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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2 14:45

길순

조회 수 44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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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순

 

 

 

 

 

 

 

 

                

 

 

 

 

 

 

郆順

 

땅이름 에 순할

 

본디 이름이란 사주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름으로 채워 새로 옷을 입혀주는 것이거늘 내 이름 길순은 뒷집 개한테도 이 사주엔 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어떤 사주쟁이가 일러준 적이 있다. 평균 수명 15년인 개도 요새는 미용이며 비싼 옷이며 온갖 호강 다 누리다 죽는 판국에 이름 탓인지 박복한 내 팔자 탓인지 육십 평생 함께 온 내 손톱은 그 흔한 매니큐어 한번 발라 본적 없고 백화점에서 빤스 쪼가리 한 장 산 적 없는 울고 넘는 박달재 같은 삶이었다. 이는 필시 내 아배 제재영 때문이다. 대대로 상놈집안에 둘째로 태어나 쌀 세 마지기를 주고 몰락한 일본 재판소 서기관 댁 막내여식인 내 어매 권효선과 혼례를 올렸는데 몸이 약했던 어매가 하루가 멀다고 방구석에 딱정벌레처럼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자 이를 본 내 아배는 부글거리는 울화를 참지 못해 다듬잇돌을 평상에 집어 던져 부수기도 하고, 누워있는 어매 얼굴에 찬물 한바가지를 뿌려 어매 옆구리를 발로 차는 등 온갖 폭언과 폭력은 해 넘어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이런 폭언과 폭력도 잠시 멈출 때가 있었으니 밤길이 열리고 소쩍새가 울어 재끼는 깊은 밤 아배의 아랫도리가 뜨거워져 약한 울 어매 가랑이로 찾아들 때야 비로소 울 어매를 안아주었다. 신통방통한 것은 약해 빠진 울 어매는 애 낳을 기력은 있었는지 총 5남매를 낳았는데 그중 어매 나이 마흔 살에 가랑이로 찾아든 아비의 씨가 기적적으로 목적지까지 당도하여 어매 나이 마흔한 살에도 막둥이를 낳기도 했다. 5남매 중 첫째 맏딸로 태어난 내가 고추를 안 달고 나와 실망한 아비는 내가 태어난 지 2년 만에 출생신고를 했고 출생신고를 하는 날에도 막걸리 댓 병에 영자라는 이름을 미리 지어두고도 기억하지 못하고 읍사무소 앞에서 한참을 생각하다 안 되겠다 싶은지 그냥 길따라 왔으니 땅 이름 길에 순하게 크라고 순할 순자를 붙여 내 이름은 길순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끝도 안 보이는 길만 주야장천 걷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가난 한집 맏딸로 태어나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며 살았으니 이름 탓을 해도 누가 욕할 사람이 있겠는가.

 

어느새 내 나이 예순.

 

