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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있는 집



 형체는 완벽해졌다. 숨이 자꾸 멎는다. 눈동자가 날 향해 걸어온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귓가에 가까워지는 귀신의 소리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검은 그림자가 내 품에 피어난다.

포코가


그르렁

 

소리를 내며 나를 긴장시킨다.

눈동자는 날이 선 눈빛으로 나를 힐긋 쳐다보고는, 포코에게 날아가 흩어졌다.

검은 그림자의 머리에는, 혈관이 터질 듯한 기분 나쁜 두 눈만이 덜렁거리며 꺾인 팔을 요란하게 휘두르며 고개를 뻣뻣하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키힉힉

 

웃어대며 나를 내려다본다.

 

 부모님 품을 벗어나 새집에 이사를 오게 된 지 3, 나는 어둠을 싫어하지만, 이 집은 반지하 원룸이다. 보증금과 월세, 즉시 입주가 가능하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급하게 들어왔다. 어찌 보면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늦깎이로 입대 후 제대를 하니, 내 또래 친구들은 벌써 독립을 했고, 대부분 직장에 다녀 나 스스로 스트레스에 빠져들어 도피했다. 사실 쪽팔렸다. 큰소리 떵떵 치며 내가 하고 싶은 일하겠다고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지 않고 길거리에 액세서리 노점을 차렸다 쫓겨나 망한 뒤 술만 퍼마시다 입 대를 한 일이 내무반에서 잠을 청할 때도 떠올랐다. 제대 후에도 마찬가지로, 3주째인 지금도 캐드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을 때에도 생각이 난다. 축축한 습기가 온몸에 스며들 것만 같고, 내 손에 경멸감이 들어 반지 긁는 줄질은 더 거세져만 갔다. 이 장소가 나쁘지는 않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다고 하더라도, 혼자 고립되어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나 혼자 온 것도 아니다. 15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한 우리 강아지 포코도 함께 왔다.

이 녀석 또한 집에서는 나와 같은 처지나 마찬가지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할머니, 털은 처 음 분양해 왔을 때보다 뻣뻣해졌고, 똑똑하다고 간식 주면 재주 부리던 그 모습은 잊히고 지금은 늙은 개가 되어버렸다. , 오줌 가리지 못해 아버지에게 구박받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내가 데리고 와버렸다. 군 생활을 할 때, 죽을 줄만 알았던 녀석이 지금까지 살아있다.

오라 손짓하면 달려오던 녀석이, 이제는 온종일 잠만 잔다. 자도 자도 잠만 잔다. 곧 죽을 것 같은 가파른 숨을 내쉬지만, 숨소리를 듣고는 아직 살아있구나 하며 안도감을 느끼고 다시 작업을 한다.

 군대에 있을 적에는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 ·고등학생 때 집을 비워 수학여행을 갔을 때에 도, 그 때에는 검은 형체만 보였지만, 이 집에 이사 온 뒤로 부터는 형체가 점점 뚜렷해져간다. 어렸을 때부터 기가 허하다’, ‘보약 지어라’, ‘몸이 약하다등 많은 잔소리들을 들었지 만 귀신은 없다. 악몽은 그냥 악몽일 뿐, 기분 나쁘긴 하지만 요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작업량이 늘어 피곤한가보다.

 아무 생각 없이 작업을 끝마치고 시계를 보니 오전 321분이다. 호흡이 가파른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누워있다. 이사한지 1~2주 째는, 이유식 같이 사료를 말아주면 먹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도통 생각이 없나보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낑낑대는 강아지의 신음소리가 들릴 때 차라리 안락사를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극구 반 대하고 집으로 데려온 날을 되돌아보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을 수도 있다. 편안히 보내주는 길일 수도 있었지만, 15년의 때문에 죽음을 볼 자신이 없다. 포코를 꼭 끌어 안으며 잠에 들었다.

