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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01:34

기쁨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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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도시

 

 

요즘 높은 범죄율로 많은 분들이 늦은 귀가 시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강력범죄가 매년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몇 달 전 개인안심보호서비스를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범죄율 하락과 더불어 일자리창출을 꾀한 것인데요. 특히 불안에 떨던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청년실업해결방안으로써 여론도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개인안심보호서비스가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신청하는 분들에 한해서 개인경호원이 붙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 장소를 입력하시면 통칭 가디언이라고 불리는 경호원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가디언들은 전문적으로 경호 직에 종사하는 분들인가요?

아직까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만 경호경험이 없는 일반인이더라도 면접과 시험, 경호훈련 을 통과하면 취업이 가능합니다.

 

각종 미디어가 떠들썩하다. 개인경호원이니, 가디언이니 하는 것들로 사람들은 탄성을 내지른다. 젊고 건장한 사내들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옆에 지니고 다닐 수 있다는 소식에 보호 따윈 필요 없어 보이던 여자들이 급격히 연약해 지고 있다. 유행처럼 번진다. 독감보다 독하다.

적성검사도 받고 테스트 통과해서 뽑힌 거래요 전과 있는 사람은 아예 접수도 못한다던 걸요

옆자리 장양이 옹호하고 나선다. 그 가디언은 사람 아니냐, 오히려 낯선 남자가 내 밤길에 동행한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나를 본 터였다. 가디언 한 명 따라다닌다고 범죄율이 해결되겠냐는 나의 대꾸에 없는 것 보단 낫죠 듬직하니 얼마나 좋아요? 게다가 다들 몸도 좋고 멋있다는데, 하는 장양이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고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딜 가도 가디언에 대한 미담으로 가득하다. 남자친구가 생긴 기분이라서 좋다든지,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귀가가 늦는 수험생 딸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는 등의 한심한 이야기. 길거리에서 강도를 당한 적이 있다는 어떤 여자는 가디언 덕분에 일상생활이 가능해 졌다며 전 재산이라도 바칠 듯 숭배하고 있었다.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처음 발표됐을 때 나도 혹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몇 년 째 고질병처럼 따라붙는 이름 모를 스토커 때문이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음침한 눈을 치켜뜨고 있다는 생각만하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곳곳마다 따라다닌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킨다.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수상한 사람이 없다는 기막힌 소리나 들어야했다. 내 눈엔 보이는 그림자가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다니. 탐욕 가득한 시선은 이토록 뻔뻔하게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펜 좀 빌릴게요!”

아침부터 장양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내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책상을 가로질러 손을 뻗는다. 장양의 극성맞은 팔꿈치가 내 가슴팍을 지나 펜 꽂이로 향한다. 더없이 불쾌한일이다. 장양은 정리정돈이라고는 모르는 여자였다. 그 고운 손은 얼굴에 화장품 두드릴 때나 움직이지 지저분한 책상을 치울 때 쓰진 못했다. 매번 나한테 펜을 빌려가는 것도 한번 사용한 건 제자리에 갖다놓지 못하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잃어버리고 마는 그 이상한 병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펜을 다 쓰고 나면 아무데나 던져버릴 것이 분명하다. 색깔별로 분리해 놓은 내 방식도 철저히 무시하겠지.

항상 깔끔하게 정돈된 내 책상을 보며 장양은 지나치다, 는 표현을 썼다. 실없이 웃으며 시간나면 내 자리도 정리해 줘요, 란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여직원은 우리 둘 뿐인데 서로 의지하며 지내자는 그녀는 나를 친한 언니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수시로 내뱉는 그 말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가 되고 싶진 않다. 없는 게 편하다. 언제나 그랬다.

엄마는 이런 내가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부족한 아이 취급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바로 취직해 독립했다. 제지공장의 사무직으로 직원이라고는 나와 장양을 포함해 다섯 명뿐이다. 월급도 적고 자부심을 느낄 만큼 보람찬 일도 아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회사 중 집과 가장 멀었으니 그걸로 됐다.

