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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0 23:46

길 건너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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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에 있는 사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가운 아스팔트의 감촉이 나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머리가 어지러워배가 뒤집혀지는 것 같은, 역겨운 바람

내리쬐는 햇빛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다만 그 색깔이 기분 나쁘게 드리우는 가운데에서-

-‘아무도 없나요! 추워춥다고이게 뭐야너무 어두워누가누가 좀

눈앞의 일렁이는 아지랑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교묘히 나를 비웃는다-

-‘사라지고 싶지 않……

언제나 같은 그 장소에서-


 

어느 더운 날의 거리를 거닐던 나의 눈에 들어온 네모난 수첩. 평소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날따라 나의 눈과 그 안에 있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자극이 되어 습기를 머금은 바람 따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레이 스키니 팬츠에 심플한 검은색 반팔위로 걸친 검은색 가디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칙칙한 느낌을 감출 수 없는 기분 나쁜 남자는 어울리지 않은 주황색 다이어리에 떠오른 영감을 끄적였다.

눈에 깃든 생명보다 다 아름다운 것이니, 삶의 조각이 내 손에 깃들어 나에게 속삭인다.’

한 편의 시. 그것은 부끄러운 눈 밑을 가리고 언제나처럼 나를 망상에 젖게 만드는 중독적인 명목. 주인님에 명령에 복종하여 오늘도 꼭두각시는 처절하게 움직인다. 공원의 벤치를 지나 물방울을 튀기는 분수를 지나, 은연중에 저무는 골목으로 사라진다.

누군가 당신을 찾고 있어. 당신은 누군가에게 있어서 인생이 되어본 적이 있는가?’

휘날리며, 바람을 휘날리며 그렇게 사라지듯 누군가에게 나타난다.

잊을 수 없는 감사, 잊을 수 없는 사랑. 혹은 잊을 수 없는 상처, 원한, 귀신.’

안녕? 우리 만나는 거 꽤나 오랜만이지?”

잊을 수 없는 아지랑이. 사라지지 않는 아지랑이. 그대는 허상은 아지랑이.’

누구시죠?”

집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있었다. 세간에 주목을 받지 않은 후미진 곳의 어느 빌라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추위도 더위도 전혀 타지 않아 1365일 일관적인 패션을 고수하는 나는 고된 춘곤증에 집에 가서 머리를 붙이려고 했지만 그런 내게 용무가 있는지 앞을 한 여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팔과 옆구리에 검은 선이 단조롭게 그려진 흰색의 라이더복. 몸에 쫙 달라붙어 늘씬한 몸매가 드러나는 아래로 무릎 위를 덮은 검은 라이더 팬츠. 끊어진 노란 선을 한참 벗어나 인도에 아슬아슬하게 정차되어있는 레드 바탕에 네이키드 바이크에 기대고 있는 여자는 나를 바라보자 방긋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다.

벌써 잊었어? 하긴, 오래 되기는 했지.”

나는 다이어리를 닫고 주머니에 넣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작은 사이즈의 다이어리는 내 몸에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다가오며 손으로 뒷머리를 올려보았다. 공중에 흩날린 주홍빛 머릿결은 프리즘처럼 빛을 사방으로 난반사시켰고 바이크 브레이크 위에 걸쳐있는 핼멧에서 반사된 빛은 곧장 내 눈을 따갑게 했다.

자기도 정말 칙칙하다. 발끝까지 블랙이라니. 밤에 야광스티커라도 붙이지 않으면 아예 안 보일 것 같은데?”

가는 다리와 큰 키. 상체보다 하체가 긴 체구에 고음의 싹싹한 말투. 가벼운 신음을 하며 기지개를 켠 여자는 내 앞에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두워. 얼굴도 그래. 나처럼 활짝 한 번 웃어봐. , 브이~”

그리고는 허리에 양손에 허리를 올리고 목을 앞으로 살짝 젖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웃을 때 반달이 되는 작은 눈은 쌍꺼풀이 없이 가는 속눈썹을 붙이고 있었고 하얀 거울 같은 이빨은 어질러진 곳 없이 바르게 되어있었다.

그 말도 몰라?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한 거라고.”

그 전에 우리 어디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가만히 놔두면 더욱 장황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팔불출처럼 예외 없는 사랑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일단 거리를 살짝 벌린 뒤 그녀에게 물었다. 귀에 한 p모양의 피어싱이 내 말을 반사시킨 듯 그녀는 내 말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울상 짓고 있으면 행운의 여신이 그냥 지나친다고.”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한 자리에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맴돌았다. 발을 반대로 돌리고 목을 움직이며, 마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신기하듯 회전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일직선으로 내게 닿았다. 나는 정신을 빼앗긴 듯 잠시 동안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지나친 말을 다시 주워 담았다.

저기요. 제가 기억이 안 나는 것이라면 죄송하지만 저는 당신을 처음 보

이렇게 피융~”

어느 손가락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반지를 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 내 눈앞으로 그녀의 손이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어린아이가 로봇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날 법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이지만 잔뜩 애교가 담긴 그 목소리는 다시금 듣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면서 말이지. 안 그래?”

그녀는 나를 지나친 손을 다시 자신에게로 가져오면서 내게 보여주었다. v자를 그리고 있는 고운 손은 바이크를 몰아대는 여자의 손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보들보들했다.

