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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23:12

바다와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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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10시까지 와주시면 됩니다.”

문자를 확인하고 곧장 현관을 두드렸다. “누구세요?”라는 소리가 들리고 소녀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반겼다.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내 발걸음은 집안으로 향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차가운 공기가 집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안내를 받아 소녀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똑똑 소리에도 상당히 민감하게 소리를 지르며 반응했다. 다행히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심각했다면 물건을 집어던졌을 거다. 칼까지 들고 화를 내는 사람도 다수 목격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그녀는 내게 책상 위의 그 무엇이든 던지기 시작했다. 피하긴 피했지만 몇 개에는 맞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잽싸게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누그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그녀의 분노를 사그라트리는 것이 중요했다. 난 그녀를 완력으로 제압했다. 10대 소녀가 30대 남성을 이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녀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자 입으로는 분노했지만 어느 정도 분을 삭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눈매만큼은 어둡고 날카롭게 나를 노려봤다. 그녀의 손을 놓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씩 그녀의 분노가 잠잠해지자 그녀는 눈길도 거둬버리고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내게 던지는 바람에 바닥에 널 부러졌지만 노트북만은 그녀의 앞을 지켰다. 얼추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녀가 나처럼 작가를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요즘 민감하고 밥도 잘 안 먹으며 밤까지 샌다는 그녀의 행동을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아무래도 그녀가 슬럼프 기간에 들어선 것으로 생각됐다. 심각한 사람은 우울증에도 걸리고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슬럼프는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심각한 병이나 다름없다. 그녀의 눈빛을 보고 싶었지만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지희라고?”

형식적인 질문이었고 이에 지희는 전혀 반응조차 안 하며 오히려 들으라는 듯이 노트북 키보드를 세게 두드렸다.

그녀의 뒤가 아닌 측면에 앉아있었기에 그래도 그녀의 눈빛만큼은 볼 수 있었다. 상당히 어둡고 외로움에 허덕이며 짧은 조언이라도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눈빛이었다.

요즘 많이 힘들지?”

그 말과 함께 지희는 두드리던 키보드의 음량을 줄이는 동시에 내 눈치를 보듯 슬쩍슬쩍 눈으로 나를 흘겼다. 그녀의 어두운 눈빛에 20대 시절 힘든 일 하나가 주마등처럼 번뜩 기억났다.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상황과 아주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그녀의 눈빛을 한 번 더 보자 빛 하나 찾아보기 힘든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듯 과거를 얘기했다.

듣고 싶으면 들어. 내가 한 15년 전쯤, 너 나이 정도 됐을 때 일인데…….”

 

2

 

조그마한 쪽 배 하나가 항구에 정착한 채, 자리를 지켰다. 난 들고 있는 생필품들과 함께 배 위로 올라탔다. 대충 짐들을 정리하고 배를 둘러봤다. 그동안 계속 연습하느라 수도 없이 봤던 항해 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2년 전, 대문호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섬이 아닌 좀 더 큰 육지로 가서 꿈을 시작하고자 마음먹고 항해를 공부했다. 꿈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업을 하시는 선장님께서 곧 폐기처분한다는 조그마한 배 하나를 선물해주셨고 그것이 오늘 내가 타고 갈 이 배였다.

항해 실을 나온 나는 출항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배를 움직였다. 전 날, 날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이 준비를 마치고 한 시라도 빠르게 움직이고 싶어 바로 출항했다. 섬을 뒤로하고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로 나섰다. 낮밤이 바뀌어 가며 피로는 쌓였지만 배는 계속해서 육지로 향했고 항해와 함께 소설 쓰는 것도 열심히 진행했다. 머릿속에서 꿈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었다. 내 얼굴에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다음 날, 내 기분과는 다르게 유독 오늘은 불안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파도가 높더니 밤이 되자 파도가 간격을 가지고 세차게 몰아치며 바람이 강하게 유리를 두드렸다. 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뱃머리를 다시 돌릴 수도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기 때문에,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배는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렀지만 파도는 이를 쉽게 내주지 못하겠는지 계속해서 앞길을 막았다. 속도가 훨씬 늦춰졌다. 맘속에서 불안감이 하나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갑판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나는 자율 항해로 바꿔놓은 뒤, 갑판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바람은 세게 불었다. 계속해서 파도는 배를 삼킬 듯이 몰아쳤다. 바가지로 갑판에 찬 물을 밖으로 빼내고자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균형 잡기마저 힘들었다.

