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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남부선

선암 주 종명


동식은 복국 집에 들어가다 말고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야! 동해남부선 철로가 막혀있네?” “임마, 그거 막힌 거 인자 알았나? 벌써 오래됐다! 일 년 반 됐나?” “벌써 일 년 반? 허 참! 그런데 난 아직도 그걸 몰랐네. 그라모, 그 지역 사람들은 우짜노?” “우짜긴! 새로 광역철도가 다른 노선으로 생겼다 아이가! 전철로 해서 말이다.” “아! 글나!” “와? 옛날 생각나나?” “그라모! 생각나지! 참말로 그 때는 철도 엄꼬 그럴 때였으니까!” “야, 빨리 올라가자. 이 집에는 늦게 가모 자리 엄따!” 동식과 고등학교 친구인 영수는 복국 집에 빨리 들어가자며 독촉을 한다. 이제는 폐선이 된 옛날 동해남부선 철도 옆에 있는 복국 집은 3층 집인데 1, 2 층을 복국 집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1, 2층 모두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원조 할매 복국 집은 해운대 백사장이 내려다보이는 해운대 달맞이 고개 가는 길옆에 있다. 둘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고향 친구였다. 원래 고향 친구라고 한다면 같은 마을 정도라야 하겠으나 둘이는 정거장으로 치면 한 정거장 떨어진 거리인지라 고향 친구라고 하기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열차 통학을 함께 하다 보니 특별히 가까워진 친구였다. 새벽 밥 먹고 새벽 별 보며 같은 열차를 타고 다닌다는 동질성 하나 때문에 열차 통학생들은 남들과 다른 끈끈한 정이 들어 있는 사이다.

당시 1970년대의 동해 남부선은 디젤 기관차가 작동하기 시작한 시대였고 비교적 빨라진 열차 덕분에 시골 사는 학생들은 부산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하여 열차 통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 전에 다니던 석탄 기관차는 기차역을 출발할 때마다 “꽥!” 소리를 지르고 다녔기 때문에 “꽥차”라고 불렸고 터널만 지나고 나면 코가 시꺼메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터널만 통과하고 나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어대곤 했었다. 그 이유는 석탄 연기가 차창 속으로 사정없이 들어와 사람들이 코를 막고 숨을 쉬다 보면 코 주위가 새까맣게 되어 마치 어릴 적 밀 서리 다닐 때처럼 코 주위가 검어졌으니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던 석탄 기관차가 없어지고 나니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했는지 모른다. 디젤기관차는 모양도 빨간 색으로 단장하였고 기적 소리도 “빠~앙”하며 경쾌한 소리를 내고 달렸는지라 마치 새 역사를 창조하는 선봉장 같이 우러러 보였고,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하는 새마을 노래처럼 이 열차를 타고 다니는 통학생들은 마치 새로운 역사를 일구는 역군들처럼 씩씩한 기상을 드날리고 다녔다. 하지만 열차가 연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통학생들이 지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열차 통학생들의 특성을 인정하여 불가항력으로 간주해서 열차지연으로 인해 지각하는 경우는 지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열차 통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라 20여 명 가까이 되었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란했던 것이다. 이렇게 열차 통학생들이 지각을 할 경우 통학생들이 들어오는 틈새로 같이 묻어 들어오다가 적발된 놈도 간혹 있었다. 동식이 반 철진 이란 놈이 그랬는데 동식이가 들어 올 때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철진이 아침 지각을 단속하는 독사 쌤 몰래 통학생들과 들어오려다가 바로 적발당한 것이다. “니 일로 와 봐라. 니가 와 통학생들하고 같이 들어가노? 니가 통학생이가?” “예, 저 열차 통학하는데요?” “뭐라? 열차 통학을 해? 그라모 통학증 꺼내 바라!” “예? 통학증요?” 그랬다. 열차 통학생들은 열차표 대신 월 단위로 통학증이란 것을 끊고 다녔다. 그래야 할인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달리 독사인 줄 아나? 어데 내 눈을 속일라 카노? 니는 양심불량까지 했으니까 운동장 열 바퀴를 더 돈다. 실시!”

동해남부선은 부산역에서 포항까지 연결된 철도로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를 점령할 당시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철도였다. 비록 단선이라서 쌍방 통행이 안 되는 철도였지만 부산역을 떠나 해운대, 송정을 가노라면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시원한 바닷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송정 해수욕장, 일광 해수욕장과 임랑 해수욕장 바로 옆을 지나가기 때문에 날이 맑을라치면 멀리 대마도가 보이고 맑고 푸른 동해물과 하얀 모래사장이 보이는, 참으로 풍광이 좋은 철도였다. 물론 그 당시에 풍광이 어떻고 저떻고 하기보다 먹고 살기 힘든 시기였으므로 아침 통근 열차에는 직장인, 학생은 물론이고 시골에서 배추나 무, 계란 등 시골 농산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고 팔기 위해 머리에, 등에 잔뜩 이고 지고 읍내 장터나 부산으로 가는 아줌마도 꽤 많아 늘 붐비기가 말할 수 없었다. 또 어떤 역에서는 비린내 물씬 풍기는 고기 상자를 들고 타시는 아주머니들이 고기 국물을 흘리는 바람에 비린내가 진동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개도 있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가을에 말린 고추 봉지를 들고 열차를 탔는데 놔둘 곳이 마땅치 않자 아가씨가 앉아 있는 의자 밑에 넣으려고 “아가씨, 다리 벌리 봐라 ! 내 꼬치 좀 집어넣게!” 라고 했다나, 어쨌대나?

