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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6 16:12

여우가 되지 못한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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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되지 못한 곰 
정수민

   살을 에는 추위에 머리가 띵할 정도였던 3월 개강 첫 주의 어느 날, 2학기에 내가 교환학생으로 파견될 대학인 UC에서 이번 학기에 우리 학교로 온 학생들과 친목을 다지는 프로그램의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었다. 따라서 난 더럽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코트를 입고 평소엔 잘 하지 않는 풀 메이크업을 한 뒤 수업이 끝났음에도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무려 두 시간 동안 카페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너무 할게 없어서 평소엔 차갑게 거절하던 설문조사도 하고 화장도 30분 동안 정성스럽게 수정했다. 드디어 6시 반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장소로 향하던 중 풋풋하던 내 신입생 시절 아주 짧은 시간 날 황홀하게 한 대가로 나의 여름을 망쳐놨던 그 대단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내 손을 잡으며 인사 했다. 이제 충분히 깰 만큼 깼고 실체도 많이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고 확신했던 그 사람은 아직도 인사 한번으로 나의 하루를 망쳐버릴 만큼 위대한 존재였다.

   

   나는 이제는 보수적이고 제멋대로인 한국 남자들 말고 어깨도 넓고 키도 크지만 우리나라 남자들과는 달리 그러한 장점을 이용해서 당당히 ‘나쁜 남자’ 행세를 하지 않는 멋있고 성격 좋은 미국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겨보리라 결심했었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의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열심히 꾸민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내 손을 잡으며 인사한 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난 오리엔테이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심장이 쿵쾅거렸고 멍하니 바보 같았던 내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 머리가 아팠다. 나는 속이 안 좋다는 핑계로 그렇게 기대하던 자리를 일찍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헤어진 이후로 그 사람을 학교에서 마주친 적이 처음은 아니다. 같은 중앙동아리까지 했으니 2년간 만날 일은 아주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머릿속에서 그 상황이 떠나질 않았다. 또 오랜만에 괜찮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인사를 받아치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사실 혹시라도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그날 그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현실적으로 당연한 결과임에도 한없이 외로워졌다. 그 사람과 인사했던 1분도 되지 않는 시간 때문에 나는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오리엔테이션도 망쳤고 이렇게 외로운 금요일 밤에 나는 어디 하나 얘기 할 데 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은 지금 내 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남녀관계에 있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개방적이고 새내기 때 잠깐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정 없이 편하게 연애 상담을 하는 남자 선배인 동우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술 먹자는 얘기에 오빠는 1시간 만에 달려왔고 나는 이렇게 내 얘기를 들어주기 위해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와주는 친구가 있는데 남자가 뭐가 중요할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빠와 술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정말 별것도 아닌 것으로 내 기분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근에 목동이 아니라 일산으로 이사를 가서 지금 시간엔 막차가 끊겼다는 오빠의 말에 평소엔 절대로 먼저 하지 않을 제안을 하고야 말았다.

   

   나는 지금 내 곁에 나를 예전에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감싸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다른 남자들과 연애를 할 때는 그를 잊고 지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난 동우 오빠와의 하룻밤이 나에게 좋은 처방전이 되어주리라 생각했고 동우 오빠 또한 나를 원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은지 꽤 되었기 때문에 정말로 섹스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완벽한 상황과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과는 달리 그 오빠와 잘 수 없었다. 샤워를 마친 채 동우 오빠의 젖어 있는 완벽한 나체도 봤지만 이유가 뭔지 그냥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오빠를 택시에 태워 보냈고 혼자 남은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새벽 4시 텅 빈 집에 남아 나는 또다시 생각이 잠길 수 밖에 없었다. 새내기 때 동우오빠는 나를 여자로 봐주지 조차 않았다. 그런데 동우 오빠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다른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 동우 오빠가 나한테 연락을 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이제는 연락만 하면 만사 오케이를 외친다. 정말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버리거나 적어도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 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볼품 없는 바보 멍청이가 되어 버리는 것은 내가 동우 오빠한테 했듯이 그 사람에겐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어쩔 수 없이 썩혀 두었던 나의 성욕을 풀 수 있는 완벽한 기회까지도 날려버린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확실한건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온전히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함께 했던 기억과 그때 미치도록 떨려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그보다 잘난 남자를 만나고 다른 남자와 사귀면 그를 깨끗이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억력도 쓸데없이 좋은 나는 그때의 기억을 절대로 지울 수 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물론 예전엔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동우 오빠가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빠를 그냥 비싼 택시비까지 줘서 집으로 보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6개월 동안이나 남자를 만나지 못했던 나로서는 섹스가 너무나도 필요했다. 그리고 사실 술도 먹었고 밤도 깊었는데 감정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외로운 하룻밤을 위해 원나잇을 해본 적도 몇 번 있는 나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 때문에 하루를 망쳤고 그 사람 때문에 남자에게 위로 받고 싶어서 술을 먹었는데 그냥 다른 남자와 그렇게 자버릴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쯤 그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와 뜨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겠지만 나는 그 사람과 1분정도 인사를 했다는 이유로 다른 남자와 잘 수가 없었다. 정말 미치도록 불공평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공평한 게임 속에서 지금으로선 굉장히 희박해 보이는 승산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해선 난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나의 감정을 속이고 다시 다른 남자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또한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원하는 사랑을 쟁취한 수많은 연인들은 아카데미상 수상자만큼이나 연기력이 뛰어난 결과일까? 하지만 난 내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 난 아주 작은 사소한 감정조차도 숨길 수 가 없는 사람이고 나의 느낌을 어떻게 해서든 표출해야하는 아직은 여우가 되지 못한 곰 같은 20대 초반 여자다.

   

   이제는 봄이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진 신촌의 명물거리를 걸으며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러 온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니 문득 그 사람들이 모두 존경스러워 보였고 어느 정도의 연기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런 연기력을 언젠가 가질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러나 필라테스 수업 중 가벼운 생리현상 하나 참을 수 없는 내가 내 마음속에서 들끓는 이 느낌을 어떻게 숨기겠다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평생 여우로 길들여 질 수 없는 곰인지도 모르겠다


정수민

010 9472 2695

sandy94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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