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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블루투스 이어폰









수능이 돌아왔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삼수. 사수까지는 정말로 가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거짓말 하나도 보탬 없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며 공부했다. 그리고 드디어 원하던 대학, 원하던 학과에 붙었다. 뛸 듯이 기뻤다. 그것도 땅을 뛰는 게 아닌, 마치 하늘을 뛰며 날아가는 거 같았다.
 결과가 나온 그 날, 부모님부터 시작해 사돈에서 팔촌, 심지어 촌수도 모르는 남과 다름없는 올해 고삼인 학생이 내게 비법을 물으려 전화를 했다. 부모님은 근사한 저녁을 차려주셨다. 내 결코 짧지 않은 인생에서도 처음 보는 음식들이 즐비했다. 그렇게 떠받들어지니, 한번에 수시로 붙은 친구들이 주위에 수두룩했으면서도 괜한 자신감이 붙었다.


 다음 날, 고삼이 되자마자 연락을 끊었던 친구 녀석에게서 초대장이 날라왔다. 은빛 펄이 뿌려진 고급스러운 초대장 안에는 내일 열린다는 동창회의 장소가 적혀있었다. 보아하니 우체국에서 무언가 처리를 잘못해 이제야 날아온 듯싶었다. 편지지 아래쪽 가장자리에 적힌 일주일 전의 날짜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 날 나는 큰 맘 먹고 옛날부터 눈독 들여놓았던 명품 양복을 구매했다. 내 돈이 아닌 완전한 부모님의 돈이었지만, 부모님은 아무 한탄도 불평불만도 없이 로고만 새겨져 있음에 더욱 고급스러운 쇼핑백의 끈을 내게 쥐여주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음에도 당신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띄워져 있었다.


 그다음 날 나는 어느샌가 방에 놓여 있던 영롱한 색을 띄는 병에 담긴 향수를 뿌리고, 어제 산 빳빳한 양복을 입고, 향수와 함께 놓여있던 비싸디비싼 시계를 차고 편지지에 적힌 장소로 향했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중학교 3학년 때의 친구들이지만 나는 그들 앞에 택시를 타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깨끗이 닦여있는 구두를 직접 땅에 닿게 하여 부지런히 걸었다. 마침 저번에 한 번 가본 것 같은 가까운 곳이었기에,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서둘러 자신의 돈으로 무장하고, 지식과 스펙으로 무장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조금 허름해 보이는 뷔페 집에 들어가자, 잊고 살았던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보였다. 내게 초대장을 보낸 J부터 시작해서 딱 한 달 동안 짝사랑했던 A, 자주 장난치며 놀았던 S, 한 번 거하게 싸운 뒤로 말도 안 했던 T, 아예 기억도 안 나는 것들까지 해서 온통 왁자지껄했다.
" 여어-! B! 오랜만이야! "
 곧바로 편지지를 보낸 J가 내게 달려왔다. 왜 그동안 못 봤느냐느니, 그새 많이 철 든 것 같다느니, 실없는 소리를 계속하던 J에게 웃음을 지어준 나는 곧바로 S의 옆에 앉았다.  J가 까칠하긴, 이라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잠시 후 편지지를 보냈던 반장 J가 형식적인 개회사를 마치고, 술판이 벌어졌다. 테이블마다 대여섯 개씩 놓여있던 술병이 점점 사라졌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 B. 꼴을 보아하니 좀 성공한 것 같다? 어디 대학 다니냐? 무슨 학과?
 소주 몇 병을 들이키더니 완전히 취한 것 같은 T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그와 엄청나게 싸운 이후로 말을 안 했다는 걸 이제는 잊은 듯싶었지만, 나 또한 이제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내 시계와 양복의 브랜드를 보고 물어온 그가 고마웠다.
 가볍게 K대 경영학과, 라며 별생각 없는 듯 내뱉었다. T가 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일부러 시계를 강조하기 위해 양복의 소매를 살짝 걷고 술잔을 잡아 내용물을 들이켰다. 점점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이 짜릿했다.
" 우와. 대단하네, B. 거기 진짜 경쟁률 높지 않아? "
 정확히 내가 한 달 동안만 짝사랑했던 A가 부러움이 묻은 목소리로 나를 흘겨보았다. 열렬히 사랑했던, 부산에서 전학 왔었던 그녀를 포기했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딱 보아도 술집 여자 같은 차림과 행실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 그래? 그래도 출세했네, B. 아아, 그 뭐냐. 이어폰 부적 덕분인가? "
  A가 약간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J와 S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옆에 있던 아이들이 왜 웃느냐, 라는 듯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으나, 그들은 그 눈빛조차 읽지 못할 만큼 배를 부여잡고 웃어댔다. 나는 모르는 그 이야기에 괜히 기분이 나빴으나, 애써 마음을 다잡고 J의 어깨를 툭툭 쳤다.
  J는 겨우 웃음을 멈추었으나, 아직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 것처럼 배를 부여잡았다.
" B. 너 기억 안나냐? 그, 최신 이어폰 사건. "
 아아... 뭐야. 그거? 이제 기억났어. 그래.. 지금도 가지고 있는 걸, 그 이어폰.
" 뭐? 그걸 아직도? 우와.. 진짜 그거 효과 있나 보다. "
  옆에 있던 S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양복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플라스틱이 손에 잡혔다. 저번 수능 때에도 가져갔던 이어폰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사건이 있었지. 조용히 웃음 지으며 회상했다.


