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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1 11:46

피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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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임 금지법


대학교 일학년인 딸아이가 임신을 했다. 아내가 할 말을 있다고 하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알려준 것이었다. 대학교 일학년인 딸아이가 임신을 하다니 형민은 아내의 말에 깜짝 놀라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딸아이는 여름방학 중에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몇몇이 캠핑을 갔다가 그만 사고를 친 것이었다. 그런데 피임을 하지 않아서 임신을 한 것이었다. 딸아이와 사고를 친 남자아이는 그 사실을 알고 책임질 생각을 않고 군대로 내뺐다고 아내는 말했다. 형민은 아내의 말을 듣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대학교 일학년이기는 하지만 형민에게는 아직도 딸아이가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로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형민은 아내에게 물었다.

“선희는 어떻게 할 생각이래?”

아내가 한 숨을 내쉬며 형민에게 말했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래요.”

“그럼 미혼모가 되겠다는 거야?”

“네.”

형민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때?”

아내가 바로 말했다.

“저야 물론 반대죠. 선희의 미래를 위해서 당연히 낙태를 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런가.”

“그럼 당신은 선희가 아이를 낳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이에요.”

형민은 긴 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모르겠군.”

“설마 선희가 아이를 낳는 것에 찬성하겠다는 것은 아니죠?”

“선희도 이제 성인이야. 불장난으로 생긴 아이일 지라도 자신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잖아.”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어쪄려구요.”

“......”

“저는 선희가 그런 식으로 낳은 아이를 키워 줄 수 없어요.”

아내의 입장은 강경했다.

“그렇다고 선희에게 강제로 낙태를 하게 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형민은 아내와 대화를 끝내고 선희의 방으로 가 보았다.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선희의 방은 대학교 일학년 다운 방 꾸밈이었다. 형민은 선희의 방에서 나와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를 나갔다. 그리고 도로변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형민은 소주 한 병과 닭발을 주문했다. 소주가 먼저 나오자 형민은 잔에 따라 한잔을 마셨다. 그러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형민은 소주를 반병 정도 마시고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딸아이가 전화를 받자 형민은 말했다.

“어디니?”

“동아리 방이에요.”

“참 무슨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했지?”

“아빠는. 산악부요. 산을 좋아하는 아빠 때문에 가입한 거잖아요.”

“그래. 그렇지.”

딸아이의 목소리는 밝고 명랑했다. 형민은 딸아이와 오 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딸아이의 임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형민은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라.”

“네. 아빠.”

