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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0 22:10

싱크홀( sinkhole)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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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sinkhole)

     김정태

 

자가운전자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 가까운 선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퇴근한 적이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 못미처 굴다리를 빠져나왔는데 바퀴가 길가 움푹 파인 곳을 지나며 펑크가 나버렸다. 차가 쌩쌩 달리는 위험한 길 한편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스페어 타이어를 갈아 끼우느라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길 위에 조그마한 구멍이었지만 그 위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펑크가 나는 낭패를 겪어야했다.

주변에서 인생길 가다가 넘어져 낭패를 당한 경우도 보았다. 내가 과장시절, 사업에 실패한 대학친구가 어느 날 책을 팔아달라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기업 유능한 직원이었는데 중간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부도를 맞아 고생하고 있는 중이었다. 야반도주 하던 긴박하고 비참했던 상황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심경을 토로하며 눈물짓던 모습이 세월이 가도 잊혀 지지 않는다.

친분이 있는 한 변호사는 직업상 그런 일을 참으로 많이 본다며 비빌 언덕 없는 직장인들이 중년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

 

아끼는 후배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면회를 가기로 했다. 하루 한번 면회가 허용된다고 해서 부인과 날짜를 맞추어 아침열시에 구치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회사시절 그와의 만남은 통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뭔가 다소 특별했다. 회사 초년병시절, 군복무를 마쳤다며 베레모를 쓴 채 회사를 찾아온 전직사원 한명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당연히 복직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왔으나 회사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상고나 공고출신들이 입사해서 근무하다가 영장을 받으면 제대 후 재입사가 보장되었는데 그가 입대한 후에 회사 분위기가 바뀌어 원칙적으로 재입사가 없는 것으로 되었다.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고 당황한 그는 할 일없이 이부서 저부서 아는 사람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내 눈에 비치는 그의 첫 인상이 좋아 같이 일해보고 싶은 생각에 부장님을 설득해서 우리 부서에서 받았던 것이 그와의 긴 인연이 되었다.

인덕원 전철역에서 내려 구치소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 지나 안내방송을 따라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렸다. 눈치껏 사람들 가는 데로 따라갔더니 길옆에 큼지막하게 서울구치소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구치소라는 용어자체가 내겐 이물질 같이 껄끄러워 왠지 낯설고 꺼림직한 세계에 대한 칙칙함이 전신을 감돈다. 불안하고 혐오스러움에 더해 뭔가 서러운 생각까지 드는 것 같다.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그는 참으로 성실하고 유능하며 헌신적인 회사생활을 해왔다. 바쁜 가운데서도 자기계발에 힘써 대학도 졸업하고 주변에 늘 인정받는 삶을 살아왔다. 4월에 임원격인 부문장승진이 예정되어 있었다는데 뜻하지 않는 불행을 당했다 한다. 어언 50대를 바라보는 그는 딸아이인 큰 아이가 고3이고 둘째가 아들로 고1이다. 가정도 화목하고 아이들 모두 모범생이지만 4050대 인생길 곳곳에 숨어있는 낭떠러지와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삶이 꽃피는 시절에 횡액을 만나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있다.

 