흰머리가 고약하게 솟아올라 염색약이 아니면 빠르게 흘러간 야속한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지겹고 길기만 한 내 인생. 그래도 흰머리가 봄날 새파란 고사리 마냥 하나둘씩 솟아오를 쉰 살에는 그나마 살 만했었는데. 젊을 때 내 서방 뜨거운 성정 참지 못해 훈수 두던 직장상사의 정강이와 더불어 회사도 호기롭게 걷어차고 나온 탓에 우리 부부는 고모가 하던 김밥집을 인수 하여 장사를 하게 되었다. 일하기 싫어하는 서방이 안 나오는 날이면 서방 대신해 내가 밤이며 낮이며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는 건 기본이고 새벽에 일어나 김밥 몇백 줄 혼자 말아가며 악착같이 번 돈으로 내 새끼들 어디 가서 없는 집 자식이라 손가락질 받지 않을 만큼 키워냈고 김밥집 하면서 몇 개 사놓은 부동산이 운 좋게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고 상업지역으로 재개발 되어 똥구멍 빠져들어 갈 날 없던 길순이 인생도 이젠 편히 한번 쉬어보는구나 싶었는데 채 5년도 누리지 못하고 서방 동생 이춘자 때문에 가진 재산 다 말아먹고 수중에 남은 몇 푼으로 육십 다 돼 치킨집 하나 겨우 할 수 있게 되었다. 맥주가 얼마고 노가리가 뭔지 몰라 쥐포를 들었던 내가 치킨 호프라니 시골에 있는 내 동생들은 내 팔자가 가련해 눈물 흘리다가도 너무 어이없는 현실에 웃고 만다. 혼자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 일하기 싫어하는 내 서방 또 다시 주방에 앉히고 나는 홀을 보고 치킨까지 튀기며 두 몫을 해내고 있는데 나이 드니 이상하게 먹는 것만 밝히고 현실 직시 못하는 모자란 내 서방은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동네 여자 엉덩이 냄새만 맡고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어쩌다 내 인생이 남 보기에 기구한 팔자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타고난 내 사주가 그래서 그런 거라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아직까진 내가 모지란 탓이라 가슴 치며 자책할 만큼 난 강하지 못하다. 아니 사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난 타고난 사주보다 저놈의 인간 잘못 만나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것 같아 저 인간 숨 쉬는 것도 꼴배기 싫어 등 돌리기 일 수 다.

 

李衆現

 

무리 자에 나타날 내 서방이다. 내 서방은 평생의 여자 분 냄새를 쫓으며 술과 향락을 즐기는 게 인생의 낙이라 생각한 웬수로서 젊었을 때 꽤나 여자들이 줄줄 따르던 미남이었다. 그 줄지어 따르던 무리 중 첫 번째 줄 세 번째에 나도 서 있었다. 머저리 같은 년 시골에 살던 촌년이 화이트셔츠에 코롱 스킨 냄새 풍기던 남자한테 눈이 돌아 정신 못 차리고 쫓아다니다 평생을 고생을 쫓아다니는 꼴이 되었다. 스무 살 때 나 좋다고 쫒아다니 던 소똥 냄새 나던 동네 오빠 창수는 지금은 지나갈 때마다 돈 냄새풍기는 마산바닥에 소문난 거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깟 냄새 조금만 참을 걸. 그랬더라면 내 인생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 후회라 할 수 있겠지. 지나간 세월 앞에 숱하게 가슴치고 방바닥을 기며 울었던 많은 후회 가운데 이 웬수 같은 이 중현을 만난 게 내 인생의 가장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겠지.

이놈의 서방이랑 결혼하고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내 서방은 신혼 때부터 술에 취하고 여자에 취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술에 취한 서방이 분 냄새 뭍이고 새벽녘에 들어오는 날이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내 첫째 딸 눕혀놓고 밤만 되면 옥상에 올라가 달 보고 울고 별 보고 울었던 게 한두 해던가? 한번은 한 달 월급을 몽땅 빠찡고로 다 날리는 바람에 당장 첫째 분유 값이 없어 친정엄마한테 돈 10만 원만 빌려달라고 사정한 적도 있었다. 젊었을 땐 끓어오르는 피 때문에 오입질했다 이해하겠지만 늙어서도 하루가 멀다 고 집에 안 들어와 애끓는 건 변함없었다. 동네 소문을 듣자 하니 우리 가게 옆옆 건물에 단란주점 하나가 있는데 내 서방이 그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걸 봤다는 옆집 칼국숫집 주인을 말을 듣고 가봤더니 단란주점 안 작은 쪽방에 마담이랑 내 남편이 벌거벗은 채 누워있더라 나는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는데 이 파렴치하고 양심 없는 내 서방이 다가와 물 한바가지 얼굴에 뿌리며 한다는 소리가

 

쇼하지 말고 일어나 니가 계속 그러면 진짜 집에 안 들어가는 수 가 있어

 

니미 그때 이놈이랑 헤어졌어야 했는데 길순이라는 이름 탓인지 순하디순한 나는 아직 학교에 다니는 두 딸년이 눈에 밟혀 거품 문 입 한번 스윽 닦고 몇 번 눈 깜빡이고 나서 일어나

 

옷 빨리 입고 집으로 와요

 

반푼 이처럼 그 한마디 하고 뒤돌아서 울었다. 이뿐만 아니라 눈물지을 날 숱하게 많았으나 계속 생각하니 내 속에서 뜨거운 게 치고 올라와 이쯤에서 생각은 접기로 했다.

