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11
어제:
33
전체:
305,954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72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직 꿈을 믿는 나이, 스물셋

 

사람이라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공부를 잘 해서 칭찬을 받거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감동에 빠지게 만들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자랑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이다. 나에게 공부를 잘 한다고 이야기 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내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취직했다고 축하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니깐 말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고 있지만 모두 마찬가지일 거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다.


하고 싶은 일이 뭘까. 처음엔 글이 쓰고 싶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흔히 하는 ‘(나는) 내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는 잘못된 믿음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나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에 가까웠고, 국어 성적만큼은 언제나 상위권이었다. 물론 국어 성적이 창작 능력과 큰 상관관계는 없었을 테지만, 백일장 행사에 일정 인원을 필수적으로 참가시켜야 하는 담임선생님의 완곡한 부탁 (명령) 에 의해 추천 (차출) 되곤 했다. 게다가 이 착각에 쐐기를 박을 수 있도록 (덜컥) 교육지원청장이나 지방자치장의 이름이 새겨진 상장과 시계 따위의 부상을 받아오곤 했다. 덕분에 내 꿈은 소설가가 되었다.


이 착각은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담임선생님께 국문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고개를 절레 지었다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소설가가 되겠다는 것도 넌 커서 뭐가 될 거니?”,“무슨 과에 갈 거니?” 하는 어른들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만들어둔 모범답안에 불과했다. “몰라요라고 대답하면 그들의 눈빛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걸 못 정했어?’ 라는 경멸의 눈빛을 보아야만 했으니깐 말이다. 그 경멸의 시선은 차디찼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뒤따르는 동정의 눈빛은 차라리 따스하기라도 했다. 환영받지 못 할 거라면 그나마 나은 편을 선택했던 것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이 시기는 정말 귀찮을 정도로 나의 미래를 점치려는 사람이 많은 시기다. 친구, 친척, 부모님, 선생님 할 것 없이 만나기만 하면 나의 미래가 영화 예고편이라도 되는 냥 어서 꺼내 보여주기를 바랐다. 이럴 때마다 나는 글을 잘 쓴다.’ 는 믿음에 뼈를 붙이고 살을 붙여 그럴싸하게 보여주곤 했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정말 글을 잘 쓴다면,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다면 앙상한 뼈만 보여주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 왜 난 그럴듯하게 다른 뼈를 가져다 붙이고 살을 채워서 보여줘야만 했던 것일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덕분에 난 내 글쓰기 실력이 다른 아이들과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이젠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 음악에 빠졌다. 처음으로 갔던 해외 뮤지션의 내한 공연은 말 그대로 문화충격이었다. 저 멀리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보이는 뮤지션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이 추위에 떨면서도 기쁘게 기다렸다. 공연이 시작되자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혹 저 밴드가 어떤 종교의 주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누군가를 움직이는 힘. 그 힘이 너무나 부러웠고 넘치는 혈기로 악보도 제대로 못 보는 친구들을 꼬셔 밴드를 만들었다. 물론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실력이 (혹은 외모가) 평균이거나 그 이하였기 때문에 폭삭 망했다.


그렇게 나는 스물 셋이 되었다. 아직도 글을 쓰고 음악도 하고 있다. 이걸로 돈을 벌 순 없지만 하지 않으면 삶이 재미가 없다. 근데 왜 하필이면 음악이고 글쓰기일까. 참 오래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이제야 답을 찾았다. 내 어두웠던 유년시절 내게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알려준 것이 책이고 음악이었다. 책과 음악이 내게 깨달음을 주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똑같이 도움을 주고 싶다. 음악과 글쓰기는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과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한 수단인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난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뿐이지, 글을 잘 썼던 것이 아니었다.


난 단지 행복하고 싶었다. 행복하기 위해 나를 바꾸려 해보았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존재 속에 얽혀 있었다. 특히 술만 먹고 집에 들어오면 때리고 부수는 아버지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나를 바꾸기 위해선 아버지를 먼저 바꿔야 했다. 하지만 풀려고 할수록 더 많은 매듭이 보였다. 그때야 알았다. 아버지야말로 세상에 얽히고 삶에 엉키고 자본에 얽혀 자르지도 풀 수도 없는 매듭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풀기엔 너무 늦었지만 자를 수 없는 존재. 그 것이 아버지였고, 나 또한 그 매듭에 얽혀 있었다. 나를 바꾸기 위해선, 매듭을 풀기 위해선 아버지를 바꿔야 했고, 아버지를 바꾸기 위해선 세상을 바꿔야만 했다. 결국 나와 아버지가 행복하기 위해선 세상을 바꿔야만 했다. 그 사실을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아 버렸다.