가까스로 버티며 물을 빼내는데 설상가상으로 하늘에서는 비까지 뿌리기 시작했다. 비는 바람의 힘을 받아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몸을 때렸다. 잠시 어딘가에 정착해야 된다. 나는 인근에 섬 혹은 잠시 정착할 수 있을만한 바위 덩어리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항해 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파도가 입을 크게 벌리며 배를 집어 삼킴과 동시에 배가 뒤집어졌다. 날 듯 어두운 바다로 빠졌다.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살고자 팔을 힘껏 휘저으며 수영했지만 높은 파도에게 이 작은 몸은 먹이에 불과했다. 배를 붙잡고 싶었지만 파도는 우리 둘 사이를 강제로 떨어트려 놨다.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었지만 잡히는 것은 오로지 물뿐이었다. 파도가 계속해서 내 얼굴을 강타했고 몇 번 물을 먹던 나는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앞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멍한 정신 상태로 눈을 감은 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찰싹! 무언가가 나를 때렸다. 바닷물이었다. 정신을 차린 내 눈앞에는 시커먼 하늘과 바다만이 보였다.

...큰일이네.’

거짓말 안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귀에 들리는 잔잔한 파도소리만 들렸다. 한숨만 절로 나오고 그 무엇도 해볼 수가 없었다.

그때 정말 포기하고 싶었어.”

 

3

 

내 얘기에는 관심 없었던 지희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난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바다는 가로등하나 없는 길 같았어. 어디를 향해 가야할지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 지.”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고 누가 말했었다. 지희의 눈에서는 내 말에 약간이나마 공감한다는 느낌이 투영되었다. 다시 얘기를 이어나갔다.

 

4

 

찰랑이는 바다 파도소리가 육지에 있을 때는 그토록 나의 귀를 유혹했는데 지금은 그 어떤 공해보다 시끄럽게 들렸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마냥 둥둥 물이 이동하는 방향대로 흘러갔다. 헤엄을 쳐도 마땅히 얻을 만한 것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힘만 빠져 명을 단축할 뿐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근 섬에서 선박 사고가 난 것을 파악하고 구조하러 오지는 않을까? 인근에 조업하던 배가 나를 발견하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안 좋은 날씨에 조업은커녕 이 쪽 배 하나가 바다에 빠지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을 거다.

몸을 틀어 물 위로 엎드렸다. 정말 새카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섬을 떠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미처 꿈을 이루지는 못해도 밥은 먹고 몸은 따뜻하고 잠은 잘 곳이 있었다. 그때는 궁핍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랬을까? 꿈을 찾아 떠나는 이 무모한 여행길은 나를 이렇게 죽음의 경지까지 몰아넣는 참사로 변했다.

조그마한 후회가 절망을 만나자 후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이런 저런 후회를 낳았고 나아가 내가 작가라는 꿈을 가진 것까지 후회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바라던 꿈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후회의 건더기가 될 뿐이라니 나 자신에게 한심함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 거면 다 포기하고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고 죽자 라는 생각을 하며 혹시나 인근에 섬이 보일까 싶어 앞으로 팔을 휘저었다.

생각해보면 난 이곳까지 굉장히 편하게 왔다. 배를 타고 배의 조명으로 바다를 비추며 나아갔었다. 아마 이것은 신이 내게 내리는 시련일 것이라는 생각이 살짝 싹을 트였다. 금방 이 시련이 끝나고 좋은 일이 다시 나를 반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안 가 단순히 희망고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간 파도가 높아졌다. 불안했다. , 한 번 파도에 휩쓸리면 그대로 난 죽을 것이 분명했다. 살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혹시나 파도를 피할 바위라도 찾아낸다면 이라는 조그마한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팔을 세게 휘저었다. 하필 파도는 내 정면으로 달려왔다. 물을 맞아가며 물살을 흩트리며 계속 나아갔다. 팔과 다리에 쥐가 날 거 같았다. 점점 파도의 세기가 강해지고 높이가 높아졌다. 내 몸도 파도에 의해 점점 뒤로 밀려났다.

