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8
어제:
8
전체:
305,745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6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5.06.09 23:33

달 아래 산 그림자

:)
조회 수 1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달 아래 산 그림자

 



산신. 산주인, 산신령이라고도 부르며, 작은 뒷산이라도 반드시 있다. 산 인근의 마을 주민들은 1년에 한 번, 또는 마을에 큰 재앙이 있을 때 산신제를 올리는데,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신은 사람들에게 있어 숭배의 대상이면서 두려움의 대상이다.

 

  어느 산신이 지키는 작은 산. 그 곳에는 마귀의 집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오두막이 있다. 산신은 그 오두막을 싫어했다. 산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 오두막의 주변은 당연히 음습해졌고,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됐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그 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조차 몰랐고, 오두막의 손님이라면 종종 담력을 시험하려고 찾아오는 마을 아이들이 전부였다. 그도 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하고 다들 내빼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산신은 오두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눈치 챘다. 작은 소녀가 오두막으로 올라와 그 안에 있던 늙어 죽은 여자를 산 속 더 깊은 곳에 묻어주고는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가끔 있는 일이었고, 오두막을 싫어했기 때문에 산신은 이번에도 무시하려고 했지만 소녀가 조촐하게 산상을 올리려고 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

 

“난 마귀의 음식은 안 먹는다.”

 

그가 소녀를 찾아가 대뜸 말했다. 소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산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가 젊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 소녀의 머릿속에 흰 수염이 덥수룩한 산신과는 조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가 산신이라는 것쯤은 소녀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거렸다. 길게 땋아 내린 검은 머리. 그와 어울리는 크고 까만 눈을 가진 소녀였다. 마침 입은 하얀 저고리가 잘 어울렸다.

 

“너, 네가 여기 왜 온지 알고 있는 거냐?”

 

그의 물음에 소녀는 우물쭈물 거리다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소녀의 말과 행동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귀의 오두막에서 산상을 올리다니. 산신은 되물었다.

 

“왜 왔는데?”

그의 질문에 이번에 소녀는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산신은 됐다는 양 나른하게 손은 내저어 보였다.

 

“됐다. 그래.”

 

그는 오두막이 싫었고, 오두막에 사는 여자가 싫었다. 산신제를 올리는 오두막에 사는 여자는 이상하긴 해도 좋지 않다. 그는 계속 오두막에 관심을 주지 않기로 결심하며 발길을 옮겼다. 그때.

 

“산신이.....!”

 

하고 뒤에서 소리치는 듯한 소녀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는 멈춰 서 고개만 돌려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조금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이 산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에요.”

 

소녀의 대답에 그는 다시 흥미가 생겨 다시 소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흥미의 표시로 짧은 감탄사도 잊지 않았다.

 

“호오. 내가 무섭다?”

 

그는 돌아가는 발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녀의 이야기를 들을 심산이었다.

 

“재밌네. 더 얘기해줘.”

 

소녀도 그를 따라 맨땅에 조심스럽게 마주 앉았다. 소녀는 두어 박자를 쉬고 입을 뗐다.

 

“아주 옛날에 저희 마을은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고 해요. 사람들은 매일 굶주리고 내일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며 살았대요. 아무리 산신제를 올려도 산신은 마을을 지켜주지 않았대요.”

소녀는 여기까지 얘기하고 산신의 반응을 기대 한 건지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이 산에 흘러들어 온 노파가 오두막을 짓고 살았더니 마을이 풍요로워지고 사람들도 건강해 진거에요. 마을 사람들은 그게 오두막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요.”

 

“그것 참 기막힌 우연이네.”

 

그는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소녀는 그의 표정에 잠시 주춤했다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 오두막은 마을까지 내려오려는 산신의 화를 중간의 마귀에게 돌리기 위한 일종의 부적이에요.”

 

“부적이라고?”

 

“네? 네...... 비유를 한 것이지만요.”

 

“계속 해.”

