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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0 20:18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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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이 무섭다.

 

이 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어떤 책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아니 사실 그렇게 알고, 배워왔습니다. 꽤나 지루하게 흘러가는 오후입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 흘러가는 시간을 세며 기억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어저께 저는 집에 남아있는 여러 가지 밥을 섞어 비빈 것으로 한 끼를 때웠습니다. 부모님은 없으십니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제 마음속으로 지워버렸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녹록치 않은 힘든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저는 제 마음속에서 가장먼저 부모님을 비웠습니다. 적의는 없었습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아니 우연히 라는 무책임하면서도 가벼운 말처럼 쉽게 사라져버린 의미였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어쩌면 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현관을 열면 담배냄새가 느껴집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가끔 그 연기 속에 사라져 제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외소한 등이나 점점 말라가는 얼굴의 표정 보다, 점점 느껴지는 약함이 느껴지는 그의 마음보다, 저에게 ‘아버지’라는 의미는 ‘담배연기’로 승화해버렸습니다. 제가 남긴 발자취가 이 집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 저는 우울의 상태에 빠져드는 것 보다, 반항심과 분노로 몸을 떨며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보다 단순히 잊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그 행위는 옳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10년쯤 전에, 저는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정확히는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의 마음이 무서웠습니다. 남을 ‘망각’해 버리는 그 ‘무자비한 폭행’ 속에서 저는 방향을 잃었습니다. 단지 무시해버리는 것, 사람의 마음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누군가의 사랑이나 이타심 같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진다는 것이 저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반에서 토끼를 키웠습니다. 길을 잃었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키웠다가 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희 반은 그 토끼를 꽤나 애지중지 했습니다. 뒤쪽의 텃밭에 토끼를 기르고, 선생님과 모든 학생들이 그 토끼가 오래오래 살기를 희망했습니다. 각 학생마다 상추를 싸오기도 하고 풀들을 뜯어 그 토끼를 먹이면서 서로들 좋아라 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 토끼를 서서히 잊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오늘 자신이 가져와야할 상추에 대해서 잊었을 때, 그 망각은 전염병처럼 모두에게 번져갔습니다. 어느새 모두의 마음에는 토끼보단 딱지가, 팽이가, 그날 본 TV의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빈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망각은 어느새 저의 마음에 자리해 저 또한 그 흐름에 빠져들었습니다.

 

공동체의 의지란 참 무서운 것입니다. 단순히 다수가 개인을 핍박해 버리는 그 힘뿐만이 아닌 자기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면서 어느새 생존을 위해, 혹은 목적을 위해 그 의지와 동화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본심까지 잊어버립니다. 흐름을 거역하기에는 자신의 존재가 너무 초라하고, 약하면서도 부족하고, 그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힘든 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들은 모두 현재 자리하고 있는 집단의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합니다. 뭐 어쨌든 거창하게 말을 했지만 저는 친구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단순하게’ 잊어버렸습니다.

 

모두가 토끼를 잊어버린 후로 이주쯤 지나서 한 아이가 반에 들어와서 외쳤습니다. 토끼가 죽었다고요. 저희들은 놀라서 뛰어갔습니다. 작은 철장 안에 토끼는 싸늘하게 죽어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을 나이지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채로 토끼는 아사했던 것입니다. 여자아이들은 울고 남자아이들은 징그럽다면서 툭툭 찌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철장 안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보았습니다. 그것에는 갉아놓은 흔적이 잔뜩 있었습니다. 아마도 배고픔에 지친 토끼가 그 나뭇가지라도 긁어 먹다가 죽은 것이었겠지요.

 