비가 따락따락 내리는 서글픈 밤. 지나간 것들을 술 한 잔에 붙잡으려 애쓰는 낭만 취객들이 가게를 모두 빠져나가 쌀랑해진 가게에 나만 혼자 덩그러니 앉아 가게 밖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때우고 있다. 그때 지루함이 못마땅한 전화벨이 큰 소리로 울어대고 나는 기름때 묻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시집간 내 막내딸 단비

 

가뭄 끝에 내린 단비라는 뜻으로 내가 지은 이름이다. 참 다정다감한 내 딸 단비 이 아이를 낳은 게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라 목욕탕 뜨거운 물에 들어가 앉아 생각했더랬지

자라면서 많은 기쁨을 준 아이 철도 일찍 들어 힘든 나를 위로도 할 줄도 알아 이 아이라면 나를 이 시궁창에서 꺼내줄 유일한 동아줄이거니 생각 했더니만 누가 그러더라. 남편 복 없는 년이 자식 복도 없다고 커서 연극배우 한다고 설쳐대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애부터 덜컥 가지고 와서는 애 낳겠다고 나자빠지는데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끝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망할 년 평생 시집 안 가고 내 옆에 있겠단 말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내심 기대했었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애부터 덜컥 가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곁을 떠난 야속한 년. 지금은 애 잘 낳고 365일 라면만 먹어도 하하 호호 할 수 있는 신랑 만나 잘살고 있다.

 

여보세요

엄마 뭐해?”

뭐하긴 손님 기다리지

몸은 좀 어때?”

늘 똑같지 뭐

 

일주일에 한 두 번 의무적으로 오는 전화 늘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뱉어내고 끊어버리면 어찌나 딸한테 서운하고 외로워지는 걸 알고는 있는지 시집가기 전엔 내 기분 눈치 빠르게 알아채고 애교 부리던 딸이 결혼하더니 지 가족 밖에 안 보이나 보다.

 

엄마 내일 할머니 제사 맞지?”

나도 가?”

그럼 안 오려고 했어?”

우리 집에는 아들이 없다. 아들이 없어 시어머니는 내내 아쉬워하셨지만 나는 아들 안 낳은 게 얼마나 다행이라 생각한 줄 모른다. 막말로 아들 낳아났더니 제 애비 행세와 똑같았다면 난 가게 쥐 잡으려고 뿌려 났던 약을 내 입에 털어 넣었을 거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혹시나 해서 그렇지 알았어요. 내일 10시까지 가면 되지?”

알아서 해

 

시어머니 제사 음식은 나 혼자 다 하겠구나 썩을 년.

시어머니는 항상 혼자 방에 들어앉아 줄담배를 태우셨다 다 먹은 커피 병에 담뱃재를 털고 연기 가득 찬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던 우리 시어머니

 

金現淑

 

