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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15:36

엔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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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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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침에 차를 몰고 나간다. 우릴 버리고 떠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웬 까닭일까? 내가 뭘 잘못해서 그가 떠나는 건가? 나에게 반가운 아침 인사도 안 하고 휑하니 나가버린다. 먼발치에서 떠나는 그를 바라보며 별 생각이 다 든다. 멍하니 몸에 힘이 다 빠진다. 동생 진이와 함께 우리는 아침부터 우울 모드다. 입맛이 없다. 그가 화가 났나?

저녁에 마침내 그가 돌아온다. 영영 가버린 줄 알았던 그가 온다. 돌아올 때면 멀리서부터 그의 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요란하지 않지만 강력하고 부드러운 폭발음을 내며 단숨에 언덕을 달려 올라온다. 집에서 졸던 나는 그 익숙하고 정겨운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나서 조건 반사처럼 튀어나간다. 먼발치에서 그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목을 빼고 기다린다. 누이 진이도 눈을 비비며 뒤 쫒아 나온다. 잠시 후 짙은 감색의 그의 차가 미끄러져 나타난다. 둘은 운전석문 앞에 코를 대다시피 하고 차문이 열리기를 고대한다. 삶의 기쁨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눈과 코에 물기가 맺히고 숨이 가빠지고 온 몸이 떨린다. 그는 나에게 무엇일까?

며칠 뒤 그가 집을 떠나더니 이번엔 정말 돌아오지 않고 만다. 때론 밤늦게라도 돌아오던 그였는데 새벽까지 기다려도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우린 조그만 소리에도 집중을 하며 밤을 꼴딱 샌다. 우리를 버리고 간 게 틀림없다. 그가 나를 안아준다고 다가올 때 내가 피해서 그가 기분이 상했나보다. 아니면 누이가 아무데나 소변을 실수를 해서 우리를 돌보기 힘들어 한 모양이다. 그런데 밥이 잔뜩 놓여 있다. 그러면 이차저차 해서 며칠 어디 갔다 온다고 말할 것이지. 그도 나름대로 할 일이 있겠지만 난 이해가 안 된다. 그는 너무하다. 자신밖에 모른다. 우리 걱정은 하질 않는 것 같다. 그는 진짜 돌아올 것인가? 그에게 우리는 무엇인가?

 

어렴프시 기억나는 게 우리는 갓난아기 적 처음 그의 품에 안겼던 것 같다.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난 엄청 울었다. 우리는 고아였다. 왜 엄마가 우릴 버렸을까? 키우지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게다. 요즘 세상에 흔한 일이지 않은가. 엄마의 얼굴은 너무 어렸을 때 헤어져서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그에게로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왜 우리를 선택한 걸까?

우리는 처음에 그의 아파트로 왔다. 그가 밤마다 우리 방에 둘을 잠재우고 몰래 빠져나갔다. 한잠을 자고 깬 우리는 꼭두새벽부터 주르르 그의 방문 앞으로 갔다. 그의 문은 굳게 잠겨있고 우리는 그에게 가까이 가려고 서로 발버둥 쳤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될 때 우리는 그의 문가에 달싹 붙어서 위 아래로 포개어 있다시피 자고 있었다. 우리는 왜 그의 옆으로 가려고 기를 쓰고 난리였을까?

낮에는 아파트 실내를 누이와 함께 신나게 뛰어다녔다. 덕분에 아랫집에서 항의가 들어올 정도였다. 둘이 놀다가 갑자기 하나가 급히 달려가는 데는 쉬-를 해결하는 화장실이었다. 거기엔 그가 신문지를 잔뜩 깔아 놓았다. 실컷 뛰어 놀다가 밥을 주면 먹자마자 둘 다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리고 깨워도 못 일어났다.

선이, 진이는 자도 같이 자고 깨도 같이 깨네.”

맞았다. 내가 눈 비비며 일어나보니 진이도 옆에 너부러져있었다. 난 어떻고. 밥그릇에 코 빠뜨리고 얼굴까지 묻고 자고 있었다. 얼마나 고단하면 밥숟가락 놓자 잠들까. 그렇게 우린 나쁜 기억을 버리고 그의 울타리 안에서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이 보낸 수호천사인가?