전화를 끊자 형민은 딸아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고민거리 하나 없어 보이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형민은 닭발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아파트로 들어왔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도 보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형민은 오늘 만은 아무 생각 없이 일찍 자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먼저 자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형민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술기운에 침대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십 년 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이년 전에 시작한 모임이었다. 민간 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형민은 그 모임의 회원이었다. 백여 명 정도의 회원은 삼사십 대가 주축이었다. 모임의 회원에 삼사십 대가 많은 것은 그들이 오십 년 후에도 생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미래에 관해서 관심이 많다는 증거였다. 올해 나이가 오십인 형민은 오십 년 후가 되면 백 살이 된다. 그때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은 낮겠지만 형민이 이 모임의 회원으로 가입한 것은 경제연구소의 연구원 일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회원의 직업은 다양했다. 특이한 것은 현역 정치인도 있었고 또 일부는 정치지망생이라는 점이었다. 토요일인 오늘은 약자로 이른바 오준모 산하에 있는 미래정책연구소의 5차 세미나가 열리는 날이었다. 세미나에 필요한 자료는 보름 전에 회원들에게 발송되었다. 세미나는 주제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면 찬성과 반대 입장의 토론자가 한명 씩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난 후에 백여 명의 회원들이 자유토론을 하고 나서 찬성과 반대라는 정책 투표를 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주제는 오십 년 후의 인구재앙과 정책대안이었다. 먼저 형민을 비롯한 회원들에게 발송된 자료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 한국사회는 저물가와 저성장과 그리 고실업이라는 디플레이션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오십 년간 고성장과 함께 했던 인플레이션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디플레이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것이었다. 거시경제학에서 인플레이션에 관한 연구는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디플레이션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의 시대를 대처하는 정책 연구도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제각기 한국 사회가 디플레이션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지만 매달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인 한국은행총재는 기자 간담회 때 마다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행총재가 직접 디플레이션의 시대를 선언하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디플레이션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사회는 지금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무상금식과 무상보육에서 시작된 논쟁은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를 놓고 정치권에서 뜨거운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십 년 후의 한국 사회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인가 아니면 디플레이션의 시대인가. 십년 후라면 모를까 오십 년 후의 한국 사회가 인플레이션의 시대인지 디플레이션의 시대인지 계량경제학적 방법으로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오십 년 후에는 인구문제가 가장 큰 경제적인 문제로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저출산의 늪에 빠져 있다. 한국 사회가 저출산의 늪에 빠져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양육에 필요한 사교육비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부모들은 아이의 양육에 필요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나면 노후대비도 힘든 실정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오십 년 후의 출산율은 인구가 감소하는 수준으로 까지 낮아질 정망이었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오십 년 후 한국 사회의 평균 수명은 백세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저출산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노동인구는 소수에 불과하고 일을 하지 않는 노령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인구의 급격한 저하는 인구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인구재앙이라고 불리는 초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인구의 절대적인 부족은 실업률은 낮아도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감소를 가져오고 세수의 부족으로 복지 국가의 실현은커녕 빈곤층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인구재앙을 피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은 무엇인가. 이것이 오늘 세미나의 주제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류 역사에 인구재앙을 피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팔백년 전의 남태평양의 파고스라는 섬의 사례였다. 팔백년 전의 파고스 섬은 대륙에 있는 나라들이 모두 남성 중심적인 사회였던 것에 반해 여성 중심적인 사회였다. 팔백년 전의 파고스 섬이 어떻게 여성 중심적인 사회가 되었는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날의 페미니스트들이 알면 열광할 정도로 파고스 섬은 여자들의 천국이었다. 파고스 섬의 여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남자들이 노동을 했다. 여자들의 지배 하에 있는 남자들은 노동을 해도 수확물을 가질 수 없었다. 남자들이 생산한 수확물은 여자들이 독점하였고 남자들은 먹고 살 정도의 수확물만 분배받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파고스 섬의 여자들은 섹스를 무척 즐겼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남자들을 선택해서 섹스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렇다보니 파고스 섬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파고스 섬에서 젊고 건장하고 여자들에게 매력적인 남자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 오직 여자들의 섹스 파트너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날의 매춘과는 달랐다. 이런 남자들은 여자들의 섹스 파트너였지만 노동을 하는 남자들과 똑같이 수확물을 분배 받았다. 그러니까 파고스 섬에서는 성을 사고팔고 하는 제도가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섹스를 무척 즐겼던 여자들은 그녀들만의 독특한 피임법으로 남자들과 섹스를 해도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고스 섬의 인구는 적었고 대륙의 국가들과는 달리 부족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들 중에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고 싶어 여자들이 있어서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여자아이를 낳으면 별 문제가 없으나 남자아이를 낳으면 열 살까지만 양육을 할 수 있었고 남자 아이가 열 살이 넘으면 집을 떠나 국가가 관리하는 제도가 있었다. 남자아이를 국가가 관리하다는 것은 아이의 특성과 자질에 따라 노동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전사가 될 것인지 또 여자들의 섹스 파트너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파고스 섬의 여자들도 조물주의 섭리에 따라 여자 아이를 낳을 가능성과 남자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반반이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 아이를 낳으면 노예나 여자들의 섹스 파트너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출산을 더 기피했다. 그 때문에 파고스 섬의 출산율은 무척 낮았다. 하지만 바다에서 잡는 풍부한 생선과 자연적으로 자라고 있는 섬의 열대과일 덕분에 소수의 남자들이 경작하는 수확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 여자들의 천국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파고스 섬에 위기가 닥친 것은 한국과 일본 정도의 거리에 있는 누리스 섬의 전사들이 침략했을 때부터였다. 파고스 섬과 달리 누리스 섬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였다. 누리스 섬의 남자들은 노동을 했고 전사로서 훈련을 받았다. 팔백년 전 대륙의 국가들처럼 누리스 섬의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양육을 하는데 전념했다. 결혼제도가 있었던 누리스 섬의 남자들은 섹스를 무척 즐기는 편이어서 결혼한 여자 이외에 다른 여자들과도 섹스를 많이 즐겼다. 파고스 섬에는 없는 매춘이 누리스 섬에는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매춘을 하는 여자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누리스 섬의 남자들은 파고스 섬의 여자들을 잡아오기로 결정했다. 파고스 섬과 누리스 섬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었다. 파고스 섬에도 남자 전사들이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스파르타식의 훈련을 받은 많은 누리스 섬의 많은 남자 전사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누리스 섬의 침략 전쟁으로 파고스 섬의 많은 젊은 여자들이 누리스 섬의 남자들의 성노예로 잡혀 가고 말았다. 그리고 소수에 불과했던 남자 전사들도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그런데 누리스 섬으로 잡혀간 젊은 여자들이 나이가 들어 성적 매력이 사라지면 누리스 섬의 남자 전사들이 또 침략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파고스 섬의 여자들은 회의를 열었다. 파고스 섬의 생존이 달린 회의에서 여자들은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파고스 섬의 여자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독특한 피임법을 포기하고 임신이 가능한 가임여자들은 모두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남자 전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누리스 섬의 많은 남자 전사들이 또 침략해 오면 속수무척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파고스 섬의 여자들은 전사로 키울 남자 아이들을 낳기 위해서 피임을 포기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년 후에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가임여자들은 계속해서 아이를 낳았고 누리스 섬의 침략에 맞설 많은 남자아이를 확보하였다. 십년 후에 누리스 섬의 남자 전사들이 또 침략을 해왔다. 2차 침략인 것이었다. 하지만 파고스 섬의 남자아이들은 전사가 될 만큼 성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노동을 하거나 여자들의 섹스 파트너였던 남자들을 전사로 키웠지만 누리스 섬의 많은 남자 전사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또 많은 젊은 여자들이 누리스 섬의 성노예로 잡혀 갔다. 그리고 또 십년이 흘렀다. 이제 파고스 섬의 남자아이들은 전사가 될 만큼 충분히 성장했고 누리스 섬의 남자 전사들처럼 스파르타식의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십년 전에 성노예로 잡아갔던 여자들의 성적 매력이 사라지자 누리스 섬의 남자 전사들은 또 파고스 섬을 침략했다. 3차 침략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젊고 고도로 훈련된 파고스 섬의 남자 전사들에게 대폐하고 말았다. 그 후로 누리스 섬의 남자 전사들은 다시 침략해오지 않았다. 파고스 섬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구증가와 유명무실했던 결혼제도가 확립되어 남자들은 노예생활에서 해방 되었다. 파노스 섬의 여자들이 피임을 포기한 결과였다.