 '최신 이어폰 사건'.

 중학교 3학년 때의 내가 저질렀던 화려한 전적 중 하나로, 그 이후로도 가끔 수업시간에 떠올릴 때마다 폭소를 멈출 수 없어 혼쭐이 났었던 사건이었다.

그 당시, 중학교 3학년 때의 우리 반은 4반이었다. 조금 유치하지만 다른 반에는 '불로불 4반' 이라고 불렸던 만큼 우리 반에는 각종 특기자부터 비롯해 수많은 인재가 모여있었다.
 4살 때부터 악기를 배운 음악 천재들부터 시작해서 영재고와 과학고에서 다투어 입학을 권유하는 영재, 축구로는 이미 유명 국가대표와 대등하게 겨룬다는 J, 여러 특이한 기네스북을 세우며 꽤 이름을 날린 사차원 T, 그리고 굴지의 국내 최고 대기업에서 개최한 아이디어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고, 그 아이디어를 직접 추진해 커다란 성공을 한 나까지.
 그렇게 각 분야의 천재들이 모여있는 반이었으니 당연히 학교의 모든 행사에서 1등 석권은 물론 선생님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완벽에 가까운 반이었지만, 우리 반에도 결점은 있었다.
 바로 C.
 그는 아무것도 잘하지 못했다. 운동도, 공부도, 그 외 모든 분야에서도 그는 최하위권에 머물러있었다.
 그에게 그나마 알아줄 부분은 전교 학생회장이라는 점. 그 타이틀만 아니었다면 우리 반은 이미 어떤 모함을 해서라도 전학, 또는 반을 옮기게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타이틀마저도 부정행위로 인해 얻은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자, 우리 반에서는 그를 처리할 방법에 대한 의견이 더욱 확산되었다. 하지만 아직 중학생일 뿐인 우리는 아무 힘이 없었고, 그저 뒤에서 수근거리는 것만을 계속하던 중, 드디어 사건은 터졌다.


