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걷다가 만난 사색
사방이 초록물결로 일렁이는 계절이다.
이맘때쯤이면 주위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다.
나도 늘 생각만 하고 미뤄왔던 결심을 이번엔 말이 먼저가 되지않기 위해 평소보다 한시간 일찍 눈을 떴다. 그리곤, 집 주변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마치 배우가 시상식 장 안으로 걸어들어가기 위해 펼쳐놓은 레드까펫처럼 쭉 뻗어있었다. 길 양 옆으로 즐비하게 서있는 나무들은 배우를 환호하는 관객의 행렬처럼 끝이 없어 보였다.
하루 이틀 걷다보니, 이번엔 잘 만들어진 산책로 옆으로 또 다른 길이 눈에 띄었다.
물건을 살때 취향대로 사듯, 걷고 싶은 길을 취향껏 걸으라는 느낌이다.
걷기 좋은 길을 만들기 위해 요즘은 붉은색 탄성소재나 고무바닥재를 많이 사용한다.
내가 걷는 길도 고무바닥재를 이용해 푹신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좋다. 또, 바로 옆으로 소나무들이 그늘띠를 이루고 있어 흙을 밟으며 걷기에 좋은 길도 나 있다. 마치 숲속의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다.
박완서 작가의 책제목이 떠오른다.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그러나, 나의 걷기는 이번엔 못가본길로 가보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흔적으로 그곳은 또 다른 산책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문득 그 길을 맨 발로 걸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차마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운동이라는걸 우리는 너무나 잘아는 사실이지만, 한가지 장점을 더 보태자면 생각할 시간의 여유도 갖게 한다는 점.
그러면서 든다는 생각이 내가 밟고 있는 흙이 참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은 거리에서 흙으로 된 길을 보기 힘들어서일까? 흙은 이제 유년시절의 소꼽놀이처럼 추억에만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걸까?
'나중에는 아마 흙도 종류별로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거 아니야?'
흙을 밟지 않았다면, 차마 하지도 못했을 잡다한 생각들이지만, 그 길은 내게 건강과 함께 사색의 기회도 주니, 나는 앞으로도 그 길을 선호할것이다.
푹신한 쿠션감으로 잘 만들어진 길을 걸을땐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발치를 내려다 볼일이 없다. 오로지 앞만 보며 건강에 좋다는 빠른걸음으로 걷기에 열중할 뿐이지.
그러나 흙이 주는 정서적 유대감은 내게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간혹 땅 위로 뻗어 있는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상황에선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에게 다소 민망할때도 있지만 말이다.
발끝에 채이는 솔방울이며, 언젠가 사계절 푸른잎을 지탱했을 앙상한 삭정이까지, 그것들은 내게 걷는 동안, 단조롭지 않은 공간을 내어준다.
요즘은 비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 온 뒤의 흙냄새를 기억하는가? 아니지, 그 냄새는 기억만으로 표현될 수가 없다.
오로지,대지가 빗물을 흠뻑 빨아들인 다음에야 비로소 후각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진다. 다만, 빗물을 빨아들일 대지가 점점 줄어드는것 같아 아쉽지만 말이다.
그러나, 난 오늘도 그 전율을 기다리며 걷기진행형이다.
제목:어른들의 동화
유은실 작가의 '할아버지 숙제'라는 단편동화는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동화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그 옛날 할머니 속 좀 끓이던 할아버지가 동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 줄이야.
매주 화요일마다 어른을 위한 동화모임이 있다. 동화책을 선정하고 읽어온후, 각자 읽은 소감을 나눈다.
우리는 토론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깨닫고,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며 잃어버린 동심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중이다. 모임을 이룬지 1년이 다 되어갈즈음, 동화를 통해 나는 어른의 오만함을 얼마나 벗었을까 궁금해진다.
한때는 동화가 아이들의 전유물 쯤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동화라는 장르와 가까워질수록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어린시절의 내가 보였다.
또, 지금의 내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엿볼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나의 어린시절과 비교하면 우리아이들의 현재는 전혀 다른 환경에 살고 있지만 동화는 세대간 소통의 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어른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수한 동심으로 똘똘뭉친 어린 아이였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었다. 단지, 어른이 되면 무거운 책임에 눌려 동심은 저 아래 깊숙한 곳으로 밀려나 마침내 잃어 버리고 사는건 아닐까?
동화속 아이들을 만날때면 나역시 오래되고 먼지묻은 사진첩을 꺼내 추억이 잠기듯 동심도 그렇게 되살아난다.
채인선 작가의 '내 짝꿍 최영대' 라는 동화에서 엄마를 잃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주인공 영대를 만났을땐, 말없이 다가가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역시 어릴때 엄마를 잃은 아픔이 있어, 영대를 통해 나의 여린 동심을 만났으리라.
동화 속의 주인공은 대부분 가난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동화는 공감의 대상이고 위로의 대상이면서 희망을 줄수 있는 대상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물질적인 면에서 퐁요로운 세상에 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어른들도 때론 위로가 필요할때가 있다. 그럴때 마음깊이 전해지는 따뜻한 동화책 한권 읽어보는건 어떨런지, 어릴적 자신의 동심과 만날 것이다.
응모자: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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