상황은 그 후로 끝났습니다. 잠시 후 출근하신 선생님이 오시고 죽은 토끼를 보더니 학교의 경비아저씨를 불러 치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 났습니다. 토끼는 죽었고, 우리는 잊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죽은 토끼를 보고는 경비아저씨를 부르던 선생님의 그 무심한 눈을. 지금은 토끼를 키웠던 마음도 그 토끼가 있었던 장소도, 토끼의 생김새조차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무심한 눈은 제 마음속에서 박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죽은 토끼’는 ‘산 토끼’보다 빨리 모두의 마음에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그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빨랐습니다. 거의 백배의 속도로 기억합니다. 슬픔이나 허전함도 낡은 철장이 버려짐에 따라 쉽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그 토끼에게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제가 처음으로 느낀 ‘죄책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모두가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에는 사실 토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토끼를 보고 느낀 마음도, 사랑이나 행복함도 사실 없었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쉽게 사라진 토끼에 대한 ‘의무감’만큼 우리에게 토끼는 여름 아침의 안개만큼이나 허무하고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안 순간, 저는 철장 안에 갇힌 토끼가 저로 변한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그 철장 안에서 저를 사랑해준 모든 이가 점점 발길이 뜸해지고 사라져 가는 과정을 느끼며 떨었습니다. 극심한 허기에 시달리는 것보다, 갈증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들에게 느낀 배신감과도 같은 절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해서 반복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토끼는, 아니 저는 ‘사라진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그 꿈에 대해 저는 부모님께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 아, 그래. 그러면 안돼요.”나 “그것참 큰일이었겠구나.” 수준의, 어린 시절의 제가 들어도 느낄 수 있는 매우 건성거리는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답답해서 그 무시무시함에 대해 설명하려 했으나 곧 포기했습니다. 죽은 토끼를 치우라고 지시하던 선생님의 눈을 부모님의 두 눈에서 봐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토끼는 모두의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토끼를 물어본다면 “아아, 그 토끼. 나 기억난다.” 수준으로 격하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토끼를 키웠고, 짧은 순간동안 이더라도 ‘그 토끼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이라며 바랬습니다. 잊어버린 토끼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냥 단순히 누군가의 마음 안에 남겨진 흔적처럼 변해 버린 것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끼리 대화하면서, 저는 그 토끼의 죽음을 우리의 ‘추억’으로 포장한걸 알 수 있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그 토끼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미안함은 마치 길을 가다가 어깨를 스친 상대에게 ‘아, 죄송합니다.’ 수준의, 듣기 싫은 만큼 너무나도 허무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진 죄책감을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말입니다.

 

사실 저는 물어보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추억일까?’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럴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단지 마음속으로 삭힐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절대로 나는 ‘철장 안의 토끼’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이 말입니다.

 

말수가 많아지고 저는 활기가 넘치는 듯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했습니다. 마치 그것이 제가 가진 전부인 것 마냥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실패하는 모습을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자주 보이도록 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너는 어쩔 수 없는 녀석.’ 선생님들에게는 ‘개구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학생’으로 보이도록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식으로, 그렇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위권의 성적수준을 유지하려 했으며 자랑스러운 아들로 남고자 바랬습니다. 그렇게 공동체의 중간에 서서 잊혀지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느새 고3이라는 특별하면서도 힘든 시간을 지낼 때 저는 그 시절의 ‘유행’인 ‘꿈’ 혹은 ‘장래희망 찾기’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저마다 적당히 쓸 때, 저는 왠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지금의 성적이나 학업이라는 것을 다 치우고도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저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선생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가진 꿈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이상하게 느껴지냐고 말입니다.

 

선생님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뭐니?”

 

“저도 좀 방향을 못 잡아서 온 거에요 선생님.”

 

“너는 친구들이랑 관계도 좋고, 성적도 꽤나 괜찮은데 딱히 문제될 것은 없지 않냐. 그냥 이대로 열심히 해서 대학 들어가고 나서 결정해라.”

“선생님, 그래도 학과를 결정하고 가는 것은 그래도 조금 고려해 봐야하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눈살을 찌푸리시더니

 

“학과는 사실 다 거기서 거기야. 대학 들어가서 학과를 바꿀 수 있는 방법도 많고 좋은 기업에 취직 하는 데는 역시 학교이름을 무시 못해. 그리고 꿈을 찾는 것은 네가 스스로 직접 결정할 일이지, 나보고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니.”

 

“사실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몰라서 말입니다. 그래도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파일에 정리되어 있는 자료를 하나 둘씩 꺼내서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총 성적, 수상경력, 대학교 정보지나 입시지원 설명서 묶음 따위였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 록 저는 답답해졌습니다. 저의 물음과 선생님과의 상담은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 저는 선생님께 다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몰라서 온 거지, 제 성적과 대학교 정보나 얻으려고 온 게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런 제 말에 대해서 아주 무심한 눈으로.