 

소녀는 점점 험악해지는 그의 인상 때문인지 침착해 지기 위해 마른 침을 한번 삼켰다.

 

“마귀는 죽지 않으니까, 항상 이 오두막에는 마귀가 있어야 논리가 맞잖아요? 저희 마을에는 마귀의 가문이 있어요. 마귀역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데, 그 아이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라요. 나중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네가 새로운 마귀역인가?”

 

그의 물음에 소녀는 쓸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귀가 된 사람은 마을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이 오두막에서 살아요. 마을을 위해 희생하는 셈인데, 어쩐지 소문은 마귀라고 나 있네요.”

 

소녀는 여전히 얼굴에 쓴웃음을 머금으며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 끝에는 소녀가 떠나 온 마을이 있었다. 산신은 소녀를 바라보다가 그냥 일어섰다.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그런 말을 건넬 만 한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산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돌린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산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산신은 소녀를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멀리해서 나쁠 것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오두막에는 볼일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요즘 산신에게 귀찮은 일 하나가 생겼다. 지난번에 만났던 소녀가 매일 밤마다 산신님, 산신님, 하며 그를 찾는 것이었다. 밤마다 그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소녀는 그를 산신이라기보다 귀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못들은 척 눈을 감고 몸을 뉘였지만 이내 몸을 일으켜 오두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짢아 보이는 그와는 달리 멀리서 다가오는 그의 그림자에 소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드디어 오셨네요.”

 

“네가 시끄럽게 불렀잖아.”

 

“안 들리시는 줄 알았는데요.”

 

소녀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는 그런 소녀에게 잠깐 시선을 주고 전처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그의 물음에 소녀는 머뭇거리다 웅얼거리듯 말했다.

 

“왜...... 냐하면......”

 

소녀는 말을 늘였고, 그는 그런 소녀를 계속 보기만 할 뿐이었다.

 

“부탁이 있어요.”

 

“부탁?”

 

그가 다시 되묻자 소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뭔데?”

 

하고 물었다. 그에 소녀는 눈을 반짝였다.

 

“뭐든 들어주시나요?”

 

“들어보고 결정할건데.”

 

소녀는 싱긋 웃으며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하며 또 말을 늘였다. 그는 기다리는 것이 슬슬 짜증났지만 묵묵히 기다렸다.

 

“자주 찾아와 주셨으면 해서요.”

 

그는 소녀의 부탁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산신이었다. 본래 산신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만신이 아니면 사람들과는 섞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싫다 대답하면 될 것을 그는 왜 망설이고 있는가 하면, 그가 먼저 소녀에게 모습을 보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녀의 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 시간을 들여 결정했다.

 

“안돼.”

 

소녀는 조금 서운한 듯 어깨를 늘어뜨리며 어린애처럼 되물었다.

 

“왜요?”

 

“산신은 인간과 섞이지 않아. 특히 너랑 나는 더욱이.”

 

그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소녀는 왜인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똑같은 것을 물었다.

 

“왜요? 왜 산신은 인간과 섞이지 않아요?”

 

그는 한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담긴 한숨이었다. 산신은 조금 뜸들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사람을 사랑한 어떤 산신의 이야기 때문이지.”

 

그의 말에 소녀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 손뼉을 쳤다.

 

“그 이야기라면 저도 알아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산신이 자신의 생의 반분을 주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소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고민에 빠졌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동화...... 인데요?”

 

그는 자세를 편하게 고쳐 앉으며 슬쩍 웃어보였다. 하지만 그리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행복하게 살았다’라. 좋을 대로 미화했군.”

 

미화요? 그것보다 실화인가요?”

 

“그래.”

 

소녀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그런 소녀를 그냥 보고 있기만 했다.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한 소녀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실화라면 어디가 미화된 건가요? 산신과 여인이 만났다는 것부터인가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소녀는 ‘그럼?’ 이라는 눈빛으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산신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영생을 살지.”

 

“그렇죠.”