만약에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안 그래도 요즘 세상은 한 번 갈피를 못 잡으면 다시 일어나는 게 얼~ 마나 힘든데. 조금은 얼굴 펴고 살아.”

내가 그 감촉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그 이후에 그녀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조금도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몽환적인, 그 미소에 홀려버렸다고 해야 하나?

처음 봤을 때도 제가 그렇게 어두웠나요?”

나는 연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뒤로 돌리려다 그런 내 입술을 보고는 고개만 돌린 자세 그대로 뒷짐을 지면서 말했다.

. 완전 새~ 까만색. 음침할 정도로.”

하하. 그렇게 심했습니까. 그거 큰일이네요

그다지 어두운 인상이라는 말을 자주 듣지는 않는다. 개중에 가끔 비슷한 말을 들어본 기억은 있지만 보통 말이 많은 내 성격 탓에 그런 인상은 쉽게 묻히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살짝쿵 내게 다가와 거리를 가깝게 했다.

봐봐. 웃으니까 훨씬 났잖아. 그 잘생긴 얼굴도.”

칭찬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만 마음에 없는 소리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딱히 몸을 움직이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점점 다가오는 그녀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서 보자 짙은 줄 알았던 피부는 생각보다 화장기가 없었다.

방금 그거 겸손이야?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거야?”

따지자면 후자겠죠? 그런 겸손이라도 부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네요.”

얼떨결에 진심을 말하고 말았다. 집에서도 거울을 보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뽐내지 않았던 나인데 그만 허튼 소리를. 하지만 여자는 그런 내 반응이 싫지 않은 것 같았다.

재밌네. 당신 꽤나 유쾌한 사람이구나?”

만족. 점수로 치자면 100점 만점에 80점정도 한다는 표정. 내가 앞으로 다가가도 절대로 뒷걸음치지 않을 것 같은 그녀는 날씨가 후덥지근한 지 한 곳에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이내 목에 닿아있던 단추를 잡고 망설임 없이 아래로 내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옆쪽 콘크리트 바닥으로 돌린 뒤 내리쬐는 햇빛을 새삼 느껴보았다. 더위를 전혀 타지는 않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온기는 간단히 살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겉에 입고 있던 라이더 복을 벗어던진 그녀는 검은색의 얇은 민소매 하나만 덜렁 걸친 상태로 목에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마에서 목을 타고 떨어지는 땀방울은 없었지만 물가를 머금어 촉촉한 목이 그리는 곡선은 주위로 야릇한 공기를 발산해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나는 자꾸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고갯짓에 결국 굴복하고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허전하게 눈을 가렸다.

지금 그거 가린 거야?”

그녀는 팔을 목 뒤로 넘긴 상태로 상체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전혀 그을리지 않은 뽀얀 팔은 매끄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고 있었고 부푼 가슴에 옷이 들려 배꼽이 보이는 가는 배는 고혹을 자아냈다. 검은색 민소매와 대조가 되어 더욱 희게 보이는 피부는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내 눈을 부시게 했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몸매는 앞과 뒤, 위와 아래의 모든 시선을 방황하게 만들어 고혹적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가린 척 가리지 않은 눈으로 시선을 쇄골에서 조금 위로 옮겼다.

아마도. 딱히 변명할 말이 없네요.”

흐음~ 나는 내가 좋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 입으로 자랑하고 다니기에는 주변 시선이 너무 따갑잖아? 유일무미하게 떠들 수 있는 떠들고 싶은데. 안 그래?”

그녀는 팔을 내리고 집어던진 웃옷을 주워들었다. 일부러 던진 것이 아니라 벗는 중에 팔을 타고 올라가 떨어져버린 것이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모로 한해서는 지적할 것이 단 한 군데도 찾을 수 없는 매력적인 그녀는 막연하지 않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네요.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아름답다요즘 젊은 사람이 쓸 만한 말은 아닌 거 같네.”

그녀는 자신의 바이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의 집으로 향하는 다닥다닥 좁은 골목들이 붙어있는 작은 동네를 지나면 10분 거리에 역을 끼고 있는 눈에 띄는 빌라가 하나 있었다. 그곳까지의 길, 도로는 넓고 한적하지만 다니는 사람이 한 명 없는 거리는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초록색 빌라의 반사광 때문에 초록색 거리가 되었고 오래 전에 문을 닫은 열쇠점과 그 옆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세월을 돌려, 시침이 뒤로 돌아간 듯한 거리에 독보적인 색깔을 지닌 그녀는 바이크에 비스듬히 기대어 섰다.

저랑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마치 먼 사람 얘기하듯 말하시는군요.”

실례. 원래 말투가 조금 그래. 요즘 애들이라면 X 예쁘다라든가 그런, 들어도 전혀 기분 좋을 것 같지 않는 욕들을 칭찬으로 생각하는 줄 알고 있었지.”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조명으로 명휘한 날개를 달고 자세를 취하는 모델처럼 보였다. 신장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평균은 되었고 그 밖은 평균보다 훨씬 웃돌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옆으로 살며시 지나가며 말했다.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시죠. 남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들.”

욕은 안 좋은 거야. 왜 비속어라고 부르겠어? 듣기 싫은 건 이상한 게 아니지.”