집을 출발할 때 수감생활에 필요하리라 생각되어 몇 권의 책과 성경 한권을 준비해 챙겼다. 산 밑으로 확 트인 길을 따라 10여분을 걸었더니 서울구치소가 나왔다. 입구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표시의 프랭카드가 걸려있다. 입구를 통과하니 마당에는 군데군데 등나무 아래 쉴 수 있는 벤치가 준비되어있고 건물정면에 여러분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라는 프랭카드가 걸려있었다. 도와준다는 친절한 말이 왠지 으스스하게만 느껴졌다. 갈등(葛藤)이라는 말은 칡과 등나무가 만나면 감기는 방향이 틀려 서로 엉킨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인데 운동장에 즐비한 등나무쉼터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실내 쪽에서 몇 번, 몇 번 대기하세요하는 안내방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저기 저안에 벼라 별 피의자들이 온갖 갈등 속에서 독특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리. 전직 대통령 중에도 저기를 거쳐 온 사람이 있고 각양각색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피맺힌 절규로 아픈 시간을 견디고 있기도 할 것이다. 그들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의 삶이 온통 이곳에 꽂혀 모든 삶이 통째로 조각난 채 아프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시간이 되어 접견실에 들어가니 유리로 막아져 답답한 좁은 공간에 수의를 입은 후배가 나타났다. 가슴에 새겨진 수인번호가 이방인처럼 낯설다. 종전에 그는 명예로운 이름과 직위로 불리어졌는데 여기서 그는 저 번호가 이름이리라. 수인번호를 보는 순간 거기 소름끼칠 절망과 좌절, 공포가 낙인처럼 다가왔다. 일찍 상상도 못했던 참으로 민망스럽고 가혹한 각본이다. “상무님! 이런 모습 보여 죄송합니다고개를 떨어트린 그는 처음부터 울고 있었다. 얼마나 기막히고 고통스러울까? 그 치욕과 절망 아픔을 창밖에서 어떻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부인이 긴요한 이야기를 부지런히 한다. 그는 준비해온 노트에 회사와의 문제를 체크해가며 부탁과 당부를 한다. 모든 것 제 손으로 다 해결하다가 저렇게 묶여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아이들 문제를 걱정하는 그에게 부인은 애들이 이제 커서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밖에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으니 건강해치지 않도록 마음 편히 가져요아내의 위로에 그는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으며 주변과 아이들에 대한 당부를 한다. ‘울지 말아요! 기운 내어요!’ 부인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위로를 한다. 부인의 저 가슴에 부는 바람이 얼마나 차갑고 거셀까 마는 눈물을 감추고 남편을 위로하는 당당함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내 차례가 되어 몇 마디 위로의 말을 나눈 후 시간이 되어 사라지는 어두운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등에서 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가슴이 보인다. 이 땅에서 아버지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엄중한 자리에서 평생을 등에 멍에 벗을 날 없이 묵묵히 살아간다. 아내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프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아버지라는 사람들인데 저기 갇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짓는 얼굴도 그 아버지의 한 모습이리라.

 

5월의 산속은 사방에서 신록의 푸르름이 녹아내린다. 상쾌한 바람과 찬란한 햇빛이 참으로 감사한 계절이다. 높은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 지점에서든 한두 번 비를 맞을 수 있을 것이고 인생길 가다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는 횡액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발 모진 풍랑에 꺾이지 말고 더욱 사랑과 용기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방송을 통해 도로 한가운데 뻥 뚫린 아찔한 싱크홀( sinkhole)을 보면서 인생길 가다가 저런 싱크홀에 빠진다면 어떡하나라고 생각해본다. 지난날을 뒤 돌아 보니 내가 걸어온 길 주변에도 크고 작은 싱크홀이 수없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 위험지대를 곡예 하듯 용케도 피해올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큰 길로 나와 구치소가 있는 곳을 돌아보노라니 면회를 위한 그 잠간이 무척 엄중하고 길었던 것같이 느껴진다. 저 구치소가 그에게 제발 회생불능의 싱크홀이 아니라 잠시 넘어졌다 일어설 수 있는 빙판일 뿐이기를 바라며 훌훌 털고 나와 빨리 만나 볼 수 있기를 빌어본다.

 

 

 

천사들의 신음소리

 

김정태

 

고등학교 시절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 두 명이 있었는데 덩치가 작은 한명은 조용하면서도 눈에 늘 적개심이 서려있었고 덩치가 큰 한명은 난폭하여 늘 폭행을 일삼곤 했다. 환경 때문인지 근본 성격 때문인지 그들은 학교에서 늘 문제를 일으키던 문제아 들이었다. 면학분위기를 해칠 뿐 아니라 등굣길, 하교길에 골목을 지키고 있다가 아이들 돈을 뺏고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그들은 대부분 학생들의 혐오대상으로 친구도 없는 외톨이신세였다.

고아원이라는 말은 과거, 주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입소대상으로 하던 때에 사용되던 말 이었으나 고아가 비교적으로 적은 현 상황에는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용어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요즈음은 사라진 용어이다.