 어이, C. 음악 소리 시끄러워.
 시작은 나였다. C는 그 당시 유행하던 블루투스 최신 이어폰을 끼고 엎드려 있었다. 얼마나 세게 틀었는지 음악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올 정도였고, 나는 그때 학생회장 선거에서 고작 C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분해 뭐든 트집을 잡고 싶었다. 마침 들리는 음악 소리는 최적의 시빗거리였다.
" 아, 미안. 하도 교실이 시끄러워서. "
 C가 고개를 들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를 줄이지도, 내가 말하고 있는데 이어폰을 빼지도 않았다. 손이 이어폰의 음량 조절 부분으로 가 있는 걸 보아서 그는 내가 가면 소리 크기를 줄일 생각이었겠지만, 괜히 거슬렸다.
 나는 어색하게 웃는 그의 귀에서 이어폰을 낚아챘다. C의 이어폰은 최신 이어폰이었고, 선이 없어서 그런지 금방 내 손에 들어왔다.
 진짜 시끄럽네. 뭐 듣냐?
 C의 당황한 얼굴도 보지 않고, 나는 곧바로 이어폰을 귀에 꽂아넣었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선율과, 이질적인 목소리와 언어에 나는 서둘러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C를 노려보았다. C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나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이어폰의 음량을 최대로 높였다. 어느새 조용히 하기만 하면 교실 전체에 울릴 것만 같은 크기의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 B.. ? "
 C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끌시끌한 교실 쪽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크게
 어이, 여기들 좀 봐!
라며, 교실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쳤다. 리더의 자질을 타고난 내 존재감은 모든 우수한 아이 중에서 가히 최고였기 때문에 곧바로 반의 시선들은 내게 집중되었고, 나는 조용히 집게손가락을 세워 입가에 갖다 댔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실에는, C의 이어폰 소리만이 들려왔다. 딱 한 소절만 들어도 오글거리는 애니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가사마저 이질적인 일본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들려준 이유를 파악한 몇몇 눈치 빠른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웃음소리도 터져나왔다. 방금 건 분명히 틀림없는 J와 S의 웃음소리임이랴.
" 저거, 일본 노래 아니야? "
" 맞아. 저거 C가 매일 소중히 여기던 블루투스 이어폰 같은데? "
" 뭐야, 저런 거로 일본 노래나 듣는 거야? "
 짜릿하다.
 모든 아이가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느낌. 내가 모두의 위에서 그들을 통솔한다는 느낌.
 역시 난 리더의 자질이야.
" .. B. 이제 그건 끄는 게.. "
" 맞다. 그만하라. C가 불쌍하지도 않나? 그카면 됐다 안카나. "
 A와 T가 내게 다가와 이어폰을 붙잡았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던 T야 그렇다 쳐도, 내가 짝사랑했던 A가 C의 편을 들어주는 걸 보니 흥미가 뚝 떨어졌다. 흥미가 떨어지고 나니 왜 그렇게 촌스러운지, 금방 식어버린 사랑에 나는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왜? 난 이 이어폰이 좋은데. 부적 같잖아, 부적. 일본 부적.
 으하하, 하고 끝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시나 공부할 때에는 하고, 웃을 때는 제대로 웃는 4반의 멍청이들 같았다.
 A와 T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시 C에게 다가가 어느새 노래가 끝나버린 이어폰을 눈앞에 흔들어주었다. 그 녀석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씨익 웃으며 선심쓰듯 그 이어폰을 목에 둘렀다.
 이건, 내가 부적으로 쓸게. 혹시 알아? 대학 갈 때 요긴하게 쓸지.
 그 말을 내뱉은 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거라고는, 그 이후로 C가 이사를 하는 동시에 전학 또한 가고, 나는 곧바로 학생회장 자리를 가로챔으로써 학교를 부흥으로 이끌어갔다, 라는 정도.


