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9
어제:
8
전체:
305,746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6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4.11.23 22:47

차오름

조회 수 66 추천 수 1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차오름.

 


꿈을 이루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삶이고 당신이 할 일이다

- S. 러쉬넬 -

 

 

사람들은 꿈을 좇아가며 살아간다. 어떤 고통을 겪어도, 어떤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꿈을 위해서라는 한 마디를 발판삼아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반드시 이루고픈 소망,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염원, 행복을 위한 씨앗. 우리의 인생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거창한 것? 그럴 수도 있다. 만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세계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지키기 위한 맹세일 수도 있다. 어릴 때 포기했던 장래희망이나 먼저 죽은 친구가 바라고 하고 싶었던 것, 지키고 싶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사람이 있는 곳까지 가서 그 사람을 데려오는 것. 멋진 꿈이라면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현실에서 이런 소리를 하면 공상이나 망상에 빠져 사는 속 편하고 한심한 사람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그런 꿈들은 충분히 인생을 내걸 가치가 있지만 그런 것을 네가 할 수 있겠어? 라면서 뻥 차버릴지도 모른다. 확실히 현실에서는 눈앞에 있는 것을 마주할 만한 것이야말로 꿈으로 인정해준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진다거나 자신의 갖고 싶은 집을 가진다거나 자신이 가고 싶은 장소로 여행을 간다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게 자신의 가족이랑 혹은 친구들이랑 앞으로도 평생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꿈도 멋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꿈들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또 언제든지 꿀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학창시절의 꿈이라고 해서 꼭 취업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중년의 꿈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노년의 시간만을 말하는 것도 아닐 테니, 어려서부터 인생의 대한 구구절절한 인생 그래프를 만들 수 있는 것이고 나이를 먹어서도 어렸을 때 순간 꽃 피웠던 호기심을 다시 한 번 손에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춘기 시절의 흔히들 할 수 있는 고민. 과연 꿈이라는 녀석은 뭐 하는 녀석일까?

 

꿈이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과 다짐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과분한 꿈은 상실감이 되어 돌아오고 이루지 못한 꿈은 절망이 되어 돌아온다. 꿈이 있는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행복은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 아주 가끔 힘들어서 주저앉고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의 별이 너무나 예뻐서 그것을 꿈으로 삼는다면 이전의 꿈은 전부 헛되고 소용없는 것이 되는 걸까?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내 삶이고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한다면 그 꿈을 이루었을 때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춘기의 건방진 소리를 하겠다. 그건 모순이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자면 영원히 가족과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이 꿈이라고 쳐보자. 그렇다면 애초에 행복이라는 것은 기준이 없는 것이며 자신만의 이렇다 할 정의가 있다고 한들 영원이란 말은 애초에 인간의 몸으로서는 절대 간섭할 수 없는 신의 섭리이다. 그렇다면 이 꿈은 영원히 이루어질리 없는 꿈이 된다. 그렇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붙잡고 평생을 사는 그 사람은 바보인 것인가? 아니면 꿈을 붙잡고 살아가는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만약 친구와 같이 밥을 먹는 것이 꿈이라면 40살에 그 꿈을 이룬 뒤에는 그 사람은 무엇이 되는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만 가지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 만 가지의 고통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꿈을 위해 살아가는 자도 행복한 것이고 꿈을 이룬 자도 행복한 것이라면 만약 그런 것 없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꿈이란 건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내릴 결론은 하나다. 꿈은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 일수도 있다. 백 개 일수도 있고 천 개 일수도 있다. 이룰 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어차피 행복의 기준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게 생긴 것.

무색투명. 무엇을 비추냐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결정되는 것.”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 , 꿈이란 없는 것이다.

라고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봅니다. 누군가 듣고 감동이라도 받았으면~”

별로 재미도 없는 책을 읽고 있자니 읽으라고 있는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만사의 무관심으로 가득 찬 내 머리가 주제넘게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었다. 도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제목이 눈에 띄었기에 무심코 대여해버렸기는 하지만 그림 하나 없는 철학책이라니, 늘 듣는 노래만 반복재생이 되는 MP3를 이어폰과 함께 접어 주머니에 넣은 뒤 책의 제목을 아무도 들리지 않을 자신감 0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나답게 놀면서 나답게 즐기는 법.”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 시간은 41분에서 43분 내지. 버스를 2번 갈아탄 뒤 또 10분을 걸어가야 제각각 머리에 뭘 넣고 사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아이들이 가득 찬 교실에 도착한다. , 말이 조금 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좋게 말해서 다들 개성이 강하다는 뜻이므로 칭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번 더 꼬아본다면 비유를 첨가한 최첨단 자기비하랄까.

이제 곧 겨울방학그래봤자 숙제가 산더미지만.”

내 나이 18. 평범함이 옷을 입고 인간의 사회에 섞여들어 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특기, 취미 없는 벌써부터 수능을 걱정하는 18세 여고생이다. ‘할 줄 아는 건 공부밖에 없어서라는 말을 할 정도로 공부도 그다지 잘하는 편도 아닌 중상위권의 성적. 운동도 좋아하지 않고 못한다고도 못할 수준의 요리나 기타 등등 여성스러움의 상징과는 약간 거리가 있을 수 있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날이 갈수록 자기비하의 솜씨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기분이 들지만 전혀 씁쓸하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평범하게 살면서 평범하게 행복한 것을 바라고 있으며 그다지 특별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짤막하게 우리 반에 대한 소개를 비꼬는 형식으로 한 이유도 뚜렷한 개성과 재능과 꿈이 있는 모두의 사이에서 홀로 아무런 색도 없는 나에게 하는 꾸짖음의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

수학 문제집을 내가 저번에 사다 뒀나? 견학 보고서는방학 시작하고 나서 바로 가야겠다. 귀찮을 일 나중으로 미뤘다가 교통체중 일으키기 않게.”

