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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마지막 인터뷰



 아주 오래전 그날, 문득 나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그때의 내 나이 다섯 살이었다. 다섯 살인 나는 호기심이 많았다. 그냥 지나쳐 가도 될 것을 모든 것들은 내 손을 한 번씩 스치고 가야 했다. 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도, 발에 밟히는 작은 돌들도, 작은 생명체들까지, 나는 내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느껴보길 좋아했었다. 그 느낌을 글로 옮기고 싶었으나, 그때 나는 글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림으로 그 모든 걸 표현했지만, 아무도 내가 느끼는 그 순간의 희열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어느 날은 나보다 훨씬 키가 큰 미루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는 걸 보고 그 반짝이는 햇살을 손으로 느껴보기 위해 나무를 탄 적이 있었다. 미루나무를 올라가는 건 쉽지가 않았다.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떨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결국 나는 팔, 다리에 상처가 가시질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왜 그렇게도 미루나무에 올라가길 바라는지 물었다. 햇살을 잡기 위해서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어 보이셨다. 햇살을 잡을 수는 없는 거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벌써 그 햇살을 잡았다고 어머니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나는 그 햇살을 내 손에 가득히 담아내었다. 아직도 그 느낌은 신선하다.

 

  어머니는 도화지 위에 무수히 많이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궁금한 듯 물었다.

  “원아, 이건 무엇을 그린거야?”

  “하늘을 나는 벌. 이건 민들레꽃이구, 이건 하늘, 이건 미루나무, 이건 개똥, 이건 죽어가는 개미야. 누군가 밟았어. 그래서 이렇게 쓰러져 있는 거야. 엄마! 왜 사람들은 작은 걸 잘 못 봐? 매의 눈으로 보면 개미는 죽지 않았을 텐데......, 개미가 죽어서 친구개미들이 슬퍼해.”

 

  내가 그린 그림을 어머니는 한참을 들여다보셨다. 도화지 위엔 복잡하고도 그럴듯하게 모양을 갖춘 여러 가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큰 미루나무 밑에 개똥이 있고, 한 마리 벌이 꽃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미루나무 주위엔 민들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파란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그리고 죽은 개미 주위에 다른 개미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길게 누군가의 발자국 모양을 그려 넣었다. 그 발자국이 개미를 죽인 범인이다. 어머니는 내가 그린 그림을 한 참을 들여다보셨다. 그리고 생각하셨겠지. 다른 아이들이랑 틀리다. 우리 원은 다른 다섯 살 또래아이들보다 훨씬, 아니 그 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나는 개미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드디어 움직임이 멈춰버렸을 때,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사라진 그때 왜 하필이면 나는, 오줌을 싸 버렸을까? 내가,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함 들이 내게 치를 떨게 했다. 처음 나는 두려움에 맞서 싸워야 했다. 처음 공포란 것을 느꼈고, 가슴에 아픈 통증이 밀려오는 것도 느꼈다. 나는 그 슬픔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었다. 도화지위에 까만 구름을 그려 넣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내 기분은 먹구름이 잔뜩 낀 그것과 같았다. 나는 아팠던 것 같다. 딱히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고,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때 내 나이 다섯 살, 다섯 살은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 내야하고, 어떻게 밖으로 드러내야 하는지 모르는 나이였다. 나도 그랬다. 복잡한 기분을 표현해내기란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자주 울었고, 침대에서 나오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걱정이 되셨는지 나를 꼭 안아주셨다.

  “엄마, 엄마도 죽어?” 내가 말했다.

  “그건 왜 묻지?”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던 손을 멈춘 채 말했다.

  “나는 죽는 게 싫은데, 왜 모두들 다 죽는다고 하는 걸까?”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말했다.

  “원아, 누구든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순 없어. 모두들 죽지 않고 살아만 있다고 생각해봐. 그럼 세상은 어떨까?” 어머니는 손으로 뜨개질실을 쉴 새 없이 놀리며 말했다. 그래도 시선은 내게 고정한 채였다.

  “큰 지구가 작아져. 사람들이 많아서 숨을 쉴 수가 없대.” 나는 정말 사람들이 많아져 지구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괴로운 듯 말했다.

