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에겐 남들과는 다른 습관이 있다. 냄새를 기억하는 일이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어릴 적부터 사물이나 지명,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특유의 냄새를 맡아 기억하곤 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핸드폰에 베인 냄새, 계절이 바뀌는 바람의 냄새, 지나가는 차의 냄새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비단 냄새를 기억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냄새를 토대로 사람의 기분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냄새는 호르몬의 변화와 그 사람의 환경에서 나온다고 현주는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는 이런 현주를 ‘개 코‘라고 하지만 그녀는 습관, 버릇, 혹은 좋게 말하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의 냄새를 완전한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서다.
아버지에게서는 항상 마른 풀잎의 냄새와 차가운 콘크리트, 그리고 조각나 부서진 벽돌과 흙의 냄새가 났다. 전혀 다른 냄새들은 한 곳에 섞여 너무나 부드럽게 다가와서 퇴근 후에 아버지가 그녀를 안아줄 때면 목덜미를 세게 안고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문이 닫힙니다.]
바람이 퍼지는 소리를 내면서 지하철의 문이 닫혔다. 사람이 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그다지 붐비지 않는 평일 낮에 지하철 안이라도 갖가지 냄새는 가득하다. 녹슨 기계의 냄새, 여러 사람이 지나가 손자국을 남긴 손잡이의 철 냄새, 누군가가 뿌린 강렬한 향수 냄새. 코를 찌르는 향기롭지 않은 체취까지 더해져 현주가 타고 지하철 한 칸은 분리되어 물속에 넣은 것 같았다. 공기는 찾아 볼 수도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지금 잡고 있는 문 옆에 손잡이를 놓치면 발 디딜 곳 없는 바다 속 같은 냄새 안으로 빠져 무언가라도 흩어져 버릴 것 같았다.
지하철은 지상으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고 있다. 창밖으로 햇살에 비치는 한강의 모습이 보인다.
‘봄 냄새가 나는구나.’
괜히 나왔다며 후회가 머릿속을 맴돌 때, 마침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바람 덕에 육지로 올라온 듯 아주 깊게 공기를 빨아 들였다. 조금은 맑아진 머리와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서 현주는 어느새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따뜻한 냄새가 섞여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
아주 오랜만에 바람과 햇살의 냄새를 맡았다.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집밖으로 나갈 일은 많지 않다. 가끔 장을 보러 갈 때라던가, 전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정도 빼고는 집에서만 지낸다. 보통 사람들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고 친구들은 결혼 생활이며 일이며 제각각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바쁘다보니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훗날 결혼을 하게 되면 부를 친구들조차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가 되었다.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현주는 이미 훌륭한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워졌다.
그것이 나쁘지 않다. 사람들과 부딪히며 기분 나쁜 냄새를 맡아가며 감정을 소모하고 정신적 피로감으로 몸 안에 온갖 세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보다 차라리 혼자인 것이 나았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피할 수 없는 오늘 같은 날이면 아주 가끔 타인의 냄새를 구경하는 그녀만의 소풍을 떠났다.
지하철 창밖으로 멀리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목련나무가 보였다. 현주와 그녀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창밖은 따스하고 포근한 냄새로 가득한데 현주에겐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난간에 기대 서있으면서 그녀는 외롭다. 괜스레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어중간하게 떠돌던 시선이 보기만 해도 온갖 잡다한 냄새와 차가운 느낌을 들게 하는 지하철 바닥으로 꽂히자 눈을 감아버렸다. 문이 닫힌다는 안내 방송이 희미하게 들린다.
“잠깐만요!”
문 앞에 서있던 현주는 들려오는 쨍한 목소리에 흠칫 놀라 감은 눈을 떴지만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있다.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하아, 겨우 탔네.”
숨을 고르고 있는 그는 바로 옆 난간에 기대었다. 흘깃하고 곁눈질로 그를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봄 냄새가 나네.”
단 한마디에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하철 바닥이 흔들리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괜찮으세요?”
분명 지하철 난간을 꼭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얼굴은 햇빛이 드리워져 있다.
그에게서 목련 냄새가 났고 그것은 마음에 깊숙이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