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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거덕

오래된 문이 열리는 소리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그 섬뜩한 소리는 문을 열 때마다 내년에는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리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한다. 매일 무서워하며 문을 여는 일이 없는 쾌적한 환경으로 이사하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버스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고도 한참을 고갯길을 오르고 그것도 모자라 3층짜리 단독주택 옥상에 있는 옥탑방이 아니라 지하철 3분 거리, 쾌적한 환경의 원룸형 오피스텔, 삐거덕 열리는 자물쇠로 채워진 문이 아니라 우아하게 비밀번호로 열리는 문,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군데군데 핀 벽지가 아니라 상큼한 핑크빛으로 도배한 아름다운 집으로 이사 가겠다는 나의 다짐은 이력서에 내 이름을 써서 처음으로 서류를 내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15만원 서울시내에 이런 집 없다는 부동산 아저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보증금에 이 월세론 원룸형 오피스텔은커녕 평지에 있는 평범한 방하나 구하지 못할 거다. 하긴 저 1500만원마저 내 돈이던가? 취업만하면 갚겠다고 큰소리치고 뺐다시피 얻어온 엄마의 2년짜리 적금이다. 그러니 나는 매일 문을 열 때 나는 섬뜩한 소리에 이사 가야지 했다가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그럴 돈이 어딨어? 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문을 연 순간 눈에 들어온 건 가지런히 놓인 신발, 그리고 깨끗이 청소된 방안이다. 우렁각시라도 다녀간 듯 정돈된 방, 엄마의 솜씨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언뜻 낮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기억이 난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킨다. “문자왔어.” “문자왔어.”라는 메시지 알림음이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댄다. 3통의 음성메시지 3통의 문자 문자는 눈으로 빠르게 읽고 음성메시지는 귀찮아서 그냥 삭제해버린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아니까 굳이 통화버튼을 눌러 그걸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전화 안 받아?”

짜증이 섞인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무심히 핸드폰만 응시하고 있었다. 핸드폰 액정에는 엄마라는 두 글자가 전화 온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고 있었다.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아까부터 계속 울리잖아. 솔직히 방해되거든.”

광고전화 같은데…….”


말끝을 흐리며 한 손으로 핸드폰 전원을 꺼버린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사람들의 말에 열중한다. 취업스터디, 어느새 1년 넘게 나오고 있는 이 모임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다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꾸준히 모임에 참석 중이다. 경영학과 선배 누구는 이번에도 떨어졌다더라, 누구는 이번에 입사했다더라 하는 말들을 들으며 적당히 맞장구치고 한숨 쉬면서 때때로 얻어가는 조약돌만 한 정보에 내 할 일을 다 한 것 마냥 값싼 위안이나 안고 가는 것이다. 값싼 위안, 나도 취업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위안, 변명거리 같은 것을 나는 여기서 얻어간다


또 때로는 그저 앉아서 수다나 떠는 저것들하고 나는 다르다는 마음도 얻어간다. 그래도 나는 누가 취직했는지 누가 떨어졌는지에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묵묵히 취업준비를 하고 있으니 저것들보다는 내가 좀 더 노력중이지라는 정말 보잘것없는 믿음, 자신감 같은 것들만 얻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이 모임은 허울만 뻔지르르한 취업스터디이고 내면은 그저 취업전선에서 떨어진 취업재수생들끼리 모여서 나 잘났네, 그래도 내가 낫네 하는 남들이 보면 정말 어쭙잖은 모임인 것이다. 그러나 이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임이 그래도 적어도 엄마전화보다는 낫다.


