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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 앞 복도에 웬 남자아이가 반듯이 천정을 향해 누워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아니 노래를 부른다고 하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악다구니를 퍼붓고 있다거나 차라리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너무 황당한 일이라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나는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안 뒤에도 한참을 그대로 노래를 부르던 그 아이는 갑자기 노래를 뚝 그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멀쩡한 얼굴로 옷을 툭툭 털고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가 돌아섰다. 그리고 그는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씨익 웃었다. 나는 온 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그 아이의 얼굴은 하얀 가면을 쓴 것처럼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전혀 웃으려는 마음이 없는데 그저 입 꼬리만 쓰윽 올려서 웃는 그 미소는 기괴해 보였다. 다음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애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그 아이가 먼저 아무 말 없이 돌아서 갔다. 아이는 휘파람을 불면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나도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텅 빈 교무실 문을 일부러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진구 웃기는 짓하는 거 이제는 모두 예사로 봐요. 별로 나쁜 아이는 아니랍니다. 그냥 괴짜일 뿐이죠. 우리 관점으로 보면 요즘 애들 다 이상하죠. 그냥 봐 넘기세요. 너무 신경 쓰면 피곤해져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회선생님이 말했다. 그는 무척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과제물을 다 내지 않았다고 옆 자리에 앉은 애꿎은 나에게까지 짜증을 부리곤 했다. 식사 후에는 무슨 약인지 꼭 약을 먹었다. 함께 근무한 지 3달이 지났지만 선생님들은 내게 냉정 했다. 갓 부임한 햇병아리 교사인 내가 저지른 작은 실수 하나도 그들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서울 사람이 뭐 그래

우리하고는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야

아직도 업무파악이 그렇게 안 돼? 정선생 혹시 공부만 잘 하는 바보 아니야 크크크

원래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20여년을 살아오는 동안 늘 그랬다. 그들은 내가 잘하면 잘하는 대로 또 못 하면 못 한다고 괜히 트집을 잡고 유난히 내게만 까탈을 부렸다. 나의 인간관계는 부실공사로 인해 삐걱거리는 다리처럼 불안했다. 항상 그래왔듯이 교무실에서도 나는 외톨이였다.

그 후로 진구는 더 이상 나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진구 말고도 이 학교에는 이상한 아이들이 너무 많았으니 말이다. 한 남학생은 학교에 뱀을 가져와서 여학생들을 기겁하게 하는가하면 연이어 터지는 절도사건, 가출, 문란한 이성교제 등등 피 끓는 10대들을 한 곳에 모아두었으니 매일 매일이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나는 수학과를 맡고 있다 보니 학습부진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3인데 중1 수준도 안 되는 수학 포기자들이 이곳에는 제법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학에 재능을 보이는 몇 몇 아이들은 나의 야망(?)을 자극했다. 나는 수학 부진아들을 위하여 방과 후 특별반을 만들어 지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퇴근 후에도 밤 시간을 이용하여 수학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모아 일주일에 두 번씩 특별지도를 했다. 다수의 선생님들이 나에게 노골적으로 비웃음과 적의를 드러냈다.

서울에서 온 선생이라 뭔가 다르기는 다르네. 어디 위화감 느껴져서 한 교무실에서 근무할 수 있겠어

김 선생 그냥 놔둬 우리는 한 때 저러지 않았나. 저 열정이 얼마나 가겠어. 정미래 선생 젊다고 너무 그렇게 너무 혹사 하지 마소. 누가 알아준다고 그 짓이야. 아직 너무 순수해서 그러나본데 대강 철저히 하면 되는 게 이 일이요