이렇게 자신을 혹되게 몰아넣는 사람들 중 크게 되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만화나 소설에서나 있는 이야기. 내가 이러는 이유는 오기나 계기. 소위 각성을 위한 것도 아닌 이런 사람도 잘 살아가고 있으니 다들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세요!’ 라는 희망을 모두에게 전하는 비운의 캐릭터를 스스로 자처해서이다. 이렇게 하면 은근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생기고 마치 내가 어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내성을 쌓으면 괜히 엄한 데 심정 풀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걸려도 그다지 마음의 상처를 입지도 않게 되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배고파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

서민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보았던 행복. 집에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어서 실망하던 차에 언제 사다두었는지도 모르는 라면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을 때의 그 행복을 느끼려는 찰나 본능적으로 주머니로 간 손이 내 건망증을 타이르고 말았다.

내 휴대폰열쇠

휴대폰을 학교에 두고 왔다. 그것뿐이라면 그냥 내일 찾아야지라는 식으로 바로 집에 갈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집에 들어갈 수단인 열쇠를 휴대폰 고리에 걸어놓았다는 거다.

‘PM 4:13

2주마다 한 번 있는 야자 없는 날. 이면서 단축이었던 날. 오랜만에 게임도 하면서 매번 시간이 맞지 않아 다시보기로 밖에 못 보는 TV프로그램을 보며 라면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하필 오늘. 건망증도 활동하는 주지가 따로 있는 건가. 자율 개체?

과거의 나여.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니.”

다시 학교에 돌린 내 발걸음이 많이 묵직했다.

 

PM 5:41.

집 앞의 정글짐부터 시작해서 시소, 그네까지 있을 건 전부 구비된 작은 공원. 맞은 편 건물 너머에 유치원이 있어서 점심 때 이 근처를 지나면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넘어 들려오곤 했다. 원래 이 공원을 지나서 가는 것보다는 직진해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빨랐지만 학교에 휴대폰을 찾으러 갔을 때 교통카트 충전도 할 겸 돈도 조금 뽑았기에 음료수라도 사가려고 이 길을 선택했다.

모래밭발자국이 아직도 있네. 저거하고 저거세 명, 아니 네 명인가?”

입구에서 가까이 보이는 모래밭에 점심에 찍힌 발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모두 시소나 미끄럼틀로 몰려갔을 때 서너 명 정도는 여기서 두꺼비집이라도 한 것일까, 볼록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몇 개 보였다.

그 아이도 잘 지내고 있으려나.또 어디 구석에도 울고 있지는 않겠지?”

추억 창고에 가장 깊숙한 곳, 할머니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헤어지고 만,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마음의 친구를 떠올리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한 그 때, 어차피 금방 클 것이라는 엄마의 고집이 담긴 조금 헐렁한 운동화를 신고 축구공을 뻥하고 차는 소리가 들려 나는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서 그 아이를 만났다.

 

흐흐흐흠~ 흐흠흐흐흠~”

정글짐의 가장 위. 새하얀 이어폰을 귀에 꽂고 흥겹게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는, 눈이 왔다면 보이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 하얀 패딩에 약간은 짧은 치마, 연한 초록색의 긴 생머리의 여학생. 그 여학생은 별이 뜬 밤하늘에 자신의 별자리를 새기듯 노을이 지고 있는 주황빛의 하늘에 손을 올려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축구공이 정글짐에 부딪혔다. 소리를 들은 것인지 진동을 느낀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여학생은 손을 멈추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 - -”

공원의 입구.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점퍼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버린 공을 급하게 쫓아오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것처럼 보였다. 남자아이는 공원의 가장 안쪽 정글짐 앞에 있는 축구공을 발견하고는 얼굴 가득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자식 몸에 탈이라도 날까 부모님이 점퍼 안에 옷을 몇 겹이나 더 입혀준 것인지 뒤뚱뒤뚱 뛰어오는 모습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읏차! 으으추워.”

정글짐 위에 있던 여학생은 아래로 폴짝 뛰어내린 뒤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떨어진 축구공을 주워들었다. 막 앞에 도착한 남자아이는 주춤하며 살짝 곤란한 듯이 고개를 들었다.

축구공이 자신의 것이라는 자기의사를 확실하게 표시하기에는 여학생의 초록색 머리에 겁을 먹은 것인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여학생은 왼쪽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뺀 뒤 오른손에 들려진 축구공을 남자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활짝 얼굴을 피며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ㄷ…

두 손으로 공손히 공을 받으려 한 남자아이의 손이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여학생은 공을 주는 척 하면서 머리 위로 높이 손을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까지다 못해 어린애를 괴롭히는 개념 없는 학생이라고 단언하고 멋대로 생각하려다 그 다음의 여학생의 말을 듣고는 순간 머리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혼자 해? 누나랑 같이 놀아준다면 공 줄게."

