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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죽지 않는다

 

1화


나는 다이아몬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온 몸이 다이아몬드로 변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힘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나를 배었을 때 하도 약을 해대서 그런 거 같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약은 자신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산 것이니 내 다이아몬드의 소유권 또한 마땅히 당신에게 있다고 했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에게도 나에게도 아직 준비가 안되었을 뿐이었다.

우리 가족이래 봤자 나와 아버지 단 둘이었지만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 만으로 먹고 살기엔 빠듯했었다. 아버지는 저녁 6시가 지나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술집 지하의 도박장으로 향하곤 했다. 거기서 따온 돈으로 우리 집은 살아남았다. 아버지는 돈을 가져다 줄 때마다 많이 먹고 최대한 움직이지 말아서 빨리 뚱뚱해지라고 했었다. 하지만 잃는 날이 따는 날 보다 많으니 나도 해 뜰 동안 이것 저것 달려들지 않으면 하루 두 끼 챙기기도 힘들던 시절이다. 심지어 딴 돈에서 복권값과 술값을 제한 것이 내 몫이었으니 그걸론 개 사료만 먹고 산대도 몸집 불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도 어서 성인의 덩치가 된 나를 팔아버리고 싶었을 텐데 왜 쓸데 없는 곳에 낭비했는지 모르겠다. 100kg짜리 다이아몬드! 그만한 양이면 대충 몇 캐럿 정도 나오려나?

어쨌든 도박은 좋은 수입원이 아니었다. 나 또한 도박이 싫었다.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도 원인 중 한가지였지만, 가장 먼저 크게 잃은 날의 아버지 발자국 소리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잃은 날은 그래도 조용히 지나갔는데, 복도에서 소주병 깨지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날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날은 미리 알 수 있었다. 도박판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미리 연락을 주곤 했으니까. 걷어 채인 문 손잡이가 현관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일단 내 방으로 밀고 들어온 뒤 자던 말던 침대 위에 집에 던져선 불을 끄고 당신의 벨트로 채찍질을 했었다. 도망치는 건 의미 없었다. 그저 맞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었다. 철이 없을 땐 침대 밑에 숨어있기도 했지만 나중엔 그러지 않았다. 덩치가 커져서 들어가기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발목을 붙잡힌 채 끌려 나오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침대 밑 나무 바닥엔 내 것이 아닌 붉은 손톱자국이 있었다. 처음엔 피가 묻는 건 줄 알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창녀들이 쓰는 새빨간 매니큐어가 아닌 가 싶다.

왜 불을 껐던 걸까? 코카인 배달원인 정육점 외팔이 말로는 난 때려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다이아몬드로 바꾸면 벨트가 몸에 닿는 진동만으로 타이밍을 캐치해야 한다. 그 순간에 적절한 곡조의 비명을 터뜨리는 게 내 일이었다. 너무 태연하게 안 아픈 걸 티 내면 그의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 대가는 깨진 장롱이나 뜯겨나간 문고리로 돌아왔다. 다이아몬드 등짝에 소주병이 깨지는 건 아프지 않았지만 수리 대금으로 바닥난 생활비가 나를 굶기는 건 참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과한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화를 돋우었다. 다행히 어떤 비명소리가 가 가장 적절한 지 배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밤에 뜬 눈으로 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정말 다양한 상황에 대한 다양한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애원하는 여자, 엄마를 부르는 어린아이, 때때로 총성 섞인 남자의 단말마까지. 하지만 그 역시 바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때려도 다음 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꼴을 보면 다이아몬드는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는 늘 불을 껐다. 그러니 나는 불을 끄는 진짜 이유를 안다. 그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내심 내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외팔이는 헛소리라며 비웃었지만 언젠간 증명해 보이고 말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었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니 난 이 집에 남아있는다. 그렇게 되뇌었었다.