  “그래, 맞았어. 원이 말대로 지구가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래서 모두들 바라지 않아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거야. 원이가 제일 좋아하는 에디슨도 이 세상에 없지?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어머니는 마치 내가 에디슨 밖에는 모르는 아이처럼 말했다. 아니, 어머니는 문득 떠오른 사람이 에디슨이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 할머니도 이 세상에 없다. 그치 만 할머니는 웃는다. 매일 웃는다.” 나는 말해놓고 곧 후회했지만, 할머니께서 괜찮다고 웃고 계셨다.

  “원아,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가 웃는다구?”

  “, 할머니는 매일 웃어. 죽었는데, 살아있는 것처럼 행복하시데.”

어머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내가 아끼는 왕 구슬처럼 아주 커다랗다. 그리고 그 눈빛에 두려움과 호기심과 불안함 들이 가득히 담겨져 있다.

  “원아, 그걸 어떻게 알아? 원이 꿈속에 할머니께서 찾아오셨구나.” 어머니는 마치 그럴 거라고 단정 지은 채 말했다.

  “아니야, 꿈이 아니야. 나는 할머니를 늘 보는 걸, 내가 보고 싶어 하면 언제든 내 곁에 나타나. 이젠 아프지 않다고 했어. 또 웃는다.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가만히 웃고만 계셨다. 기억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편안해 보였다.

  어머니는 나를 들쳐 업고 곧장 병원으로 가셨다. 내가 한 모든 얘기들이 어머니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병원에서도 딱히 어디가 아프다거나, 이상하다거나 하는 진단이 나오지 않자, 어머니는 나를 업고 옆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무당집을 찾았다.

  “혹시, 이 아이가 신기가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어 왔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두려웠던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습관을 보였다.

무속인은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한쪽 입을 치켜 올리며 비웃듯 웃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웃음이 나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뭔지 모르게 낯설고, 뭔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신기는 아무나 오는 게 아니야. 데리고 가.”

  “그게 아닙니다. 이 아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과 말을 해요. 그렇지? 원아?”

나는 어머니의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답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니라고 답해야 하는 건지......,

  “이것은 신기가 아니야. 이 아이의 영혼이 맑기 때문에 찾아오는 거지. 이것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가 없어. 아무리 용한 사람이 퇴치를 한 다해도 들어 먹히질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법이 없는 건가요? 이 아이의 몸속에 흔히 말하는 귀신이 붙은 것 인가요?”

  “그런 건 아니야. 차츰 사라질 수도 있고, 계속 머물러 있을 수도 있겠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오는 길에 여름 바람이 싱그럽게 불었다. 바람은 내게 다가왔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팔을 뻗어 바람을 느꼈다. 어머니의 등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얇은 흰 블라우스가 나의 온기로 인해, 내리쬐는 태양으로 인해 젖어 들어갔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무엇 때문에 흐르는 눈물인지 모른 채 나는 그저 울었다. 어머니의 손에 땀이 흥건해서인지, 내 엉덩이를 받힌 깍지 낀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어머니는 나를 다시 들쳐 업고 길을 재촉했다.

  나는 집에 들어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좀 전에 느꼈던 불안함 들을, 무속인 을, 바람을, 어머니의 젖은 등을, 어머니의 눈물을, 내가 흘렸던 눈물을 그렸다. 어머니는 물끄러미 내가 그린 그림들을 바라보셨다. 그리곤 힘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원아,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엄마가 네게 거짓말을 한 것도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왜 말을 하지 않았어? 왜 한 번도 아빠는 도화지에 그리질 않았어? ?” 어머니의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 내렸다.

  “아빠가 원하질 않는다. 그러면 엄마가 운다고 했어.” 나는 주문처럼 말했다. 누군가 내게 지시를 내려 말을 하는 것처럼......, 생각이란 것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질문에 답 만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원아, 정말 미안해. 원이 눈에는 아빠가 보여? 왜 아빠는 엄마한테는 나타나질 않으실까? 엄마도 아빠 보고 싶은데 말이야. 아빠 모습은 어때? 잘 계셔?”