저거 누가 데려갈 거야? 결혼이나 할 수 있겠어? 여자애가 살가운 면이 하나도 없으니출퇴근을 핑계로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으면서 매일같이 혀를 내두르는 엄마의 모습과도 무리 없이 떨어질 수 있었다. 엄마와는 달리 나는 내 삶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위권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공부를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문대를 간 것도 굳이 4년씩이나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은 까닭에서였다. 딱히 배우고 싶은 게 없었달 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본 적도 없다. 어떻게든 밥만 안 굶으면 되니까.

큰 불만 없이 살고 있는 나를 건드리는 건 늘 주변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한다, 사회생활 잘 해야 한다. 끊임없이 성화대며 귀찮게 굴기 일쑤였다. 지쳐가는 나를 비웃듯 그들은 만족할 줄을 몰랐다.

 

 

눈앞에 없다고, 모습을 감춘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간악한 수법으로 알게 모르게 숨을 조여 오는 스토커가 그렇듯. 혼자살기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가로등 밑으로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걸음을 재촉할수록 그것은 더욱 크게 덮쳐왔다. 보폭을 줄이고 속도를 높였다. 그림자는 쉬지 않고 나를 쫓았다. 구두를 벗어들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큰길까지 달려 나가야했다. 가로등불빛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마른 숨을 진정시키고 뒤를 살폈다. 그림자는 사라져있었다.

골목을 벗어나 도로변에 있는 집을 구했다. 유흥가 앞에 위치해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었다. 계약기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 했지만 위약금이 아깝지는 않았다. 화려한 네온사인, 쉬지 않고 울리는 경적소리, 아스팔트 위를 긋는 노란 불빛과 그 빛을 가로지르며 비틀거리는 사람들, 술 취해 싸우는 그들의 고함소리가 나를 잠들게 했다. 그렇게 빠져나온 줄 알았다. 내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벽에 눈이 떠져 일찍 길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불을 켜고, 화분에 물을 주고, 바닥을 쓸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멍하니 앉아있는 중이었다. . 인기척이 났다. 주변을 살폈다. 짜 맞춘 듯 고요해진다. 타닥. 틀림없는 발소리. 벌떡 일어섰지만 움직일 용기는 없다. 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나? 기둥 뒤에 숨었나? 내가 찾아주길 바라는 건가? 날 조롱한다. 샅샅이 뒤져도 넌 날 잡을 수 없어. 귀를 막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나둘 출근을 한다. 숙취에 찌든 얼굴로 커피를 부탁하면서 파래진 내 안색에 대한 안부는 묻지 않는다. 참 좋은 사람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역시나 제시간에 오지 않는 장양을 대신해 남자들의 잔심부름을 한 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호신용품 판매사이트를 찾아 살펴보았다. 만 원 부터 삼십 만원까지 가격과 종류는 천차만별. 전자경보기, 삼단 봉, 고 강력 가스총, 가스총이 내장된 삼단 봉, 전기충격기, 페퍼 스프레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 장난감 같은 것들이 내 몸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는 소지허가증도 필요하다.

어머, 언니 요즘 무슨 일 있어요?”

뒤늦게 장양이 오지랖을 떨고 나선다. 얼른 화면을 내렸지만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의 입은 멈출 줄을 모른다.

하긴, 요즘 이런 거 하나씩은 다 가지고 다니더라고요 근데 제대로 사용 못하면 없느니만 못해요 제 친구가 지갑 내놓으라는 강도한테 삼단 봉인가 뭔가 들이밀었다가 도리어 뺏겨서 차고 있던 팔찌랑 약혼반지까지 몽땅 다 뜯겼고요, 아는 언니는 뒤에서 누가 끌어안아서 페퍼 스프레이 뿌렸는데 자기 눈에도 들어가는 바람에 죽다 살아났잖아요

장양은 말하는 내내 몸서리를 쳤다. 평소 시답잖은 말들만 늘어놓는 그녀였지만 이번엔 꽤 일리가 있다.

그럼 뭐가 좋을까?”

그냥 가디언 한명 고용해요 언니, 그게 답이야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린 듯 장양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럼 그렇지.

가디언을 고용한다고? 누가?”

다용도실에서 종이컵을 들고 나오던 총무가 참견한다. 그는 삼십분에 한 번씩 인스턴트커피 타먹는 낙으로 회사를 다니는 양반이다. 마흔도 안 된 나이에 머리가 벗겨진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니가 호신용품 구매 한다 길래 제가 가디언 추천했어요

장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무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 톤 높은 비웃음이 거슬린다.