아버지가 가끔 집에서 술을 마시는 날엔 나를 붙들어놓고 내가 몇 살이 되면 팔 거라 소리를 수십 수백 번 반복했었다. 보통 이른 시간에 큰 돈을 따서 기분이 좋아진 날에 피자를 한판 사 들고 와서 시작했는데 매년 단위가 10kg씩 늘어났었다. 10살 전까지만 해도 내 체중이 40kg만 나오면 팔아버릴 거라며 호언장담 했었지만 곧 100kg쯤이야 햄버거만 좀 먹으면 거뜬하다며 아직 기다릴 수 있다고 떠들어댔었다. 어리석은 사람. 굳이 날 팔지 않아도 충분히 다이아몬드를 쥐어짤 방법이 있는데. 외팔이랑 실험했던 건데, 머리카락을 무스로 바짝 올린 뒤 다이아몬드로 변화시키고 나서 전동 드릴 같은 걸로 떼어내면 꽤 알이 굵은 걸 얻을 수 있었다. 함부로 팔았다가 내 능력을 눈치 채는 자가 늘어나면 여러모로 위험해지니까 장물아비를 찾는 건 그만 뒀었지만 아버지라면 어찌 어찌 방법을 찾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었다. 그러니 십중팔구 그는 끝내 그 간단한 수법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하긴 그 정도로 뇌를 술에 절어놓았다면 전화기와 냄비를 구분하는 것만도 벅찬 일이지. 어쩌면 최후까지 내 정체를 까발리지 않은 것 역시 기억을 못해서 그런 거였을 수도 있다.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마 도박판에서 같이 노는 치들도 비슷한 수준 들이었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자주 딸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다 계산된 거라니까?” 외팔이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내가 봐서 아는데, 너희 아저씨가 절대 멍청한 사람은 아니야. 얼마나 사기를 잘 치는 줄 아냐? 안 본 사람이면 소매 속에 카드가 몇 장이나 들어갈 수 있을 지 상상조차 못 할 걸. 그러니까 널 때릴 때 불을 끄는 건 안 다치는 꼴 보기가 징그러워서 그러는 거고 머리카락 작전을 쓰지 않는 건 입 무거운 매매자를 못 찾아서 그런 거야. 작은 거 여러 번으로 위험을 키우느니 크게 한 탕하고 이 곳을 뜰 생각인 거지.” 틀림없이 나를 데려 갈 거야. 내가 도망 친 뒤 합류하면 몇 번이고 날 팔 수 있는 거지. “,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넌 다이아몬드야. 그가 네 아버지던 할애비던 사람은 다이아몬드를 사랑할 수 없어!” ? “상품성이 너무 높거든! 가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사랑 받지 못해. 10년 쓴 전축은 고장 나도 못 버리지만 스마트폰은 일주일 지나면 침대 위에 던지는 게 인간이지. 알겠어? 넌 사랑 받기엔 너무 비싸. 네가 다이아몬드인 이상은 영원히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어.” 난 죽지 않아. 언젠간 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이해를 못하는 구나. 네가 죽지 않기 때문에 사랑 받지 못하는 거야. 다이아몬드는 죽지 않아. 넌 사랑 받지 못해.”

아직도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척이나 감명 깊게 들려서 아직까지 그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화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다. 그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원인은 지금도 모른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일이 그토록 커지진 않았을 텐데, 하필 아버지가 불을 끄고 혁대를 휘두른 뒤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변신이 되질 않았다. 그 날은 다이아몬드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2

 

병원에서 눈을 뜨니 바로 옆에 경위님이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 인근에서 알아주는 부패 경찰로, 거의 모든 마피아로부터 뒷돈을 받고 있는 뒤쪽 세계의 권력자였다. 그는 나에게 무척 잘 해줬었다. 내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능력을 아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나를 잡아 가둬두려는 자와 최대한 잘 보이려는 자. 전자는 모조리 경위님 손에 죽임 당했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힘은 대단했다. 그에게 거스르면 아무리 아버지라도 나를 지켜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에겐 기껏 다이아몬드로 변신하는 능력보단 그가 가진 힘이 훨씬 탐나고 굉장해 보였다. 아마 그 병원도 그의 그늘 안에 있었을 것이다. 잠에서 깨고도 한참 머리가 멍 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간신히 이불의 심벌을 보고는 집에서 멀지 않은 시설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정신이 들었군.” 그가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마취가 덜 풀렸는지 의도하지 않았던 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갔다. 경위님은 단념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넌 네 방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등이 피투성이였어. 아동복지센터에서 사람이 나왔길래 돌려보냈다. 너에 대해 모르는 녀석들과 머리를 맞대봐야 시간만 낭비할 뿐이지. 인질이지? 누군가 인질을 붙잡고 너더러 변신하지 못하게 막았던 거야. 그렇지?”