작년에 의기양양하게 졸업한 내가 취업전선에서 낙오되고 나서부터 엄마는 부쩍 전화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 그것도 단 한 번도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옆집 개가 새끼를 낳았다. 오늘 김장김치를 다 먹어서 김치를 새로 담았다. 엄마 친구 딸 누가 시집을 갔다. 등등 취업에 관계없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만 주구장창하다 전화를 끊는 것이다


그런 엄마의 저자세가 너무나도 거슬렸다. 차라리 와 취직을 못하노? 지 혼자 잘난 척은 다하더만 꼴좋네. 엄마 친구 딸래미는 이번에 부산은행 들어갔다카든데 니는 가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영어도 더 잘하는데 와 취직을 못하노? 그랄라면 얼른 시집이나 가 뿌라라고 늘 하던 대로 해버렸으면 속이나마 편할 것 같았다


자존심 센 딸년, 이미 꺾일 대로 꺾여버린 자존심에 상처주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이혼하는 그날마저 당당했던 내 엄마와는 너무나도 달라, 마치 내가 엄마의 자존심마저 무너뜨린 지지리도 못난 딸이 된 것 같아 영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불편함, 그래 사실 불편함은 엄마와 내 사이를 규정짓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이다. 그런 엄마가 내 방에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 것도 나는 불편했다.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던지고 컴퓨터 전원을 키고 옷을 벗어던진다. 마치 영역표시라고 하는 것 마냥 벗어놓은 옷을 이리저리 던져놓는다. 청소한 흔적을 없애듯, 그리고 엄마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지우듯이, 그리곤 냉장고를 열었다.


, 김치 밖에 없어야 할 냉장고가 미어터질 만큼 들어차 있다. 우유, , 과일 그리고 커다란 락앤락 세 통, 투명한 락앤락은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환히 보인다. 간장게장을 만들어서 간장 따로 게 따로 담은 통 두 개 그리고 총각무,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간장게장의 짠 내가 온 방을 휘감는 것 같다. 그걸 보는 순간 왈칵 화가 치민다.


발끝으로 차가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축축하고 간지럽다. 섬뜩한 느낌, 번쩍 눈이 떠진다. 그리고 한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깁스 사이로 삐쭉 나온 내 발가락을 닦고 있는 게 보인다. 누구냐고 물어야하는데 그 기묘한 광경이 그리고 그 여자의 뒷모습이 이상하게 낯익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순간 누군지 생각해본다. 새로 온 간병인인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지만 그럴 리가 없다. 간병인에게 주는 돈이 아깝다고 딱 잘라 말하던 내 아버지란 작자가 다시 간병인을 고용했을 리 만무하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 때문에 한바탕하지 않았던가?


아직 수술 실밥도 뽑지 않은 채 허벅지까지 오는 깁스를 하고 낑낑거리며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화장실을 가고 심지어 머리를 감는다는 것은 중노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버지란 작자는 수술한지 3일 만에 간병인을 잘라버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돈이 아깝다는 거였다


학생이라서 보험금도 얼마 안 나오는데 그런데 쓸 돈 없다고 아버지란 사람은 단호하게 말하고 병실을 떠났다. 덕분에 오늘 아침 병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던 나는 머리에 샴푸를 헹구기 위해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화장실 바닥에 그대로 넘어졌고 넘어진 채로 악이 받쳐 집에 전화를 해 한바탕 욕까지 해버린 상태였다. 그러니 간병인일리는 없다. 내 아버지란 인간은 딸년이 악 받쳐 운다고 덜컥 간병인을 들일만큼 착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저 여자는 누구며, 저 낯익은 뒷모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자가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메두사와 눈이 마주친 신화 속 불행한 영웅들과 같은 꼴이 되었다. 입은 있되 말할 수 없고 눈이 있되 눈앞에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엄마?’ 무려 3년 동안 뇌에서, 가슴에서 잠자고 있던 단어가 떠오른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곰팡이가 필 때로 펴 바스라 졌던 단어가 불현듯 하고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밀려드는 당혹감과 분노,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으로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 역시 말이 없다. 한참을 그렇게 엄마와 나는 서로 마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밥은 묵었나?” 어이가 없었다. 밥이란다. 3, 하루 세끼, 365일 총 3285그릇의 밥을 나 혼자 챙겨먹도록 했던 여자가 3년 만에 한 첫마디가 -밥 묵었나?- 라니, 그렇게 중요한 게 밥이면 3년 동안은 왜 내가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하필 그게 지금 이 여자는 궁금한 걸까?