해운대 백사장이 바라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 복국을 시켜 놓고 막걸리 한 병도 주문했다. 과거 월내라는 곳에서 열차 통학을 했던 영수는 지금은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월내는 달 월자 안 내자를 쓰는 月內로 지금은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져 달 안이라는 예쁜 이름보다 고리 원자력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진 곳이다. 모처럼 부산에 내려온 동식을 위해 아침 해장국을 사 주려고 이 곳 해운대 달맞이 고개 쪽으로 온 것이다. 동식은 월내에서 한 정거장 더 올라가면 나오는 서생(西生)이란 곳에서 통학을 했는데, 서생은 과거 임란 때 서생포에 있던 서생 왜성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지금은 간절곶 등대와 서생 배, 서생 미역이 유명한 곳이다. 서생에서 오랜 세월 살았지만 동해에 가까운 서생이 왜 서녁 西자가 들어가는지는 동식도 잘 몰랐는데, 아마도 과거에 신라의 서울이 경주였으므로 경주의 서쪽이란 뜻에서 그렇게 불렸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동식은 대학교를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지방으로 다니다가 지금은 성남시 분당에서 살고 있다. “야, 네 사업은 잘 되냐?” 동식이가 영수보고 물었다. “사업? 요즘 사업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야! 중국에 수출 좀 해 보려고 쑤시고 다녔는데 돈만 까먹었다. 뭐, FTA다 뭐다 해도 근본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원가 개념이 없는데 경쟁이 되나?” “음, 그렇겠지. 중국 사람들의 상술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상술 아닌가! 자,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고 건배하자!” “위하여!” 뭘 위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여하간 위하여! 를 외치며 둘이서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막걸리 맛이 좋아서 병을 쳐다보니 산성 막걸리다. 산성 막걸리라고 하면 동래 산성에서 만드는 막걸리로 걸쭉하고 진해서 처음에 먹을 때는 맛이 있지만 나중에 그만 취해 버리고 마는 부산의 명물 막걸리다. “야, 이거 산성 막걸리네. 옛날 이거 먹고 취해서 산성에서 내려올 때 거의 업히다시피 하고 내려 온 적이 있었는데......” 라며 동식이 옛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 부산에 생선회 말고는 유명한 음식이 별로 없는데, 그래도 산성 막걸리에 동래 파전하면 알아주지.” 영수도 맞장구를 친다. 복국이 들어 와서 시원한 국물에 다시 한 번 막걸리 잔을 부딪는다. “그래, 다른 놈들은 잘 있나?”라고 묻는 동식의 말에, “그럼! 다 자기 살기 바빠서 얼굴보기도 힘들다. 인자 우리 나이에는 한둘씩 저 세상으로 가는 놈들도 생기고 그런 나인데, 뭐 그리 다들 바쁘게 사는지 원! 고등학교 모임하면 나오는 놈들이 별로 없어.” 라고 영수가 대답한다. “야,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래도 형편이 좋은 거야. 다들 제 살기가 어려워서 그런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의리 없는 놈들이 너무 많아. 갱상도 하면 그래도 의리였는데 그건 다 옛날 말이야.” “의리가 밥 먹여 주는 거 아이거든. 그나마 사기 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뭐.” “인자 그래 생각해야 되것제?” “그라모!” “니는 서울 생활이 재미있나?” “재미있고 없고야 지가 만드는 기지 누가 갖다 주나?” “하이고, 니 서울 살더마는 인자 도사 다 됐삤네. 어데 스님이 하시는 말씀 같다 마!” “그만큼 서울 살기가 빠듯했다는 거 아이겠나? 하하하!” 동식은 부산에 내려오면 마치 봇물이 터지듯 자연스레 사투리가 터져 나오는 자신을 보며 놀란다. 서울 생활하는 동안 억양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가급적이면 사투리 쓰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는데 부산에만 오면 마구잡이로 터져 나오는 사투리. 역시 근본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아울러 그게 바로 고향이라는 푸근함이 아니겠는가?

해장국을 먹고 난 후 해운대 백사장을 걸었다. “니는 여기 자주 와 보나?” “야! 니 서울 산다고 남산에 매일 가나?” “거의 안 가지.” “똑 같다. 부산 사람들은 어쩌다 술 마시러 여기 오지 무슨 낭만이고 우짜고 해가면서 여기 오지는 안한다. 모처럼 니하고 같이 왔응끼네 이래 걸어 보는 기다.” “그러고 보면 해운대는 우리가 젊은 시절에도 별로 안 온 거 같다 그쟈?”

“글치, 나는 야 옛날에 가스나하고 데이트한다고 여기 왔다가 분위기 잡은 거는 좋았는데, 그 망할 놈의 단속반한테 걸리 갔고 혼쭐 안 났나! 니 기억나나? 우리 고등학교 때 남녀가 데이트하다 적발되모 정학 당한 거 말이다. 그 때 단속반이 눈고 하면 고등학교 체육 쌤들이 나왔거든. 가시나는 옆에 있제 잡히지 않을 수가 없었지.” “그래가지고 정학 문나?”

“아이다. 우리 아부지가 학교 교감 쌤한테 얼마나 빌었다꼬! 내가 알기로 돈 봉투도 들고 가신 걸로 알제. 우리 아부지가 그 때 철도청 댕기셨거든.” “응, 그랬지.” “그래도 같은 공무원이라꼬 좀 봐준 모양이더라. 나는 그 때 잡힌 것도 잡힌 것이지만 어느 고등학교 체육 쌤인지 그 선생이 얼마나 사람을 모욕하든지 내 그 다음에 그 쌤 한 번 보면 죽이 삘라고 했다 아이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남녀 사이에 연애질 하는 거는 우찌 보면 당연한 긴데 저거가 뭐라고 지랄이고 말이다. 우리 인생 우리가 사는 긴데 안 글나?” “맞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해운대는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었지. 참 옛날 이바구네.”