이렇게 가까이서 들어보니 말투의 특이점을 하나 발견했다. 높고 빠른 말투지만 발음이 토씨 하나 들리지 않고 또박또박했다. 나는 그녀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오토바이의 걸친 그림자가 아스팔트에 기울어지게 비쳐진 모습은 마치 반인반마 같았다.

안 좋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굳이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 예민하게 굴어 마치 세상사 전부를 자기 일인마냥 구는 사람들.”

조금 더 뒤로 걸어가서 지켜보니 주황색의 독특한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몸매나 말투, 머리색부터 복장까지 그 어느 하나 개성이 없는 곳을 찾아볼 수가 없는 그녀는 감정에 솔직한 타입인지 눈을 매섭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살얼음 같은 목소리. 조금이라도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그대로 혹한의 귀신이 끌고 내려갈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말도 섞지 못했다가 한줌의 바람이 건너에서 지니고 온 습기 찬 나뭇잎을 들고 내 머리를 지나는 순간에 말했다.

안 되는 건 아니죠. 왜 그러시죠?”

나는 최대한 냉정을 지니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살쾡이의 발톱처럼 모든 감정을 꿰뚫음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감정이 많은 눈이 경계를 세우고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차면 그 만큼 두려운 것도 없었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거냐고.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이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설령 그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그녀는 입에 죽음이란 말을 담았다. 갑자기 여름바람이 차갑게 변하고 있었다.

죽는다니, 비유가 너무 섬뜩하시는 것 아닙니까?”

비유가 아니야. 단순히 소문으로만 들리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녀는 라이더 복을 왼팔에 걸치고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은색의 반인반마가 울부짖는 것 같았고 편한 운동화가 내는 소리는 유난히 딱딱하게 들려왔다.

너와 마주쳤을 때, 그건 우연이 아니야. 나는 너를 계속 기다렸었어.”

저를말입니까?”

점점 가까워졌다. 더 이상 뒷걸음질만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거리까지 좁혀지고 말았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조용히 고혹적인 손을 내밀었다.

솔직히 짜증이 났었어. 어째서 그렇게 태연한 얼굴인 것인지. 차라리 귀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줄행랑이라도 쳤으면 괜찮았을 거야.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어.”

내 가슴에서부터 목을 타고 턱까지. 손끝에서 느껴지는 전율은 곧바로 머리로 향했고 마녀의 속삭임과도 같은 목소리는 나의 귀를 간질였다.

오히려 궁금해졌어. 왜 그 때 그랬는지. 어째서 네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그녀는 내게 짙은 유혹으로 지난 칙칙한 기억을 상기시켰다.

왜 나를 죽게 내버려뒀어?”

그 순간, 한 순간 거센 바람이 세차게 불어 멍하게 있던 나의 눈으로 불청객이 찾아들고 말았다. 나는 먼지가 들어간 오른쪽 눈을 손으로 비비면서 흐릿하게나마 그녀를 지켜보았다. 휘날리는 머리카락, 재간둥이 같은 눈망울. 그 속에 담긴 원망. 한기.

왜 그 때 아무것도 못 본 척 그냥 지나갔어?”

너는 분명 나를 봤을 텐데. 분명 너는 나의 존재를 눈치 챘을 텐데. 너는 그러지 않았어.’

오해하지 마. 딱히 원망할 생각은 없어.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 다른 누군가도 아닌 내가 겪은 일이니까 괜찮아. 그래, 괜찮지만 말이야.”

분명 너는 나의 존재를 눈치 챘을 텐데, 너는 도와주지 않았어.’

그런 생각도 들거든. 만약 그 때 죽었다면 원망도 하지 못했을까, 원망을 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도 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수록 오싹해지는 거 있지.”

이렇게 추운데이렇게 무서운데너는 나를 구해주지 않았어.’

왜 나를 죽게 내버려뒀어?”

마지막으로 내 앞에 스쳐간 모습과 그녀의 모습이 겹쳐질 때쯤에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과 숨 한 거리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 내 얼굴에 닿은 감촉을 지워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깊게 각인이 되는 것처럼 그녀의 감촉은 강렬하게 남아있었고 그녀의 말이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제가 당신을 죽게 내버려뒀다니

당연하지만, 당연한 게 아니지. 지금 심난할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보아도 전혀 그런 비슷한 기억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역시 아무것도 몰라.”

그녀는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어 그만 횡설수설할 뻔한 것을 참고 침착하게 그녀에게 되물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주머니 속의 다이어리가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팔에 걸쳐두고 있던 옷을 입고는 다시 목까지 지퍼를 올렸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던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지 한 번 더 내게 다가와 이번에는 손을 내 입 주변에 가져다대었다.

이건 협박이야. 당신한테 선택권은 없어.”

아마 내가 무슨 말을 꺼내든지 내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겠지. 나는 목까지 올라온 어떤 말을 다시 삼켜내고 바이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주 순간적이지만, 그녀가 너무나도 연약하게 보였던 탓 때문인지 그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매우 불안하게만 느껴졌지만 그런 내 걱정은 전부 허상이었을 뿐이었다.

내 기분을 말하자면 의문. 어째서 그렇게 했는가.”

그녀는 바이크에 다다랐다.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혹은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듯 했다. 나는 새삼스레 입을 손으로 가려본 뒤 남아있는 온기를 느껴보았다. 그것조차 원래 주인에게로 되돌아갔는지 현재 내 얼굴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솔직하고 단순하게 말해보자면 뒤끝. 하지만 이유는 똑같이, 어째서 그렇게 했는가.”

