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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8 00:47

그 아이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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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계절


작은 잡지사에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청춘 남녀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기에 친구들에게 기계적으로 문자를 돌리던 중, 불현듯 손을 멈추게 된 곳은 바로 같은 과 대학 동기 남자아이의 이름이었다. 같은 학과이지만, 학교에서 오고가면서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인 만큼 그 남자아이에게 문자를 보낼까말까 하는 망설임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냥 설문조사 하는 건데 뭐 어때.’ 라는 데 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이미 전송 버튼을 누른 뒤였다. 그리고 우리의 길고 질긴 인연은, 무더운 여름과 함께 막 시작 되었다.


그렇게 설문조사를 용건으로 시작되었던 대화가 조금씩 개인적인 주제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는 비밀의 방을 하나씩 보여주듯, 알게 모르게 약간의 신경전도 벌이며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몇 개월이 흘렀고 그 동안 서로의 취향은 물론이며 자라온 환경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일까지도 알게 되었다. 깊은 곳의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면 그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는 것처럼 남녀 사이였지만 진짜 몇 년 우정을 나눈 친구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에도 우리의 사이는 결코 ‘평범한 친구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몇 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과연 ‘평범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여느 때와 같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비록 문자에 불과하지만 그 대화창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공유해왔기에 그날따라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왜, 무슨 일이야’ 라고 질문을 던졌고 그 아이는 몇 번 부정하더니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듣게 된 그 아이의 고민은 ‘가까워지는 우리사이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친구,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 갑작스러운 그 아이의 고백에 당황했지만, 내심 설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언젠가 이런 대화를 하게 될 것을 서로 짐작 했지만 외면하며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은 후, 우리의 심리적 거리는 부쩍 더 가까워졌다.


방학 동안 자신의 친한 친구들과 혹은 다른 사람들과 여행을 갔을 때면, 매일 하루일과와 느낀 점을 적은 편지형식의 일기를 나에게 보내주었고, 그 일기를 읽으면 그 아이가 적어도 오늘, 어떤 것을 보았으며 전반적으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생활했는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평소에도 틈만 나면 전화를 해 하루일과를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나도 그 아이와 함께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마다 전화를 해서 깨워주는 가하면, 가끔은 작은 선물들로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에는 충분했다.


‘연인은 사계절을 다 지내봐야 한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아마도 긴 시간을 함께 해봐야한다는 것과 다양한 환경에서 지내는 그 사람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맞이함으로써 긴 시간을 함께 했다.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평범하게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한 잔 하며, 일상적인 대화부터 깊은 대화도 나누었다. 함께 영화도 보고 손도 잡았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맥주도 한 잔 마시며 서로 바라만 봐도 좋던 그런 긍정적인 감정만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열렬히 서로를 사랑하고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붙어있다가도 한 순간 시련이 닥쳐 이별을 맞이하는 그런 일은 유치한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다.


‘우리 안 될 것 같다.’

휴대폰 액정에 띄어진 그 문자를 한 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방어할 틈도 없이 내 눈앞에 던져진 문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마음을 추스르며 재차 되물었지만 ‘우리 안 될 것 같다.’라는 말뿐이었다. 사실 그 말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그 아이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지만, 그 모든 말이 나에게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마음이 식어버린 것 이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노력한다고 쉽사리 돌려지지 않는 것이라고 이미 그 때의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을 할 수도,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한 순간 변해버릴 수 있는 ‘사람 마음’이라는 것과 나에게 찾아온 그런 슬픈 상황이 야속하기만 했다.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을 용기가 없을 뿐 아니라, 상처 받기를 무척이나 두려워하던 내가 어렵사리 연 마음의 문이었는데, 그 대가는 혹독했다. 22살, 운명의 장난처럼 찾아왔던 나의 인연은 그렇게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듯 했고 이제 막 떠나버린 열차를 뒤로하고 홀로 역사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이별 후 누구나 하는 것처럼 이불 속에서 울기도 했고 친구를 만나 억울하다는 듯 내 감정을 쏟기도 했다가, 마음을 추스르며 바쁜 일상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도심 한복판을 걸을 때면 나와는 대조적으로, 마치 그런 헤어짐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는 양 함박웃음을 띄며 걸어가는 연인들을 보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어쨌거나 나만의 방법으로 ‘삶 속에서 스쳐가는 일부분’으로서 자연스럽게 이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했다. 덕분에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 여리고 이성간의 사랑에는 서툴렀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별에는 그럭저럭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그 많고 많던 대화들을 무엇이었으며 새벽 지는 줄 모르며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느꼈던 그 애틋하면서도 야릇한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단지 조금 길었던 행복한 꿈을 꾼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일까. 지금은 그 아이를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만이 남아있다. 많은 걸 털어놓으며 서럽게 울던 그 아이의 모습도, ‘보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하던 그 순간도, 장난스러운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던 아침도, 전화로 떠들어대던 사소한 그 이야기들도, 서로 얼굴만 쳐다봐도 까르르 넘어갔던 그 순수함도, 모든 것이 그립다.


살아오면서 이성에게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만남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정확히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이번 만남을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랑'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사랑의 모양'은 제각기 너무나 다르고 고유해 어떤 모양을 좇기도 어려울뿐더러 가늠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하나뿐인 '사랑의 모양' 덕분에 우리는 현재 찾아온 사랑에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조금 더 유연한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심코 올려다보는 책장에 그 아이가 선물해준 책들이 덩그러니 있고, 책상 한 쪽 귀퉁이엔 힘내라고 주었던 글귀가 아직 남아있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그 아이의 흔적들을 지우지는 않았다. 이별 후, 떠나버린 사랑의 흔적을 애써 지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 뚜렷한 나의 생각이다.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사랑의 모양을 만들었고 그 때만 할 수 있는 서투른 사랑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함께 했던 대학교 큰 길목을 거닐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학생들은 한가로워 보였다. 문득 스쳐오는 바람의 촉감이 낯설지가 않았다. 언젠가 느껴본 공기와 바람, 그리고 거기에 담긴 향기.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지는 노을을 마주했다. 늘어뜨린 팔이 붉게 물들고 있었고 살랑대며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들은 나부끼고 있었다. 절정으로 치달았던 무더운 여름도 그렇게 노을과 함께 지고 있을 때 쯤, 매미소리만큼이나 어지러웠던 나의 감정도 잠잠해지고 가슴 찡했던 나의 사랑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싱그러운 여름 향기를 몰고 왔던 그 아이는 여름의 끝자락만을 남긴 채 그렇게 가버렸다. 그리고 계절의 향기는 돌고 돌아 언제나 나의 코끝을 스친다. 이제는 ‘그 아이의 계절’이 되어버린, 이 ‘여름’의 싱그럽고 알싸한 향기가 말이다.



박선미

010-6377-3982

ggyu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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