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경계에서
가끔 경계 밖에서 뛰놀고 싶을 때가 있다.
삶도 죽음도 아닌 인생이라는 외줄
아지랑이 같은 외길로 걸어가는 매일
의미 없이 흘러서 갈 죽음이라는 심연
그 위에서 살짝 깃털처럼 내려와
발끝으로 창공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로 만든 양산을 들고
이름 모를 이국의 춤을 추고 싶을 때가 있다
해가 질 때까지 구름 아래서 뛰논 다음
달의 그림자를 등에 진채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때가 있다.
눈앞에 장막처럼 펼쳐진 빗방울의 베일
거울 같은 수면을 깨고 날아오르는 물고기처럼
그 커튼을 살짝 들추고 뛰어들어
춤추는 빗방울의 손을 잡고
눈 밭 위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고 싶은
때론 그런 날이 있다.
이별
가로등 밝힌 가을밤은
술잔처럼 깨끗하고
사랑은 담긴 소주처럼 투명한데
들이키는 이별은
쓰네
사내가 술잔을 기울이네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네
호수
호수에 비 내리듯
마음에 비가 내리고
심장 고동처럼 번진
빗소리에
출렁이는 호수 같은 밤
비 내린 잔잔한 호수에
별 비치듯
잎사귀
하나의 흔들림도
없는 밤이 되어라
십 년
십 년 키운 강아지
두 달에 한 번 집에 가도
살랑살랑
꼬리 흔들며 반겨준다
사람 얼굴 안 잊어버리는 게 참 신기해
혼잣말로 묻자
그럼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잊어버리는 게 더 어렵겠지
어머니 말씀
아무 말 없이 나는
무릎에 누운 녀석
등을 쓸어주었다.
미련
너를 쓰던 편지에
내 마음의 연필이 부러지고
지우개똥 같은 지저분한 미련만 남아
나는 차마
쓸어내지도 못한 채 너를 훑는다
종이 위엔
흑연처럼 번진 너의 흔적들
나는 미련의 더러운 지우개로
지워보지만
너의 흔적이 묻은 지우개로는
애달픈 추억만 더
번져갈 뿐
사랑이라는 건
너덜너덜한 편지지 위에
다시
너라는 기억을 덧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