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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0 23:24

첫번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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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인간 




 따닥따닥 붙어있는 낡은 집들 사이 좁은 길이 있다. 그 길을 가다보면 집들이 위태롭게 놓여있는 동산이 보이고 까마득한 길이의 낡은 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좀 오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구수한 된장찌개냄새가 코를 스친다. 그 냄새가 옅어지자마자 조금 더 올라간 곳에서는 쾌쾌한 시궁창 냄새가 후각을 찔렀다. 바닥에는 오물이 말라붙어 있었고 어디선가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참고 올라가면 이러한 우중충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빌라가 눈앞에 보인다. 한 대 툭 치면 와르르 무너질 것 마냥 허름한 빌라 안으로 들어간다. 2202호 앞에서 멈춘다. 쇠 때가 끼어 검은색으로 변색된 손잡이를 돌린다. 들어간다.

 

 보이는 건 집을 덮은 듯한 쓰레기 더미와 그 가운데 한 남자. 남자의 외관은 흉측했다. 하얀 비듬이 소복히 쌓인, 며칠이나 안감은 것처럼 기름이 흐르고 있는 엉망인 머리. 고춧가루와 검은 때가 뒤섞인, 남자의 이로 질근 질근 깨물어지는 손톱, 그리고 각질이 거칠게 일어난 남자의 부은 입. 김칫국물이 번지고 때가 곳곳에 낀 후줄근한 옷으로 가리지 못한 남자의 온 몸을 뒤덮고 있는 축 쳐진 비계들. 남자는 남자의 집 안을 덮은 쓰레기 더미와 매우 어울려 보인다.

 조금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간다. 남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남자의 뻘겋게 충혈 된 눈이 보인다. 그 순간, 벽 쪽에서 조그만 말소리가 들린다. 남자의 눈동자가 벽을 향한다. 남자의 몸이 벽을 향한다. 남자의 얼굴이 벽을 향한다. 남자는 귀를 벽에 밀착시켰다. 남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싫다고! 아 씨발! 또 건들고 있어 이 시발년이!!”

 

? 시발년? 이 쌍년이 요즘 좀 봐주니깐..”

 

 벽 너머로 여자의 날이 선 목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한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도 들린다. 남녀의 욕설이 뒤엉킨다. 중간 중간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여자의 비명소리도 들린다. 남자의 욕이 점점 거세진다. 여자의 비명도 거세진다. 쓰레기 방에서 벽에 귀를 붙이고 가만히 있는 남자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벽 건너편 남녀의 소리와 뒤섞인다. 남자의 눈이 더 붉어진 것 같다. 남자의 기름진 볼에는 홍조가 띄워졌고 남자의 입가는 계속 씰룩거린다. 남자는 벽 너머의 상황을 즐기는 거 같다. 남자는 그렇게 옆집의 여자와 남자의 소리가 멈출 때까지 벽에 붙어 히죽 히죽 웃었다. 옆집의 소리가 멈추자 남자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지며 다시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로 몸을 움직였다. 남자는 아직도 쾌감에 젖은 달뜬 숨소리를 헉헉 내쉬며 자신의 두꺼운 손으로 자신의 남성을 잡았다. 그리고 거세게 흔들기 시작했다. 질퍽거리는 더러운 소리가 남자의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서는 익숙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쩝 쩝 쩝 쩝……

 


 남자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다. 남자의 앞에는 후라이드, 양념 각각 한 마리씩, 피자 한 판, 짜장면 두 그릇, 맥주 두 캔 그리고 족발까지 차려져 있다. 남자는 두 손으로, 양념을 다 묻혀가며 허겁지겁 처먹는다. 꿀떡 꿀떡 음식을 삼킬 때마다 남자의 목울대가 울린다. 그렇게 양 볼 가득히 음식을 집어넣는 남자의 손 움직임이 갑자기 멈춘다. 남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남자의 시선이 벽에 고정되었다. 그리고는 무거운 몸을 움직여 두 손에는 짜장면 그릇을 든 채 벽 앞으로 갔다. 한참을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푸짐하게 한 번 뜨고 벽 쪽으로 내민다. 남자의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졌다. 남자의 눈은 벌게지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 드세요.. , 맛있어요.”

 

 그러나 벽 너머로는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남자는 짜장면을 집은 젓가락을 벽 쪽으로 더 내민다. 벽에 짜장 소스가 치덕치덕 더럽게 묻는다. 남자는 뚫어져라 벽을 쳐다보다가 히죽 히죽 웃으며 벽 쪽으로 내밀었던 짜장면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볼 가득히 담긴 자장면을 쩝쩝거리며 씹는 소리가 남자의 허름한 원룸 안에 퍼진다.