그들은 나를 알지 못했다. 나는 너무 순수해서 혹은 스카이출신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혹은 교사로서의 열정이 넘쳐서 그런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의 이름은 <정미래>이고 나이는 23K대 사범대 수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울의 유수한 사립 중고교에 응시한 번 하지 않고 아버지의 친구가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경남의 작은 중학교로 떼를 써서 내려온 수학과 초임교사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그냥 내게 붙인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고 진짜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조금은 막막해진다. 나는 서울의 변두리 화훼단지에서 제법 큰 농장을 소유한 비교적 부유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 즉 자신의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라고 턱도 없이 믿고 있는 순정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결혼 후 아이가 없어 걱정이 많았던 부부에게 나는 결혼한 지 5년 만에 태어난 귀한 아기였다고 한다. 더구나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태어난 남동생으로 인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상에 아무 것도 부러운 것이 없는 완벽한 행복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다아버지는 나를 행운의 부적처럼 여겼다. ‘미래라는 이름도 내가 가지고 온 행운이 미래에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한 소원에서 지은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대로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우리 집 주변은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들은 금싸라기가 되어 아버지를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거기에다 아버지가 고대하던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까지 품에 안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행복의 정점에 선 황홀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행운의 부적으로 생각했던 나에게서 아버지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그 날은 아카시아가 만발하여 온 산을 덮고 봄 하늘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5월의 한 날이었다. 그 날 그때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디에 계셨는지 왜 내가 이제 겨우 아장 아장 걷는 동생을 사촌 언니에게 맡긴 채 그 길을 갔는지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 한다. 6학년쯤으로 기억되는 사촌언니가 동생을 어깨 위에 태우고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굉음을 울리며 붉은색의 커다란 트럭이 그 언니의 옆을 지나가는 동시에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의 내지르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 괴물 같은 트럭의 밑으로 떨어지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순간 아카시아의 향기가 칼날처럼 나의 뇌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말았다. 겨우 걸음마를 하던 천사 같던 그 아이는 건설현장에 모래를 나르는 큰 트럭의 바퀴 밑에서 으깨져 죽었다동생의 죽음으로 우리 집은 악령에 사로잡한 영혼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서로 다정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말과 웃음을 잃어버렸다. 술에 절어 버린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차 소리만 들어도 발작이 일어났다. 사지가 비비 틀리고 눈이 돌아가고 입에서는 거품이 흘렀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이 무서워 집 밖에도 나가지 못했다. 우리가 지옥 같은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에도 얄밉게 아카시아는 왕성하게 피고 또 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어머니보다 10살은 아래로 보이는 예쁜 처녀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그 여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얼굴이 홍도처럼 붉어진 그 여자는 어머니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빌며 엎드려 있었다. 어머니는 울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커다란 가방에 아버지 옷만을 싸서 그 여자와 함께 집을 나갔다. 그 이후 한 일 년쯤은 아버지는 한 달에 서너 번 정도는 우리 집에 왔다. 결국 그 여자가 아들을 낳은 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도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을 나에게 한 마디도 비치지 않았다. 이혼 후에 아버지는 나와 엄마를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새 가정 얘기가 어머니에게 전해졌다. 그 얘기를 들을 때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머니는 그저 담담하게 보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제법 많은 생활비를 정한 기일에 정확하게 보내 주었다. 어머니는 아주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죽는 날까지 아버지에 대해 원망이나 미움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간질 발작 때문에 함부로 나다닐 수 없었던 나는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위안은 찾을 길이 없었기에 미친 듯이 독서와 공부에 탐닉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원래 말이 없는 분이셨는데 아버지와 헤어지고 난 뒤부터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봉사활동도 다니시고 소일 삼아 인근의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평온하게 사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어머니의 얼굴에서 본 것은 그냥 죽지 못해 살아가는 절망뿐이었다. 어머니와 나에게 밤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죽은 동생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살아오는 밤이면 나는 밤이 새도록 공부를 했다. 특히 어려운 수학문제는 동생을 잊어버리는 특효약이었다. 어머니는 밤새도록 소리죽여 우는 날이 많았다. 아침이 되면 퉁퉁 부은 얼굴로 나를 위해 밥을 짓던 어머니의 가련한 얼굴이 보기 싫어 밥도 먹지 않고 학교로 도망치는 날이 많았다. 우리는 절대로 지나간 아픔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 세상에서 가장 친밀해야 될 우리 모녀는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힘이 들고 심지어 눈만 마주쳐도 황급하게 눈길을 피할 만큼 멀리 있었다. 고인 채 썩어가는 물 같은 절대 고요가 지배하는 집에서 나와 엄마는 같이 있어서 더 외롭고 쓸쓸하고 아팠다.

어머니가 췌장암 선고를 받은 것은 내가 고1 때였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 침대를 책상삼아 나는 공부를 했다. 어머니의 고통이 심해질수록 나는 더 어려운 수학문제와 씨름을 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이생의 마지막 숨을 쉬시는 동안에도 나는 대기실 의자에서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췌장암 선고를 받고 의사가 선언했던 시한부 3개월도 못 채우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담당했던 의사는 환자가 살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아버지의 집은 밝고 따뜻했다. 나의 간질 발작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 때까지도 빠르게 달리는 차만 보아도 몸이 경직되는 증세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의 안간힘을 써야했다. 아버지의 두 아들들은 밝고 구김살이 없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와 나는 눈 마주치는 것조차 어색하고 힘이 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피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그 예쁜 여자는 마음씨도 고왔다.