몇 분이 지났을까? 다행히 파도는 가라앉았다. 파도와 사투를 벌이느라 팔 다리는 축축 늘어져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떠내려갈 때만 해도 겨울 바다는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까부터 점점 손끝과 발끝의 감각이 굳어가기 시작했고 저체온증이 시작된 듯 보였다. 아니 확실했다. 보이진 않았지만 입도 아마 파랗게 색이 바래고 있을 거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죽음이라는 글자가 뇌의 절반을 차지한 상태였다. 내 얼굴과 가슴만이 수면 위에 떠올라 간신히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난 또 다시, 배면 상태로 물이 가는 방향 어딘지 모를 그곳으로 조심히 떠내려갔다.

저체온증이 시작되면 3시간 뒤에 죽는데 이제 3시간 뒤쯤엔 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하늘에 있겠지.’

죽음 앞에 선 기분은 몹시 오묘했다. 살아가고 있을 때는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어떤 기분일지 가끔 생각해보곤 했다.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혹은 얼마나 두려울까?

지금 이렇게 죽음의 앞에 있는 내게 드는 심리는 오로지 하나 후회 밖에는 없다. 이제 곧 살아생전에 행했던 우정, 사랑, 행복 등의 감정들이 모조리 정리된다고 생각하니 그 감정들을 느끼지 못한다는 두려움보다는 아무래도 그 감정 사이에서 작용했던 혐오, 미움, 악행들만이 생각나 왜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됐는지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다. 섬에 살 때, 그리웠던 이름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이름을 부를 새도 없이 점점 몸이 차가워졌다.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몸은 점점 가라앉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은 발버둥 쳤다. 생존 본능인 건가……. 가까스로 머리가 물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내 팔과 다리는 헤엄쳤다. 내 모습은 마치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히기 싫은 초식동물의 발버둥과 비슷했다. 살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보이지 않아도 바다를 떨쳐내기 위해 헤엄쳤다.

이전에 파도와 실랑이를 벌일 때보다 몸이 훨씬 무거워졌다. 추위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 때문에 그런 듯 보였다.

추위가 지속되고 몸에 체온이 떨어질 때만 해도 정말 죽는 줄 알았어.”

그때, 내 바로 앞으로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어느 정도 큼지막했다. 손발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큰 배는 아니더라도 저 정도 크기면 군에서 훈련하는 조그마한 배나 혹은 신고를 받고 출발한 해경의 경비정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후회와 죽음을 밀어내고 머리를 가득 채웠다. 최대한 힘을 짜내어 검은 실루엣 앞으로 도착했다. “배일 거다.” 라는 기대가 가득했지만 가까워질수록 이 물체가 움직이지 않았고 대강 큰 암초나 바위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내, 손으로 실루엣을 터치하는 순간 난 이 실루엣이 큰 바위덩어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손끝에 닿은 바위의 촉감은 굉장히 따뜻하고 단단했다. 팔에 힘을 주어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물에 젖은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몸이 바위에 닿자 따뜻한 촉감이 몸을 녹였다.

쭉쭉 치고 올라가 바위 위에 앉았다. 온몸을 바위에 뉘여 바위를 세게 끌어안았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다 위에 떠다니며 계속 떠올랐던 생각들과 걱정은 녹아내렸고 오로지 바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옷을 하나씩 벗어 바위위에 얹어놓았다. 바닷바람이 차긴 했지만 그래도 젖은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니 어두운 바다와 하늘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이곳에서 어떻게 탈출하면 좋을까? 해가 뜨면 이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날 발견할 수 있을까? 설사 내일을 버틴다 해도 사흘 정도가 마지노선일 텐데 그 안에 구조 받을 수 있을 까?’