난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당장 그 자리에서 앞니가 부러졌을 것이다.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없었나요?”

경위님께서는 담배에 불을 붙이셨다. 연기가 천장에 닿으면 벨 소리가 나면서 물이 쏟아진다고 영화에서 봤었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천장도 경위님이 무서웠나 보다.

네 아버지는 죽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그가 농담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확한 정보원에게서 얻은 소식이다. 어젯밤 지하 도박판에서 큰 돈이 오갔는데 사실 그게 다른 지역 카르텔과의 돈세탁이 연관된 민감한 자리였다더구나. 네 아버진 거기서 탈탈 털렸고 판돈을 빌려주었던 자들은 그 상황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꽤 거칠게 협박했던 것 같다. 시신 옆엔 농약이 있었고 우린 조사를 위해 너희 집으로 들어갔다가 쓰러진 널 발견했던 거야. 집 문은 잠겨있었다. 네 아버지가 집 문짝을 발로 차는 소리를 이웃집이 들은 시간과 시신이 발견된 시간 사이엔 3 시간의 간격이 있어. 아는 대로 말해다오. 누가 널 때렸지? 아버지인가? 그 뒤엔 무슨 일이 있었나. 특별한 얘기는 없었고?”

난 여간 해선 거짓말을 하지 않았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뭔가를 앞뒤가 들어맞게 꾸며내는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외팔이가 잘 했다. 그래서 난 웬만하면 다 사실대로 털어놓곤 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경위님이 날 경계하지 않았던 걸 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날은 너무나 충격이 심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느라 능력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미처 꺼내지 못했다. 나도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꽤나 뜬금없는 말부터 꺼냈었다.

협박 때문이 아닐 거에요.” 고개까지 저으면서 말했었다. 분명히 기억난다. “절 때렸다는 사실이, 절 상처 입혔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게 분명해요. 아버지는 빚이나 위협 같은 걸로 목숨이 끊을 사람이 아니에요. 제 목숨을 인질로 잡은 자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전 다이아몬드잖아요. 다이아몬드는 죽지 않아요. 아버진 저를 걱정해서 죽진 않을 거에요. 그러니 틀림없어요. 제가 당신 때문에 다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유서를 찾아보세요. 제게 남긴 편지 같은 게 있을 테죠. 그래, 맞아요. 아버지는 그럴 사람이에요. 나는 믿어요.”

경위님이 길게 한숨을 쉬셨다. 담배 연기가 거칠게 흔들리다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폐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좋아, 취조는 나중에 하자. 경찰서에서 하든 우리 집에서 하든.”

우리 집? 경위님이 두 손으로 자기 무릎을 찰싹 내리쳤다.

, 나와 같이 살지 않을래?”

?”

너 이제 보호자가 없잖냐. 어차피 법적 보호자는 아니었지만, 나랑 같이 살면 앞으로 먹고 살 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허락 없이 변신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지킨다면 학교도 보내주고 네 방도 마련해주마. 어떠냐? 너도 좋지?”

아아악! 그 순간,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 그만! 멈춰주세요! 변신이, 변신이 안 되요! 아파요, 진짜 아파요! 아뇨, 엄살이 아니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 보세요!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으아, 그만! 그만! 엄마, 엄마아!