하루는 그가 전화통을 붙들고 누구랑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과장이 잘못한 걸 안다고 인지상정이 있지 어떻게 바로 위에 고자질해서 잘리게 합니까? 조용히 얘기해서 해결해보려 하다가 시일이 걸렸던 거지, 나까지 그 횡령에 가담했던 건 절대 아니라니까요.”

그가 입에 거품을 물고 따지고 있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그의 눈치만 보았다. 마지막엔 그가 전화기를 꽝하고 부서질 듯이 내려놓았다.

내가 그만 두면 될 것 아냐!”

우리에게 소리 지르는 줄 알고 둘은 깜짝 놀라 구석으로 쏜살같이 숨었다.

얼마 후 우리는 여기 산동네로 이사를 왔다. 우리가 아파트에선 마음 놓고 떠들고 뛰어 다닐 수 없어서 그가 큰 결심을 한 게 분명했다. 이사 온 동네는 달이 뜨고 진다는 월문리. 아침 물안개가 강에 잠기고, 강 건너 가로등들이 죽죽 밤을 수놓는 북한강을 산 너머에 두고, 운길산과 갑산, 고래산이 산맥처럼 중첩된 깊은 산골이다. 집 대문 위론 소나무 두 그루가 아취 형으로 서로 몸을 대고 손님을 맞는다. 집은 높아서 전지를 못하는 키다리 소나무들과 측백나무들로 둘러싸여있다. 이 오래된 집은 그의 부모님이 살았던 집이다. 작고 하얀 건물은 지붕에 볼록한 돔으로 멋을 부리고, 그 옆으로 삼각형의 다락방이 있는데, 그는 그걸 '비둘기 집'이라 부른다. 아침엔 안개가 산 아래에서 올라오고, 낮이 되면 구름이 중턱에 한가로이 걸리는 커다란 삼각형의 앞산이 집을 내려다본다.

여기는 주택이라 천성적으로 우리와 잘 맞아 떨어졌다. 마당으로 산으로 우리는 집시처럼 지냈다. 애들은 이렇게 자라야한다. 항상 흙먼지로 우린 검뿌옇다. 진이를 따라 나도 곧잘 땅을 파고 놀았다. 비라도 오면 진흙 마사지라도 한 것처럼 우린 눈만 멀쩡했다. 그는 우리를 목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난 물을 뿌려대는 그 앞에서 너무 긴장해서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다. 창피해!

그가 바라볼 때마다 나는 눈을 맞추지도 못하고 고개가 아플 정도로 돌렸다. 그 앞에서 나는 항상 바보가 된다. 그의 손이 스치는 나의 목과 가슴에 전율이 느껴진다. 다른 곳을 바라보며 딴 청을 부리는 자신이 우습다.

선이야!”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안아 줄 때는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도망간다. 싫어서가 아니라 어색해서 그렇다. 나도 어리지만 딴에는 사내다. 그가 좋지만 이를 내색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진이는 여자애라 애교가 타고났다. 그가 안아주려 하면 눈을 맞추면서 납작 안길 자세를 취하는 게 영 아니꼽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나에게 눈길도 안주고 진이만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쓰다듬어 주자 진이는 그의 품안에서 마냥 행복해했다. 얄미운 진이는 그에게 뽀뽀까지 해댔다. 약이 오른 나는 그를 엉덩이로 툭 쳤는데 어찌나 세게 쳤는지 그만 그가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웃고 있었다. 내가 그의 계략에 말려들고 만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영리한지 모른다. , 창피해!

그는 보통 키에 눈이 크지 않은 얼굴을 가진 남자다. 쌍꺼풀눈에 오뚝한 코를 가진 옆집의 미남 아저씨나 다른 남자들도 보았지만 그래도 우리 그가 제일 멋지고 잘 생긴 남자다.

선이, 진이야, 잘 있었나?”

