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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20:04

불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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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


길고 힘들었던 수련의 생활이 막을 내렸다. 1년간의 고행을 마친 수련의들은 자신의 평생을 좌우할 전문과목을 선택하고 그 곳에서 전공의 생활을 시작해야한다. 당연히 자리는 넉넉하지 못하고 수련의들은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성적으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무수한 희비쌍곡선을 거쳐서야 마침내 모든 수련의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았고 3월의 시작과 함께 수련의들은 새내기 전공의가 되어 살벌한 적응의 시간에 몸을 내던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대와 다른 현실을 거부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는 둘이나 있었다. 그 중 친하게 지냈던 형이 나간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과에서 보람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보람이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 단어가 아닌가? 보람을 느끼기 위한 직업이라니! 공룡 시대 이전에 있던 생물 같은 건가?

 

게임 산업은 나날이 번창한다. 아이들이 (그리고 꽤 많은 숫자의 어른들도) 게임에 급속히 빠져드는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에게 인상 깊은 가설은 게임에선 누구나 두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에선 큰 돈을 잃거나 목숨을 잃어도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 우리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모험을 하거나 불가능해보이는 도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삶으로 도박을 하는 건 전혀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돈이나 목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 고등학교 때부터 앞으로의 인생을 이과로 살 것인 것 문과로 살 것인지 결정하라는 선택지가 강요된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과를 옮기고 싶어도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 기존의 배웠던 것을 잊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시간적 소모와 그로 인해서 동기들로부터 뒤떨어지게 된다는 두려움이 번복의 기회를 앗아간다. 취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주 직업을 옮기는 사람은 갈수록 취직하기가 어려워지며, 특히나 지금처럼 일자리가 적은 시대엔 한번 박은 말뚝을 재고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처세술 책들은 젊음의 열정을 강조하며 자신의 선택을 굽히지 말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아무리 신선놀음을 하고 싶어도 당장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면 구름 아래로 내려올 수 밖에 없다. 취직은 했니? ? 이제 와서 전공을 바꾼다고? 그래서 노후 준비는 언제 하려고 하니? 애인은 있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더 늦어지면 기회가 없다! 이제와서 다시 시작하기엔 늦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인생은 한번뿐인데 절반을 채 살기도 전에 그 모든 과정을 표준화시키고 거기에 따라야 하다니? 현대인의 삶이란 마치 독재국가의 뷔페 같다. 음식은 종류별로 나열해놨으면서 한번 집은 음식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배는 부를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식당에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즐거움은 텔레비전 안에 있다. 적어도 그것을 직업에서 찾는 시대는 끝났다. 아니, 그런 시대가 있던 적이 있었을까? 교과서 밖에도 보람과 적성이 직업의 가치와 동의어가 되는 현상이 실재할까? 조소하거나 비관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수요공급으로 존재하는 직업이라는 상품이 모든 인간의 꿈을 충족시킨다는 명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연예인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백만 명은 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성적이 되는 아이들 중에서 이과를 선택한 자들은 다들 머릿속엔 의사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의사와 연예인이 인구의 절반이기를 바라는 나라는 없다. 누군가는 꿈을 접어야 한다. 적성에 직업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적성을 직업에 맞추지 않으면 입에 풀칠 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차선책은 있다.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 남겨놓고 취미 생활로 꿈을 좆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붙잡고 싶을 땐 천천히 창 밖을 바라보자. 저 아름다운 밤의 야경을 만들어주는 건물의 불빛들이 그 차선책을 뭐라고 부르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보라. 야근, 끝없는 야근이여! 저 불야성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꿈이란 부유한 부모를 둔 배우자나 임대료를 받아먹을 수 있는 건물을 손에 넣어 자신의 시간을 영위하며 사는 것 정도이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즐거움은 텔레비전 안의 예능인들에게 사들이고 보람은 홈리스 아이들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충족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행복이 이 손에 들어오겠지. 꿈을 팔아 얻은 행복이 편안한 노후가 되어 돌아올 테지. 불교에선 행복에 미련을 두지 말고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걱정 마시길. 우리 세대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 방법을 배워왔답니다. 그런데도 여긴 극락정토가 아니군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흔히들 불나방이라고 하지만 사실 불을 좋아해서 뛰어드는 건 아니다. 단지 빛을 향해 나는 습성 때문에 열기에도 불구하고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불을 향해 뛰어들진 않는다. 잘 보면 나방들이 불의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나중에야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를 비추는 거울 같다. 오늘도 등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저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라. 저 안에서 열정으로 산화하는 잿더미가 되어라! 그 소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들린다. 2차 대전의 카미카제 특공대는 좀 더 직접적으로 들었겠지만 지금도 집중해보면 여기저기서 비슷한 소리가 글로 그림으로 메아리 친다.