하얀 꿈이었다. 눈을 떠보니 아직도 포코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 녀석의 품은 항상 따뜻하다. 나이 먹을수록 살이 쪄 푹신하기도 하다. 빠진 털 사이로 보이는 갈색 점들이 또 잠을 깨운다. 오늘은 그 형체가 꿈에 나오지 않았다. 삽살개가 귀신을 쫓는다는 미신이 있다는데 그게 진짜일까 하면서도 관심 없다. 귀신은 없다. 나는 종교도 없다. 있다 하면 차라리 나를 믿는다.

 기분 나쁜 악몽도 꾸지 않았을 겸, 냉장고에 사놔둔 통조림을 다 먹어버리고, 마침 쌀도 떨 어져 2주 만에 피난처를 벗어나 마트로 향한다. 사는 목록은 항상 같다. 고추참치 통조림, 참 치 통조림, 식빵, 철원 오대쌀 10kg, 등등.. 그리고 새끼 강아지가 먹는 간식도..

치약처럼 짜주는 간식인데, 냄새를 맡아보고 고개를 들고 천천히 혀를 내밀었지만, 역시 먹 지 않는다. 점점 아파하고 있다.

 오늘도 작업을 몰두하고 시계를 보니 322,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관심없 다. 내 할 일을 다 마쳤으니.

 

까드득 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포코는 아니다. 이빨도 형편없이 다 빠져버렸으니. 악몽이 시작되었 다. 검은 형체의 머리에 사람 눈의 형태가 나타났다. 흐릿한 검은색에서 이제는 뚜렷한 검은색에 눈을 가졌다. 점점 뚜렷해져간다. 겁이 나지만 이건 악몽일뿐, 아침이 되면 까마득히 잊고 내 할 일을 할 것이다.

  검고 긴 밤을 보내고 나서야 아침이 왔다. 일어나보니 포코가 이불에 실례를 해놨다.

내 몸에 묻진 않은 것 같지만, 찝찝해 이불을 빨아버리고 샤워를 했다.

검은 밤을 물로 씻어내린다. 몸에 있는 독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 너무 오랜만에 씻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이다. 하얀 꿈을 꾼지 4일이 지나 이제는 4주째 이다.

포코는 이제 똥·오줌도 싸지 않고, 금방 넘어갈듯 한숨만 내쉰다. 4일 연속으로 악몽을 꿨 다. 검은 형체의 눈은 이제 뚜렷해져 보통 사람 눈동자의 5배 크기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 속에 빠져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혈관은 또 터질듯 튀어나와있고, 이제는 손까지 생겼다. 오늘이 4주째를 시작하는 첫 밤. 이번 주만 버티면 나 혼자 한 달을 지낸 것 이다.

이런 날에 별로 의의를 두지 않지만, 단체 생활을 하다 혼자 있으니 은근히 기분이 좋다.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누구도 날 간섭하지 않는다.

짜증나는 것은, 매일 밤을 이 검은 형체에 시달린 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봐왔으니, 형체가 점점 뚜렷해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귀신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그 사실을 파헤쳐 볼 것이다. 오른손에 모나미 볼펜을 쥐고 잠에 든 뒤, 꿈이 아니라 현실이면 왼손에 선 하 나라도 긋기로 마음 먹고 잠을 청했다.

 

까드득 까드득, 뿌드득 까드득

 

 

이 기분 나쁜 소리가 점점 귓가에 가까워졌다. 검은 형체는 거꾸로 내 위에서 눈 웃음을 지 고 있었고, 나는 이것이 가위나 꿈이길 바라며 얼른 오른손을 움직여 펜 촉으로 왼손바닥을 그었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깼다. 포코의 숨이 가파르다. 곧 죽을 것만 같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지,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지 생각하며 쓰다듬어 주려다 왼손에 있는 펜의 흔적을 발견한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잊고 있던 사실이 있다. ‘검은 형체의 뒤로는, 매일 내가 잤던 그 날 모습 그대로, 누워 있 던 상태에서 눈만 뜨고 있었는데 난 이게 가위눌린 줄 알고 있었다. 가위 눌리면 움직이지도 못한다는데, 매일 잘만 움직이고 귀신을 쳐다봤다. 이제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매일 매일 귀신이 나타난 것이다. 포코가 귀신을 쫓았나 하며 생각해보니, 떨어져 잘때에만 악몽을 꾸었고, 지금은 강아지가 많이 아파 헛것을 보나보다.

