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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7 16:51

쌀가마니

조회 수 25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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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마니





 스물두 살의 가을은 추웠다. 여름만 지낼 때는 몰랐던 이국의 쌀쌀함이 구월의 찬 기운에 실려 닥쳤다. 밖에서 웃고 떠드는 일이 잦아들 즈음 나는 칼바람 몰아치는 상공을 건너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견뎌야 했던 마지막 추위였다. 돌아와서도 나는 한동안 캐나다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에 대해 진력을 냈다.

 

 스물두 살이란 묘한 나이라고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그랬다. 성인이라 구분지어진 울타리를 건너 벌써 한 발자국 이쪽으로 넘어와 있는데도 동시에 다른 한 발을 저쪽에서 미처 떼지 못한, 풋풋함이 여즉껏 남아 있다고.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풋풋함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양식된 것이었다. 먼저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소집이 시작된 날은 그런 스물두 살의 해가 끝나가던 즈음이었다. 웃풍이 유난했다. 소집 장소로 나를 마중 나온 것은 말라보이는 사내였다. 민 계장이라던가,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걷다 도착한 곳은 낡은 동사무소였다.

 

 나는 두툼한 패딩을 눌러쓰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 부피가 육식 동물의 인상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일제히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고 나를 주시하는 눈길들 속에 벌써 나는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을 새로운 사회에 금방 끼어드는 종류와 이방인으로 남는 종류 둘로 나눈다면, 나는 전적으로 후자다. 캐나다의 이른 추위가 묻어 온 탓도 있을 것이다. 복무를 시작한 바로 첫날 나는 선임과 다퉜다.

 

 다행히 내가 할 일의 폭은 한정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응대하는 일을 해야 했다면 못 견뎠을 텐데, 그건 내 일이 아니었다. 동사무소에는 각기 ‘내 일’이 정해져 있어서 곁다리 존재인 공익까지 내려오는 번외番外는 업무라기보다 귀찮은 잔업에 가깝다. 머리를 비우고 하라는 대로 할 것. 그게 공익으로서 내가 요구 받은 사항이었다.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었다.

 

 업무 환경과 배치된 면면들에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 이상의 낯을 익힐 필요가 없었으므로 나는 적정 거리를 유지했다. 직원 외의 민원인이라고 해보았자 피상적으로 오가는 몇 마디 대담이 끝.

 

 오자마자 TV를 키고, “여기 팩스 좀 처리해주시겠어요?”“이쪽으로 오세요.”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는 혹여 일이 생기면 “거기 아무개 씨, 이리로 와서 일 좀 도와줘요.” 그러고 나서 비타민 드링크나 음료수 따위의 주전부리가 쌓이는 날도 있다. 야금야금 뜯어 먹고 있노라면 이제 퇴근 시간, 다시 불을 끄고 티비를 끄고 셔터를 내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 다음의 출근이 다가와 있었다.

 

 그 즈음 나는 우울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우울하다는 뜻은 그 사람이 일상에 줄곧 밀접하여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관망적이라는 말과 동의어일런지도 모른다. 어느덧 스물세 살이 된 나는 우울해져 있었다.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개시하지 못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기력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속알맹이는 어디다가 까뒤집어둔 채로 시키는 일만 고장난 인형처럼 하고 있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이유 없는 회의감이 속에서 움트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럴 때마다 제는 일원이 아닌 양 일터의 나날을 먼 데서 바라보고 그들의 미래를 대신 비관해주고 있었다.

 

 “아무개야, 잠깐 이것 좀 도와주고 올래?”

 

 직원마다 누구는 뒤에 꼭 씨 자를 붙이고 누구는 반말로 호칭하고, 누군가는 애매한 듯 반존대를 섞어 쓴다. 음세의 강약도 제각기 다르다. 나는 ‘아무개야’ 하는 소리가 들릴 때 벌써 누구라는 것과 일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직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분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분이거든. 쌀가마니를 타러 오셨는데 기력이 없으셔서 네가 좀 배달해 드리고 와야 될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보면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동사무소를 나섰다.