  “아빠가 나를 보고 웃는다. 엄마도 본다.” 또 다시 나는 주문처럼 말했다. 어머니는 여기 저기 아버지의 어떤 흔적을 찾기라도 하는 듯이 두리번거렸다.

  “아빠는 어떠셔? 그곳에서 행복하신 것 같니?” 엄마는 이제 내 말을 완전히 믿는 것 같았다. 엄마는 좀처럼 두 손을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뭔가 불안하고, 긴장하면 나타나는 습관들......,

  “! 조용이해. 아빠가 이제 돌아가야 한대. 떠들면 안 돼. 시끄러우면 아빠는 가지 못해.” 아빠는 내게 뒷모습만 보이며 서 있다. 나는 그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빠가 그런 나를 보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계속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빠는 어디로 가시는 거야? ?” 엄마는 간절히 물었다. 손은 여전히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말하면 안 돼. 아빠가 비밀이라고 했어. 어른들이 알면 안 되는 세상이라고 했어. 엄마두 알면 안 돼. 엄마두 어른이잖아.” 나는 말하고 싶었지만, 아빠가 바라질 않으셨다. 아빠는 아주 좋은 곳에 계시는데, 그것을 말해버리면 나를 찾아오는 길이 사라지고 만다고 하셨다.

  “그래, 알았어. 원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아빠와의 비밀은 지켜야 하니까......,”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많이 서운한 것 같았다. 아빠가 내게만 찾아오고, 엄마한테는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엄마는 나를 안고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가 캐나다라는 나라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는 내가 어디에 가서든 기죽는 걸 원치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시골로 내려왔는지도 모른다. 도시 사람들과 섞이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시골 사람들은 우리 아빠가 캐나다에 계시다고 하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캐나다 어느 도시에서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시는 것까지 궁금해 한다.

  “울지 마, 엄마.” 나는 가만히 엄마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엄마가 내게 하던 것처럼......,

  “너를 어쩌면 좋겠니? 네가 많이 힘들까봐 걱정이 돼. 원아, 힘들면 엄마한테 언제든 말해. ?”

무엇이 그렇게도 걱정이 된다는 거였을까?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알지 못했다. 내가 죽은 영혼들을 볼 수 있고, 죽은 영혼들과 말을 섞기도 한다는 것이, 그게 왜 날 힘들게 할 거라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외롭게 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나는 원하지 않았으나, 그것들은 서서히, 때로는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일분, 일초가 사라지고 없는 지금의 시간들,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작은 시간들이 크기를 더해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시간들이 영영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한 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지는 태양을, 그 곁을 물들이는 노을을, 내 팔을 간지럽게 하고 달아나는 바람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그대로 그 모든 걸 슬프게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가끔씩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하다가도 공허한 느낌에 한동안 꼼짝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 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었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허전함 들이었다. 익숙함이 사라지고 없는 때에 그 느낌은 곶 장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늙거나 병들어갈 수 있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져 갈 수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살았다. 어찌, 내가, 나라는 인간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가 가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더 실감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늙고, 병들고 나약해져 가더라도 나는 피해갈 것이다. 꼭 피해갈 것이다. 내게는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게 주문을 걸어서라도 그 모든 것들에게서 피해가고 싶었다.

  처음 내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리를 다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도 세상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위험요소들과 부딪히는 일이 수없이 많이 찾아 올 거라는 걸......, 그래서 더 겁이 났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도 깨달았다. 깨달음이 곧 슬픔을 만들어 내었다.

