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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무대 위에서

 

정동엽

 

그 해 겨울,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대학수능시험을 마치고 난 후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 까지 한동안 학교와 집을 무의미하게 다니던 시절 유일하게 나의 위안이 되어 준 것은 대구역 맞은편 교동시장 안에 위치한 파전 집 이었다. 그 주인 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은 데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나의 형편을 아시는 지 언제나 푸짐한 오징어해물파전을 부쳐 주셨다. 나는 언제나 전라도 지리산에서 유학 온 나의 단짝 친구 녀석을 불러내어 하루의 일과를 그 파전 집 에서 마무리하곤 했다. 녀석은 수능시험을 보고 난 후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고등학생 시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반항적이었던 당시의 나는 한때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밑 을 읽고 자퇴를 결심하기도 했었다. 학급 회장이 문학가가 되기 위해 학교를 무단결석하자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은 격노하셨고 나의 비행을 초장에 무마시키셨다. 도서관에서 소설을 읽고 있던 나는 어머니의 정보망에 걸려 학교로 붙잡혀 왔다. 그렇게 나의 방랑벽은 이미 인생의 초년기에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학교는 대구였지만 집은 밀양에 있었다. 3때 아버지께서 사업체를 밀양으로 옮기시는 바람에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평일에는 대구에서 방을 얻어 기거를 하였지만 수능시험을 마치고 겨울방학이 다가오자 아예 밀양으로 철수를 하였다. 이미 점수도 수능점수도 발표되었고 어느 정도 대학입학도 윤곽이 잡혀갔다.

그러나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은 사기를 당해 부도를 맞았고 우리 집의 냉장고와 텔레비전에는 노란 딱지가 붙었다.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이런 경제적인 문제가 그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았다. 집안 분위기가 어둡다 보니 나의 앞날도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였다. 청운의 꿈을 품고 무작정 한양에 가기로 했으나 방값이며 등록금이며 어떻게 해결을 할 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걱정을 안고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학창시절을 나는 보내고 있었다.

새벽 일찍 집에서 밀양역까지 걸어 나와 첫차를 타고 대구역으로 향했다. 당시 새벽에 비둘기호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의 지하철처럼 의자가 길게 세로로 뻗어 있어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볼 수 있었다. 199312월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도 차가웠다. 발목 밑으로 나오는 따뜻한 스팀의 열기가 얼어있는 몸과 마음을 녹여주곤 했다.

학교를 파한 후에는 버스를 타고 대구역으로 와서 기차를 기다렸다가 다시 밀양으로 오는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어색하여 대구역 주변에서 배회를 하다 어디선가 나의 식감을 자극하는 오징어해물파전의 냄새를 맡게 되었고 나는 결국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이네 단골이 되고 말았다. 날씨가 추워 몸을 녹이는 데는 역시 막걸리가 최고였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두발검사가 뜸한 틈을 타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나는 언제나 그 파전 집을 들어갈 때면 머리에 무스를 잔뜩 발라 뒤로 넘긴 후 가죽잠바를 입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락없이 동네 양아치행색이었으나 당시에는 나름대로 이만한 어른행세가 없었던 듯하다.

