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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2 00:07

까치야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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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야 날아라

 창 밖으로 눈이 너풀거리는게 보였다. 곧 방학을 앞두고 내리는 올해의 첫눈에 아이들은 신이나서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어차피 학년이 끝나는 마당에 진도도 다 떼었겠다, 선생님도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더러 옷이 젖거나 춥다는 이유만으로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유화는 꼭 복날에 잡아 먹힐 개처럼 온갖 시름을 지고있는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유화에게 말을 붙이는 사람은 없었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운 뜻을 갖는 일이 없으셨고, 기필코 해야 한다는 일이 없으셨으며, 무리하게 고집부리는 일도 없으셨고, 자신만을 내세우려는 일도 없으셨다.'

 어릴적에 읽은 논어의 한 구절을 뇌까리며 그대로 공책에 옮겨 쓰고는 작게 한숨을 쉰다. 진학 문제로 부모님과 마찰 빚는 일이 근래에 부쩍 늘어나 즐겁게 쓰던 글마저 턱턱 막히곤 하는 것이었다. 화를 계속 겹치게 되니 집에 들어가기 싫어지는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눈발이 세져 수북히 쌓이기 전에 학생들을 귀가조치 시킨다는 선생님의 안내말씀에 좋아죽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죽상이 되어버린 유화였다.

"와......, 눈 쌓인것 좀 봐. 눈사람 만들고 갈래?"

 어느새 운동장에 소복하니 얕게 쌓인 눈밭을 황홀히 바라보고 초등학교 동창인 선혜는 유화의 낯을 살피며 손을 잡아 끌었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더니 몇년간 붙어지내 이제는 안색만으로도 유화의 기분을 읽는 재주가 생긴것이다.

 기분을 풀어주려 신경을 써 주는 것은 좋다만은, 집이 눈이 쌓이면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지라 유화는 멋쩍게 웃으며 선혜의 제안을 거절하고는 교문을 나섰다. 사실 집 핑계를 삼기는 했으나 유화는 집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버지와 마주하면 개와 원숭이의 싸움마냥 싸움판이 날까봐 오래간만에 초등학교나 찾아가 볼까,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20분쯤 걸으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인데다 모교의 풍경을 머릿속에 아련히 그리니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구름다리도, 철봉도, 미끄럼틀도, 그네도 그대로겠지.'

 초등학생때 자주 걷던 길을 다시 걸으니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듯 마음이 들떴다. 실로 오랫만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보는 추억속의 교문은 좀더 커버린 소녀에게는 좁고도 가슴벅찬 묘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교문을 들어서니 추억이 깃든 자리는 휑뎅그레한 황무지만 남아있었다. 그 쓸쓸한 풍경을 더 돋구는 듯 눈이 쌓이는 모습이 지금 자신의 속과 꼭 닮아서 왈칵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쌓인 눈을 밟으며 시린 바람길을 따라 그네가 있던 자리를 디디고, 급식소 옆에 난 작은 길을 따라 작은 놀이터에 도착해도 별반 다를건 없었다. 다 커버린 소녀를 받아줄 추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형태만 남아버린 나무의자에 앉아 차가운 눈밭을 바라보니 거뭇한게 이리구르고 저리굴러대며 푸닥거리는게 유화의 눈에 띄었다. 새같이 보이는 까맣고 하얀것은 유화가 다가갈때까지 날아서 도망치기는 커녕 제자리에서 날뛰고 있었다.

"이거 까치가 왜 여기에......,"

 겁을 내면서도 쪼이지 않게 조심조심 날개를 잡아드니 별안간 깨액 거리며 죽는 소리를 내는 놈이었다. 자세히 보니 한쪽 날개가 말을 듣지 않는 듯 추욱 늘어져 있었다.

 학생 신분이라 돈이 없어 동물병원에 데려가지도 못하고, 집에 데려가자니 아버지가 털 뽑고 잡수실 것 같아 난감했다. 내버려 두자니 날개 한쪽을 늘어뜨린 꼴에 마치 자신이 겹쳐보여 죽게 하고싶지는 않았다. 한참 발을 구르다 큰집이 생각난 유화는 가방 안에서 담요를 꺼내 까치를 감싸안고는 무작정 걸었다.

 큰집은 제사를 지낼때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으니 숨어서 새를 기르면 아무도 모른다. 대문이 잠겨있어도 현관문은 잠금장치가 없었기에 논둑에 붙은 담을 넘으면 들어가는것은 수월했다. 유화는 창고에서 겨우 멀쩡해 보이는 빈 박스를 찾아내어 담요와 까치를 넣어두고는 전화를 걸었다. 자기 오빠에게 자랑할 심산이었다.

"나 까치 주웠다."

[어디서 거짓말이고. 니 어딘데?]

"큰집. 담 넘었다."

[가스나가 치마입고 제정신이가? 왜 전화했는데?]

"까치한테 뭐 먹이면 되는데? 엄마랑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라. 까치 잡아먹힌다."

[내 내려 갈테니까 대문이나 열어노라.]

 어릴때 부터 동물을 주워다가는 몰래 기르곤 하던 남매였다. 서로 비밀이라고 킥킥대며 금붕어든 햄스터든 뽑기로 뽑아와서 기르곤 했다. 연락한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아서 대문을 박차고 오빠가 들어오는 소리가 안까지 들렸다.