미래에게 왜 그렇게 무심하세요. 미래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당신 밖에 없잖아요. 좀 잘해 주세요. 미래가 너무 불쌍해요. 마음 붙일 데가 없으니까 공부만 저렇게 미친 듯이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 여자의 말 때문이었을까? 한 번은 정신없이 공부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돌아보자 아버지는 내 방에 들어오신 이유를 잊어버리신 것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는 엄마를 많이 닮았어.”

아버지는 뭔가 더 말씀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지 자꾸 마른 침만 삼키셨다.

저 지금 시험기간이거든요. 하실 말씀 있으시면 다음에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최대한 쌀쌀맞게 말했다

그래 미안하다. 미래야 미안하다.”

이 말만을 남기신 채 아버지는 나가셨다. 펼쳐진 책 위로 눈물이 후두득 떨어졌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두 달에 한 번 꼴은 집에 갔다. 그 집에서 생활비와 학비가 다 나오고 그 집 사람들이 어찌나 오라고 채근을 하는지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갈 때마다 내가 느낀 것은 나는 불행하고 그들은 참 행복하다는 것뿐이었다. 행복한 그들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나는 철저히 행복한 사람으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들이 행복한 게 나도 좋았으니까 그 집마저 불행해진다면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삶을 견딜힘이 없어질 것을 약삭빠른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설명을 하면 정미래라고 하는 한 사람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모든 장황한 설명들의 요지는 정미래는 사명감이나 열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밖에서 보는 정미래는 실력 있고 패기가 넘치고 오만한 풋내기 교사라면 내면의 진짜 정미래는 수많은 책을 읽고 20여년의 세월을 살고도 더 살아야할지 지금 죽어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대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연약하고 혼미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잊어버렸던 진구를 다시 만난 것은 7월의 밤이었다. 방학인데 나는 부진아 지도를 핑계로 집에 가지 않고 계속 학교 근처 내 자취방에서 학교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11시쯤 공부하던 아이들을 다 집으로 보내고 그날따라 혼자 아무생각 없이 바다로 향했다.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등대를 받쳐주는 시멘트 바닥에 걸터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밤바다는 고요했다. 아득히 멀리 불을 환히 밝힌 고깃배들만 몇 척 보일 뿐 아무도 없는 넓은 바다에 나 혼자 앉아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듯도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소란스런 소음과 함께 한 무리의 십대가 나타났다. 나는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바로 일어서기는 그래서 그들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바다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놀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곧장 내게로 와서 나를 빙 둘러 섰다.

이게 누구야 M중학교의 정미래 선생이네. 야심한 시각에 등대에는 웬일로 오셨나. 너무 외로워 보이는데. 멋진 오빠들이 같이 놀아 줄까.”

나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나는 그들에게 강하게 맞서기로 했다.

니네들 S고 애들 맞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집에나 가라. 혼나기 전에

내가 소리치자 아이들은 오히려 나에게 더 가까이 바싹 다가왔다. 불쾌한 술 냄새가 확 달려들었다.

우리가 M중학교 학생인줄 아시나 웃기고 있네. 가까이서보니 별로네. 좀 예쁜 줄 알았는데

한아이가 이렇게 말하지 옆에 있던 아이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뭐 이만하면 괜찮지 선생님 같이 놀아 봐요.”

나는 그 아이를 있는 힘을 다해 밀어버렸다.

뭐야 선생이 사람 치네.”

아이들이 한꺼번에 내게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돌이 날아와 한 아이가 맞은 거 같았다. ‘아이쿠, 비명소리와 함께 한 아이가 엎어졌다. 그 바람에 아이들이 내게서 물러섰다. 등대불빛에 한 아이기 희미하게 비쳤다.

선생님한테 손대면 다 죽여 버린다.”

그 아이의 손끝에서 면도칼의 새파란 날이 번뜩였다.

저 자식 누구야 진구 아냐. 미친 새끼 꺼져라.”

진구는 팔을 들고 자신의 팔뚝 어딘가를 면도칼로 그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저 새끼 완전히 돌았어. 빨리 가자. 에이 재수 없어.”

