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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9 16:41

강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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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 

 

1.

 머나먼 옛날, 험한 돌산에 위치한 마을이 있었다.

 돌이 워낙 많아 농사도, 목축도 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돌로 조각품을 만들어 다른 마을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 돌산의 돌은 다른 곳보다 훨씬 정결했고 그 돌은 다루는 마을 사람들에겐 조상에게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특유의 가공 기술이 있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의 작품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섭섭지 않은 가격에 거래되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웠던 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큰 장이 서는 옆 마을에 가서 작품을 팔아야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매일 밤마다 산기슭에 큰 비가 내려 강이 범람하기 일쑤였다. 강이 범람하면 마을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 고스란히 강물 아래 파묻혔다. 마을 사람들은 강을 건널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시절 자연의 힘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다리를 세우면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고, 배를 띄우면 멀리 떠내려갔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게 돌산 산신령의 뜻이라 믿었다. 어느새 그 누구도 억지로 강을 건너려 하지 않았다. 길이 막히면 그저 마을로 돌아와 하루를 공쳤고, 길이 열리면 장터에 나가 작품을 팔았다.

 이렇듯 강의 사정은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된 마을의 큰 대사였지만 이에 대처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우둔하기 짝이 없었다. 한발 먼저 강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강의 사정을 알리지 않았고, 행여 누가 물어보면 거짓말로 답해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마을 사람들의 심술은 오직 강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고 저주했다. 자신의 행복은 아무도 알지 못하게 꼭꼭 숨겼고 상대의 불행은 사람들이 알도록 널리 퍼뜨렸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심술궂은 태도는 오랫동안 내려온 마을의 지혜에 근거했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행복이란 본래 그 양이 엄격히 정해져 있어서 평등하게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행복한 건 누군가 불해하기 때문이고, 내가 불행한 이유는 누군가가 행복하기 때문이었다. 행복은 먼저 손에 넣는 자의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오늘은 강이 넘쳤나요?

라 물으면

알고 싶으면 직접 두 발로 걸어가서 보시오!

라며 핀잔을 주었다.



2.

 이 돌산 마을에 한 여자가 살았다.

 여자는 조각에 재능이 없어 장에 다니는 행상인 일을 했다. 그녀는 아침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마을로 떠나며 오늘은 강물이 넘치지 않았길 바랐다. 강을 넘지 못해 시장에 가지 못하면 가족들에게 필요한 음식과 물품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오늘은 강물이 넘쳤길 바랐다. 강을 넘게 되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시장에 가야 했고, 또 그만큼 무거운 짊을 짊어지고 해가 질 저녁에야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강을 마주할 때마다 꼭 같은 크기의 기쁨과 실망이 서로를 상쇄시켜 아무런 감흥도 마음에 남지 않았다.


 여자는 행복이 무엇이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마을의 생계는 오직 조각뿐이었고 불행히 그것은 자신의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꿈을 좇아 고향과 가족을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행복을 알지 못하는 탓에 불행도 알지 못했다. 오직 가족에 대한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이었다.

 

오늘은 강이 넘쳤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한 남자가 여자의 집 앞에서 강의 사정을 알렸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도 몰랐다. 여자는 강으로 향했고 넘친 강물을 보고 낙담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강이 넘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에도 남자는 여자의 집 앞에서 강의 사정을 알렸다. 여자는 강으로 향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뻗은 길을 마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로도 매일 남자는 여자의 앞에서 강의 사정을 알렸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못 들은 척 했고 남자도 그 이상 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오늘은 강이 넘쳤습니다. 가지 마세요

그걸 어떻게 아시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둘의 첫 대화였다.

아침 일찍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강에 다녀왔습니다

왜죠?

강이 불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왜죠?

당신에게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왜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여자는 얼굴이 달아올라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서렸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니었다. 입꼬리 한쪽이 어색하게 올라간 비웃음이었다.

알겠습니다.

여자는 차가운 말 한 마디를 툭, 내뱉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절 믿지 못하시나요?

 남자가 그런 여자를 잡아 세웠다.