그날도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 파전 집에서 회포를 풀고 나온 후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한 채 부산행 통일호에 몸을 실었다. 저 멀리 석양이 하늘을 수놓으며 플랫폼에 드리우고 있었다. 경산을 지나 기차는 청도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차창 밖으로 겨울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산과 들에는 온통 눈으로 덮여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한 집 두 집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 마을 굴뚝에선 여기 저기 저녁 밥상을 차리는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꽁꽁 언 강가 한 귀퉁이엔 어린 아이들이 나무토막으로 만든 썰매를 타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외양간에선 소들이 여물을 먹고 코에서 열기를 내뿜고 동네 개들은 눈이 반가운 지 마냥 짖어대고 있었다. 22년 전 열아홉 내 청춘의 눈동자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렇게 아로새겨 갔다. 꽁꽁 언 발가락을 녹여 주는 따뜻한 스팀 공기가 어느새 텅 빈 마음에 들어차며 나의 취기는 결국 내 두 눈꺼풀을 닫게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기차는 청도를 지나 이제 밀양을 향해 기적소리를 울렸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세상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다. 열차도 멈춰있었고 사람들도 멈춰있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플랫폼도 멈춰있었다. 귓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온 세상이 고요했고 숨죽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것이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깥의 플랫폼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둘의 사람이 띄엄띄엄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취기가 한 순간에 달아난 나는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100미터 달리기 결승전에 출전한 선수처럼 순식간에 가방을 들고 기차 탑승구를 향해 냅다 뛰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기차 승무원의 소리도 뒤로 한 채 앞만 보고 뛰던 나는 급기야 달리던 기차에서 온 몸을 던져 플랫폼에 뒹굴었다. 교련시간에 배운 낙법이 나도 모르게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나는 플랫폼에 때굴때굴 굴렀지만 무릎이 조금 까였을 뿐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기차는 내가 뛰어내린 사실을 모르는지 기적소리를 힘껏 지른 후 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 큰 일 날 뻔 했네. 하마터면 삼랑진역까지 갈 뻔 했잖아!’ 안도의 한숨을 쉰 후 가방을 집어 들고 일어선 나는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적막한 분위기가 나를 엄습했다. 왠지 모르게 시골의 작은 역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내가 잘못 내린 것은 아닐까?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사람의 뒷모습 위로 보이는 글자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유천역. 밀양역이 아닌 유천역 이었다. 밀양역 바로 한 정거장 앞의 유천역. 밀양까지는 아직 6km 정도 더 가야 했다. 이미 어둠은 사방의 흰 눈마저 덮고 있었고 내 주머니는 바닥을 드러낸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영하의 날씨가 방금 전까지 달콤한 잠에 취해 있던 내 영혼을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날려 버렸다. 주위엔 황망한 들판과 어둠에 모습을 감춘 겨울 산과 강이 전부였다. 칼바람이 나의 뺨을 후려치고 도망갔다.

허탈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플랫폼을 빠져 나오자 나이가 지긋하신 유천역장님께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 이 사람아!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무작정 그렇게 뛰어 내리면 큰 일 난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왜 그리 급하게 뛰어 내렸어?”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나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순식간에 벌어진 딱한 사정과 함께 나의 호주머니 사정까지 설명했다. 그러자 그 분께서 망설임 없이 선뜻 나에게 밀양까지 가라며 거금 만원을 주셨다.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너무 반가워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드리며 반드시 갚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나는 그 돈으로 버스를 타고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나는 당시 유일한 낙이었던 파전 집을 며칠 동안 가지 않고 모은 돈으로 밀양시장에서 산 털장갑과 양말세트를 산 후 돈 만원을 넣고 정성껏 포장을 했다. 역장님을 만나 뵙고 선물을 전달하고자 다시 유천역을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마운 아저씨는 끝내 만나 볼 수 못했다. 수소문을 해보니 다른 지역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며칠 전에 이곳을 떠나셨다고 했다. 나는 새로 발령받아 온 역장님에게 가지고 온 선물을 대신 드리고 힘없이 돌아섰다. 참 아쉬웠다.

그리고 2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나는 사십대에 접어들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과 순진한 아내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거운 책임감을 나의 왜소한 두 어깨에 짊어 진채 말이다. 그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몇 번 해고를 당하고 보니 요즈음은 더욱 의기소침해 졌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일이 생겨 출장을 가게 되면 가끔씩 나는 기차를 이용한다. 언제나 플랫폼에 들어서면 눈으로 뒤덮인 유천역으로 온 몸을 내던지던 그 장면이 뇌리를 스쳐간다. 그리곤 입가에 혼자만의 미소를 지어본다. 아마 요즈음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무모한 행동이 아니던가? 당시에는 하루를 산다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고, 그래서 내일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나에겐 없었던 것임이 틀림없다. 일단 살고 봐야하겠기에 돈키호테처럼 나는 즉흥적이고 돌발적으로 생존의 길을 택하며 그 때 그 때 순간들을 살아갔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나에겐 일종의 사치였다. 경찰서 유치장에 계신 아버지와 마지막 작별을 나누고 그해 3월 나는 서울S대학교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로써 나의 방황의 11막은 간신히 막을 내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청운의 꿈을 초장에 접고 낙향하기 까지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22. 나의 쉴 줄 모르는 방황은 어느덧 77막의 끝자락을 향해 써 내려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생각이 너무 많다보니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 때처럼 무모한 용기가 아닐까 싶다. 이것저것을 자로 재며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사실 아무것도 행동으로 옮길 수 가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무모하지만 살기 위해서 전력질주 해서 열차에서 플랫폼으로 뛰어 내렸을 때 나는 교련시간에 배웠던 낙법으로 다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정()이 많으신 역장님을 만나지 않았던가?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2015년 청양의 해는 내 인생의 막 뒤로 숨지 않겠다고 말이다. 걱정만 하며 무대 뒤에서 떨지 않으리라! 실패를 하더라도 관중이 있는 무대 위에서 하고 넘어지더라도 관중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서 하리라! 혹시 또 아는가? 넘어지는 나를 보고 뜻하지 않게 세상이 마음껏 웃음을 선사할지 말이다.