오후 세시인 세미나 시간이 다가오자 오준모의 회원들이 하나 둘씩 세미나 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서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주고받고 나서 의자에 앉아 발송 받은 자료집을 다시 읽어보고 있었다. 형민도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의자에 앉았다. 주제 발표를 하는 시간이 되자 세미나 장은 백여 명의 오준모 회원들로 만석이 되었다. 사회자가 세미나 시작을 알리고 주제발표자를 소개했다. 회원들이 박수를 치고 나자 인구재앙을 주제로 한 발표자가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발표자는 먼저 현재 한국 사회의 저출산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저출산이 계속된다면 노동인구의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로 잠재성장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실질성장율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것은 곧바로 세수의 감소로 이어지고 재원의 부족으로 복지 국가를 실현하는 데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남북한이 통일 되더라도 오십 년 후에는 인구감소가 불보 듯 뻔하며 노동인구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마이너스 성장과 국민소득의 현저한 감소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것은 복지 국가를 실현하는데 엄청난 걸림돌이 될 것이며 대다수의 국민들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지난 오육십 년대의 보릿고개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오십 년 후의 초저출산율의 대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팔백년 전의 파고스 섬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국가가 피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혼한 젊은 부부들이 다양한 피임법으로 여자가 임신을 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는 것을 막으려면 피임 금지법을 입법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파고스 섬의 사례와 같이 결혼한 부부들의 아이 양육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양육을 원치 않는 부부들의 아이들은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국가 양육법이었다. 파고스 섬의 국가 양육법은 파고스 섬의 절대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주 효율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오늘 세미나의 정책 주제는 피임 금지법과 국가 양육법이었다. 주제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자 잠시 휴식시간으로 티타임이 이어졌다. 오준모의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주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티타임이 끝나자 이번에는 오십 년 후에 피임 금지법과 국가 양육법에 대한 찬성과 반대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찬성 토론자는 오십 년 후의 한국 사회가 인구재앙을 피하려면 파고스 섬의 사례와 같이 피임 금지법과 국가 양육법을 반드시 입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와 같이 아이를 낳지 않고 섹스는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물주의 섭리에 위반되며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은 피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찬성의 근거로 제시했다. 피임 금지법을 시행하면 섹스를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혼모가 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국가 양육법을 시행하면 오십 년 후에 미혼모라는 말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미혼모의 아이는 모두 국가가 양육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국가 양육법은 아이의 성장과정과 재능에 따라서 대학 교육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직업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것인지 등이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사교육은 완전히 사라지며 대학입시를 준비할 필요도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찬성 토론자의 발표가 끝나자 오준모의 회원들이 여기저기서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 토론자의 발표가 이어졌다. 반대 토론자는 먼저 피임 금지법이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아이를 낳지 않고 섹스를 즐기는 자유를 통제하는 것은 헌법의 여러 자유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 발표자는 피임 금지법의 대안으로 피임을 목적으로 하는 정관과 난관수술을 금지하고 콘돔과 같은 피임기구나 피임약의 가격을 높게 책정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부부들이 쉽게 피임을 못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가 아이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듣고 있던 회원들이 박수를 쳤다. 찬성과 반대자의 발표가 끝나자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자유토론은 오준모 회원이면 누구든지 자신의 주장을 발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유토론을 원하는 회원들은 손을 들었고 사회자가 지명을 했다. 첫 번째 자유토론자는 삼십대의 여자였다.

