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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1975년

민수는 배가 고팠다.

부엌 구석에 매달린 선반 위로 삶은 감자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발돋움을 해서 손 끝으로 잡으려 해 보았으나 키가 작아 될 턱이 없었다. 그때, 마당 한가운데 읍내에 내다 팔려고 모아둔 가마니 더미가 보였다. 민수는 재빨리 달려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선반 밑에 쌓았다. 감자를 먹기 위한 민수의 욕망은 대단했다.

감자는 너무도 달콤했다. 하지만 그것을 다 먹어서는 안되었다. 형수님의 화난 얼굴이 눈에 선했다.

"선반 위에 있는 감자 누가 먹었당까? 진우 니냐? 신우 니냐?"

두 아들은 서로 바라보며 머리를 흔든다.

"형수는 새빨간 볼을 더욱 샐쭉거리며 중얼댔다

"내 민수 이 넘을..."

민수는 논두렁 샛길진 곳에서 혼자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서울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외가집에 사는 형도 보고 싶었다.세 식구가 떨어져서 사는 것이 민수는 슬펐다.

어린 민수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괴로움의 나날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자 당장 생계가 곤란한 처지에 놓여 엄마는 서울로 상경하시고 형과 민수는 친척집에 따로 맡겨져 살아가고 있었다.

"민수얏 !"

째지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민수는 흠칫 놀라 논두렁 속으로 빠질 뻔했다. 민수 앞에 거만스러운 태도로 팔을 꼬고 서 있는 형수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따라와 보랑께." 

형수는 민수의 팔을 나꿔채듯 잡고는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억센 손이 압박해와 민수는 통증을 느꼈다

"삶은 감자 니가 먹었제?"

야~~"

기어드는 목소리로 민수는 대답했다.

"그걸 와먹노 , 이것아 !"

가녀린 민수의 뺨이 크게 흔들렸다.이정도 서러움이야 늘 받아왔지만 꼬마에겐 힘이없었다.


해가 질 무렵 사촌 형님이 일터에서 돌아왔다. 두 부부가 마주앉자 숙향이 입을 열었다.

" 민수 말이여라 서울에 보내야겠어라..."

"글씨, 생각좀 해보구.내게 맡겨둔 논도 있고 한디..."

기만은 더듬거렸다.

"아따, 생각할게 뭐 있다요. 내일 당장 보내부쇼..."

"그라도 어째..".


다음날 아침상은 유난히 푸짐했다.

" 와, 이거뭐여 갈치 아니여? 엄니 오늘 무슨 날이라요?"

막내 아들 신우가 법석을 떨었다.민수는 묵묵히 앉아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명절이나 잔칫날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생선이 상위에 올라와 있었다.

아재, 이거 먹어봐, 맛있당께 !"

신우가 큼직한 생선을 민수의 밥 위에 놓았다.

" 아니여! ,니나 많이 먹어. 난 됐응께."

민수가 눈치를 차렸다.  신우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민수와 친한 사이였다. 기만이도 사촌동생을 조금 위해 주었으나 그 때마다 숙향의 따가운 눈총을 면치 못했다.

따가운 아침 햇살이 가난한 초가집 지붕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 높이 먹이 찾기에 분주한 매가 공중을 돌고 있었다.마당에 한가롭게 뛰노는 병아리를 보호하려고 암닭은 재빨리 날개 품에 감아 들인다.

"민수야, 다 됐다냐?"

형님의 목소리였다.

" 조금만 요."

" 아따, 싸게싸게 하랑께. 뭐가 그리 드리다냐."

형수의 콩볶는 듯한 말투는 소년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시방 나가지라"

두 사람은 사립문을 나서 언덕으로 올라갔다.길게 난 신작로를 따라 뻗은 느티나무 잎들이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형님 어디간당까요?"

민수가 기만을 바라보고 물었다.

"알것 없다. 그냥 따라와라."