 

“그 말은 수능 치고 나서나 말하자. 공부나 열심히 해.”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직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낸들 아냐’라는 듯한 말투. 제가 하는 물음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면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단순히 귀찮아해 상담이라고도 할 수 없었던 그 상황. 아니, 그것 말고도 단지 제 물음에 대해 일말의 공감이나 생각도 없이 평균적이면서 도 지극히 ‘일반적’인 대답들. 그리고 보이는 내신과 성적, 대학교의 커트라인들. 그리고 그 눈. 그 시절 토끼를 치우던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듣던 부모님이, 토끼에 대해 말하던 친구들이 보이고 있던 그 눈이 저에게 향한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미 철장 안에 갇힌 토끼임을 말입니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저는 꿈보다는 목표를, 목표보다는 현실을 알게 된 순간 저의 한계를 결정지으며 판단하는 외부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건 마치 정해져 있는 듯, 보이는 모습 내에서, 혹은 결과만을 가지고 선을 긋는 행위가 당연시 되는 삶들을, 그것을 사회라거나 세상이라며 평균율이라고 칭하고 그 외의 것들은 ‘무시’하거나 ‘망각’하는 그 모습들을 말입니다. 저는 어느새 마주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눈’과 ‘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 댔던 것이 사실은 원래부터 존재한 ‘타인의 나를 보는 시선이었음’을. 그 삭막함이라고 할 수 없는 공허함을. 쉽게 맘에든 만큼 쉽게 잊어서 내쳐짐을 당했던 토끼와 타인에게 나를 심어주기위해 재롱을 피웠던 나는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의 의미를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아갔습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침묵 사이에서 생겨나는 그 지독한 무관심들. 제 곁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았던 이들에 대한 의문점들은 점점 커져나가 어느새 저를 집어 삼키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잊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저는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버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그 점에 대해서 깊은 배신감이나 증오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끝나지 않는 절망감. 혹은 공허함이 저를 물어뜯는 것만큼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저는 저를 마주보는 사람의 눈에서 그 알 수 없는 기괴한 평행선을 보았습니다. 앞에 서있는 사람을 더 이상 마주보지 않는 그 허무한 눈길들. 이 자리에 서있지만 그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인지 모르는, 허공에 못 박혀 흔들거리는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점점 저는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피가 벗겨나가듯 그 세상을 이루는 아름다운 껍질이 떨어지자 보이는 것은 추악한 몰골이나 지독한 악의 따위가 아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겼던 둘에게서 느껴지는 막연함 기시감.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암흑을 저는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는 ‘망각’이라는 죽음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상담이 있고나서 몇 달 후 저는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거대한 공간속에 홀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끝없는 어둠의 하늘과 어둠의 바다위에 떠있는 아주 작은 돌무더기였습니다. 파도는커녕 물의 파랑도 없이 고요하게 존재하는, 그 수평선의 존재만 감각적으로만 느껴지는 기괴한 바다 위의 작은 암초에서 저는 단지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 어둠에서 아주 미약하고 새하얀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토끼였습니다. 작은 토끼들이 한 마리, 그리고 또 한 마리 그렇게 아주 천천히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곧 그 토끼들은 저 암흑의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그 바다는 토끼를 집어삼키면서 그 어떤 미동도 없었습니다. 저는 멍청하게 앉아 수많은 새하얀 토끼들을 집어삼키는 바다를 보았습니다. 지독한 악몽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사실 저의 행동이나 모습의 변화는 확연하게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의 상처는 벌려진 채 아물지도 않고 저를 중심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피상적인 대답과 적당한 집단안의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사람과 사람간의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 이어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나 깊은 사이 같은 것들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점점 잊어갔습니다. 그냥 단지 남들에게서 저라는 의미는 계기만 있다면 쉽게 사라져버릴 존재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저는 타인과의 절실한 공유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저는 점점 더 제 얼굴에 두꺼운 가면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와 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 모두와 같은 취미를 갖고, 모두와 같은 모습의 유행을 타면서도 그 안의 망각 속에 저를 묻혀 가는 걸 당연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끝없는 어둠속에 몸을 맡기면서 저 또한 타인을 잊는 것에 대해 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남기는 행위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그 모든 일련의 제 과거들을 무시했습니다. 아니 혐오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서로 새롭게 남기는 동시에 잊어가는 수많은 새하얀 토끼들을 추모했습니다.

