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
터벅터벅 걷는다, 정처 없이
뚜벅뚜벅 따라온다, 여지없이
내 걸음지문을 흉내 내는 그대는 누구인가
발자국 사이 간격도
쌓여있던 눈이 파인 깊이도
그림자처럼 나를 닮은 그대는 누구인가
온 누리가 하얗게 뒤덮인 이 땅에서
언제나 홀로 떠도는 나그네인줄 알았건만
네 철의 마지막 순간은
너는 나를 나그네로 두지 않는구나.
밥
밥을 먹는다.
숟가락을 들어 밥 한술 그득 퍼
입안에 넣는다.
고슬고슬 밥알이 씹힌다.
화려했던 청춘이 씹힌다.
어여쁜 그녀와의 사랑이 씹힌다.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도 씹힌다.
잘게 부서진 밥알을 넘기며
지나간 고통과 좌절과 연민까지 함께 삼킨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밥을 먹으며 인생을 곱씹는다.
희살(戱殺)
놀리는 건 재미있다.
때리는 건 즐겁다.
괴롭히는 건 신 난다.
그렇게 너는 서서히 악마가 되어간다.
놀림당하는 건 수치스럽다.
맞는 건 고통스럽다.
괴롭힘은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죽어간다.
희문(戱文)은 미문(美文)으로 고쳐 쓸 수 있지만
희살은 살인이라는 두꺼운 옷을 껴입는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피해자, 피의자, 방관자가 아닌
친구, 전우, 동료가 되어 보자.
그렇게 세상은 희살을 희망으로 바꾸고
너와 나는 남이 아닌 ‘우리’가 된다.
흰자와 노른자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
흰자와 노른자는 마치 사람 같다.
그릇이 있다. 어떤 형태의 그릇이던
달걀을 하나, 하나 깨보면
흰자는 섞여 일체가 되지만
노른자는 각자의 모양과 자리를 지킨다.
사람도 그렇다.
흰자는 타인과 조화되고 싶은 우리네 모습
노른자는 그들과 구별되고 싶은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
사회라는 틀 안에 깨어진 달걀은
우리 고유의 특성이자 자화상이다.
그래서일까
사람은 정말 흰자와 노른자 같다.
사라지는 숲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러시아 툰드라에 살고 있는 나무입니다.
저와 더불어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수천 년 동안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지요.
여기 러시아 말고도 지구촌 곳곳에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숲이 참 많아요.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브라질 아마존, 북유럽과 캐나다의 타이가 등
그런데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지구의 허파가
엄청난 속도로 사라지고 있어요. 드르르릉 쿵! 쿵!
이렇게 매일 1,200만 그루의 나무가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가 뭘까요.
그건 바로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죽어가면서까지 만들어진 이 종이가
재활용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무자비하게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많은 사람이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변함없이 베어지고 가공되며 버려지는 삶을 반복합니다.
어째서일까요?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그건 바로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랍니다.
더 늦기 전에 수많은 동식물의 보금자리를 지켜주세요.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재앙이 오기 전에 당신의 푸른 숲을 살려 주세요.
여러분의 현재를, 자손들의 미래를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