나타날 맑을 자 우리 시어머니 존함이다. 나이 삼십에 과부 되어 아들 둘에 딸 하나 70평생 혼자 키워냈던 곧은 분이셨다. 작은 체구에 작은 얼굴 눈 코 입마저 다 작았고 짓누르는 삶 들어 올려 이겨보겠다고 애쓰다 끝내 들지 못해 그대로 굽어버린 등을 가졌던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내가 큰딸 6학년 때까지 장가 안 간 삼촌과 함께 모시고 살았다. 어떻게 보면 시어머니가 나보다 더 박복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시아버지에 대해 나는 시집오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들은 바 없지만, 가끔 놀러 오시는 시어머니 여동생 이모님에게 시아버지에 대해 듣자 하면 한량 중의 한량이라 개구신도 그런 개구신도 없다 하더라. 술을 좋아했던 시아버지가 어느 날 머리끝까지 찰랑거리는 술독 같은 머리를 힘들게 이고 바닥에다 갈지자를 그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는데 논두렁에 기어가는 뱀을 무슨 생각이었는지 맨손으로 뱀의 머리를 제압하고는 도시락통처럼 흔들며 집으로 가져오더니 저녁준비로 바삐 타오르던 시뻘건 아궁이 불에 산채로 던져 부지깽이로 나오지 못하게 몇 번을 밀어 넣었다. 뱀은 뜨겁게 타는 숯이 뜨거워 기다란 몸통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다 아궁이 밖으로 운 좋게 내뺐지만 이미 불이 붙어 시커메진 몸뚱이는 오래가지 않아 숨이 끊어졌다. 숨이 끊어져 시커메진 뱀을 본 시아버지는 날이 선 칼로 뱀 머리와 꼬리만 잘라내고는 통째로 입에 넣어 우걱우걱 뜯어먹는데 겉만 타버리고 속은 익지 않은 뱀의 몸통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하도 괴이하고 섬뜩하여 시어머니는 말릴 수도 없다 했다. 그 일이 있고 보름이 지나 시아버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온종일 배를 깔고 구들장에 누워 죽 한 숟가락 겨우 넘겼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없는 형편에도 약방에서 약을 지어 다려 먹여보기도 하고 동네 침쟁이한테 침을 맞게 해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자 시어머니는 마지막 수단으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무당이 방울을 흔들고 오색 천을 흔들며 장단에 맞춰 방방 뛰자 방안 구들장에 배를 깔고 누워있던 시아버지가 충혈 돼 피가 고인 것처럼 보였던 눈을 천장으로 번쩍 까뒤집더니 먹지 못해 하얘진 혀를 턱밑까지 날름거리며 온방 구석을 배를 깔고 기어 다녔는데 그 모습이 흡사 뱀과 같다 하더라.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은 뱀이 원한을 품고 시아버지의 몸에 붙어서 그런 거라 쑥덕댔지만 시어머니는 혀를 날름대며 기어 다니는 시아버지를 붙잡고 목 놓아 울었다 우는 소리가 어찌나 서글펐던지 뒷산에 새들마저 함께 울었다고 한다. 어린 내 서방과 고모는 시아버지의 괴이한 모습을 보고 어찌나 겁나고 놀랐는지 그 후로는 시아버지 문 앞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았다 했다. 굿을 한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결국 시아버지는 세상을 뜨셨고 마지막 숨을 힘들게 몰아쉬는 순간에도 혀를 턱밑까지 쭉 빼고는 숨을 거뒀다고 했다. 그때 시어머니 배 속에 막내아들인 삼촌이 있었고 굿판에서 시어머니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도 이미 뱃속에 삼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 막막함에 울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렇게 혼자가 된 시어머니는 지아비의 성품을 빼다 박은 두 아들 때문에 마음 꽤나 썩었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그 후로 삼 남매를 홀로 키워냈고 홀 애비들의 은밀한 유혹에도 정절을 지키며 아이 셋을 키웠다고 살아생전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었지만 삼남매 중 둘째인 고모가 술에 취해 지들끼리 하는 소릴 들어보니 고모가 열 살 때 시어머니가 대포 집에 딸린 작은 뒷방에서 삼남매를 키웠는데 학교가 끝나고 가게에 왔더니 뒷방 문이 살짝 열려있다 하더라. 그 틈으로 개가 헥헥되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서 보니 웬 다 큰 아저씨가 시어머니의 작고 늘어진 젖을 붙잡고 탐욕스럽게 빨고 있다 하더라 놀란 고모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시 가게 문을 빠져나왔는데 한동안은 시어머니가 너무 미워 눈도 안 마주쳤다 했다. 그래도 다시 재혼하지 않고 삼 남매를 칠 칩 평생 홀로 키운 어머니가 고마운 삼 남매는 시어머니 칠순잔치 때 관광차를 전세하고 일가친척 모두 초대하여 성대하게 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피가 뜨거운 내 서방은 뭐가 그리 배알이 꼴렸는지 횟집에다 어른들 다 모셔놓고 소주잔을 집어 던지며 소리 소리를 지르자 이를 지켜보던 시어머니의 오빠인 큰아버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 서방 뺨을 있는 힘껏 올려붙이며