“김경란이라고 합니다. 주제 발표자와 찬성과 반대 발표자님들의 주장을 잘 들었습니다. 저는 먼저 피임 금지법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자유 의지를 침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임 금지법은 섹스는 하되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여자들의 자유의지를 침해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고스 섬의 여자들은 생존을 위해서 피임을 금지했지만 오십 년 후의 한국 사회는 초저출산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는 있어도 생존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피임 금지법은 여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생각해낸 남성 우월주의인 마cy적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의 말이 끝나자 다른 여자가 또 손을 들었다. 사회자가 지명을 하자 여자가 일어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최정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경란님의 주장을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피임 금지법은 섹스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마쵸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고 있고 헌법도 위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임 금지법의 대안으로 저는 혼인법을 주장합니다. 혼인법이 제정되면 오십 년 후에 독신생활을 즐기던 수많은 남녀들이 결혼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을 것이고 출산율도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남자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저의 이름은 장혁수입니다. 저는 최정아님의 혼인법 주장을 반대합니다. 혼인법을 입법화하면 강제결혼을 통해서 아이를 낳게 하겠다는 생각인데 이것은 결혼을 선택으로 생각하는 독신남녀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피임 금지법이 마쵸라는 남성 우월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여자만이 낳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이 내린 명령입니다. 또한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서 피임을 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임 금지법은 인구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반드시 입법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다른 남자의 주장이 이어졌다.

“강홍석이라고 합니다. 저는 피임 금지법에다 최정아님이 주장하는 혼인법도 입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추세대로 라면 오십 년 후에는 독신남녀가 넘쳐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섹스를 아이를 낳는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독신남녀들을 놓아두고 결혼을 한 부부에게만 피임 금지법으로 아이를 낳도록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말로 원 플러스 원 그러니까 피임 금지법 플러스 혼인법이 모두 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남자가 일어나 말했다.

“저는 강홍석씨님이 말한 피임 금지법과 혼인법을 입법화 하는 것을 모두 반대합니다. 강제적인 모든 법은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저는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아이를 낳으면 여자들은 모성애가 생깁니다. 모성애는 모른 사랑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자는 꾸준한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법제화는 부작용만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가 양육법은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파고스 섬의 사례는 이해가 되나 오십 년 후에 국가재정은 적자일 것이 뻔합니다. 정부가 빚에 허덕이며 국가 양육법을 실시한다면 국가가 파산하는 디폴트 사태가 올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계속해서 찬성과 반대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세미나 열기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형민은 자유토론자들의 주장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열다섯 명이 넘은 회원들의 자유토론이 끝나자 다시 티타임이 주어졌다. 회원들은 몇몇 씩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자신들의 의사를 개진했다. 하지만 형민도 다른 회원들과 커피를 마시면서도 말은 하지 않았다. 티타임이 끝나자 세미나의 마지막 순서인 투표가 진행될 차례였다. 투표는 비밀투표가 아닌 회원들의 찬성과 반대 손들기로 행해지는 것이었다. 사회자가 먼저 피임 금지법과 국가 양육법에 대해 찬성하는 회원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찬성을 한다고 손을 든 회원은 42명이었다. 이번에는 반대하는 회원들이 손을 들었다. 반대를 한 회원도 42명이었다. 그리고 기권이 7명이었다. 결론적으로 피임 금지법과 국가 양육법은 찬성과 반대가 동일해서 제정되지 못했다.    