 

들은 잠깐 동안 시선을 주고받았다. 산신은 ‘이제 알겠지?’ 라는 의미가, 소녀는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라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초에, 영생의 반분은 얼만큼인데?”

 

소녀는 그제서야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야.”

 

“그럼 어떤 이야기 인가요? 원래 이야기.”

 

산신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그냥. 멍청한 어느 산신의 이야기지.”

 

무덤덤했지만 어쩐지 슬픈 듯한 목소리였다. 산신은 소녀의 호기심에 못 이겨 결국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은 별거 없어. 그냥 ‘옛날에 어떤 산신이 살고 있었다.’ 정도. 문제는 어떤 여자가 산에 들어오고 나서 부터지.”

 

소녀는 벌써 부터 몰입 했는지 미간까지 찌푸리고 있었다.

 

“산에 사람이 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마을이 가까이에 있는데도 오두막을 짓고 사는 경우는 드물지. 그것도 여자 혼자서. 그 산신은 만물을 사랑하는 아주 마음 착한 산신이었어. 그래서 그 여자가 걱정이 됐던 거지. 그래서 산신은 조금씩 오두막에 관심을 주기 시작했어. 더울 땐 그늘을 만들어 주고, 눈이 오면 막아 주는 것 정도로 아주 작은 일 이었는데, 결국 그 산신은 여자에게 모습을 보였어. 그 여자의 어떤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와 사랑에 빠진 거야.”

 

소녀는 그의 말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어머나’ 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다가 실례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막았다. 그는 소녀의 반응에 잠깐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둘은 행복한 매일을 보냈어. 여자가 마을에 흉년이 들었다는 소문을 듣기 전 까지는. 그 여자는 인간이었어.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산신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는. 그 여자는 순식간에 탐욕으로 물들었어. 마을의 조금의 풍요를 가져다주면 여자는 부는 물론 지위와 명예까지 얻게 되는 상황이었으니. 그것도 바로 옆에 산신을 두고 말이야. 어느 날 둘은 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 산신은 반갑게 여자를 찾아 갔지만, 그날, 그 산신은.”

 

산신은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 쉰 후 소녀의 눈을 바로 보았다.

 

“죽었어.”

 

소녀는 놀랐는지 숨을 빨리 들이 쉬며 눈을 크게 떴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건 산신이었다.

 

“산신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영생을 산다고 했지?”

 

“네.”

 

“그럼 그 특별한 일이라는 건 뭐라고 생각해?”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잠깐 뜸을 들였다.

 

“산본(山本)이야. 산본은 산 자체의 기운인데, 그걸 받은 영물이 산신이 되는 거야. 그날 밤, 그 여자는 잔인하게 산신을 찌르고 파헤쳐서 산본을 꺼낸 거야.”

 

소녀는 마치 눈앞에서 그 광경이 보이는 것처럼 끔찍하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며 물었다.

 

“왜요? 산신을 죽이면 산을 지키는 사람이......”

 

“없어지길 바랐던 거야. 그 여자는. 말했지? 산본을 받은 영물이 산신이 된다고. 다시 말해, 산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거지. 어찌됐든 산본은 여자의 손에 들어갔고, 동시에 여자의 손에 산이 들어온거야.”

 

소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산신은 사람들에게 산의 자원을 적당히 내어주는 일을 해. 산신이 없으면 그걸 통제 할 수 없어지는 거야. 마음대로 동물을 잡고, 땅을 파고, 나무를 벨 수 있지. 그 여자는 산신의 마음보다 지위를 갖고 싶었던 거야. 마을을 살린 영웅이 되고 싶었겠지. 아주 옛날에 너희 마을, 갑자기 풍요로워 졌다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산속의 노파 덕분에.”

 

소녀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얼어버린 것처럼 몸을 빳빳이 세우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여자는 산본을 들고 마을로 내려가서 자기가 산신을 죽였고, 이제 산의 주인은 자기라고 말했겠지. 사람들은 신비로운 산본을 보고 그 여자를 섬겼어. 마을 사람들은 그 여자를 기리기 위해 오두막을 짓고 주기적으로 마귀를 보내는 거야.”