 하루가 지나며 형태가 더 뚜렷해 질수록 강아지의 건강은 더 나빠져만 갔고, 내 머리에는 오직 강아지가 죽지 않기만을 바라며, 죽으면 다른 삽살개를 사야지. 라는 생각이 맴돈다.

자기 전에는 검에 잠식해버려 포코를 꽉 끌어안아 잠에 든다.

 

이제는 꽉 끌어안고 자도 악몽을 꾼다. 매일같이. 검은 형체의 손이 내 머리를 부여잡고

 

까드득 까드득

 

소리를 냈다. 무섭다. 어둠이 무섭다. 귀신이 무섭다. 겁에 질린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통이 왔다. 청소하는 사람인데, 개 시체를 왜 여기다 버리느냐고.

내 옆에서 자고 있는데 무슨 소리느냐 하고 옆을 봤더니 그 녀석은 역시 자고 있다.

따지러 갔더니, 내 번호가 남겨있는 개 목줄을 나에게 넘겨주었고,

 

강아지들은 원래 주인 앞에서 안죽어

 

하며 시체를 치웠다고 했다. 포코의 목줄이 맞긴 하지만, 포코는 집에서 자고 있다.

 

형체는 완벽해졌다. 숨이 자꾸 멎는다. 눈동자가 날 향해 걸어온다. 눈 앞이 캄캄해지며, 귓 가에 가까워지는 귀신의 소리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검은 그림자가 내 품에 피어난다.

포코가

그르렁

 

소리를 내며 나를 긴장시킨다.

눈동자는 날이 선 눈빛으로 나를 힐긋 쳐다보고는, 포코에게 날아가 흩어졌다.

검은 그림자의 머리에는, 혈관이 터질 듯한 기분 나쁜 두 눈만이 덜렁거리며 꺾인 팔을 요란하게 휘두르며 고개를 뻣뻣하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키힉힉

 

웃어대며 나를 내려다본다.

 


약냉방칸


지하철을 탈 때마다 생기던 설렘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위압감과 중압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 복잡한 버스 노선도 보다 쉬운 지하철을 선택한 것이 실수다. 의자가 마주 보고 있는 지하철보다 앞만 보고 가는 버스가 더 편하다.

 

며칠 전 쳐다봤다는 이유로 자기에게 시비를 건다던 한 남성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일이 계속 생각난다. 그 남자가 무섭지는 않았다. 소리치자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봐 그 자리를 뜨고 싶었을 뿐이지. 근데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도 나를 계속 쳐다본다. 내가 정면을 응시하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언짢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차피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 내가 편한 곳에 시선을 둔다는데, 왜 눈치를 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하철만 타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거나 잠을 잔다. 책 읽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광고판에는 고개를 세워 주변을 관찰하라고 쓰여 있지만, 광고판 잠깐 보고 다시 휴대전화기를 보는 사람들만 수두룩하다. 다음 정거장까지 대충 2분 정도 남은 것 같다. 내 마음대로 쳐다보고 내릴 것이다. 휴대전화기만 쳐다보고 있기가 너무 갑갑하고, 목이 아프다. 창문 너머 바깥을 바라보고 싶다. 잠깐만 보고 내리면 되는데, 내 앞의 여자가 못마땅하다는 듯 나를 쏘아본다. 내가 더 기분이 나쁘다. 공주병인가, 얼굴이 더럽게 못생겨서 인상까지 쓰니 더 꼴불견이다. 눈이 마주쳐 인상을 찡그리고 일어서 내릴 준비를 했다.