같이 밥묵으러 나가자 엄마가 할 말도 있고.” 그렇게 말하고 그 여자는 익숙한 솜씨로 내 겉옷을 꺼내 입히고 침대 옆으로 휠체어를 가져다 댄다.


할 말? 나한테 할 말이 뭐가 있을까? 미안하다는 말? 용서해달라는 말?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다. TV나 영화에서 종종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만나면 울고불고 큰 소리로 화도 내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드는 생각이란 이 여자가 이제 와서 왜 이 지랄일까?’ 정도, 그 날 내가 그랬다. 그 여자가 침대 옆에 얌전히 갖다 댄 휠체어를 보면서도 그랬고 그 휠체어에 내 몸을 실으면서도 그랬고 심지어 밥을 먹는 내내도 내 앞에서 무언가 자꾸만 묻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그랬다. ‘이 여자가 왜 이럴까?’ 하고 말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런 생각도 했다.


이 여자가 드디어 미친 게 아닐까?’

멍하니 앞에 차려진 음식만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낮잠을 자기 전에 병원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잤으니 그다지 배가 고프진 않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입으로 음식을 옮긴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니 말이다. 빨리 먹고 빨리 병실로 돌아가야겠다는 게 밥상을 받은 내 머리 속에 든 유일한 생각이자 수저를 놀리는 유일한 목적이었다


열심히 음식을 옮기고 열심히 씹었다. 최대한 소리도 내서 말이다. 짭짭짭, 후루룩 후루룩, 난 원래 밥을 얌전하게 먹는 편이고 음식 먹을 때 수저 옮기는 소리도 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더럽건 예의가 아니건 뭐건 잡음이 필요했다. 쩝쩝 후루룩, 탁탁 뭔가 이딴 소리라도 나야 그녀가 하는 말 중 1/10이라도 내 귀에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나는 내 앞에 앉아 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애처롭고 애달픈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이 여자가 싫었다.


엄마, 집에 드가까?”

쿨럭.”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머릿속이 하얗다. 집으로 돌아온다고 대체 왜? 음식을 연신 씹고 있던 이가 멈추고 쿨럭쿨럭 음식을 소화시키고 있던 위장들이 일순간 정지해버린다.


?” 밥 먹는 내내 먹는 것에만 열중하던 내 입이 처음으로 말을 던진다.

니 아프다 아이가. 그리고 인자 니 곧 고3이다아이가 니 동생도 곧 고등학생이 될 끼 고…….”

그래서?”

내가 느그랑 같이 있는 게 안 낫겠나?”


뭔가 동의를 구하는 표정이다. , 이건가? 집에 들어오기 위한 사전 포섭작업! 내 동의가 필요한 문제가 아닐 텐데 말이다. 집을 나갈 때도 그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그녀가 이민용 가방에 이것저것 집어넣을 때 그 방에 앉아 물끄러미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날은 기말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이었다. 중학교 들어서는 가장 잘 나온 성적, 학교를 나설 때만 해도 신났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할까? 아님 옷을 한 벌 사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날 반긴 건 엄마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는 짐을 싸고 있었다. 커다란 이민용가방,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여행용 가방이 안방 장롱사이에 고스란히 있는 걸보니 그녀는 여행을 갈 생각이 아니다. 안방 침대에 걸터앉아 나는 그녀가 짐을 싸는 것을 지켜보았다. “엄마 어디가노?” 라고 나는 묻지 않았고 그녀도 나에게 잘 있으라.” 라거나 엄마가 연락할게라거나 미안하다라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 집을 나가는 엄마와 그걸 목격한 딸치고는 참 쿨한 이별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지독한 아이러니, 피식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가 없다.


, 아빠는?”

내가 설명할 수 없다는 듯, 나는 공을 아빠에게 넘긴다.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듯 내가 아직 아이임을 전면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난감하고 상관하고 싶지 않은 복잡한 문제에만 내가 사용하는 수법, 평소에는 어른처럼 굴다가도 이런 순간 나는 아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기 아직 못 봤다 .”