S아기집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부모가 없는 영.유아들을 돌보는 시설인데 사회봉사차원에서 회사가 매년 일정액을 지원해주었으며 여직원회에서 1년에 몇 번씩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주곤 했다. 여직원들이 찾아가면 철부지 어린 아이들이 엄마, 엄마하며 안겨 좋아한다. 옆에 아이가 부러워 제가 안기려고 아이의 다리를 당기면 발길로 차버리고 찰삭감겨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사랑에 굶주렸으면 저럴까? 아이들은 늘 그렇게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우리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반듯하게 키워나갈까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아빠로서 아이들에 대한 맹목적적인 사랑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사랑으로 양육하되 자라면서 잘못된 버릇이 생기면 그것은 잘라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무가 자랄 때 불필요한 곁가지를 쳐주어야 반듯하게 자라듯 아이의 육아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큰아이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아이들 데리고 뒷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잘 자란 싸리나무가 눈에 들어와 가지를 몇 개 꺾었다. 큰 아이가 아빠 그것은 왜 꺾어요?” 하기에 너희들 위해 필요해서 그런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와서 싸리가지를 잘 다듬어두었다가 어느 날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손을 펴라 해서 손을 때리려 했더니 아이가 내 손을 밀쳐버렸다. 매라는 것을 한 번도 맞아보지 않았던 아이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이에게 너는 이러이런 것을 잘못했기 때문에 손바닥을 맞아야한다. 그럴 때는 잘못했습니다해야한다라고 가르쳐주었다. 아이는 이후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못을 가르쳐주고 바르게 품어주는 것 역시 소중한 사랑이다.

 

인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네살배기 유치원생을 폭행한 사건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실이 담겨있는 CCTV속에는 보육교사가 원생들의 급식판을 수거하다 음식을 남긴 식판을 발견하자, 네살된 여자아이를 불러 남은 음식을 먹게 하는 과정에서 오른손으로 있는 힘껏 아이의 얼굴을 가격한다.

어린 아이는 맞으면서 멀찍이 나가 꼬꾸라졌고, 그 충격으로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보육교사가 자리를 떠난 뒤에 어린 아이가 일어나 남은 음식을 다시 먹고 더러워진 방을 정리한다. 뒤에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반항도 없고 울지도 않는 아이들의 모습은 잦은 폭행에 이미 길들여져 있는 모습이었다. 네 살 난 어리디 어린 아이의 슬픈 영상은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고 계속 파문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어서 또 다른 지역의 어린이집에서도 보육교사가 어린아이를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한 어린이집에서는 원장이 22개월 된 아이가 칭얼댄다고 아이의 입에 휴지와 물티슈 등을 집어넣고 서있게 하는 등의 학대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보육교사의 자질문제, 보육원 CCTV 설치 등 많은 문제가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나무나 꽃이 물이 있어야 하듯이 발달과정의 영유아들은 사랑으로 충족되어져야 하고 사랑의 결핍은 독소로 작용하여 보이지 않는 장애로 연결 될 수 있다. 사랑은 고사하고 폭력과 학대에 노출되어있는 영. 유아들이라면 그 아이들이 받을 충격과 상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학대경험이나 폭력의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극도의 심리적 위축과 공포에 젖으며 집중력저하, 정서불안 뿐 아니라 아이자체가 폭력적으로 된다고 한다.

사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일 것이다. 모성애의 힘이 아이의 모든 문제점을 사랑으로 덮을 수 있게 해주고 그 사랑이 아이들을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육교사들에게 그 모성애를 요구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로 보인다. 아이들은 순수하여 있는 그대로 거침없고 분주하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이들이다. 그러한 많은 아이들을 사무적이고 직업적인 보육교사에게 온전한 양육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집의 육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물며 보편적 복지확대로 전문성이나 적성과 무관한 부실 교사들이 양산되어 있는 어린이집 현실은 영.유아들에게 참으로 불안한 곳이다. 교사들도 제 자신을 점검해보고 엄마의 사랑으로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으면 나서서는 안 될 자리가 보육교사의 자리로 생각된다.