 

얘기를 하다 보니 어쩐지 화가 난 그는 오두막을 떠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적 같은 게 아니야. 여긴, ‘너 따위 산신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라고 되지도 않는 경고를 하는 거라고. 산신의 화로부터 마을을 지켜? 아주 좋을 대로 생각 하는군.”

 

산신이 옷을 툭툭 털며 돌아서자 소녀가 갑자기 일어섰다.

 

“죄송해요.”

 

들릴 듯 말 듯 한 소녀의 목소리에 그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이내 그는 오두막을 떠났고, 어두운 오두막에는 소녀만 남았다.

 

 

 

 

깊은 산 어느 곳. 산신이 나무 사이로 비치는 하얀 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로운 생각을 했는지 찌푸려진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그는 소녀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멍청한 산신도 그렇게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한숨에 담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곤 쌓여있는 꽃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며칠 동안 소녀가 음식과 같이 산상에 올린 것들이다. 아마 미안함의 표시이리라. 소녀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 소복이 쌓여있는 꽃들을 한손에 모아들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소녀는 멀리서 산신의 그림자가 보이자 반갑게 뛰어나왔다. 신신은 그런 소녀를 보며 들고 온 꽃을 턱 끝으로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소녀는 그의 꽃을 받아들며 빙긋 웃었다.

 

“이렇게 하면 오실 것 같았거든요. 물론 사죄의 의미가 더 컸지만요.”

 

그는 소녀에게 왠지 속은 것 같은 느낌에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물었다.

 

“날 만나서 뭐하게?”

 

“글쎄요,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어요.”

 

“그것도 그렇고, 왜 하필 연꽃이야?”

 

산신이 소녀의 품에 안긴 연꽃을 보며 물었다.

 

“싫어하시나요? 오두막 앞에 작은 호수가 있는데, 거기에 예쁘게 피었더라구요.”

 

“안 좋아해.”

 

소녀가 생글거리며 얘기해도 그는 연꽃을 노려 볼 뿐이었다.

 

“너 그거 알아?”

 

“네?”

 

“연꽃의 종자는 천년동안 땅 속에 잠들어 있어도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어.”

 

소녀는 산신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품에 안긴 연꽃을 신가하게 바라봤다.

 

“그 동안은 진흙 속에 잠들어 있다는 말이지. 그렇게 긴 시간동안 자다가 최후의 발악 같이 피었어도 어차피 마지막엔 다시 진흙 구덩이 속에 처박힐 텐데... 그래서 싫어. 연꽃. 천년이라는 시간을 견딘다는 것도 소름끼치고, ‘결국엔 진흙’ 이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그의 말을 한참 듣던 소녀는 다시 싱긋 웃었다.

 

“그래도 그건 지금부터 천년이 지난 뒤에도 다시 꽃이 필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럼 저, 저 꽃에 소원 빌래요. 천년이 지난 뒤에 다시 꽃이 피면 소원이 이루어 지지 않을까요?”

 

산신은 못 이기겠다는 듯 슬쩍 웃었다.

 

“천년을 어떻게 기다리냐. 그리고 마귀의 소원은 아무도 안 들어 줄 걸.”

 

그의 장난에 소녀는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하세요!”

 

산신은 여전히 밝은, 하얀 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따라 소녀도 고개를 하늘로 처 들었다.

 

“사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한참 달을 보던 소녀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계속 달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소녀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산신님은 자상한 편이신가요?”

 

소녀의 엉뚱한 질문에 그가 소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죽으면 화가 날 만큼 자상하신가요?”

 

산신은 소녀의 질문이 지난번 이야기에 대한 연장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자상한가, 아닌가, 둘 중에 하나라면 아닌 쪽이 아닐까.”