 이제는 10년 가까이 된 추억일 뿐한 추억을 이만큼 기억하는 나도 용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소주잔에 약간 남은 내용물을 털어마셨다.
" 그래서, C는 오늘 왔어? "
 바보 같긴. 초대장은 보냈느냐, 라고 물어봐야지.
 병을 기울였으나 나오지 않는 내용물에, 새로운 병을 까고는 S를 흘겨보았다. 눈물처럼 맑고 투명한 액체가 잔에 가득 담기는 와중에, 질문을 받은 J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일단 초대장은 보냈어. 올지 안 올지는.. "
" 솔직히 오겠냐? 나 같으면 절대 못 온다. "
" 하긴. 그런가. "
 J가 키득키득 웃으며 내 앞에 놓인 술병을 빼앗아 갔다. 아직도 마시지 않은 술잔 속의 내용물을 그저 바라보면서, 나는 주머니 속 이어폰을 만지작거렸다.
 훗날 고삼 때 의지가 되었던 친구에게 이 이어폰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얘기를 꺼냈으나, 영 떨떠름하게 받아들이던 그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아직도 나는 그 행동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건만, 그리고 나의 친구들 또한 그 사건 이후로 나를 우상으로 받들었건만, 그는 아니었다.
 그저 다른 학교의 다른 반이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서 내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곧바로 술잔을 기울였다. 쓰지만 달콤한 대조적인 맛이 조화를 이루며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왔다.
" .. 야. B. "
 갑자기 오른쪽 어깨에 느껴지는 툭툭 치는 타격감에, 몽롱한 정신을 붙들고 J 쪽을 쳐다보았다. 그가 턱짓으로 출입문 쪽을 가리켰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바깥과, 가로등의 불빛만 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보이지 않았건만, J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창백했다.
 그 순간, 묵직한 타격감이 오른쪽 볼을 내리쳤다.
" 야!! C!! 무슨 짓이야!! "
 J가 벌떡 일어섰다. 술기운에 흐릿했던 눈앞이 점점 또렷해졌다.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제끼는 남성, 분명한 C가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엎어지는 순간에도 그의 양복과, 넥타이와, 시계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나보다 훨씬 비싸고 가치 있는 물건들이었다. 순간적으로 수치심과 질투심이 눈앞을 메웠다.
 엎어졌던 몸을 벌떡 일으켜 똑같이 C의 오른쪽 볼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J와 다른 아이들의 경악한 눈빛이 내게 C의 주먹처럼 내리꽂혔다. C가 비틀거리며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 뭐하는 짓이야, 너네!!! B!! C!! "
 T와 A가 급히 우리 사이로 들어와 C와 나를 각각 막았다. T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나를 말리는 사이 A는 C에게 꾸중하듯 무어라무어라 하였고, 나는 이를 갈며 침을 탁 뱉었다.
 J가 서둘러 내 곁으로 다가왔다.
" B. 너답지 않게 이게 무슨 짓이야! 동창회에서 쌈박질이야?! C. 너도. 아무리 앙금이 쌓여있다지만 다짜고짜 보자마자 주먹을 날려?! "
 평소에는 온화한 성격으로 항상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가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J가 우리가 보는 앞에서 크게 화를 내자, 장내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한참을 A에게서 무어라 듣던 C가 나를 노려보았다. 불타는 듯한 투기로 가득 찬 눈빛에 움찔거리며 오른손을 꽉 쥐었다.
" 난 할 일 다 했어. 다시는 보지 말자, 너희. 이딴 초대장도 보내지 마. "
 C는 은빛 펄이 뿌려진 고급스러운 초대장을 갈기갈기 찢으며 흩트려놓았다. 그는 곧바로 멍하니 있는 모두를 돌아보며 나와 같이 침을 탁 내뱉었고, 곧바로 잘 관리된 광택 있는 구두를 자랑하듯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그곳을 나갔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안이 벙벙하게 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C가 남기고 간 흔적이 있는 자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갈기갈기 찢긴 초대장의 흔적만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 .. B. "
 J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가 내 얼굴을 보고는 멈칫하며 어깨 쪽으로 뻗었던 손을 내렸다. 그가 볼 때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분노로 가득찬 살인마와 같은 표정? 생각 따위 떠나가버린 멍청한 표정? 조선 시대 후궁들과 같은 투기로 가득 찬 표정?