그는 별로 웃지는 않지만 우리를 부르는 비음 섞인 목소리는 얼마나 감칠맛 나는지 모른다. 아침에 바쁠 때에도 그의 걸음에는 흐름이 있고 굴곡이 있다. 특히 그의 검은 뒷머리와 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는 그 곡선을 나는 좋아한다. 그가 돌아서며 나를 쳐다 볼 그 순간의 스릴을 난 즐긴다. 몰래 흘낏흘낏 그를 쳐다보다가 그의 눈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는 내가 자기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기나 할까?

우리는 유치원에 가질 않고 그에게서 배웠다. 그가 우리 가정교사인 셈이다. 대소변 가리기로부터 시작해서 의사 표시하는 방법이라든지 놀이하기, 위아래 예절 등을 배웠다. 그는 우리에게 달리기를 곧잘 시켰다. 우린 너무 잘 달려서 달리기 선수가 딱이다. 장담하건대 올림픽에 나가면 금메달을 그에게 따다 줄 수 있다. , 단거리 달리기지 장거리 달리기나 마라톤은 숨이 차서 절대로 뛰기 싫다. 또 그가 좋아하는 원반던지기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고 너무 빨라 잡을 수가 없다. 내가 잘하는 걸 더 찾아서 그에게 보여줘야겠다.

무척 더운 여름날, 한낮에 이미 최고 기온을 갱신하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헉헉 거렸다. 이런 날은 그늘에서의 낮잠이 최고다. 나는 그의 옆에서 슬그머니 가서 앉았다. 그가 나를 쓰다듬어줬다. 포근한 나머지 곧 대자로 옆으로 뻗어서 단잠에 빠졌다. 한참을 호랑이가 물어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잤다. 일어나보니 그가 없다. 얼른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다. 그는 벌써 땀으로 목욕을 하며 잔디를 깎고 있었다. 그러더니 망치를 들고 뚝딱거렸다. 그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는 생각할 겨를을 아예 없앨 모양으로 쉬지 않고 일했다. 낡은 집은 그 덕분에 점차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가 구경하던 우리에게 호스로 물을 뿌려댔다. 그가 기분이 조금 나아진 모양이다. 우리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지만 흠뻑 젖고 말았다. 그는 장난꾸러기임에 틀림없다.

그가 궁리 끝에 햇볕을 가리는 텐트를 쳐 놓아 우린 시원한 여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산 중턱 집 마당에 텐트를 쳐 놓았으니 여간 근사하지 않았다. 가슴 뛰는 건 온 세상이 깜깜해지고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면서 폭우가 몰려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다. 세상이 끝날 것 같고 괴물이 우리를 삼킬 것만 같았다. 한밤중에 꽈당꽈당 집채를 흔드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우리를 그가 뛰어와서 안아주며 다시 재웠다. 그러나 이젠 그만 있으면 오히려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비가 오면 비가 샐까 한밤중에도 그는 텐트를 살피고 우리가 비에 젖지 않는지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천둥치고 폭우가 오는 게 너무 좋아졌다. 그를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이 없는 그는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져서 항상 수다쟁이가 되었다.

햇빛 쨍쨍한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좋다. 주룩주룩 퍼붓는 소낙비가 더 좋지. 너희들도 참방거리며 놀아봐.”

덕분에 우리까지 또 흠뻑 젖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의 어린애 같은 얼굴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래서 비든지 뭐든지 하늘에서 내리길 기도했다.

그와 마을 산책을 하는데 이웃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그녀는 나를 가리키며 애가 잘 생겼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어깨가 으쓱거렸다.

세상에 저 건너편 집 말예요. 풍비박산이 났대요. , 글쎄.”