왜 웃으세요?”

내 날선 말투에 그는 웃음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는다.

아니 장양이면 몰라도, 우리 저기는 키도 크고 몸도 튼실해서 뭐가 걱정이래? 나보다도 크지 아마? 180정도 되려나?”

8년째다. 이 사무실에 들어앉아 매번 나를 하대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보잘 것 없는 업무를 하며 결근한번 없이 살고 있는 게. 하지만 이들은 내 이름조차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아무튼 걱정 붙들어 매 나쁜 놈들도 사람 봐가면서 나쁜 짓하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발끈하긴막말로 그 뭐야, 스토커라도 있어?”

네 있어요

정적이 흐른다. 무안할 정도로 어색하고 숨 막히는 정적이 나를 발가벗긴다. 시간이 멈춘 건지, 사람이 멈춘 건지 아무것도 움직이질 않는다. 그리곤 폭소가 시작됐다. 멀리서 듣고 있던 남자직원들은 남몰래 킥킥. 총무는 배를 움켜잡으며 바닥이라도 뒹굴 기세로.

왜 웃으시냐고요

떨리는 목소리에 힘을 준다. 총무는 그때서야 찔끔 나온 눈물을 색 바랜 소맷자락으로 닦아낸다.

그러니까 내말은, 길바닥에서 납치 같은 거 당할 일없다 이거야 딱 봐도 힘세고 무게도 많이 나가 보이는데 누가 둘러업을 수나 있겠어?”

총무님도 참, 그거 성희롱이에요

내 표정이 굳어지자 여태 아무 말 없이 눈치만 보던 장양이 손사래를 치며 끼어든다.

농담이야 농담 근데 아무리 그래도 관리는 해야 해 조금만 더 살찌면 유니폼도 안 맞겠어 지금 그것도 큰 사이즈야 알지? 여직원이라곤 둘 뿐인데 상큼하게 있어야지

알겠으니까 가세요 이만

장양이 일어나 총무의 등을 떠민다. 두피까지 새빨개져 달아오른 손발이 떨려온다.

괜찮아요 언니? 신경 쓰지 말아요 총무님이 원래 장난을 심하게 치시잖아요

애써 웃고 싶지도 않다. 웃어넘기면 사람들은 내가 정말 괜찮은 줄 안다. 큰 키와 살집은 끝없이 나를 조여 왔다. 엄마마저 내 못난 외모를 못마땅해 했다.

네 아빠 닮아서 그래 넌 네 애비랑 판박이야

이름도 얼굴도 생사여부도 모르는 아빠였다. 그토록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하면서 내 생부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나 닮았으면 벌써 미스코리아 나갔지

이렇게 낳아달라고 한 적도 없다.

타고난 게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사과 같은 얼굴! 앵두 같은 입술! 그 간단한 공식도 모르니? 여자는 일단 예뻐야 돼 몸에서는 향기가 나고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말에서는 교태가 흘러야한다고

그래서 결혼을 네 번이나 한 거야?”

네 번이나 할 수 있었던 거지!”

남자한테 빌붙어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는 주제에. 구토가 밀려온다.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래가지고 남자는 사귈 수 있겠니? 연애할 마음이 있긴 해? 남자랑 해보기는 했냐? 너 혹시 여자 좋아하는 거야?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목젖까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깊숙이, 깊숙이.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불량품 신고로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다들 예민해진 가운데 장양만이 한가롭게 립스틱을 꺼내든다.

난 항의전화는 못 받겠어요 저번에 어떤 아저씨가 막 소리치는데 눈물 날 뻔했다니까요

아무렴. 수화기를 귀에서 뗄 새가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거래처의 호통을 받아냈다. 한 시간 만에 생긴 틈을 타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 사무실의 유일한 총각인 박 대리가 소리친다.

어머니 전화 오셨어 빨리 받아봐!”

몇 번이에요?”

일번!”

그의 표정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든다.

왜 회사로 전화를 해

네가 휴대폰을 안 받잖아 몇 통을 했는데

일하는 중이잖아

무슨 대단한 일 한다고 그런 여유도 없어?”