라고 말들을 하며 아이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해안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진구는 피가 흐르는 팔로 주먹질과 욕을 해댔다. 정신이 퍼뜩 든 나는 진구에게 다가갔다. 나 때문에 다친 애를 그냥 보낼 수 없어 굳이 괜찮다는 아이를 내 방으로 데려갔다. 내 방을 둘러보던 진구는

역시 내가 상상한 데로네요. 향수 냄새 하나 안 나고 책 냄새만 나네. 이런 선생님도 여자라고 그 형들 완전히 또라이들이네. 큭큭. 이 상처요 살짝 그었어요. 그렇게 겁 안 주면 물러설 형들이 아니니까. 술까지 취했는데 이 방법 밖에는 없더라고요. 면도칼요. 살기 싫을 때 확 그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래서 늘 가지고 다녀요. 에이 사람이 죽기가 그렇게 쉽나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흐흐.”

진구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아이의 눈이 나를 보고 있는데도 난, 그 아이가 마치 나를 투명인간으로 여기며 벽 너머 어딘가 아득한 곳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진구와 나는 이렇게 특별하게 다시 서로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 이후 방학동안 내가 학교에 있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진구는 교무실로 나들이를 왔다. 그 아이는 스스럼없이 교무실에 들어와 내 옆 자리에 앉아 있기도 하고 방문객들을 접대하기 위해 있는 쇼파에 누워 있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진구야 자장면 먹을래

자장면을 시켜주면 후딱 먹어치우고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냥 사라지기 일쑤였다.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저 혼자서 하는 행동이라 나는 모른 척 내버려두었지만 내심 적잖게 불편하고 불쾌했다. 그 날은 비가 왔다. 교무실에 앉아 책을 읽다가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었다. 비가 오니 학교에는 개미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괜히 적막한 생각에 빠져들며 비오는 바다를 보기위해 창가로 갔다. 교문에 진구가 들어서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고 우의를 입은 그 아이는 커보였다. 진구는 약간 젖은 모습으로 교무실에 들어섰다. 비기 이렇게 많이 오는데 뭐 하러 오니진구는 대답대신 그냥 살짝 웃어보였다. 넓은 학교에 나와 진구 단 둘이라고 생각하니 좀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진구는 쇼파에 턱을 고인 채 심각하게 앉아 있었다.

점심은 먹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쵸콜릿 줄까

진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읽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지도 모르고 책을 읽다가 눈이 너무 피곤해 고개를 드니 진구가 없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얼른 내려가 현관까지 가보았는데 진구가 우의를 벗어 놓았던 자리에 흥건한 물이 고여 있고 주변에는 익지도 않은 풋밤송이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밤나무 잎사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길을 이루고 있었다. 잎이 떨어져 길을 이룬 곳을 따라가 보니 학교 뒷뜰에 있는 밤나무로 이어져 있었다. 밤나무는 처참하도록 공격을 당했다부러진 가지들이 나무 밑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익지도 않은 밤송이들이 짓이겨진 채 뒹굴고 있었다. 나는 진구가 한 짓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늘 학교에 있었던 사람은 나와 진구 두 사람 뿐이었으니까.  진구 속에 있는 파괴적인 본성이 폭발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나는 무서워졌다. 나는 서둘러 다시 교무실로 돌아와 물건을 챙기고 집으로 왔다.

개학을 하고 학교에 갔더니 밤나무 사건 때문에 학교가 들썩거렸다. <밤나무 폭파사건>이 일어났다며 저마다 누구의 소행인지 추리하고 있었다

"정 선생은 뭐 짚이는 것 없어. 정 선생 방학 동안에 계속 학교에 있었다면서"

나는 차마 그것이 진구의 짓임을 밝힐 수가 없었다진구의 일에는 되도록 신경을 끊고 내 일에 전념하려고 애를 썼다. 개학날부터 진구는 학교에 오지 않고 있었다. 진구의 담임선생님은 그냥 진구가 아프다고 했을 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진구의 어머니가 나를 만나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엄연히 담임교사가 있는데 이건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말하며 면담을 거절했다진구의 어머니는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일이라고 하시며 간곡히 자신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진구의 어머니는 체구가 크지 않고 얌전해 보이는 여자였다.

"선생님 우리 진구가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해요. 아무리 말려도 안돼요. 방학이 끝나갈 무렵 비오는 날 진구가 아버지 비옷을 입고 오후 내내 사라진 적이 있었어요. 그 날 이후 자리에 눕더니 일어나지 않네요. 병원에 데리고 가면 죽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억지로 음식을 먹이면 그대로 다 토해 버리고 이러다가 우리 진구 큰 일 날 것 같아요."

진구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이 한 번 우리 진구 만나 주시면 안 될까요. 말이라고는 없는 녀석이 선생님 얘기를 몇 번이나 하더라고요. 왠지 선생님 말씀은 들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절박함이 내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나는 토요일 오후에 진구의 어머니를 따라 진구네 집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말았다.