 

 

                         마지막 고향집

 

정동엽

 

그분을 처음 본 건 가을의 정취가 J요양원을 물들이고 있던 200810월의 어느날 이었다. 그 때만 해도 B동 건물은 아직 외벽과 옥상에 벽돌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르신 한 분 한분이 새로운 가족으로 요양원 A동에 입성하고 있어서 하루가 다르게 생기가 피어오르는 요양원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무렵이었다.

그 날도 사무실에서 한창 바쁜 업무에 몰두하고 있던 나는 복도에서 조금 소란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파란만장했던 86년간의 생을 보낸 그분이 자의에 의해서인지 타의에 의해서인지 몰라도 하여간 어떤 힘에 떠밀려 2년후에 본인의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고향집에 도착하신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그분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분은 범상치 않은 인생경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요양원에 오게 된 경로부터가 독특했다. 연세가 지긋한 조카분의 손에 이끌려 오게 된 그 분은 처자식이 없는 혈혈단신이었는데 젊은 시절 일본에 사시면서 제법 큰 돈을 벌어서 한국으로 귀국하시게 되었는데 그 돈을 불과 얼마만에 다 탕진하시고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었던 것이었다. 조카분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에서 사귀게 되었는지 하여간 어떤 친한 할머니 한분이 그 분의 곁에 계셨는데 그 할머니 때문에 결국 돈을 다 탕진하고 지금은 기초생활수급비가 입금되면 그돈 마저도 그 할머니가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동네사람들이 하여간 이대로 두었다간 어르신이 밥도 못 잡수시고 돌아가실것 같아서 어르신을 좀 안전한 곳으로 보내달라고 지자체 행정기관에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레저레 조카분을 수소문 해서 결국 조카분이 지자체 담당자와 함께 절차를 밟아 결국 요양원에 입소하시게 된 것이었다. 요양원에 입소할 무렵 어르신은 3등급 시설급여 치매 판정을 받았다. 담당 사회복지사와 입소 상담과 계약을 마치고 생활관으로 올라가시려고 할 무렵 어르신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다름아닌 보자기 같은 것에 둘둘 말려 있는 지갑이었다. 만원권 백장정도가 그 속에 들어 있다고 조카분이 말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손에서 그 지갑을 놓지않고 주무실때도 화장실에 갈때도 식사를 드실때도 항상 그 지갑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하셨다. 설령 강제로 빼앗으려 했다가는 공격성 치매인 그분의 원펀치에 안면을 가격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셨다. 이미 86세인 고령이셨지만 그 힘은 소위 젊은 청년못지 않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그리고 어떤 젊은 할머니가 이 분을 찾거든 절대로 만나지 못하도록 신신당부 하셨다.