여학생은 환하게 웃어보였다. 계속 옆모습만 보거나 스치듯 보아서 그런지 저렇게나 예쁘게 생긴 아이라는 건 이 순간에 처음 알았다. 첫인상이고 지금까지의 이미지고 전혀 상관이 없이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예쁘다

보는 나조차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저 남자아이는 저 미소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

남자아이는 신난다는 듯이 대답하며 여학생을 따라 웃었다. 여학생은 만족한다는 듯이 공을 땅에 내려놓고는 시범이라도 보이듯 멀리 있는 그네까지 공을 찼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여학생이 뛰어가자 남자아이도 주춤하다가 그 뒤를 따라갔다. 그 후로 몇 십분 동안이나 놀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아마 저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아무런 고민도 없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겠지.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저 여학생을 의자에 앉아 조

용히 지켜보며 나는 여학생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내가 했다면, 협박한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하냐?”

올해 3. 신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2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1학년 복도 한복판에서 2학년 여자 양아치 4명이 1학년생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있던 학생은 이제 막 입학한 햇병아리인데도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선배에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였다.

강한 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훗날의 부끄러움과 무너지는 순간의 치욕 뿐. 알까 모르겠네. 여기가 게임도 아닌데.”

나와 전혀 관계도 없을뿐더러 괜히 얽혔다가는 좋은 일도 없기에 나는 싸움 구경이라고 전등에 몰려든 벌레 떼 마냥 모여 있는 학생들의 사이를 겨우 지나갔다. 그저 아무런 사건도 없이 올해도 평범하게만, 그것이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1년 계획이자 바람이었다.

이게 어디서 선배한테

완전한 무시를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 한 그 때 내 귀에 들려온 단말마는 내 고개를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돌아본 나의 시선 정면으로 운이 좋게 그 광경이 한 번에 들어왔다.

먼저 한 대 맞았으니 이건 정당방위인 거지?”

1학년의 바로 밭 밑에 2학년 양아치 한 명이 뒹굴 거리고 있었다. 그에 지켜보던 1학년들은 맞은 사람이 2학년이라 별다른 환호도 하지 못하고 단체로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너 지금 얘 쳤냐? 싸가지 없는 게 선배고 뭐고 손부터 먼저 나가고

적어도 사람이라면 사람 소리를 내야지. 이해를 할 수 없거든?”

당황한 2학년의 사이에 있는 여학생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자신에게 말을 한 양아치에게 조용히 걸어갔다. 그러자 양아치는 겁을 먹고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 뭐야? 치게? 나도 치게? 그래 쳐봐 시발. 그래봤자 누가 손해인지는

치라고 했으니 친다. 그런 간단하지만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없었던 행동이 내 앞에서 벌어졌다. 그대로 나아간 여학생의 주먹은 양아치의 얼굴을 갈겨버렸다. 그 행동에 옆에 서있던 2명의 양아치는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너희 같은 년들의 이빨을 싹 물갈이한 대가가 고작 징계라면 싼 거지.”

여학생은 쓰러져있는 양아치의 멱살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지. 이왕 손해 볼 거 성형수술 쫙 시켜주고 치료비나 몇 백 물려줄까? 그럼 그 돈으로 나중에 가방이나 사면되겠네. 그렇게 되면 누가 더 손해일 거 같아?”

여학생은 일으킨 양아치를 땅바닥에 집어 던진 다음에 뒤돌아 다른 양아치를 바라보았다.

선배 취급 받고 싶으면 선배다운 행동을, 사람 취급 받고 싶으면 사람다운 행동을.”

천천히 자신의 쪽으로 여학생이 걸어오자 양아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인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양아치의 옆에 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신이 당할 시련을 탓하기 전에 우선 자신이 해온 행동들을 돌아볼 것. 앞으로 조용히 지내라.”

여학생이 가는 길 앞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좌우로 크게 갈라졌다. 여학생이 지나가자 양아치는 힘이 풀린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역시 비슷한 정도로 놀랐는지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요즘 애들 중에도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가 있기는 하는구나. 나중에 이런저런 과장이 덧붙여져서 차마 손 펴고 볼 수 없는 오글거리는 소문이 돌기 전에 직접 눈으로 본 것에 감사하며 나는 내 감상평을 한 단어로 중얼거리고 가던 길을 갔다.

멋있네.”

그 이후로는 아니나 다를까 그 여학생의 대한 소문이 학교 전체에 쫙 펴졌었다. 맞춤법도 모르는 녀석이 쓰는 소설 같은 소문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순수 그 여학생의 대한 이야기만 하자면 그 여학생은 2학년과의 그 일이 있는 직후 2학년들과 함께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약 한 달간의 교내봉사를 맞춘 후 얼마 되지 않은 5월 초에 또 한 번 폭행사건을 일으켜 부모님이 소환됐었고 학교에는 알려지지 않지만 조폭과도 연루되어 경찰서까지 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전 7월 말, 외부의 어디에서 돈을 훔쳐 결국 정학 처리를 받고 방학 후 2달 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그 후로 11월에는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며 조용히 지내나 싶더니 12월에 들어서 또 무단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미 제대로 된 졸업도 불가능할 정도. 멋대로 막 나가는 인생을 사는 것이 재미는 있겠지만 그 사회의 눈초리를 받을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한창 그 여학생이 부럽기는커녕 그저 바보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중간에 커다란 벽이 있다면 내가 있는 안쪽이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이 그저 평범함에 매달리기 위해 형식적인 노력을 하는 곳이고 그 여학생이 있는 곳은 어딘가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누가 무엇을 하든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지만 그렇기에 위험하고 위태로운 곳이었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그 여학생이 스스로 절벽에 자처하는 미련함으로 보였다. 그냥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 수 있을 텐데또 이런 나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을 때, 집 근처 공원에서 나는 그 여학생을 만났다.