진구는 자기 방에 반듯하게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내가 몇 번을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척해진 진구의 옆얼굴이 백짓장 같았다. '이 아이가 죽기로 작정을 단단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왔다진구의 방은 어둡지도 않았고 비교적 정리도 잘 되어 있었다. 정면 벽에는 온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사진 속에서는 진구도 웃고 있었다. 그러나 얼핏 보면 웃는 얼굴이지만 나는 안다. 겉모습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얼굴이 있음을. 세상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깨져버린 마음을,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바득바득 살아야하는 절망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 진구야  잘 생각 했어 이 기회에 마음먹은 대로 꼭 죽어버리기 바란다. 그리고 진구 너 죽고 나면 나도 용기 내어 한 번 죽어 볼께. 우리가 죽어도 해는 동쪽에서 뜨고, 꽃도 피고, 바람도 불겠지. 사람들은 잠시 슬퍼하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줄 꺼야. 나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내 방 책장 뒤에 빙초산 숨겨놓았어. 나도 너무 힘들면 확 마셔 버리려고 사놨어. 진구야 안녕.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조만 간에 거기서 만나.’

내가 몇 번이나 더 소리 내어 불렀지만 진구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앉은 나는 진구가 덮고 있는 이불깃만 구기면서 조금 전에 진구에게 속으로 한 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살아야하다니 진구와 나의 삶이 기가 막혔다. 나는 온 힘을 다하여 힘들게 말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터져버렸다. ! 이젠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우는 동안 진구는 어느 새 일어나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밖에는 진구의 부모님도 계실 텐데 어서 울음을 그치고 이 난감한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데 눈물은 염치도, 안면도 없이 계속 흘러 내렸다. 갑자기 진구가 갈라진 목소리로 쥐어 짜낸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내가 살 자격이 있을까요. 나는 공부도 지지리 못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니까 부모님에게도 짐만 될 거예요."

나는 진구를 위해 무슨 말인가 해야 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심하게도 나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이 아이에게 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진구야 나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란다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천사 같은 동생이 나 때문에 트럭에 깔려 죽었어. 어머니가 췌장암에 걸려 돌아가시던 날도 나는 수학문제만 풀고 있었단다. 나도 살 자격이 있을까. 너무 힘들어 버티기가너도 그렇지. 이렇게 마음먹었을 때 그냥 죽어 버리자.’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너무 무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바라보던 진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진구와 나는 한참을 소리 내어 함께 울었다. 울던 진구가 갑자기 벽을 향해 돌아앉더니 갑자기 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진구의 어머니가 뛰어 들어와 진구를 끌어안았다.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엄마를 위해서라도 살아줘." 

엄마 미안해. 엄마 이렇게 못나서 정말 미안해.”

진구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 계속 뭔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눈물을 닦고 집으로 왔다.

며칠이 지나고 진구는 학교로 왔다. 가라앉은 눈빛은 여전했지만 안색은 많이 밝아졌다. 복도에서 간혹 마주쳐도 우리는 모른 척 외면하고 지나갔다. 나는 퇴근 후 저녁도 먹지 않고 바다로 갔다. 등대에 기대고 앉아 바다를 보니 마음이 시원했다.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듯 무겁던 가슴이 조금 가벼워 진 것도 같았다.

선생님 여기서 뭐해요.”

진구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겸연쩍게 마주보며 웃었다.

너 밤나무는 왜 그렇게 못쓰게 만들었어.”

진구는 바다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뭐 그냥...... 에이 아시잖아요. 청춘의 피가 끓어올라서 그랬지요. 흐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은 이상하게 좀 그래요.” 

진구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에 몹쓸 악마가 들어있나 봐요. 그냥 답답해서 미칠 거 같아서 그랬어요밤나무를 안 죽였으면 아마 내가 나를 죽였을지도 모르죠.”

진구는 말이 없었다. 한참을 바다만 보고 있던 진구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해양고등학교 갈 거예요. 거기 교복이 죽여주게 폼 나거든요. 그리고 커다란 배를 타는 선원이 되어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닐 거예요. 그러다보면 꼭 다시 진수형을 만날 수 있겠죠. 진수형은 저 수평선 끝에 있는 작은 섬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있을 거예요. 그 형은 수영을 정말 잘하니까 분명히 저 바다 위 어느 곳에서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어 있을 거예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선생님은 똑똑하니까 잘 아실 거예요.”