일순간의 한기도 잠시였던 것인지, 다시 그녀의 얼굴로 돌아간 온기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라고 아니라고는 못해. 하지만 나였다면 적어도 후회는 하고 있었을 거야. 후회가 아니더라도 기억은 하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기억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건

마치 내 친 여동생과도 같은 천진한 미소를 지었고 미소는 이윽고

도망쳤다는 거잖아. 억지로.”

가면이 되어버린 핼멧에 가려지고 말았다.

. 데려다줄게.”

그녀는 바이크에 올라탄 뒤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배기구에서 나오는 열기로 인해 그 주변에 작은 크기의 아지랑이가 보였고 그다지 크지 않은 엔진소리는 핼멧에 가려진 목소리조차 전부 덮지 못했다. 아니, 내 귀에는 유난히 그녀의 목소리만이 뚜렷하게 들렸다.

, 어디로?”

그곳은 마치 한 번 발을 들이면 다시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할 것만 같은.

이야기를 듣기 좋은 장소아니. 이야기를 해주기 좋은 장소로.”

인간의 마음이 형태가 되는 몽환적인 공간, 그 공간은 찢어 갈라버리는.

아득히 먼 길 건너로.”

현실이라는 곳에 덩그러니 남아버리는 장소. 여름바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습기를 많이 머금은 것 같아 응어리지는 것만 같았다.

차 시라. 이름, 기억해둬.”




 

-화재다! 도로 한 가운데서 불이 나고 있어!

어느 누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은 하늘에밖에 닿지 않았고 사람들의 무관심을 깨뜨리지 못했다. 제자리만 돌고 돌아 메아리가 굳어버린다.

-빨리 119! 거기 당신 뭐야? 다들 사진 찍지 마시오! 어이 학생! 사진 그만

희미해진다. 세계가 아닌, 세계가 나를 제외시키는 것처럼 내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바닥이 아닌, 나를 놀려대는 여름바람이 아닌 시야 구석에 보이는 내 손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사라져버린다면 참으로 편할 텐데

 

어두운 거리의 어울리지 않는 사람 웃으며, 그 감추어진 얼굴이란.

네이키드 바이크에 타서 달려본 거리는 언제나처럼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언제나처럼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오늘도 달리 특별한 사건 없이 평화롭게 지나갔다는 것? 아니면 어제와 달라지지 않고 한결 같다는 것? 그렇다면 특별한 사건의 기준은 무엇이고 평화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한결 같다는 소리를 직역하면 내일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저마다의 자치기준을 가지고 세상의 하루를 평가하며 달리는 어제와는 다른 거리. 거대한 네온사인 판을 지나 바람에 맞서 달리는 넓은 도로. 차들 사이를 지나가며 역주행을 하는 기분의 엄청난 속도감은 충분한 짜릿함이 되었다.

아윽- 하아역시 바이크를 타려니까 죽겠네, 아주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 시라는 아까와는 다르게 둔하게 움직이는 팔을 딱딱거리며 신음을 냈다. 내가 있던 곳에서부터 15분 정도가 걸린 거리. 고장 난 신호등에 아래로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한 대 지나가자 도로의 한쪽 면은 가득 들어찼다. 위로 천장처럼 드리운 다리의 아래로 u자로 파인 도로가 있었고 그 한쪽 끝에 정규 도로가 아닌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이 있었다. 나는 가장 아래에서 그 가장 파인 부분에 서있었고 시라의 바이크는 이쪽 인도에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저를 데려왔으니 이제 무슨 말인지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긴 말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시라에게 물었다. 갑자기 납치한 것은 그렇다쳐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굳이 장소까지 옮기고 이름까지 밝힌 이유를 돌리지 않고 물어보았다.

아으- 조금만 쉬면 안 될까? 나 지금 어깨가 뻐근해서

이유를 알려주신다면 얼마든지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애교를 부리며 검지를 피어올린 시라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시원한 바람에 더위가 모두 식은 것인지 목까지 올린 지퍼를 만지작거리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시라는 갑자기 손을 동그랗게 만 채로 입을 가리며 하고 웃었다.

저기 당신. 당신 계속 보니까 살짝 귀여운 것 같다?”

웃음의 원인이 그것이었다니. 나 같은 남자한테 일색이 칭찬을 해주다니 영광인 걸? 시라에게서 난생 처음 듣는 칭찬이란 칭찬은 전부 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칭찬을, 짝사랑 이외의 여자에게 들어봤자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도대체 저의 어디를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수수깨끼입니까?”

본래 사람의 장점이나 의외의 일면은 자신보다는 남이 먼저 눈치 채는 법이라고. 그보다 그냥 말 놓지 그래? 많아도 동갑이거나 아니면 내가 더 어려 보이는데.”

시라는 깍지를 낀 손을 길게 늘이면서 말했다. 아까부터 찌뿌둥한 몸이 말썽인 것인지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건강미가 넘쳐보였다. 나는 나이를 특정 지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곳에 끌려온 이유가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직 초면인지도 정확히 모르니

아까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이냐고? 지금 그거 물어보려고 했지?”

