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17
어제:
8
전체:
305,754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6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6.04.10 18:26

낙타와 아이

조회 수 124 추천 수 1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낙타와 아이



평생 늙지 않고 사는 방법이 있을까요?”

허허, 글쎄요.. 다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요?”

 

1. 재작년, 나는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어릴 적 축구를 하다 다쳐 십자인대가 파열됐던 것이 그 원인이었다. 당시 근무지는 선착순으로 본인이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집 근처 노인복지관을 선택하였다. 사실 나는 결코 노인복지에 관심이 있어서 그 곳을 선택했던 건 아니었다. 한번은 근무배치가 된 후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노인복지에 대한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첫 강의 시간에 강사가 노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뭐가 생각나는지 묻자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무기력하다’, ‘보수적이다’, ‘꼰대같다등의 부정적인 답변을 했었다. 내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물론 모든 젊은이들이 다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당시 나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노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거나 더 심하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 노인에 대한 공경을 진심으로 실천하는 이는 드물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집에서 가깝고, 주요 사업이 노인 대학이라 치매노인들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부터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노인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건 어떤 한 젊은 노인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을까? 이 질문은 무섭게도 어느새 내 인생을 바꿔가고 있었다.

 

2. 내가 김 어르신과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회색 후드 티에 진한 청바지, 그리고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던 손. 여느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던 그 분의 모습은 시작부터 나에게 잽을 날렸다.

? 못 보던 분이네? 이번에 새로 오셨나보네요?”

근무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적응을 못했던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김 어르신께서 먼저 다가오셨다. 예상외로 그분의 태도는 공손했다. 연장자가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그저 그 분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전으로 치자면 방위인가요? 아무리 방위라 해도 나름대로 힘든 법이죠. 원래 자기가 군 생활 했던 곳이 제일 힘든 곳이라 하잖아요?”

김 어르신은 계속 내 주변을 기웃거리며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올해 몇 살이세요? 공익은 2년인가요? 제 손자놈은 저번 달에 입대했는데..”

계속되는 질문공세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새 학기가 되면 친구들끼리 서로에 대해 물어보곤 했었는데, 잠시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아이고, 형님! 수업 늦었어유! 빨리 오셔유!”

잠시 후, 뒤에서 다른 어르신이 부르자 그때서야 급히 짐을 챙기기 시작하셨다. 그 와중에 어르신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뭔가 낯이 익었다.

아차!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방위선생님!”

저만치서 어르신이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시더니 서둘러 무리에 합류하셨다. 그저 내 앞에 어르신이 실수로 놓고 가신 그 책만이 남아 대신 대화를 이어가려는 듯 했다.

 

3. 니체의 위험한 책. 나도 예전에 읽은 적이 있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해버린 그가 모든 가치의 전도를 외치면서 세상에 내놓은 책.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위한 것도 아닌 책.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과 여정을 담고 있는 책.

  대학 재학시절 교양으로 철학 강의를 들을 때 우연히 알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교수님께선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정말 운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고는 무려 이 책의 독후감을 과제로 내주셨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은 굉장히 난해했다. 당시 이 과제 덕분에 다들 많이 괴로워했었다. 하지만 오기로 여러 가지 해설집을 참고하는 노력과 교수님의 도움 덕에 나는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들 중 대다수는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기억에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추억을 되살릴 겸 책을 펼쳐보았다.

 

4.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중 세 변화에 대하여를 살펴보자.

  오오, 사람들이여 정신이 변하는 과정엔 총 세 단계가 있단다. 낙타에서 사자, 그리고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낙타는 무엇인가? 바로 강인한 정신으로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우리의 영웅이 아니던가. 항상 무엇인가를 우러러보고 두려워하는 정신, 그것이 바로 낙타의 정신이다. 그리고 이 정신은 자신의 등에 무거운 짐이 실리기를 기다리며 무릎을 꿇는다. 그러면 그의 주인은 별 어려움 없이 낙타의 등에 무거운 짐과 자신을 태우고는 작열하는 사막을 여행한다.