둘이서 모래 바닥에 잠시 앉아 있자니 “모닝커피 한 잔 하이소!” 하며 장사꾼이 옆으로 온다. 동식이가 지갑을 꺼내며, “햐! 아지매 장사 수완 좋네. 별로 사람도 마이 없는 백사장에 모닝커피 들고 올 생각도 다 하시고.” 하며 밀크커피 두 잔을 샀다. “그래, 모닝커피도 말이야, 우리는 이런 밀크커피, 속칭 다방 커피가 좋아. 뭐 젊은 사람들 모양 아메리카노니 뭐니 하는데 그기 무신 소린지도 모르겠더라.” “야, 니는 서울 살면서도 그런 생각하나? 내사마 진짜 그런 씹은 커피 못 묵는다. 묵고 나면 밤에 잠도 통 안 오고. 무신 놈의 커피가 밥값보다 더 비싸이 되것나? 그란데도 아~들은 잘도 처묵대.” “그래서 말이 있잖아. 어느 시골 다방에서 아가씨 세 명이 커피를 주문하는데 ‘한 사람은 아메리카노, 또 한 사람은 까페라떼, 다른 사람은 목카 주세요!’ 했더니, 다방 아가씨가 주방에다 대고 하는 말이, ‘여기 커피 석 잔!’하고 말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허허허! 세상이 좋아지기는 좋아졌는데 뭔가 빠진 것 같아 허전해! 니는 안 글나?” “왜 안 그래? 이게 사람이 물질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물질은 풍부해졌을지 몰라도 옛날의 인정이나 남을 위한 배려 같은 것은 적어졌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그런가? 요새는 가끔 사람 사는 기 머꼬 싶을 때가 있어. 특히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걸 볼 때모 더하고.” “야! 옛날에 부처님에게 어떤 어린 자식을 잃은 어무이가 자기 자식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했다더라. 부처님이 뭐라꼬 했는 줄 아나? 사람이 아무도 죽지 않은 집 세 집에서 구해 온 우유만 있으면 아들을 살릴 수 있다 캤단다. 그 어무이가 우유를 구했겠나? 절대 못 구하지. 그리고는 부처님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았다 카대. 그라니까 살아 있을 때 잘해 드리고 또 나도 행복해야 돼.” “맞다! 참말로 맞는 말이다!” 잠시 둘 사이에 말이 끊어졌다. 멀리 오륙도를 지나가는 여객선이 수평선을 가를 뿐이다.

그 때가 언제였던가? 동식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한 사람의 얼굴. 지금 그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참으로 가슴 떨리도록 귀여운 얼굴이었는데…….

그녀와의 첫 만남은 역시 열차 안에서였다. 동식이가 타는 역은 서생역이라는 간이역이었다. 보통 기차역이라고 하면 역 앞에 광장도 있고 울타리가 있어서 역 정문 말고는 들어갈 수도 없게 되어 있지만 서생역은 어엿한 역사도 없고 조그만 건물만 달랑 하나 있었으며, 울타리는 물론 없었고, 좁은 건물에 역원 한 명이 앉아서 매표와 표 확인까지 도맡아 하는 그런 역이었다. 과거 열차는 각 역마다 기관사가 역에 들어서기 전에 기관차 문에 서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링을 그 역 직원에게 던져주고 그 역에 설치해 둔 또 다른 커다란 링을 받아서 그 역을 통과했음을 증명하고는 했으나 서생역은 간이역이다 보니 그런 링을 주고받는 시스템도 없는 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철길로 들어와서 표를 사지 않고도 열차를 타는 얌체족도 있었으며, 동식의 친구 중에서는 아예 집에서 받은 열차 통학 비를 엉뚱한 곳에다 써 버리고 통학권을 끊지 않고 열차 통학을 하다가 적발되어 학교로 통보가 날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서생역 다음 역이 월내라고 하는 역으로 바로 고리 원자력이 인근에 들어선 역이었다. 동식이가 학교에 다닐 당시에 고리원자력 1호기가 막 가동되던 시점이었으니 그 때 당시는 고리 원자력이 지금처럼 환경 문제로 대두되기 보다 많은 주민들의 일터로서 아주 각광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고리 원자력 작업복만 입어도 술집에서 외상 주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무거운 가방을 들고 헐떡거리며 역으로 올라가면 대개가 기차가 연착하여 별로 늦는 일이 없으나 어쩌다 맨날 연착하던 기차가 정시에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난리가 난다. 아예 통학생들이 열차 선로를 막아선 채 뛰어 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성질 더러운 기관사는 열차를 출발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늦게 오는 학생들은 선로로 뛰어 오게 되고 기관사가 열차를 출발시킬 수 없으니 어떻게든 탈 수 있게 되는 게다. 서생역에서 월내역까지는 기차로 불과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구간이었으나 터널이 가운데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갈 경우에는 산을 한참 둘러 가야하기 때문에 약 1시간 정도를 가야하는 구간이었다. 서생역에서 열차를 탄 후 월내역에 도착하면 몇 사람의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타기 마련이었다. 월내역에서 탈 때만 해도 좌석이 여유가 있었다.