바위의 열기에 옷은 금방 식어갔다. 내 몸도 어느 새, 물이 다 말라 서서히 발끝, 손끝의 감각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깊이 생각했다.

여기 이대로 앉아서 구조 받을 수 있으면 구조를 받고 혹은 이대로 매 말라 죽어가겠지. 물 에 들어가 죽든 이곳에서 그냥 매 말라 죽든 결국 죽는 건 매 한 가지다.’

바다를 바라봤다. 여전히 잔잔한 파도가 흐르고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어두워보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해는 뜰 생각이 없었고 내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갔다.

여기서 헤엄쳐 육지를 찾다 죽을까?’

여기 그냥 조용히 앉아 매 말라 죽을까?’

결정은 최대한 빨리 내려야 됐다. 더 이상 갈증이 나고 몸이 피곤해지기 전에 헤엄을 쳐야 했기 때문이다.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바다로 가고 싶은 내 마음은 사그라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복잡한 갈등 속에서 판단은 그리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물속으로 들어가기에는 물이 너무 차가워보였다. 반면에, 바위는 정말 따뜻했다. 머리는 아주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중이었다.

물속에 들어가면 3시간이 마지노선인데다 그 3시간 안에 이 망망대해에서 육지를 찾아 산다는 것 자체가 확률적으로 0에 가까웠다. 이에 반해, 여기서는 3일이라는 시간을 살 수 있는데다가 잘하면 지나가는 배를 얻어 타 구조까지 될 수도 있다. 머리는 계속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손 끝 하나 움직이지 않으며 바위위에 가만히 앉아 앞만 바라봤다.

어느 새, 판단은 뿌리를 내려 심장까지 움켜쥐었다. 이성이 감정까지 컨트롤해버림으로 사실상 난 바위 위에서 죽기로 마음먹은 셈이었다.

그때, 내 머리의 판단과는 다르게 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물속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갔다. 헤엄쳤다. 계속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뭘 해서 죽던 간에 조금이라도 난 움직이고 싶었다. 바위 위에서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몸은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는 판단이었지. 물론 잘 되긴 했지만.”

 

5

 

지희는 어느 새, 내 이야기에 깊게 빠져 들어있는 상태였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나도 내 이야기에 빠져 의욕적으로 얘기하는 중이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움직이고 싶었어. 이미 바다에 빠졌을 때, 죽음을 코앞에서 느껴서인지 3 일 동안 산다고 해도 후회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 것 같았어. 왜 그런 거 있잖아. 고민이 너무 심각할 때는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놀며 몸을 혹사시키면서 그 고민들을 잠시나마 잊 는 거. 그때, 내 기분이 그랬지. 어차피 죽을 거면 차라리 힘이 들어 빨리 죽는 게 낫지 않을 까? 하는.”

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공감해주었다. 그녀의 태도에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6

 

, 다시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빠르게 치고나가던 내 몸도 파도와 맞닥뜨리니 점점 느려졌다. 다행히 배를 뒤집었던 첫 파도만큼의 위력은 아니었다. 파도와 맞서 싸우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이 어두워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앞으로 나아갔다. 운이 좋다면 맞닥뜨릴 것이다. 육지를…….

몇 시간을 헤엄친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주변은 아직 어두웠다. 언제쯤 이 어둠에서 빠져나갈까? 행운은 준비된 자가 기회를 만났을 때, 희소한 확률로 적용된다. 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어도 희소한 확률로 적용이 되는데 준비도 안 되어 있고 그렇다고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닌 내가 행운을 빈다는 것은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 다시 후회가 시작됐다. 차라리 그때, 그냥 바위 위에서 조용히 구조되기를 바라며 살 것을 왜 굳이 이렇게 힘든 길을 자처해서 헤엄쳐 왔는지 내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냥 내가 선택한 길 이대로 죽는 것도 뭐 나쁘지 않다고 생각됐다. 어차피 죽을 거…….

