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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7 23:24

-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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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빌딩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해가 서녘 하늘을 온통 붉은 노을로 물들이며 또 하루가 간다. 건물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한줄기 햇살이 조그만 병실의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온다. 창밖만 우두커니 바라보다 작은 공간을 찾아온 한줌 햇살을 가만히 손으로 꼬~옥 쥐어본다. 잡혔는가? 아무런 느낌도 없다. 어느새 햇빛은 손위로 올라와 그새 길어진 손톱 위에 머물러 있다. 다시 메마른 손을 편다, 엉거주춤 펴진 손바닥, 감정선이 풍부하고 말년이 좋다던 굵고 확실한 운명선 주위로 가늘고 긴 손금들이 어지럽게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잡아도 잡히지 않는 햇빛!,

두 번 그리고 또 세 번. 주먹을 힘없이 풀었다간 연이어 말아줘 봐도 역시 빛은 잡을 수가 없는가 보다.

햇빛도 못 잡는 바보! 난 무엇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보이지 않던 미세한 먼지가 마지막 한줌 빛줄기를 타고 둥둥 떠다닌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불규칙하게 차오른다. 온통 주삿바늘 찔렀던 자리로 빼꼼한 틈새라곤 찾아 볼 수 없이 검붉게 퇴색되고 피폐해질 대로 망가지고 지쳐버린 육신 위에도 햇볕은 찾아 들었다. 상한 나무뿌리 같은 혈관은 의료용 반창고를 붙였다 땐 자욱으로 얼룩져 마치 오래된 때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바싹 마른 팔뚝엔 죽음에 그림자처럼 검은 검버섯이 수없이 피어있고, 피부는 하루가 다르게 탄력을 잃어가며 검푸르게 변해간다. 링거를 꽃은 우측팔의 손가락이 뛰는 맥박을 따라 조금씩 흔들리고 불안하게 들리던 숨소리는 한동안 무호흡 상태로 머물고 있다가 타이어 바람 빠지듯 한 번에 ~.”하고 몰아 뱉고는 잠시 조용해진다. 그렇게 호흡이 멎을 때는 나도 숨이 막힐 것 만 같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낮잠을 주무실 때에도 가끔 코를 고시다가 갑자기 숨을 멈추듯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면 난 긴장하며 속으로 숫자를 세곤 했다.

"하나. . 아홉. ~어 얼." 그래도 표정을 살피면서 열까지는 참는다. 점점 불안해지며 열하나, 열두~.

거실에서 밀린 숙제를 하고 있을 때에도 볼륨을 최대한 줄이고 TV를 보면서도 신경은 온통 아버지 숨소리에 집중한다.”

아니, 이게 아닌데.” 흔들어 깨우려는 순간 아버지는 막혔던 호흡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과 함께 뱉어 내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혹 잘못되진 않을까 하고 가슴이 쿵쾅거리도록 놀라곤 가까스로 안도했다.

지금도 난 숫자를 센다. 열을 넘기도록 호흡이 멈출 때는 내 심장도 멎는 듯하다. 막혔던 호흡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침대가 출렁이고 폴대 위에 매달린 반쯤 남겨진 수액이 제 수면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거린다.

보조침대에 쭈구리고 잠을 자는데 나와 아버지 사이엔 길다란 등산화 끈으로 연결하곤 급한 일이 있을 때 팔을 흔들어 깨우라고 했다. 생각은 좋았고 몇일간은 잘 이용을 했다. 그런데 이제 줄을 당길만큼 힘이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아서 어젯밤엔 불안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눈빛은 어서 자라고 전해 오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나를 찿아 줄이 흔들리는 것 같고 해서 냄새로 감지했다. 무언가 코끝이 퀴퀴하면 기져귀를 갈아드려야 한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당신에 치부를 들어내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이고 마음이 상하겠는가? 한평생 위엄과 체통을 중시하던 아버지! 우리가 버릇없이 조금만 잘못을 해도 엄하게 꾸짖던 당신 이었는데. 이제 꿈도 희망도 모두 다 허물어지고 병마와 비틀거리며 싸우다 쓰러져 결국 자식 앞에 발가벗고 누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랴. 허지만 어쩔 수 가 없는 일. 어젯밤에도 다섯 번 이나 기저귀를 갈아 드렸다.

 

아버지가 파킨슨 진단을 받은 지가 벌써 9년 전이다. 특히 한문 쓰기를 좋와 하셨던 아버지는 주위에선 필적이 좋다고들 소문이 자자하셨고, 동네 개업 집 메뉴판은 물론 평소 서예도 익혀 국전에도 여러 번 입상을 하리만큼 명필 소리를 듣던 아버진데, 언제부턴가 오른쪽 둘째 손가락이 통증과 함께 글씨 쓰기가 힘이 들면서 점점 작아지고, 날씨가 추울 때는 우측 발가락이 저리면서 말도 약간씩 어눌해지는 이상을 느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며 "낳아지겠지" 하고 그런대로 몇 달을 보냈지만, 갈수록 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 듯 했고 자식들 성화에 못이겨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일명 PET을 찍고 CT 촬영을 하고 천천히 컴퓨터 화면을 분석하던 신경과 교수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대, 여섯 발자국도 안 되는 좁은 진료실을 왕복 보행을 몇 번인가 시키고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 보라고 한 뒤 손가락을 몇 번 구부렸다 폈다 를 해보라고 하곤

", 파킨슨병이 의심되는데요, 우선 약을 먹어 보면서 한번 결과를 지켜봅시다."

". 파킨슨 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떤 병이지요?"