 J. 내가 뭘 잘못했지?
 나지막하게 내뱉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왼쪽 손목에 두른 명품 시계가 방해되어, 금방이라도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J는 아무 말 없이 내 왼쪽 양복 소매를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한참을 걷던 그는 동창회를 열었던 장소인 뷔페 집의 뒤쪽, 인적 드문 골목길에 들어서야 멈추어섰다. 그는 평범하지만 꽤 챙겨입은 티가 나는 양복의 안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어 불에 붙였다.
" 한 대 필래? "
 고개를 저었다. 담배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권유 속에서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는 금단의 물건과 같았다. 오늘따라 J가 권한 그 담배가 무척 필요했으나,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켜온 규칙을 5초만에 무시할 정도로 나는 자기관리에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J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얀 담배 연기와 함께 냄새가 훅 끼쳐왔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에 긴 공백이 흘렀다.
" C 말이야. 신경 쓰지 마. "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모르게 내뱉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J는 피식 웃으며 쭈그려 앉았다. 곧바로

" 나 말이야, 이렇게 앉으니까 탈선 청소년 같지 않냐? " 
라며 실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낄낄 웃던 그는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쳇, 하며 혀를 찼고, 곧바로 진지한 태도로 돌아와 다시 쭉 빨았던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 너는 C가 고작 일본 노래로 놀렸다고 그렇게 달려들었다고 생각해? "
 그럼 또 다른 이유가?
 J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5초도 지나지 않아 긍정의 표시를 하는 그에 나는 저절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사건이 아니면서 그가 나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일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일 전에는 그에게 관심이 거의 없었고, 그 사건은 왠지 모르게 그 날따라 기분이 더러워 괜히 시비를 걸어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C가 전학간 이후로 연락을 하지도, 심지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도 전혀 없으므로 딱히 그에게 원한을 살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C가 그 사건이 아닌 다른 이유로 내게 복수심을 불태웠다고?
 아직도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그의 불꽃 같은 눈동자에 몸서리치며, J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J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순간 멈칫하며 손사래를 쳤다.
" 아니, 물론 그 사건인 건 맞는데, 놀려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그 이어폰을 가져가서 그런 거라고. "
 그의 말에 나는 그제야 오랜 기억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고, 동창회 내내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플라스틱 최신형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벌써 10년을 계속 만지작거려서 그런지 반짝거리던 광택은 빛이 바랜지 오래였고, 이제는 작동도 안되는 고물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때 이후로 가지고 다닐 때마다 이상하게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해 부적 삼은 것이었다. J는 그 이어폰을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천천히 말하는 과거의 일처럼 두루뭉술하고 희끗희끗한 담배 연기가 퍼져나가 사라졌다.
" C 엄마가 돌아가신 건 알지? "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거, C의 엄마가 죽기 전에 J에게 선물해준, 마지막 유품이자 재산이래. C가 좀 빈티났는데, 그것 하나만은 최신형이라 애들 다 수근거렸잖아? 그게 엄마가 물려준 전 재산이라나.. "
