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앞에서
하루가 지날 때마다
벽에 걸린 숫자 달력
한 장 뜯어내듯
한 칸 또 한 칸
눈앞을 가로막은
계단을 오른다.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빌라에서
위로 뻗은 계단을
오르는 순간
잠시 잊고 살아온
나를 다시 만나는
또 다른 시간이 된다.
계속 올라가는 계단 끝에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흔들리는 몸짓으로
지친 몸둥이 흔들며
계단을 오른다.
가끔은 어디선가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나를 찾아 오르는
그 계단 아래서
눈물로 머물다 사라진
잊혀진 지난날의
내 얼굴을 만난다.
눈물 같은 비
하루를 나와 함께 보낸
교과서와 노트가 든
책가방 메고
교문을 나설 때
눈물 같은 비가
눈앞을 가린다.
오늘 주어진 하루를
아프게 마감하며
길 걸어가는
내 머리 위로
그칠 줄 모르는 비가
내 마음이 되어
자꾸 내린다.
친구와 다툼으로
토라진 마음 하나가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수학 문제 하나가
내 머리카락 붙든 채
걸어가는 내 발걸음
무겁게 만든다.
세차게 내리지도 않고
가만 가만히
숨소리 죽여 내리는
비속을 홀로 걷는
내 눈가에도
그치지 않는 비가
줄지어 내린다.
유달산을 오르며
황혼이 서서히
물들어 가는 시간
능선에 우뚝 선 나무들이
꺼져가는 노을을
끌어안는다.
세상의 온갖 시름
그 속에 담고
꺼져가는 불빛처럼
눈감기 시작한
내 마음이 어느새
유달산을 찾는다.
우리들 부푼 가슴에
꿈이 되고
우리들 떨리는 가슴에
희망이 되는
그 이름 유달산이
물드는 어둠속에서
조금은 낮선 얼굴로
나를 손짓해 부른다.
화사한 달빛이
침묵으로 부서져 내리는
산등성이마다
지울 길 없는 그리움
끌어안은 채
치유할 수 없는 슬픔으로
시린 눈을 감는다.
흐르는 시간의 그늘이
조금씩 드리운 숲이
까만 어둠과 하나 될 때
유달산의 품에 안긴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유달산의 가쁜 숨소리를
귀로 엿듣는다.
소망의 기도
지금은 초라한 몸뚱이 하나
마음 놓고 누일 곳 없는
양지바른 언덕에
나만의 집을 짓고
새들 노래 들으며
바람처럼 살고 싶다.
동 트는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나는
푸른 호숫가에서
가늠하기 힘든
자연의 신비를 맛보고
귀뚜라미 노래하는
늦은 밤까지
책을 읽고 싶다.
붙잡지 못하는 뜬구름
한 눈 팔지 않고
내가 가진 것 하나라도
나눠 주면서
언제나 마음 행복한
부자를 꿈꾸고 싶다.
아직은 팔 휘저어도
내가 찾는 그곳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가늠 할 수 없지만
나무들 반가이 손짓하고
새들 즐거이 노래하는
그곳 찾아 나는 오늘도
끝이 안 보이는 그 길을
나그네처럼 말없이
걸어가고 싶다.
내가 만나는 얼굴
한 무리의 먹구름
밀어 올리는
기다림의 끝에서
살며시 고개 내미는
희미한 얼굴을 만난다.
뱀처럼 구부러진
논둑길 돌아 올 때
비좁은 돌다리 흔들며
두 팔 벌리고 올 때
달빛 속에 여울진
산 그림자에 겹치는
꿈에도 잊지 못할
그 얼굴을 만난다.
쳐다보아도 자꾸만
더 보고 싶은
그림자에 드러누운
낮 익은 얼굴 하나가
내 가슴 깊은 곳 자리한
무덤이 되어
오늘도 나를
손짓해 부른다.
아직도 미완의 꿈 간직한
슬픈 얼굴이
수줍은 고개 내밀면
나는 또 다시
세월 따라 흐르는
지난 시간 속에 잠든
그 얼굴을 만난다.
언제나 희망 끌어안고
한걸음 다가오는
아련한 꿈길에서
애타게 만남 기다리는
희미한 이름표 하나를
망각의 지우개로
나는 선뜻 지울 수 없다.
이름: 전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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