등을 바다에 뉘이고 배면 상태로 또, 여름 밤하늘을 바라봤다. 조그맣게 보였지만 별들이 많이 보였다. 숱한 별들의 모양이 잡히지 않는 희망과 같았다. 조그맣게 빛나지만 막상 가지고자 하면 가질 수 없는 상태인 그 희망 말이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냥 이대로 흘러가며 죽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괜히 눈을 떠 살고는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그냥 이대로 눈을 감아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눈을 감자 별이 내뿜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물소리들만이 귀에 들렸고 몸에 온 감각이 제 할 일을 잃고 서서히 죽음의 문턱에 다가가는 듯 했다. 서서히 바닷소리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7

 

시상식이 펼쳐지고 많은 사람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 사회자가 앞에 서서 진행을 하고 있고 이내, 시상자들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이 들고 있는 시상카드를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이름이 호명되고 조용히 자리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다름 아닌 나였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트로피를 받으며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수상소감을 이어나갔다.

 

8

 

눈을 떴다. 잠시 잠이 들었는지 환상을 본 건지 방금 그 장면은 확실히 거짓된 장면이었다.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내 눈에는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몸에 다시 열이 돌기 시작했고 감각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이 세상은 나를 쉽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살고 싶어졌다. 살아서 내 눈앞에 보였던 그 환상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희망이 머릿속을 가득 차지했고 내 몸은 계속 반응했다. 몸의 감각이 아직 살짝 살아있는 것을 봤을 때, 대략 2시간 정도의 여유가 내게 남아있다. 팔과 다리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파도가 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내 시력을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조금씩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곧이어 바람의 영향으로 파도까지 치기 시작했다. 최대한 깊이 잠수했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최대까지 숨을 참고 잠수한 채, 앞으로의 움직임을 진행했다. 물속에서도 파도의 힘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파도는 나를 잡아당겼다. 헤엄을 치던 중, 숨이 막혔다. 어쩔 수 없이 몸은 물 위로 솟구쳤다. 물 위로 나오자마자 파도에 휩쓸렸다. 발버둥 치며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파도는 나를 끌고 이곳저곳으로 움직였다. 그 힘의 저항했지만 전혀 내 힘은 먹히지 않았다.

물이 코와 입으로 들어와 기도를 막기 시작했다. 순간 뇌를 스치는 단어 하나가 지나갔다. “죽음

하 이렇게 될 거 왜 다시 나를 깨운 거지?’

잠에서 깬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이젠 진짜 죽을까?’

계속해서 살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죽을 수도 있다는 기분이 들어 계속했던 이 질문들을 되 뇌였다. 물을 토해내고 눈이 뒤집히며 괴로워하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실했던 건 물을 마시는 순간 코끝을 아리는 고통과 함께 내 정신 상태는 온전치 못했다. 눈 위로 물이 차는 동시에 내 눈은 감겼다.

조용해지는 주변이 느껴졌다. 내 몸이 파도가 지나갈 때까지 버텨낸 건지 혹은 이제 내 몸을 버리고 하늘로 떠오른 건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내 몸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편안했다.

편하다.’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 말이 뱉어졌다. 그때, 노란 빛이 내 눈을 스쳐지나갔다. 재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빛을 따라가려고 했다. 이내, 한 번 더 빛이 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천국을 안내하는 빛인가? 계속해서 노란 빛이 내 눈 앞을 휙휙 스쳐지나가다. 눈을 떴다. 이와 동시에 내 몸이 금방 차가워졌다. 내 앞으로 또, 하나의 빛이 지나갔다. 빛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지금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코와 입에서 물이 주르륵 새어나와 콜록 거렸지만 멀쩡했다.