생각해볼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경위님께서 몰래 미소를 지으셨다. 들키지 않기 위해 담배를 빼무는 척 입을 가리면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지금은 정신이 없겠지. 병실 밖에 믿을 만한 놈들을 세워두마.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라. 특히 의사가 뭐 하려고 하면 무조건 싫다고 하고 나부터 불러. 실수로라도 변신하는 일은 없도록 해라. 무슨 뜻인지 알 테지?”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를 일어났었다. 경위님의 발 소리가 멀어지길 기다렸다가 나는 병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나뭇가지에 팔이 스치면서 옷이 찢어졌다. 찢어진 틈으로 피가 스며 나왔다. 보통은 통증을 느끼면 몸이 반사적으로 변한다.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의사들이 링거 바늘을 꽂았더라면 들켰을 것이다. 아마 그 점은 경위님이 손을 써놨을 테지. 그리고 그 덕에 능력이 사라진 걸 숨길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에게 그 점을 실수로라도 말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복잡한 일에 얽매일 겨를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집에 가야만 했다. 그곳에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테니까.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을 테니까.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새벽의 거리를 달리면서 잊었던 희열을 떠올렸다. 찬 공기가 뜨거운 가슴 속에 밀어 들면서 잠든 뇌를 깨워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흐르는 땀이 등에 난 상처에 닿았지만 그 정도 아픔에 멈출 때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나는 사랑 받았다! 그 일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선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다. 병실을 탈출한 걸 들키면 경위님이 어떻게 나올지 일말의 걱정도 않고 있었다. 그 땐 모든 것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마치 용암 속에 던져진 다이아몬드 같았다.

 

3

 

병원에서 입혀놓은 환복은 거리를 돌아다니기에 좋지 않다는 걸 집에 도착해서야 떠올렸었다. 그렇다고 딱히 갈아입을 만한 옷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옷이라곤 꼴랑 세 벌이었는데 한 벌은 병원에 있었을 테고 한 벌은 말리는 중이었다. 마지막 한 벌은 보통 전당포에 있었다. 그래서 외출할 일이 없을 땐 아버지 옷을 입고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 날도 그렇게 했었다. 긴 바짓단과 소매를 접어서 청색 테이프로 붙여 고정했었다.

역시나 집은 비어있었다. 폴리스 라인은 없었다. 적어도 자살한 장소가 집 안은 아니었나 보네, 라고 생각했었다. 경찰들이 뒤진 흔적은 있었지만 형식적인 조사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비상금을 숨겨놓는 장소와 냉장고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경위님의 부하 중에 도넛에 환장한 뚱보가 하나 있었다. 그 자가 냉장고에 있는 식은 피자를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었다. 한 조각 떼어다가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내 방에 먼저 들어갔다. 바닥에 흙 묻은 발자국이 가득했다. 난 언제나 집 안에서 신발을 벗고 있었다. 아버지의 것이 아닌 신발 자국이 있다면 누가 침입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한번 다치거나 몸이 상하면 병원 신세를 지어야 하고 병원에선 내 능력을 들키기 쉽기 때문에 언제나 무좀이나 자잘한 질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충치 걱정은 없었다. 밥 먹을 땐 언제나 이를 다이아몬드로 바꾸어놓곤 했으니. 그래도 하루 세 번 양치는 여전히 빼먹지 않는다. 썩는 건 싫다. 아픈데다가 치료비는 어마어마하며 무엇보다 당시엔 아버지와 같은 이를 갖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었다. 누렇고 검게 물든 이빨은 어떤 미소도 불쾌하게 만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진리 중의 진리다.

이불보는 경찰들이 가져갔었지만 침대 시트에 내 피가 살짝 베어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침대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졌지만 가래침 냄새가 나는 담배 꽁초를 하나 발견했을 뿐이었다. 장롱을 넘어뜨려 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아버지가 유서를 숨겼다면 내 방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 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계단이 견딘 하중은 이례 없던 것이었는지 나무 판자에서 이 가는 소리가 났다.

전자레인지에서 피자를 꺼내 먹으면서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문 지방 위에 올리브를 흘렸다. 주워먹으려다가 어차피 흙 자국을 치워야 할 게 떠올라서 그냥 지나쳤다. 아버지 방 역시 거의 뒤진 흔적이 없었다. 경찰들이 유서를 못 찾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난 찾을 것이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유서를 내가 못 찾을 리가 없었으니까. 제일 의심되는 곳은 역시 형광등 위쪽이었다. 가장 밝지만 가장 어두워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곳.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를 끌어다 올라가 형광등 위쪽을 훑었다. 손이 다이아몬드로 변하지 않으니 뜨거운 틈새에 손을 고스란히 집어넣는 수 밖에 없었다. 견딜 수 있었다.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정말로 경찰들이 들어오긴 한 걸까? 경찰들이 한 일은 거의 없는데 난 병원으로 옮겨졌었다. 경찰이 아니라 구급차 이송요원들이 온 게 아닐까? 경위님이 뭔가 말해주지 않은 게 있나?