 

앞뒤가 안전문으로 닫힌 환승역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바닥에 흰 연기를 내며 타고 있는 담배꽁초를 보았다. 필터까지 타들어 가고 있어 이제 곧 꺼질 것 같다. 짜증이 솟구친다. 기분 더러운 여자부터, 개념 없는 흡연자까지.

 

짧은 시간에 쉽게 기분이 더러워지는 지하철이다. 자리가 꽉 차면 그냥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들,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여자들, 싸우는 사람들. 너무 싫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인가 하고 넘어가지만, 지하철 환승역에서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는 것은 처음 본다. 그것도 누가 피다 버린 담배꽁초를. 환기가 잘 안 돼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빨리 다음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려야겠다. 그냥 담배꽁초를 지나쳤지만, 혹시 나로 의심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출근 시간이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한적하다. 바로 자리에 앉았다. 매일 서서 가는 이 길을 앉아서 가니 편하다. 시선을 마음대로 옮겨도 뭐라 할 사람이 없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계속 신경 쓰인다. 담뱃갑을 계속 구기며 자기네 집 안방처럼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있고, 풀어헤친 남방, 러닝셔츠, 반바지에 다리털이 굵게 올라와 있다. 내 예감으로는 이 사람이 담배를 피고 꽁초를 버린 것 같다. 확실하다. 쳐다보다 괜히 곤란해질 것 같아 휴대전화기로 시선을 옮겼는데, 이 아저씨가 일어나서 다른 칸으로 가버렸다.

 

이 칸에는 이제 두 명밖에 없지만, 다음 역이 환승역인 가산 디지털 단지 역이라 많은 사람이 탈 것 같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릴 때 유리창 너머로 줄을 서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훤칠한 키에 천진한 눈,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마 주름, 균형 잡힌 몸매에 세련된 코트까지 입어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모델 에이전시 일을 하며 잘빠진 녀석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그들 모두 악랄했다. 고등학생 한 명은 집에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해서 투자 가치가 꽤 높았지만, 반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니던 양아치 중 한 명이었다. 있는 집 자식이 더 그런다고, 괴롭힌 일을 반성조차 안 하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관찰해보고 잘생긴 외모로 내면에 무엇을 숨기고 있을지 파악을 하고 난 뒤 명함을 건네주어야겠다.

 

손잡이를 잡은 손을 보니 뽀얗고 여자 손같이 곱다. 뒷모습이지만 뒷모습만으로도 매력이 있다. 허리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경쾌한 역삼각형의 형태, 완만하게 둥근 어깨의 꽉 찬 양감, 마르지도 꽉 차지도 않은 팔 근육이 코트의 모양새를 자아내고 있다.

 

계속 보고 있던 찰나, 사람들을 가르고 손수레에 밤 깎는 가위를 실은 아저씨가 지나간다. 불법행위지만 1호선을 타면 하루에 3~4번씩은 꼭 보는 사람들. 젊은이들은 역시 힐끗 쳐다보고 자기 할 일을 한다. 나이 많은 할머니나, 아저씨 정도 돼야 물건을 살까 말까? 하지만, 저 밤 깎는 가위가 잘 팔릴지는 미지수이다.

 

저 물고기는 떡밥을 어떻게 물까, 그냥 지나칠까, 뭐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굳이 물건을 살 필요는 없다. 역시 힐끗 쳐다보고 고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정거장이 두 번 지나가고 나서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그리고는, 바닥을 기는 걸인 한 명이 나타났다. 깔깔이도 아닌 것이, 누리끼리하게 변질하여 등에는 구멍이 나 청테이프로 도배해놨지만, 그 위로 솜인지 털인지 삐져나와 보는 사람을 더 안쓰럽게 하고, 왼쪽 손이 팔꿈치밖에 없어 올라타 있는 바퀴 달린 널빤지를 오른손으로만 움직이며 구걸하러 다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사람들 한 명씩 살펴보며 웃는다. 천천히 앞으로 널빤지를 끌며 물고기에게 다가간다.

