단 두 조각만이 거북이들과의 추억이라는 현실이 좀 유감스럽다. 그 두 조각으로 깨진 추억의 거울을 보면 그때의 필자는, 장난기 많은 천방지축 꼬꼬마였다.

 그 조각 하나. 육각형의 어항 속으로 물이 한없이 쏟아져 들어가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팔다리를 느긋하게 휘저으며 물속을 위아래로 부유하는 거북이 두 마리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필자의 모습. 거돌이와 거순이와 관련한 몇 없는 기억들 가운데 제일 선명한 것을 보면 한두번 그러고 논 것은 아닌 듯 싶다.

 나머지 한 조각은 겁이 별로 없는 필자의 성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마도 필자가 거북이를 어항에서 꺼내 가지고 놀다가 어딘가에 내팽개쳐 버린 모양이었다.

 어머니께서 서랍장 뒤에서 코에 먼지 덩어리를 잔뜩 묻힌 거북이를 꺼내시고 그 먼지를 떼어내시던 모습. 철없던 어린 나이에 미안한 줄도 몰랐었다.

 이상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도시로 이사 온 6살 무렵의 내 기억 속에는 어찌된 일인지 이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7살,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후로는 거북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 거북이들은 언제나 대문 옆의 담벼락 아래에 하얗고 넓은 통 안에 담겨 유치원에서 귀가하는 필자를 맞았다. 필자는 종종 통 안의 돌들을 한쪽 벽으로 몰아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고는 했는데,어머니는 그때마다 그 무더기를 헤쳐내고 중앙에 넓은 돌섬을 만드셨다. 천진하고 저 밖에 모르던 철부지 시절이라 왜 어머니께서 항상 돌무더기를 통 한가운데에 둥글고 넓게 펼쳐놓으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필자는 그저 거북이들이 장애물 없는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짓을 했다. 한편 어머니께서는 그때마다 돌무더기를 헤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북이들이 여길 타고 밖으로 나가면 어쩌려는 거니?"

 지금 생각해 보면 백 번 옳은 말씀이다. 게다가 자세히 따져 보면 어머니께서는 거북이들을 염려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 하얀 통은 높고 넓적하게 쌓인 돌무덤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만약 거북이들이 필자가 벽 쪽으로 몰아 놓은 그 돌무더기를 타고 밖으로 나가버리면 그대로 1m 아래의 맨 땅으로 추락하게 될게 뻔했다. 그러면 거북이들은 용케 죽음을 면하더라도 어딘가로 숨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방안도 아닌데 그 마당 풀숲에서 어떻게 찾나?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야생의 습성을 거의 잃어버린 거북이들이 먹이를 제대로 찾아 먹을 수 있느냐이다. 그럴 수 없을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어머니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던 듯 싶다.

 거북이들과의 이별은 아주 단순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오니 거북이들이 없었다. 어디 있냐고 묻는 필자에게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필자는 그 사실을 금방 잊어버렸다. 나중에야 그들이 배변 불량으로 죽었음을 알고 놀랐다.

 어머니께서 거북이들에게 밥을 잘못 주셨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죽기 며칠 전 물 위에 기름 뭉치 비슷한 것이 몇 조각 떠 있긴 했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어린 날의 일이라 햄스터 사건 만큼 내 뇌리에 충격적으로 남지는 않은 탓인지 그로부터 15년이 넘은 20대 초의 어느 한겨울날, 필자 자신의 잘못으로 가엾은 생명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다.


 필자의 손을 거쳐 간 두 번째 파충류는 자라였다. 필자와는 연이 안 닿았는지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약한 개체는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가게에서 강한 개체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놈이었다. 본디는 거북을 기르려고 했는데 하필 당일에 가게의 거북 어항이 텅 비어 있어서 대타로 데려왔었다.

 일은 여기서부터 꼬였다. 필자는 애당초 자라를 키워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거북은 어릴 적에 눈동냥으로 기르는 법을 익혔기에 사전 지식이 있었지만, 자라는 사전 지식이 아예 없었다. 게다가 파충류의 특성상 똥개 기르듯 기를 수 없는데도 앞뒤 신중히 생각하지 않고 데려왔으니 정석대로 키울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자라도 몸이 뒤집어져 저 세상으로 갔다.

 거북이들이야 철모르던 시절의 일이라지만, 자라는 나름 동물 키우는데 도가 트였을 무렵에 죽은 애라 가슴 아리는 경험으로 남았다. 그것도 햄스터 사건으로도 깨닫지 못했던 아주 중요한 교훈 하나를 가슴 깊이 새겨가며. 바로 모름지기 반려동물이란, 본인의 성향과 형편에 맞는 아이로 골라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애꿎게도 동물들의 희생을 통해 아이가 자라나기도 하는 것 같다. 당장 필자만 보더라도 동물애호와 반려 동물에 대한 책임감 등은 전부 몇 마리의 동물들을 잃고 나서야 얻었다. 하지만 굳이 그 아이들이 꼭 죽어야만 배울 수 있었을까? 부디 필자의 2세들은 동물애호를 배우더라도 반려동물의 죽음을 보고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자연사라면 모를까, 주인의 부주의로 반려동물이 사망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이 필자의 바람이다.


임은혜

oyh4967@naver.com

010 7101 4967


  • profile
    은유시인 2016.06.29 23:11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습작 하시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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