 

“그렇다면, 산신님은 왜 그 이야기를 싫어하시는 건가요? 하찮은 인간이 신을 죽였다는 게 분해서요?”

 

“별로 사람들이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럼요?”

 

소녀의 집요한 질문에 그는 조금 난감한 눈치였지만 소녀의 호기심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형 이야기니까.”

 

그의 대답이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소녀는 놀란 눈을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산신은 소녀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도 아닌데 굳이 한 번 더 말했다.

 

“형이야. 그 멍청한 산신.”

 

소녀는 한참을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소녀의 목구멍에서 아. 하고 작게 탄식이 흘러나오자 그제서야 산신은 소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신은 말이야. 완벽하지.”

 

그의 뜬금없는 말에 소녀는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했다.

 

“난 신이 될 수 없는 몸이었어. 목소리가 없었거든. 산에서는 돌도 덕을 쌓으면 영물이 되어 말을 하는데, 내 경우는 좀 달랐지.”

 

하늘에 조금씩 구름이 차기 시작했다. 밝았던 달은 점점 구름에 가려졌고, 덕분에 숲이 어두워져 둘은 서로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지금 내 목소리는 형 목소리야.”

 

소녀는 대답 없이 그가 있음직한 곳을 짐작하여 빤히 바라보았다.

 

“그날 밤. 그래. 죽었던 날. 형은 그 여자를 만나러 가기 전에 나에게 이 목소리를 줬어. 그렇게 칼로 몸이 난도질당하는 데도 비명 한번 지를 수 없었겠지.”

 

  잠깐 잊고 있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던 혈육인 형을 배신 할 수 없었다. 고작 며칠 만난 소녀에게 생겨난 감정이 진심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성급한데다, 그는 그의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산의 마귀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아온 그가, 이제와 그 마귀를 사랑한다면, 이제껏 그가 살아 온 이유가 한줌의 먼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니.

 

  시간이 지나 어둠에 익숙해 진 둘은 어렴풋이 보이는 서로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둘을 지켜보던 밤새들은 안타까움에 목청을 돋우었고, 한동안 새들의 울음소리만이 둘의 공간을 에워싸 맴돌았다.

 

“전에 말했지? '너와 나는 더욱이'라고. 나는 이 산의 마귀를 싫어하는 산신이야. 너는 산신제를 올릴 필요도 없고, 밤마다 나를 부를 필요도 없고, 산상에 사죄의 의미로 꽃을 올릴 필요도 없어. 넌 마귀니까 나한테 자주 찾아와 달라고 부탁하면 안되고, 나한테 미안한 마음 같은 거 안 가져도 돼. 기왕 마귀역할에 당첨된 거 최선을 다해 연기해.”

 

산신이 돌아섰다. 한걸음을 뗐다.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걸음, 또 한걸음...... 그렇게 한신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소녀는 아무 움직임도 내지 않았다. 산신은 돌아서 깊고 깊은 곳까지 걸어갔다. 원래 머물던 곳 보다 더 깊은 곳 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말했지만 산신은 어쩐지 마음 한 편이 무거웠다. 그에게 심한 소리를 듣고도 가끔 소녀는 밤마다 산신을 불렀다. 그때마다 신신은 오두막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거두기를 거듭했지만 결국 그는 오두막으로 발길을 돌리지는 못했다.

산신은 산 속 아주 깊은 곳에 있었다. 오두막에서, 아니 소녀에게서 관심을 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그다지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이 오면 오두막의 눈을 막아주고, 소녀가 외롭지 않게 작은 산새들을 오두막 주변에 보냈으며, 가끔 아주 늦은 밤에 오두막 근처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볼 수 없으니 더 보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였다. 그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웃겨 실소를 터뜨렸다. 산신은 자기 자신이 ‘멍청한 산신’이 되고 있음을 느꼈고, 어쩌면 그의 최후마저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껏 살아 온 이유 같은 거 어찌 되는 상관없지 않나.”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제껏 그는 산의 마귀를 싫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산신이고, 산신은 영생을 산다. 이제부터 마귀를 사랑하며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설령 영생을 살지 못한다 해도 지금 그는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당장 오두막으로 향했다.