솔직히 말하면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이미 시라는 내게 반말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전혀 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시라는 다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천진한 목소리로 나를 물어보며 깍지를 풀고 상체를 왼쪽으로 꺾었다. 허리의 라인이 유연하게 내 눈에 들어왔고 옆구리에 그려진 세로로 검은 줄무늬가 허리를 더 가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도 계속 생각했어. 정말로 말해도 될까, 당사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데 나 혼자 설쳐대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처음에 결심했던 것을 따르기로 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았어. 확고한 다짐, 이랄까?”

시라는 허리를 똑바로 펴고 왼손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나는 전혀 그런 표정과 말투로 말할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묻지 않으면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 같아서 말이야. 인간으로서,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있고 인간이기에 저지르면 안 되는 일인데.”

시라는 고된 스트레칭을 끝마치고 깊게 심호흡을 쉬었다. 부푼 가슴을 천천히 가라앉히면서 시라의 입모양은 좋아라고 말하고 있었고 이어 그 눈은 올곧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다시 한 번 물을 게. 왜 나를 죽게 내버려뒀어?”

정지된 공기. 꿈틀거리는 바닥은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 듯 불안정했고 그 위에 서있는 나는 한쪽의 균형을 잃고 하염없이 으스러지고 있었다. 그런 감정이, 불연 듯 머릿속에 이미지로서 떠올랐고 나는 시라의 눈에서 원망이 아닌 보라색 감정을 보았다.

저는 당신을 죽이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이번에 처음보기 때문에.”

흰색, 무색, 뒤가 없는 단면의 색. 그 빛들을 나의 빛.

알고 있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게 내가 이렇게 묻는 이유야.”

나의 빛은 점점 무관심으로 침식되어 한 생명을 허무히 꺼트릴 뻔했다.

당신을 나를 몰라. 하지만 나를 봤어. 당신의 그 눈으로, 꿈이 아닌 현실에서 그 광경을 봤고 그 속에 나를 보았어. 하지만 당신은 나를 모른 척했어.”

무관심이 가지는 무서움을, 퇴색되는 위기의식을, 더러운 이기심을 모두 비판하던 나의 잣대가 결국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은 죽어가는 나를 방관했어. 상처를 입은 채로 오토바이 밑에 쓰레기처럼 깔려있는 나를 그냥 지나쳤어. 그 이유가 뭐야?”

시라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도망칠 수 없게, 다시는 모른 척 할 수 없게. 나는 시라의 말에 조금씩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대신 경찰에 신고하겠지. 나는 모르는 일이야. 어쩌면 이미 죽은 거 아니야? 괜히 얽히고 싶지 않아. 나까지 재수 없어지면 어떡해. 그런 걱정이라도 한 거야?”

내 세월 중에서 단지 한 날, 무심코 지나쳐 뚜렷한 인상도 없었던 날들 중 어느 날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고비를 넘고 있을 날이었을까?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이렇게까지 찾아온 이유는 단지 하나야. 당신을 나를 처음 본 것이 아닌데도 나를 외면했지. 그것도 2번이나, 하지만 당신은 그것도 모르지.”

길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는 부패해가는 사회의 일면을 꾸짖듯 내게 흘러들어왔다.

나는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해. 겉모습에서도 그렇듯이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밤늦게까지 오락을 즐기는 것을 사랑하지.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라서 지금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지는 항상 넘어지고 나서야마나 알 수 있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이유가 없다. 그게 이유였다.

보복이었던 가야. 나한테 진 게 분해서 그런지 뒤에서 나를 내려찍더라고. 빗맞은 것인지 나는 바로 쓰러지지 않았고 어떻게든 대항했어. 누군가,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를 도와줄 때까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목을 원망하면서. 그 때, 나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 저 사람이 나를 도와줄 거야. 나는 벗어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하염없이.”

-알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몰랐다고 말할 수 없다. 알지만 몰랐다. 그게 정답일 것이다.

눈을 뜬 나는 병원에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당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어. 이미 경찰이 모든 조사를 끝마친 상대였고 녀석들은 구속된 뒤였지. 나도 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죗값은 치렀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찾았어. 내 의식에 한 편에 유일하게, 나를 보아준 단 한 사람을 계속해서 찾았지만 당신은 보이지 않았어.”

-나에게는 죄가 있다. 하지만 그 죗값을 지을 필요는 없다. 모순이다.

믿고 싶지 않았지. 아니야,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그 사람은 나의 영웅인 걸? 그런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면서 나는 애써 그 때의 일과 당신을 잊고 있었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 때 다친 상처도 거의 아물 때에 있어서 나는 다시 사고를 당했지. 보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거야.”

-나는 방관자다. 방관자며, 살인자며, 단지 지나가는 행인.

그들의 끼어들기로 나는 공중에서 몇 바퀴를 회전하다 그래도 땅에 쳐박혔어. 바이크는 부품이 전부 분해될 정도로 망가져있었고 나는 그 틈에 깔려있었지. 나는 모든 힘을 다해,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그곳에서 빠져나왔어. 그 때랑 같이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랐고, 그 때와 같이 당신은 나타나 나를 지켜보았지만, 당신은 그 때와 같아서 멀어지고 말았지.”

-나는 당신의 길 건너에 있는 사람.

뜨거운 햇빛, 한적한 오후, 나른한 거리. 그 속에서 홀로 쓰러진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알아? 지금 생각해보면 볼이 익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의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내가 한기를 느꼈다는 거야. 손발이 얼어붙는 것 같고 시야의 성에가 끼는 느낌. 만약 죽음도 각각의 개성이 있다면 내 죽음은 꽤나 아름다운 것이었겠지?”