제법이잖아? 달리기도 빠르고.”

해가 져 날이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이 추운 날씨에 이마에 수줍은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뛰어논 둘은 금세 죽마고우처럼 친해진 것처럼 보였다.

많이 어둡네. 내가 데려다줄까?”

아니야. 집 바로 여기야. 혼자 갈 수 있어.”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 다음에는 네가 나 데려다줘야 한다.~”

! 누나 안녕~”

여학생은 축구공을 두 손으로 끌어안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남자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 역시 한 세 걸음마다 한 번 꼴로 돌아보는 남자아이가 귀여워서 뒤에서 작게 손을 같이 흔들어 주었다.

- 벌써 7시인가? 늦었네.”

여학생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7시라는 말에 나는 아까부터 보려고 벼르던 TV프로그램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맞다! 오늘 6시 반에

. 급하게 입을 막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여학생은 지금까지 인기척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 소리가 난 쪽에 있는 나를 보고는 문자 그대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상대가 상대인 것도 있지만 이 상황도 그리 평범한 상황은 아니어서 딱히 뭐라고 먼저 말을 걸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재밌게 잘 놀던데? 무슨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야!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최선을 다해 변명 아닌 변명을 떠올리고 있던 나에게 그 여학생은 먼저 말을 걸었다. 당황하는 입장이 서로 반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 그게미안하지만 처음부터

들리는 소문도 소문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선배를 패는 모습을 직접 본 적도 있고 또 염색한 머리가 슬슬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에 비춰 괜히 더 무섭게 보였기에 나는 체면이고 뭐고 얼굴을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내 대답에 여학생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내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그것도 봤어?”

, 그거라니?”

그거라고만 말한다면 밑도 끝도 없이 무구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생물이었다. 거짓말이 유치원생보다 더 티가 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여학생은 웃긴 듯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벤치에 등을 기대었다.

아니야. 봤다고 해도 뭐라고 할 생각도 없고.”

여학생은 은근 힘이 들었던 것인지 두 다리를 쭉 피며 늙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피부도 새하얗고 눈도 맑고 선명했다.

하아

고개를 젖힌 여학생은 그대로 멍하니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물을 뿌린 듯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아니, 어떻게 보면 끝밖에 보이지 않는 그 검은색은 내가 보아도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적 있어? 자신을 다른 것에 비유해서 말해본 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대체 평소에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바쁘지 않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이렇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제법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나름 감상중이라고 할 수 있었던 때에 여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나를? 비유?”

. 예를 들면 나는 꽃이다, 아직 봉오리일 뿐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때가 반 듯 올 것이다, 이런 식의 오글거리는 거 있잖아.”

우와. 비유만 들어도 오글거려. 그거 그냥 희망사항 아니야?

? 그래도 나는 꽤나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라던가. 아니면 지금의 내 처지와 비슷한 것이라던가.”

내 처지벌써부터 숙제가 밀릴까봐 걱정하는 처지?”

나와 비슷한 처지의 것에 나를 비유한다.꽤나 재밌을 것 같기는 하지만.

글쎄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는데.”

처음부터 그냥 나는 평범한 사람.’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갑자기 떠올려본다 한들 하고 기발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잠시라도 생각에 잠겨보니 조금 이상한 것이 내가 왜 이런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고 있는 거지? 그것도 이름도 모르는 애한테. 아니, 이름만 모르지 일단 알기는 아는 애니까 상관이 없는 건가?

나를 다른 것에 비유하라고 한다면 나는 밤하늘 같다고 생각하는데.”

여학생은 추운 것인지 쭉 늘인 목과 다리를 단번에 웅크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덕에 괜히 놀란 나는 황급히 딴 곳을 쳐다보다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하늘. 이제는 반짝이는 별을 보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 되어버린 그런 하늘.

?”

순간 어째서?’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너는 이렇게 하얀데.

나랑 얘기해줄 거야?”

여학생이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하얀 패딩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렇게 눈이 마주치니 머쓱해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조금이라면

이야기를 해주는 쪽이 감사해야 하는 건가? 얼떨결에 고개를 살짝 숙인 내가 부끄러워졌다.

~?”

여학생은 그런 나를 금방이라도 놀릴 듯이 바라보다가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은 언제나 빛나고 있는데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나는 언제나 빛이 나고 있는데,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 그보다 밝은 빛들이 많아서 나는 보이지 않아.”

언제나 굽히지 않고 강인하게만 보였던 눈이 이렇게나 물처럼 흔들려 보였었나?

빛나고 있는데, 여기서 더 빛날 수 없는데 누가 날 봐주길 원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이었다. 여학생이 나에게 한 질문.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그런 질문.

글쎄

모르겠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고민.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 내 입에 있었다.

조금 더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러면 너무 눈이 부시려나.

막상 말하고 나니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함께 자신감이 사라져서 그에 상응하게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어쩌면 너무 뻔한 대답이라 조금은 실망

가까이 간다.인가.”

여학생은 내 대답이 조금 의외였던 것인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명백하게 잘한 행동이라고 해도 왠지 모를 죄책감 비슷한 것이 느껴져 부담스러웠다.

그러네. 누군가 봐주길 바라기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다가가서 보여줘야 하는 거네.”

묵은 응어리가 한 번에 풀려버린 것처럼 여학생은 가벼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벤치에 등을 기대었다. 내가 올바른 대답을 한 것인지, 애초에 이 질문에 정해진 답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한 말을 조용히 되뇌어보았다. 누군가 봐주길 바라기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줘라내가 한 말이긴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걸까?