○○ 어르신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A3층 생활관에 올라가서 당신의 거처를 잡으신 그 분은 그 때부터 거침없이 하이킥이셨다. 일단 목소리부터 우렁차셨다. 특히 일주일에 한 두 번씩 A1층 사무실 맞은편 목욕실로 모시고 내려올때는 요양원이 떠나 갈 듯 호통을 치셨다. 치매로 인한 사회적 작용 감소로 공격적인 성향이 높은 터라 당신을 주변 사람들에 의한 피해 당사자로 생각하여 적대감과 폭력성이 매우 심한 편이어서 무엇보다 어르신과의 신뢰관계 형성과 친밀도 유지가 필요했으나 그것이 그리 말처럼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특히 목욕 하시기를 무엇보다 싫어하셨으니 어르신을 설득시켜 목욕한번 시켜 드리기가 이만 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날 생활관에 곤욕을 치르던 간호사님과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로부터 헬프 요청이 들어왔다. 일명 어르신 수송 및 목욕 작전 이었다. 최근 어르신의 공격 성향이 너무 강해져서 상당기간 목욕을 못한터라 오늘 만큼은 반드시 목욕을 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전화 수화기를 끊고 나는 즉시 공익요원과 함께 3층에 투입되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302호실로 가는 순간 어르신의 독특한 향기(?)가 코에 와 닿았고 심상치 않은 어르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르신은 방 한구석에 움크리고 있으면서 타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간호사님의 조언을 받고 일단 식사로 어르신을 회유하고 유인하기 시작했다. 쉽진 않았지만 어쨌든 밥작전은 성공이었다. 방문 입구까지 어르신을 조심스럽게 모시고 나왔고 급기야 공익요원과 함께 어르신의 팔을 양쪽에서 감쌌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신 어르신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이미 어르신은 1층 목욕실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때부터는 기다리고 계시던 요양보호사님들이 숙달된 실력으로 어르신을 목욕시키기 시작했다. 공익요원과 나는 어르신이 다치시지 않도록 양쪽에서 어르신을 지탱시켰다.

어르신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호통을 치셨다. “놔라! 이것들아! 놔라!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 놔라! 이것들아!!!” 머리와 얼굴, , 다리에 따뜻한 물이 흘렀고 향긋한 샴푸 냄새가 이내 어르신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어르신의 오른쪽 손에 지갑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지갑에 물이 튀어 만원짜리가 조금씩 물에 젖고 있었다. 오른쪽 손을 씻기 위해 오른 팔에 비누를 칠하니 어르신은 자연스럽게 지갑을 왼쪽 손으로 옮겨 잡았다. 그런데 그 손에 힘줄을 보니 어르신은 가히 가공할 만한 압력으로 그 지갑을 붙들고 계셨던 것이다. 금새 목욕은 끝났고 조금전까지만 해도 요양원이 떠나갈 정도로 호통을 치시던 어르신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그려지면서 아이고~시원하다!! 아이고 좋다!!” 는 말씀을 연발하시며 편안하신듯 머리를 만지작 거리셨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만원권 100장을 복사하여 어르신 지갑에 있는 실제 돈과 바꿔치기 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돈을 통장에 잘 보관해 두었다.

2년 가까이 계시는 동안 어르신은 조금씩 마음문을 여셨고 가끔식 이쁜 선생님들에게는 특히 식사를 제공하는 영양사 선생님에게는 용돈이라 하시면서 그렇게 목숨같이 붙들고 계시던 돈을 뿌리시기 시작했다. 86년 동안 험한 세상살이에 지치고 사람에 속아서 결국 상처뿐인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생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수단이 그 지갑안에 있는 돈이라고 믿게 만들었던 우상같은 신념이 떠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신이 여기가 고향같이 참 편안하다고 생각하신 터일 것이다. 그 돈이 없어도 요양원이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들어온 것이리라!!!

2년동안 잘 계시던 어르신은 평소에 식사도 잘 하시고 건강을 유지하셨는데 201093일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약 한달정도 병원 신세를 지다가 급기야 201010888세의 일기로 운명하시게 되었다. 어르신이 임종하시고 조카분이 장례절차를 상의하시기 위해 요양원에 오시게 되었다. 조카분의 결정에 따라 장례비용 일부를 제하고 입소당시 가지고 오셨던 현금과 2년 가까이 모아둔 기초노령연금 등 상당한 금액을 요양원에 후원하셨다.

혈혈단신이었던 어르신의 장례는 매우 조촐하게 치루어졌고 유골은 화장되어 어르신은 완전히 세상과 작별을 고하셨다. 그러나 파란만장했던 생의 마지막 2년간 어르신은 외롭지 않았다. 조물주는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생을 정리할 수 있도록...거친 숨을 고를 수 있도록...그리고 마지막 남은 전재산을 당신에게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를 위해 오히려 기부하도록 하심으로 생의 마침표를 사랑으로 찍게 만드셨다.

우리 시대 노인요양원의 사명은 바로 세상에서 소외되고 상처받고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어르신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고 아름답도록 영육간에 치유와 회복이 샘솟는 동산으로 거듭나는 것이리라! 사랑과 믿음이 어르신들의 곤고한 마음과 육신가운데 위로와 평강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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