시라는 큰 움직임이 없이 얘기를 끝마치고 나서 다시 허리를 좌우로 비틀었다. 시라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은 단순히 스트레칭이 아니라 그 때의 사고로 인해 망가진 몸을 풀기 위한 재활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녀의 몸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 내가 전해줄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지금 이렇게 불편한 곳 없이 멀쩡하게 살아있으니까 딱히 당신을 원망한다거나 하지 않아. 단지 이유가 궁금했을 뿐. 당신은 그 때의 일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할 테니 이유도 창작이 되려나?”

지금 내 앞에는 한 사람이 서있었다. 내가 살린 사람이 아닌 내가 살릴 수도 있었던 사람. 내가 죽였을 수도 있는 사람이 내 앞에 서있다. ‘방관자로서, 3자의 입장으로서라는 말은, 그것은 어쩌면 회피가 아닌 동일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유말입니까?”

내가 어째서 당신을 그냥 지나쳤는지에 대한 이유.

. 왜 그랬는지. 아무런 해코지도 안할 거야. 평생 내 귀에만 담아둘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것으로 사죄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먼저 되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로 웬 여자가 괜히 트집을 잡는다고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내 죄가 지워지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타당한 것일까요?”

타당하다는 것은 없어. 정답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어. 나도 나라도 그랬을 거야라는 생각을 지워본 적이 없어. 그러니 누구 말이 맞는 것이라고 못해.”

시대를 거듭할수록 인간이 외면할 수 없는 외면이라는 죄.

옳고 그름은있다고 생각합니다.”

?”

나는 입을 열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말은 똑바로 하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 지금을 빌어 나는 어떤 순간이라도 내가 하고픈 말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비록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 잘못을 인정하기 위해 나는 말할 것이다.

무엇이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모르고 있기에 항상 더듬어가면서 길을 찾죠. 그 중에는 넘어지는 일도, 길을 잃은 일도 있죠.”

시라는 멀뚱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형이나 옷맵시 등이 내 동생과 완전 판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더 복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내 동생이 라이더 복을 입는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 머리도 약간 보랏빛이 나는 머리로 바꾼다면 가까이서 보지 않는 이상 구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고 깨닫습니다. 넘어지면 아프다는 것도, 다시 일어나는 데에는 그다지 큰 힘이 필요 없다는 것도, 한 번 잃어버린 길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찾은 길을 온전히 걷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도.”

그래서일까, 갑자기 안정을 되찾은 듯이 가슴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옭아매던 어떤 감정이 눈 녹듯 사라져 내 발을 부유시키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조금밖에 걸리지 않은 것일까. 상대방이 내게 하고픈 말을, 내게 듣고 싶은 말을 듣기도 전에 평정심을 되찾은 사실에 대해 우월감은 없었다.

저는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너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있어 무경험이란 어리석음이고 경험이야말로 지혜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인간이 평생에 걸쳐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송하다는 마음. 고개를 숙이고, 거짓된 눈물이라도 흘리는 연민. 그런 건 멋없지 않는가.

죽음. 그건 앞으로도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을 무섭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도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경험이 없다는 것은 다시 두려움으로 바뀌어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시라에게 전부 전해질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기억이 났다. 내가 그녀를 외면했던 일, 그 이유는 없다는 일. 전부, 죄라고 할 수 없는 죄.

죽음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운명이 아닙니다. 태어난 모든 생명은 언젠가 흙이 되어 사라지고 그 흙 또한 언젠가 사라지게 되겠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 살아가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왠지 내가 사이비 교주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라는 그런 나를 부동한 채 지켜보고 있다가 다시 처음의 씩씩한 목소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나는 고민을 해보았다. 부끄러운 비밀, 친한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은 비밀을 어째서인지 시라에게는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 혹은 어떤 감정에 대한 나의 생각을 손이 닿는 곳에 휘갈기는 음유시인.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인간의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갑자기 떠올라서,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내 말에 시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지를 미약하게 깨물며 다음 질문.

그럼 당신이 하고 싶은 요지가 뭐야?”

요지라그런 건 딱히 정해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의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정답은 없습니다. 외면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 대해. 생명은 소중하고 죽음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 일이 닥치는 것이 내가 아니라면 당연히 남 일이 되어버리죠.”

인간은 선하다, 인간은 악하다가 아닌, 인간은 이기적인 생물이다.

옳고 그름이 있다는 말은 이런 겁니다. 무조건 위험에 빠진 사람은 도와줄 이유는 없지만 도와줘야할 때가 있고 도와주지 말아야할 때가 있는 법이죠. 당신은 사례를 원하십니까? 그럼 당신이 그 사람을 도울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 아니죠.”

선하다는 것은 내 이기를 위해 남에게 선하게 구는 사람.

타당하다는 것은 감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사람으로서 가지는 본성이 주는 어떤 무언가. 예를 들어 아무런 죄도 없는 무구한 사람이 살인마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의 광경을 본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으십니까?”

악하다는 것은 내 이기를 위해 남의 시련을 외면하는 사람.