애초에 보여줄 게 있나

? 뭐라고 했어?”

? , 아니야. 아무것도.”

혼잣말을 하는 것이 버릇이 되다보니 나의 자발적인 자기비하를 타인에게 공개시킬 뻔했다. 이렇게 남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데 나는 언제쯤 빛날 수야 있을는지.

이번에는 내가 하나 알려줄까?”

여학생은 다리를 작게 흔들거리며 내게 말했다. 나는 무엇을 알려주려 하는지도 모르지만 왠지 아무 거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을 보고 싶어 바라본 하늘이 새까만 것이랑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랑 무엇이 더 비참할 것 같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적. 대낮의 맑은 하늘이건 구름이 낀 하늘이건 먹구름 낀 흐린 하늘이건 밤하늘이건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본다면 그 이후에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정답은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 아무것도 없을 때야.”

무엇이 됐든 그건 후회밖에 없겠지.

보고 싶은 걸 보지 못할 때에는 다음의 기회를 노리고 깔끔하게 포기를 할 수가 있어. 실망을 할 수가 있어. 하지만 힘들고 뭔가 변화가 필요할 때 우연히 본 광경이 내 마음을 더욱 암울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좌절이 되고 상심하게 되거든. 어차피 전부 힘들고 어두운 뿐인데라며 순간적인 좌절이 극이 달한다면 그게 돌이킬 수 없는 포기가 되는 거야.”

돌이킬 수 없는 포기. 그런 것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 정도로 고민할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걱정이 든 적은 있었다. 과연 내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하지만 반대가 된다면 완전히 다른 것이 되. 보고 싶은 걸 매번 볼 수가 있다면 언제나 그러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안이하고 게을러지지. 그렇게 되다 보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만 하다가 그대로 넘어지는 거야. 나태이자 자만.”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찾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연이란 건 참 재밌는 녀석이거든. 우연히 찾아온 절망은 그대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반면에 우연히 찾아온 희망은 절벽 밑에서 끌어올려 주거든. 그 작은 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 다짐, 소망 등등 무지하게 많아. 강한 사람은

바로 여기서.

그 우연을 전부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그것에서 비로소 사랑도 생겨나는 거지.”

강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힘이 세다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 현실에서 부유하다라는 경제력만 있을 뿐 그 이외의 강함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즉 강한 자는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이라고 나는 생각해.”

여학생은 할 말이 끝나고 나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별이 없다고는 하더라도 그 고요한 어둠은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았다.

강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거야?”

분명 그런 느낌은 드는데 나는 아직 그 아름다움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아직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 있기에, 아직 이해하기 싫은 것이 있기에.

결국 약자는 행복할 권리조차 없다는 거야?”

살짝 흥분한 것인지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나는 곧바로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하려 했지만 여학생은 그럴 틈도 없이 내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정말 약하기에, 그렇기에 내가 약하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났다.

그래. 나는 약해. 그래서 뭐 어쩌라

약하다는 게 뭔데?”

여학생은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말했다. 약하다는 게 뭐라니마치 내가 뭐라고 묻는 것만 같잖아.

누가 기준을 정했어? 아니잖아. 설령 언니가 지은 기준이 있더라도 자신을 그 밑에다 두는 이유가 뭔데?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약한 이유가 뭔데? 약한 것이 뭔데?”

점점 가까워지는 여학생의 얼굴에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려 했다. 몸을 지탱하기 위해 벤치의 한쪽을 손으로 잡았을 때 손끝이 살짝 따가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킨 뒤 말했다.

약한 이유? 내가 원하는 걸 노력해도 이룰 수가 없어서.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것이 내 한계라서. 약한 것이 뭐냐고? 나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너무나 많다는 거. 약한 기준?”

불끈 쥔 두 손으로 언제 한 번 소리쳐보고 싶었던 말. 누구나 가졌던 유치한 남 탓.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강해지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약한 것이 싫어서. 약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능함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무력함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저 그거만을 바랐다. 약한 건 너무나도 싫었다.

바보.”

그래. 나도 내가 바보라는 것쯤은 알아.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면서도 성적은 중상위권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가고 사춘기 시절에 유치한 고민이나 하고 말도 안 되게 세상 탓

"하지만 그 편이 재밌잖아.”

여학생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자책하고 있다가 조용히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여학생은 오히려 내가 부럽다는 듯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남들보다 모자라서 바보라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기쁨이 있잖아? 바보일수록, 서투를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배우고 느끼는 기쁨이 있잖아?”

여학생의 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깨닫고 말았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다.

약한 것도 마찬가지야. 누구보다 약하니까 그만큼 누구보다 강해질 수도 있는 거야.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약함을 모르고서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것은 당연한 거. 그래, 당연한 거지만 단순히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언니는 바보야.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어. 언니는 약해. 그렇기에 언니는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어.”

아직 나이도 모르는데 언니란 소리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자책하기에는 아직 세상은 너무 넓은 걸. 안 그래?”

여학생은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예전부터 스스로를 계속 조여오던 무언가가, 고민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름 없는, 하지만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가 깨끗하게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자책하기에는 아직 세상은 너무나 넓어. 평범하게 살기에는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

, 평범

그러고 보니, 아직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계속 딱딱하게 여학생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잖아. 왜 언니라고 부른 것인지는언제 학교에서 한 번은 본 적이 있었겠지 뭐.