왜 전화했는데

생일이지 너? 집에 와서 미역국이라도 먹어

언제부터 생일을 챙겼다고

이제부터 챙긴다 이년아

안 먹어도 돼

넌 애가 왜 그러니? 얼굴 안보고 살 거야? 이번에 이사한 집은 어디니? 청소는 하고 살아?”

바빠, 끊는다

집주소랑 비밀번호 문자로 보내놔 반찬 줄 것도 있고

됐어 왜 안하던 짓이야

이게 애미한테 말본새하고는

나중에 전화할게

언니 오늘 생일이에요?”

전화를 끊고 연신 마른세수를 하는 내게 장양이 묻는다.

말을 하지 그랬어요

원래 이런 거 신경 안 써

에이, 그래도 언니 이제 서른이잖아요 다들 서른 살 생일은 거하게 치루는 것 같던데

정성껏 물들인 장양의 입술이 새삼스레 꼴 보기가 싫다. 퇴근 후 곧장 마트로 향했다. 일주일치 장을 보고 추워질 날씨를 대비해 극세사 잠옷을 구입했다. 통닭집도 들러 한 마리 사들고 기분 좋게 집에 가려는데 바로 옆 철물점 유리문에 붙어있는 홍보지가 눈에 들어온다. <특허 받은 무반동쇠망치입고 (여성분들도 사용하기 편합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런 거 하나쯤 침대 맡에 두고 자면 든든하겠구나.

 

 

늦었지만 생일선물이에요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이란 건 이런 걸 두고 말하겠지. 헤어왁스로 뿌리부터 솟아 올린 머리카락만 아니었어도 나보다 작았을 키, 까만 얼굴에 게슴츠레 퍼져있는 눈, 옹졸하게 몰려있는 코와 입술을 가진 남자를 장양이 내게 들이밀고 있는 이런 거.

이분은

가디언이요! 언니 요즘 불안해 보여서 제가 신청했어요

이 사람이 나를 보호한다고?”

!”

생각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이래봬도 실적은 좋대요

장양은 귓속말하듯 바투 다가와 내게 속삭였다. 이 모든 건 상기된 얼굴로 점심시간 때 정문 앞에서 잠깐 보자는 그녀를 처음부터 의심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저기, 난 정말 괜찮아

제발 사양하지 말아요 이미 한 달이나 신청했다고요 그것도 풀타임으로

? 아니 나랑 상의도 없이

선물을 상의하고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그렇지

그럼 전 먼저 올라갈게요 두 분이서 세부일정 같은 거 조율하세요

여전히 해맑은 장양이 손을 흔들며 멀어져간다.

여섯시 퇴근이시죠?”

가디언은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

, 그렇긴 한데

그럼 그 시간에 여기서 뵙겠습니다

그냥 보호 받은 셈 칠 테니까 오지마세요

그건 안 됩니다 매일 근무일지를 써야 해서요

대충 지어내면 되잖아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은 무리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90도로 꺾인 그 허리가 너무 정중해서 당장 멈추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보호를 시작한 가디언의 첫 행동은 나를 인도 안쪽에서 걷게 하는 것이었다. . 티 나지 않게 코웃음을 쳤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입고 다니면 위험해요

집 앞에 다다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시선은 내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몸을 움츠리며 쏘아보는 내게 오해하지 말라며 얇은 블라우스 안으로 속옷이 비친 탓이라고 그는 말했다.

레이스달린 것까지 다 보이는구만

기막혀. 현관문 앞까지 도착하자 가디언은 또 허리를 숙였다. 내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갈 때 까지 그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가방만 던져놓고 사료를 챙겼다. 며칠 전부터 건물 주위를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때문이었다. 배가 고프면 밤이고 새벽이고 울어대는 통에 쫓아내기도 찝찝해서 준비한 것이다. 안 쓰는 국그릇에 사료를 듬뿍 담아 건물 뒤 화단에 놓았다. 그리고 이틀 뒤, 가디언이 10kg짜리 고양이사료 한 포대를 내게 건넸다.

저번에 우연히 봤어요 저도 고양이 좋아하거든요

,

무거우니 제가 안으로 옮겨 드릴 게요

아니요, 그냥 두세요 제가 할게요

내가 필사적으로 문을 막아서자 그는 당황했다. 나는 그 눈빛을 무시했다.