 

물고기는 돈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 걸인들이 나쁜 사람이라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심리로 삶을 살아왔고, 본성이 착한 놈인지 알아야 믿고 발탁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 시장의 심리다. 물고기가 떡밥을 물었다. 코트 속 주머니에서 장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걸인에게 주고는 냉소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시선을 옮긴다.

 

저 차가운 웃음은 무엇일까? 걸인에게서 우월감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원래 웃음이 저런지. 천진한 눈에서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니 무섭다. 다 똑같다. 재수가 없다. 대어라고 생각했지만, 포기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보기로 했다.

 

흑인 차별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뜬 기사 제목이 길거리서 알몸으로 맞는 흑인 영상에 사회 충격'제노비스 신드롬' 확산 우려이다.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흑인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가 폭력배에게 20달러를 빚졌다는 이유로 폭력배에게 발가벗긴 채 허리띠로 무자비하게 매질을 당하는 동영상인데, 낮에 벌어진 폭력사건이지만 목격하고도 증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악행에 직면했을 때 침묵을 지키는 것도 악행에 동참하는 것

 

이라는 피해자의 말이 있다. 남이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고 못 본 척 방관하는 것, 바로 제노비스 신드롬이다. 1964313일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살해되 35분간에 걸친 사건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모두 38명에 달했는데도 누구 하나 제노비스를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뉴스를 보자마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칸의 인원은 총 몇 명일까?. 한 명 두 명 세어보니 나를 포함해 45명이다. 노란 중절모에 오른손에는 자일리톨 껌 5개를 들고 왼손으로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노인이 등장했다.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홍해가 갈리듯이 사람들이 갈라지며 하모니카 소리가 나 분명 구걸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헤드셋이 연결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젊은 학생을 지나치고, 아줌마와 아이에게 다가가 껌을 내민다. 불고 있던 하모니카를 떼고,

 

한 개 천원.”

 

이라며 낮게 깔린 힘 없는 목소리로 하모니카를 잡은 손을 내밀었다. 아들로 보이는 아이의 눈치를 보던 아줌마는 갈색 구식 핸드백에 손을 집어넣어 뒤적이다 낡아빠진 분홍색의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노인에게 주었다. 노인은 굽은 허리를 더 밑으로 내리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다시 하모니카를 입에 댄다. 그리고는 앞으로 간다.

 

아직 내리지 않은 물고기가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돈이 많아 보였는지, 아예 그에게 시선을 고정해 다가가는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오천 원 짜리를 꺼내며,

 

“4개 살게요, 잔돈은 필요 없어요.”

 

라고 말을 한다. 노인이 인사를 하자, 노인만 한 다리만 남기고 고개를 숙인다.

 

냉소한 웃음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자아내는 미소는 천진한 눈에서 나오는 웃음은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이다. 하얗고 정갈한 이를 드러내며 이번에는 양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하얀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앞에 자리가 나 있는데도, 앉지 않고 계속 서 있는 물고기를 더 관찰하기 위해 그 자리로 향했다. 물고기의 바로 정면에 마주 서는 것이다. 내려서 다시 타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내 자리 쪽문은 4-3, 물고기 옆의 문은 4-2이다. 내려서 4-2에서 타면 되는 쉬운 방법이다.