인간으로서 가슴에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그름이라는 겁니다. 어떤 감정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보았을 때 느끼는 분노 같은 감정. 그것은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해친 살인마가 그 살인마에게 살해당한 사람의 유가족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있다면 당신은 그 살인마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이기적인 사람은 그 모든 일에 일시적인 죄책감만을 가지는 사람.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곤경을 외면하는 것은 죄지만 도우라는 정답도 없습니다. 다만 도와야할 때가 있고 도울 필요가 없을 때가 있고 도와주면 안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야 해죠.”

이기적인 사람은, 그저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

그거 성악설이야?”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따지자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런 위인이 아니니까요.”

시라는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지루한 윤리 수업이 되었건만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내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내 자신도 그런 생각이 들 건만 시라는 오히려 흥미 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틀린 말인지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거 아니야? 정답이 없으니까.”

그렇죠. 내가 한 모든 얘기가 정답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단지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겁니다.”

주관적이라. 내 말을 신뢰하라고 강요를 할 수도 없으니 단순히 주절거림으로 보였을라나? 차라리 그렇게 봐주면 좋을 텐데.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내가 민망해진다고.

묘하게 교주처럼 말하는 것도 재능인가?”

좋은 뜻은 아닌 것 같군요.”

그래?’ 라며 찝찝한 여운을 남기고 시라는 몸을 돌렸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한 말들을 조용히 떠올려보았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내 머릿속의 메모장이나 집 한글문서에서 끄적일 만한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친한 누나나 친동생도 나의 이런 취미, 고약하다면 고약하고 감성적이라면 감성적이고 고지식하다면 고지식한. 가벼운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취미 한 번 독특한 나란 남자.

그럼 한 번 더 물어봐도 돼?”

무엇을 말이죠?”

그런 나란 남자에게 의외로 여자 복이 많이 꼬인다는 것은 천운인 건가?

그래서 당신이 하고픈 요지는?”

그러네요. 제가 그것만 쏙 뺐군요.”

그런데 그 여자들이 전부 나보다 기가 세다는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천운이 아닌 악운.

사죄는 필요 없겠죠. 하지만 죄송하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죄송할 마음이 들 시간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었다.가 정확할까요?”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언제나 변명으로 조금씩 명을 유지해나가는 변명 기생충. 단순히 화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것이라고 하면변명은 없다.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당신이 한 행동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그렇죠. 제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원망했다면 저는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겠지만 원망도 하지 않고 단지 궁금해서라면, 글쎄요.”

나는 시라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리 미간을 찌푸려도 알 수 없었다. 삶이란 정답이 없는 주관식 문제의 연속이라 창의력이 필요한 문제는 언제나 골치가 아프기 마련이다.

조금 힌트를 줄게. 나는 당신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어. 그 말은 들으면 나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바로 당신을 놔줄 거야.”

시라는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 표정은 방금 전과,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천진한 미소가 아닌 어딘가 씁쓸한 듯한. 강인한 척, 강한 척은 다 하면서 정작 여린 가슴은 혼자가 되는 순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문제입니까? 객관식이라면 자신 있습니다만.”

서술형. 현재 나의 기분을 1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문처럼 무지개의 몽환적인 빛이 시라의 눈가에 어른거렸다. 기분 탓인가? 나비의 날갯짓 같은 그런 무언가가 어깨 위에서 우아하게.

정답이 있습니까?”

있어. 이 문제는 길 건너에 있는 사람만이 맞출 수 있어.”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 아름답게 생명을 빛낸다.

그럼 지금 당장이군요. 아쉽지만 저는 여기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호오~ 알 것 같다는 거야?”

확신입니다. 만약 이게 정답이 아니라면 당신의 노예가 되어드리죠.”

노예라관심은 있지만 필요 없어. 아쉽게 됐네. 나는 당신이랑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나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만 칠거야? 그게 인간의 한계야?’

그 말은 제게 관심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미운 정도 정이라잖아. 그렇게만 알아둬.”

“‘그렇게만이라니요. 이런 건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시라가 말했다. ‘. 더 이상 알면 다쳐. 나 위험한 여자라고?’ 하면서 싱긋.

알겠습니다. 그럼 질문들은 미루어두고, 짓궂은 문제를 한번 맞혀보죠.”

다시 나비가 말했다. ‘결국은 당신도,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야?’

싱거운 것입니다. 사죄도, 그 다른 무언가도 아니라면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죠.”

나는 대답했다. ‘그럼 뭐야? 내가 특별한 존재일 줄 알았어?’

그리고 당신은 현재 자신의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인간이야. 다른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

, 이제 정답을 말하겠습니다.”

평범하기에 특별해지려고 노력하는 인간.’

다치신 곳은 괜찮으십니까?”

, 하 희라는 인간.’

빙고. 합격.”

시라는 초승달과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어깨에 맴돌던 자문이라는 이름의 나비는 홀연히 햇살 속으로 사라졌고 그 안에는 나와 시라, 시라의 바이크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끔씩 내 왼쪽 귀를 울리는 엔진소리는 언젠가부터 희미해졌고 오로지 나와 시라의 목소리만이 아스팔트를 통통 튀기고 있었다. 합격이라는 전면통보. 그 안에 담긴 미소만이.

나는 말이야. 사실 말이 되~게 많은 사람이거든? 그런데 저번에, 정확하게 말하면 한 달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 때문에 목을 조금 다쳐서 말이야. 다행히 완치가 가능하긴 하지만 치료기간이 3개월이나 걸린데. 앞으로 2달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막막한지.”