형민은 오준모 회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반주도 한 잔하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내와 딸아이는 저녁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형민은 딸아이에게 세미나 자료집을 주며 말했다.

“선희야. 한번 읽어볼래? 선희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딸아이가 자료집을 뒤적이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아빠가 오준모 회원이라는 것을 선희도 알고 있지?”

“네. 오십 년 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요?”

“그래. 오늘 오준모에서 세미나가 있었는데 그 자료집이야.”

딸아이가 자료집을 뒤적이다가 말했다.

“피임 금지법이요?”

“그래. 오늘 세미나 주제가 피임 금지법이란다.”

“그런 법도 있나요?”

“지금은 아니고 오십 년 후에 있을 수도 있는 법이란다.”

“그렇군요.”

“내일 아빠와 도봉산에 갈래? 요즘 단풍이 절정일 텐데.”

“네. 좋아요. 아빠.”

“그럼 내일 산행을 하면서 피임 금지법에 대해서 아빠와 이야기를 해보자.”

“네. 알았어요.”

형민은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다음 날 형민은 아침 아홉 시 쯤에 딸아이와 전철을 타고 도봉산으로 향했다. 전철이 도봉산역에 도착하자 단풍을 구경하러 온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도봉산 입구로 들어가는 길은 가게에서 저마다 김밥을 말아 파는 여자들이 김밥을 사가라고 호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민은 딸아이와 먹을 도시락을 아내가 싸주었다. 도봉산 입구로 들어설 때까지 형민은 딸아이가 가입해 있는 산악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딸아이는 산악부에 가입한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히말라아도 등반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도봉산 입구에는 등산객이 많아서 줄을 서서 갈 정도였다. 형민은 딸아이와 가끔 가본 자운봉 정상 코스로 길을 열었다. 자운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처음에는 그리 가파르지 않았다. 형민은 딸아이와 단풍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 있는 천축사라는 절 근처에 다다르자 숨이 많이 찰 정도로 산길이 가팔랐다. 천축사를 지나서 마당바위 까지는 이십 여분만 더 오르면 되었다. 산을 오르며 형민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깔딱고개와도 같은 코스를 지나 마당바위에 도착하자 등산객들이 널찍한 바위에 많이 앉아 있었다. 자운봉 정상에 오르기 전에 쉬어 가는 곳이었다. 형민은 딸아이와 마당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나서 눈앞에 보이는 산등성의 단풍을 만끽했다. 호흡이 진정되자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피임 금지법 있잖아요. 어젯밤에 읽어 보았거든요.”

“그랬니? 선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지금 피임 금지법을 시행한다면 말도 안 되는 법이라고 사람들이 반대를 하겠지만 오십 년 후에 한국 사회가 인구재앙을 극복하려면 그런 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피임 금지법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니?”

“네. 아빠는 어느 쪽에 투표를 하셨어요?”

“아빠? 아빠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기권을 했단다.”

“왜요?”

“글쎄. 찬성을 하면 여성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인권문제가 있고 반대를 하자니 오십 년 후의 인구재앙을 극복할 뾰족한 묘안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그랬군요.”

“선희야?”

“네. 아빠.”

“아이를 낳을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거니?”

“네.”

형민은 산등성의 단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는 선희가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기 어렵구나.”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마음 이해해요. 피임을 하지 않은 저의 잘못이니까 제가 책임을 져야죠.”

“낙태를 원하는 엄마 마음을 선희가 이해해라. 선희도 엄마 입장이었으면 그랬을 거야.”

“네. 알고 있어요.”

“자, 자운봉 정상까지 가야지.”

형민은 마당바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딸아이와 함께 가파른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 도착하자 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형민은 딸아이에게 우리도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딸아이가 옆에 있는 등산객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형민은 딸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딸아이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형민은 먹먹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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