기만이 말하는 사이 버스 한 대가 흙 쌓인 시골길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두 사람은 재빨리 올라탔다. 창가에 자리를 잡은 소년은 시종 신기한 눈동자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타 보는 버스는 온갖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나무가 움직이는지, 버스가 달리는지  분간을 할 수 없었고 산과 논들이 쑥쑥 뒷전으로 처지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길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손을 흔들며 동경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민수도 따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대낮을 넘어 오후까지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려 느즈막에 영산포 역에 도착했다. 역전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저녁 때가 되자 한 대의 기차가 무거운 쇳소리를 내며 질주해왔다. 형님은 민수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 많은 탑승객들 사이를 필사적으로 올라탔다. 영산포발 서울행이라 쓰여있는 것을 보고 혹시 엄마한테 가는 걸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열차 안은 발붙일 틈도 없었다. 소년은 간신히 자리를 하나 차지할 수 있었다.기차는 어두운 철로를 따라 긴 기적 소리를 울리며 밤길을 쉬지 않고 달렸다. 민수는 종일 여행에 고단해 의자 난간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는 이미 새벽녘이었고 서울역에 도착해 있었다. 역 대합실을 가로질러 걸어 나오는 민수에게 펼쳐진 광경은 실로 경이와 흥분 바로 그것이었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도 달랐고 눈앞에 웅장하게 높이 솟은 빌딩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수많은 크고 작은 자동차의  내뱉는 경적소리의 행렬이 민수의 눈과 귀를 흔들어 놓았다. 사진으로만 보아왔고 귀로 듣기만 했던 서울의 풍경을 직접 대하게 됐다는 것이 꿈 같았다.

민수는 두리번거리며 넓은 광장을 형님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직은 날이 밝지 않아 안개 낀 거리를 사람들이 분주히 걷고 있었다.광장에 솟은 시계탑의 바늘이 다섯시를 희미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그  밑으로  민수에게 낯익은 여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여인은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머리를 돌려 지나치는 행인들을 살피고 있었다. 순간, 민수는 북받치는 반가움에 가슴이 떨렸다.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적중했다 고 생각하며

"엄니이~~"

하고 부르며 잡은 형님의 손을 뿌리치고 달렸다. 달려가는 소년의 음성엔 감출 수 없는 설움의 빛이 새어나왔다.

근 2년여 동안 사촌 집에서 핍박과 학대를 받아온 한 같은 것이  '엄니' 라는 한 마디로 폭발하고 있었다. 엄마는 민수를 끌어안았다.

"엄니,보고 싶었지라우, 보고 싶어 못견뎠지라우"

떨리는 소년의 말과 함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그래, 그래 아들"

정옥은 아들을 끌어안았다. 뒷전에 선 채 모자의 상봉을 지켜보던 기만과 정옥은 인사를 나누었다.

새벽의 서울 거리를 세 사람은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민수,  뭐 먹을래?"

정옥이 아들에게 물었다.

"우유라, 우유 사달랑께요."

일찍 문을 연 음식점으로 세 사람은 들어갔다.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기만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였다. 질낮은 담배 연기가 식탁 주위를 맴돌았다. 우유를 들이키는 아들을 바라보던 정옥이 잠시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약속이 틀리지 않아, 분명 내년까지..."

정옥은 말끝을 흐렸다.

"아,시방, 고것을 말씀드릴 순 없구만요. 고 말은 이따가 하지라."

두 사람의 대화를 소년은 바라 보았다. 어린 민수도 둘의 대화가 뜻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그러나 다시는 엄마와 헤어지기 싫었다.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엄니, 나 이제 엄니랑 같이 사는 거재?"

민수는 병 우유를 탁자에 놓으며 물었다.

"그래,이젠 엄마랑 사는거야.민수 학교도 계속 보내주고 옷도 새것으로 갈아 입혀줄게."

정옥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그늘이 비쳤으나 아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하지만 기만은 보고 있었다.

"성도 같이 사는거재. 그라믄 얼매나 좋을까."

민수는 신이나서 우유를 마시며 웃었다. 그녀가 2년여 동안 고생해서모은 돈은 아직 두 아들과 생활해 나가기엔 부족했다.서울로 상경하기 전 얼마간의 논을 기만에게 맡겼으나 그는 그것을 끈기있게 가지고 있지 못하고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로 인한 죄책감에 기만은 그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터였으나 본디 성실히 살려고 노력하는 그를 그녀는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어린 자식을 잘 돌봐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기만은 투숙할 여관으로 갔다.

민수는 엄마를 따라 넓은 주택가를 걸어갔다. 그녀는 한남동 B그룹 회장의 가정부로 일해 오고 있었다.

"민수야 ! 이 집에선 얌전해야 돼. 형님댁에 있을 때보다 더. 우리집이 아니니 응? 명심해. 알겠니?"

그녀는 심각하게 아들에게 일렀다.

"알았구만이라"

민수는 엄마가 심각하게 당부해 주는 말에 기가 죽었다. 엄마와 맞잡은 손이 거칠게 느껴졌다. 엄마가 묵고 있는 집은 으리으리 했다.육중한 대문의 빗장여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 고등학생이 문을 연후 아무말 없이 들어갔다.

"엄니, 저 남자 누구라요?"