그래서일까. 어려서부터 별거 아닌 것에 불만이 많았다. 세상은 언제나 의문투성이였고 삶은 불만의 연속이었다. 친척들이 어머니에게 영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싫었다. 영이 엄마기도 하지만 철수 엄마기도 한데 왜 영이 엄마라고만 부르는 거 에요? 화도 내봤다. 돌아오는 건 꿀밤 뿐 이었다. 넌 꿈이 뭐니? 라는 질문에 선생님이요, 대통령이요, 과학자요, 평범한 회사원이요, 공무원이요. 라고 대답하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대체 왜 꿈을 물었는데 직업을 말하는 거야? 꿈이 취직인가? 결국 내 차례엔 "세계정복이요!" 라고 말했다가 놀림을 받기도 했다. 거 참. 세상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이 정복인 줄 알았단 말이에요.


아아. 나는 참 외롭다. 오래 된 친구도 있고, 여자친구도 있고, 매일 바쁜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외롭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허무맹랑한 꿈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또는 착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이 꿈은 '이 녀석은 지금 이 어떤 시댄데 아직까지 꿈 타령이야' 하는 경멸의 눈빛을 감수해야만 한다. 게다가 세상을 바꾼 대부분의 위인들은 바뀐 세상을 보지 못 하고 죽었다. 난 세상이 바뀌더라도 바뀐 세상을 보지 못 하고 죽을 운명인 거다. 잘 돼도 아마 죽어서 인정받을 테고. 이걸 알면서도 헛된 믿음이 바뀌질 않으니 방법이 있나. 고맙다. 난 인정받을 수 없는 아 믿음 덕분에, 난 오늘도 외롭고, 내일도 외로울 거다.

 

 



8시 발() 지하철 

8시 정각. 줄 서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30초도 안 돼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 자리를 묵묵히 채워나갑니다. 일부는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차마 믿기지 않는 현실에 애써 쫓아가 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떠나간 자리에 남은 건 미련뿐이었습니다. ,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8시에 출발하는 서울역행 공항철도가 말입니다. 왜 조금 더 일찍 나오지 못했을까요. 아침을 조금만 빨리 먹었더라도, 양치질 하며 뉴스만 보지 않았더라도 탈 수 있었을 텐데.

 

88, 다음 열차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합니다. 빈자리를 찾기 위해서죠. 하지만 앉을 자리가 다 차면 이내 사람들의 눈은 텅 비어버리고 맙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잠깐이라도 졸 수 있는 승자와, 서서 가야만 하는 패자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새로 타는 사람들에게라도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줍니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밀리는 것으로 부족해서 지하철에서까지 밀려선 안 된다는 굳은 의지기도 합니다.

 

95분 전 사무실에 간신히 도착해 컴퓨터를 키고 자리에 앉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물을 떠 옵니다. 전화가 울립니다. 정각 9시입니다. 한 손에는 텀블러를 쥔 채 전화를 귀에 간신히 올려 어께로 받치는데 성공합니다.

반갑습니다. 상담사 O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렇습니다. 시간에 집착하는 제 직업은 상담사입니다. 9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는 상담사들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과 잘 어울리는 직업이 있을까요. 딱 컴퓨터 한 대 간신히 놓을 수 있는 크기의 책상과 파티션. 그 속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매뉴얼에 따라 받는 모습이 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과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분들은 나이가 있으신 어머님, 아버님들입니다. 대부분 혼자 지내시며 TV로 적적함을 달래시곤 하는 분들입니다. TV가 고장이 나도 자식이 찾아오는 날까지 기다리기만 하시다 어렵게 전화를 해 바쁜데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 말씀하시며 도움을 청하시곤 합니다. 대부분 간단한 리모컨 조작이나 설정 변경만으로 해결될 문제지만 보통 기사가 방문하기 전까지 기다리시기만 합니다. 그래서 전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화상으로 설명을 해드립니다. 해결되지 못 해도 좋습니다. 그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 TV가 아니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처음에는 왜 고장이 났냐며 화를 내시던 분도,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누그러지곤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 처음이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합니다.