왠지 계속 위로만 받았네. 많이 미숙한 선배를 둔 우리 후배의 이름은 뭘까?”

요즘은 이름 물어보는 것도 그렇게 화려하게 하나? 대답도 평범하게 하면 안 되겠네?”

내가 동생보다 미숙하다는 것이 그렇게나 화려하게 보였다니. , 칭찬이지? 아마

내 이름은 미루. 학교에 소문도 많이 났을 텐데 모르고 있었어?”

본인이 유명인사라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네. 항상 그 애’, ‘또 그 녀석이란 수식어로만 들어왔으니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나 말고도 꽤나 있었다.

소문이야 요즘은 거의 다 가라앉았지. 화제에 올리는 애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옛날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니까. 유행이 지났다고 할까?”

왠지 미루의 표정이 자신의 소문에 대한 근황을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최근의 학교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보다 정학을 당할 정도로 불량하다면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밌는 듯 웃어 보이니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래? 적어도 팬 한 두 명은 생길 줄 알았는데.”

그런 짓을 하고 다녔는데 팬은 무슨. 이라고 말하기가 무색하게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너 굉장히 인기가 높다고? 양아치 선배들한테도 잘못된 것이라면 확실하게 말하는 똑 부러진 성격에 예쁜 외모에. 어쩌면 갈수록 소문의 질이 나빠지는 것은 여자애들의 질투일지도 모르겠네.”

하하, 그게 뭐야. 내가 뭐라고 질투까지 해?”

미루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나도 내 말을 되짚어 본 결과 진짜 그럴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하하하, 그러게. 진짜 그런 이유라면 속이 좁아도 너무 좁은 거 아니야?”

자신이 그만큼 올라가기 보다는 남을 깎아내리는 것밖에 못하니까 그런 거겠지.”

미루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호탕하게 웃어본 것인지 눈에 눈물까지 맺혔다. 미루는 웃음을 멈추고 주머니 속을 꼼지락거리더니 속에서 꺼낸 무언가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

미루가 나에게 건넨 것은 다름이 아닌 담배였다. 나는 예상치 못한 소품의 등장에 고개와 동시에 손을 흔들었다.

아니, 나는 전혀

미루는 그래?’라고 대답하더니 치마 주머니에서 파란색의 라이터를 꺼냈다. 나는 오늘 미루를 처음 만났던 때보다 더욱 긴장한 상태로 미루를 보고 있었다.

아까 그것도 봤어?’에 그게 그거야?”

. 지금까지 내가 담배 피우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언니가 처음이야.”

처음그렇다면 더더욱 피우면 안 되지 않나? 아니, 애초에 담배는 피우면 안 되는

그냥 안 필래. 슬슬 끊을 때도 됐고.”

미루는 라이터의 불을 한 번 보고는 담배와 라이터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담배를 보는 내 긴장한 눈빛을 보고 내린 결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내 영향이 있던 것은 확실했다.

, 언제부터 피웠는데?”

담배? 1년도 안 됐어 아직. 하면 뭔가 달라질까? 하고 했는데 입 냄새만 나고. 이제 와서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뭐.”

미루의 솔직함에 오히려 내가 할 말이 없었다. 담배 같은 거는 그냥 나쁘고 돈 낭비로만 생각하며 앞으로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경험담을 들으니 평생 금연계획에 더욱 자신감이 붙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건 보통 비밀로 하지 않아? 아니면 정말 친한 사람한테만 알려준다던가.

그러니까 알려준 건데. 나의 유일한 비밀.”

?”

비밀을 알려줄 정도로 친한 사람이?

중간에 딴 데로 샜네. 언니는 이름이 뭐야?”

, 그러네. 내 이름은

나는 내 이름을 미루에게 알려줬다. 나에게서 특징 하나를 꼽는다면 그건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바로 내 이름이었다.

신기한 이름이네. 언니랑은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도.”

나도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 , 이름에는 걸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언젠가는 이름처럼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오늘 너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만 있어서는 정작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을 거 같더라고.”

예쁘고 부르기도 편한 한글 이름. 이 이름은 내게 있어 자랑스럽고도 부담스러운 이름이었다. 어째 이름이 주인을 잘못 만난 기분?

그런데 내가 언니란 건 어떻게 안 거야? 우리 학교는 명찰 같은 것도 없는데. 혹시 저번에 본 적이라도 있어?”

외동이면서 어린 꼬마와 관계될 일이 억지로라도 없던 나로서는 언니라는 말을 들으니 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는 그런 느낌?

역시. 본 적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뭐랄까, 나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졌다고 할까? 그냥 언니라고 부르고 싶었어.”

어른스러운 건 나보다는 네가 아닐까나.

부르고 싶다니, 너도 외동이야?”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언니도 외동인가 보네? 우리 둘이 공통점이 되게 많은데?”

미루는 개구쟁이처럼 미소를 지었다. 나와 같은 외동이면서 그런 나와 공통점이 있다면 미루도 나처럼 많이 쓸쓸해 한그건 아니겠지. 딱 보아도 사교성은 좋아 보이는데.

그러게. 나는 외동이라서 쓸쓸한데너는 안 그래?”

? 난 별로. 형제가 없다거나 친구가 없다거나 그런 걸로 쓸쓸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렇구나.너도 친구가 없잠깐, ?

, 그거 비유로 한 말 맞지?”

진짜인데. 나 친구 없어. 한 번도 사귄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부 서로 단물 빨 것만 빨고 돌아선 애들이 다수지. 이렇게 마음 놓고 얘기한 건 아마 언니가 처음일 걸?”