 

 동사무소가 위치한 곳은 경사가 잦고 동네가 깔끔하다기보다는 자질구레한 구석이 있으며 오래된 주택이 많았다. 어쩌다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공공근로자 혹은 공익의 몫이 되므로 이리저리 공문을 붙이랴 쓰레기 수거를 도우랴 나갈 일이 많았지만 길을 외우는 것은 아직 멀다. 과연 이번에도 모르는 곳이었다.

 

 평시라면 별 생각 없이 데려다 줄 텐데 그날따라 동행자의 걸음이 느린 게 무척이나 답답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보행 기구를 보보步步마다 짚으면서 걷는데 그 속도가 달팽이 못잖았다.

 

 보다 못한 나는 차마 투정은 못하고,

 

 “할머니, 집이 어디쯤 돼요?”

 

 “몰라.”

 

 그러고선 또 한참을 종종거리며 걷는다.

 

 노인이 길게 입을 연 것은 오 분이 더 지난 즈음이었다.

 

 “내가 원래는 집이 어딘지, 얼마나 왔는지 알려주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러면 힘들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를 먼저 보내고 싶어도 집 주소를 알려 주어봤자 쌀가마니를 마냥 밖에 내놓고 있을 수는 없고 결국 자기가 뒤이어 도착하면 그때에야 같이 집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 하니 계속 걷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차라리 목적지를 모르는 게 낫단다.

 

 왜냐고 반문하니,

 

 “원래 어디를 향해 갈 땐 얼마나 왔는지 몰라야 볼 거 다 보고도 더 빨리 도착하는 법이여.”

 

 그 즈음 우리는 집에 도착해 있었기에 난 그 말을 내가 쌀가마니를 집안으로 옮기는 것을 보고 무안해 공치사를 한 것이라고 넘겼다.

 

 갈 때는 길었으나 돌아오는 길은 뛰어서 한달음이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하는 소리란 게 이러했다.

 

 “왜 벌써 왔어? 적당히 좀 있다 오지.”

 

 알고 보니 원래 걸음걸이가 좀 늦는 분인데 같이 끼워 보낸 거란다. 나가는 김에 바깥바람도 쐬고 느긋하게 들어오라고.

 

 그러면서 요 앞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를 하나 사주는데 평소에는 별 생각 없던 그 짧은 동선 동안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노인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쌀가마니의 무게라고 해보았자 십 키로 정도로 아령 한두 개 정도였다. 그런데 같은 시간을 누군가는 여유롭게 향유할 시간으로 본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무겁지도 않은 짐에 얽매이기나 한 듯 바삐 걸음을 옮기면서 불만에 차 있었던 것이다. 중요하지도 않은 목적지만 바라보고 언제 도착하나 하면서.

 

 나는 문득 노인의 그 말 한 마디가 인생의 지혜가 담긴 잠언이었음을 깨달았다.

 

 마음속에 담아 놓은 짐이 채찍질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복무를 시작하기 전이나 후나, 생활의 양상만 바뀌었지 나는 계속 같은 연장선상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채근하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서만 열을 내어 달리면서 혹은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진력만 냈다. 마음 속으로 달린 끝에 제풀에 지쳐 거꾸러지면서.

 

 누구든 수명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오래 사는 방법은 기억 속에 다시 살고 싶은 생활을 충분히 쟁여놓고 여러 번 되새기는 것이라고 피 씨가 그의 수필에서 그랬다. 이 년 간의 짧은 생활만도 이런데 전체의 삶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제 일 년 반이 지나고 반 년이 남았다. 이 날들이 끝나고 훗날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다른 누구도 앞으로의 삶을 미리 달려갈 순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현명하게 달리는 방법 하날 배웠다. 굳이 내가 어디쯤 왔는지 세어보지 않아도 잘해내고 있다고 믿어줄 것, 그러므로 볼 수 있는 건 다 보고 가도 늦지 않는다는 것.


 같은 위치에서도 모두가 다른 삶을 산다. 




-


이동준

010 4945 0641

sspwing@naver.com

  • profile
    korean 2017.04.30 20:40
    수필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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