갑자기 그 이상한 할머니가 말을 하던 도중에 손으로 그를 때리려 했다. 순간 나는 그를 지키려고 용감하게 그 할머니를 혼내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나를 마구 야단치는 것이었다. 그가 가끔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우리 동네에 제일 힘세고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있었다. 그 덩치에 주눅 들어서 난 그 애를 만나면 꼼짝을 못했다. 내 과자를 제 것인 냥 마구 뺏어먹었다. 몇 달이 지나가자 나도 몸이 불어났다. 그리고 내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그 녀석과 조우하게 됐다. 건들거리며 없는 폼 있는 폼 다 잡으며 다가와서 내 과자를 내 놓으란다.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고 그 녀석과 동네 한 복판에서 제대로 대판 붙었다. 그 녀석 힘은 여전히 장사였다. 둘이 씨름을 하다가 그만 내가 아래 깔리고 말았다. 나는 그 녀석의 목덜미를 눌러 조여서 놓지 않고 버텼다. 숨이 차올 때쯤 그 녀석이 누르던 상체를 풀면서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냈다. 내가 이긴 것이었다. 나는 드디어 이 동네 왕으로 등극했다. 기겁을 하고 달려 나온 그의 앞에서 나는 의기양양해 하며 기세를 뽐냈다. 그가 나를 자랑스러워하겠지?

그런데 그의 힘은 더 세다. 내가 이 동네 대장인데도 그가 내 두 앞발을 잡고 일으키면 그 억센 힘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의 손아귀와 팔뚝의 힘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그 앞에 정면으로 선다. 그러면 내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내 거시기를 어떻게 간수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어떤 때는 그가 이 커다란 나를 번쩍 공중으로 들어 안아서 날 화들짝 놀라게 한다. 그것도 한 손으로 나를 옆구리에 안아서 든다. 그리곤 그의 품으로 꽉 껴안아서 난 숨이 막히고 정신이 다 없어진다. 그는 천하장사다.

한번은 밥을 줬는데 그만 누이와 대판 싸우고 말았다. 너무 맛있는 걸 그가 사왔다.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이런 사단이 안 났을 텐데 후회막급이다. 진이가 혼자 다 먹겠다고 앙탈을 부리는 바람에 나도 화를 참지 못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내동댕이 쳐버렸다. 내 힘이 센지라 어쩔 수 없었다. 오랜만에 그의 화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선이 이 못된 놈, 동생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문제를 먼저 일으킨 동생은 그의 품에 안기고 대신 나는 집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문 밖에서 울면서 그를 찾았으나 그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마침 내리는 소나기를 쫄딱 맞았다. 나는 비가 몸에 닿는 게 제일 싫다. 아이들은 비가 오면 장화 신고 빗속에서 노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 난 다르다. 틀림없이 유전인 모양인데 엄마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빨리 그는 묵묵히 나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비가 와서 그랬던 건 아니다. 분명히 그는 나를 좋아한다. 괜히 뭐 교육적으로 그러는 시늉을 해본 모양일 게다. 나는 억울한데 그가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준 걸까?

우리는 대체로 건강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여름날이면 눈병에 잘 걸렸다. 누이는 욕심스럽게 음식을 급히 먹는데 그러다가 욕지기를 잘했다. 걔는 물을 마시다가도 그랬다. 나는 한번은 그만 커다란 말벌에 쏘여서 죽을 뻔했다. 처음 보는 놈이라 무언가하고 만졌다가 당했다. 입술이 퉁퉁 붓더니 입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열이 나고 몸이 쑤시고 밥을 도무지 먹질 못하고 앓았다. 그가 나를 발견한 것은 거의 하루가 지나서 한밤중이었다. 그는 날 간호하며 옆을 지켰다. 밤새 그와 함께 있으니 좋았다. 위로가 되었다. 물론 무척 아팠다.

선이야, 너무 아프겠다. 그지?”