나를 바라보는 진구의 눈빛이 너무 절박해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바다에 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날 저 바다에서 진수형이 아니라 내가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쯤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편안하게 쿨쿨 한잠 잘 자고 있을 텐데.”

나는 억지로 웃으며 진구의 손을 잡았다. 아직은 애티를 벗지 못한 듯 생각보다 작고 손가락이 가늘었다. 진구는 어색한 듯 내게서 손을 빼면서 빠르게 말했다

내가 쥐가 났었어요. 7월이라 아직 물이 차가운데 너무 오래 물속에 있었던 거죠. 형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지요. 바보 같은 형이 나를 구하겠다고 물에 뛰어 들어왔어요. 나를 물가로 밀어 내던 형의 손길이 아직도 느껴져요. 그리고 그 다음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형은 저 바다에서 끝내 나오지 않았어요.”

진구는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팔로 진구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건 그냥 사고였어.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그냥 사고였을 뿐이야.”

진구는 내 팔을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냥 사고였어. 사고였다고 너 때문이 아니야. 이 바보야.”

진구가 달려간 방향을 향해 나는 소리를 질렀다. 진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진구의 어머니가 나의 자취방으로 찾아왔다. 내 손을 잡은 채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진구가 정신이 이상한 거 같아요. 자주 밤에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야무지고 대차게 보여도 원래 예민하고 여린 아이거든요. 병원에 데리고 가보고 싶지만 그러면 더 예민해져서 난리를 칠 것만 같아서 그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진구가 많이 따르는 서울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는 사촌형이 있었어요. 삼년 전 여름방학에 그 애가 잠깐 여기에 내려왔다가 진구하고 바닷가에 간적이 있었어요. 둘이 바다에 빠졌는데 어떻게 된 건지 진구만 나오고 그 아이는 끝내 나오지 못했지요. 시체도 찾지 못하고...“

진구의 어머니는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일 이후로 애가 저렇게 되었어요. 우리 진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그녀의 찬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겨울 방학이 되었다. 나는 진구를 데리고 서울 우리 집으로 갔다. 진구가 나를 구해 준 일을 들은 서울 식구들은 진구를 마치 전쟁 영웅처럼 대우했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진구의 손을 만지면서

그래 이렇게 작은 손으로 우리 미래를 구했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나는 진구와 다른 두 남동생들을 데리고 롯데월드를 갔다. 서울의 두 동생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진구에게는 놀람과 흥분을 안겨주는 신천지였다. 계속 입을 벌리고 감탄하는 진구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허리가 아플 정도였다. 경복궁과 63빌딩 남산타워, 에버랜드, 청계천, 남대문시장, 등등 며칠 동안 서울 동생들과 서울을 한 바퀴 돌고 나더니 진구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인천 월미도와 내친 김에 강화도까지 갔다 왔다. “ 바다마다 냄새도 다르고 빛깔도 다른 것이 너무 신기해요. 그래도 나는 태어나고 자란 남쪽 바다가 좋아요.” 진구는 천성적으로 밝고 사교적인 아이였다. 채 열흘도 안 되는 동안 동생들은 진구에게 푹 빠져서 함께 있을 때는 마치 친형제 같았다. 오히려 내가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다시 학교로 내려오는 열차 안에서 진구는 다시 말이 없었다. 차창 밖을 응시하는 진구의 여윈 옆얼굴이 자신의 행복을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크게 웃거나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진구에게나 나에게 삶은 반드시 고통이어야 하고 고행이어야 했다. 우리는 아플 때 오히려 마음은 편해지는 별종들이니까. 정말 드문 일이지만 어쩌다 한 번 느끼는 기쁨이나 행복은 고통이나 시련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나는 진구가 가여워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지만 끝내 그 아이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했다. 나는 바보 같은 정미래 라는 인간이 더 미워지고 넌더리가 났다. 다시 학교로 내려와서 보내는 긴 방학동안 진구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진구네 집에 가도 진구는 잠깐 나와 인사만 하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진구가 요즘은 말도 잘하고 진희하고도 잘 놀아주는데 왜 미래선생만 오면 저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네. 겨우 나아지는 놈을 보고 다그칠 수도 없고 미래선생이 이해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진구가 나를 쳐다보는 눈길도 예전과 비슷했다. 마치 투명인간을 보듯이 나를 통과하여 벽 너머 아득한 세계를 보는듯한 그 눈길은 어둡고 슬픈 느낌을 주었다.