  허나 이 외로운 사막에서 한참을 걷다 보면 낙타의 심경에도 차츰 변화가 생긴다. 등에 실린 짐들만큼 중력이 더욱 그를 밑으로 잡아당긴다. 이 무거운 짐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인데.. 이젠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구나. 그렇게 낙타가 사자로 변신한다.

  낙타가 자신의 주인을 태우고 사막을 여행했다면, 사자는 이젠 주인에 대적하며, 모든 명령들을 거부한다. 세상은 사자에게 너는 마땅히 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자는 외친다. ‘나는 하고자 한다!’ 그리곤 힘겨운 싸움 끝에 자유를 쟁취한다. 정말이지 낙타와 비교했을 때 이는 엄청난 발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사자에게도 한계가 있다. 바로 세상을 보며 그저 으르렁댈 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젠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사자는 세상에 대항하여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싸우지 않는다. 그저 즐길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겐 모든 것이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자만하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항상 새로운 경우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한다. 이렇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아이에게 양심의 가책이 필요가 있을까. 도덕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아이의 순수한 놀이를 누가 어떻게 심판하겠는가. 아이는 스스로 의지를 의욕하며, 긍정 그 자체일 뿐이거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5.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한동안 잊고 있던 스승을 찾아갔는데 뵙자마자 난데없이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세 단계 중에서 나는 어느 쪽에 해당될까..? 잠시 나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능을 망치고는 한동안 방안에 박혀 괴로워했다. 내가 기대했던 미래의 모든 이미지들은 날아가 버렸다. 새로 만들어질 낯선 미래가 너무도 두려웠다. 극약처방으로 재수를 선택했지만 운명은 나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또 한 번의 도전 끝에 나름대로 얻은 것과 깨달은 것이 많았던 시기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두 번째 수능을 보고 난 후 나의 키는 중력에 의해 너무도 작아져 있었다. 어른들은 나에게 세상을 알아가는, 철이 드는 과정이라며 위로를 해주셨지만 나의 기분이 나아지기엔 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뒤였다.

  입시가 끝난 지 얼마 안됐을 때, 우연히 텔레비전을 켜자 다큐멘터리에서 웬 새끼치타 한 마리가 나무 위를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결국 나무를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옆에서 침팬지가 염장을 지르듯 손쉽게 나무를 올랐다. 하지만 그 새끼치타는 알고 있었을까? 비록 나무는 오를 수 없지만 그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당시엔 왜 그 장면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을까. 오히려 주변 친구들의 대학 합격소식에 더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에, 진심으로 축하를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동안은 학벌이 콤플렉스가 되어 멀쩡한 나를 스스로 괴롭히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키를 스스로 잘라내 버린 것이다.

  기대했던 대학생활마저 그렇게 평탄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 때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다. 대학의 낭만은 나에겐 너무나도 과분했나보다. 캠퍼스가 벚꽃처럼 온통 연애와 술 이야기로 뒤덮이고 있을 때, 나는 파릇한 신입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알 수 없는 허무감에 휩싸였다. 술자리에서 나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내 얼굴은 뭔가 씁쓸함이 묻어났다. 모든 것을 마음 놓고 즐기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학과를 가지 못해서, 적성이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마 당시 나의 키가 너무도 작아 주변에 팔이 닿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은퇴까지 앞당겨지자 나는 판단력을 잃고 말았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왠지 많은 책임들을 내 등에 올려놔야 할 것 같았다. 주위 시선의 무언의 부탁이 나에게 너는 해야만 해!’라고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전엔 잘 들리지 않던 주변 어른들의 말씀들이 하나 둘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덮쳐와 내게 생각할 여유를 빼앗아 버렸다. 당연히 난 미래에 대한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계속 방황했다. 그렇게 한동안 고민만 하다 결국 도피처를 찾아 입대를 하여 훈련소로 도망가 버렸다.