  나는 쓸쓸했다. 쓸쓸 함들을 누군가와 함께 덜어도 되건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누군가와의 인연을 쌓지 않았다. 그 인연으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해가 들어오는 창가에 시선을 두고 계셨다. “어머니, 약 드셔야죠?”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창가에 그대로 시선을 둔 채 말했다. “탁자에 놓고 가. 이따 먹을게.” 어머니는 이따가 먹는다고 말했지만, 먹지 않고 버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어머니를 일으켜 세워 약을 입에 넣어드렸다. “약이 쓰다.” 어머니가 말했다. “약은 원래 써요.” 나는 말해놓고 후회했다. 냉정한 인간......, 어머니는 풋 하고 웃었다. 그 웃음이 기쁨의 웃음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돌아서 어머니의 침실에서 나왔다. 나는 밖으로 나와 상쾌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어머니는 알고 계신 것 같았다. 곧 기억이 완전히 멈추게 되고, , 오줌도 못 가리는 어린아이로 변해갈 거라는 걸......, 아마도 그래서 더 약을 드시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날이 빨리 찾아오는 게 내게 덜 미안할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씻지 않았다. 씻겨드린다고 해도 마다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어머니의 방문이 살짝 열리기라도 하면 그곳에선 이곳과는 다른 세상의 향기가 번져 나왔다. 그곳과 이곳, 그 차이가 나와 어머니를 낮선 이를 대하듯 멀어지게만 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어머니의 침실로 향했다. 이곳의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전쟁을 나가는 사람처럼 침실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향기. 두렵고 까마득한 미래의 향기......, 나는 맡아지는 그 냄새를 꽃향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워도 죽음의 향기는 꽃향기가 될 수 없다. 나는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약 봉지가 가득했고, 탁자위에 놓인 두루마리휴지를 잘게 찢어 놓은 게 가득했다. 어머니는 얌전하게 치매가 온 것이라고 이모가 전화로 말했다. 한번 찾아오시고, 그 뒤로 찾지 않았다. 안부 전화도 없었다. 다들 그렇게도 바쁜 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전화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머니의 식사를 차려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점심 겸 저녁이었다. 어머니는 허겁지겁 입속으로 음식을 넣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 식사라도 되는 듯이......,

  “천천히 드세요. 밥은 많아요.” 내가 말했다.

  “지랄, 나쁜 새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제 나타나? 썩을 놈의 새끼......,” 어머니는 생전에 하지도 않은 말들을 내 뱉었다. 나쁜 말은 입을 더럽게 하고, 그 소리를 본인이 가장 먼저 듣고 인식해서, 본인이 하는 욕은 본인에게 하는 것이라고 늘 말하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지금 아픔으로 인해 변해가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치매가 걸리는 건, 삶을 살면서 고단했던 시절을 다 보상받기 위해서 걸리는 병이라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병에 걸리게 된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어머니는 고아였다. 아버지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와 오래도록 함께 하지 못했다. 곧이어 할머니께서도 세상을 등지셨다. 할머니도 치매였다. 언제 죽음의 길로 들어설지 모르는 일이기에 어머니는 동네 사진관에 가서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었다. 가는 내내 할머니는 밖의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그렇게도 간절히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 할머니께서도 아셨을 지도 모른다. 이 길을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어머니는 그 많은 세월, 혼자서 견디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벅차고 고단했을까? 그 고단한 시간들을 내게 보상받고 싶었을까? 나는 지친다. 차라리 내가 그 병에 걸려 천천히 세상을 등져버리는 게 낮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손에 묶여있던 끈을 풀어드렸다. 그러자 또 시작이다. 기저귀를 빼내고, 베개를 내게 던지고, 이불을 돌돌 말아 무엇인가를 만들고, 욕을 하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동네 사진관을 찾았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도 밖의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너무도 그윽하게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어서, 나는 눈물이 났다. 사진관에 도착해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자, 아저씨는 쓸쓸히 웃으셨다. 의자의 뒤 배경이 쓸쓸한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어머니를 의자에 앉히고 영정사진을 찍는 기분, 어머니는 그저 카메라를 조용히 응시한 채 살며시 미소 지었다. 찍지 않겠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느낌으로 아는 것일까?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어도, 이 사진이 마지막을 장식 할 나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걸, 아는 것일까? 나는 가슴이 아파, 큰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아팠다. 영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곡을 하는 영혼들의 슬픈 아름다운 소리......, 곧 올 것 같았다. 어머니를 데리러......,