그가 안쓰러운 눈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땐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럼 신기하게도 아픈 게 사라졌다. 나는 그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먹지 않던 밥을 먹어 보였다. 그의 근심어린 얼굴이 좀 펴졌으면 좋겠다. 이런 그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그는 너무 잘 알아들었다. 아니 말하려고 생각만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내게로 왔다. 시원한 냉수를 한 그릇 가져다준다. 그는 텔레파시를 해독하는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어디서 맛있는 간식도 잘 사왔다. 그의 주머니는 요술주머니다. 바스락거리면서 별난 맛난 게 다 나온다. 건빵도 나오고 육포도 나온다. 눈치 빠른 진이는 그가 주머니에 손만 넣어도 그 앞에 서서 입맛을 다신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맛있는 거 사다줄 생각만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걸 가지고 던지고 돌리고 놀다가 동생에게 뺏길까봐 얼른 먹어 치운다. 우리도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잘 먹는 건 아니다. 불볕더위가 오면 입맛이 도통 없다. 고기 몇 점 먹어보곤 사절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입맛이 너무 좋아 탈이다. 나는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그중에도 그가 가시를 정성껏 발라주는 생선을 가장 좋아한다. 또 그가 버무려주는 비빔밥도 좋다. 그 기막힌 소스 맛에 나는 환장을 해서 혀로 싹싹 핥아 먹는 바람에 설거지가 따로 필요 없다. 그는 자격증 있는 요리사인가? 그 기술로 잃었던 직장을 다시 찾을 수 있을 텐데.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와 둘이서 한갓지게 산책하는 것, 그와 잔디밭에 껴안고 뒹구는 것, 나와 개들처럼 으르렁대며 미식축구 폼으로 몰면서 쫓는 술래잡기, 끈을 서로 잡아당기기, 언덕을 뛰어다니다 그가 반갑게 부를 때 달려가 안기는 것이다. 계절은 뜨거운 여름만 말고 봄, 가을, 겨울 다 좋다. 겨울에 춥다고? 천만에.

내가 싫어하는 건 별로 없다. 내가 동네 대장이니까 무서운 게 없다. 그런데 너무 싫어하는 건 그가 나를 찾지 않는 것, 그래서 다시 다른 양부모에게 가는 것이다. 다른 사내애들은 계집애들만 보면 가슴앓이까지 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런 걸 모른다. 나는 그가 제일 좋다. 아니 그만 좋아한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좋아할까? 얼마만큼? 그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아할까? 그가 세상일로 마음이 허전한 지금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을까? 이 행복이 얼마나 갈까? 10, 100?

그는 하루 종일 아랫녘이 내려다보이는 지붕위에 앉아있길 좋아했다. 그는 높은 산 위에, 그것도 모자라, 지붕위에 올라가 앉은 셈이다. 멀리 아래까지 굽이굽이 국도가 보이고, 가끔 골짜기를 울리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차량 한 두 대가 보였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적이 오래 지속되고, 그러면 정말 못 들었던 자연의 소리들이 들렸다. 작은 딱새가 쏙닥거리는 소리, 개가 옹알이하는 소리,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지난밤 비에 불어난 개울물 소리. 때론 딱따구리의 요란한 작업 소리가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하고, 별명이 홀딱 벗고 새인 검은 등뻐꾸기도 종일 야하게 울었다.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없었다. 우리가 그의 유일한 친구라는 점이 너무 좋았다.

어느 날 나는 그를 따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앞산에 올랐다. 대모험에 나만 데려가니 너무 좋았다. 남아있는 진이는 볼멘소리를 냈다. 작은 도랑을 펄쩍 건너뛰고 오솔길을 따라 그와 앞서고 뒤서며 신나게 올라갔다. 그런데 그 산은 만만치 않게 큰 산이었다. 도토리 줍는 사람 두어 명을 보았는가 싶더니 계속 올라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그 산은 몇 개의 산과 쭉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낯선 길들은 나뭇가지와 잡풀들로 꽉 막혀 있었다. 준비성 없이 시작한 산행은 지도나 나침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선이야, 여름엔 싱싱한 숲과 나무들을 풍성하게 품어주고, 겨울엔 눈이 하얗게 쌓인 자태로 말없이 서 있는 이 산이 너무 좋아. 정말 오고 싶었다. 특히 아버지를 장례지내고 돌아오던 날, 난 이 산의 품에 안기고 싶었단다.”