모든 게 명확해진다. 그녀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집에 들어오고 싶어진 것이다. 친척들이 수군거리던 대로 바람난 남자가 그새 딴 년을 찾았는지 아니면 나갈 때 챙겨나간 돈이 다 떨어진 건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녀는 돌아올 마음이 생겼고, 돌아올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마침내 하늘이 만들어준 나의 교통사고, 자식을 생각하는 어미인 냥 어물쩍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핑계였다.


그거는 먼저 아빠랑 얘기해야 되는 거 아이가?”

내 아버지를 들먹인 건 내 아버지라면 절대 그녀를 다시 집으로 들여보내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 그의 입에서 나온 저주의 말과 나가지 엄마를 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진 폭력을 기억하는 나는 절대 내 아버지는 다시 엄마를 들어오게 놔둘 위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만큼 다시 그녀와 한 집에서 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내 말의 저의를 파악한 건지 하지 않은 건지 그녀는 아빠와 이야기할게라고 웃으며 말하더니 식당 밖에서 다시 내게 이른다.


병원 냉장고에 반찬 넣어 놨다. 니 이름 써놨으니까 챙기무라. 병원에서 주는 밥, 맛없을 거 아이가. 키는 많이 컸는데 몸은 왜 이리 비쩍 말랐노? 보기 싫구로. 꼭 챙겨무라 알겠 나?”

밥 챙겨주는 것이 자신에게 내려진 최대의 임무인 것처럼 그날 그녀는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내곤 돌아섰다. , 그래도 그녀 말 중에 맞는 말이 있기는 했다. 병원에서 주는 밥이 지독하게 맛이 없다는 사실 만은 정답이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빠진 몸무게의 수가 그간 떨어진 등수보다 많았다. 그만큼 병원에서 주는 식사는 형편이 없었다. 그러니 내심 그녀가 냉장고에 넣어놨다는 반찬이 기대되기는 했다. 무엇이건 간에 병원에서 주는 반찬보다야 맛있지 않겠는가


더욱이 매 끼니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사를 하는 환자들을 보며 내심 부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병실로 돌아와 얼른 냉장고 앞으로 간다. 환자의 가족들이 넣어 놓은 반찬들, 지난 밤 남자병실의 삼겹살파티 흔적이 분명한 상추와 남은 삼겹살들, 콩자반, 멸치 간혹 보이는 과일과 간식거리들, 5개월째 접어 들어가는 병원 생활에서 병원 구석구석 안가본데가 없건만 나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아니 의식적으로 오지 않고자했다. 비 오는 날 교문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꼬마처럼……


초등학교 시절, 수업 중에 후두둑하고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나는 의식적으로 교문 앞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했다. 수업마치길 기다리며 우산을 들고 선 그녀들 중에서 우리엄마가 없는걸 알기에, 날 기다려 줄 이가 없다는 그 부재를 나는 그렇게 깨달았고 그렇게 피했다. 그런고로 내게 우산은 기다림의 부재로 치환된다. 병원에선 냉장고가 그러했다. 엄마 없이 사는 집, 동생끼니 챙기기에도 버거울 아버지가 병원에서 삼시세끼 꼬박 나오는 날 위해 반찬을 만들어 갖다 놓을 리 만무했고, 냉장고는 나에게 다른 부재를 알려주었다. 날 위한 밥의 부재!


냉장고 사이에 큰 통이 보였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큰 통, 찰랑찰랑 거리는 검은 빛깔 사이로 축 쳐진 채 죽어있는 게들이 보였다. 뚜껑을 열었다. 왈칵 짠 내가 올라왔다. 그걸 보는데 침이 아니라 눈물이 고였다. 짠 내가 눈을 찌르는 것 같았고 절여진 큰 게들은 안쓰러워보였다. 결코 좋지 않았던 첫인상, 통째로 게를 씹어 먹으라는 건지, 이게 반찬이 맞기는 한 건지 뭔 반찬이 이따위로 처량하게 생긴 건지 한참을 보다보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출몰했다.