  누군가를 본다는 것, 소름끼치게 무섭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왜 내게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죽음의 싸늘한 냄새가 맡아졌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왔다. 내가 두 눈을 뜨고 있는데도, 여전히 내가 어머니를 품에 안고 있는데도, 그들은 내게서 어머니를 데리고 갔다. 어머니의 몸은 싸늘히 식어있었고, 영혼의 어머니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가지 말라고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입을 다문 채 살았다. 누구하고도 말을 섞기가 싫었다. 나는 그때, 죽은 영혼들을 보고, 그 영혼들과 대화를 했다. 그 영혼들은 나를 보고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 영혼들과 끝없는 대화가 끝이 나고 나면 며칠째 않아 누워야만 했다. 내안의 기가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사라지곤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은 곳에 계시지 않은 것 같았다. 항상 같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해도 두 분은 따로 따로 나타나셔서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언젠가부터 목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언젠가부터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선생님께도 꾸중을 들었고, 쉬는 시간이면 나를 빙 둘러 서서 모두들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두려웠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꿈틀거렸다. “네 아버지는 자살이 아니야. 농약을 먹인 건......,” 나는 말해놓고 손으로 입을 거칠 게 틀어막았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나를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뒤로 계속 나는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학교 수업도 해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집으로 향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 막막했다.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너무 고단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검정고시로 고등교육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학비를 마련했다. 일을 하는 동안은 시계만 바라보았다. 오늘도 하루가 빨리 흘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방바닥에 등을 기댈 여유조차 없었다. 편해지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얼굴을 묻고 잠시라도 눈을 붙였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다.

  그녀다. 언젠가 나를 위해 기꺼이 함께 그 모든 것들을 달게 같이 받아주었던 사람......, 잠깐 학교에 머물러 있을 때, 아무도 나를 위해 선뜻 나서주는 이가 없었다. 그녀는 달랐다. 선생님께도 바른 소리를 하는 아이였다. 지도자로서의 경우까지 따지고 드는 아이였다. 결국 그녀는 나대신 두들겨 맞았다. 처음이었다. 나를 위해 그렇게 나서주는 이는......, 나는 맞고 있는 그녀의 등을 안았다. 우리는 같은 감정으로 모든 걸 같이 느끼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같은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걸 나는 온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지금의 세상에서 잠시 벗어난 기분......, 선생님은 내 등을 발로 걷어찼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냥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나를 미친 새끼라고 욕을 해대며 쉴 새 없이 발길질이 이어지는 동안 그녀도 악을 쓰고 덤볐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어떻게 소녀의 몸으로 그 모진 매를 견뎌낼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내 기억의 그녀는 공부도 꽤 잘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선생님께도 예쁨을 독차지 하는 아이였다.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끝이었다. 학교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까......, 아는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잠에서 깬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다. 커다란 눈동자도 긴 머릿결도......, 당찬 모습도......,

나는 피식 웃었다. 그녀도 나를 보고 따라 웃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알아봤는지 알아?” 그녀가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는 간절히 궁금했다. 이상하게도......,

  “본인의 습관은 모르는 법이지. , 예전에 잠깐씩 졸 때 보면 말이야, 왼쪽으로 머리를 향하게 하고, 오른쪽 발을 흔드는 습관이 있었거든. 그런 습관들은 흔하지 않으니까, 혹시나 해서 봤는데, 원이 너잖아. 정말 오랜만이다.”

그때의 기억들이 싫어서일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너무 고단해서일까? 나는 그녀를 잊고 지낸 것 같다. 아니 잊었다. 살기 바빴으니까......,

  나는 그때 간절히 슬프길 바랐던 것 같다.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슬픔이란 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양한 반응과 다양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슬픔을 맞이했지만, 결국 남은 건 슬픔뿐인 이별이었다. 나는 그 이별이 주는 슬픔들을 가슴깊이 빨아들였다. 아름답다. 늘 이별을 준비해야하는 나는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가득 찼다. 때론 하나의 별만이 빛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울었다. 어차피 한번은 죽어야 한다. 나도 죽는다. 슬프다. 아니, 아름답다.

  “그래, 오랜만이다.” 내가 말했다. 말해놓고 보니 나는 그녀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내 이름이나 기억해?” 그녀가 말했다.