"응, 이집 아들이야,너보다 10살이나 많아.이제부터는 아무 말이나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민수는 엄마가 자꾸  당부하는 말에 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다.낯선 사람을 본 새퍼트들이 사납게 짖어댔다.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던 소년은 곱게 깔린 타일 위에서 무거운 압박감을 느꼈다.사방으로 둘러쌓인 높은 담과 문을 열어주던 남자의 굳은 표정에서 자신이 살던 담없고 ,맑은 하늘이 내다 보이던 초가집,크지는 않으나 여닫기 쉽던 싸리나무 문과 비교되었다. 소년은 그 순간 그 곳을 빠져 나가고 싶어졌다.

"이 아이는 누구냐?"

현관문을 막 들어서려 할 때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수는 머리를 들어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귀부인 차림의 중년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예?예,제 아들이예요."

그녀는 당황한 듯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이년동안 일했으니 이젠 아들하나 달고 들어와도 괜찮다 이거냐?"

"아니,저 그...그게 아니라..."

민수는 엄마가 쩔쩔매는 것이 안쓰러웠다.그 중년 여인을 보자 자신을 매주던 형수님이 떠올랐다.

"때릴 때는 심했지만 저 여자처럼 정이 떨어지진 않았지"

꼬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민수는 엄마의 굽실거리는 행동에서 비굴감을 느꼈다.

"빨리 방으로 건너가고, 새퍼트 밥을 주고 잔디 풀을 뽑아라."

중년은 명령을 끝마치고 사라졌다.

"민수야, 이리 와라. "

엄마의 방으로 아들은 들어갔다.

"자, 여기 잠시 앉아있어.엄마가 일 끝내고 올테니까, 응?"

민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가 나가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창을 통해 비친 사각 모양의 버스는 더 이상 신기하게 보이지 않았다.수많은 빌딩들도 높이 솟았을뿐 정다운 맛 대신 거리감이 느껴졌다. 오랜 동안의 무료함에 지친 소년은 밖에 나가고 싶었으나 중년의 차가운 모습이 생각나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얼마를 지났는지 모른다.배가 고파왔다. 저녁이 다 돼서야 엄마가 초쵀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아들, 밥 먹자..."

엄마를 따라 식당에 들어서자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민수는 엄마곁에 나란히 앉아 수저를 들었다.맞은 편에 남학생이 보였다. 그는 식사시간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귀부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꽃에 물은 줬느냐.냉수 좀 가져와라.등등 숨돌릴 틈도 없이 가정부에게 심부름을 시켰다.소년은 부담감에 눌려 억지로 밥을 먹고 방에 들어왔다. 잠시 누워서 천장을 바라 보았다.천장에 매어  달린 원통의 등을 보던 소년은 문득 자신이 늘 성냥불로 켜보던 호롱불을 생각해 냈다. 그 밑에서 신우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기억이 마치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민수는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비록 늘 핍박을 주고 야단을 치던 형수도 밉지가 않았고 괴롭히고 장난만 치던 진우도  왠지 그리워졌다. 밖에서 새퍼트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 저 개는 하루종일 사슬에 묶여 혹시나 불쾌한 손님이 올까 지켜야 해. 먹는 것은 시골 내 바둑이보다 낫지만 마음껏 뛰놀지도 못하고 높은 담만 바라보며 괴로워 하고 있어. 하지만 내 바둑인 매일 함께 방죽에서 수영도 하고 뜀박질도 하지.온 종일 얽매어 있는 저 새퍼트는 바둑이보다 불행해."

그 즈음 엄마가 피곤한 몸짓으로 들어와 앉았다.

" 민수야, 기다리느라 지루하지 않았어? 엄마가 내일은 서울 구경 시켜줄까?"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가도 되지라"

"엄니, 난 벌써 서울이 싫어졌어라. 넓은 집안과 잔디 깔린 정원보다 늘 갔던 뒷산이 더 좋지라.난 이 집 싫어라.엄니는 종일 일만허구 난 종일 옆방에서 나오는 이상한 노래만 듣고 있는 거 싫증이 난당께라.엄니,난 시골이 더 좋아라..."

민수는 드디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아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정옥은 아들을 와락 껴안았다. 아들의 떨리는 음성이 그녀의 가슴속에 아픔으로 스며 들었다.

"엄니, 나 시골로 다시 가고 싶어라..."

민수가 엄마의 품에서 슬며시 빠지며 울먹였다.

"그래, 아들 . 엄마도 아들이 대견스럽구나. 엄마는 아들이 이렇게 철든 줄 몰랐단다. 그녀는 민수의 하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녀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날밤은 유난히도 짧았다.열린 커튼 사이로 하늘에서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넓은 집안이 고요로 잠들고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인도 밝은 아침을 맞기위해 아들 곁에서 곤히 잠을 청했다.




남 상봉

010-9224-3742

nambong51@naver.com

"












  • profile
    korean 2019.12.31 18:54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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