 

6. 책을 읽던 도중, 갑자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았다. 김 어르신이 바로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의 미소가 의미심장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뭐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김 어르신은 나와 내가 읽고 있던 당신의 책을 번갈아 훑어보셨다.

, 어르신 죄송해요. 제가 마음대로 막 읽어버렸네요.”

나는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재빨리 책을 덮고 어르신께 돌려드렸다.

아니요, 전 오히려 젊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다들 좀 무기력한 것 같더라고요.”

“...”

사실 저도 힘들 때 이 책을 읽곤 해요. 예전부터 가끔씩 세상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오히려 그런 허무가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의 시선이 나를 목표로 잡고, 그의 말이 나의 마음을 꿰뚫었다. 나는 그대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르신께선 손을 흔들며 저만치 가버리셨다. 나는 한동안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건 분명 나를 향한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7. 어느 주말, 나는 간만에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을 만났다. 날 포함해서 총 세 명. 한 명은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학창시절 항상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성적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학도 우리 중에서 제일 잘 갔다. 반면, 다른 친구는 별명이 반항아였다. 이 별명은 당시 선생님들이 지어주셨던 별명인데, 자신에게 좀 아니다 싶으면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게 특기였기 때문이다.

  이젠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이 호프집에서 한창 저마다 즐거운 대학생활에 대해서 얘기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각자의 불안한 얼굴에서 신세한탄만이 나왔다. 3년 정도 알고 지내왔던 우리였지만 이젠 서로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달라져 버렸다.

, 요즘 선배들 보니까 취업하기 진짜 어렵더라. 문과는 다섯 명중에 두 명밖에 취업 못하던데.”

모범생이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원.. 내 주변에도 거의 다 백수야.”

반항아가 웬일로 그의 말에 공감했다.

난 그냥 공무원시험 준비나 하려고. 솔직히 전공 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걸. 너도 그냥 공무원시험 준비나 하는 해. 지금으로선 이게 답이야.”

뭐래, 난 인테리어 디자인 쪽으로 갈 거야.”

디자인은 무슨.. 그건 그냥 나중에 취미로 해도 되잖아. 일단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냐.”

아니 내가 진로를 못 정한 것도 아닌데 왜 공무원을 하라는 거야. 가뜩이나 요즘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사상 최대라는데 이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현실을 잘 생각해 봐. 취업하기 힘들지, 된다 해도 비정규직이거나 언제 잘릴지도 모르잖아. 세상에 공무원만한 게 있겠냐?”

그래도 난 싫어. 옛날부터 이쪽으로 가고 싶었단 말이야.”

나중에 후회할걸? 네 부모님도 지금 네가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신다며.”

아 부모님도 그렇고 그냥 다 싫어. 이러니까 내가 삐딱하게 되는 거야. 대체 왜 다들 나한테 그런 걸 강요하는 건데? 지네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해!”

그날따라 반항아의 옷에 그려진 사자 그림이 유독 눈에 띄었다.

넌 요즘 공익근무 하면서 뭐하고 지내냐?”

반항아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모범생은 갑자기 나한테 질문을 던져 타겟을 바꿨다. 당시 가장 무섭게 느껴졌던 질문. ‘요즘 뭐하고 지내?’ 나는 순간 멈칫하였다. 뭔가 취업에 도움이 되는 걸 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그냥 뭐 영어공부하면서 지내지.”

결국 나는 하지도 않던 영어공부를 핑계로 그의 질문에서 벗어나려 했다.

너 예전에 기획인가? 그 쪽으로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 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

그냥 너도 공무원시험이나 준비해라.”

“...”