  “글쎄......,” 그녀는 나를 읽고 있다는 듯 내 두 눈동자를 번갈아 보았다.

  “글쎄라는 말, 이럴 때 써먹기 좋네. 하하긴 머리를 귀로 넘기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본인의 이름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 해 내길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헤어지기는 섭섭하다며 내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 그녀도 함께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겨울비가 내렸다. 아주 천천히, 살며시 적시고 가겠다는 듯 소리 없이 그것은 내려앉았다. 비와 상가에서 비춰 내리는 조명으로 인해 모든 것이 빛이 났다.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금요일이었고, 비도 적당히 오고,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조금씩 늦추었다. 그래서인지 포장마차는 붐볐다.

  “오서오세요아주머니는 쟁반에 물이 가득 든 물 컵 두 개와 소주잔 두 개를 들고 오며 말했다.

  “뭐 먹을까?” 내가 말했다.

  “글쎄......,” 그녀가 비 내리는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소주 한 병이랑 우동하나, 꼼장어 주세요.” 나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말해버렸다.

  “여그는 꼼장어 없는데유. 계란말이 맛있게 해줄 테니 그거 자실래유?” 아주머니가 말했다.

  “, 맛있게 해주세요.”

  그녀는 여전히 얇은 비닐로 가려진 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여전히 보슬 보슬 내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머리가 보슬비로 인해 젖어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살며시 떨렸다. 나는 점퍼를 벗어 그녀의 어깨위에 덮어주었다.

  “고마워. 좀 춥네.” 그녀가 말했다. 여전히 시선은 밖을 향하고......,

  누군가와 닮았다. 나는 생각해내려 하지 않았지만,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 어머니. 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영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영혼의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영혼은 드물게 내게 나타났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척 외로웠다. 영혼이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습관처럼 담배를 찾았다. 점퍼를 그녀에게 걸쳐주었다는 걸 알고는 이내 포기했다.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밖을 향하고......,

그녀는 왜 나를 따라 내렸고, 이곳에 왜 왔는지 이유를 망각해 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 반갑고, 들뜨고, 할 말이 너무 많아 마구 쏟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말을 아끼는 사람처럼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담배가 자꾸 당겼다.

  “미안하지만, 거기 왼쪽 주머니에 담배 좀......,” 말해놓고 좀 민망했다.

  “, 그래그녀는 왼쪽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내게 건넸다. 그리고 다시 시선은 밖을 향하고......,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길게 한 모금 들이마셨다. 어떤 기분도, 어떤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담배라는 녀석에게 그저 위로를 받는 것뿐이다. 나는 다시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인 뒤 도넛을 만들어 공중에 띄워 보냈다. 그녀가 나를 본다. 이제야 그녀의 시선이 내게 머문다. 그녀가 웃는다. 그녀의 손가락이 춤을 추듯 도넛을 향해 날아온다.

  “멋지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여러 번 도넛을 만들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손가락도 춤을 추었다.

  “저기......, 미안해. 아직도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어.” 가득 채워진 소주잔을 들며 내가 말했다.

  “소은이......, 이소은그녀의 시선은 또 밖을 향하고......,

  “예쁜 이름을 가졌네. 그렇게 예쁜 이름을 왜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지?”

  침묵.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밖을 향하고......,

  “밖에 뭐가 있어? 왜 그렇게 시선을 못 거두는 건데?” 계란말이를 한입 베어 물며 내가 말했다.

  “고양이......, 고양이가 있어. 저기 검정색 그랜저 있지? 그 밑에 있어. 이렇게 날씨도 추운데 죽으면 어떻게 하지?” 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밖에 두고 말했다.

  “그러게......, 저들도 어떤 방법으로 겨울을 나는 법을 알고 있을 거야. 우리처럼......,” 내가 말했다.