순간, 나무 의자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 놈의 집구석은 사람이고 사물이고 안 썩은 게 없어! 어찌 할 틈도 없이 뒤로 나자빠지면서 반사적으로 붙잡은 형광등이 와장창 뜯어져 나왔다. 깨진 형광등 조각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유리 조각이 사방에 떨어져 하마터면 두 눈을 실명할 뻔 했다.

헌데 뭔가 다른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깨진 형광등 조각과 함께 유리나 다이아몬드가 아닌 것이 나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광등 위쪽에 숨겨져 있던 것은 유서가 아니라 작은 플라스틱 병과 주사기, 그리고 음료수 뚜껑 몇 조각이었다. 플라스틱 병엔 눈에 X 표시가 된 쥐와 함께 알 수 없는 성분명이 가득 쓰여져 있었다. 주사기는 한번 쓰인 것이었는지 안 쪽에 불쾌한 노란 빛 액체가 묻어있었다. 음독 자살이라는 게 혈관 주사가 필요한 거였나? 그럼 음료수 뚜껑은 왜 필요하지?

순간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앵앵앵앵! 앵앵앵앵! 높고 날카로운 구식 벨 소리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내 등골을 힘차게 걷어 찼다. 두 손에 몰려있던 피가 머리로 쏠렸다. 받아야 한다는 생각과 경위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열차게 충돌했다. 뒤늦게 거실 전화기로 향했지만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벨 소리가 끊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앵앵앵앵! 이런 젠장! 누군지 몰라도 무척이나 급했던 모양이다. 이번엔 제때 받았다.

여보세요?”

통화할 땐 내 소개를 먼저 해야 한다고 배웠었다. 하지만 외팔이는 예의 차릴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나야, ! , 맙소사. 집에 있었구나! 다행이다! 지금 통화 되냐? 나 지금 네 도움이 절실해. 지금 당장 우리 가게로 와 줄 수 있어? 아니다, 내가 거기로 갈게! 집에 아버지 안 계시지?”

무슨 일인데?”

먹다 남은 피자를 어디에 뒀었는지 까먹었다. 손에 묻은 기름기를 소파에 문질러 닦았다.

내가 경위 새끼에게 전달한 정보가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어. 빌어먹을, 내가 왜 그런 실수를! 워낙 중요한 얘기라 아마 지금쯤 꼭지가 180도로 돌아있을 거야. 그러니 당분간 여길 떠나있어야겠어. 지금 수중에 돈이 없어서 네 다이아몬드가 필요해. 혹시 따로 떼어둔 거 있어?”

, 아니.”

상관 없어. 무스랑 전동 드릴은 내가 준비할게. 지금 그리로 가겠어. 아버지 걱정은 마. 내가 아는 대로라면 당분간은 집에 못 돌아올……”

나 지금 변신 안돼.”

그에겐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늘 진실만 말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게 그와 마지막 대화라면 나쁜 기억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채찍질이 그와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하루에 두 명을 잃고 한 밤에 두 번의 악몽을 꾸고 싶진 않았다.

그게 뭔 소리야?”

외팔이의 목소리가 매우 험악해졌었다.

말 그대로야. 어제 밤부터 변신이 안돼. 그래서 크게 다치는 바람에 방금 전 까지 병원에 있었어. 지금은 널 못 도와줘. 어디서 이 얘긴 하지 마. 지금은 너 밖에 모르는 사실이니까.”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리곤,

쓰레기 새끼.”

! 고막을 찢을 거 같은 고음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소파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양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피곤했다. 자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뭐부터 해야 하지? 아 맞다, 유서. 유서를 찾아야지. 아니, 도망가야하나? 병원을 떠난 지 시간이 꽤 지났다. 경위님이 눈치 채기 전에 외팔이에게 데려가 달라고 하는 게 좋을까? 그래, 어쨌든 그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방금 통화론 부족했다. 뭔가, 뭔가 더 해야 할 얘기가……

앵앵앵앵! 집에 이렇게 여러 번 전화가 온 건 처음이었다.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켰다. 옆 집이 깰 지도 몰랐다. 전화를 받았다. 경위님이었다.

통 받질 않더구나. 방금은 누구랑 통화 한 거지?”