 

1시 정각.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자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이고, 점심은 먹고 일하는 거야? 허허허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매번 점심시간 직후에 전화를 주시는 할아버지입니다.

. 방금 식사했습니다. 아버님도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오늘은 어떤 게 불편하셔서 전화 주셨나요?”

매뉴얼은 상담사간의 경쟁을 강요합니다. 더 많은 고객을 응대한 사람이 더 많은 인센티브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식사여부를 묻다니요. 하지만 이 아버님께만큼은 매뉴얼을 과감히 버립니다. 덕분에 5점 감점입니다.

아니, 내가 아침에 항상 보는 드라마가 있거든? 그걸 못 봐서 다시 보려는데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네? 한참을 찾다가 전화하는 거야. 허허. 미안해.”

나중에 잘 찾으실 수 있도록 즐겨찾기에 추가해드릴게요. 여기 별 모양 보이시죠? 나중에 또 놓치시면 여기 누르고 보시면 되요. 아시겠죠, 아버님?”

! 된다! 허허허허 이렇게 쉬운 걸 몰랐구만? 고마워, 내가 O선생 윗사람에게 말해서 승진시키라고 할게

물론 승전은커녕 인센티브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만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따스한 웃음소리가 힘을 내게 만듭니다.

 

6. 걸려오던 전화 소리가 뚝 끊기자 모두 수화기를 내려놓습니다. 방금까진 상담사였던 사람들이 아무개의 생일이라며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 하나라도 나눠 먹습니다. 퇴근길 출출하지 않냐며 족발 안주와 함께 맥주로 목을 축이기도 합니다. 실장님이, 팀장님이 먼저 퇴근하라며 마지막 전화를 받아주시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진상 고객을 응대한 상담사에겐 어깨를 툭툭 쳐주시기도 합니다. 이젠 압니다. 아닌 척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실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꽉 찬 8시 발() 지하철에 몸을 싣습니다.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16.03.22 21:08
    서울 한복판에 한번 지하철타고 가는것도 참 힘든일이더군요!
  • profile
    은유시인 2016.04.28 16:22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실을 맺도록 기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6 file korean 2014.07.16 2769
633 재미없는 콘서트 외 1편 글쓰는한국인 2015.01.31 159
632 장애를 가진 것은 불쌍한 게 아닙니다. 이빈 2015.02.24 153
631 전산쟁이와 Carpe diem 외 1편 1 대갈량 2015.12.07 152
630 술, 이제는 끊어야 할 친구 청솔 2015.01.17 152
629 어느날 글을 쓰다가 진씨 2014.12.08 151
628 기사회생 1 몽구 2015.11.06 150
627 22차 창작 콘테스트 - "무모한 항명, 제2의 고향 여행" 응모 1 靑雲 2018.03.25 149
626 한국인 제9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 마린스노우 외 1편 1 이루리 2016.02.10 149
625 퍼즐 한 조각 카르페디엠 2015.04.09 149
624 제10차 월간문학 한국인 수필공모 기억의 편린외 1편 1 파라다이스 2016.03.27 148
623 [제 11차 창작 콘테스트] 엄마된장국 5편 7 윤제헌마누라다 2016.05.05 147
622 그 아이의 계절 안녕2 2015.06.08 147
» [제 10차 창작 콘테스트] <아직 꿈을 믿는 나이, 스물셋> 외 1편 2 이광호 2016.03.22 146
620 노부모님의 흐르는 인생외 봄.여름.가을.겨울 5 myung 2018.03.18 145
619 여행은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이다 공룡 2015.01.25 144
618 길을 걷다 2 진하울 2015.11.04 143
617 [제 10차 창작 콘테스트] <여자는 축구 할 수 없나요?> 외 1편 1 진시현 2016.04.09 142
616 [제 10차 창작 콘테스트] 어느 날 밤의 소회(所懷) 외 1편 1 오크밀 2016.03.25 142
615 제 9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분 응모 : 아버지의 손 외 1편 1 보리 2016.01.30 142
614 내기쁨 찾아가기 1 sadey 2014.10.17 142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