 

옛날에는 엄마 없는 아이들이 열약한 고아원에서 양육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 밑에서 사랑으로 자라야할 어린이들이 자칫 고아원생활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입은 엄청난 상처의 후유증을 앓아야할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고 폭력과 학대가 일상적인 곳이라면 그곳은 고아원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다.

이름이 좋아 어린이 집이지 무슨, 천사들이 신음하는 고아원이지

거기서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어린이들이 폭력적이고 나약하고 정서불안의 볼품없는 나무들로 키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네 살배기 여자아이가 맞아 꼬꾸라지는 그 슬픈 영상에서 나라의 장래가 자꾸 그려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지나친 기우일까?

 

 

낙엽이 우는 소리

 

김정태

 

10월 마지막 토요일 종로 5가에 있는 결혼식장에 갔다가 일행 여러 명과 시내를 걸었다. 종로를 무리지어 걸으니 마치 건달패가 된 것 같다는 말에 곧바로 왕초라는 용어로 이어지자 S형이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말로 응수한다. 아침에는 스모그로 침침하더니 한낮의 날씨는 화창하게 개여 한껏 들뜨게 만드는 주말이다. 도심에서 두세 정거장 걸어볼 기회는 흔치가 않는데 가을햇살 쬐며 여럿이 한담하며 걷는 것은 낭만적이고 즐거운 일이었다.

S형이  일행에게 느닷없이 종삼이라는 말을 들어 본적 있느냐?고 묻자 종로3가를 줄여 부르는 말 아니냐?고 의아한 듯 되묻는다.

한때 유행했던 종삼이라는 말은 종로3가에 성행했던 홍등가를 지칭하는 말이라 한다. 김현옥시장 재임시 종삼정화위원회가 설치되고 196810월 까지 철거를 목표로 활동을 했던 것이 보도된 적이 있어 그 무렵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종로 같은 도심에서의 종삼문제는 사회 각 분야에 많은 고민거리였으리라 보여 진다. 종로는 조선시대 도성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던 종루가 있는 거리라는 이름이다. 종로는 일제에 항거한 승동교회와 우미관이 그 이름만으로도 역사의 맥박을 뛰게

하는 곳이며 일제하에서 끝까지 상권(商圈)을 지켜낸 조선의 자존심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제일의 주먹이었던 김두한이 우미관을 무대로 한 시대를 풍미하여 종로는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머무는 곳이다.

친구들과 자주 들리는 어느 식당엘가면 옛날 한옥을 식당으로 활용해 쓰는데 다섯 명 열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방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일설에 의하면 거기가 옛날 김두한의 활동무대였다 해서 갈 때마다 의미를 새겨보곤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참 걸어 내려와 어디쯤인가에 이르니 인도 위에 굴러다니는 낙엽이 유난히 많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종로3가에 이르렀다. 길 위를 굴러다니는 낙엽은 플라타나스 잎이 대부분인데 바람이 불 때마다 부스럭 거리며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벌써 낙엽의 계절이 되었나 싶어 나무를 쳐다보니 푸른 잎들이 아직 무성하게 제 철을 노래하고 있는데 철없이 떨어진 잎새가 길 위를 굴러다며 마음을 스산하게 한다. 낙엽으로 어지러운 길옆 공터에 노인들이 모여 왁자지껄 환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무슨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일행과 작별을 하고 약속시간이 여유가 있어 아까 내려오며 인상 깊었던 노인들 쉼터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길옆 공터에 많은 노인들이 모여앉아 있던 장면이 이상한 감회로 떠올라 다시 찾아가 본 것이다. ‘종묘광장정비사업장이란 안내판이 붙어있는 공터에는 3~40명의 노인들이 모여앉아 시끌벅적 하다. 모양새를 봐서는 각자 낯선 관계 같아 보이는데도 서로가 어깨를 맞대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고 황당해 보인다. 한쪽에서는 시국이야기, 한쪽에서는 어제 밤 술 먹은 이야기로 옥신각신 시끌시끌하다. 아무런 말없이 빈 동공으로 앞만 멍하니 바라보는 노인, 담배만 연신 피워대는 노인 등 공터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차려입은 옷은 그리 남루하지 않아 오가며 보았던 서울역 노숙자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까치들이 공터 앞 무성한 플라타나스 가지사이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극성스럽게 짖어댄다.