그의 목소리는 한 없이 차분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와 아닐 때를 쉽게 알 수 있었었다. 적어도 그 날까진 그랬다. 하지만 그 통화에선 아무리 바보라도 분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훨씬 무서웠다. 난 겁이 났다.

, 외팔이었어요. 전화 못 받아서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용서해주세요.”

휘유우우우. 한숨 소린지 담배 연기를 내 뿜는 소린지 알 수 없었다. 금속 수화기가 차갑게 귓불을 얼렸다.

그래, 그럼 이미 알고 있겠구나. 하지만 녀석이 뭐라고 지껄였든 내가 널 속인 건 아니다. 처음부터 놈의 정보가 잘못 되어 있던 거야. 그러니 모든 건 해피엔딩이다. 네 아버지는 멀쩡하고 죽은 건 생판 다른 사람이니까. 그 자가 어디서 농약을 구한 건지, 왜 오렌지 주스 병에 따라 먹은 건진 내 알 바 아니지만 너만 무사하다면 나야 더 바랄 게 없겠구나.”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순간엔 오직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것만이 나를 살렸다.

하지만 난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 다는 걸 아주 싫어한단다.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예정했던 것과 일이 다르게 돌아가는 걸 얼마나 혐오스러워하는지. 물론 네 아버지가 건사한 게 불만이라는 매정한 말을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당장에라도 설명을 듣고 싶은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세상에 얘야. 나 몰라 창문으로 빠져나가다니. 문을 지키던 녀석들 체면은 뭐가 되겠니? 넌 오늘 밤에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거야. 그러면 안되지. 그래선 안 된단다. 특히나 내가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땐……”

휴우우우. 담배 소리가 맞는 거 같다. 식은 땀이 흘렀다.

되도록 빨리 만났으면 좋겠구나. 경찰서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나자. 연락을 기다리마. 하지만 유예가 너무 길어져선 안될 거다. 네가 다이아몬드라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말거라. 그 점을 늘 기억하거라. 넌 외팔이보단 영리한 아이일 거라고 믿으마.”

딸깍. 수화기를 전기 의자 버튼 누르듯이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수화기를 잡은 채 얼굴을 소파 틈새에 파묻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다는 걸 알기에 중얼거렸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 이런 건 원하지 않았어.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아버지도……”

그때 떠오른 생각은 지금도 치가 떨린다. 아버지 방으로 달려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올리브. 깨진 형광들과 그 주위에 굴러다니는 농약병과 주사기. 이 새벽에 새 형광들을 파는 곳이 있을까? 다시 형광등 위에 올려두면 눈치 채지 못하겠지? 병에 있던 내용물이 흐르거나 하진 않았을까? , 변신이 안 된다는 얘길 해야 하나?

서둘러 바닥을 쓸고 농약병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형광등을 파는 곳이 없다면 빈 집에 숨어들어가 비슷하게 생긴 걸 훔쳐오기라도 할 계획이었다. 방을 대충 정리한 뒤 돈을 가지러 내 방으로 뛰어갔다. 서랍에서 돈지갑을 꺼내는데, 그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늦어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경위님과 외팔이를 원망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냅다 창문을 뛰어 넘어 비상 계단을 통해 집 밖으로 달아났다.

얼마나 달렸는지 몰랐다. 등 뒤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달음박질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오래 뛴 것 같은데 여전히 우리 동네였다. 내가 평생을 살게 될 동네.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나의 도시.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디론가 달아나야 했다. 아버지도 경위님도 따라오지 못할 아주 먼 곳으로. 하지만 걸어서 갈 순 없었다. 세상은 넓으나 나는 작고 느렸으므로.

주머니에서 농약병을 꺼냈다. 제일 먼저 그 쪽을 선택했다.

 

4

 

버려진 건물 옥상으로 갔다. 농약을 마시면 매우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들었었다. 그러니 농약을 마심과 동시에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거 같았다. 이제 유서를 쓸 차례였다.