뭐 좋아하세요?”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3층으로 내려오는 그 잠깐의 시간도 지루하다는 낌새로 가디언이 물었다.

뭐가요?”

앞으로 한 달간 매일 볼 건데 친해지자고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든지, 이상형이라든지

이상형이요?”

저는 키 큰 여자 좋아해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형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던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지. 내게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요상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친구 별로 없죠?”

왠지 부정할 수가 없었다. 하는 일에 지루함을 느끼는 건지, 원래 말이 많은 건지 출근하는 내내 귀가 따가웠다. 장양은 법석을 떨었다. 그래도 가디언이 있어 듬직하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걸 보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았다. 너처럼 오지랖이 넓고, 체격도 나보다 왜소해 못미덥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하루 종일 선물해준 사람 마음은 알아주지도 못한다고 칭얼거릴 테니까.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미용실에서 오늘까지만 커트를 삼천 원에 해준다는 이벤트공지를 보곤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어깨에 닿아 거추장스러웠던 머리카락을 잘라 내고나니 몸이 한결 가뿐해졌다. 대기 줄이 길어 점심시간을 20분이나 초과해 들어왔지만 추궁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내가 없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퇴근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나타난 가디언의 한 마디가 더없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머리 잘랐네요?”

 

 

저녁으로 먹은 라면이 밤새 부대끼더니 탈이 났다. 명치가 꽉 막혀 식은땀이 나고 메스껍다. 온종일 변기통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해야 했다. 아침에 데리러 온 가디언은 내 꼴을 보고 경악한다.

어디 아파요?”

출근 못할 것 같아요

병원 안 가도 되겠어요?”

그냥 하루 누워있으면 돼요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병원가시죠

괜찮아요 전 좀 누우러갈게요

내 손에 의해 재빨리 닫히던 문이 거친 소리와 함께 한 뼘 정도의 틈을 남겨두고 제지되었다. 손등에 핏줄까지 세우며 문을 잡아챈 가디언 때문이다. 얇은 눈 사이로 새어나오는 눈빛이 섬뜩해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런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는 이내 씩 웃어 보인다.

그럼 근무일지에 아파서 하루 쉬셨다고 쓸 테니까 혹시 기관에서 전화 오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가디언은 늘 그렇듯 허리를 숙인다. 문고리를 잡은 채.

전기장판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데 문자가 왔다. 엄마려니 하고 본 화면엔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었다. 몸조리 잘해요. 순간 손가락에 힘이 풀린다. 누구지? 스토커인가? 아프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휴대폰을 바닥에 그대로 눕혀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침이 뭉텅이로 목을 타고 넘어간다. 한참의 연결음 끝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누구신데 저한테 문자를

너지? 너 맞지?”

? , 저 가디언입니다

?”

가디언이요 아침에 너무 안 좋아 보이셔서 걱정했어요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온 몸의 근육이 다 풀어진 느낌이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데요?”

신청자 정보에서 봤습니다 많이 놀라셨나요?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 됐어요 끊을게요

잠시만요! 몸은 좀 어떠세요? 나아지셨어요?”

네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다행이네요 보니까 우리 동갑이던데 보호기간 끝나도 친하게 지내요

지금 친구타령이나것보다, 이런 식으로 따로 연락해도 되는 거예요?”

?”

규정위반 아니냐고요

그렇긴 한데

앞으로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의 오지랖과 경솔함을 욕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 것 같다. 띵동. 적막한 공기 속 초인종소리가 유난히 야단스럽다. 마지못해 일어나 문을 연다. 사람은 없고 포장된 죽이 문고리에 걸려있다. 소름. 이중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내동댕이쳐져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가장 위에 있는 발신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태연한 목소리. 화가 치민다.

당신이 죽 놓고 갔어요?”

네 제일 비싼 죽으로 샀어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고객서비스 차원이죠 다른 분들은 챙겨주면 좋아하던데요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했죠?”

? 아니 아까부터 말씀이 너무 심하

필요 없다고 글쎄!”

 

 

오전 아홉시 정각이 되자마자 기관에 연락해 보호신청을 취소했다. 이튿날부터 정상처리될 거라는 여자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무료한 하루를 보냈다. 퇴근카드를 찍고 정문으로 나가자 삐딱하게 서있는 가디언이 보인다.