 

그래 피는 못 속이지 지 애비 닮아 개구신여 개구신

 

그 말에 더 흥분한 내 서방 큰아버지의 작은 얼굴에 성난 턱 들이밀며 한 대 더 때려 보시라며 대드는데 아무도 말릴 사람 없더라. 그때 정신 나간 삼 남매 중 막내아들 삼촌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 벗고 형보다 더 난동을 부리는 탓에 그날의 난동은 단락되었다.

삼촌은 군대 가서 선임한테 맞아 미쳤다는 소리도 있고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 하다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돌았다는 소리도 있지만, 그것 역시 어느 누구에게도 자세하게 들은 바는 없다.

시어머니는 칠순잔치 2년 후 추운 겨울 고모네 집 욕조에서 반신욕 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사인은 갑작스러운 체온변화로 인한 심장박동 정지. 욕조에서 돌아가시고 2시간 만에야 삼촌에게 발견됐는데 뜨거운 물에 너무 오래 방치돼 등에 화상까지 입어 물집이 다 잡혔고 돌아가시면서 괄약근이 열려 안에 있는 변들이 쏟아져 나와 똥물에 잠긴 채 세상과 작고한 시어머니를 삼촌은 마음껏 안고 울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인생이라지만 자식들에게 유언하나 눈짓하나 남기지 못한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잿밥이라도 잘 챙겨드리고 싶지만, 생전에 교회에 다니시고 나 역시 기독교 신자라 시어머니 기일엔 추도예배로 제사를 대신했는데 3년째 되던 기일에 첫째 딸 꿈속에 생전보다 더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나타나 다과 상위에 차려진 나물을 맨손으로 집어 허겁지겁 입에 넣으며 어찌나 배고프다며 우셨다 던 지 첫째 딸은 꿈에서 깨고도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살아생전 첫째 딸을 무척 예뻐했던 시어머니. 둘째 딸의 꿈도 아니고 첫째 딸의 꿈에 나온 시어머니를 모른 채 할 수도 없고 외롭고 허망하게 돌아가셨는데 잿밥까지 드시지 못한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죄송스러워 4년째 되는 기일부턴 꼭 제사상을 차려 드린다.

 

시집갔다 돌아온 첫째 딸 에리

원래 이름은 애리 인데 내가 맞춤법이 헷갈려 애리를 에리로 출생신고를 하는 바람에 에리가 되었다. 이름의 뜻도 사전적 의미는 찾아보니 여리여리하며 애티가 나게 젊다라는 뜻인데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글자가 예뻐 그냥 에리로 지은 듯하다.

이년 역시 물건이다. 이혼하고 3살배기 어린 아들 데리고 돌아와 5년째 나와 함께 살고 있는데 지아비 성품을 빼 박아 어찌나 뜨거운지 말 붙이는 것도 겁나 피해버리기 일쑤다. 어느 날은 딸이 길을 가다 마주 오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대뜸 할머니가 길가에 서더니

 

기 한번 오지게 세게 생겼다.”

 

하고 쓱 지나가는데 불러서 할머니에게 물어 따지려 하다 참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더라.