그렇다, , 레이건 대통령과 무하마드 알리, 모택동 등 유명한 사람들이 걸렸다던 그 병. 들어는 봤지만 너무나 뜻밖에 놀라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놀라는 것은 아버지 보다 내가 더 놀랐다.

", . 간단히 얘기하면 뇌의 흑질에 분포하고 있는 도파민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우리 몸을 평소 부드럽게 활동할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도파민 부족 현상이고요, 좀 떨리고 행동이 느려지고 몸이 굳는 희 귓병 입니다."

". 희귀병 이라고요"

다른 말은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희귀병" 소리만 귓전을 맴돈다. 아버지도 언젠간 남의 얘기처럼 들어는 봤을, 그러나 어떤 것인지도 모를 날벼락 같은 교수의 말에,"그럴리 없는데..." 만 연발할 뿐 표정이 굳어진다.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진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다음 환자를 또 보기 위해 바쁘게 일어나는 교수의 안경알 너머로 작은 눈이 날카롭게 번득인다. 약만 잘 먹으면 별거 아니라는 말을 남기곤 흰 가운을 펄럭이며 보조 간호사와 함께 옆방으로 살아진다. 아버지도 나도 "" 하고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일어날 줄 몰랐다.

 

아직도 해는 비치고 있다. 이제 빌딩 그림자를 비껴나고 서산을 조금 남겨둔 체로 작은방 일부분에 머물러 있다. 늦가을. 유리창을 통해 온몸으로 받는 햇볕은 따사했다. 어린날 어머님에 품안처럼 따뜻했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고 위로해주던 어머니! 그러나 이제 그 엄마는 없다. 아니 없는게 아니라 소식이 없다. 그렇게 자상하고 인자하고 꿈과 희망을 주던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집을 나가고 말았다. ? 나갔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그때 아버지는 한참 주식에 빠져 꽤 많은 손해를 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 전날 저녁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는 소리가 났고 그 다음날 눈을 뜨고 보니 방문이 열려있고 농문이고 화장대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온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고 끊었다던 담배에 라이터를 그어대곤 한동안 멍하니 그렇게 서있었다 그 뒤로 안 방문이 닫히고 빈 술병들만 수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문틈으로 새어나온 씨운 담배연기에 온 집안이 쪄들어 갔다.

집안은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반찬은 고사하고 라면과 식빵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굶는 일이 태반사 였다. 주방엔 빈 그릇이 매일 쌓이고 음식 쓰레기가 널려 날 파리가 날고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곤 딱 한번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지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며 잘 있으라는 말에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과 나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라 했지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나도 동생도 울컥 울고 말았다.

며칠간인가 식음을 전폐하고 턱을 고인 체 오로지 술과 한숨으로 괴로워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마음을 다잡고 살림을 시작했다.

학원을 두 군데씩 다니는 우리들에게 매일 아침 도시락을 두 개씩 총 네 개를 싼다. 무엇이고 먹다 남은반찬은 그릇에 쏟아 붙고 대파를 손으로 대강 자른 뒤 거기다 계란을 깨트리고 프라이팬에 부치면 계란말이 도시락반찬 완성이다. 아버지는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요리책을 보는 법도 없다. 그냥 무슨 요린줄도 모르고 이것저것 잡탕찌개를 잘하는데 그래도 먹어보면 어머니가 했던 것 보다 더 감칠맛이 있었다.

"찌개란 금세 끓여서 먹어야 맛이 있지!" 그러다보니 꼭 일찍 일어나신다. 문을 닫아도 이른 새벽에 "싸르르. 싸르르아침쌀 퍼담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 . 셋하고 반,”

하나가 2인분이다. 그렇게 해야지 우리가 다 먹고도 도시락 네 개를 쌀 수 있는 양이라는 것을 이젠 알수 있을것 같다.

이어 "쏴아" 수돗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 . ," 뭔가를 자르는 칼도마 소리에 이어 "치기 폭. 칙칙. 포옥." 압력밥솥이 끓으며 밸브 돌아가는 소리에 이불을 베개까지 뒤집어 썼는데도 꿈속처럼 아득하고 어렴풋이 들려온다.

그렇게 아버지는 매일 매일을 바쁜 새벽과 아침을 우리들을 위해 고생 하셨고 희생하셨다.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는 날에는 도시락을 챙기고 반찬을 만들다 보면 출근시간에 쫓긴 아버진 밥을 아예 못 드시거나 그냥 주방에 선채로 국물에 말아서 반찬도 없이 한술씩 뜨시곤 고양이 세수만 하신 체 출근하셨다. 죄송스럽고 미안해서 일찍 일어나 도와드려야지...” 하는 결심은 생각뿐이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두 번의 새엄마를 더 맞아들였다. 아니 두 번은 공식적이고 그보다 더 많은 여자를 만난 걸로 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떠나가고 몸은 병들고 이렇게 홀로 쓸쓸하게 남았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첫 결혼에 실패했다. 박은경이란 여자였다.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들어서질 않았다. 처음에는 알콩 달콩 재미있게 살았는데 날이 갈수록 사이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가끔은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고 때론 술에 취해 올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는 날 이제 그만 정리하고 헤어져, 오늘부턴 기다리지 마라는, 문자를 받고는 예상은 했으면서도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길을 가다 말고 온몸에 맥이 풀려 무한한 현기증을 느끼며 갑자기 그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 인간의 마음은 사금석이래, 이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아무것도 없다. 근데 왜. 이리 허전해 지고 황량할까?”