 


…… 



 새벽이 되었다. 시계는 323분을 가리키고 있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째깍 소리와 남자의 옆집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가 남자의 방안에 작게 울린다. 남자의 눈은 그러한 미세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벽에 고정되었다. 남자의 몸 또한 이미 벽에 밀착되어 있는 상태다. 남자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고 숨소리는 불안정하다. 남자의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점점 커지고 빠르게 방안의 소리를 잠식해간다. 시계소리가, 옆집의 소리가 남자의 숨소리에 덮어진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시계가 328분을 가리킨다. 순간, 남자의 숨소리가 멈췄다. 방안에는 오직 시계의 초침소리만이 맴돈다. 새벽의 푸른빛과 같이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남자는 숨이 멎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가 헉! 하고 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아까보다 숨을 더 빠르게 쉰다. 남자의 거대한 몸이 부들부들 흔들린다. 남자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남자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남자는 그렇게 아침이 될 때까지 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 


 일주일이 지났다. 남자의 방안은 여전히 쓰레기들로 가득 차있고 악취가 심하게 난다. 남자는 여전히 벽에 몸을 밀착시켜 벽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축 처지고 터질 것만 같았던 비계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남자의 머리는 더 심하게 기름졌고 남자의 눈 밑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남자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 되어 있고 남자의 입술은 갈라져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벽을 바라본다. 방 안에는 시계 초침 소리와 남자의 옅은 숨소리만 들린다. 남자는 멍하니 벽만을 바라본다.


…… 


 일주일이 더 지났다. 남자의 방안은 여전히 쓰레기들로 가득 차있고 악치가 숨을 못 쉴 정도로 강하게 난다. 방 안에는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초침소리에 더하여 쓰레기들 위로 날아다니는 벌레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에 띄게 변한 것은 남자의 모습과 위치다. 남자의 비계들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남자의 얼굴은 거의 핏기가 사라져 창백한 모습이다. 남자는 더 이상 벽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남자는 더 이상 벽에 몸을 밀착시키지 않았다. 남자는 현관문 앞에 앉아있다. 남자는 현관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모든 신경을 현관문에 집중한 듯 보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현관문 밖에서 누군가의 걸음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일어났다. 빈혈이 온 듯 잠시 휘청거렸지만 현관문 문을 잡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문을 돌렸다. 남자의 옅었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남자는 맨발로 밖으로 나갔다.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 뭐야 당신!”

 

 옆집 남자가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남자의 육중한 몸이 옆집 남자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손에 쥐어진 칼이 옆집 남자의 몸을 쑤셨다. 반쯤 열린 옆집의 문을 남자가 그대로 열어젖히고 옆집 남자를 끌고 들어간다. 옆집의 문이 닫힌다.


 …… 


 남자는 지금 옆집 남자의 몸을 칼로 몇 번이나 쑤시고 있다. 남자의 손을 옆집 남자의 피로 흠뻑 젖어 있고 남자의 얼굴은 땀과 피로 뒤섞여 있다. 남자의 몸 곳곳엔 옆집남자의 저항으로 인해 생긴 상처도 보인다. 옆집 남자의 집 안에는 남자가 칼로 옆집 남자의 몸을 쑤셔대는 푹푹 거리는 소리와 남자의 거친 숨소리에 섞인 남자의 중얼거림만이 들린다.

 

, 난 다 알아.. , 네가 주, 죽였어..”

 

 남자가 축 늘어진 옆집 남자의 몸을 계속해서 찌른다. 옆집 남자의 몸은 해질 때로 해져서 바닥 곳곳에 살점이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남자는 칼로 찌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내가 드, 듣고 싶은 건 네, 네가 아니야.., 살려내.. ..살려내..”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집 안을 두리번거린다. 무언가를 찾는 거 같다.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손에서 칼을 놓는다. 칼이 피로 흥건한 바닥에 챙-한 마찰음을 내며 떨어졌다. 남자가 발걸음을 옮긴다. 장롱을 연다. 다시 닫는다. 이불을 걷는다. 다시 덮는다. 남자가 원룸에 어울리지 않은 꽤 큰 냉장고쪽으로 간다. 냉장고를 연다. 무언가를 꺼낸다. 바닥 에 놓는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꺼낸다. 그리고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꺼낸다. 그리고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바닥에 놓는다.

남자가 냉장고에서 꺼낸 것들을 가지고 바닥에 배열한다. 그 움직임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남자가 배열한 것은 사람의 형태를 띠었다. 남자는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배열한 것들이 다시 흩어졌다. 남자가 머리 부분을 든다.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 .. , 들려줘..제발..”


남자의 쉰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 들려줘.. 다시.. , 비명.. , 날 대신해서 질러줬던.... 이 세상에게.. 들려줬던..”

 

남자의 목소리가 커진다.

 

, 비명.. 내 비명 들려달라고!!! 으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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