입학 첫 날,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를 올라가는데 역에서 내린 몇 명이 비슷한 코스로 학교를 올라간다. 당시에는 교복을 입고 있던 시절인지라 몇 학년인지 금방 알 수 있는 때였다. 부산 지리를 잘 모르던 동식으로서는 같은 교복을 입고 바삐 가는 선배들의 뒷모습만 보고 쫓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날 저녁 하교 시간 열차 역에서 2학년 선배들이 1학년들을 갑자기 집합시켰다. 영문도 모르고 역사 뒤편으로 따라간 신입생들에게 다른 2학년 선배 몇 명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소위 군기를 잡으려고 했던가 보았다. “야, 너거 신입생! 너거는 아래 위도 없냐? 선배들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뭘 쳐다보고만 있어? 오늘 내가 맛을 좀 보여주지. 전부 엎드려!” 신입생들은 ‘오늘 우리 죽었구나!’ 하며 바싹 쫄아서 엎드렸고, 2학년 선배가 팔을 걷어 부치는 찰나, “야야! 뭘 유치하게 이런 걸 하고 있노? 다 같이 새벽 밥 먹고 고생하며 나오는데 무슨 군기 잡는다고 그래? 처음이라 잘 몰라서 글치, 타이르면 되지 뭘 난리고!” 너무나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구원의 목소리 주인공은 2학년으로 동식과는 같이 서생역에서 타는 국민학교 선배 영태였다. “야, 니가 왜 나서? 얘들 가만 두면 버릇없어져!”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고생하는 같은 고향 후배들에게 오히려 따뜻하게 맞이하지는 못하고 촌놈들이 부산까지 와서 원수질 일 있어?” 영태 선배는 덩치도 컸지만 학교에서 유도 부를 하고 있어서 같은 동기라도 누구 하나 영태에게 덤빌 그런 사람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보스기질이 엿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2학년들은 1학년들에게 기합 좀 넣어보려다가 영태가 말리는 바람에 김이 샌 셈이다. “야, 앞으로 단디 해! 오늘 한 번은 봐주겠는데, 너거들 제대로 안하면 나한테 죽어! 에이 씨!” 그렇게 소리치며 몽둥이를 던져버리는 2학년 선배 이름은 명찰을 보니 광수였다. 그 선배는 기장역에 내리니 사실 겁주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몇 정거장 안 가서 내려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모처럼 자신의 위상을 세워보려고 후배들을 집합시킨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영태 형은 나중에 동식에게 다가 와 “야, 쫄았지? 쟤들 저래도 순진한 아이들이야. 그냥 너거한테 겁주려고 그랬는가 본데, 아침에 보면 인사나 잘 해, 알았지!” “예! 감사합니다!” “열차 통학한다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 열차 연착하지, 비나 눈이 오면 열차가 안 다닐 때도 있지, 얼마나 고생이 많은데 우리끼리 잘 지내야지 안 그래?” “예! 맞심더. 형님!” “사실 우리도 작년에 선배들한테 혼났어. 그래서 쟤들 하는 대로 가만 놔두려고 하다가 니 얼굴이 보이기에 내가 말린 거야.” “아이구! 고맙습니다!” 영태와는 오늘 아침에 서생역에서 같이 열차를 타면서도 반갑게 인사했던 터였다. 영태는 국민학교, 중학교 선배였기 때문에 각별히 잘 알기도 했다. 시골 학교들은 대개가 그랬듯이 한 학년에 1~2개 반이 고작이었고 같은 동네 사람들이 많다 보니 웬만하면 서로 알고 지내기 마련이다. “형님, 저는 박영숩니더. 월내에서 타니까 잘 봐 주이소.” 언제 들었는지 영수가 영태에게 눈치 있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랬던 고교 1학년 3월 초 어느 날, 동식은 월내역에서 영수가 타나 밖을 보다가 열차를 타는 그녀를 보는 순간 뭔가 모를 찡함에 순간적으로 동작이 굳어 버렸다. 촌놈이지만 꼴에 남자라고 남학생들은 여학생을 먼저 태웠기 때문에 남학생들 앞에 걸어들어 오는 한 자그마한 여학생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부끄러운 꽃 한 송이가 막 개화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한 떨기 장미꽃이었다. 비록 키가 크지 않아 남학생들 틈에 끼어 언뜻 보이지는 않았지만 새하얀 교복 칼라에 반사되는 그 모습은 다소 싸늘한 남해 바람 탓인지 발그레한 얼굴로 수정같이 맑은 눈을 가진, 마치 판다 곰을 보는 것 같은 신비함 그 자체였다. 그 날 동식은 그녀가 어느 자리에 앉으며, 누구랑 이야기하는지 몰래 지켜보느라 펼쳐진 책의 진도는 전혀 나가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왜 그렇게 갑자기 그녀가 자신의 눈에 마치 빨리듯이 들어왔을까? 이런 게 인연이라고 하는 걸까? 하루 종일 온통 그녀의 모습이 눈에 밟혀 어서 빨리 저녁 통학 열차 시간이 왔으면 하고 기다려졌다. 열차 통학하는 학생들은 대개 아침 등교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열차를 이용하게 되고 오후 하교 시에도 비슷한 시간대나 아니면 그 시간 보다 한 두 시간 늦은 열차를 이용하게 된다.

