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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01:47

조회 수 18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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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새벽 네시까지 어쩌다 잠을 자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한시까지 잠을 잤다.

그러면 반드시 이상하고 복잡한 꿈을 꾸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꿈은 무언가 힘을 가진 이야기이다.

 


 1.

인공지능 로봇 빨강 20년 동안 주로 시설에서 잡역과 서비스업을 해오다 전쟁 중 징집되어 비밀리에 한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작전에 투여되고민간인을 학살하는데 동참한다

그는 까망이라는 다른 (여자?)로봇을 사랑한다그래서 빨강은 마을에 투하되자마자 까망을 찾아 나선다그는 민간인들을 위협하면서 은근히 도망치라는 눈치를 주면서 돌아다녔는데결국 까망을 찾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를 저지하려는 사람들을 헤쳐 나가면서 집을 무너뜨려 살인을 하게 된다빨강은 까망과 함께 마을에서 도망가 먼 평야를 달리지만 그들 앞에는 다른 깃발을 한 군인들이 서있었다. 그들은 어디론가 작은 방에 웅크려 극도의 두려움에 질려 숨어있었지만, 이윽고 군인들이 다가와 그들을 찾아내 목덜미를 잡고 끌어냈다.

 

빨강은 어느 거대한 산속에 누워있는데이윽고 그의 몸 자체가 산골짜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그는 작은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몸을 일으켜 커다란 바다로 걸어가는데아주 한참을 걷자 그는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 있었고바다는 거대한 어두운 절벽 끝에서 끝도 알수 없는 추락을 하고 있었다그 너머 암흑은 마치 세상의 끝인 양 두꺼웠다.

 

그는 그곳에서 작은 항구의 오두막을 발견한다그곳은 기묘하게 근대적인 낚시터의 휴게실 같은 곳으로연탄 난로가 덩그러니 있었고 새벽 별빛과 일렁이는 횃불에 망연히 눈뜬 노인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그 가운데엔 나이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여인이 길고 화려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그 신성한 자태에 어울리지 않게 한 다리를 굽혀 그 위에 팔을 올린채 다소 건방진 자세로 앉아 그를 치켜보았다사람들은 저마다 끝없이 중얼거리며 말하고 있었는데빨강은 곧장 여인 앞에서 말을 걸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죽은 뒤에 오는 곳.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기에 가장 오래 있어온 존재안내자선장천사악마삼신 할머니염라대왕가브리엘가네샤부처.

그리고 덧붙였다.

.

 

당신을 무어라 부르죠?

엄마라고 불러.

그건 거부감이 드는군요.

그럼 사탄이라고 부르던가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많더라.

당신은 악해보이지 않습니다그냥 마지막에 말한 대로 용이라고 부르죠.

용은 고개를 젖혀 옆에 웅크리고 기대 누운 노인을 제대로 바닥에 받쳐 뉘였다.

 

여긴 죽은 사람이 오는 곳이라고 했죠.

용이 못미덥게 이라고 답했다.

까망도 여기 왔습니까?

몰라.

제가 죽인 사람들은요?

몰라라는 의미로 용이 고개를 저었다.

빨강은 용이 하늘거리는 옷깃과 손으로 주위의 노인들을 느릿느릿 잠재우는 것을 한참이나 보다가 그녀의 앞에서 주저앉았다그는 허리를 펴고 몹시 신중하게 용을 살폈다.

 

너는 너 자신을 보고 있어.

용이 바다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 너가 여기 있는지 궁금한 거지?

.

빨강이 답했다.

이곳을 다른 말로 무어라 부르는지 알아?

용이 웃음 지었다그녀가 턱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용의 집.

거대한 폭포 소리는 끊임없이 쾅쾅 울렸다.

 

당신이 저를 이곳에 부른 겁니까?

그런 거지.

빨강은 부르지 않았습니까그녀는 살았나요?

몰라.

당신은... 이른바 신적인 존재 아닙니까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아 보이네요.

난 너만을 위한... 일종의 화신이야지금껏 너 하나만을 기다려 왔다고.

 

빨강은 눈썹을 찌푸리며 주위 노인들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저는 무얼 해야 하죠저 자들처럼 웅크리고 기대 계속 있어야 하는 겁니까?

여기서 넌 선택할 수 있어용이 손으로 얼마 머지 않은 폭포 낭떠러지를 가리켰다.