  산신이 오두막에 도착했을 무렵, 소녀도 잠에서 깨 오두막 밖으로 나와 있었다. 소녀는 산신을 보고는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산신은 그런 소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소녀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몽롱한 미소를 지었다.

 

“산신님, 보고 싶었어요.”

 

소녀의 말에 산신은 소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 소녀의 뺨에 손을 댔다. 두 사람은 서로가 허상이 아니라 진짜임을 확인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매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산신은 매일 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매일 소녀의 얼굴을 보고, 매일 소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매일 밤 달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소녀가 달을 보다 잠이 들면 둘의 하루가 끝났다.

여느 때와 같이 두 사람이 달을 보고 있었다. 소녀가 산신의 어깨에 기대어 물었다.

 

“산신님.”

 

“어.”

 

“산신님 이름은 뭐에요?”

 

“그런 거 없어. 예전엔 있었는데, 불러 줄 사람도 없으니까, 필요 없어.”

 

그렇게 대답한 산신은 그도 소녀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넌?”

 

소녀에게 묻자, 소녀는 그냥 웃었다.

 

“저도 없어요. 마귀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달로 향했다. 조금 뒤 산신이 흘리듯 말했다.

 

“월(月)은 어때?”

 

“네?”

 

“네 이름말이야. 이름이 없는 건 좀 불쌍하지 않나? 불러 줄 산신도 있는데.”

 

그의 말에 소녀가 밝게 웃었다.

 

 

 

  그 해는 우연히 흉년이 든 해였다. 눈이 소복이 쌓이고 추위가 몰려오는 계절이 오자, 마을 사람들은 추위와 더불어 굶주림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땅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으므로, 가지고 있던 나머지 식량을 모두 긁어모아 산상을 차렸다. 하지만 그것조차 너무 초라했다. 만신은 오히려 산신의 화를 둗울지도 모른다며 산신제를 올리는 것을 말렸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만신에게 하소연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굶어죽게 생겼으니, 만신 자네가 산신님께 부탁 좀 해보게.”

 

하지만 만신은

 

“겨울에는 산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네. 그리고 요즘 산신님이 어쩐지 바빠 보이셔서......”

 

하며 말끝을 흐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한데 모였다.

 

“조촐해도 산신제를 올리자.”

 

“화를 돋우면 어떡하나.”

 

이야기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오랜 공복에 예민해진 마을 사람들은 점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산신이 산을 안 지키고, 바쁜 일은 또 뭐가 있나?”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것은 신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네.”

 

그때였다.

 

“산신을 죽이자.”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순간 알싸한 공기가 마을 사람들을 스치고 자나갔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하나 둘 흩어졌다.

 

  그 날 저녁. 해가 지고 달이 차츰 고개를 내밀 때 쯤. 욕심과 이기심으로 물든 초점 없는 불길들이 산 앞에 모였다. 그들은 어떤 신호도 없이 일제히 산을 향해 떨어졌다.

  산의 끝자락부터 시작된 불길은 숲길을 타고 점점 번져갔다. 산신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불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꺼내 발밑으로 던졌다. 산신은 하얀 도포를 열기에 휘감으며 오두막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한참을 걷다 그는 발 앞에 보이는 쪽빛 치맛자락에 발길을 멈췄다. 소녀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소녀에게 미소를 건넸다. 소녀도 그와 비슷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산신은 목소리를 꺼내두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칫하면 큰 결심을 했을 소녀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넬 뻔 했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길이 더 크게 치솟았다. 산신은 소녀가 그녀의 역할에 충실하길 바랐다. 타버린 산은 다시 살아나고, 산의 주인도 다시 태어나겠지만, 소녀는 그렇지 않으니. 마침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뽑아냈다.