어릴 적부터 탈 많고 속 꽤나 썩인 딸 때문에 윽박도 지르고 매도 심하게 때려보기도 하고 긴 머리 잘라 집 밖으로도 못 나가게도 해봤다. 그 때문에 딸 역시도 나만큼이나 상처받고 자기편 하나 없는 집구석에서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춘기라 생각했음 되었을 걸 혹여나 나처럼 살까 겁나 더 모질게 몰아붙이고 훈육했던 게 아직도 서로에게 상처라 어릴 적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 않는다. 그러고 시집간 내 딸이 결혼 5년 만에 사위가 젖비린내 나는 20대 초반 회사 후배와 바람이 나 서로 더러운 꼴 보이다 결국 이혼해 세 살배기 아들 데리고 집에 들어왔으니 전부 내가 생각 없이 지은 이름 탓인가 싶어 일산에 유명한 작명소에서 이름을 다시 지으러 찾아갔다. 작명쟁이 한다는 소리가 첫째 딸 사주가 바다 위에 외롭게 흔들리는 부표 같은 사주라 이름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새로 옷을 입혀줘야 하는 법인데 이 이름은 걸친 것도 벗을 것도 아닌 빈 깡통이라고 말하는 통에 삼십 만원 거금 들여 작명소에서 지어준 서진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1년이나 지났을까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던 첫째 딸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쓴 소설이 덜컥 공모전에 대상으로 당선돼 어마어마한 상금과 책까지 출판되었다. 말 그대로 인생역전 이었고 동네에선 이혼녀 타이틀이 아닌 금의환향한 성공한 작가 딸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글재주가 있어 상도 많이 타오긴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딸이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학교도 도통 안 가는 탓에 딸에게 글재주가 있었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막상 작가가 된 딸보다 내가 더 어안이 벙벙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혼해 돌아온 딸은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칫밥 혼자 찾아 먹었는데 작가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기세가 하늘을 찔러 네가 성공한 것은 내가 삼십만 원 주고 이름을 개명한 덕분이니 앞으로 잘해라 한마디 했다가 첫째 딸 부리부리한 큰 눈에서 번개가 번쩍하더니 내가 잘나 된 거지 무슨 이름 때문에 된 거냐며 방바닥에 붙인 궁둥이가 성이나 들썩들썩 대는데 더 이상 대꾸했다간 내 피도 솟구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새벽 한 시가 되자 취기가 살짝 오른 내 첫째 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몇 신데 아직 집에 안 들어가?”

한시잖아 끝나려면 멀었어.”

아빠는?”

니 애비는 또 술 처먹으러 나갔지 어떻게 술집을 하면서 다른 집에서 술을 처먹는지

얼른 정리하고 들어와 거리에 아무도 없는데 위험하잖아

 

매정한 년 그렇게 위험하면 옆에 앉아 기다려 주든가 말만 잘잘 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첫째 딸 뒤통수에다

 

너 낼 할머니 제사인 거 알지?”

내가 모르겠어?”

 

또 또 저렇게 얘기하는 거 봐라. 예민한 년

 

일찍 와서 음식 만드는 것 좀 도와

단비는?”

“10시에 온대

단비도 10시에 오는데 나만 왜 일찍 와야 하는데 나도 바빠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나가는 딸년 뒤통수에다 욕지거리를 해댈까 하다 그만둔다. 저 벌통 쑤셔 봤자 나만 손해지. 지금은 학군 때문에 쟤 아빠한테 가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 생활비 한 푼 안 받고 5년 동안을 딸년도 모자라 키워주고 먹여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못들을 망정. 이럴 땐 철딱서니 없는 딸이 서운하고 얄밉다.

세상에 둘밖에 없는 피붙이 자매끼리 어릴 적부터 어찌나 치고박고 싸우는지 둘 다 삼십이 넘어서도 동네가 떠나가게 치고 박고 싸우는 통에 한동안은 동네 창피해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다. 아마도 막내딸이 결혼하지 않고 집에 붙어있었음 지금까지도 싸웠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어차피 지루한 시간 무거운 엉덩이 의자에 붙이고 막장드라마 보며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릴 바에 내일 제사상에 올릴 나물이나 무칠까에 주방으로 가 불을 댕긴다. 나물 데칠 물을 올리고 주방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물 끓기만을 기다리는데 나 열네 살 꽃다운 나이에 식모살이했을 때가 떠오른다.