아침에 왜 혼자 갔어요? 죽도 그대로 있던데

내가 자신을 피하기 위해 일찍 출근했다는 사실이 거북한 모양새다.

이제 올 필요 없어요. 가디언신청 취소했으니까

죽 갔다 줬다고 이러는 거예요 지금?”

그는 실소를 터뜨린다. 가득서린 빈정거림을 느낄 수 있다.

내일부터라고 했는데 그냥 지금부터 하죠 저 혼자 알아서 갈 테니까 그쪽도 갈길 가세요

중간에 취소하면 내 실적평가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아요?”

내 알 바 아니잖아요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이상한여자네

이상한 여자?”

어찌됐든 나는 오늘까지 근무해야 하니까 혼자 가든 말든 맘대로 하세요 나도 나 알아서 일 할 테니까

그러든가요

드디어 해결됐다는 산뜻함에 서둘러 발길을 옮겼지만 가벼움의 시간은 짧디 짧았다. 숨이 죄어온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알 수 있다. 집이 달라졌다. 신발을 벗고 장판에 발을 디딜 때마다 나만이 느낄 수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모든 체취가 변질됐다. 가시 돋친 신경이 위험을 감지한다. 창문을 연다. 명멸하는 불빛과 불법유턴을 하는 자동차 브레이크소리가 밀고 들어온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전봇대가로등 밑이다. 그가 다 핀 담배꽁초를 신발밑창으로 비벼 끄고 창문을 올려다본다. 주저앉아 몸을 숨긴다. 심장이 미친 듯 날뛴다. 내가 고양이밥 주는 것도 이렇게 감시해서 알아 낸 건가? 매일 밤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기어올라 다시 밖을 내다본다. 그가 발걸음을 돌린다. 지금이 기회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 지금은 잔소리를 들을 만큼 차분하지 못하다. 거절. 방으로 달려간다. 순간 짜릿한 탄식이 새어나온다. 속옷이 없어졌다. 레이스달린 속옷. 내 이럴 줄 알았지. 다시 한 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붉은 액체가 튀어 오른다. 코끝으로 알싸한 비린내가 감돈다. 입 꼬리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던 옅은 신음이 비명으로 바뀐다. 나는 확신한다. 그래, 이 인간이 여태껏 날 괴롭혔던 스토커 인거야.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형사님, 어제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성이 자신을 보호하던 가디언을 집에 있던 쇠망치로 내리쳐 살해한 사건입니다. 범행 장소는 피의자의 집 앞이었으며 목격한 이웃주민의 신고로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얼마 전 시행된 개인안심보호서비스의 부작용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사망원인이 뭔가요?

두개골 골절로 인한 과다출혈입니다. 뒤에서 접근해 공격했습니다. 피해자는 퇴근중이였습니다.

범행 동기는 뭔가요? 계획적인 범행인가요?

피의자는 피해자 쪽에서 먼저 죽이려고 해 방어했을 뿐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정당방위입니까?

목격자진술과 증거들을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피해자에게 수년 간 스토킹을 당했다는 진술도 있었다는데요?

사건당일 집에 있던 속옷가지들이 없어진 등의 이유로 그런 주장을 한 건 맞습니다만, 피해자의 스토킹 행적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피의자가 진술한 스토킹 정황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피의자의 주장은 매일 밤 창문 밖에서 자신을 지켜봤고, 현관문 앞까지 바래다주면서 비밀번호 봤다. 그렇게 집에 몰래 침입해 속옷을 가져갔다. 그 밖에도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인데요. 하지만 규정상 가디언은 신청자가 집에 들어가고 몇 분간 밖을 지켜야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럼 스토킹은 없었던 건가요?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입니다. 또한 속옷이 없어진 이유는 피의자의 어머니가 그날 아침 집을 방문해 청소를 하던 중 속옷이 낡아 보여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알려주기 위해 피의자 퇴근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지만 사건은 이미 벌어진 뒤였습니다.

그렇다면 피의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조만간 공식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이름>

윤 선미

 

<전자우편>

yoonstarone@gmail.com

 

 

 

 

 

 

 

 

 

 

 

 

 

 

 

 

 

 

 

 

 

 

 

 

 

 

 

 

 

  • profile
    korean 2017.02.27 22:01
    잘읽었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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