 

지하철에 다시 올라타 물고기 앞에 앉았다. 내리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탄 사람도 나밖에 없어 가능할 수 있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유일하게 비어있는 자리었는데, 서서 가는 사람은 5명 정도 되었지만, 왜 아무도 물고기 앞에 앉지 않았을까? 그를 올려다보니 그는 나를 깔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딴청을 피운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인상을 쓰며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정면만을 응시하며 나를 외면했다. 옷매무새를 살피니 역시 모양새가 살아 있다. 마치 그에게 옷이 맞춰져 있다는 듯이, 클래식하게 입은 옷을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가 완성하고 있다. 역시 잘생긴 외모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계속 쳐다봐 피한 것이라 추측을 해본다.

 

코트 왼쪽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으니, 지갑이 있는 것이고, 오른쪽 주머니에는 뭐가 들어있길래 흔들릴 때마다 오른쪽 안주머니를 만지는 것일까? 계속 살펴보았지만 알 수가 없다. 오른쪽 주머니만 축 처진 걸로 보아 무게가 있어 보인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만 잡고 있는 그를 덩치 한 명이 툭 치고 지나간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철로 된 무언가만 집으려고 하는 물고기가 눈에 거슬렸다. 무엇이길래 저렇게 소중하게 다루는 것인지, 사람들에게서 숨기는 것인지…….

 

무심한 듯 힐끗 주운 물건을 쳐다보니 잭나이프다. 요즘 등산이나 캠핑가는 사람들이 많이 챙겨간다지만, 이 친구는 호신용으로 챙긴 것인지 기념품인지, 소중하게 다루는 물건인 것 같다.

 

물고기는 칼에 아무런 흠집이 없는지 남들 눈치를 보며 두리번거리다 칼을 위아래로 살펴본다. 그러다가, 자일리톨을 산 엄마의 아이가 물고기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 멋있는 칼이다!”

 

일제히 사람들이 일어나 물고기를 경계하다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끼리 수근덕 거리며 그에게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일에 관여되고 싶지 않아 알아서 해명하겠지 하는 태도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바로 해명을 했다.

 

아 이건.. ”

 

순간 칼날이 펴지며 칼끝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닙니다!! 칼이 펴진 건 실수에요! 반자동 방식이라. ”

 

아이의 엄마가 그의 말을 끊고, 위험한 사람이라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 모두 수긍하는 눈치다. 어리둥절한 얼굴은 당황한 그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동그란 원을 그려 둘러싸고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아까 그를 치고 지나간 덩치가 들어왔다. 못마땅하다는 듯 물고기를 쏘아보다가, 광기 어린 눈,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칼로 뭐하게? 이 씨발 살인자 새끼야!!”

 

물고기는 황당한 표정으로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그에게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칼을 계속 쥐고 있던 오른손 때문인지, 덩치가 그에게 재빠르게 다가가 어깨를 돌리며 주먹질을 할 자세를 펼친다. 주먹을 날리던 순간 멈춘 것처럼, 정적이 흐르며 사람들 모두 넋 나간 듯 덩치만을 바라보았다. 물고기가 칼로 덩치의 목을 찌른 순간이었다.

 

 

소리를 내며 박힌 칼이 바로 피 분수를 만들어 내며 빠졌다. 창가로 흩어지며 달라붙는 핏방울들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눈을 가려주는 아줌마가 보였다.

덩치는 그대로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덩치를 바라보는 물고기는 기겁해 뒷걸음질을 치다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고 꿀꺽, 침을 넘긴다. 2~3명의 사람은 혼비백산하게 달아났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굳은 듯 멍하니 물고기만을 바라보다가 화가 나 그에게 따지듯이 소리쳤다.

 

살인자!”