 

8. 며칠 후, 아침부터 열이 나더니 몸살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던 것일까. 때문에 평소와는 다르게 점심을 먹고 복지관 1층에 있는 카페에 잠시 쉬러 갔었다. 마침 카페에서 김 씨 어르신과 여러 어르신들이 같이 커피를 드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옆 테이블에 앉아 엎드렸다. 엎드린 지 약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그런데도 저쪽 테이블에서 들린 말들이 생생히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이 김씨, 작년에 아메리카대륙인가 종단여행 갔었잖아. 가보니 어떻던?”

끝내줬지. 특히 이구아수 폭포는 자네들도 죽기 전에 꼭 가봐. 장난이 아니야.”

글쎄.. 우리는 저 양반 한 멕시코쯤에서 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용케도 살아 돌아왔네.”

허허, 사실 이때쯤이면 그런 스릴도 좀 즐기게 되지 않나? 뭔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때마다 희열을 느끼게 되더라고. 요즘엔 이 맛에 산다네.”

이양반이 참.. 갈 때까지 갔구먼 그려.”

올해는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랑 여러 가지 모아서 잡지랑 여행 가이드북 좀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야.”

웬 잡지?”

뭔가 나를 극복하는 과정을 발자취로 남기고 싶더라고. 독자가 젊은 친구든 노인네든 상관없어. 나 같은 노인네도 이렇게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근데 잡지는 누가 만들게?”

내가 만들 건데. 이번에 컴퓨터 좀 배워두려고..”

참나.. 저승사자가 기다려준대요?”

아 걔넨 나중에 내가 부르면 오겠대. 뭐 그리 나중일은 아니겠지만. 아마 다른 사람이 날 대신할 수 있을 때쯤일걸?”

아이고, 내가 못살아.”

  김 어르신의 목소리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자연의 섭리가 가진 무서움도 그의 앞에선 무색해지는 듯 했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말은 젊은이들한테도 예외가 아니었다.

 

9. 날이 갈수록 김 어르신과 나는 복지관에서 만나는 횟수가 늘어갔다. 처음엔 마주쳐도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웬만하면 그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 어르신은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아도 나를 보시면 항상 먼저 인사를 하셨다. 덤으로 인사를 하실 때마다 늘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소집해제는 언제쯤인지, 근무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등, 여유가 더 되면 나보다 먼저 입대를 했던 당신 손자 얘기도 해주셨다. 그 전 같았으면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어느정도 부담감을 느꼈을 테지만 김 어르신과는 달랐다. 비슷한 또래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 대화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어느새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중엔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리고 말도 걸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내가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김 어르신께 격식이나 예의를 잘 차리지 않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경솔하게 행동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한동안 나는 그 실수를 인지하지 못했었다. 평소에 어르신께 컵을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드렸던 점, 또 인사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태도 등이었다. 그러나 어르신은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다. 너무도 태연하게, 내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그냥 넘어가셨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오랜만에 과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 잘 지내시죠?”

, 오랜만이네. 네가 웬일이냐?”

그냥 후배들 보니까 갑자기 형 생각이 나서요.”

너도 이제 그때 내 기분을 알겠지?”

아 근데 형, 이번 애들 좀 맘에 안 들어요.”

?”

저번에 막걸리 사발식 할 때 애들 다 대놓고 빼더라고요.”

아 그거 아직도 하냐? 하긴 우리도 그때 다 했었지.”

그리고 좀 뭐랄까.. 태도가 좀 건방지다고 해야 되나요?”

얌마, 너도 작년에 우리 사이에서 얘기 많이 나왔어. 지 새내기적 생각 못하고는 쯧쯧..”

, 그래도 전 잘못하면 반성이라도 할 줄 알았잖아요. 근데 이번 애들은 진짜 답이 없어요.”

너나 잘해 짜샤. 지도 작년에 우리한테 많이 털렸으면서 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번에 새로 온 신입생들이 양동이에 담긴 막걸리를 억지로 마시게 하는 우리 과의 전통이자 악습을 거부해서도, 그들의 태도가 건방져서도 그런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후배가 자기 신입생 때 모습을 생각 못해서도 아니었다. 바로 나 때문이었다. 맞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내가 선배일 때, 신입생들의 태도를 자주 지적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김 어르신께 했던 내 행동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

?”