사무실로 쓰였던 것 같은 방에서 이면지와 펜을 찾았다. 펜은 잘 나왔지만 하필 빨간 색이었다. 느낌 있어 보이는 걸 원하긴 했지만 그런 경박함은 예상 밖이었다. 난 최대한 진중하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죽음에 모두가 슬퍼하며 내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주길 바랬다. 장례식장에 경위님과 부하들, 아버지와 도박꾼들이 모여서 나를 추억하며 좋은 것만 떠올리고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나타나 사실 그는 다이아몬드였다! 이 곳에서 가장 귀하고 단단한 것이었다!’라고 외치는 클라이맥스를…… 그러려면 역시 유서엔 어머니 이야기가 들어가야 했다. 나를 불쌍하게 보이게 하는 데엔 어머니 얘기 만한 게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어떻게 죽었더라? 아버지가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화장실에서 목을 매달았어. 재주도 좋지. 틀림없이 손목을 그을 거라고 생각해서 집에서 날붙이는 전부 치웠었는데. 썩을 년. 죽으랄 땐 더럽게 안 죽더니만 죽지 말라니까 기어이 성공하더구나.”

마침 옥상 한 켠에 공사 중에 쓰던 것으로 보이는 노끈이 있었다. 길이가 너무 길긴 했지만 짧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한쪽 끝을 소화전에 묶고 다른 한 쪽을 목에 묶었다. 이제 이대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됐다. 농약은 필요 없어져서 건물 아래에 있던 커다란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쓰레기차가 저걸 회수해가면 농약의 존재는 영원히 잊혀진다. 이젠 아버지도 안심이다.

유서를 주머니에 넣은 뒤 건물 가장자리에 섰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한 편으론 두려웠지만 사실 마음이 편해졌다. 뛰어내리면서 소리를 지를까? 내 죽음은 많은 사람이 볼수록 좋았다. 건물에 불이라도 질러둘까? 마침 마천루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일출을 맞이하며 동쪽을 뒤로하고 떨어지면 출근하는 모든 인파가 되지 않을까? 그럼 좀 더 높은 건물로 자리를 옮길까?

순간 바람이 아주 세게 불었다. 도시의 건물 틈으로 빠져 나온 돌풍이 손에 들려있던 유서를 낚아채 어디론가 날려보냈다. 난 유서를 잡기 위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그 바람에 건물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 잠깐!”

내 삶이 짧은 비명만으로 변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그리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추락했다. 손을 버둥거렸지만 유서도 노끈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나 책에서 보던 것처럼 모든 것이 느려지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에 내 목에 강력한 충격이 왔다.

! 하고 노끈이 잡아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온 몸에 충격이 전해지면서 손끝 발끝이 찌릿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한참이 지나서야 전혀 숨이 막히지 않는 다는 걸 눈치 챘다.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어두운 건물의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능력이 돌아와 있었다. 목덜미가 전부 다이아몬드였다. 다이아몬드에 걸린 노끈은 숨통을 조이지 못했고 난 시장판에 매달린 굴비처럼 대롱대롱 바람에 밀려 흔들리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린 채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아니야! 지금은 아니라고! 왜 이제서야! ! 넌 내 능력이잖아! 왜 모두 내가 원하는 반대로만 행동하는 거야! 다이아몬드는 사랑 받지 못한단 말이야! 이런 힘 따위 한번도 원한 적 없단 말이야!”

그때 나는 깨달았다. 유리에 비친 것이야말로 가장 원하던 것이었다. 하루 종일 원하는 건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가장 원하던 것이 그 순간 유리에 비쳐 보였다. 아버지의 티셔츠와 아버지의 멜빵바지, 아버지의 벨트에 아버지의 점퍼. 크기는 약간 작지만 아버지와 똑 닮은 것이 목을 매단 채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그의 자살이었다.

등 뒤에서 아침 해가 떠올랐다. 온 몸을 다이아몬드로 바꾼 뒤 줄을 풀어서 거리로 떨어졌다. 머리부터 박았지만 아프긴커녕 어지럽지도 않았다. 행인이나 목격자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변신을 풀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전부 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뒤에 어찌 되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외팔이는 그 때쯤 죽은 거 같지만 아버지도 경위님도 이후에 한참이나 더 만났었다. 그 날의 사건은 거기까지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의 자살시도가 있었지만 이 일만큼 세세하게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는 거 같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그 모든 자살시도에서 살아남아 오늘도 이렇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다이아몬드다. 다이아몬드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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