제가 직접 강에 다녀왔습니다. 강물이 넘쳤습니다.

물론 당신을 믿습니다. 지금껏 당신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제 말을 믿으면서도 강에 가는 겁니까?

왜죠?

 남자가 물었다.

당신의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걸음을 뗐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쫓지 않았다.


 여자는 험한 산길을 내려와 강가에 도착했다. 남자가 말한 듯 강은 무섭게 불어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과격하게 흐르고 있었다. 한발 먼저 강에 도착한 사람들은 그제서야 도착한 여자에게 저마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길, 왜 이렇게 늦은 게야?

너 하나 때문에 이 사람들이 다 기다려야겠어? 사람이 뭐가 그렇게 이기적이야?

이들은 강이 범람해도 곧바로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 뒤에 오는 사람이 강의 사정을 눈치챌까 봐 마지막 한 명이 올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북적스럽게 마을로 돌아갔고 어느새 여자 혼자 남아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염없이 출렁이는 강을 보던 여자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않았고 여자의 울음은 저녁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3.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자는 10년 내내 매일 아침 여자에게 강의 사정을 알렸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지각도 없이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정확한 답을 주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10년 전 그날의 대화가 그들의 유일한 대화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자와 달리 남자를 모른 척 지나치지 않았다.


 기다림이 1년을 넘자 마을 모두가 남자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3년이 넘자 폭언을 쏟아냈고 6년이 넘자 폭력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남자가 눈에 나타날 때마다 한 걸음에 달려가 물을 끼얹고 사정없이 뺨을 후려쳤다. 강의 사정은 생계와 직결되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였다. 보물과 같은 정보를 얻으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한데, 한낮 계집에 빠져 마을의 오랜 전통을 흐린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남자의 일상이 10년을 넘기자 웃지못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젊은이 수십 명이 강이 아닌 여자의 집으로 몰려든 것이다. 남자는 항상 여자에게만 강의 사정을 알렸기에 남자의 말을 들으려면 여자가 나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무겁게 입을 닫았다.

오늘은 강물이 넘쳤습니다

 마침내 강의 사정이 밝혀지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저마다의 한탄을 시작했다.

아이고, 나는 오늘 시장에 나가야 한단 말이다!

저 분이 아니라잖아요, 그럼 네놈이 직접 가서 보고 오던가!

 이렇듯 아침부터 여자의 집은 북새통을 이루었고 그럴때면 꼭 어르신들이 나타나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아! 여기 모이지 말라고 했지! 싹 다 짐 챙겨 강으로 가지 못할까! 건강한 것들이 뭐가 부족해서 벌써부터 편법을 쓰냐!

 그러면 또 사람들은

아휴, 뭘 고생스럽게 그래요? 난 할 일이 있으니 신경 끄세요

라며 콧방구를 꼈다.

 무려 10년을 쌓아 올린 남자의 신뢰는 바위보다 견고했다.

 그런 남자를 보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지혜를 만들었다.

 

 그들은 생각했다.

 만일, 우리가 거짓말을 멈추고 진실을 공유한다면 어떨까?

 힘든 일을 함께 협동해서 이겨낸다면?

 만약 행복이라는 것은 무한정인 것이 아닐까?

 행복을 주고받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은 삼삼오오 모인 자리마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새롭게 피어오른 관념에 신뢰’. ‘믿음’, ‘정직따위의 이름을 붙여 형체를 체계적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관념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창작품에 스며들어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발현하였고,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예술 양식은 전국적인 큰 인기를 끌어 마을을 전성기로 이끌었다.

 


4.