 

“전 살아야겠어요.”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소녀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산신은 만족한 듯 슬쩍 웃어 보이며 눈을 감았다. 이내 날카로운 단도가 그의 가슴팍에 파고들었고, 하얀 달 아래 검게 타는 산 위로 붉은 핏방울이 흩뿌려졌다. 그는 그대로 하늘의 달을 마주보며 드러눕듯 쓰러졌다. 그의 옆으로 소녀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 주저앉았다. 산신은 달에서 소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소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걷어냈다. 소녀는 울고 있었다. 산신은 말없이 소녀의 얼굴에 튀어버린 핏자국을 지워내려 소녀의 얼굴을 어루만졌지만 애석하게도 핏자국은 더 번지기만 할 뿐이었다. 산신은 힘없이 팔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두 사람은 열기 속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어떤 말을 하든, 두 사람만 들을 텐데, 둘은 말이 없었다. 불길이 점점 두 사람을 향해 가까워져 왔다. 산신은 마지막에 소녀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두 눈에 담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소녀가 산신을 따라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산신님, 호수에 제 소원은 잘 자고 있을까요? 저 그때, 그 꽃에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소원 빌었어요. 산신님이랑 둘이 같이요.’

 

소녀도 목구멍까지 차오른 목소리를 목 뒤로 삼켰다. 소녀는 산신에게서 산본을 꺼냈다. 하늘의 달처럼 하얗고 깨끗했다. 소녀는 산본을 꼭 껴안으며 눈을 감고 천천히 수를 셌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소녀는 눈을 떴다. 소녀는 타고 남은 까만 산에 홀로 앉아있었다. 살아있었다. 소녀는 뭔가에 홀린 듯, 그리움에 젖은 듯, 한참동안 품에 안긴 산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소녀는 정신을 차렸다. 소리가 더 가까워지자 소녀는 산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리의 주인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소녀를 발견하고 웅성거림의 신랄함이 극에 닿았을 때, 소녀가 산본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든 시선이 일제히 산본을 향했다.

 

  어느 새 다시 울창해진 산을 한 노파가 오르고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를 한 노파는 산 속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품에 안은 보자기를 더욱 여미었다. 마침내 그녀는 숲속에 작은 오두막에 도착했다. 노파는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데나 주저앉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땅을 파다가 뭉개져 버린 손 때문에 노파는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하염없이 울다, 노파는 보자기에 소중히 가져왔던 것을 땅에 정성스레 묻고는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아무도 노파를 볼 수 없었고, 산속에는 애틋한 구멍 하나만 남았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은 유난히 연꽃이 예쁘게 피었다.

 

 

 

황혜선 /  hhs7311@hanmail.net  / 010-8253-731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27
585 인생희망서 진씨. 2015.06.08 225
584 범내골 호랑이 해바라기2 2015.06.08 329
» 달 아래 산 그림자 :) 2015.06.09 18
582 보이지 않는 계절 왕만두두 2015.06.09 358
581 온유한 수용 돌도끼 2015.06.10 13
580 시지프스의 돌 외 1편 장굴 2015.06.10 41
579 오늘이다 리망 2015.06.10 36
578 슬픈 농담 문정석 2015.06.10 40
577 상상 - 형상을 생각하다 베리나으 2015.06.10 291
576 ▬▬▬▬▬ <창작콘테스트> 제5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6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5.06.11 114
575 보통 루루 2015.06.29 212
574 엄마의 밥상 알로 2015.07.13 387
573 번데기 file Raina 2015.07.15 57
572 동성의 법 이야기소녀 2015.07.19 180
571 여름기억 키싸일 2015.07.27 92
570 찰나의 모든, 그 순간 히여미 2015.07.28 46
569 동거 나타샤 2015.07.28 89
568 회전목마 클리셰 여느 2015.08.01 421
567 똥개의 나날 진씨. 2015.08.02 40
566 모래 시계 casker2 2015.08.08 279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