빛이 또, 한 번 내 앞을 지나갔다. 이제야 인지했다. 빛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멀리 등대가 보였다. 주변을 아름다운 빛으로 비추며 손짓하는 그 모습이 마치 내게 손짓하는 천사의 모습 같았다.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난 손으로 물을 가르며 등대로 향했다. 저 등대 불이 꺼지지 않는 이상 내게도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다. 물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등대로 향했다. 파도는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둠이 나를 가로막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날 견제하는 건 단, 하나 저체온증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제 시간 안에 등대 앞에 도착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지도 몰랐다. 빛 하나만으로 거리를 짐작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기적이 하나 일어났다. 주변이 서서히 밝아졌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새벽이 찾아왔다. 주변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실루엣으로 보여 지기 시작하며 바윗덩어리와 등대가 있는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인근에 바위 위로 올라갔다. 옷을 하나씩 벗어 바위 위에 올려두고 몸을 바위에 접촉시키며 체온을 유지했다. 멀리 섬이 손만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 곳이 섬일지 육지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든 간에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등대가 내 눈앞에 보였고 등대로 향하며 새벽이 찾아왔을 때,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 었어. 생각해보면 날 죽일 것 같던 파도가 날 밀쳐내던 게 아니라 당기고 있었던 거야. 날 살 려주려고.”

 

 

 

10

 

어느덧 일출이 시작됐고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행 또, 다행이라는 말만 계속 되 뇌였다. 옷도 이제 대강 다 마른 상태였다. 옷을 다시 입었다.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헤엄치는 내 팔과 다리에 힘이 넘쳐흘렀다.

등대의 불이 꺼졌다. 괜찮다. 이제는 주위가 밝아져 앞을 볼 수 있고 섬도 찾아냈으니 말이다. 계속 헤엄쳐 나가며 점점 주변 암벽과 내가 가까워졌다. 멀리 곶이 보였다. 방파제들도 나란히 자리를 차지한 채, 위용 넘치게 등대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눈앞에 콘크리트 바닥이 보이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살았다는 기쁨, 안도의 기쁨, , 무언가 성취의 기쁨까지…….

울컥한 기분을 잠시 제쳐두고 드디어 방파제에 손을 올렸다. 최대한 힘을 주어 방파제를 디뎌 몸을 들어 올리고자 했지만 힘이 나질 않았다. 팔이 떨렸다. 다리는 이미 굳은 지 오래였다. 다시 방파제를 짚었다. 힘을 주어 몸을 들어올렸다. 팔에 순간적으로 쥐가 심하게 났다. ! 한 손이 무너지며 몸이 방파제 위로 세게 넘어졌다. 통증이 따랐지만 간신히 몸을 방파제 위로 올렸다는 기쁨이 몸을 장악했다. 손에 뭉친 근육들을 풀고 다리를 문지르며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디뎠다. 몇 발 못 가서 넘어졌다.

섬에 있을 때는 콘크리트 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그 얼음장 같았던 콘크리트가 지금은 그 어떤 따뜻한 보온 기구보다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밤 동안 쌓인 피로들이 녹아내리듯 뇌를 자극했다. 졸음이 몰려왔다.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11

 

조심스럽게 눈이 떠졌다. 인근 병원인 것 같았다. 간호사 한 분이 내가 맞고 있는 주사액의 양을 체크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괜찮으세요?”

간호사의 물음에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살았다. 몸에 맞고 있는 링거, 병실 침대, 그리고 이 건물 등등 내 눈앞에 섬과 육지에서만 보던 것들이 하나씩 보였다.

의사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안중에도 없이 난 계속 내 몸과 주변을 만졌다.

큰일 나기 전에 구조되셔서 다행입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를 조용히 쳐다봤다.

저 산 거죠?”

이미 인지하고 있음에도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뭐지?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호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조용해진 병실 안에서 난 소리치며 기뻐했다. 드디어 살았다는 안심에......

 

12

 

지희는 내 말을 다 듣고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그녀에게 할 말들이 남아있었다.

“무슨 일을 선택했을 때, 과연 이게 나한테 맞는 길인가 할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한참을 내 맘을 괴롭힐 거야. 흔히 이 상황을 우리는 슬럼프라고 부르지. 니가 생각하기에는 내 이야기 중에서 슬럼프라는 순간이 언제였던 거 같아?"

지희는 조용히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봤다.

"바위 위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겠죠?"

"아니야. 내가 바다 위에서 둥둥 어딘가로 떠내려갈 때......그때야."

지희는 얼굴에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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