  “좀 전에 저쪽 프라이드가 주차하고 가니까 그 열기에 몸을 녹이려고 했던 것 같아. 그 열기가 겨울바람에 식어버리니까 또 다시 주차하고 가는 차를 찾아나서는 거야. 벌써 그랜저가 세 번째야. 불쌍해.” 그녀는 말해놓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여전히 시선은 밖을 향하고......,

  얼큰하게 술이 오르니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그녀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예뻤다. 그녀가 길을 건넌다. 나는 멍하니 그녀가 하는 그대로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그랜저 밑을 보고 있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길을 건넜다. 그리고 그녀처럼 그랜저 밑을 보았다. 고양이가 반짝이는 두 눈을 껌벅이며 두려운 듯 이 야옹 하며 울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더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이 야옹 하며 울었다. 이울음. 어디서 많이 듣던 이울음......, 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고양이는 버둥대며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놓아줘. 싫어하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녀가 말했다.

  “느낌으로 알아. 이 녀석은 버림받은 녀석이야. 또 다시 버림받고 싶어 하지 않아. 그냥 놓아줘.” 그녀의 품에서 고양이를 빼앗으며 내가 말했다.

  “이리 줘. 그러지마. 버리지 않으면 되잖아.” 그녀가 내 품에서 고양이를 빼앗으며 말했다.

  “처음엔 다들 그렇게 말하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해내는 것처럼......, 금세 질리는 것도 사람이고, 질리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야. 사람은 그래. 지금의 마음으로 말하지 마.” 내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녀의 눈물이 비와 함께 섞여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빛이 났다.

  그녀의 품에서 해방이 된 고양이는 어딘가를 향해 질주했다. 자유를 찾았다는 듯이......, 분명 그 고양이는 행복할 것이다. 또 다시 버림받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가 계속 운다. 무엇 때문에 흘리는 눈물인지 몰라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오래도록 고양이가 건너간 저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울어서였을까? 아니면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의 입술에 오래도록 키스를 했다. 그녀는 당황한 듯 했지만, 슬픔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내가 하는 그대로 있어주었다.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의 타액을 전부 다 빨아들이겠다는 듯 키스를 나누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 그녀를 바래다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하곤 돌아섰다. 나는 그래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걷던 걸음을 멈춰 세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데려다 주지 않아도 돼. 혼자 갈 수 있어.” 그녀가 말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야.” 내가 말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너희 집에 가도 돼?”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녀의 머리가 비로 인해 젖어 들어갔다.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사실 그녀와 헤어지기가 싫었다. 그냥 해 본 소리였다. 그녀가 내 질문에 괜찮다고 말해주길 기대하면서. 남자는 다 그렇다. 도둑놈......,

  “나도 너처럼 혼자 살아. 그런지 오래되었어.” 그녀가 말했다.

  “그럼 같이 갈래?” 내가 말했다.

 

  그녀와 나는 길을 걸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그렇게 길을 걸었다.

집에 도착해 대충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 커피 두 잔을 타서 테이블에 앉았다. 궁금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말했다.

  “?”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너의 대해 아는 게 없잖아. 나는......,”

  “나두 너의 대해 아는 게 없네.”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살았어?” 내가 말했다.

  “네가 사라지고 없던 그때, 나두 학교를 나왔어. 엄마는 아빠 때문에 집을 나가셨고, 아빠랑 같이 살았는데, 아빠마저 돌아가시게 되니까 살 길이 막막하더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도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게 다가오나 봐. 얼마나 원망하며 산 세월인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립기도 하더라. 그래도 아빠는 나를 버리지 않았잖아. 아무것도 해준 것 없었지만, 내 곁에 있어준 유일한 사람이니까......,”

  “너와 나는 비슷한 게 참 많네. 그때 왜 그랬어?” 내가 말했다.

  “?” 내 질문이 맘에 들지 않아서일까, 그녀는 짧게 말했다.

  “그때 말이야. 날 위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됐잖아. 너만 그랬어. 아무도 날 위해 나서주는 이가 없었는데 말이야. 너와는 말 한번 섞지 않은 사이인데 말이야.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좀 감동받았었어. 고맙단 말도 못했네.” 내가 말했다.

  “모르겠다. 습관이었던 것 같아. 아주 자연스러운 습관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나게 되지. 아빠가 이유 없이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나는 항상 엄마를 안고 있었거든. 그 습관들이 그때 어김없이 찾아왔었나봐.”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여전히 비는 내리고.