~그 진짜 맛있겠네.”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간호사와 전쟁을 치르면서도 기어코 어젯밤 삼겹살 파티를 연 파티의 주범-옆 병실 아저씨다. 먹을 거 앞에서 유난히 초롱거리는 아저씨의 눈이 반찬통을 향해있는걸 보니 괜스레 심술이 난다. 간장게장 앞에 뚱해있는 나를 보더니 그는 금세 내가 이걸 먹을 줄 모른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들으라는 듯이 간장게장 맛있게 먹는 법에 대한 강연을 하더니 연신, 니가 못 먹으면 나나 주지란 제스처를 보낸다. 새치름하게 통을 들고 병실을 향한다. 딱히 끌리는 반찬도 아니건만, 그래도 저기 놔뒀다간 저 먹성 좋은 아저씨 입으로 삼켜질게 분명하니 병실로 들고 나르는 게 상책이다.


그날 이후로 수차례 밥상에서 간장게장을 만났지만, 나는 그날 먹었던 간장게장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환상의 맛이거나 너무 맛있어서가 아니라 충격적이었기에 잊을 수가 없다. 살아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익혀지지 않은 날것의 게살이 입으로 들어오던 느낌, 따라오는 비릿함, 내장임이 분명해 보이는 그것에 밥알을 비빌 때의 끔찍함, 그리고 그 내장임이 분명한 그것이 주는 달콤함, 뭔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 같은 맛. 간장게장을 앞에 대할 때마다 여전히 나오는 나의 심호흡은 이 윤리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거나 그날의 기억일 것이다.


하여튼 그날 이후로 간장게장은 내 식탁을 비집고 들어왔고 그녀는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 먹은 간장게장을 제육볶음으로 바꿔놓고 그녀는 그렇게 돌아왔다. 우습게도 나는 간장게장도 그리고 제육볶음도 먹었건만, 그녀가 달갑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돌아오지 말았어야 할 존재, 오지 않았으면 했던 존재였다


물론 이런 내 맘과 다르게 하루하루 나는 다시 살이 쪘다. 매 끼니 마다 그녀가 가지고 오는 김치찌개니 된장찌개니, 생선구이니 하는 것들은 그간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한 성장기의 나를 살찌우기에 충분했다. 먹을 거로 날 꼬시는 거다. 이따위 반찬으로 내가 달라질 줄 알면 오산이라고 먹었던 마음은 비워져가는 그릇의 수만큼 딱 고만큼 옅어졌다. 찔끔- 된장찌개를 먹다 난 눈물은 된장찌개 안에 들어간 청양 고추 때문이 아니라 옅어져가는 내 마음에 대한 작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한동안 나는 간장게장을 만나지 못했다. 다양한 반찬들이 그녀의 손에 의해서 병실로 운반되어왔건만, 간장게장만은 다시 병실로 오지 않았다. 퇴원을 한 뒤에도 그러하였다. 아직 깁스를 풀지 않은 다리를 가지고 학교에 다닐 때도, 다리 사이에 박아두었다던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도 간장게장은 내 식탁 위에 오르지 않았다. 무심결에 간장게장은 이제 안하냐고, 그거 생각보다 먹을 만하던 데라고 말해도 엄마는 담에 해줄게라는 말만 할뿐 여전히 간장게장은 밥상 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런 간장게장을 내가 다시 만난 것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교통사고로 완전 아작 나버린 성적을 만회하기위해 고3 내내 버둥거렸지만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나은 대학에 가기 위해 나는 머리를 굴려댔다. 마치 요리를 하는 것처럼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를 정했다. 원하는 대학을 넣고 가고 싶은 과를 뺄지 아니면 원하는 과를 넣고 원하는 대학을 뺄지 양념을 더하고 빼는 것처럼 원서를 넣는 그날까지도 나는 원하는 대학을 넣고 간을 보고 원하는 과를 넣고 간을 보고 둘 다 빼고 맹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하며 누구의 레시피처럼 머릿속에서 편입을 굴려보기도 하며, 그렇게 20살의 봄을 맞았다.