 

홀로 자취를 하면서 제 안의 토끼들은 점점 낡은 철장 안에서 죽어갔습니다. 먼저 타인과 의사소통 속에서 오래전 초등학생 시절의 토끼에 대한 마음을 잊어갔고, 먼 거리에서 일 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든, 사실 그 동안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감에 괴로워했던 제 부모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저는 점점 잊었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도의적인 책임감과 어느새 제 일부분이 되어버린 ‘만들어진 사회성’. 그리고 속이 비어버린 인간관계들이 전부였습니다.

 

그 마음은 꽤나 편했습니다. 그냥 단지 남들처럼 적당하게 만나고, 적당하게 보내며, 적당한 시간이나 계기가 생긴다면 그 사람을 마음 안에서 지워버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에 대해 편리함은 있었어도 편안함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 불안정한 신뢰 쌓기 속에서 저는 감히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사건하나를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랑을 했습니다. 학과를 끝나고 졸업을 준비하는 상황 속에서 한 아이가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대학교 졸업반이자 취업전선에 막 뛰어들기 전, 군인을 준비하는 동시에 느낀 불현 듯 찾아온 사랑은 저 또한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하얀 얼굴과 척 봐도 신입생처럼 보이는 어린 후배... 저는 왠지 그 아이를 보며 도와주고 싶어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남은 일년여 동안 그렇게 사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선배와 후배의 사이에서 점점 친한 선배로, 오빠로, 그리고 연인으로 그렇게 바뀌어 갔습니다. 저는 그 동안 제가 강박증처럼 시달린 망각을 잊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망각에 대한 두려움은 신기하게도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편안함과 행복함이 지속될 수 록 저는 불현들 찾아올 이 행복함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떼어내지 못한 어둠은 저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와 만나면서도 불현 듯 느끼던 이상한 외로움. 공유와 단절을 넘어서 그 공황적인 불안감과 하루에도 수십번씩 느끼던 괴로움은 마치 예전의 그 시절, 제가 고등학교 시절의 큰 충격을 받을 때와도 같았습니다. 아니, 더욱 아팠습니다. 그 순간에 있어서의 제 삶은 그녀가 없었던 삶을 기억할 수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쩌지도 못한 채 종점을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하염없이 달려갈 뿐이었습니다.

 

그 끝은 꽤나 충격적이고 파멸적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한지 일 년이 다되어서 있던 일입니다. 저는 졸업식이 끝나고 송년회 겸 졸업생들의 모임을 만난 후에 술에 취해 가던 중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들고 흥얼거리면서 그녀의 원룸에 갔습니다. 그녀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녀가 저에게 준 스페어키로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옷을 벗은 남녀가 헐떡이며 뒹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제가 그전에도 몇 번 본 제 동기, 그리고 그 밑에 깔려있는 여자는....

 

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낡은 철장 안에서 다 죽어가는 채 남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토끼를 끌어내어 때리고, 밟고, 짖이겼습니다. 저는 제 안에 숨겨져 있던, 그 공황과 불안이 한순간에 포악함과 분노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곳의 토끼를 장작삼아 불태워 살의를 지폈습니다. 그 순간 저를 멈춘 것은 그녀의 오열이었습니다. 내 옆에서 울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비는 그녀를 보며 저는 맥이 빠져 주저앉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기는 피투성이가 된 채 기절해 있었고 저는 피가 묻은 소주병과 그를 찌르기 직전에 멈춘 싸늘한 식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힘이 빠진 채로, 누군가가 경찰과 119를 부르고 칼을 뺐으며 소리칠 때 까지 가만히, 그렇게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이 났습니다. 그 동기는 병원에 실려가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고 그녀와 저는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고소나 신고는 없었습니다. 동기나 그녀 또한 떳떳하지 못한 짓을 저질러 그러한 결과가 나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그 어떤 보상이나 합의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단지 가만히 앉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지워내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몇 주후 그녀는 울면서 저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동안 함께하면서 자기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는 그러한 생활이 바로 끝이 날 거라는 사실에 대해 두려웠다. 언제부턴가 오빠와 자신이 보내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보지만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그 눈길이 자꾸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신은 그 신경 쓰이는 눈길이 연애하던 동안에 자신에 대해 정말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심을 품었고 결국 그것이 불안함으로 변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수 록 오빠의 모습이 가식적이고 서로의 관계가 단절적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오빠의 마음과 사랑에 대해서 의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빠에게 자신이 영원히 함께할, 어느 순간이나 나마 사랑했던 추억이라도 주기위해, 그리고 오빠를 더욱 이해하고 싶어 그나마 최근에 오빠랑 친해 보이는 선배와 상담을 시작한 거다. 그러다가 졸업식 날 그 선배와 상담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가지던 중에 유혹을 당했고 그동안에 느꼈던 불안감과 힘들었던 것이 맞물려 자신도 모르게 그 상황까지 온 것이다.’