"그렇게 뛰다가 눈길에 미끄러지면 최소 뇌진탕이다."

"내가 니같은줄 아나? 재수없는 소리 말고 까치는 어딨는데?"

 유화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쇼파 위에 올려둔 박스를 가리켰다. 농업고로 진학해 축산쪽을 배운 오빠인지라 짐승은 자기보다 더 잘 알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더 잘 알았다.

"어른 까치니까 쌀 먹여도 된다. 쌀통에 쌀 있을테니까 물이랑 같이 퍼온나."

 그리고는 한참을 까치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더니 의아한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이거 별로 다친것도 아닌데? 날개 쪼까 긁힌기다."

"뭔데 그럼 그거 엄살떤기가? 내가 잡을때 깨액하면서 죽는 소리내든데?"

"니 닮았네."

"아, 뭐 내를 닮았는데!"

 남매의 말싸움은 흔한것이다. 하지만 까치는 마치 그 모습을 영화 관람이라도 하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깟깟거렸다. 결국 말싸움은 나이가 더 많은 오빠가 이겨버리고는 잔뜩 투덜대는 유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늘 그렇듯 손님들이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떠들고 계셨다. 가까운 이웃 아저씨가 유화를 보고는 법관 왔느냐며 웃으셨다.

"저는 법관 아닙니다. 작가입니다."

 유화는 딱 잘라 말하고서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손님들이 계실때는 유화의 장래희망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몰론 손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유화를 불러 거실에서 온 가족 다 들으라는 듯 고성을 내지르셨다.

"니 또 작가라 카는기가? 내가 니 그러라고 회비 꼬박꼬박 다 내면서 학교 보내는 줄 아나? 그리 가난하게 살면서 부모한테 빌붙으라고? 낸 그런 꼴 못 본다. 법관하면 먹고 살 걱정 없는데 왜 돈도 불안정한 작가를 하겠다는거야? 응? 내 그런 꼴 볼라고 허리 빠지게 일해서 길러 준 줄 아나?"

 오빠는 또 시작이냐는듯 한숨 쉬고는 적당히 하고 무마하라는 듯 유화에게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유화는 조금도 누그러 든 기색 없이 당차게 되받아 쳤다. 누가 뭐라건 간에 장래만큼은 꺾이기 싫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사에 무심해서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은 상태로 이때까지 허송세월 했다. 하고싶은것도 되고싶은것도 못 정해 장래희망 조사라도 하면 말 할게 없어 아빠가 원하는 일을 허물처럼 덧씌우고 감투쓰듯 써서 그럴듯하게 말하고는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게 내 천직이라고 느낀거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하면서 이것만큼 가슴 뛰는 일도 없었다. 한번 사는 인생에 내가 하고싶은걸 하겠다는게 그렇게 큰 죄가? 아빠가 못 이룬걸 자식한테 떠넘기려 하지 마라. 내가 언제 아빠가 남의 부엌 고치는 일 한다고 비웃고 멸시한적 있나? 아빠가 예전에 인명은 제천이라고 어떻게, 얼마만큼 사는것은 하늘이 정한거라 캤제. 내는 글 쓸 팔자다."

"듣기싫다. 자꾸 그럴끼면 집 나가라!"

 집을 나가라는 것은 아버지가 내미는 최후 수단이었다. 제깟 것이 나가라하면 어쩌겠나, 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화도 더 이상 할말 없다는듯 팩 토라져선 방문을 세게 닫아버리었다. 아무리 좋게 말하면 뭣 하는가, 듣지를 않는데. 거실에는 함숨을 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오빠만이 남았다.

 유화의 방 안에는 유달리 책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풀지않은 문제집이었지만 논어나 맹자같은 학생들이 잘 읽으려 하지 않는 책이 구석에 자리해 있다가 유화와 눈을 마주쳤다. 유화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맹자를 집어들었다. 줄갈피를 해 놓은 장을 펼쳐 눈으로 구절을 따라 읽었다.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타고난 지능이다. 두세살 난 어린 아이라도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성장해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버이를 친애하는 것이 인이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의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들이 인과 의를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터 책을 읽는것을 좋아한다고 주위 어른들께 기대받으며 자란 유화에게 아버지가 좋은 책이라고 신경 써서 사다주신 책이었다. 날이 저무는게 창밖으로 비쳐보였다. 까치 밥은 수북히 쌓아 두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내일 방학식을 마치고 까치부터 확인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지는것과 동시에 그슬린 감정들도 눈 녹듯 스르르 녹아 들어갔다. 그제서야 멈춰있던 시간들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듯 했다. 방을 천천히 둘러본다. 책상 위에 있는 문제집도, 구석에 팽개쳐진 고사성어 사전도, 손에 들린 맹자도 본래의 근본인 하나로 보였다.

 유화는 방문을 열어 젖히고 바깥으로 달렸다. 까치는 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들어찼다. 엄살을 부린 것은 도움을 바란것일지도 모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큰집의 현관문을 열자, 까치는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처음에 만났을때의 나약함은 사라지고, 올곶고 당차게 하늘을 가르며 눈 내리는 풍경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가는 하나의 꿈은 어둠을 준비하는 하늘 너머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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