겨울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날은 겨울비도 부슬부슬 내리면서 강풍이 불었다. 이 남쪽 나라는 눈이 없는 곳이었다. 교무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미친 것처럼 날뛰었다. 큰 파도가 바다를 감싸고 있는 작은 동산 중턱의 바위굴까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따뜻한 난롯가에 푹신한 1인용 소파를 끌고 와서 거의 누운 자세로 소파에 깊숙이 기대고는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수 없이 읽은 <에드가 알란 포우>의 단편집을 또 읽고 있었다. <어셔가의 몰락>을 읽으면서 그 미친바람과 파도소리를 들으니 소설 속의 음침함이 현실로 옮겨온 것처럼 으스스했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편했다. 저주 받은 <어셔가>의 불행한 남매이야기가 절정에 이르고 그들의 고풍스러운 대저택이 벼락에 맞아 늪 속으로 가라앉는 그 부분을 일고 있을 때 교무실 문이 드르륵 급하게 열렸다. 거기에는 커다란 우의를 입은 채로 진구가 서 있었다. 나는 소설 속의 장면과 현실이 오버랩 되면서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놀라 쳐다보고 있는 사이 진구는 비옷을 벗어 버리더니 쏜살 같이 달려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나 진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진구도 빨랐지만 나도 달리기에서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비바람이 거세서 달리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어느새 진구는 방파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비에 젖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제치고 다시 바라보았을 때 방파제를 때리는 커다란 파도가 보였다.

진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망설였다. 저 파도치는 방파제로 보이지도 않는 진구를 찾으러 가는 일이 무모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진구는 이미 파도에 휩쓸려가 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 몸이 와들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눈 앞에 새파랗게 질린 채 차 바퀴 쪽으로 떨어지던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췌장암으로 죽어가던 어머니의 여윈 얼굴이 떠올랐다. 숨겨둔 빙초산 병이 빙빙 맴을 돌았다. 나는 정신없이 방파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파도가 쳐서 몇 번을 넘어졌다. 나는 진구를 불렀지만 파도소리 때문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에 도착하니 등대 아래 있는 작은 문이 열렸다.

선생님 빨리 들어오세요.”

진구의 목소리였다. 나는 얼른 등대 안으로 들어갔다. 진구가 말없이 등대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진구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등대 제일 꼭대기에 도착하니 흠뻑 젖은 진구가 열쇠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지금 살아 있는 거 맞아요.”

아니야 우린 죽었어. 여기는 지옥이야. 나나 너처럼 나쁜 짓한 사람들을 제대로 벌주는 등대 지옥이야. 열쇠는 어떻게 구했어.”

선생님 같은 사람은 설명해 줘도 모를 걸요. 어쨌든 이 등대는 내 거니까 안심하세요.”

말을 하면서도 진구는 계속 바다를 보고 있었다. 지금은 무인 등대로 자동으로 불을 켜고 끄는 이 등대는 한 때는 사람이 관리하던 등대여서 내부가 제법 넓었다. 추운 날씨에 비까지 맞았으니 너무 추워서 곧 얼어서 동상이 될 것만 같았다. 진구는 등대 벽에 붙어 있는 작은 장롱에서 이불을 꺼냈다. 오리털로 만들어진 이불로 몸을 꽁꽁 싸고 앉으니 조금 견딜 만 했다.

라면 끓여 줄까요.”

등대 안에서 따뜻한 라면을 먹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진구는 어디서 조그만 전기난로를 꺼내왔다.

여긴 없는 게 없구나.”

내가 여기 드나드는 것 아무도 몰라요.”

밖을 내다보니 파도는 여전했다. 나는 안도감이 밀려오자 심한 피곤을 느꼈다. 다리를 펴고 오리털 이불을 돌돌 감고 눕자 나는 한 마리 애벌레같이 되었다. 진구가 웃으며 나를 툭툭 찼다.

웬 벌레가 이렇게 커지.”

이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당하고도 나는 너무 피곤해서 화도 낼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었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나려고 하다가 데그르르 굴러 등대 벽에 부딪혔다. 진구가 손뼉을 치면 웃었다. 진구는 이불을 머리 위에 올려 뒤집어쓰고 등대 유리창에 바싹 붙어 바다를 보고 있었다.

너 오늘 죽으려고 그랬니. ”

어머니 때문에 살아줄려고 그랬는데 잘 안돼요. 특히 오늘 같이 날씨가 안 좋으면 더 그래요. 이런 날씨가 죽기에 딱 좋잖아요.”

그런데 왜 이 등대로 들어 왔지.”