.. 그러니까..”

?”

아니야, 나중에 밥이나 한번 먹자. 애들한테 잘 좀 해주고.”

네 연락주세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머리가 멍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바로 나 자신한테. 왜 그땐 몰랐을까. 그리고 왜 어르신은 별다른 말씀이, 심지어 표정의 변화마저도 없으셨을까.

 

10. 다음날, 그 날도 어김없이 김 어르신과 마주쳤다. 그리고 늘 그렇듯 어르신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무슨 일 있으신가요?”

나의 의외의 반응에 어르신은 당황하셨다.

어르신, 궁금한 게 있는데요.”

, 무슨 일이시죠?”

제가 평소에 컵을 드릴 때랑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을 때 왜 별말씀 없으셨나요?”

“...”

김 어르신은 아무 말 없이 잠깐 내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이내 곧 미소를 지으셨다.

그거야, 저는 도덕을 강요하는 건 일종의 모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모순이요?”

. 사실, 애초에 역사를 보면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그 수단이 대부분 비도덕적이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도덕이라는 게 완벽하고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거죠.”

..”

도덕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구일 뿐인데, 많은 분들은 그 도구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희생해야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좀 아이러니하죠?”

김 어르신의 말씀을 듣자 예전에 친구들이랑 술자리에서 기성세대를 욕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고지식하고, 권위적이고, 발전이 없다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나이나 세대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대가 지나도 우리를 꼭 붙잡고 놓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선생님께선 효도를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 그거야.. 부모님께선 저희가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길러주셨잖아요.”

선생님께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셨나요?”

?”

사실 우리는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남을 당한 거라고 해야 되지 않나요? 그리고 부모들은 그에 대한 책임으로 우리를 길러주신 거죠. 당장 TV만 봐도 자식을 버리거나 방치하는 부모들은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욕하잖아요.”

그래도 정자가 난자한테 달려가는 걸 보면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허허, 우리는 정자 그 자체가 아니라 정자랑 난자가 결합해서 태어난 거잖아요 선생님.”

?”

정자가 난자한테 가는 건 우리가 존재하기 전의 일이라니깐요.”

..”

우리 부모님들은 자신들 덕분에 우리가 세상에 나오게 된 거라고 말하면서, 우리를 쉽게 통제하기 위해 그 대가로 효도를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

그러니까 효도라고 하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굉장히 허점이 많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

사실 이건 극단적인 예시이긴 해요. 아 물론 절대 폐륜아가 되라는 뜻은 아니에요. 저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땐 효도 많이 했거든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잘 유지되기 위한 수단으로 효도를 이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보시라는 뜻이었어요.”

  그렇게 제대로 펀치를 맞았다. 보수의 세대로 불리는 노인이 그 어떤 내 친구들보다 진보적이라니.. 아니,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싶었다. 김 어르신 앞에선 효도라는 가치마저도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 모든 가치들은 그의 장난감에 불과했다. 펀치를 맞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좀 나아진 것 같던 몸살기가 다시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11. 약을 먹고 푹 자도 몸살은 그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그래도 출근할 때 까지는 그렇게 심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날 김 어르신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어르신께선 그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조깅을 하는 중이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선생님,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시네요?”

몸살기 때문에요.. 그래도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그나저나 어르신은 운동을 되게 열심히 하시네요?”

. 원래 어렸을 때부터 좀 허약체질이었는데 꾸준히 관리해 주니까 이렇게 몸이 잘 버티게 되었네요.”

아 원래 허약체질이셨어요?”