그 날 저녁 하교 시에는 그녀가 내리던 해운대역에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혹시나 그녀가 그 열차를 타는지 아니면 다음 열차를 타는지 열차 바깥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유리창에 눈을 갖다 붙이고 역사를 내려다 본 순간 동식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그녀가 그 말끔한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동식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눈을 돌리고 말았다.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그리고는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지?’하며 책가방 위에 놓여있는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 애썼건만 어느 새 자신의 눈은 그녀가 이 칸 어디에 서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없고 뒤를 돌아다보려다 바로 옆에 서 있는 여학생을 보고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여학생이 바로 동식이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학생들은 학교에 책을 두고 다니는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학교에 책을 놔두었다가는 없어지기 십상이었다.) 대부분 가방이 무거웠고, 열차 통학생들은 자리가 없어 서 있는 다른 학생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럼에도 동식은 미처 부끄러워 가방을 들어 주는 것조차 깜빡하고 있었다. 옆에 앉았던 영수가 그 여학생의 가방을 들어 주는 것을 보고서 그제야 동식은 ‘아차!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라며 후회스런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가방을 받아주지 못해 더욱 미안해진 동식으로서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책만 보는 척 했지만 바로 옆에 서 있는 여학생의 체취가 맡아지는 듯해서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자, 신문이요! 신문! 따끈한 석간신문이 나왔어요!”하며 신문 파는 아저씨가 지나가거나 “계란 있습니다. 사이다 있어요!” 하며 물건 파는 홍익회 아저씨가 지나갈라치면 그 아가씨의 몸이 동식이 쪽으로 더욱 밀착되어 마치 동식의 몸 한 부분이 그녀를 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면 그야말로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다. 송정 바닷가를 지날 때면 의례히 내다보는 바다 구경조차 못하고 어느새 기장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 나가 그녀 역시 가방을 찾아서 옆자리로 가서 앉았는데, 그 때까지 동식은 자신이 뭘 하는 지도 모른 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동식아! 내일 교련복 좀 빌려주라이!”라고 영수가 말을 해도 동식은 그저 멍하니 앉아 옆 좌석에 앉아 있을 그녀에게 신경이 쏠려 있었다. “야! 들었냐?”응? 뭐라 캤노?” “야, 내일 교련복 빌려 달라꼬!” “응, 그래 알았어! 아니 내일?” “그래! 내일!” 그 당시만 해도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군사훈련과목이다. 교련 시간에 입는 교련복은 개인이 다 사서 가지고 다녔는데, 다른 반인 영수가 교련복을 아직 사지 않아서 지금 당장 입을 수가 없으니 빌려 달라는 말이었다. 말을 더듬는 동식을 보며 영수가 말했다. “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얼굴이 안 좋은데?” “아니, 내 얼굴이 어때서?” “응, 얼굴이 벌 개.” “아이다! 개안타! 열차 칸이 더워서 글치 뭐.” 얼른 얼버무리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동식은 월내역만 도착을 하게 되면 그녀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열차 통학생들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열차 칸이 있다는 것이다. 뒤에서 셋째 칸 혹은 앞에서 둘째 칸 하는 식으로 자기가 주로 타는 열차 칸이 부지불식간에 정해진다. 그 이유는 하차하기가 편해서, 혹은 그 칸에 가면 비교적 앉아 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물론 친한 친구들끼리 약속을 해서 만나기 위해 몇 번째 칸에 타라고 서로 정해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습관적으로 타거나 내릴 때 편하다는 이유로 칸이 정해지고 그 칸에 타는 사람들은 대개 그 칸에 타면 볼 수 있게 된다. 그녀와 동식이 자주 타는 칸은 바로 뒤에서 세 번째 칸이었다. 비교적 내릴 때 편하다는 이유였는데 그녀도 아마 같은 이유였으리라.

열차 통학생들은 사실 늘 같은 열차를 타는데다가 때로는 같은 마을에서 다니는 친구의 친구라는 관계로 서로 알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대개가 친한 동질감을 느끼며 산다. 동식과 영수는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서생역과 월내역은 한 정거장 밖에 차이가 안 나므로 바로 만나서 친해졌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과거 국민 학교 시절 학교끼리 서로 축구 교류를 하느라 내왕도 했던 그런 관계였다. 하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몇 번만 건너뛰면 다 친척이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어쩌다 자리가 비좁은 날이 있을라치면 옛날 열차의 좌석은 다소 좁지만 세 명이 앉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동식이 옆에 앉는 경우 그 날 동식은 하루 종일 수업도 집중이 안 되곤 했었다. 특히나 그 해 여름철, 학생들의 하복은 소매가 짧아 팔이 나오고, 그 팔과 팔이 서로 부딪히기라도 할라치면 그야말로 동식은 공부는 뒷전이고 하루 종일 그녀와의 살과 살의 맞댐을 가지고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인연이 아니냐며 그녀를 생각하곤 했다. 소매만 닿아도 몇 겁의 인연이라는데, 하물며 같은 열차를 타고 다니고 심지어 팔일지언정 살이 맞대었다는 기적 같은 일을 두고서는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렇다면 열차 통학생들이 나 말고도 엄청 많이 있는데 뭐 팔이 부딪히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 사람들도 그럼 다 수십 억 겁의 인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종일 갈피를 못 잡아서 공부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나 그녀의 팔에는 그녀의 털이 굵어서 여자의 피부치고는 약간 까칠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 그녀의 약점을 나만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여하간 보통 인연은 아니리라 속다짐하는 동식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과감하게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할 생각을 동식으로서는 꿈도 못 꾸고 있었으니, 원체 암되어 숫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 때는 공부에 열중해도 대학에 갈지 말지인데 싶기도 했고, 영수와 가끔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다른 여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이건 마치 형이 동생을 타이를 때나 들음직한 목소리로 동식을 주눅 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첫째로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남자의 바리톤에 가깝다고 할 정도였다. 보통 연약한 여성들은 목소리도 가는 게 통설인데 이상하게도 가녀린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수정같이 맑은 눈을 가진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남자의 톤처럼 허스키하고 가라앉는 목소리였다.

“야, 뭘 생각하노?” “응? 응! 뭐 옛날 생각하는 거지 뭐. 너거 아~들은 시집 장가 안 가나?” “응, 이것들이 후딱 가면 좋을 낀데 갈 생각을 안 하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계산이 빨라서 그런 거야. 직장 생활하면서 기반 잡아 결혼 비용 마련하거나 아니면 집이라도 전세를 얻을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또 젊어서 좀 더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거겠지. 그래도 다 때가 안 있겄나?” “우리 때만 해도 돈 없이 결혼한다는 거는 다반사 아니었나? 어떤 놈이 장가갈 밑천 마련해놓고 결혼을 해? 결혼 할 때 그야말로 물 한 잔 올려놓고 장가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난하게 시작했지. 요새는 저거 부모들이 어느 정도 도와주는데도 안 갈라카는 거 보면 너무 얘들이 이기적인 것 같아, 안 글나?” “그렇기도 하겠지. 자! 일 나서 동백섬이나 한 바퀴 돌아볼까?” “옛날에 동백섬이 섬일 때는 모래가 해운대 백사장으로 들어왔다 카던데, 요새는 동백섬 물길이 막히고 나서 해마다 해운데 백사장 유지할라꼬 돈을 엄청나게 들인다 카네. 이라다가 해운대 백사장이 완전 없어지는 거 아잉가 몰라.” “상전벽해란 말이 안 있나? 뽕밭이 바다로 변했다카는 거. 바다가 뽕밭이 될 수도 있고. 아무도 내일을 알 수가 없지. 아까 우리 복국 묵은 집 바로 뒤편 해운대 달맞이 고개 올라가는 길에 옛날에 골프장 있었다는 거 아는 사람 별로 없을걸! 요새 생각해 보면 그 골프장 지금도 있었으면 완전 명품 골프장 됐을 끼라. 해운대 백사장을 내려다보는 링크스 골프장. 아마도 회원권이 엄청 비쌌을 끼라!” “그랬나? 동식이 니는 우찌 그걸 다 아노? 나는 와 기억이 안 나지?” “그 때야 우리가 골프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 기억이 안 나지. 나는 그 때 내 친척이 거기 근무한 적이 있었거든. 그러니 알고 있지.”