나는 궁지에 빠진 그를 위해 무언가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졌다. 그에겐 귀띔도 안하고 시야를 벗어나 나뭇잎과 풀숲을 제치고 다녔다. 팔은 긁히고 나뭇가지 티가 눈에 들어와 따끔거렸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활로를 찾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내가 숨이 차서 헐떡거릴 때쯤 눈앞에 산길이 나타났다. 바로 그 때 그가 나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화를 냈다.

, 말도 없이 어딜 갔던 거야!”

순간, 내 뒤로 산길이 나타나자 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용감한 사내로 인정해 줬다. 나도 그에게 하나의 의미가 된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마침내 산꼭대기에 올랐다. 그와 내가 일을 낸 것이었다. 산들이 또 산과 어울리며 깊은 산맥으로 펼쳐져 있는 게 장관이었다. 그가 야호하며 소리를 모아 질렀다. 나도 신이 나서 둘레를 껑충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가 멈추지 않았다. 쉰 목소리가 되었는데도 뱃심을 다해 계속 질러대는 게 아닌가. 난 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이 또 무슨 상황이지? 우리는 해가 저문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방 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다. 그가 그린 그림이란다. 그 속엔 출렁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키 큰 야자수들이 서있고 그 아래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연한 노랑 바탕에 푸르른 바다와 싱그러운 녹색이 살아 숨 쉬는 그림인데도 왠지 슬퍼 보인다. 그 한 사람 옆에 나도 그려 넣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붓해서 덜 적적해 보이고 말이다.

그는 심심해지면 우리를 햇살이 아직 제법 따가운 정원에 불러 앉히곤 했다. 마을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삶이 호수처럼 게으를 정도로 잔잔했다. 분명 복숭나무와 다른 나무들은 한창 겨울 준비로 바쁠 텐데 말이다. 그가 간식거리를 꺼내면 우리는 배운 대로 점잖게 앉아 있지만 안달이 나있다. 간식을 받아먹자마자 또 온통 남은 간식에 눈과 귀가 가있다. 햇살은 따스하고 그와 지내는 행복이 오후 내내 걸렸다. 우리는 앉아 있다가 어느새 옆으로 쓰러져 잠들었다. 그의 옆에 있으면 항상 졸음이 온다. 왜일까?

붉고 아름다운 가을이 깊어가고 단풍나무 잎들은 노랑 은행과 대조되어 한껏 아름다움을 뽐냈다. 치워도 금세 수북이 쌓인 낙엽을 그는 조심스레 발만 디딜 정도로 치우고 의자에 앉아 정물이 되곤 했다. 군생들이 질서를 노래하는 찬란한 가을만큼 그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는 부지런히 낙엽들을 비로 쓸어 큰 자루에 담았다. 우린 그를 바라보다가 게으른 낮잠을 대짜로 뻗어서 즐겼다. 그는 그리곤 장작을 팼다. 처음엔 제대로 못해서 장작이 저만큼 튀어 나동그라지거나, 아래 바닥을 찍어서 도끼 자국을 내더니 곧 익숙해졌다. 그는 팬 장작더미들을 집안 벽난로 옆 장에 날라다 쌓고는 마음이 부자가 된 양 흡족한 얼굴이었다.

이젠 그는 그 무서운 장작불을 지피는데도 도가 텄다. 한 아름의 낙엽들을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참나무 장작개비들을 공기가 통하게 지그재그로 쌓는다. 불을 붙이면 순식간에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이윽고 바싹 마른 장작까지 불이 지펴지면 끝이다. 바람에 따라 연기 기둥이 춤을 추면 갑자기 눈이 아프고 코가 매웠다. 그는 저녁에 나온 별들을 세어보고, 불꽃이 나무에 닿을까 걱정하고, 정원의 온갖 등을 다 켜보고, 이쪽저쪽 데크로 옮겨 다니며 의자에 앉았다. 장작이 벌건 숯불들이 되어 이글거리면 돼지 목살을 구어 한 캔의 맥주와 즐겼다.

"너희들도 고기 먹어봐."