기를 쓰고 찾은 대학이었다. 서울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저 in 서울만이 목적인 내게 딱 맞는 대학, 서울에 있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장점이 없는 70%가 넘는 취업률을 자랑한다지만 그 수치가 눈 가리고 아웅 한 수치라는 것을 대학정원의 90%가 알고 있을 그런 대학, 20살의 봄 나는 그 캠퍼스에 서 있었다.


대학은 시시했다. 고교시절 잔디밭에 도란도란 앉아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대학 홍보 책자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도심에 위치한 캠퍼스는 잔디는 불과하고 잡초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연일 숙취가 가시지 않은 곰삭은 술내와 신입생과의 풋풋한 로맨스를 꿈꾸며 기웃대는 복학생들의 느글대는 시선만이 강의실을 메울 뿐, 대학다움이라고 여겼던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수업의 진중함마저 말이다


등록금 350만원에 18학점, 나누기를 하면 한 학점 당 약 20만원, 2학점짜리는 40만원, 3학점짜리는 60만원일 테지만 수업은 4만원 , 6만원치의 가치도 없었다. 그 대학 출판부에서 만들었다는 조잡한 교재만큼의 가치도 없는 수업, 늘어지는 하품과의 사투 속에서 높낮이마저 없는 고비사막 어디에서 불어온 모래바람 같은 교수의 목소리가 닫히기만을 기다리던, 아니 그마저도 지루해서 강의실이 아닌 자취방 낮잠을 택하던 어느 날, 나는 느닷없이 자취방에 들이닥친 엄마를 맞이했다.


자나?”

엄마가?”

젊은 아가 대낮부터 자고 있노, 술 마싰나?”

술은 무슨, 근데 전화도 없이 웬일인데…….”

안하기는 이미 여러 통 했다. 니가 안 받드만.”

?”

전화기를 꺼내본다. 부재중 전화가 4,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던 것이 엄마였나 보다.

아침에 기차타면서 한번, 내려서 한번, 오는 동안 한번 무려 3번인가 4번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안 받드만, 니 솔직히 말해라. 술 마셨제?”

아니, 뭐 그렇긴 한데…….근데 그건 뭔데?”

밑반찬이지. 뭐기는. 밥 안 묵었을낀데 일나서 빨리 무라.”

그라면 엄마도 같이 묵자.”

알았다. 나도 아침부터 왔드만 배고프네.”


엄마가 부스럭 거리며 꺼낸 통에는 간장게장과 각종 밑반찬이 있었다. 그리고 얼린 곰국도 가득 들어 있었다. 간장게장과 곰국, 그리고 밑반찬이 놓인 상은 자취생활 몇 달 만에 보는 제대로 된 밥상이었다. 자취생의 밥상이란 보잘것없기 마련이다. 참치 캔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3분 카레로 탄수화물과 비타민을 동시에 섭취하며 과일한쪽이라도 상에 올라오는 날은 그야말로 횡재한 날이다. 그러니 엄마가 챙겨온 밑반찬들이 나에게는 수라상보다도 진수성찬이오. 몇 달 만에 보는 엄마보다도 반가울 수밖에........


엄마도 무라.”

아침부터 내내 전화를 했다는 말에, 미안해져 간장게장을 갈라 엄마 밥 위에 놓으며 건넨 말이었다.

엄마는 이거 실타.”

? 내한텐 맛있다고 무라카드만........”

비린내 나고 물컹거려서 싫다. 이상하다아이가.”

근데 왜 무라카노?”

니 좋아한다아이가.”

내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물컹거리고 짜고, 그리고 비린내도 좀 나고,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거 번거롭다 아이가. 엄마도 내도 안 좋아하는데 담부터 하지 마라.”

니가 간장게장 만드는 법은 아나?”

내가 그걸 어째 아노. 그냥 복잡하게 생겼다아이가.”