어릴 적 우리 집이 가난하기도 하고 내가 딸이라 울 어매 아베는 날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서방 앞에 어깨 한번 못 펴보고 못 배웠다고 조롱 들으며 산 게 다 한으로 남아 늙어 이 빠진 울 어매 만나서 옛날얘기 꺼내다 보면 서럽고 원망스런 마음에 어제 일처럼 눈 흘기며 눈물 흘리곤 한다. 남들 다 중학교 다닐 나이에 울 어매는 나를 외당숙집 첫째 아들네로 식모로 보냈는데 식모로 가는 첫날 처음으로 검정새단을 탔다. 서울구경 하는 설렘도 잠시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열네 살 나이에 부모 슬하를 처음 떠나니 어린 맘에 겁이 나고 서글퍼 뒷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로 무릎을 적셨다. 8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울 당숙 오빠 집은 현대식 식탁에 화장실 그리고 최신 컬러텔레비전까지 갖춰진 부잣집이었고 오빠랑 결혼한 언니는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거동이 불편했다. 내 할 일은 산후 조리하는 언니 대신 갓난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맡아 하는 거였다. 처음 온 몇 주는 울 어매 보고 싶어 매일 밤 누가 들을까 몰래 입을 막고 베개 잎을 적시도록 울었지만 사람이란 게 희한한 것이 한 달 딱 지나니깐 텔레비전에 나오는 서영춘을 보고 박장대소하기도하고 달걀 넣은 케찹 뿌린 샌드위치가 어찌나 맛있던지 도시로 온 시골 쥐가 고향 생각 안하고 서울 쥐라도 된 듯 코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어느 봄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조용한 오후 아기 기저귀 삶으려고 양푼에 물을 채워 가스레인지 불 위에 올려놓고 아기랑 잠깐 누워 있다는 게 깜빡 잠이 들어버려 올려놓았던 기저귀에 불이 붙어 주방엔 검은 연기가 자욱했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언니가 타는 냄새에 잠이 깨 가스레인지 불을 황급히 꺼서 다행이지 정말 큰불이 날 뻔했다. 그날 눈물이 쏙 빠지게 호되게 혼나고 내방에 틀어박혀 서러움에 대성통곡하고 나니 잠깐 잊어버렸던 어매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더라. 그 다음 날 도망치듯 주머니에 쌈짓돈 챙겨 버스표 끊고 단박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앞 밭에서 호미질하던 울 어매 나를 보더니 고무신 벗겨지는지 모르고 달려와서는 나를 와락 안고 엉엉 우는데 나 역시 울 어매 가슴팍에 묻혀 어매 가슴 다 젖도록 울었었다.

어릴 적 기억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나물 삶을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깨끗이 씻어놓은 시금치를 살짝 데쳐내 들기름과 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고 있는데 밖에서 가게 문이 열리고 사람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손을 씻고 주방 밖으로 나왔다.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들어오는 손님을 받을까 말까 하다 어차피 나물 무치고 마감정리 이것저것 하다 보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받기로 한다. 모자를 쓰고 추운지 마스크를 쓴 남녀가 들어와 맨 끝쪽 자리에 앉았다. 나는 메뉴판을 들고 남녀가 자리에 앉은 테이블로 가 메뉴판을 건넸다.

 

천천히 보고 불러주세요

이상한 손님들이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눈도 안 마주치는 두 사람이 수상해 미성년자이구나 싶어 술을 시키면 주민등록증을 확인해야겠다 싶다. 5분이나 지났을까 나를 부르는 벨이 울리고 나는 다시금 그 자리로 갔다.

 

뭐 주문....”

 

갑자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바닥에 꿇어앉히더니 뾰족한 무언가를 내 옆구리에 갖다 냈다. 여자는 재빨리 가게 앞으로가 간판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아줌마 죽고 싶지 않으면 돈 갖고 와

 

어찌나 옆구리에 갖다 댄 것이 날카롭고 서늘하던지 꿇은 무릎을 빼곤 온몸이 덜덜 떨렸고 이마와 등에선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아차 하고 정신 줄 놓으면 바로 쓰러지겠더라.