 

좋다, 해주겠다! 장렬이 이 열정을 불태워 저 도시의 밤을 아름답게 비춰주리다! 좀 뜨겁고 무섭겠지만 몇 번 하다보면 저것도 적응이 될 테지. ? 두 번은 없다고?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난 당연히 우리가 지포라이터인줄 알았다. 기름을 채우면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라이터. 청춘과 젊음이라는 단어가 멋지게 적혀있는 금속성의 수집품!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면서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어둡고 비좁은 고시촌에 떼로 갇혀있는 우리들은 라이터가 아닌 성냥들이라는 걸. 한번 머리에 불을 붙이면 두 번 다시 타오를 수 없는 일회용 성냥개비라는 걸. 심지어 우리의 머리에 불을 지르는 사람들은 자기 손이 뜨겁다는 이유로 우리가 마지막까지 타는 걸 봐주지도 않은 채 집어 던져버린다. 어릴 때 텔레비전의 만화영화에서 봤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었다. 강한 악당 앞에서 꺾이는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주인공은 더 이상 될 수 없다. 한번이라도 꺾이면 끝장이니까. 요람에서 시작해 무덤에서 끝나는 이 거대한 달리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꿈도 즐거움도 없는 이 트랙 위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꿈과 즐거움을 팔아야 하니까.

 

방학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알면서도 숙제를 미루는 아이들처럼 불나방은 어차피 뛰어들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망설인다. 어서 저 불길 속에 몸을 던지면 공포와 좌절을 덜 맛보아도 될 텐데 꼭 주위를 맴돌며 고민하다가 간신히 그 안에 머리를 박는다. 나는 뛰어들었다. 그리고 내 바로 옆에서 불길에 닿기도 전에 열기에 겁먹고 도로 뛰쳐나가는 자들을 보았다. 불타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잿더미가 되지만 이제 곧 불사조가 되어 이 무덤을 뚫고 나가 태양처럼 부활하리라! 그런데 말이야, 애초에 불 속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그럴 필요도 없잖아? 빛으로 달려들기를 거부하고 저 밖으로 다시 나간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왜 여기서 타고 있는 거지? 이상한 건 저들인가 나인가?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해서 이 고통 속에 뛰어들었나? 딱히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이건 뭔가 아닌 거 같은데?

선택할 일은 많았다. 알을 깔 때, 고치를 뜯을 때, 불빛을 향해 날아오를 때…… 내 삶은 아직도 반 백 년 이상이 남았고, 훨씬 험난한 선택들이 끊임없이 주어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고통이 미래의 기회가 되기를 빈다. 지금의 선택에서 강요에 굴종했기 때문에 미래의 선택에서 두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이 뜨거움도 의미를 가질 테지. 고로 그 때까진 만족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나방의 작은 날개에서 멈추기엔 아직 이르다! 보라, 지금은 잿더미가 되지만 이제 곧 불사조가 되어 이 무덤을 뚫고 나가 태양처럼 부활하리라!

 

그렇다, 보라. 결국 나 역시 표준화된 트랙 위에서 평범한 선택을 하며 똑 같은 말을 따라 한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본 들 나는 꿈꾸는 성냥개비, 허상을 갈구하는 불나방이다. 당신도 불나방인가? 그럼 내가 그대에게 해줄 말은 하나뿐이다.

불 타지 마라. 제발 당신은 불타지 말라.






응모자


성명 오세민


이메일주소 megazola@naver.com


HP연락처 010-2413-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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