 

하지만 물고기는 눈만 끔벅끔벅하며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엉성한 소리에 말소리가 묻혀 귀가 막힌 듯 말들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이때에 내 눈에 띈 건, 숨을 헐떡헐떡 거리며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목에 손을 올리는 덩치였다. 경동맥을 빗겨나간 것인지, 피를 그렇게 쏟아내고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이 신기할 나름이었다. 입에서는 또 피가 쏟아지고, 눈은 반쯤 풀려 지하철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물고기를 둘러싼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도 놀란 나머지, 일어나보니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일어나 주변을 살피고 인터폰을 집어 바로 신고를 했다. 덩치는 지하철 문에 기대어 두 다리를 펴고 삐딱한 자세로 목을 붙잡고 있었다. 아무도 덩치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음 정거장으로 와 문이 열리고, 덩치는 그대로 문밖으로 쓰러졌다. 어깨를 경계로 목부터 지하철 밖으로 삐쳐나가 있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잠시 안내방송 드리겠습니다. 앞차와의 간격 유지를 위해 이번 역인 화서역에서 5분간 정차하겠습니다."

 

평소 방송 때와는 격양되고 떨리는 어조의 짧은 방송이 나왔다. 간격 유지는 무슨, 지하철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이 와중에 물고기는 칼이 떨어진 위치로 넋을 놓고 걸어간다. 사람들의 손가락질, 웅성거리는 소리에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다. 해명하기를 포기했는지 칼 앞에서 주저앉는다.

 

사람들 틈 사이로 공익요원 두 명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달려가는 그 둘의 꽁무니를 쫓아온 구경꾼 몇 명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덩치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창밖으로 보였다. 경찰이 오지 않고 왜 니들이 오느냐 따지는 중년 남성의 말에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경찰대가 경기지역에는 열여섯밖에 없어 다른 지역에 가 있다는 것이다. 웃기게도 의정부역에서 지금과 같은 칼부림 사건이 먼저 일어났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시설 치안이 이 정도 밖에 안됐다니.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물고기에게 공익 요원들이 슬며시 경계를 보며 다가간다.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는지, 급하게 보내진 것이라 어리바리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인지, 어찌할 줄 모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사람들은 또 공익요원들에게 눈을 부리라며 소리를 쳤다. 물고기가 일어났다. 고개를 숙인 채 입으로 무어라 중얼거리지만 시끄럽게 소리치는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들리지가 않는다. 시끄러운 소리에 미쳐버렸는지 목이 찢어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실수라고!. 씹새끼들아! 내 말 들어보기나 했냐고오!!"

 

정적이 흐르고 경찰이 왔다. 힘이 다 빠져 보이는 물고기는 수갑을 채워달라는 듯이 두 손을 모았지만, 곧바로 넘어지며 퍼덕이다가 등 뒤로 넘어간 손이 수갑에 묶이며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생각했던 찰나, 써늘한 바닥에서 식어버린 덩치가 눈에 보였다. 아직도 구급차가 오지 않았다. 아니면 아무도 누군가 칼에 찔린 사람이 있다고 신고하지 않았다. 나마저도. 한 사람이 칼을 들고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지, 인터폰을 든 순간에 칼에 찔린 덩치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갑자기 울컥하며 미안하다가도,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신고를 했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더 커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있는 내 양심에, 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덮고 뒤 돌아 지하철을 바라봤다.

 

4-3으로 와 내렸나 보다. 덩치 머리 위에는 4-3이라 쓰여 있는 화살표가 있었고, 넋을 놓고 지하철만 보던 사이 들것에 덩치가 실려갔다. 문 한쪽을 잡고 얼굴만 속으로 들여다보며 사람들 숫자를 세어 보았다.

 

"1, 2, 3……. 37"

 

38명이 아니다. 나도 모르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며 멈춰 섰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닫힌 문의 창에 내 얼굴이 비쳤다.

 

"38"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이 감정에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쇠에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얼굴 밑으로 보이는 노란 스티커에는

 

'약냉방칸'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신창행 열차는 기관사만 태우고 출발해 버렸다.

겨울에 약 냉방 칸은 별로 상관이 없는데…….

 

 

응모자:이남주

전화번호:010-5384-4826

이메일:promulgate@naver.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 profile
    korean 2014.11.29 18:03
    흥미를 끄는 작문실력을 갖췄군요.
    시간을 내어 꼼꼼하게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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