미루는 담배대신 반대쪽 주머니에서 포도 맛 막대사탕을 꺼내어 입에 넣었다. 미루 같은 성격에 외모도 이 정도라면 친구는 가만히 있어도 먼저 다가올 것 같은데.

정말 한 명도 없어? 그 담배를 같이 피운다거나, 어렸을 때 만났던 친구라거나.”

없어. 중학교 때 서너 명 만났던 것 빼고는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쭉 혼자 다녔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미루가 다른 학생이랑 같이 다니거나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별로 그런 거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 어째서 친구를 사귀지 않은 거야?”

차마 어째서 친구랑 사귀지 못하냐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 질문은 미루가 아닌 나에게 해당하는 질문이기에, 내가 나한테 셀 수도 없이 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이유 같은 건 딱히 없는데. 그냥 귀찮았어. 사귀어봤자 별로 이유도 없고 시간도 아깝고. 굳이 마음을 모조리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친구가 아니라면 전부 시간 때우기나 여흥 즐기기 아니야?”

미루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탕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했다. 나는 그런 미루를 가만히 바라보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땅바닥으로 내렸다. 미루는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귀지 않은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친구를 두고 싶단 생각은 한 적 없어?”

언니 같은 친구라면 몇 명이라도 사귀고 싶은데 난.”

미루는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가 축 처져있는 나를 보고는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 내 등을 약하게 두들겼다.

외롭다고는생각한 적 없어?”

없어. 한 번도. 혼자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걸?”

재미그래. 내가 잊고 살아온 그것은 그거였다. 재미. 늘 똑같은 일상에, 늘 같은 고민에, 늘 같은 모습. 친구라는 건 그런 것을 바꿔놓을 존재라고 생각했다.

가족은없어?”

가족이라그런 사람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가족이겠지?”

나는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로 말하는 미루가 신기해 고개를 들었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나와 미루는 닮은 점이 많지만 전혀 닮지 않았다.

같은 집에 있어도 없는 사람이야. 나한테 관심도 없고, 나도 관심이 없고. 누구 한 명 죽어야 그제야 눈 하나 깜박할 걸?”

그게 뭐야. 부모님이 너 안 챙겨줘?”

있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그저 가식으로 들렸다.

자식이 아닌 돈 쳐 먹는 기계 취급. 목줄만 없을 뿐이지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거든. 어쩌다 마주쳤다 하면 죽이려고 드는데 뭘.”

미루는 사탕을 이리저리 입 안에서 돌려가며 말했다. 지금까지 가족을 간절하게 원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좋으니 같이 있어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이 있음에도 따스함은커녕 빈자리를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미루는 그것을 외로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마음의 한 구석이 비어있는 것은 확실했다.

언니 부모님들은 어때?”

미루는 나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반 아이들이 어디 여행을 갔다거나 그런 가족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냥 나한테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절대로 없어서 외롭지 않아. 없다고 울지도 않아.

가족이 없는 건 쓸쓸했어. 하지만 그건 그거일 뿐.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거나, 친구랑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친구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

가족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기억 속에, 내 마음 속에는 가족이 없었다. 사랑이 아닌 어쩌다 저지른 사고로 태어난 아이. 아빠는 나를 낳자마자 도망갔고 엄마 역시 1년 동안 나를 보살피다 또 다른 남자와 함께 멀리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혼자 사는 친할머니의 댁에 맡겨진 나는 8살 때까지 엄마, 아빠라는 단어도 모른 체 지내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로는 정말로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고아원에는 맡겨지지 않은 채 그 때부터 혼자서 살아온 나는 초등학교까지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기초 생활비로 지내다가 중학교 때는 여러 대회에 나가서 얻은 상금으로 먹고 살았다. 그마저도 중학교 3학년 2학기 무렵 슬슬 난이도가 어려워지면서 성적도 조금씩 떨어지자 결국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주말과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 힘들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쓸쓸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런 느낌이 문득 들 때가 있을 뿐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 적은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없어도 할 수 있으니까. 없어도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그런데 그 쓸쓸함이 조금은 다른 감정으로, 비참함으로 바뀌는 순간은 있었다.

그렇게 당연하게 살아왔는데, 그게 틀린 것인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

왜 나는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지? 다른 아이들처럼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졸라도 보고 어리광도 부려보고, 재미있는 놀이가 있으면 같이 하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오던 것이 너무나 한심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하지만그 때는 이미 다른 누군가와 섞이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처음으로 운명을 탓함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나도아직 어린데

울었다. 멋대로 눈물이 흘렀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그냥 이래저래 속에 쌓인 모든 것이 한 번에 눈물로서 터져 나오는 듯 하는 그런 울음이었다. 울어도 아무도 봐주지 않았어. 울어도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어. 아무도 없어서. 너무 추웠어.

 

너무 추운데, 아주 작은 온기가 나를 달래주었다.

?”

미루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보기보다 훨씬 작고 따뜻한 손은 밤공기에 차가운 내 머리에 온기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 행동에, 미루의 작은 손짓에,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있던 말로 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눈물로서 펑펑 쏟아냈다.

흐으윽

이런 걸 원했었다. 억만금도, 가족도, 좋은 직업도 아닌, 그냥 누군가가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를 원했었다.

많이 힘들었지? 조금은 쉬어도 괜찮아.’

가끔은 누워서, 하늘을 보고 싶었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언니는.”