주위는 온통 빈들처럼 공허가 밀려왔다. 가을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듯 내 마음도 빈병처럼 흔들리고 쓰러진다. 흐려지던 하늘에선 비가 내린다. 검은 아스팔트가 젖고 그 위를 미친 듯 달리는 차들도 젖고 내 마음도 젖는다.

모두들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검은 길바닥에 부딛혀 튀어 오르는 빗방울을 맞지 않으려 몸을 움츠리며 종종걸음을 해보지만, 이미 저들의 종아리는 흙 묻어 젖어버렸다.

깃대처럼 우뚝솟은 전봇대위엔 미처 날지못한 이름모를 새들이 물 젖은깃털을 흔들며 애처로운 울음은 빗소리에 묻혀 버리고, 가로변 떨어지는 낙수물에 갇혀버린 노점상들, 허공을 바라보는 가난한 눈들이 등불아래 슬프다. 그래도 다들 간다. 한 무리의 여고생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고 재잘대며 통근버스를 향해 물방울을 튕기며 우르르 몰려간다..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 우산을 받쳐주고 반가운 조우를 하는 연인들의 미소는 그져 행복하기만 한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한 장 티셔츠를 다 적셔버렸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빗물. 아니 눈물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아무것도 없다.사정없이 후려치는 빗방울에 얼굴을 맡기며 눈을 감는다.

은경아! 사랑 했다. 그래도 그동안 좋은날이 있었고 행복한날이 있었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가슴 아픈 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살리라

내 잘못이 컷다. 모든걸 용서한다. 이미 옷은 다 젖었고 폐부 저 깊은곳 바람소리를 듣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린다. 스치는 사람들 모두가 나처럼 슬퍼만 보인다.

은경이와 헤어지고 몇몇 사람을 더 만났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들 아닌 척하면서도 서서히 둘 사이가 멀어진다. 맞선을 본 후 괜찮다 해서 양가 상견례를 할 때, 아버지는 긴장한 나머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어눌한 숱가락질에 국물은 다 쏟아지고, 줄줄이 나오는 소변을 못 참아 화장실을 들락거리면 그냥 거기서 끝이다. 가슴아픈 일이다. 알게 모르게 다들 우선 부담스러워 했다. 그래서 한동안 마음을 접고 있었다.

난 처음에는 잡지사에서 일을 했는데 몇 년간 회사도 번성하며 잘 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IMF가 터지고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 후 숱하게 많은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썼고 명함판 사진을 백 장씩 두 차례를 뽑았어도 모자랄 정도로 응시를 했지만 나를 불러준 곳은 정작 몇 군데뿐이었다. 여태까지 별의별 일을 다해보았다. 지금은 아버지가 하시던 부동산 사무실을 나가고 있는데 불황의 연속이다. 밤을 지새고 지하철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를 해서 어렵게 딴 자격증에 비하면 대가는 미미했다.

우연히 잡코리아를 검색하다"기능직 공무원 채용(조경분야). 나이 제한 없음"이란 문구가 들어온다. "그래도 확실한 고정수입이 들어오고. 지금보다는 월급 생활이 낫겠지 조경이라면 자격증도 있다. 경력도 인정해 준 덴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다.”

며칠 후 젊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시험을 봤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또래는 없는 것 같다.

"글쎄요? 집으로 모시는게 좋을것 같네요.준비를 하셔야 하겠습니다" 엊그제 주치의 선생님이 한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이 고비가 될 수도 있다. 며칠 전에도 내가 자리를 비운 날 휠체어를 끌고 화장실을 다녀오다 넘어져 콧잔등이 부서지고 손바닥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눈에 보이는 상처만 전부일뿐 어디를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x 레이와 시티를 찍어대고 부산을 떨더니만 치료는 소독약만 몇 차례 발라주곤 곧 시들해졌다. 아버지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조금이라도 홀로 남겨두면 금세 무슨 일이 생기고 만다.

투명한 유리병엔 가늘고 긴 줄을 따라 샛노란 소변이 고이며 차오른다.

몇일전만 해도 어눌하게 말씀도 하시고 대. 소변이 오는 신호를 어렵기는 하지만 감지해 내곤 간이침대 에서 꼬부려 잠든나를 줄을당겨 깨우곤 했던 아버지, 촟점잃은 희미한 눈동자를 힘없이 감아 내린다.

눈물이 오랜 병고에 패인 주름을 타고 주르르 양볼에 흘러 내린다. 모든 것을 체념하는지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유난히 튀어나온 목젖이 위로 향했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제자리를 찾는다. 장작처럼 마르고 가죽만 남아 한 방울의 물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가 보다. 목에선 가래가 끓고 피가 넘어온다.

호흡이 멎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그날 넘어지신 것이 충격이 컸다. ! 내가 잘못한 거다. 그때 자리만 지켰어도 아버지는 생명을 더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편안하게 집으로 모시려고 했었는데. 콧잔등 에선 고였던 피가 수일이 지난 이제야 딱지가 굳는 듯했다.

그렇게도 길고 긴 수많은 시간을, 그 어렵고 힘든 고통의 순간을 참아 내리고 이젠 아파도 아픈 표정조차 나타내지 못하고, 한줄기 가는 투명 호스에 쓰러져가는 생명을 의지한 채로 힘없는 눈동자만 간신히 떴다 감는 아버지! 핏기 없는 표정으로 천정만 바라보는 눈이 젖는다.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해 아버지의 초점없는 눈길을 따라 고개를 든다. 굴곡 없이 판판하게 펼쳐진 천정엔 세 개의 형광등이 아직 남아있는 햇빛에 가려, 제빛을 발하지 못한 체 희미하게 매달려 있다. 맞은편 눈높이에 걸린 그림 한 조각도 없는 달력은 달랑 한 장을 남겨둔 체 한 귀퉁이가 찢긴 채로 병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펄럭거리고, 다소 시간의 오차도 없이 째깍이던 둥근 원판을 가진 벽시계의 초침 소리는, 아버지의 불안정한 호흡에 간간이 묻혔다간 되살아 나곤 또 다시 묻혀 버린다.