니가 그라면 그렇지, 난 또 혼자 살면서 나름 살림 좀 하는가베? 했네. 간장게장을 먹으려면 5일을 기다리야 된다. 첫날에 게 손질하고 양념 만들어서 재웠다가 그렇게 2일 놔두고 양념을 다시 꺼내서 끓인 다음에 붓는 걸 2~3번은 해야 된다. 그런 다음에 3일을 삭혔다가 먹는 기다.”

그거 엄청 귀찮네.”

그챠? 근데 엄마는 그기 좋다. 끓이고 부을 때 내가 이러면 안 되는기다 했다가 또 끓이면서 아니지 내가 해야지 했다가 그렇게 몇 번 하고나면 마음이 정리가 되고 후련하다 아이가 그리고 간장을 끓이면 억수로 이상한 냄새가 나거든. 눈도 따갑고 시큰거리고 근데 그것도 좋다. 그렇게 시큰시큰 아프고 나면 또 뭔가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아이가


그 말이 툭 나오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처음 내 병실을 찾아온 그날도 간장을 부으며 내가 가야지 했다가 아니지 내가 가면 안 되지 했다는 걸, 그렇게 3일이 지나 삭은 간장게장을 들고 병실에 왔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오늘도 무언가를 안 되지, 되지 했을 거라는 걸 말이다.


어쩌면 며칠 엄마는 시큰거리는 눈을 비비며 한쪽에선 간장을 끓이고 한쪽에서 곰국의 기름을 걷어가며 그렇게 며칠을 고민했는지도 모른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본능적으로 피해야 되는 이야기임을 나는 직감했다. 뭔지 몰라도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 더 이상 엄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밥을 먹었다.


내 여서 자고가도 되나?”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 집에 아빠랑 다 없나?”

알아서 할끼다. 아도 아이고.......”

, .”


그 날 이불을 피고 엄마와 자리에 누울 때까지 나는 엄마 눈치만 살폈다. 불편한 공기가 좁디좁은 자취방에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할 타이밍을 노렸고 나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기만 했다. 결코 나와서는 안 될 화제처럼 말이다. TV소리, 무의미한 웃음소리, 괜한 물음들로 덮씌우고 덧칠해댔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압력, 하지만 엄마는 결심한 듯 결국 그 말을 꺼냈다.


내 느그 아빠랑 이혼할끼다.”

“.........”

엄마랑 아빠가 아니었다. 엄마였다. 그래, 그렇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동요하지도 않았고 패닉상태가 되지도 않았다. 마음도 머리도 그냥 차분했다. 정해진 수순처럼 말이다. 나는 언젠가 내 부모가 이혼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집안에 평온을 가장한 미묘한 공기가 감돈 것은 퇴원하던 날부터였다. 종종 그 미묘함은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고함소리, 울음소리가 나는 날이면 나는 습관처럼 동생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렇게 현관 밖에서 이 생활이 얼마 가지 않겠구나. 이러다 곧 이혼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기댄 현관문의 냉기만큼 차가운 감정들이었다.


내일 내리가가꼬 법원에 바로 갈끼다. 느그 아빠랑 이야기 다했다. 미안하다. 놀랐제?”

아니, 괜찮다. 그럴 거 같더라.”

엄마는 있다아이가. 요번엔 진짜 잘해볼라고 했다. 사실은 수십 번도 더 도망치고 싶었 는데 이제 도망치면 안된다아이가, 도망치면 다시는 느그 앞에 엄마라고 나설 수 없을 것 같아서 잘해보고 싶었거든. 근데 그게 잘 안됐다. 미안하다.”


잘 안됐어. 실패했어. 마치 그 말들이 아, 좀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 판에서 죽다니 아깝다는 오락기 앞에서 나올 법한 단어들로 들렸다. 잘 안되면 결혼도 리셋이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INSERT COIN TO CONTINUE” 라고 묻는 오락기 앞에서 엄마는 더 이상 동전이 없었나보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동전이 없으면 난감하니까, 동전이 없으면 가방을 메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니까.........


괜찮다. 아예 예상 안했던 것도 아니고 크게 안 놀랐다. 그거 말할라꼬 저것들 다 싸들고 온 거가?”