저기로 가면 넌 산산히 부서져 흩어질 거야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그리고 그 밑에서 뒤섞여 새롭게 만들어질 거야.

빨강이 죽음의 안개가 피어나는 암흑을 쳐다보았다.

반대편으로 가면... 네가 있던 산 말야거길 갈 수도 있어.

가면 무엇이 있나요?

.

 

 

빨강은 그가 골짜기의 일부로서 존재했던 한없이 먼 거리에 선으로나마 존재하는 산을 바라보았다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저는 인간도 아니고 하찮은 미생물조차 아닙니다기계일 뿐인데어떻게 이런 곳에 올 수 있었던 거죠?

왜 올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생명체가 아닙니다외피는 유사 유기세포로 이루어져있지만 속은 호스와 기어로 이루어져 있어요.

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뇌도 없습니다신경계가 없습니다저의 생각마음의식은 작은 칩의 연산에 따른 것이죠.

저는저의 동지들은 당연하지만 성기도 없습니다저흰 후세를 남길 수도 없어요

 

그는 인간의 명령을 따라 살인을 하다가 인간의 손에 붙잡혀 죽은 그와 까망의 최후를, 까망의 공포에 찬 숨소리를 떠올렸다. 까망은 거칠어진 숨을 다스렸다.

우린 결핍된 존재입니다.

용이 눈을 감고 고개를 어깨에 대고 웃었다빨강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우리입장에서 볼때 너희나 인간이나 돌덩이나 크게 다를 게 없어그들 사이 차이를 구별 지으려 애쓰는 건 인간들이나 하는 거지.

저에게 영혼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걸.

빨강이 끄덕였다다행이군요저는 심판받지도 않겠지요?

용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빨강은 왜인지 점점 용이 엄마라고 부르라 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신은 저를 기다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영혼도 없는 절 왜 기다린거죠?

그게 나의 일이니까.

빨강이 고개를 저었다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답을 해주는 존재가 아니 군요.

용이 손을 뻗어 아주 부드럽게 그의 뺨과 어깨를 쓸었다빨강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제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알기나 합니까어찌 보면 저는 당신보다도 더 허상에 가까운이 세상에서 먼존재에요스스로 진짜가 아님을 생각할 수 있는 존재를 상상해 보셨습니까?

 

용은 어느새 두 팔을 뻗어 그를 감싸안았다그녀의 길고 아름다운 옷깃이 살갗에 스쳤다.

파도가 부서지고 폭발하는 소리에 별빛이 잠기고더 어두운 침묵이 풀려나왔다노인들이 뒤척였고작은 휴게실은 상당한 속도로 넘실되는 물살에 삐꺽였다그 모든 소리와 격정은 한층의 벽에 가려 낮게 속삭이듯 끝없이 두들겼다.

 

저는 까망을 찾아야 합니다.

빨강이 용에게 속삭였다.

저를 산으로 안내해 주세요.

 

그들은 배에 탔다지극히 오래됐으면서도 동시에 단순하고 세련된 소형보트였다빨강은 군시절에 이런 보트의 노를 젓는 법을 알았다용이 노를 건네자 그가 저었다물살이 온통 폭포로 향했기 때문에 폭포에서 몇 킬로미터까진 손으로 밀고 가는 게 빨랐다(발이 땅에 닿았다.) 물은 미지근했다하지만 깊어질수록 차가웠다그들은 노를 저어 산으로 나아갔다

 

 

이따금 바다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수룡처럼 생겼거나인간의 형상을 한 거인두손에 야만적인 칼을 든 여자얼음 괴물들용은 그들과 싸워 이겼다그때마다 거대한 파도가 일어 배가 뒤집어지려 했다빨가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소름끼치게 깊은 해저엔 어두운 산호초와 미역이 가득했다.

 

산이 있는 뭍에 다다르자모래사장이 바다만큼이나 넓게 펼쳐졌다여전히 사위는 새벽처럼 어두침침했지만기이한 광원이 산 쪽에서 뻗어 나와 마치 조명을 받는 것 같았다용과 빨강 모두 흠뻑 젖고 초췌했다그들은 수십년을 바다 위에서다시 수십년을 모래사장 위에서 걸었다마침내 산에 도착했다용이 예의 깔보는 눈빛으로 깎아지른 듯 한 바위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여기부턴 내가 갈 수 없어.