폰이 울린다

"응 난데. 좀 어떠셔."

". 그냥 그래. 역시 말은 못하시고."

"걱정이네, 우리 오늘 김장 담갔다. 동내 아줌마들이랑 했는데, 아주 맛있게 됐어, 엄마 하구 바닷가에 가서 생새우 좋은 걸로 사다 했더니 아주 잘 담가졌어, 오빠 좋아하는 깍두기도 담갔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혜란이는 신이 났는지 한참 떠들다 분위기를 직감했는지,

"여기 아빠, 엄마도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몰라, 좋아졌음 하는데.”

"음 그래야 하는데, 그런데 올라와야 할 것 같아서.”

"? 아벗님 안 좋으신가 봐.”

응 오늘 밤을 못 넘기실 것 같아, 근데 우리 공주는 잘 있어?”

알았어 바로 올라갈게, 우리애긴 잘 놀아 요즘에 내배를 어떻게나 차는지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 저런, 찌게 끓어 넘친다. 다시 연락할게...” 임신 8개월째인 혜란인 좀 편히 쉴겸 해서 친정으로 보냈다.

혜란이를 만난건 친구의 권유로 처음 만났다. 한해가 져물어가는 3년 전 12, 눈송이가 조금씩 흩날리는 날이었다. 머리가 약간 희었다는 말밖에 안했는데 혜란이는 금새 알아봤다. 도어를 밀고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손을 번쩍 들었다.

"배형욱 씨 맞죠? 안녕 하세요?”목소리가 맑고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 강혜란씬가요? 처음 뵙겠습니다. 근데 어떻게 한눈에 알아봤죠?”

"아니 필이 오더라고요 흰 머리에 약속된 시간이고 들어서는 순간 알겠더라고요.” 어쩌나 똑 부러지는지 말이 돌. . . 굴러 가는 듯 하다. 성격이 명랑하고 상당히 쾌할한 것 같다.

"전요, 자질 구례 한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요, 혈액형은 o형이고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쳐 목숨 걸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묻지도 않은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혜란이의 도톰한 입술엔 방금 마신 카프치노 하얀 거품이 묻어있다. 까만 눈을 깜박이며 살며시 웃는 모습이 나이답지 않게 천진스럽다. 입에 묻은 거품을 혀끝으로 살짝 할틀 땐 백옥보다 하얀이가 너무도 청아하고 깨끗해 보인다. 보조개가 패인 발그레한 볼에 불현 듯 뽀뽀라도 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나와 상반된 성격이 내심 마음에 걸린다. 나와 잘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

", 전요 무슨 일이든 당장 그만두는게 아니라 한번더 깊이 심사숙고하고 결정해요. 가령 누구를 알고 만나는 것도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해야지, 그렇게 두부모 자르듯이 벨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아무 일이나 무턱대고 하진 않아요, 턱을 고이고 심오하게 고민을 하고 시작을 해요."이거 말을 잘못한건 아닌가? 만나자 마자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 했다,

", 그러세요. 저하구 다르네요. 하긴 부부지간에는 서로 달라야 잘 산다는데."

주변은 모두 젊은 학생들로 꽉 차있다. 많은것을 알고 싶진 않았다. 아니 물어보지 않았을 뿐이다. 이미 친구를 통해 대강은 알고 있었고 카프치노 유리잔이 싸늘히 식을 때까지 별 쓸데없는 말들만 떠들어 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처음인데도 우린 아주 오래된 사이처럼 전혀 불편하질 않고 그도 나도 편안하기만 했다. 우린 둘 다 쓰라린 이혼이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들이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많아지고, 연신 주문을 받고 찻잔을 나르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피로한 모습을 뒤로한 채 문을 열고 나왔다. 조금씩 흩날리던 눈이 이불솜처럼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캐럴송이 울리고 어렴풋 자선냄비 구세군 종소리가 눈 속에 파묻힌다.

 

문밖이 발자국 소리로 시끄러워 지더니 솔미가 이모랑 함께 문병을 왔다. 솔미네는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데 원주가 고향이라고 하기에 편하게 그냥 원주댁이라 부른다. 원주댁은 하루해가 지고 있는데도 왠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잣죽 한 박스를 사가지고 왔다.

"아이고 사장님, 좀 어떠신가요? 한번 온다 온다 해놓고 그놈에 먹고사는 게 뭔지, 미안하네요."

할아버지 빨리 일어나, 추워지면 나 예쁜 장갑 사준댓잖아.” 가죽만 앙상한 팔을 잡은 솔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버지는 아는지 모르는지? 힘없이 눈만 감았다 뜨신다. 원주댁은 무얼 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솔미는 이모하고 단둘이 산다.

아버지 쓰시던 방은 문턱이 없다. 아니 방뿐만 아니라 현관앞에 올라오는 계단도 거실 턱도 모두가 완만하게 공사를 했다. 그 길은 현관을 빠져나와 작은 정원과 맞닿아 있다. 정원엔 조그만 동산들이 봉긋 봉긋하게 만들어져 있고 평소 아버지가 아끼고 좋아하시던 나무와 풀과 꽃들이 심어져 사철 푸르다. 한가운덴 수형이 아름댜운 배룡나무가 있고 우리가족이 다 앉을수 있게 원탁 나무탁자가 놓여있다.