 

다소 두서없는 말과 함께 다시 같이 지낼 수는 없겠지만 서도 그녀는 저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 들어찬 그녀에 대한 마음을 지워내면서 저는 계속해서 아픔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동안에 제가 타인에게서 느꼈던 간접적인 망각이 아닌 제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필사적인 ‘죽임’을 통해 그녀의 흔적을 지워내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참을 수 없는 허무함과 공허감만을 불러일으키며 제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 안타깝게도 그녀의 해명은 저에게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주기는 했어도 ‘용서’의 부분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놀랄 정도로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누구세요?”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 우물거리며 연거푸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녀를 잊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저는 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또 그전과도 같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을 가지고, 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한 행동을 계속해갔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행동도, 그녀의 모습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것들도 저는 어두컴컴한 망각의 골짜기에 던져놓고 저는 저의 길을 오로지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이름과 얼굴마저도 제 기억 속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무렵에야 비로소 저는 저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긋지긋하게 떨어질 생각이 없는 허무함과 공허감. 이런 것들이 다시 한번더 저를 돌이키게 했습니다. 그 모습은 어디에서나 제 옆자리에 앉아 침묵하며 저를 구성했습니다.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동시에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간 또한 늘었습니다. 바삐 흘러가는 시간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그 생활에서 얻어진 무언가를 박탈당했습니다. 저는 그런 제 마음에 대하여 술로 답했습니다.

 

평상시보다는 취했을 때 더욱 살아있는 듯 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사람이 무서워졌습니다. 또한 누군가와 만나기 힘들어졌습니다. 기억이 끊길 정도로 마시고 제 감정이든, 방금 먹었던 안주든, 술이든 아무거나 깊은 구덩이 같은 제 몸속에서 토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입을 벌렸지만 비어버린 한숨과 쓰라림만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마시고 어느 날 저는 술 냄새를 풍기면서 걸어가다 동물병원 가판대에 자고 있는 작은 토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제 안에 텅 비어 자리하지 않던, 낡은 철장 같은 제 마음 안에 존재했던 토끼가 그곳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몇 시간이고 그 토끼를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보았습니다.

 

또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그녀를 닮은 한 여성이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저는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단지 비슷하게 생긴 여성만을 보고는 다시 한번더 그 고통이 엄습해 왔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제 과거의 사람들을, 아니 토끼들을, 아니 제 마음속에 비춰지고 제가 혐오했던 그 모든 일들을 가끔씩 거리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거짓된 삶과 그 고통이 점점 고조되는 듯 이제 일상의 풍경마저도 괴이하게 뒤틀린 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찾지도 못하던 중에 저는 우연히 그녀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교를 자퇴하고 몇 년을 우울증에 걸려 괴로워하다가 끝내 자살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들었지만 오히려 제 마음은 아주 깊게 가라앉아 그 어떤 슬픔이나 후회도 없이 단지, 그렇게 가만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네, 가만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가 어느 날 저는 거울을 보았습니다. 그날도 술을 마시고 어질 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세면대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를 닦으려 거울을 보니 언젠가 제가 느꼈던 시선이 저의 형상을 한 채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토끼를 치우던 선생님의 눈, 부모님이 나에게 보내던 눈, 고등학교 시절 느꼈던 눈, 수많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내가 보내고 받았던 그 눈, 그리고... 그녀가 보았던 그 눈. 그 눈이 어느새 완벽하게 제가 되었습니다. 아아. 이미 저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토끼를 봐도, 사람을 만나도, 술을 마셔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아니 무서웠던 적이 있었지요.

그래요. 저는 이제 무섭지 않다는 사실이 무섭습니다.

그렇게 저는 토끼를 잊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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