 

돈만 주면 조용히 갈 테니깐 걱정하지 말고 빨리 돈 가져와요

여자가 나를 위로하는 듯 말한다. 그 말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은 내가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어 둘을 보았다. 남자는 내 옆구리에 찔러 놓은 손을 불안한 듯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려 밖을 주시했고 여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회색 티셔츠를 입은 여자의 젖가슴 부분이 젖어 있었다. 남자는 꾸물거리는 내가 답답한지 마스크를 벗어 테이블에 던졌다.

 

아줌마 죽고 싶어? 빨리 돈 안 갖고 와?”

 

놀라 뛰는 심장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보다 크게 들려 멀미가 날 정도다. 이대로 죽기엔 지금까지 이 악물고 버틴 세월이 억울해 순순히 금고로 가 오늘 번 현금 37만 원과 어제 들어온 현금 20만 원 정도를 미련 없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건네받은 돈을 세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고서는 여자를 데리고 황급히 가게를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나는 너무 놀라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어나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아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러다 문득 뺏긴 돈도 아깝고 두 사람이 괘씸해 풀려버린 다리 질질 끌고 계산대로 가 전화기를 들어 신고할 찰나에 여자가 다시 돌아와 아까 남자가 테이블 위에 던져놓은 마스크를 다시 챙겨 나와 내 앞에 서서는

 

아주머니 죄송해요. 애기가 너무 아픈데 병원 갈 돈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문을 열고 나가 비 오는 새벽 거리로 사라졌다. 아까 본 여자의 티셔츠가 비 때문에 젖었던 게 아니라 젖이 차 흘러 젖었었구나 싶어 갑자기 젊은 여자가 안쓰럽다. 나는 힘들게 들었던 수화기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따뜻한 물 한잔으로 놀라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경찰이 올 수도 있는 상황에 마스크가 뭐라고 다시 돌아와 가져갔을까 경찰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했으려고 겁도 없이. 요새 뭐 마스크에 묻은 그 DNADHA인가 검사로 잡을까 싶어 다시 가지러 왔으려나?

나 다섯 살 때 인가 울 어매 손잡고 외할머니댁에 놀러 간 적이 있다는데 한참을 노는 날 어매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내 손 억지로 끌고 아쉬운 발걸음 집으로 옮겼다 한다. 집에 가는 고개하나를 넘고서야 들고 갔던 양푼대야를 외할머니댁에 놓고 온 걸 울 어매가 알았고 어린 나는 울며불며 양푼 대야 찾으러 가자고 어매 손을 잡아끌었다고 한다. 깜깜한 산속 헤집고 도깨비불 등불삼아 영광스럽게 찾은 양푼대야를 머리에 쓰고 달이 차올라 아까보다 밝아진 산속 길을 따뜻한 어매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한다. 그때 나는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찾으러 갔을까 그게 뭐라고.

너무 놀라 진이 다 빠져 으슬으슬하기까지 한 지금 이 순간에 양푼 대야가 생각날 게 뭐람. 나도 참 실없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고 답이 없었으면 젊은 부부가 강도질을 다 했을까? 갑자기 젊은 부부가 가여워진다. 내 인생은 적어도 애가 아파 빽빽대는데 수중에 돈이 없어 젖병 대신 칼을 꺼내 들고 강도질은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고달프기 그지없는 내 서글픈 인생보다도 저 젊은 부부의 인생이 더 기구할지도. 나는 어느새 비가 그쳐 젖어있는 새벽 거리를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돌아와 내일 시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나물을 다시 정성껏 만들기 시작했다.

 

지지리 복도 없는 제 길순의 삶도 오늘따라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 profile
    은유시인 2016.06.30 01:14
    열심히 정진하시면 좋은 결실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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