봄이면 연상홍과 수수꽃다리가 피고 빨간 앵두가 익어가고 여름이면 능소화가 예쁘고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열리고 가을엔 낙옆이 떨어져도 늘 푸른 솔과 주목이 있어 쓸쓸하지 않았다. 옛 집을 헐고 다시 지을 때 남들은 조금더 넓고 크게 지으려 했지만 아버지는 구청을 오고 가며 건폐율과 용적율을 낮추어 어렵게 당신만의 공지를 확보해 만드셨다.

그리곤 거의 매일을 작은 동산과 함께 하셨다.

언젠가부터 걸음이 부자유스럽고 자전거도 못타고 운전대를 놓으시게 돠면서 평소 나돌아 다니기를 즐기고 여행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그 나무와 이파리와 풀들과 어우러져 그렇게 쓸쓸하게 지내 오셨다.

그런데 정원에서 현관까지 경사도가 좀 있어 휠체어가 올라오는데 힘이 부쳤다. 집은 사람이 없었고 마침 힘들어하시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솔미가 휠체어를 밀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났다고. 작은 힘인데도 훨씬 수월했다.

그런 다음부턴 솔미는 식사는 물론 TV도 함께 보고 냉장고 문도 마음대로 열고 꺼내 먹을수 있게 한 식구처럼 지냈다. 원래 우리집에 오기전까지 다른 아이들은 모두 유치원에 가는데 솔미만 언덕위 텅빈 놀이터에서 언제나 혼자논다. 지금 일곱살 인데 친구들 따라가고 싶어도 이모가 다니지 말라고 한단다,

근데 난 정말 이모가 맞는지 잘 모른다. 어떨 땐 숙모라고 부른다. 이상해서 다시 물으면 이모두 되고 숙모두 된단다. 그런데 요즘은 통 숙모란 얘기는 쑥 들어갔다. 일관되게 이모란 명칭만 쓴다. 교육을 단단히 받은 모양이다.

솔미가 우리집에 오기전 어느날, 언덕아래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이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언가 사고가 터진 모양이다. 경찰 손에 잡혀 끌려가는 아이는 낮이 익은 아이다. 평소 놀이터에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갈기고 잠지를 꺼내 보이고 히쭉이 웃는 등, 조금은 이상한 짖을 하는 그 아이다. 그리고 뒤따라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끌려오는 것은 다름아닌 솔미였다.

"? 무슨 일이지요, 사건이라도 터졌나요? .”

기자인 듯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놀이터는 조그만 산으로 이어져 있다 쥐똥나무 울타리를 넘어 잎이 빽빽이 들어찬 회양목 군락이 있는데 전정을 안 해서 그 속에 앉으면 하늘밖에 안 보인다. 거기서 남자애가 솔미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마침 손주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가 가지고 놀던 풍선이 날아가는 바람에 알게 되고 신고를 했단다. 그동안 사람들은 가끔 지나가다 놀이터 기둥에다 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좀 모자란 아이려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들 했는데, 하여간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이 날번했다.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다니.

그후 집으로 돌아온 솔미는 매일을 가던 놀이터에 가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빼꼼히 고개만내밀곤 우리집에도 안내려온다. 원주댁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너땜에 못 살겠어, 어디로 이사를 하든지 해야지 동네 창피해서 어디 살겠어.”원주댁은 집에서도 검은 안경을 늘 쓰고 있다, 가끔 하모니카 소리도 들린다. ? 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했다.

"아이고 전 눈이 시어서 이걸 안 쓰곤 눈을 잘 못떠요.” 솔미가 살짝 얘기한다.이거 말하면 혼나는데 일급 비밀인데 .

흉터가 좀있구. 아무도 안볼땐 안경 안쓰는데.”

금새 이사를 떠날 것 처럼 하더니 아직도 그냥산다. 솔미가 너무 측은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일을 모르는 척 하는것이 좋을것 같았다. 어린 가슴에 남은상처가 얼마나 아플까?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후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솔미는 내게도 도움이 됐다. 꼼짝을 못하던 나에게 숨통을 터 주었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솔미가 드나들고부터 자질 구례한 물건들이 자꾸 없어진다는 것이다. 언젠가 조용히 타일러주려고 기회를 보는 중이다.

원주댁은 귀찮은 아이하나 떠넘긴 것 처럼 좋와했구 가끔씩 받아오는 수고비에 관심이 더 많은것 같았다.

 

그동안 오랜 병고를 치른 사촌형이 돌아가셨다. 화장을 마치고 오다 버스를 내렸다. 해는 아직 중천에서 약간 기울어있다.

오랜만에 맞는 여유다. 공원엔 형형색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가을단풍이 발을 멈추게 하고 색바랜 잎들 가득한 벤치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스산한 바람이 불적마다 노오란 은행잎이 곱게 물든 감색 이파리들과 함께 나풀거리며 내 머리며 어깨위로 떨어진다. 먼저 떨어진 마른잎들이 등을 흔들어 잠을 깨우는 바람에 "바스락" 거리며 머리를 쳐들고 무어라 대들다가는 그대로 주저앉고는 이내 잠잠해진다. 삭장가지 처럼 빼빼 말라버린 노인이 보호자도 없이 낡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 한 채로 절뚝이며 지나간다.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다.