옆에서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우리에게 한 점 씩 입에 넣어줬다. 마지막으로 은박지로 싼 감자를 집어넣고 젓가락으로 찔러보다가 호호 불어 먹으면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하늘은 초저녁의 밝은 블루에서 점점 검푸른 색으로 어두워지고, 그것을 배경으로 비둘기 집 위로 나온 달은 항상 눈부셨다. 초승달이었던 게 벌써 살이 올라 반달이 되었다. 그림 같은 보름달이 뜨면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달이 앞산에 걸려 뒤로 넘어가면 그는 우리를 재우고 비둘기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월문리 사람이 되어갔다.

한 달이 후딱 갔다. 금세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닷새가 멀다하고 눈이 왔다. 서울에서 비가 오면, 덕소에는 진눈개비가 내리고, 월문리 고개에 이르면 하얀 눈으로 변한다. 커튼을 열었을 때 사물의 테두리 줄이 없는 화이트아웃이었다. 의식만 몸을 떠나 하얀 허공에서 맴돌았다. 소나무 가지들도 눈을 뒤집어써서 부러질세라 아래로 쳐져 있었다. 그는 모자달린 파커를 뒤집어쓰고 스키 장갑을 꼈다. 무릎까지 눈 쌓인 정원으로 딱 한사람 다닐 길을 눈삽으로 치우며 나아갔다. 갑자기 그가 눈에 벌렁 누었다가 다시 일어나 옆에 또 눕는다. 정원 눈밭에 다정스럽게 손을 잡은 두 사람이 새겨졌다. 우리도 덩달아 껑충껑충 뛰면서 눈을 먹는 시늉을 했다. 정말 고립된 마을이었다. 그래도 장작이 높이 쌓여있고, 부엌에는 그가 좋아하는 청국장과 고추장, 라면, 꽁치 통조림이 잔뜩 있었다. 한동안은 아니 일 년은 세상에 나가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밤이 되자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소나무들이 원을 그리고 서있고, 나무에 걸린 정원등의 불빛이 눈밭에 반사되어 더욱 환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정원에 나선 그가 반가워 우리는 쪼르르 다가가 앉았다. 그런데 그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옆에서 눈치를 보면서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그냥 비둘기 집으로 올라갔다. 또 내가 무얼 잘못했나?

나는 그의 비밀을 하나 알고 있다. 그가 대학생 때 누나의 후배를 만났다. 키 크고 눈이 토끼 같은 여자라고 했다. 둘은 몇 번의 데이트도 했고 그는 그 후로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가 사창가에서 그런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부모가 반대하고 나섰다. 게다가 서로 다른 도시로 떨어져 학교를 다니느라 연락까지 뜸했지만, 그는 그녀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짝사랑의 세월이 지나고 졸업을 앞둔 가을이 되어서야 그는 진짜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저를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습니다.”

이어진 그녀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야 얘기해주시는지요. 전 얼마 전에 약혼을 했어요.”

그는 그녀가 사라진 카페에 저녁 늦게까지 정신 줄을 놓고 앉아있었다. 그 뒤로 그는 몇 번 다른 여성을 소개를 받았지만 결국 지금까지 혼자였다. 언젠가 나에게 혼잣말처럼 말했었다.

내가 어디서 무얼 잘못한 거니?”

 

지나간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별의 별 공상을 다 하면서 며칠 동안 우리는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더니 드디어 새벽에 올라오는 그의 차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둘이 손을 잡고 뛰어 나아가서 그를 맞이한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초점이 없다. 우리를 눈길 한 번 간단히 주고는 그의 방으로 올라가 버린다. 닫힌 방문 뒤로 그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그가 며칠을 밥을 못 먹어서 배가 고파서 우나? 우리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덩그런 새벽 반달이 비취던 우리 집에는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푸르스름한 정적이 내려앉아 있다. 우리는 그의 방문 앞에서 소리 없이 엎드려 있다.

다음날 그가 상을 차려 놓고 홀로 그 앞에 앉는다. 그러더니 멀쩡한 대낮에 또 그가 운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찾아보지도 못하고. 이젠 영영 볼 수 없다니. 흑흑,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세요!”