그럼요. , 담배, 먹는 거 다 관리해야 할 정도였어요. 젊을 때는 건강 때문에 남들보다 고생을 더 많이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때 고생했던 게 지금 이렇게 건강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

사실,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요. 겉으로 보면 정신이 몸을 컨트롤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에요. 몸에서 나오는 온갖 호로몬들이 생각을 좌우할 수도 있거든요.”

그의 몸은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땀에 젖어있었다. 그의 주름진 피부가 젊게 느껴졌다.

  물론 내가 공익근무 판정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허약체질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내 건강에 대해서 좀 방심했던 것 같다.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아팠던 적이 없다고 하셨다. 젊었을 때에는 항상 남들보다 건강했고, 단 한 번도 보약 따위를 드신 적이 없었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셨는지 몸 관리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술과 담배는 당신들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 결국 할아버지께서는 재작년 겨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기침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피를 이어받아 나 또한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던 내게 아주 오랜만에 몸살감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아침운동을 하시던 김 어르신에게 펀치를 맞은 후에 나는 평소처럼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몸이 비틀거리더니 순간 정신의 필름이 끊기기 시작했다. 머리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뜨거워졌다.

, 선생님! 위험해요!”

계단에서 넘어질 뻔 했던 찰나에 뒤에 계시던 김 어르신께서 나를 잡아주셨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긴 했지만 이 말 이후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그동안 살면서, 그리고 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노인에게 부축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줬던 경우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달라졌다. 입장이 바뀌었던 것이다. 결국 쓸데없이 자존심이 상해 나도 모르게 어르신의 팔을 뿌리쳐 버렸다.

거기 무슨 일 있나요?”

사무실로 올라가려던 한 직원이 나와 어르신을 발견했다. 어르신께서는 직원에게 내 건강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당일 근무하는 게 힘들 것 같다고 대신 말씀해주셨다. 결국 그날 복지관에서는 내게 조퇴를 할 것을 권유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12.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선 작열하는 태양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밑에선 보도블럭이 아지랑이를 내뿜으며 사람들을 구워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비틀거리며 혼자 외롭게 걸어갔다. 평소엔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가방마저도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중력의 힘이 나의 다리도 붙잡는 것 같았다. 여기가 사막인지, 도시인지..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아스팔트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현관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엔 힘이 다 풀려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한동안 현관 벽에 기대고선 숨을 돌렸다. 두 발로 설 수 없어 결국 네 발로 기어서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에 들어서자 갑자기 등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해 손을 등에 갖다 대보니 커다란 혹 두 개가 나 있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땀에 젖어 있었고, 눈은 반쯤 풀려버렸다. 전날까지만 해도 탱탱했던 피부도 쭈글쭈글해져 보였다. 결코 20대의 모습이 아닌, 곧 임종을 앞둔 80대의 모습 같았다. 감기몸살이 60년의 세월을 앞당겨 준 것일까.. 아니다! 바로 내가 나의 세월을 앞당겨버린 것이다. 점점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더불어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파왔다.

 과연 누가 낙타고 누가 아이인가.. 누가 노인이고 누가 청년인가.. 정말 나이가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나의 젊음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13. 복지관 마당.. 김 어르신께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작업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가까이 가 보니 망치로 커다란 돌을 부수려고 준비하는 중이셨다. 그런데, 그 커다란 돌을 보자 나는 놀라 자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건 다름 아닌 내 두상이었다. 더군다나 그 두상의 상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 표정을 찌푸려져 있었고, 피부는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르신께선 내게 잠시 물러서라고 하시더니 망치로 내 두상을 마구 내려치기 시작하셨다.

! ! !

그 때, 망치와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더니 이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는 것이 아닌가!

, 어르신! 잠깐만요!”

머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나는 결국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나 어르신께선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하시던 망치질을 계속 하셨다.

! ! !

그만! 그만! 제발 그만하세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단 말이에요!”

망치질이 계속 될수록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점점 정신이 흐릿해져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르신이 날 보며 웃고 계셨다.