"우수수" 또 한 번 바람이 낙엽들을 쏟아낸다. 노인의 하얀 점퍼 위에도 낙엽은 나비처럼 날아 떨어진다. 노인은 힘에 겨운 듯 가다말고 빈 의자를 찾아 앉고는 주변을 살피더니 한동안 멀리 하늘을 응시한다. 그 모습이 어쩜 조금 안쓰럽게 느껴진다. 벌써 어떤 나목은 물든 이파리를 다 떨군 채로 쓸쓸히 빈 가지만 허공을 휘젓고 있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한낮햇볕에 시리던 무릎이 따뜻해진다. 점심이 끝나갈 시간이다. 나뭇닢 만 쌓여있던 빈 벤치가 젊은 연인들로 채워지고 연신 "까르르"웃으며 그칠 줄 모르는 말들을 밷아내는 그들의 표정은 더없이 밝고 쾌활하다. 나뭇닢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엔 구름이 높고, 저 멀리 고공으로 날아가는 한점 비행기는 아무 소리도 없이 하얀 두 줄만 연신 그리고 있다. 이따끔씩 줄지어 날아드는 철새 떼 행렬인듯 휘젓는 날갯짓은 더욱 바빠지고, 생기잃은 잠자리 한마리가 공중을 한참 돌다 맥없이 연못 속으로 곤두박질 한다. 물위에도 낙엽은 떨어진다. 바람결 따라 일렁이며 출렁거린다. 오래된 잎은 물가로 밀리며 벌써부터 검붉게 퇴색되어 가고 있다. 방금 떨어진 갈색 나뭇잎을 간신히 붙잡은 잠자리는 이제 마지막 꺼져가는 생명을 그래도 살겠노라 물젖은 날개를 흔들며 파닥거린다. 얼마 전 까지 빈 허공만 바라보며 쓸쓸해 뵈던 할아버지는, 보라색 재킷을 걸친 할머니와 다정하게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다. 씩 웃는 할아버지는 이가 없다. 하얀 이 가운데가 검게 비어있다. 깡총하게 추워 뵈던 발목엔 언제 신었는지 양말도 신겨져 있다. 까만색 이다. 그래도 보호받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랴. 할머니의 재킷위에 두른 스카프가 솔바람에 펄럭인다. 늦가을 나무 사이로 비치는 한낮의 햇볕은 아직은 따사하다. 무릎도 따뜻하고 가슴도 따뜻해진다,

, , . , , , .”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치 울음소리가 한가로운 작은 공원의 고요를 깨트린다. 짝을 이룬 까치는 온통 애절하게 화음을 맞추며 한동안 울어대더니 여운만 남기곤 저~ 하늘 멀리로 날아가 버린다. 오늘 아침에도 까치 소리에 잠을 깼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언제부터인가 반가움을 전갈하는 길조에서 해로운 새라고 이름 붙여져 천시 당하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행여 기다리는 이 오지 않더라도 난 오늘도 까치 소리에 희망을 건다. 그 기대는 이미 빗나가 하루해가 져물고 좋은일 하나없이 어제가 가고 또 내일이 덧없이 흘러 가더라도 난 까치가 울면 마음이 아프다.

무언가 아득하고 멀고 먼 길을 헤매이듯 눈을 감는다.

 

옛 우리 고향집 살구나무 울타리에도, 박꽃이 여물어 가는 외양간 초가지붕 위에도, 까치는 매일 아침 조금은 요란하게 또 처절하게 울어댔다, 그 소리엔 언제나 아스라한 옛날. 밤이 늦도록 자꾸만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곤 흐릿한 등불 아래서 삯바느질을 하던 울 엄마의 눈물 어린 사랑이 있고, 매일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눈썹이 하얗게 희어져서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가 있다.

흙먼지 뽀얀 길에 포근하게 눈이 내리면, 아침 일찍 읍내로 통학버스 지나간 자국을 따라 미끄러질세라 발가락을 꼽추 세우며 학교를 오갈 때, 동구 밖 키가 큰 이태리 포플러 위에서도 까치는 울었고. 과수원을 지나 노루목고개를 넘을 때에도 재구네 마당가 커다란 호두나무 위에서도 까치는 그렇게 서글피 울어댔다,

손끝이 문고리에 쩍쩍 달라붙는 추운 겨울날, 두꺼운 솜 이불을 잡아당겨 베개까지 뒤집어쓰고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늦은 잠을 잘 때면, 그 애절하던 소리는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우리 엄마 쌀 항아리 바닥 긁는 소리와, “드르륵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에 묻혀 까치소리는 더욱 멀리 쓸쓸한 울음으로 어렴풋 들려왔고, 이내 우리집 묵은장닭 퍼드득훼치는 소리에 날아올랐는지? 자꾸만 멀어져 가는 소리를 따라 귀 기울이던 나는 이미 어느새 잠은 다 달아나고, 이불을 뒤집어쓴 체 맑아지는 정신으로 두 눈을 똘방 거리며 숨을 죽인다,

돌먼지 목에 쌓여 쿨럭이는 아버지의 기침소리, 두어 번 라이터를 그어당기는 소리가 들리고, 줄에 걸린 옷가지와 진흙 발라진 천정에 매달린 콩메주 그림자와 피로한 아버지 그림자가 빛바랜 벽지 위에서 동. . . 북으로 출렁거린다. 그래도 멀리서 까치는 운다, 희미해져 가는 까치 소리에 어둠이 밀려가고 먼동이 튼다. 까치도 울고 나도 따라 운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씌운 담배연기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또 한번 "우수수" 마른 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곤 주위를 둘러본다. 연인들 정답던 벤치엔 한 무리 다른사람 들로 채워져 있고 그들의 손엔 방금 빼든 일회용 커피잔에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절룩이던 노인네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엔 어떤 여학생이 휠체어에 기대앉은 체로 방금 떨어진 은행닢을 주어들곤 먼 곳을 바라보는 눈망울이 슬퍼만 뵌다.