모르겠어요. 죽고 싶어 죽겠는데 죽으려고 하면 또 살고 싶어져요. 저 미친 놈 맞죠?” “면도칼은 버렸니.”

아니요. 참 우습죠. 죽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건데 그걸 보면 오히려 살고 싶어져요. 면도칼은 제가 살고 싶어서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웃기죠.”

버리지 않은 빙초산 병이 생각났다.

선생님 죽으면 정말 지옥이나 천국에 가게 될까요? 그러면 나는 지옥에 갈까요? 천국에 갈까요? 물론 나 같은 놈한테는 지옥이 어울리겠죠.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분명히 여기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곳이겠죠.”

나는 물끄러미 진구를 쳐다보았다. 3이면 숙성한 아이들은 남자 티도 나는데 진구는 골격은 단단하고 키도 큰 편인데 얼굴은 아직 어린애 같았다. 코 밑에 솜털이 보송보송해 보였다. 갑자기 진구가 턱 밑까지 다가와 속삭였다.

선생님 서울 선생님 댁은 정말 좋았어요. 선생님의 가족들은 참 좋은 사람들 같았는데 왜 선생님은 그 사람들과 그렇게 달라보였을까요. 그런데 선생님하고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져요. 선생님의 비밀은 뭐예요. 왜 선생님은 그 사람들처럼 웃을 줄을 몰라요?”

나는 진구를 바라보았다. 진구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진구는 말없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나는 흐린 창밖을 내다보며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졌다.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구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진수형이 생각이 안날 때가 더 많아요. 이젠 그 형의 얼굴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잊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잊어버려요. 이젠 어른들 말씀처럼 진수형 몫까지 내가 더 열심히 살면 되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드는 거예요. 선생님 저 진짜 나쁜 놈이죠. 이런 날은 더 미치겠어요. 바다에 확 들어가 버리려고 했는데 기막히게 여기 앉아서 저 뭐하고 있는 걸까요. 히히.”

그 애는 자기가 금방 한 말을 잊은 것처럼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은 것처럼 나로부터 무심하게 등을 돌린 채 창밖의 사나운 바다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진구의 등을 보며 태어나서 한 번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담담하게 익숙한 시를 암송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진수야 그 날은 아카시꽃이 눈처럼 휘날리던 꿈결처럼 아름다운 봄날이었어. 나는 너무 행복해서 슬픔이나 불행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백치 같은 아이였단다. 그 날 어리석은 내가 동생을 데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동생은, 그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그 괴물 같은 붉은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다가왔을 때 사촌 언니의 어깨에서 떨어지는 동생 대신 내가 차바퀴 밑으로 들어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약한 내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병적인 상태로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었다면 엄마는 다시 일어설 수도 있었을텐데. 나 때문에 동생이 죽었고 그렇게 다정하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영원히 헤어졌고 결국 나 때문에. 어머니도 췌장암에 걸려 돌아가셨던 거야. 모든 게 나 때문이었어. 그런데 그들은 죽었고 나는 지금 살아있어. 나를 더 미치도록 힘들게 하는 사실은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럴수록 죄책감만 더 무거워지고 있다는 거야.”

당연히 우울해야 하고 실제로 늘 우울한 나는 <모파상>을 좋아하고 <에드가 알란 포우>를 좋아했다. 그들은 다 정신병 때문에 죽었다.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 아니면 정신병에 걸리기 전에 빙초산을 마시는 편이 나을까. 나는 등대 벽에 기댄 채 추위에 떨면서 계속 모파상과 포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구는 혼자 등대 내부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서성대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보니 4시가 넘었다. 바깥을 내다보니 벌써 어둑어둑 해지고 있는데 비는 그치고 바람도 조금 약해진 듯했다. 진구와 나는 말없이 방파제를 걸어 나와 각자의 집으로 갔다.

진구는 B시에 있는 해양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리고 진구네 가족도 도 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아마도 진구를 위해 떠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공부를 더 해보기로 했다. 나는 곧 이 나라를 떠날 것이다. 낯선 나라에서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정미래가 아닌 다른 사람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떠나야만 한다. 낯선 이국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나는 더 고독하고 왜소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떠나야만 한다. 내 속에 고여 썩어가던 상처들이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터는 작업이 거기서는 조금 수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조심스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의 속 어디선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리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흐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이름: 심명희(, 54)

연락처:010-2345-3152

주소: 포항시 남구 상도동 상도로543-5

  • profile
    korean 2017.02.27 21:27
    잘읽었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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