뭔 놈의 까치새끼들이 시끄럽게 지랄이야어느 노인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독백을 한다. 종묘로 들어가는 골목 길 따라 그늘진 곳에 여자들이 여럿 앉아 있다. 더러는 까만 봉지를 들고 왔다갔다 서성인다. 아 저분들이 말로만 듣던 박카스 아줌마들인가? 옛날에는 종삼이라 해서 청춘남녀들이 모여들던 종로에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은 노인들과 박카스 아줌마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계절이 바뀌어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져 길 위에 요란스레 굴러다니는 것을 볼 때면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의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이 주는 희열을 느끼곤 한다. 그때쯤이면 단풍소식이 방송에 단골로 등장하고 단풍놀이 여행객을 위한 여행사의 손길이 바빠진다. 철철이 손잡고 명소를 찾아다니는 부부들에게는 단풍의 계절이 아름다운 축복의 계절이다. 이 계절이 되면 내게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낙엽의 길을 준비하는 노란 은행잎이다. 이전에 살았던 동네 아파트 길은 은행나무가 길 양쪽에 잘 자라 터널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 되어 아침이면 떨어진 은행잎이 축복처럼 소복이 쌓여 있고 밤이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샛노란 은행 숲이 황홀경을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에 젖게 한다. 은행은 파란 잎으로 있을 때 존재감이 없다가 낙엽을 준비할 때 눈부시게 빛나며 사랑을 받는다.

낙엽이 바람결에 분분히 날려 다닐 때 나는 성탄의 기쁨과 백설의 축복을 그려보며 기다림으로 설레곤 한다. 그러나 오늘은 공터에 빼곡히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의 그림자 때문인지 낙엽이 괜시리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행인의 발에 밟혀 생채기난 플라타나스 잎은 횡액을 당해 길 위에 널 부러진 개구리 모양처럼 볼품없어 보인다. 플라타나스 잎은 다른 나뭇잎보다 유난히 많은 힘줄이 잎새에 퍼져있다. 길 위를 구르는 프라타나스 잎은 떨어지기 억울해 안간힘을 쓰느라 불거진 것인 양 부채살처럼 보이는 힘줄이 살을 발라먹고 남은 생선 가시처럼 앙상하다. 일찍 떨어져 길 위를 뒹구는 낙엽에서 서럽게 우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60년대 은막계를 풍미(風靡)했던 어느 배우가 마지막 병상에서 억울하다’‘억울하다하던 절규가 낙엽 구르는 소리에서 울리는 듯하다.

 

종묘방향의 골목길로 걸어가 보았다. 오가는 사람들 중에는 유독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침에 나올 때 돈 몇푼을 가지고 나와서 먹고 싶은 것 사먹고 하루 종일 소일하다가 들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라 한다. 파고다 공원 안에는 더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고 파고다 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이 일대가 노인들의 무대인데 갈 곳 없고 친구 없는 노인들이 사람이 그리워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설명한다.

오던 길을 돌아 나와 다시 종로 어느 골목을 걸어보았다. 좌포청 있던 곳, 최시형 순교터 라는 표시석이 눈에 띈다. 역사의 흔적위에는 높은 빌딩이 들어서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곱씹게 한다.

 

문득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 한쪽에 커다란 반점이 하나 새겨져있다. 어디서 낙엽 한 장이 날아와 내 얼굴에 찰싹 달라 붙어있는 것 같다. 어느덧 나도 가을의 계곡에 들어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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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사진과죽음에 관한 에세이 외1편 진포 2015.01.30 389
76 여행은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이다 공룡 2015.01.25 144
75 시선, 악역은 나쁘지 않다 (2편) 윤꿀 2015.01.25 188
74 이국의 하루 공룡 2015.01.23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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