나무 사이로 비치며 따뜻했던 여린 햇볕도 그늘을 지으며 무릎이 조금씩 조금씩 시려온다. 하늘엔 하얗게 줄을 긋던 비행기도 없고 바삐 날개짖 하던 철새 무리들도 이젠 모두 다 없다. 빈 하늘이다. 구름이 조금씩 많아지고 오후로 기우는 햇살은 따스함을 점점 더 잃어만 간다.

"상암동 억새축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고지를 오르니 그래도 장관이다. 온통 억세 밭이다. 억새풀보다 사람이 더 많다. 모두가 쌍쌍이고 일행들이다. 부드러운 하얀 솜을 뒤집어쓴 채로 무한으로 넓은 풀밭은 가을 하늘에 손을 흔들며 일렁거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파란 잎사귀 모두 다 어디 가고 생기를 잃고 말라가는 몸을 서로 부벼대며 억새는 소리 내어 운다.

"아삭. 아사삭" 거리며 나는 소리는 옛날 아버지를 따라 벼를 베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 논 가운데 볏단을 베개 삼아 누웠을 때도 이 소리가 났다. 서늘한 바람에 잘 익어 고개 숙인 벼 포기가 서로 부딛기며 나는 소리다. 다른 집들은 반듯하고 커다란 논에 콤바인을 들이대고 첨단 기계로 수확을 하지만 고개 넘어 천수답을 조금 부치는 아버지와 내게는 꿈같은 얘기였다. 새끼손가락만큼 굵어진 누런 메뚜기가 둔한 몸으로 벼포기 사이를 건너뛰며 몸을 숨길 때도 "아삭, 아사삭" 소리가 났다. 솜털이 맑은 하늘 멀리 날아오른다. 군데군데 메마른 나뭇잎이 흩날리고 새들도 덩달아 날아오른다. 무슨 새 인지는 모른다. 내 마음도 바람에

거대한 억새풀밭은 바람의 물결을 타고 일렁거린다. 씨앗을 감싼 하얀흔들리며 날아오른다. 억새풀 솜털에 실려서 한강을 건너고 빌딩 숲을 넘어 고향으로 달려간다. 일렁이는 황금 풀밭 너머로 또 하루가 져물고. 서녘 하늘엔 붉은 노을이 물들어 온다.

목 굽은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씩 점등한다. 이미 하늘공원 아래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이어선 차량들의 라이트 불빛은 노면을 따라 아래위로 춤을 추며 장엄한 군무를 시작한다. 네온이 번쩍이고 휘황하게 명멸하는 불야성 속으로 젊은 연인들이 활기차게 활보하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낸다. 배가 고프다. 집으로 간다해도 혼자 먹는 밥이 무슨 맛이 있으랴. 편의점에서 빵 한 조각으로 대충 한 끼를 때우고 지하철을 탄다. 전차가 간다. 가다간 서고 내린 만큼 또 타고 덜커덩 거리면서 때론 경적도 울리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선로를 따라. 전동차는 어둠속을 신나게 달린다.

피로에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없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아득히 그러나 아주 천천히 가까워지는 애절한 하모니카 소리에 어렴풋이 눈을 뜬다. 검은 안경을 눌러쓴 맹인 부부가 깨진 플라스틱 바구니를 부인 손에 들린 체 허리춤을 잡고 뒤를 따른다. 바구니엔 하얀색 동전 몇 닢이 투박한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주머니 속에 따뜻하게 덥혀진 동전 한 닢을 던진다.

여자는 부르튼 입술을 연신 놀려대며 "! 수잔나, 즐거운 나의 집"등 가곡을 능숙하게 연주해 낸다. 그 소리가 처량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고 그립고 슬프기도 하다. 어디선가 본 듯 한 얼굴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도 몇 번인가 걸인이 지나쳐 갈 때. 둘러맨 녹음테이프에 도취되어 그 사람이 내릴 때까지. 천천히 따라가며 그 한 많고 눈물 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 어쩌면 심금을 울리고 맑고 고운 소리에 괜히 눈시울이 젖기도 했다.

덕분에 그날 보기 좋게 지각을 하면서까지!

"아차. 이런, 동묘역이다.” 갈아탈곳을 두, 서너 정거장은 지나왔나 보다. 층계를 올라 집으로 되돌아온다. 무릎관절이 뻐근하게 아파진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온몸을 떨면서 약봉지를 손에 쥐고 계시고 솔미는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집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난다. 솔미가 치마폭에 무엇인가 숨기려다 얼른 꺼내들고 어쩔줄 몰라한다.

"아저씨 이것 저쪽에다 옮겨 놓을라구요..." 씽크대 위에 두고 잔돈을 넣던 돼지저금통이다. 아마 무게가 만만하지 않아 떨어트린 모양이다.

"~으음 그래. 마침 언젠가 널 주려 했는데. 잘됐다. 너 가지고가서 사고싶은거 사구 해라. “

솔미는 혼날줄 알았는데 의외의 내가하는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소매끝으로 눈물을 씩씩 닦으며 계면쩍게 웃는다.