 그의 씁쓸한 말에 나도 모르게 이어폰을 꽉 쥐었다. 기억난다. 항상 C가 가지고 다니며 소중히 하던 그 이어폰.
" 뭐.. 네가 빼앗아가니까 돌려받을 방법도 없고, 더 괴롭힘 받기도 지겨웠는지 바로 전학 가버렸지만.. 아, 얼마 전에 그 녀석을 만났는데, 안 분하냐니까 그런 말을 하더라. "
 무슨 말? 침을 꿀꺽 삼키고는 되물었다. J는 잠시 침묵하더니 아직도 다 타지 않은 기다란 장초를 던져 밟으며 자리를 뜨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순간 멈칫 걸음을 멈춘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 연락을 끊어도 지금까지는 친구였지만, 한 방 날려주기만 하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닐 거라고. "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본  J가 어색하게 웃었다. 곧바로 그는 그럼 나중에 보자, 라며 어딘가로 서둘러 뛰어갔고, 나는 허탈하게 서 그가 뛰어가는 그림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럴 때 들 생각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는 정말 달리기를 지지리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C는 학생회장인 것과 더불어, 달리기도 잘했던 것 같다. C의 달리기와 이 상황이 머릿속에서 연결되자, 곧바로 나는 다시 한 번 중학교 때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 이어폰 사건이 일어나기 3달 전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에는 마침 학교의 규모가 큰 축제 중 하나인,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교내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었고, 나는 체육대회 전날 아무 생각 없이 정해둔 출전선수들의 명단을 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우리 반은 거의 모든 아이가 모든 방면에서 출중하므로 누가 나가든 상관은 없었지만, 나는 이미 낸 출전 선수 명단이면서도 괜히 잠결에 쓴 것이 불안해 주르륵 하얀 종이를 빗자루로 쓸 듯 눈으로 쓸어내려 갔다.
 그리고, 내 눈이 멈춘 곳은 바로 600m 달리기 출전 선수 명단이었다. 오직 한 명이 600m를 다 뛰어야 하는, 누구나 꺼리는 그 경기에 대한 설명 옆에 떡하니 갈겨써 놓은 C의 이름이 보였다.
" 여어, B. 600m 달리기는 누가 나가냐? "
 마침 파란 파워에이드 두 병을 사 들고 와, 내게 한 병을 건네던 T가 호기심을 표현하며 명단을 뚫어져라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미간을 집게손가락으로 꾹꾹 짚으며 명단을 건네주었고, T는 딱 보아도 잠결에 쓴 것 같이 날아다니는 글씨로 쓰인 C의 이름을 발견한 듯 표정이 순간 애매해졌다.
" .. 괜찮겠어? C 녀석. 비실비실한 게 운동도 못 하는 것 같던데.. "
어쩔 수 없지. 기껏해야 조금 망신당하는 것밖에 더하겠어?
" 하지만.. 내, 내가 바꿔줄까? "
벌써 늦었어.
 턱짓으로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을 가리켰다. 얕게 모래가 깔린 고른 평지 위 트랙에, 이미 가벼운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C의 파란 머리끈이 눈에 띄었다. T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딴에는 아무래도 C를 챙기는 것 같긴 하지만, 챙겨준다고 해서 그를 믿는 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종목 무패 신화의 반에서 만약 2등 이하의 등수가 생긴다면 바로 C를 탓하러 갈 수 있을 정도로 처세에 능한 사람이었다.
" .. B. 너는 걱정 안돼? 네가 제일 기대했잖아, 체육대회. "
 그의 걱정하는 투의 말에, 나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싱긋 웃음 지었다.
 그래, 체육대회는 우리 반에서 내가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패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나는 그 누구보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더 나은 미래를 보는 사람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나와 그는 학생회장 후보로서 겨뤘으나 실패했다. 그것은 내 완벽해야 할 중학생 생활 중 유일한 결점이었고, C에게는 오히려 성적을 상쇄할 장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짜증나는 장점을 완전히 봉쇄할 방법은 바로,
 C의 망신.
" 시작했어, B. "