동백섬 옆을 돌아가면 과거 G7 정상회담을 치룬 누리마루란 건물이 나온다. 누리마루 커피숍에서 녹차 두 잔을 사서 동식이가 영수에게 건네며, “사람들이 바다를 보면 아무래도 마음이 좀 넓어지지 않것나 그쟈?” “그라이까네 여기서 회담을 했겠지. 경치는 괘안타 아이가!” “전에는 여기가 소로만 있었는데 그쟈!”

문득 그 때 장면이 동식의 뇌리를 스친다. 그랬지! 바로 이 근처였어.

그렇게 가슴 떨리게 그녀를 사모하던 동식이 영수에게 부탁하다시피해서 그녀와 어렵사리 데이트를 하게 된 장소가. 데이트 장소를 동백섬으로 정한 이유는 해운대가 비록 학생들의 출입금지구역이라고는 해도 경치도 좋고 무엇보다 집에 가는 열차역이 멀지 않다는 장점이 있어서였다. 그 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2학년이 되고 나서 다소 쌀쌀한 3월이었다. 1학년 때부터 그녀를 짝사랑을 해 왔던 동식으로서는 더 늦어져서 3학년이 되면 정말 공부 때문에 데이트 한 번 못해볼 것 같아서 용기를 내 영수에게 부탁해 보기로 했다. 그녀와 같은 초등학교 동기였던 영수는 자연스레 그녀와 만나면 말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모습이 동식은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조금만 씩씩했다면 영수와 그녀가 대화를 나눌 때 슬쩍 끼어서 말을 나눌 수도 있었건만 영수가 그녀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는 혹시나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봐 오히려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리거나 아니면 공부하는 척 하며 귀만 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다간 말 한 마디 못하고 끝날 것만 같아 어느 날 동식은 큰맘을 먹고 영수를 빵집에 데려가서 실토를 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만나보고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다.’ 그랬더니 빵을 실컷 먹고 난 영수가 어렵사리 한 번 이야기 해 보겠다고 했고, 그래서 힘들게 해운대역 앞 빵집에서 만나 동백꽃을 보자며 백사장을 걸어서 동백섬까지 왔던 것이다. 아무리 젊다고는 해도 가방을 들고 여기까지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하여 바닷가 근처 바위에 앉아 동식이 사온 빵을 먹었다. 사실 모처럼 마주 앉은 그녀와 동식이었으나 동식은 뭐라고 할 말이 통 나오지 않았다.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그 많은 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한 시간 동안 그녀와 이야기 한 것이라곤 고작 집이 어디며, 앞으로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지망하려고 하느냐, 어느 과목이 재미있고 어느 과목이 재미없느냐 정도였다. 그래도 동식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수학과목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도대체 수학의 미분, 적분이 우리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며, 인수분해가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냐?”며 한탄을 했더니, “맞아요, 맞아!” 라며 까르르 웃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황홀했고, 그녀의 웃음에 힘을 얻어 학교 쌤들을 흉내 냈더니 더 죽는다고 깔깔댄다. 자기 학교도 그런 쌤들 꼭 있단다. 웃는 그녀를 보며‘하늘의 선녀가 웃으면 저렇지 않을까?’할 정도로 동식의 마음은 하늘에 떠 있었다. 그 동안 가끔 들어왔던 그녀의 묵직한 저음도 너무 매력적으로 들렸으며, 보면 볼수록 그녀에게 빠져드는 자신의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그리고 꼭 알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떠보려고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공부해야 하니 앞으로 만나지 말자 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 열차 에서 자주 만나는데 굳이 따로 만날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하면 뭐라고 답할지도 궁해서 차마 말을 끄집어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동백섬에서의 데이트를 끝내고 해운대역으로 가기 위해 일어설 때,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몰려오는 몇 명의 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왠지 분위기가 안 좋다는 것을 느낀 동식이 그녀의 소매를 끌며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안 좋은 예상은 잘 들어맞는다고 염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헤이, 그림 좋은데? 동백아가씨와 데이트 하는가 베?” 그러면서 4명이 두 사람을 빙 둘러싸는 것이었다. 순간 동식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선제공격으로 한두 놈 쓰러지게 하고 같이 튀느냐 마느냐? 아니면 내가 결사적으로 막을 동안 그녀만 먼저 도망가게 하는 게 좋은가? 등등. 하지만 일단 그들의 반응을 보기로 했다. “와 이라능교? 그 쪽도 학생들인 것 같은데, 조용히 갈 테니 그냥 보내주소!” “그냥 보내주소? 야!! 그냥 보내줄 것 같으면 먼다꼬 너거를 붙잡겠노? 꼴에 그래도 깔치는 삼삼하네! 아가씨! 이런 놈 만나지 말고 우리하고 어울리면 편하고 재미나게 놀 수 있으이까네 우리하고 몇 시간만 놀고 가소!”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싶은 동식은 그 곳에서 조선호텔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지 눈으로 가늠해 보니 약 300m의 거리가 될 것 같았다. 그녀가 달려서 300m를 뛰어 가려면 적어도 1 분 이상의 시간을 벌어줘야 할 텐데 저 놈들이 4명이나 되니 내가 저 놈들을 다 막을 수 있겠나?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이거 오늘 일진이 좋다 했더니 막판에 개망신 당하는 거 아이가?’일단은 그녀를 막아서며 “우리는 기차시간 때문에 지금 빨리 가야 되거든요? 조용히 사라질 테니까 후딱 보내주소!” “뭐라? 기차 시간? 어이! 용백아! 니 임마 아는 놈이가? 임마도 열차 통학하는 모양인데?” 그 때 숲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는 한 명의 다른 남학생을 보자 용식은 깜짝 놀라며 다소 안도의 한 숨을 몰래 쉬었다. 그 사람은 좌천역에서 내리는 부산의 모 공고생으로 역시 좌천에 사는 동식이 친구 영철과 친구로 지내는 사람이었고, 영철이 때문에 한두 번 얼굴을 익힌 사이다. “어! 쟤는 영철이 친구 같은데? 니 서생서 다니는 영철이 친구 맞제?” “예, 영철이 친굽니더.” 자신도 모르게 존칭이 튀어 나왔다. “아, 그라고 보이, 이 아가씨는 월내에서 타는 영수 친구고? 맞지요?” “예, 맞아요! 영수 친구에요.” 그녀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지 굵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주위에서 용백이 친구란 놈들이 키득댄다. 예쁜 아가씨의 목소리가 너무 굵직해서 일게다. “야, 다 같은 열차 통학생들이다. 빨리 보내줘라.”용백이 그렇게 말하자, “뭐? 그냥 보내주면 안 되지. 그라모 신고하면 골치 아파진다. 여기서 우리한테 고맙다고 절 다섯 번만 해라! 그라모 보내줄게.” 봐 달라는 표정으로 동식이 용백에게 지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용백이도 그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를 한 번 쳐다 본 동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맙습니다!”를 연달아 다섯 번이나 크게 외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녀의 손을 끌고 자리를 떴다. “니 신고하거나 하모 니 얼굴 다 아니까 쥐기 삔다. 알것제?”속으로 ‘고맙기는 너거가 뭐 착한 일 했나?’ 욕하면서도 바삐 걸음을 재촉해서 해운대 역 근처로 와서야 비로소 한 숨을 돌렸다. 그제야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 슬며시 손을 놓았다. 손을 놓으면서도 ‘그 넘들 때문에 모처럼 손을 잡았으면서도 감각도 못 느꼈네.’ 싶어 아쉬움이 남았다. “문디 자슥들! 완전히 깡패다 그쵸?” “용백이란 사람 없었으면 큰 봉변당할 뻔 했어요. 다행히 아는 사람을 만났으니 망정이지요.” “세상 참 흉악하네. 어데 마음대로 데이트 한 번 못하겠구마. 망할 넘들! 한 번 확 붙어볼까 캐도 글마들이 진희씨를 해칠까 싶어서 오늘 꽉 눌러 참았심더! 개 같은 넘들” “잘했어요. 저 놈들은 다섯 놈이나 되는데 이기기가 쉽지 않지요.” 넌 턱도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말이란 것을 알지만 사실 동식이도 그 놈들과 일대일로 싸워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그 놈들은 덩치가 좋았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망쳤지만 열차 안에서는 나란히 앉아 “앞으로 꼭 이 칸에 타서 서로 얼굴 보며 지내자!”고 약속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주 월요일, 그녀가 영수와 함께 동식이 앉은 자리로 왔다. 반갑게 인사하며, “주말 잘 보냈는교?” 하였지만 다른 그녀의 친구들 눈치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눈인사만 했다. 영수는 곧 다가올 봄 소풍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잠을 잔다. 어제 종일 밭에서 일했다고 하면서.