  “원아, 아까처럼 도넛 만들어봐.” 그녀가 창밖의 시선을 거두고 나를 보며 말했다.

  “도넛? 담배를 피우란 말이야?” 내가 놀란 듯 물었다.

  “, 아까 신기하더라. 좀 멋있기도 했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길게 빨아들인 다음 천천히 도넛을 만들어보였다. 그녀는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그녀가 내게서 담배를 빼앗아 입으로 가져간다. 나는 말렸지만 그녀는 나처럼 도넛을 만들어 보겠다고 애쓰고 있다. 애쓰면 애쓸수록 기침은 더해가고 눈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는 바닥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곳에 무엇이 가득히 펼쳐져 있기라도 한 듯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문득 나는 이대로 눈을 감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라는 게 두렵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아주 잠시 사랑이라는 감정이 꿈틀거리고, 혹시 이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일까? 나는 두렵지 않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영혼을 본다.” 고개를 그녀에게 돌리 며 내가 말했다.

  “영혼? 죽은 사람을 본 단 말이야?” 그녀도 내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난 그래. 믿지 않겠지만......,”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말했다.

  “그런가? 어릴 때 말이야. 그땐 왜 그랬을까?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날 두렵게 했어. 특히 죽음이란 것 말이야. 나는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죽는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지. 죽음 뒤의 세상이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고, 죽은 뒤에도 영혼은 살아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지.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죽음 뒤의 펼쳐질 세상은 어떨까? 죽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고통스러울까? 아니면 편안할까? 늘 그것이 나의 숙제였지. 그렇게 꼬마였던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이 죽음이었다면, 알만하지? 그래, 난 행복하지 않았어. 행복이 뭔지도 몰랐던 것 같아. 언젠가부터 영혼이 내게 찾아오고, 영혼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두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러면서 말을 하지 않게 된 거야.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을 다 내뱉어 버릴 것만 같았어. 누구에게든 내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어줄 이가 없었지. 외로웠던 것 같아. 그동안......,”

  그녀가 나를 본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안아주었다. 그녀의 품속에 안겨 내내 울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준 유일한 그녀가 그저 고마웠다.

밖에는 여전히 겨울비가 내렸다. 묵직한 느낌......, 아마도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겨울은 너무도 시리고 시려 가벼운 느낌은 아니라는 것 때문일까? 새벽이 오고 있음에도 새벽빛은 먹구름에 가려 모든 걸 상실해버린 느낌이다.

  상실감......,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사는 게 무엇일까? 예전엔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처럼 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그 뒤엔 커다랗게 상실감이 밀려왔다. 조금 내 마음이 자란 후에는 그저 살아졌다. 살아지고 또 살아졌다. 죽음이 두렵기만 하던 그때 아무 의미를 두지 않고 어떤 지향도 두지 않고 하루를 버텼다. 버티다 보면 나이가 들고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상을 등지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맞서야 된다는 것도 알았다. 여전히 나는 많이 두렵다. 내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이, 내가 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 어떠한 것도 흉내 낼 수 없는 무서운 상실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 곁에 있는 지금 나는 그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진 상태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똑같은 하루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곁에 그 누군가를 위해 용기를 내는지도 모른다.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사는 동안 언젠가는 그리운 날들도 만날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 흘리는 날들도 만날 것이다.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을 만들어내고, 그 슬픔에 주저앉게 되더라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추억일 뿐이라는 걸......, 그때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생을 마감할 때가 다가오면 지금의 이 기분도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신은 그렇게 인간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죽음이 닥쳤을 때,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편안함과 휴식처를 그때 내어줄 것이다. 나는 안다. 곧 영혼의 인터뷰도 끝이 날 거라는 걸, 내게 영혼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내가 깨달음을 얻을 동안 그것은 내게 찾아왔었다는 걸......,

 

 

 

   

 

 

 

 



  • profile
    korean 2014.11.25 09:53
    영혼, 저승, 죽음...
    미지의 세계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지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존재들...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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