 실제로 그의 달리기 기록을 본 적은 없지만, 그의 비실비실 하고 마른 몸을 보면 필시 뛰다가 넘어지거나, 꼴등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발을 헛디딘다면, 전교생의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반에서는 완전히 배제되는 계기가 되겠지.
" 어. 어어, B. B.. "
 C는 지금까지 무척 오래 버틴 거야. 만약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대로 일이 전개된다면, 절대로 우리 학교에 버틸 이유도, 명분도, 배짱도 없겠지. 그렇다면 내 결점은 완전히ㅡ
" 와아아아아아아!!!!! B!! 저 녀석 봤냐?! "
 갑자기 들려오는 시끄러운 함성과 어느새 내 옆에 앉은 J의 물음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운동장을 내려보았다. 결승선에서 좀 앞서간 곳에 엎어져 있는 C가 눈에 띄었다.
 뭐야, 넘어진 거야? 역시 저 녀석은 믿을 게..
" 아니야!! C가 일등이라고!! 저 녀석, 달리기 엄청나게 빠른데?! 푸하하하, 결승선에 들어오자마자 슬라이딩이라니! "
 시끄럽게 떠들며 자랑하듯 소리치는 T에 나는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T는 지금까지 동정심으로 친절하게 대우했던 C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요란하게 칭찬의 말을 건넸고, C는 활짝 웃으며 그에게 대꾸해주었다. 그리고 털털한 성격과 예쁘장한 외모를 가져 점점 호감이 가고 있던 A마저 C에게 달려가 음료수를 건넸고, C는 A에게 마저 웃어주며 냉큼 음료수를 받았다.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분명히 목적의 한가지는 달성한 거나 다름없건만, 한가지가 부족했다. 저 녀석을 학생회장의 자리에서 밀어낼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나 출구로 나갔다.
 그리고 내가 나갈 때까지 아이들은 C에게 칭찬 세례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점점 두루뭉술했던 기억이 바로잡히고 있음에도 답답한 공기에 단정히 매었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마치 그때의 C가 내뱉은 고르지 못한 숨과 같이 헉헉 숨을 내뱉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손에 쥔 이어폰을 꽉 쥐었다. 자랑하는 악력에 점점 아스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꽉 쥐었던 손의 힘을 풀었다. 10년이 되어 기능이고 색이고 다 바랬으면서도 겉은 멀쩡한 이어폰이 괜히 거슬렸다.
 C가 내게 나는 이어폰과 다름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겉은 K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인재면서도 완벽한 스펙으로 중무장한 미래의 리더이었지만, 속은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부모님의 속을 뜯어 겉을 치장하며, 성격은 파탄 났으며 이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젠.. 장!!!!! "
 화병이 난 것처럼 이어폰을 아스팔트 길바닥에 내다 던졌다. 길바닥에 부딪혀 굴렀음에도 여전히 겉은 멀쩡한 이어폰이 더욱 나 같아서, 잘 닦인 구두를 신은 발을 들어 마구 짓밟았다. 아무리 밟아도 도저히 부셔지지 않아서, 다시 이어폰을 주워들어 벽에 던졌다. 작은 흠집이 생겼다.
" 으아아악!!!! "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어제 부모님이 그 주름진 손으로 쥐여주신 비싼 브랜드의 양복 마이를 벗어 바닥에 집어 던졌다. C의 이어폰과 나의 양복이 너무나도 비교되어서, 더 미칠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벽에 머리를 박았다. 고작 한 번 머리를 갖다 박았음에도, 시야를 붉은 무언가가 가렸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쳐 벽에서 떨어뜨렸다.
" 멍청아!! 뭐하는 짓이야!! 정신병자냐!? "
 이명이 울리는 귀임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에 나를 친 장본인을 쳐다보았다. 아까 뷔페 안에서 보았던 나보다 비싼 브랜드의 양복과 시계, 더불어 화난 듯한 얼굴. 틀림없는 C의 얼굴이다.
" 너 머리에 피 난다고!!! 미쳤냐!? 혼자 왜 벽에 머리 박고 남의 이어폰 집어 던지고 난린데!! "
 C가 마구 소리치며 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그의 번쩍번쩍한 구두에 내 양복이 밟혔다. 순간 눈이 돌며 주먹이 그의 오른쪽 볼로 날아갔다. 동시에 왼쪽 발 또한 C의 복부 쪽으로 날아갔다. C가 신음소리 하나 내뱉지 못하며 나가떨어졌다. 나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 왜 온 건데!!! 나 비웃으려 왔냐?! 그래, 나 삼수해서야 겨우 원하는 대학 붙었고, 부모님 졸라서 받은 양복 입고 있어!! 그리고 그런데도 내가 미치도록 괴롭혔던 너보다 못하고!!! "
