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미안해.
미안한 게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6살 즈음인가 엄마가 만들어 준 밥으로 만든 햄버거, 투정 부리면서 안 먹어서 미안해. 엄마는 기억 안 난다며 웃었지만 난 눈물 꾹 참고 있었어. 미안해. 또, 고생시켜서 미안해. 나도 이제 꽤나 세월이 지나서 세세한 것 까지는 모르지만 집안일이라면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한테 떠맡겨서 미안해. 내 옷 갈아입혀 달라는 것도, 밥 해달라는 것도 전부 다. 그리고 태어나서 미안해. 내가 저번에 편지에도 썼잖아.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의 엄마에게로 가서 나 낳지 말고, 아빠 만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내 소원은 딱 그거 하나야.
엄마. 미안해하지 마. 태어난 것에 대한 죄는 내가 모두 가지고 있으니. 엄마는 그냥 행복하게 살아. 나이 신경 쓰지 말고, 회사 신경 쓰지 말고, 그때의 엄마가 하지 못했던 일, 모두 다 해봤으면 좋겠어. 엄마. 난 오랫동안 아빠와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엄마를 원망한 적 없었어. 연락조차 못했던 몇 년 동안에도 미워한 적 없었어.
딸에게 자기감정을 털어놓아서 딸이 압박감을 느끼는 집도 있다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데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했어? 엄마가 그때 나한테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말했다면 엄마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아빠 서랍에서 이혼서류를 발견한 날,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 떨어져서 사는 그 순간부터 사실 눈치채고 있긴 했어. 장녀로 살아온 탓인가. 여기저기 자꾸 눈치를 보더라고. 근데 서류와 직접 맞닿는 순간 세상이 뒤바뀌는 듯했어. 이런 거였구나, 이런 상황이었구나. 그때가 12살이었어. 다 컸다고 착각하는 나이지. 그때부터 느끼게 된 것 같아.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엄마는 내가 다 커서야 그때 얘기 꺼냈잖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 외롭진 않았어? 얘기를 들어 줄 자식이 없어서 답답하지는 않았어? 알아채주지 못해서 미안해. 친구가 내 힘든 점 눈치 못 채도 서러운데, 지 자식이 알아주지 못하면 얼마나 세상이 회색으로 보일까. 엄마, 그러니까 나한테 어떤 것이든 미안해하지 마.
엄마도 스무 살에는 아마 누구보다도 반짝 거렸겠지.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놀러 다니고, 술도 마셔보고, 예쁜 옷도 입어보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멈출 수가 없더라. 내가 엄마의 인생이란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린, 그런 느낌이더라. 이 글을 읽게 되면 엄마는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하겠지. 그런데 어떡해, 내 마음이 그런 걸.
전에 엄마에 관한 시를 하나 읽었어. ‘너 훌쩍이는 소리가 네 어머니 귀에는 천둥소리라 하더라. 그녀를 닮은 얼굴로 서럽게 울지 마라. -네가 어떤 딸인데 그러니, 나선미.’ 시에서도 울지 말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눈물이 나오더라. 엄마랑 같이 보낸 시간, 다른 평범한 아이들 보다 적을지 몰라. 하지만 그 누구보다 난 엄마를 생각하고 있어. 엄마,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만큼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
상사화
나는 어쩌다 널 사랑하게 됐을까. 난 머리가 안 좋아서 잘 몰라. 하지만 네가 어두운 밤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작은 햄스터를 좋아하는 것도, 달달한 간식을 좋아하는 것도, 난 빠짐없이 좋아하게 됐어.
그 날은 참 이상 했지. 입학식 날인데 비가 왔어. 어제 저녁 반듯하게 다림질 해놓은 교복 마인가 젖어갔어. 아직 추워 벌벌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꿋꿋이 세우며 교장선생님의 연설을 듣고 있을 때 였지. 누군가 내 어깨에 있는 비를 닦아주었어. 안 춥니? 오묘한 눈빛을 가진 여자 애였어. 그게 너였지. 너는 사람을 지긋이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어. 그 때에도 나를 훑듯 지긋이, 꾹꾹, 쳐다보았는데 난 그것때문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안으로 들어가자는 선생님의 말도 못 들었지 말이야. 들어가자. 너가 학교 건물로 시선을 돌리고 내 손을 잡았을 때야 입이 움직였어. "저, 나는…" 넌 안 듣고 있었지만.
학교 강당으로 모인 우리는 이어서 교장선생님의 연설을 들어야했지. 넌 신나서 인디언보조개가 환하게 들어나는 것도 모르고 웃었어. 그 인디언 보조개도, 잇몸 아무곳에나 자리잡은 이빨도 참 너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넌 학교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어. 원래는 집 앞에 있는 공학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여고로 가라는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왔다고. 또, 겉옷을 입을 때는 반드시 마이를 착용하라는 학교 규칙도 맘에 안든다고 했어. 그것은 나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지. 사실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어. 너를 만나서, 너와 같은 반 이어서, 너와 얘기할 수 있어서. 넌 몰랐을거야. 나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아이였거든. 하지만 넌 그런 나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어. 난 그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그 이후로 너와 삶을 공유하면 공유할 수록, 넌 나를 자꾸 집어 삼켰지.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게 나를 네 안에 가뒀어. 덕분에 난 너와 말다툼이라도 하는 날에는 눈물을 뭉쳐 삼키고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야만 했어. 너는 내 삶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네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너는 감기 같아."
"응? 왜?"
"…잊으려 하면 자꾸 나타나거든."
매일 보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는데,
그 때만 생각하면 자꾸만 가슴이 아려. 친구야.
열심히 쓰시면 좋은 결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