 또 다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남자는 더 이상 젊지 않았다. 몸의 근육을 단련시켜주던 새벽의 산행은 어느새 독으로 작용했다. 차가운 공기는 날카로운 못처럼 폐를 찔렀고 몇 걸음만 걸어도 금세 숨이 차올랐다. 걸음이 늦어진 탓에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났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몸의 균형은 급속도로 흔들렸다.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날도 아침 채비를 마친 여자는 문득 자리에 멈춰섰다. 남자가 없는 살풍경을 마주한 것이다. 심장이 망치로 때리는 듯 시끄럽게 고동쳤고 몸에 힘이 풀려 어깨의 행상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그 안에 들어있던 돌 조각이 요란스럽게 깨졌지만 여자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를 기다렸다. 늦잠을 잤을 수도 있었다. 혹은 길을 잘못 들어 늦어질 수도 있었다. 온갖 불안이 마음을 짓밟았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20년이 흐른 지금, 남자는 한낮 사랑에 빠진 철부지가 아니었다. 마을을 바꾼 훌륭한 위인이었다.

 사람들은 남자가 집에서 쉬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여자에게 소식을 전했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강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자는 소식을 듣고 주먹을 쥐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남자의 집을 찾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남자의 집에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자가 온 것을 알아주고 바로 길을 터주었다. 남자는 평상에 앉아 있었고 여자는 말없이 다가와 남자의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나무 밑둥처럼 단단했던 다리는 젓가락처럼 얇았다.

미안합니다. 더는 강을 확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여자가 대답했다.

며칠 전 의원이 말하길 몸이 많이 상했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 영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여전합니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여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자가 환한 미소로 답하자 그와 동시에 마을이 떠나갈 정도로 큰 환호성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왔다.

 

 곧장 마을에는 큰 잔치가 열렸다. 집집마다 맛 좋은 음식과 묵혀둔 술을 꺼내 둘의 사랑을 축복했다.

 남자와 여자는 조용히 마을에서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곳을 거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어릴 적부터 강을 마주하며 느꼈던 똑같은 크기의 실망과 기쁨,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무능에 대한 실망,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동물, 잠버릇, 취미..

 남자도 여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어떻게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는지,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둘의 대화는 사랑을 시작하는 풋풋한 연인의 속삭임 같았고, 오랜 친구의 투정처럼 편안하고, 수십 년 만에 재회한 부부의 만남처럼 애절했다. 남자는 밤이 깊어서야 여자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안녕히 주무시오.

안녕히 주무시오.

 남자는 인사를 나누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여자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그 모습이 온전히 사라진 어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5.

 그날 이후 여자는 다시는 남자를 볼 수 없었다. 비단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의 그 누구도 남자를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돌산을 쥐잡듯 뒤지고 심지어 먼 마을까지 나서 수소문을 나섰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다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혀를 찼다. 오직 여자만이 예상했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결말을 맞이할 운명이었단 걸 진즉에 알았던 탓이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의 사랑은 위험했다. 남자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새벽의 어두운 산길을 달려 강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강이 아닌 자신에게 먼저 와주길 바랐다. 강의 사정은 중요치 않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에게 먼저 달려와 주길 바랐다. 남자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달려가는 곳이 저 멀리 강이 될 수 없었다.

 여자는 20년 동안 남자가 자신에게 오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한결 같이 강으로 달려갔다. 그건 여자가 바라는 사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놓아줄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나왔던 그날, 그 보드라운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부터, 강가에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이 남자가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온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목적으로서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다. 목적을 이루면 끝나는 사랑이었다. 이 사람을 붙잡는 방법은 원하지 않는 것을 주지 않는 방법뿐이었다.

 그녀는 침묵했다.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혀를 짓이겨 깨무는 아픔으로 마음을 숨겨야 했다. 그것이 그를 곁에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무엇하나 가진 것 없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자는 한동안 병을 얻은 듯 조용히 자리에 누워 온종일 긴 잠을 잤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고, 가까스로 기운을 차린 여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강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문밖을 나서니 여자의 게으름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기 가득한 마을의 부산스러움이 이곳저곳 전해왔다.


 여자는 물끄러미 멀리 산길을 바라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워 말을 물었다.

오늘은 강이 넘쳤나요?

 그러자 그 사람은 큰 목소리로 세상 천지가 들으라는 듯 대답했다.

하늘이 아주 화창합니다! 먼길 가야 할 터이니 채비 단단히 하시오!

 

  • profile
    korean 2017.04.30 21:32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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