그렇게 말하는 시라의 목소리에는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파서 목을 고의적으로 푼다든가 갈라지는 소리는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 스트레칭을 자주 하기에 나는 근육이나 뼈만 다친 것으로 알았는데.

으음~ 난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것 같아. 겉으로 보면 맨몸으로 달려도 바이크보다 빠를 것 같이 생겼지? 하지만 지금은 나 완전히 환자야. 몸도 지금 자주 풀어줘서 그렇지 원래는 팔도 머리 위로 못 들 정도였다고. 목은 뭐 본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까 다친 티가 안 나서 그렇지 당장 집에 가서 피토를 안 하겠다는 보장은 없지.”

시라는 바이크 쪽으로 다가갔다. 흑백의 단조로운 곡선이 인상적인 복장과 붉은 색의 날카로운 인상의 바이크가 전혀 어울리지 않은 듯 했지만 시라의 머리색보다 눈에 띄지는 못했고 시라의 그런 임팩트로 인해 조화로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 당신이 걱정해주니까 금방 나을 것 같아. 고마워.”

시라는 내게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미소로 화답해주며 바이크에 올라탄 뒤 헬멧을 착용했다. 나는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시라를 바라보았다. 바이크에 탄 모습이 마치 한 명의 여전사 같았다.

정말 이걸로 괜찮으십니까?”

? 뭐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한 전사. 조금은 어리광쟁이 전사.

이대로 가셔도 괜찮습니까? 정말로 그 말 한 마디로

말 한 마디면 충분해. 그러니까 된 거야.”

헬멧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같지 않았다. 여전히 청아하고 싹싹한 목소리였다.

말 한 마디면 뭐도 갚는다고 하잖아. 사람살이라는 게 그런 거야. 말 한 마디면 모든 오해를 풀 수 있고 어떤 오해라도 살 수 있어.”

시동을 걸고, 배기구를 통해 뿜어지는 탁한 연기는 인도를 가로지른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는 충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앞으로도 네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해. 그게 가장 후회 안 남기는 방법인 거 같아.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엔진소리가 가볍게 울려 퍼지며 검은 유리 너머의 눈짓은 다음을 기약한다.

당신이랑은 언젠가 또 만날 것만 같아. 그럼 그 때가 되면 느긋하게 이야기나 더 하자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주홍빛의 만남으로.

이름은?”

하 희. 기억하기 쉬울 것입니다.”

희라어째 웃음소리 같은 이름이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가시는 길 안전히.”

도로 위에 올라탄 시라는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흔드는 내 손에 맞춰 흔들었다.

다음에 뵙죠. 희 오라버니.”

오르막을 올라 내 시야에서 사라진 시라.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붉은 바이크를 등지고 나는 발을 움직였다. 많이 지체된 시간, 집에 있는 동거인이 배가 고프다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사죄라면 그 사람에게 해야 하려나?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간 인연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태연했다. 오라버니라나쁘지만은 않은 호칭, 인가?

다행히 길 건너에 있는 사람으로는 남지 않았네.”

나는 길을 걸어간다. 나의 집이 있는 곳으로, 내가 있어야할 곳으로 나는 걸어간다. 살면서 많은 인연을 외면하고 수많은 도움을 바라는 손길을 무시하면서 내 인생을 걸어온 내 앞으로 또 어떤 무관심이 있을까. 내가 그 무관심으로 인해 화를 당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드는 기분은 반성보다는 안쓰러움. 신나게 비판하던 모습의 중앙에 서있는 게 나라는 사실에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나 하나만 챙기기에도 버거운 세상. 이라기에는 아직 살만 하잖아? 이런 인생.”

그래도 뭐, 가끔씩 손을 내밀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차가운 바닥이라면, 너무나도 차가운 마음이라면, 그래서 포기하고 싶다면.

-그럼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한 줌의 온기가 되어줄게.

-한 사람을 살리려면 한 사람이 필요한 법이거든.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포기하기에는 아직 못해본 일들이 너무 많잖아.

 

, 내가 안 그랬어!”

신호를 무시하고 역주행도 서슴치 않으며 도로를 가로지르는 벤의 앞을 한 레드 바탕에 네이키드 바이크가 막아선다.

어이쿠, 어딜 가시나?”

사람을 치고 달아난 차량은 외면이다. 다친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한 여전사가 그 외면으로부터 구해준다. 도로면에 짙게 생긴 타이어 자국, 멈춰서는 차량들, 우물쭈물 거리는 벤, 그 앞의 단 한 명.

빨리 사과 안하면, 당신을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길 건너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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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 기로 1 동역 2016.09.30 42
576 기린의 언어 1 교관 2017.08.17 112
575 기쁨의 도시 1 윤별 2017.02.10 80
574 기억속 그날. 1 쵸코파이중독 2016.10.10 31
573 기원의 숲에 악마 1 무한상자 2019.10.28 60
» 길 건너에 있는 사람 mito 2015.04.10 18
571 길순 1 재효 2016.05.12 44
570 까치야 날아라 아륜 2014.08.22 261
569 꽃샘추위 코끼리 2015.02.10 24
568 1 강승대 2017.08.05 24
567 1 header134 2018.01.28 18
566 꿈꾸는 나무 1 file 고독과꿈 2018.06.10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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