 C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채 뜨지 못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꽤 큰 충격이었는 듯싶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이어폰과 마이가 위태위태했다. C는 몇 초 후 정신을 차린 듯싶었으나, 씩씩대는 나와 달리 내게 먼저 맞고도 아무 말, 아무 행동도 없었다. 그 대신 바닥에 피 섞인 침을 뱉은 C가 나를 째려보았다.
" 너, 진짜 멍청이냐?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마. 난 그저 네놈한테 아직 때릴 게 있어서 온 것뿐인데, B 네가 이렇게 미쳐가는 거 보니까 때릴 마음도 안 든다. "
" 지금도 내 양복 위에 있는 이어폰으로 시선으로 가 있으면서 아니라는 거야? "
" 이어폰 따위 잊어버린지 오래야. 난 진짜로 할 말 없어. 제발, 이 이후로 만나지 말자. "
 그가 입술이 터졌는지 피가 주룩 흐르는 입가를 닦고는, 돌아섰다. 그 걸음걸이는 정말로 아무 앙금도, 미련도 없는 듯 후련해 보였다. 나는 이를 가는 것을 멈추고는 잠시동안 C의 뒷모습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마이를 쳐다보았다. 흙투성이였다. 눈살을 찌뿌리고는, 손을 뻗어 마이를 주웠다. 먼지투성이인 마이를 대충 털고 다시 입자,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이어폰이 눈에 띄었다. 아까 C를 때렸을 때 잘못 밟았는지, 그렇게 부수려 해도 부서지지 않던 이어폰이 두 동강 나 있었다. 잠시 깔끔하게 부서진 이어폰 조각을 주워든 나는 조용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C의 마지막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C는 아까 전 달려간 J에게서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 분명했다. 그의 주머니 안에서 빛나던 휴대전화가 눈에 스쳐 지나갔다.
" 멍청하긴. 왜 그 녀석을 나한테 보낸 거야.. "
 자기 딴에는 화해시키려는 노력이 있는 듯싶었지만, 이미 관계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문득 바닥을 보니, 아까 J가 버리고 간 라이터와 담배가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담배를 주워 입에 물고, 서투른 방법으로 J를 따라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훅 담배를 빨아들이니, 그 냄새와 맛이 지독해 그만 담배를 뱉어버렸다.
" 젠장, 이게 무슨 맛이라고. "
 벌떡 일어서서 다시 담배를 발로 비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둑어둑한 밤의 골목에는 가로등만이 유일하게 빛을 비추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려 습관적으로 손을 움직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 조각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느껴졌다. 천천히 세 발자국을 걸어가고는, 커다란 쓰레기통 앞에 섰다. 이어폰 조각을 쥔 손을 쓰레기통 위에서 펼치자, 중력을 거스를 힘이 없는 이어폰 조각은 우수수 쓰레기통으로 떨어져 내렸다. 검은 플라스틱 조각들과 튀어나온 전선들을 잠시 멍하니 응시한 나는, 허전한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빛나는 가로등을 응시했다. 벌레가 여러마리 꼬여있음에도, 가로등의 빛은 여전했다. 나는 가로등을 응시하던 눈을 돌리고는 이제 광택 따위는 찾아보기도 힘든 구두를 움직였다.


 마치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은 그것에, 괜히 눈가에 물기가 맺히는 듯싶어 눈을 비비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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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홍수진

E-mail: youna3858@naver.com

전화번호: 010 2914 8426


Who's 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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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 진학을 꿈꾸는 학생입니다.


이 곳에 모인 여러 예비 작가, 작가분들에 비하면 경험도 필력도 부족하지만 , 부족한 것은 채우라고 있는 법.


많이 배워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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