미루는 손등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나는 미루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열심히 산다니. 전혀 그렇지 않은데

아니긴! 다른 누군가의 지나친 기대도 없고 부담도 없는데 언니는 항상 달려왔잖아. 그게 열심히 사는 거지 뭐겠어.”

항상,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을 위해 조금 쉬어도 되잖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언니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는 걸.”

미루는 내 머리에 올려져있던 손을 내려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니까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재밌게 살아야지. 안 그래?”

미루의 손은 내 손보다도 작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 온기는 손을 타고 내 심장에 닿기에 충분했다.

나도 고민하고 있던 게 있는데 언니를 보고 다짐했어. 지금보다 더욱 재밌게 살아보자고!”

미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을 허리에 짚고 당당하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 그것을 빛내는 법을 모를 뿐이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미루는.

평범함으로 치부될 특별함이 나라고 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한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 신 미루로 살아갈 거야. 그러니까 언니도 힘내서 열심히 살아!”

미루는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 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시간이 늦어서. 어두운데 조심히 들어가!”

잠깐!”

급하게 인사를 나누고 갑자기 뒤돌아 뛰어가는 미루를 붙잡았다. 이렇게 만났는데 전화번호라도 알아야

친구.”

?

친구잖아. 그러면 언제가 되었든 분명히 만날 수 있어.”

미루는 활짝 웃어보였다.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웃음처럼, 헤어질 때도 웃음으로.

친구인가.”

이상하리만큼 아쉬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만큼의 기대가 마음속에 가득 들어찼다.

그럼, 다음에 봐.”

그러니까 잘 가라는 말은 안 할게. 분명 다시 만날 테니까.

다음에는 귀여운 후배 밥이라도 사주십시오.~! 그럼 다음에!”

문득 나에게 다가온 한 번의 만남. 그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도,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무엇이 된다한들 내가 그 아이를 만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연이자 운명이루 이루어진 인연. 나는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인연 중에 한 명을 만났을 뿐이다.

시간늦었네. TV도 못 보고

미루와 나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벽을 사이에 둔 세상. 그 안에서 아무런 색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나고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라면 미루는 자신의 원하는 색깔을 마음대로 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색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물들였다. 벽 너머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조차. 그렇게 달리던 발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뒤를 돌아보니, 애초에 벽 같은 건 없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결국 결론은 하나인가.”

나는 오늘도 아무도 없는 집으로 들어간다. 조금은 즐거운 소재를 가슴에 품은 채.

나는 나다.”

 


1년 후.


수능을 마치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성적으로 따지자면 그다지 멀지 않는 대학에 아슬아슬하게 합격한 정도. 장학금을 탈 실력이 아니란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기에 결국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였다. 따라서 내가 한 선택은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나오는 지원금으로는 야간대학을 다니는 것. 무엇하나 돈이 들지 않는 것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한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게임제작 팀 전국대회에서 우승. 이 얘는 해외 대회에서상금이 1!?”

꿈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고 대답하고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정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아직도 나는 꿈이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저녁 알바가 오늘은 못 온다네. 대신 해줄 수 있나?”

오늘 목요일이죠? . 할게요.”

하지만 꿈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 특기가 없어서 남들보다 뒤처지고 재능이 없어 남들이 빛을 낼 때 혼자 밑에서 그 빛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한들 사람은 계속해서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었다.

띠링

어서 오세요!”

1년 전 그 아이와 만난 이후로 변한 것이 있다면 하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웃기로. 조금은 쉬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바보처럼 쉬지도 않고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이사하고 나서 1년 만인가? 하나도 안 변했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목에 블루투스 헤드폰을 건 초록색 쿠헤어 단발머리의 여학생. 그 여학생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나에게 아주 단순한 것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변한 헤어스타일을 보며 1년 전에 느낀 첫인상과 똑같은 말을 했다.

예쁘네.”

힘들던 행복하던 내 인생을 사는 것은 바로 나. 나는 내 인생을 즐길 것이다.

 


차오름 : 박차고 힘껏 날아오르라는 기상을 지니라는 우리말 이름.

 

.



----------------------------------------------------------------------------------------------------------------------------------------------------------------------------------------------------------------------

성명이나 이메일은 첨부한 메일 마지막에 기재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27
645 창작 콘테스트 응모작 단편소설 루와 로 1 홍군 2019.02.10 22
644 창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기억의끝 2015.04.26 86
643 찰나의 모든, 그 순간 히여미 2015.07.28 46
642 찰나 1 망고주쑤 2016.01.04 49
» 차오름 1 file mito 2014.11.23 66
640 차가운 포옹 1 물주머니 2017.10.10 62
639 1 wlguswl0126 2018.04.22 71
638 진통제 1 윤연주영어샘 2017.04.14 84
637 진실의 빛 1 복숭아사랑 2016.01.07 157
636 직장상사 죽이기 2 Houge 2017.12.25 176
635 지친 오늘에 내일의 희망을 1 바람바위 2017.03.14 46
634 지워진 수채화 1 시골좋아 2014.12.10 74
633 지옥을 향하다 2 최유지 2017.01.02 101
632 지난 여름은 악몽이었다 file 카마수트라 2014.08.24 44
631 지금부터 소설이다. 1 Mysteriouser 2014.12.26 188
630 쥐들의 공명 1 file 교관 2018.03.02 50
629 중력과 참회의 상관관계 psp130 2015.04.08 28
628 준희 1 9aldwl뀨 2016.08.10 44
627 죽음의 숲 요미요미004 2015.02.25 49
626 죽음을 대하는 태도 1 쏘쏘 2017.12.17 89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