"그래 널 이렇게 만든 환경이 문제지. 이 모두 우리들 책임이려니..." 갑자기 솔미가 측은해 지고 불쌍해 진다. 안됐다. 그런데 갑자기 솔미를 바라보다 생각나는것이 있었다. ..! 조금 전 지하철 맹인 부부는 혹시 원주댁?. 맞다. 원주댁 이었다ᆞ. 검은 안경하고 자색 바지가 어쩐지 눈에 익더라니, 그러고 보니 지하철에서 그 여자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듯 했었다. 그럼 그 남자 맹인은 누구지? 그도 설마 가짜일까? . 갑자기 머리가 혼동스러워 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일이 있고난 후론 집안에 물건이 없어지는 일따위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앞에 비었던 침대가 채워졌다. 엉거주춤 앉아있는 주위로 모두가 가족인 듯 빙 둘러서서 얘기들 한다. 얼마 전까지 혼자 팔짱을 낀채로 쓸쓸히 어두워지는 창밖을 하염엾이 바라보더니 그래도 가족이 있다는 것은 행복해 보인다. 탁자에 올려진 포트에서는 하얀 김을 내며 소리 내어 신 나게 물이 끓는다.

과일바구니가 풀어지고 드링크병 마개가 터진다. 부인인 듯한 여자가 사과껍질을 열심히 깎던손을 멈추고 활짝 웃으며 내게도 먹을것을 건넨다.

손녀인듯 갈래머리를 한 여자애의 똘방 똘방한 눈망울이 예쁘다.

드르르륵문자가 왔다, 시험 합격을 축하 한다고.

요란하게 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덜컹 열리고 저녁식을 실은 식당 카가 들어온다. “, 금식 이군요" 하얀 위생모를 쓴 아주머니가 식판을 내려놓으려다 주춤거리며 맞은편 환자에게 향한다. 급히 돌아서는 바람에 그릇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무언가 뚜껑 속에 담긴 국물이 찔끔 쏟아진다. 잽싸게 냅킨으로 닦아내곤 "아이고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조금 쏟아 졌네요라는 말을 남기곤 치렁치렁한 가운을 추켜 올리며 유난히 커보이는 연분홍색 장화를 터덜터덜 끌며 황급히 빠져나간다. 병실문이 쾅 하고 닫힌다. 또다시 벽에 걸린 달력이 바람에 펄럭거린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다. 빌딩 숲 사이로 비치던 해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검은 하늘엔 가만히 떠있는 구름들 사이로 하나. 둘씩 별들이 피어난다. 한강변 줄지어 늘어선 가로등이 점등되고 강북으로 향하는 다리 난간 위에도 등불이 켜진다. 사람들을 가득 싣고 길게 이어선 전차가 지나간다. 강 건너 장난감 같은 아파트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불빛이 점점 늘어난다. 잔잔한 강물은 검게 반짝이며 말없이 흐른다. 딱딱하던 콘크리트 회색빛 도시는 이제 휘황한 불빛 아래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 세상 온갖 모두를 어둠속에 묻고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다.

낮 동안 희미한 채로 빛을 못 보던 형광등이 이제야 제 세상을 만난 듯 작은 실내를 환하게 비치고 있다.

한동안 미동도 않던 아버지의 양미간에 주름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눈이 부신 것은 아닐까?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려고 하는데 또박또박 발자욱 소리가 가까워 지더니 문이 열리고 한손으론 의료용 카트를 끌면서 들어온 간호사가 눈거풀을 뒤집어 보더니 혈액을 무려 다섯 통이나 체취한다. 주사바늘이 혈관을 찾아 "" 찌를때 힘없이 말아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양미간의 주름이 가늘게 움직이는 듯 하다. 말은 못해도 아픔은 느끼나 보다. 혈액을 가지고 그냥 나가려다 말고 아직은 꽤나 많이 남겨진 링거액을 한동안 바라 본다. 두 번 다시 오기가 귀찮다는 듯 새것으로 교체하고 링거줄을 바꾸곤 카트바퀴 구르는 소리와 함께 발자욱은 멀어져 간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생명인데 피는 왜 뺀담."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고 벽에 붙은 보조등을 켠다. 아버지 표정이 없다. 그전 같으면 눈을 껌벅일 차례다. 둥근 것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벽시계가 7시를 조금 넘고 있다. 원래는 여동생과 교대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버지의 종말이 빨리 오리란 생각은 못 했다. 마음에 준비는 했지만 아직도 못다 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언젠가 우연히 보게된 아버지 비망록이 떠오른다.

인생은 이슬이요. 여린 풀잎 끝에 매달려 한동안 영롱한 자태로 반짝거리다가 한줄기 바람에도 굴러 떨어지고, 작열하는 태양볕 아래선 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한낱 초로일 뿐이다.” 그래 인생이란 풀닢 끝에 맺힌 이슬방울이다. 모두가 너무 허무하다. 고많큼 살고 그렇게 가고 말 것을....! 조금만 더 사시면 새 생명도 태어나고 걱정만 드리던 이 아들 합격 소식이라도 듣고 가실 텐데, 가래가 끓고 무호흡 상태가 빈번해진다. 문이 열리고 여동생이 들어온다. 이미 싸늘히 식어가는 손을 잡고 "아버지?.." 하고 불러본다. 눈물이 잡은 손 위로 뚝뚝뚝 떨어져 옷소매를 적신다. 아무런 대답도 없다. 감았던 눈을 조금 깜박이는 것 같다, 멎었던 호흡을 한꺼번에 토해내며 스르르 눈동자가 풀어진다. 잡았던 손이 철 침대 바닥에 ""하고 떨어진다. "! 아버지!"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삼촌과 고모가 오고 혜란이가 왔지만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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