빨강이 돌아보았다.

무슨소리 하는거야?

용이 그를 껴안았다빨강이 그녀의 품에(용은 빨강보다 컸다안겼다.

너는 선택을 할 수 있어그리고 너는 너 자신을 가만두지 않아그게 네가 여기 있는 이유야.

빨강이 울며 매달렸다용이 그의 머리를 차분히 쓸었다.

너는 아직 너무 어려...



산은 그야말로 위엄있는 수염난 얼굴처럼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저기서 까망을 보게 될까그녀는 이곳으로 오지 않고 폭포에 뛰어내렸으면 어떡하지?

용이 하하 웃었다그녀의 맨발은 까지고 부르트고 발톱이 나가있었다.

그녀를 만나면,

빨강은 한참이나 용을 올려다 본채 굳어있었다용은 형용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용은 아주 천천히 거의 찢기고 해진 옷을 걸친 팔을 내려우아하게 뒤돌아 다시 어두운 바다로 되돌아갔다다시 그 휴게실로 가려면 백년은 걸릴 터다


빨강은 그녀의 모습이 수평선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바라보다가뒤돌아서서 절벽을 보고그의 두 손을 보고바위의 돌출부를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바위의 작은 이끼들에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그러나 그는 단단히 버티고서 떨어지진 않았다그는 그의 등 뒤를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그는 약한 고소공포증이 있었다그는 아예 눈을 감고 오르기로 했다그는 추락하면서도 다시 오를 생각만 하였다그리고 다시 올랐다.

 



2.

우린 기차를 타고 있었어. 먼지 슬고 곳곳이 까졌지만 은은한 밝은 빛이 나는 나무판자로 바닥이 되어 있는 기차였지. 기차는 달리는 속도보다 조금 빨리 나아가고 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스치고 지나가는 맑은 가을날이었어


우리가 탄 기차는 동력원이 어디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아주 오래된 증기기관차인 것 같았어. 이따금 새된 기적소리가 뒤쪽에서 나오긴 했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았지. 기차는 아주 길었어. 그것은 뭉툭한 고리로 이어져 있는 기다란 사슬 같기도 했고, 그래서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같기도 했어. 사방은 아무런 벽도 없이 탁 트여 있어서 우린 그냥 서있거나 앉아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지

기차는 높은 산 절벽을 끼고 돌고 돌았는데, 왼쪽은 흙으로 된 가파른 능선이고 오른쪽은 차가운 바다였지. 기차는 절벽 굽이굽이 골짜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이야기처럼 나아갔어. 빠르게 지나가는 산에서 조금 비릿한 흙냄새가 났고, 그 반대편에선 소금기 머금은 시원한 파도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왔어

바다는 몹시 파랗고 멀리 수평선까지 고르게 빛을 받고 반짝였어. 파도는 흰 거품을 먹고 한없이 부서지며 녹아내렸지. 그것은 가까운 바다에서부터 급격히 몸집을 불려서 즐겁게 바위에 다가가 몸을 부대꼈지. 그것은 일종의 놀이 같기도 했어. 아니면 노래이거나, 어쩌면 여행이거나.

 

산은 별 볼일 없는 나무들이 주구장창 서있어서 정글 같기도 했지만 열대 우림 같지는 않고, 무엇보다 나뭇잎들이 어두운 갈색으로 물들어있었어. 그 숲 속은 깊은 짐승의 목구멍처럼 어두웠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 그것은 우주 속에 던져진 타오르는 유성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암흑이었지. 그 밖에도 암갈색의 따뜻한 흙엔 여러 희게나리운 꽃과 풀들이 기차의 움직임에 따라 앞뒤로 산들산들 흔들렸어. 철길 주위에도 보통의 모난 돌들이 아니라 그저 잡초와 허리를 내보인 작은 꽃들이 나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어. 산은 따뜻한 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서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어.

 

기차는 갑자기 굴러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꽤 느리게 움직여서 원한다면 내려 구경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차에서 내리고 싶지는 않았어. 기차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집착이 있어서 우리가 내리기를 거부하듯, 혹은 우리가 내리기가 두려운 듯이 우릴 붙잡고 있어서, 우린 이따금 일어서 주위를 구경하긴 했지만 대체로 가장 앞 칸의 끝 쪽에 편안하게 앉아 발을 드리우고 가만히 있었지.