그래도, 법원에 서류 내기 전에 직접 말해야 될 것 같아서..........”


이번에 YES or NO는 이혼이었다. 간장을 부으며 엄마는 YES인지 NO인지를 수십 차례 고민했을 것이고 결론은 YES였다. 하지만 간장게장에서는 YES의 맛이 아니라 짠 맛이 났다. 그 뒤로 종종 엄마는 혼자 내 자취방을 찾았지만 간장게장을 가지고 온 일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간장게장을 가지고 왔다. 그건 또 엄마가 5일은 YES or NO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질문은 한 가지 취직을 물을까? 말까? 얼마 전 낸 원서는 어떻게 됐는지 교수가 추천해준다는 그곳에 면접은 봤는지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간장을 부었을 게다. 물을까? 말까? 물으면 괜스레 내 딸자식 아픈 상처를 건드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묻지 않자니 언제까지 혼자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저곳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엄마는 간장을 끓이고 붓고, 게를 삭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왈칵 치밀던 화가 누그러지고 갑자기 서글퍼졌다. 코끝도 따가워지려고 한다. 전화를 건다.


언제 왔었노?”

아까 낮에

간장게장 이제 안 먹는다니까, 그리고 이 많은 걸 어떻게 내 혼자 다 먹노.”

두고두고 묵으라. 두고두고 묵을 수 있게. 게 삭지 말라고 간장이랑 게랑 따로 담아놨잖 다아이가.”

근데 간장 넣어둔 거 다 새서 거의 없다.”

아까 엄마가 놔두고 올 때는 괜찮았는데 그게 와 그라노?”

몰라, 집에 오니까 줄줄 새가꼬 난리다. 바닥이랑 냉장고 다 흘러서 내가 다 닦았다. 근데 이거 간장 없어도 되나?”

그거 간장 없으면 다시 만들어서 부어야 하는데 아~큰일 났네

우짜면 되는데?”

니가 할라고?”

해보지 뭐, 일단 가르쳐줘봐

그럼, 적어라. 마늘이랑, 청양고추랑, 당귀랑, 감초 사가꼬 냄비에 넣고 간장을 자박하게 부어가 한참 끓였다가 식히가 다시 부어라.”

? 자박하게가 얼만데? 한참은 얼마고? 마늘이랑은 얼마정도 넣는데?”

찰랑찰랑하게 말이다. 그리고 한참이 한참이지. 마늘이랑, 청양고추랑 당귀랑 대강 보고 넣을 만큼 넣으면 된다. 맛이 잘 배길 만큼만 넣으면 될 끼다.”

됐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대충해가꼬 그기 되면 내가 하지 엄마한테 와 묻노? 엄마가 그렇게 맨날 엉터리로 가르쳐주니까 반찬이 다 맛도 없고 그렇다아이가.”

뭐가?”

저번에 콩나물국 끓일 거라고 엄마한테 전화했을 때도 엄마가 소금 한주먹 넣어라 그래서 넣었다가 짜서 못 묵었었다아이가. 기억 안나나? 그리고 또 그전에는 그거 뭐고 멸치볶음 인가 그것도 엄마가 불 조절하는 거 안 가르쳐줘서 다 태워가꼬 버맀다아이가.”

가시나 그건 니가 못하니까 그라지. 무슨 살림에 소질이라고는 손톱에 때만치도 없어가 지고 그래가꼬 시집 가긋나? 한주먹 넣으라니까 소금을 들이붓지를 않나 보고 익은 것 같 으면 불을 꺼야지 그걸 그대로 두니까 타 탔다아이가 니가 잘하는 게 도대체 뭐꼬?”


괜스레 너스레를 떨고 엄마와 실랑이를 하며 식탁 위에 올려놓은 락앤락 통에 가득 채워진 간장을 바라본다. 까만 간장 속에서 파도가 칠 것만 같다. 너울너울 너울너울

 

 

 

  • profile
    korean 2017.06.30 23:26
    잘 감상했습니다.
    열심히 습작을 거듭하다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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