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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해낸 것과 삼켜낸 것

 

차창 밖으로 풍경이 끊임없이 밀려오고멀어진다.

 

전라남도 영암군에 위치한 호음 마을삼십여 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사는 이곳은 아버지의 어머니친할머니가 한평생을 보낸 마을이기도 하다멀다는 핑계로 명절에만 가끔 찾아가던 내가 갑작스레 이곳에 온 이유는 곧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는 아버지 때문이다어쩌면 마지막 인사가 될 지도 모를 길을 나도 따라나선 것이다.

 

아버지는 재단사다의류업체에서 일거리를 받아 모피 코트를 납품해왔다경기가 침체되면서 의뢰가 하나 둘 끊기기 시작했고때 마침 뉴질랜드의 한 공장에서 양모 재단사를 찾고 있었다그렇게 아버지는 이민을 결정했다.

 

일곱 시간 만에 도착한 이 작은 마을은 언제나 같은 풍경같은 소리를 지니고 있다시간마저 녹은 젤리처럼 질펀하게 늘어진다이곳에서 변하는 건 계절에 따라 입혀지는 자연의 색채와 왜소해져가는 할머니의 몸집뿐이다.

 

할머니는 올해로 여든다섯이다한평생 고된 농사일을 해온 탓에 손 거죽은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마디마디 투박하다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이 뒤틀려 맞물려 있고왼쪽 눈동자엔 언제부턴가 희뿌연 막이 덮이기 시작했다그럼에도 뭐랄까할머니는 어떤 산뜻한 기운을 품고 있다평생을 함께 한 벗에게 자연이 준 선물 같은.

 

4년 전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할머니는 홀로 지내신다하루 종일 적적하게 지낼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 편이 애잔하다적막한 시골에서 삶을 오롯이 혼자 헤쳐 나간다는 것은 도시인들의 자만 섞인 부러움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내가 온다는 소식에 읍내로 나가 굴비를 한 바구니 사온 모양이다아담한 반상위에 고봉으로 얹힌 밥과 굴비가 놓인다하지만 도시입맛에 길들여진 내게 질박한 시골밥상은 입맛에 좀체 맞질 않는다할머니 눈을 피해 슬쩍 밥 세 술을 퍼 아버지 밥그릇에 덜어놓는다아무 말 없이 그 많던 밥을 묵묵히 드시던 아버지.

 

시간은 끈적이면서도 성실히 나아갔고어느새 돌아가야 할 날이다할머니는 쌀이며 고구마참기름무화과 등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분주하다늘 그렇듯 내 몫의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도 잊지 않는다아버지에게 객지에서 몸조심해야 한다며 몇 번이고 신신당부 하던 할머니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진다드리워진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눈물은 옅은 흐느낌으로 번진다뱃속 깊이 눌러왔던 응어리를 토해낸다아버지는 도리어 당신 몸부터 잘 챙기시라 큰소리를 낸다아버지는 할머니를 바라보지 않는다그렇게 꾸역꾸역 응어리를 삼켜낸다.

 

그때 할머니가 토해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아버지가 삼켜낸 것은 무엇이었을까사죄였을까사랑이었을까후회였을까두려움이었을까아니내가 과연 어림짐작이나 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내게도 언젠가 그런 응어리를 삼켜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어쩌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와 동행했는지도 모르겠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밀려오고끊임없이 멀어진다.




이방인

 

구청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하나 신청했다. ‘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글쓰기라는 다정한 이름을 내건 강좌다. 몇 년 전에도 두 학기 동안 강좌에 출석한 적이 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접어두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시간적 여유도 생기고, 글쓰기를 더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첫 수업 당일에 부랴부랴 수강신청을 했다. 오랜만에 들어온 강의실엔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강사님도 여전했고, 수강생 중에서도 낯익은 얼굴들이 몇몇 있었다. ‘열심히들 글공부를 하시는구나.’싶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를 잡았다.

 

수업은 대체로 수강생들이 글을 써오면, 그 글에 대한 합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합평을 할 때면 나는 항상 은근한 관심을 받는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노인네들 작품을 보는 젊은이의 시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5명 남짓의 수강생 모두가 중년 혹은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20대는 나 하나고, 10대도 30대도 없다. 이렇게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 된 듯 한 기분이다. 몸에 엷은 긴장감이 돈다. 부담이라기보다는 간질거리는 설렘에서 오는 긴장이다. 합평을 할 때면 나는 글에 대한 감상을 가능한 정중하게, 최대한 솔직하게 전달하기위해 차례가 올 때까지 열심히 단어를 고른다.

 

죽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때 완성되는 것 같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할아버지의 문장이다. 유년시절에 전염병을 앓고 떠난 누이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라고 한다. 내가 썼다면 다소 허세 섞여 들렸을 문장이, 할아버지의 손을 거치니 진득한 깊이를 갖는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는 나이를 먹는 일도 축복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죽으면 얼른 잊어야죠.”

짧은 머리칼과 또렷한 이목구비, 지나치게 간결한 말투까지. 우울증을 치료하러 왔다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아주머니의 뼈있는 한마디에 강의실 안에 웃음이 퍼졌다. 묘한 철학이 깃든 그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생이란 결국 0을 향해 가는 과정일까, 100을 향해 가는 과정일까? 나이가 들면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게 미덕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어른들은 그 반대다. 끊임없이 내면의 빈 공간을 찾고, 그 곳을 빼곡히 채워나가고 있다. 그들은 100을 향해 가고 있다. 그것은 마치 다 큰 어른인 양 착각 속에 빠져있는 내게 신선한 울림을 준다. 아직 내 안에 채워야 할 공간은 아직 한참 남아있다는 것. 그러니 짐짓 어른인 체 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마주할 것. 솔직히 말하자면, 이 수업을 듣기 전엔 어른들은 모두 비슷한 색을 가졌다고 여겼다. 칙칙한 회색. 개성이 없고, 다양성을 인정할 줄 모르며, 세속적인 사람들일 거라고.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가까이서 본 그들은 각자의 색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오히려 깊고 진했다. 나도 얼른 나의 색을 찾아야지. 그리고 소중히 간직해야지. 깊고 선명하게 만들어야지.

 

 

 

  • profile
    korean 2018.04.30 22:46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쓰시면 좋은 결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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