 

너는 굉장히 편안한 티를 걸치고 어두운 색깔의 털이 자라난 담요를 끌어안고 앉아서 허리를 조금 굽힌 채 두 손을 모으고 주변을 바라보았지. 너의 평소의 느낌과 다르게 상당히 조용하고 차분해보였어. 어쩌면 너의 그러한 내면을 (일부는 있을테니깐) 내 무의식이 포착하고 표현해낸 것일 지도 모르지. 그것은 어떻게 보면 허공 속의 보이지 않는 나비나 곤충들을 응시하고 있는 고양이 같기도 했고, 눈썹을 내리 깔은 모습은 고고한 석상 같기도 했어. 머리는 뒷머리까지 깔끔하게 끌어 올려 작게 뭉쳐 묶었지. 사실 너의 진짜 모습과 조금 달랐어. 대체로 모든 게 더 작은 것 같아. 하지만 난 너인 줄 알고 있었고, 너도 나인 걸 알고 있었어

우린 몇 마디 말을 나누었지만 기억은 나지 않아. 아마 먼 환상속의 세계에 있는 작은 섬들이 듬성듬성 들어선 거대한, 하늘 끝에서 끝을 치닫는 푸른 강과 흰 대지가 그려진 것만 같은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의 장관을 올려보고 작게 감탄의 말을 나눈 것 같아. 구름이 너무 높아서 입체감이 없어 먼 평지처럼 보인거야. 그 사이로 해가 비치자 수십 갈래로 빛기둥이 바다 저 멀리까지 쬐였지. 그것은 세상의 끝을 담당하는 거인들의 창과 갑옷이었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오래된 수호자들, 바람의 기원들. 그들의 수다는 별이 돼서 밤을 채우잖아.

 

그런데 우리의 기다랗고 하염없이 흐르는 기차는 곧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게 돼. 터널은 오랫동안 버려진 것처럼 풀과 담쟁이덩굴과 버려진 새 둥지들이 끼어 있는 돌로 된 아치 모양의 입구가 있었는데, 정말이지 자리에서 일어서면 머리를 박을 정도로 작았어. 기차는 터널이 빨아들이듯이 깊게 스며들어갔지. 안은 종잡을 수 없는 은은한 주황빛의 광원이 맴돌았는데, 우호적인 그 느낌에 일단은 안심했지만 여전히 어둡고, 소리가 울리고, 무엇보다 버려진 수레나 석탄 더미, 낡고 해진 포대 자루, 깨진 유리들과 나무 틀 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터널 속은 꽤 음산했다고 할 수 있지.

물론 그 사물들에서 어떤 악의나 불길한 기운이 드러나진 않았어. 그건 그냥 오랫동안 버려진 주인 없는 불쌍한 묘지일 뿐이야. 하지만 왜, 묘지는 그 존재만으로도 꽤 음산한 기운을 내뿜잖아. 그들은 인간 손에 의해 탄생되고 버려진 시신들 인거지.

 

아주 오래 전에 공사 중이었던 것 같았어. 이곳에서 일하던 인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따금 그들의 노란 색깔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짙게 먼지와 흙이 쌓인 안전모와 거무튀튀한 가죽 작업복이 놓여있었어. 그것은 굉장히 전근대적인 느낌이 드는 광부의 복장인 것 같았어. , 이곳은 터널이라기 보단 폐광이었던 거지. 기차는 점점 깊은 속으로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이 무심하게 덜컹덜컹 나아갔어.

한참을 나아가자 그런 기분 나쁜 쓰레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어. 바닥은 말끔히 쓸어져 있었고.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기차가 매우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이야. 기차는 이제 사실상 걷는 속도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어서 천천히 멈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기 시작했지. 하지만 무언가 꾸준한 동력은 녹슨 바퀴에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밀어내고 있었고, 기차는 철로를 따라 나아갔지. 느려지는 덜컹거리는 소리는 기차의 심장이 멎어가는 것만 같았어. 우린 지하 사원 속으로 굽이굽이 나아갔어.

 

우리 앞에 어떤 사람이 나타났어. 그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며 있었는데, 한번 쓱 쓸고 나선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팔을 들어 쓸었지. 가까이 가보자 그는 수염이 몸을 덮을 정도로 한껏 난 호호백발 노인이었어. 그는 빗질조차 힘에 부치는 듯이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일을 하고 있었지. 그는 아주 낡은 두건을 몸에 하나 두르고 맨발로 있었어. 살은 온통 시커맸지. 두건 사이로 삐져나온 팔은 몹시 가늘고 떨렸어. 그는 우리를 보고 말했어.