좌천역에서 동식은 용백이란 놈이 타는지 안타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놈의 낯짝을 봐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용백이는 타지 않고 영철이가 가까이 왔다. 영철의 가방을 들어주면서 “야, 용백이란 친구 알제?” “응, 와?” “그 친구 어떻노?” “글마, 어릴 때는 참 착했는데 언제부턴가 삐딱선을 타대. 저거 엄마가 계모거든. 엄마하고 많이 다투는 갑더라. 요새는 가만 보이 학교도 잘 안 가고 농땡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참 안 됐어. 그란데 와 묻노?” “아이다! 좀 그런 것 같아서 물어본 기다.” “글마 국민 학교 때는 내하고 반에서 일, 이등 다투던 놈인데 중학교 들어가면서 아마 사춘기니까 글켔지 했는데, 요새는 아주 다른 길로 간 듯 해. 참 좋은 놈인데......”

“영수 니, 용백이란 좌천에 있던 놈 기억나나?” “기억나지. 굴마 졸업도 간신히 했는데, 교도소도 가고 하더니만 얼마 전에 죽었다 카지 아마?” “그래? 잘 죽었네. 글 마하고 저거 친구들하고 내가 여기 동백섬에서 한 번 붙을라 캤지.” “아! 글 마는 니를 봐줬다 카던데?” “뭐라꼬? 니가 그거를 우째 아노?” “아, 아! 나중에 내가 글 마한테 이바구들은 적이 있어서......”

“그래? 글 마하고 친했나?” “친하기는! 그저 옆 동네 사니까 알았던 거고, 글 마도 옛날에 좌천에서 축구 선수했거든. 영철이도 축구 잘했지만 글 마는 더 잘 했어. 나는 글 마 축구 선수될 줄 알았는데, 어만 데로 빠졌어.”

영수가 용백이와 친했다는 말에 다소 의아했지만 원래 축구 선수들이란 서로 친하기 마련이니 그러려니 했다. “야! 점심시간 다 되어 가니 내가 자갈치에 가서 회 한 접시 사주고 갈게. 내가 부산역에서 KTX 2시 차니까 지금 자갈치 갔다가 부산역으로 가면 딱 맞겠다. 가자!” “그라까? 보자, 그라모 내가 집에 전화해서 내 집사람 나오라고 할게. 같이 점심 묵지 뭐.” “응,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러지 뭐. 너거 집사람도 잘 있제?” “참, 내가 이혼하고 재혼했다는 이야기 안 했제?” “뭐? 재혼? 야! 니 재주 좋다. 언제 이혼하고 또 재혼까지 했노? 우리 나이에 혼자 사는 기 더 재미있을 낀데.” “그래도 안 글 터라. 게다가 지금 집사람은 내 첫사랑이다.” “그래? 야! 니 보기보다 순정파네! 나는 이혼했다 길래 20년 젊은 사람과 재혼했나 싶었더니 옛사랑 찾아간 기가? 참 열부 났네, 열부 났어!” “허허허! 그리 되나!”