나도 엄마에게 뭐 제대로 한 적이 없지만, 아니 할 수도 없었지만, 난 별로 미안한 생각은 안 든다. 그는 정말 엄마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모양이다. 내가 그를 용서해줘야겠다. 불쌍한 사람.

아침인데도 주취로 그는 침실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어제 밤늦게 그는 비틀거리며 돌아왔다. 그리곤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며 잠에 빠진 우리들을 깨웠다. 눈꺼풀도 못 여는 우리를 만지고 쓰다듬고 수다를 떨며 난리였다. 그렇게 고삐 풀린 그의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산다. 우리 변함없는 일편단심 친구들!”

이어서 그의 입에서 가느다란 탄식이 새어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너희들 같으면 얼마나 좋으랴!”

야호, 드디어 그가 우리를 인정해주었다. 우리 때문에 그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간다는 게 너무 기뻤다.

그러나 낮이 되어도 그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의사라면 그에게 주사라도 놓아주고 간호를 잘 해줄 텐데. 이윽고 저녁이 다되어서 해쓱한 얼굴로 나타난다.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는 신장이 망가져서 투석을 돌렸던 환자다. 그런데 추락사한 불쌍한 24살 여대생의 신장을 이식받게 되었다. 그는 착한 사람이라 복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하는 걸 보면 다 안다. 몇 개월의 고생 끝에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과음하면 안 되는 데 말이다. 다음부턴 술 좀 조심하라고 주의를 단단히 줘야겠다. 그는 왜 그 이상한 물을 좋아할까?

어젯밤에 그가 나만 데리고 먼 남쪽나라로 놀러 갔다. 드디어 그의 그림에 나오는 키 큰 야자나무를 보았다. 그 아래 둘이 앉아서 어마어마하게 물이 넘실대는 바다라는 걸 바라보았다.

선이야, 네가 최고야!”

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놀이기구도 타고 별 맛있는 것도 다 먹으며 신나는 여행을 즐겼다. 그런데 붙어 다니던 그가 인파속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나는 울면서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찾아 헤매다가 잠에서 깼다. 개꿈이냐고? 물론 진짜 개의 꿈이다. 진돗개의.

나는 이제 늑대 과의 사나운 수캐가 되었다. 잘못 우리를 뛰쳐나온 닭이나 철없이 대드는 고양이 새끼도 물어 죽였다. 그리곤 그 큰 삽살개와 싸움이 붙어 이기는 바람에 동네 왕으로 등극했다. 이젠 내가 그 개의 밥그릇에 담긴 밥을 먹어도 걔는 꽁무니를 빼고 곁눈질로 바라만 보고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엔 옆집에 놀러온 일본 여자애의 다리를 물어 그는 그 애를 응급실로 데려가 파상풍 주사를 맞히고 일본에서 걸려온 그 애 엄마의 항의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뺐다. 그 결과 나는 풀어 키우지 못하고 항상 목줄에 매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늘은 진이가 한쪽 발을 들고 절고 있다. 발바닥에 진드기가 붙어서 살이 벗겨져 핏물이 나오고 있다. 그는 진이가 안쓰러워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는 서둘러 진이의 발에서 진드기를 제거하고 소독한 뒤 붕대로 칭칭 동여맨다. 진이는 절룩거리며 다니는 게 영락없는 상이군인이다. 그래도 죽어라고 그만 따라다닌다. 그가 목을 쓰다듬어주며 말한다.

,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일어난다. 그게 인생이란다. 아니 견생(犬生)이란다.”

 

그가 오늘도 아침에 차를 몰고 나간다. 요새 직장을 얻지 못해 여기저기 다니며 애쓰는 모양이다. 그가 낮에 집을 떠나는 게 싫지만, 그가 웃을 수 있다면, 또 우리에게 맛난 거 사다줄 수 있으려면 그가 꼭 좋은 직장을 얻으면 좋겠다. 그가 삶의 이유 전부인 나는 하루 종일 그의 차의 엔진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누구일까?

 

 

  • profile
    korean 2017.02.27 21:58
    잘읽었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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