선생님, 한번 보세요. 아까보단 훨씬 낫죠?”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산산조각이 난 돌조각들 위에 또 다른 두상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두상이 아까와는 달리 웃고 있었으며, 훨씬 젊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있던 걸 부수고 제가 새로 다시 조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두상이 새로 만들어지자 내 시야가 깨끗해지고 머리가 고요해져 있었다. 웃고 있는 내 두상을 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어르신께선 마지막 말을 하시곤 작업 도구들을 챙겨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나는 그저 멀어져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14.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 꿈이었다. 옆에선 어머니가 엎드려 주무시고 계셨다. 주변이 어두컴컴한 걸 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 된 듯했다. 몸은 온통 땀에 젖어 끈적거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동안 쌓였던 온 몸의 노폐물들을 쑥 빼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머리가 전보다 훨씬 유연해진 것 같았다. 쇠가 불가마 속에서 단련되듯이 몸과 마음이 열 속에서 더욱 강해진 것 일까.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려던 중, 어머니가 잠에서 깨셨다.

몸은 괜찮니? 거실에 쓰러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얘.”

, 이젠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날, 나는 바로 퇴원을 했다. 상태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극과 극을 오가서인지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고 퇴원을 결정했고, 의사 선생님도 이를 허락하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샤워로 지난밤에 흘렸던 땀을 말끔히 씻어냈다. 혹시나 해서 손으로 등을 만져보니 커다랗게 나 있던 혹 두 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확실히 몸이 전보다 더욱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 중력의 힘은 더 이상 내 다리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눈빛은 말똥말똥했으며, 피부에 있던 주름도 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왠지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15. 그대, 차라투스트라여! 나 그동안 그대의 가르침을 잊고 살아왔구나! 지난 날 나는 많은 이들처럼 등에 많은 짐들이 놓여있을수록 부각되는 자신의 가여움을,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젠 그 짐들을 떨쳐버리고 전보다 훨씬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졌구나!

  난 이제 더 이상 낙타가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 아이도 아니다. 지난날의 나는 작열하는 사막 속에서 끝내 몰락해버렸지만 지금도 많은 것이 부족하다. 어쩌면 완전히 순수한 아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떤가! 그 과정 자체를 즐기며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것이거늘. 이젠 그 누구보다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드디어 아침노을이 떠오르기 시작하는구나!






henn36@naver.com

장원호

010-8805-115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27
» 낙타와 아이 1 샛별 2016.04.10 124
564 제 28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여름의 나 ] 3 Cherry930 2019.03.19 123
563 21회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옅은 어둠 속의 반구(半球) 1 조성백 2018.02.09 121
562 검은언덕길 고질라비행추락 2015.09.03 121
561 페리에스티레의 다리 2 뚱땡이와냐옹칫 2017.10.18 119
560 ▬▬▬▬▬ <창작콘테스트> 제21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22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8.02.11 118
559 슈퍼스타 1 파란색 2017.01.14 118
558 어디에도 없다. 1 file 김은호 2016.02.18 118
557 급강하 비행 1 펠리니 2017.02.10 118
556 어떤오후 1 노랑장미 2016.07.16 116
555 단편소설 공모 -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1 머그컵 2014.10.17 116
554 빈 역 1 무명 2018.06.10 115
553 ▬▬▬▬▬ <창작콘테스트> 제5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6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5.06.11 114
552 카데바 5 소블리 2017.01.27 113
551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이야기를 들려주는 꽃집 1 이은 2018.12.26 112
550 간장게장 만드는 법에 대하여 1 동물원가는길 2017.06.09 112
549 기린의 언어 1 교관 2017.08.17 112
548 ▬▬▬▬▬ <창작콘테스트> 제3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4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5.02.11 112
547 ▬▬▬▬▬ <창작콘테스트> 제27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28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9.02.11 111
546 열려라 참깨 1 보거스 2017.02.10 111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