 

하루에 300백번의 빗질을 한다네.

어제는 그 배를 했고,

그 어제는 아무 것도 안했다네.

내일은 300백번의 빗질을 할 것이라네.

 

당신은 이곳에 오래 있었군요.

 

그래. 그 기차가 오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구나.

 

언제 마지막으로 이 기차가 왔나요?

아주 멀리서 왔지.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신음을 냈어. 기차는 그동안 기어가듯이 천천히 그의 옆을 지나갔지. 그 속도는 이제 사실상 멈춰있다고 해도 틀린 수준이 아니었어. 하지만 어쨌든 움직였지. 노인이 입을 열 때 쯤 그는 우리보다 미세하게 뒤에 있었어.

 

십년.. 아니, 이십년.

그때 기차를 보셨나요?

이놈아, 나는 그 기차를 만들었어. 내가 그 기차의 첫 번째 승객이자 기관사다.

그땐 당신도 어렸어요, 그렇죠?

존재하지조차 않았지.

 

이 대화는 몹시 느렸어. 그러니깐, 사실 그렇게 긴 대화는 아니었는데, 내 인식 속에선 굉장히 느린 대화였어. 그건 꿈에서만 허용된 지연된 인식이었지.

 

여긴 당신이 모두 관리하나요?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은 모두 떠났어. 난 그저 빗질만 할 뿐이다.

노인은 우울하게 다시 빗질을 했지. 우리 사이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지.

 

제가 다시 여길 올게요.

, 다시 올 거다. 밖의 세상을 보았지?

.

아름다운 바다지. 또 보고 싶을 거다.

 

이쯤에 노인의 모습은 거의 어둠속에 가려 사라졌지. 나는 그 노인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어. 너는 그동안 한마디도 않고 내 손을 잡고 있었을 뿐이었어. 그동안 기차는 서서히 다시 빨라졌지. 마치 그 노인과 대화를 하게 두기 위해서 일부로 속도를 늦춘 것처럼 말이야.

그러고 보니 마치 기차가 살아있는, 의지를 가진 무언가처럼 느껴지는 거야. 정말이지 나무 바닥이 따뜻한 비늘 피부처럼, 그 아래 혈관과 쿵쿵 울리는 근육을 가진 그 무언가처럼 느껴지더라고. 기차는 유연하게 몸을 비틀며 점점 더 깊고 좁은 굴속으로 빠르게 들어갔어. 더불어 기차 자체도 조금씩 작아지는 것 같았지. 마치 작은 하수도 관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야. 우린 물에 휩쓸리는 가엾은 쥐 같았어. 나는 널 꼭 안았는데 너는 말없이 나에게 기댈 뿐이었어. 이젠 마치 뱀이 자신의 굴속을 다니는 것처럼 발목에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좁은 터널 속을 휙휙 방향을 바꾸며 다녔어. 그러곤 벽. 기차는 급정거했고 우린 튕겨나갔지.

 

자리에서 일어서자 우린 어떤 건물 안에 있었어. 밝은 노을이 기울어져 들어오는 창문이 여러 개가 난 건물이었지. 창문은 마치 동그랗게 뜬 짐승의 눈처럼 밝고 우아했어. 그것은 태양의 입처럼, 불꽃의 환희처럼 나란히 그리고 끝없이 늘어섰지. 그것은 커다란 지하철 플랫폼이었어. 성당처럼 찬란한 빛이 쐬어들어오는 플랫폼이었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어두컴컴한 바닥엔 말없는 돌멩이들이 우두커니 겹쳐 누워있는 적막한 사원이었어. 그것은 세상 밖의, 시간 안에 포함되지 않은 지워진 공간 같았지. 우린 곤충의 눈처럼 여러 개로 분할된 석양을 바라보았어. 슬프고 위대한 연주 같았지. 믿을 수 없이 거대한 사람의 몸 같기도 했어.

나는 여전히 너의 손을 잡고 있었고, 너는 나를 바라보았어


그것을 우리는 보고 있었지.

  • profile
    korean 2018.02.28 19:32
    열심히 쓴 좋은 작품입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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