영수의 차를 타고 자갈치 시장에 내려 회 센터로 들어갔다. 비록 옛날의 정취는 없다하더라도 “일로 오소! 잘 해주 끼요!” 라며 호객하는 상인들의 살아 있는 표정을 보니 활력이 넘치고 퍼덕거리는 물고기들을 보니 힘이 넘친다. “잘해준다는데 뭘 잘해준다는 이야기는 한 번 도 없어 그지?” 동식이 영수에게 들으라며 말했다. “맞아! 그라고 보이, 맨날 잘해준다고 하는데 뭐를 잘해준다는 말은 못 들어봤네.” 고기를 선택하는 것은 아무래도 영수가 나을 듯해서 영수보고 고기를 정하라고 하고 계산은 동식이가 했다. 그렇게 물고기를 주문한 다음 집을 정해서 자리를 잡았다. 먼저 뜨끈뜨끈한 홍합 접시가 나온다. 시원한 국물 맛이 역시 이 맛이야! 싶은 생각이 든다. “옛날 미역밭에 미역 따고 나서 나오는 홍합이 씨알이 굵고 맛이 좋았거든. 요새는 이 홍합도 전부 양식이제?” “하모! 요새 자연산이라 카는 거 주문하지 말고 ‘양식 주세요!’ 하는 기 맞다. 양식도 맛이 좋을뿐더러 어느 것이 양식인지 자연산인지 사실 분간이 잘 안 가거든. 자연산 달라고 했다가 괜히 속고 사느니 차라리 양식이 낫지.” “음식 속이는 놈들은 전부 사형시켜야 되는데 말이야. 저거 식구들은 안 처묵을 거 아이가?” “맞다. 음식 속이거나 연약한 사람 괴롭히는 놈들은 모두 목을 쳐야 돼!”

그 때였다. 선글라스를 끼고 목도리를 한 여성이 영수와 동식이 있는 곳을 왔다. 다소 뚱뚱한 몸매에 키도 자그마한 여성이라 동식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방에 들어오면서 그제야 선글라스를 벗고 “안녕하세요? 동식 씨!” 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동식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 40년 전 그 저음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박진희! 놀라 말도 못하고 쳐다 본 그녀의 눈동자는 과연 40년 전 그녀의 눈동자였다. 그 맑디맑아 마치 수정 같았던 눈. 비록 눈가에는 주름이 잡혔지만 분명 40년 전에 그리도 그렸던 바로 그 눈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 이게 우찌된 일이고? 니가 재혼했다던 제수씨가 진희 씨가?” “놀랬제? 진희가 사실 내 첫사랑이다.” “니 첫사랑? 그라모 와 그 때 빵집에서 그 이야기를 안 했노?” “음, 그 때는 딱히 사랑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좋아하는 정도였고 또 그 때 빵 먹기가 어려울 때 아이가? 니가 사 주는 빵 싫어할 내가 아이지!” “허 참! 그라모 그 뒤에는?” “응, 니하고 가끔 진희가 만난다고 하니 질투가 나대. 그제야 진짜 내 사랑이 진희구나 싶었지.” “사실 저도 전에부터 영수 씨를 좋아했는데, 저 사람이 천방지축이라서 제 심정을 몰라주었지요.” “아이고, 그라이까네 나는 너거 두 사람한테 갖고 놀린 거네. 와! 진짜 나는 그것도 모리고......” 그래서 그녀가 그 이후 나를 피했구나. 그래서 그 이후 갑자기 공부한다고 자취하겠다면서 열차 통학을 안했고.

“야, 그라이까네 내가 너거 두 사람 맺어준 은인이네. 어! 이상타! 그런데 너거 둘이는 처음에 결혼을 안했다 아이가? 그건 우찌된 기고?” “응, 결혼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집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결국 못했지. 알고 보니 동성동본이더라꼬. 지금에서야 동성동본이라 해도 파가 다르면 아무 문제도 없고 사실 전혀 상관없는 남인데 그 때야 어데 그랬나?” “야! 그래도 참 질긴 인연이다. 둘이 새로 만나려고 일부러 이혼한 것은 아닐 것 아냐?” “글치! 우짜다 보이 둘 다 혼자 살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만나 살기로 한 기지.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야, 나는 니가 내 첫사랑을 엮어준 은인이라 캤더만 알고 보이 내가 너거 사랑의 연탄재가 된 기네. 하이고 세상 희안타!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청바지’로 건배하자!” “청바지가 뭔교?”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입니더. 자! 청바지!” “청바지!”

KTX에 올라 커피를 한 잔 하며 그녀를 생각해 본다. 이미 뚱뚱해진 몸매에다 주름진 얼굴이 되어 버린 그녀! 하지만 그 때는 참으로 동식에게는 우상이었고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옛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결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나? 라며 씩 웃는다.

KTX 열차의 창가에 입을 대고 입김을 불어 옛날 그랬던 것처럼 김동식, 박진희의 이름을 써본 후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옆을 보니 어린 꼬맹이가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깜짝 놀라 얼른 지우고 멀리 도시를 바라보는 눈가에는 세월이 흐른 증거처럼 돋보기 안경이 걸려 있다.

과거 덜컹거리던 동해남부선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나도 벌써 폐선로가 되었는가 보네!’ 동식은 중얼거리며 잠에 빠져든다.



-끝-



  • profile
    korean 2016.02.29 02:01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시면 반드시 좋은 결실 맺으리라 생각합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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