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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23:22

그날 이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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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그날 이후, 아버지가 달라졌다. 한여름의 폭염이 한창이었던 때였다. 아버지는 계모임을 하는 친구 분들과 관광을 다녀오셨다. 귀가하자마자 아버지는 피곤하다며 생기 잃은 표정으로 방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가셨다.

잠시 후, 아버지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무당이 낼 법한 주술적인 중얼거림이 아버지 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아버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벽에 붉은 매직으로 낙서를 하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계셨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를 계속 비난하는 것 같기도 한 중얼거림이었다. 뭐 하시는 거냐고 소리치고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벽을 응시하며 알 수 없는 형상의 낙서를 계속 했고 중얼거림도 멈추지 않았다. 119를 불러 억지로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다.

의사는 치매 초기 증세를 말했다. 또 폭염 때문일 거라고도 했다. 시원한 병실에서 링거 주사를 맞으며 한 숨 푹 잔 아버지는 이전의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극구 사양하다 마지못해하며 받던, 내가 드리는 용돈을 아버지는 서슴없이 받아 챙겼다. 가끔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할 때면 가장 맛난 음식 접시를 가장 먼저 비웠고, 내게 자주 전화해 꼭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이런저런 옷이나 물건을 사달라고 요구하셨다.

평생에 취미라곤 신문, 잡지 읽기가 전부였던 아버지가 시내의 노인 전용 콜라텍에 춤을 추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자주 파트너를 한다는 할머니 한 분을 사귀었다며 내게 자랑하셨다. 그 할머니와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한여름 폭염의 하루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그 하루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자신의 지나간 삶에서 잃어버렸다고 여겨지는 많을 것들을 모두 벌충하겠다는 듯 행동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겠노라 결심한 듯했다.

아버지의 그런 급격한 변화에 나는 처음엔 당황했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어쩌면 공평치 못한 부당한 감정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우리시대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당신의 삶도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서민 가장으로서 감내해야 했을 아버지의 희생과 헌신의 내용을 여기에 간단히 이런 것이었다, 라고 정리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아버지의 변화를, 아버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무심한 듯 그러나 세밀히 관찰했다.

 

아직 남은 당신의 삶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하던 아버지는 지역신문 공고를 보곤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문학 강좌를 같이 들으러 가자고 내게 제안했다. 문학 강좌는 만족스러웠다. 강사는 고은 시인의 여러 편의 시를 같이 읽으며 그 시가 품은 삶의 철학을 재미있게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그 시들 중 ‘낯선 곳’ 이라는 시를 읽을 때, 아버지의 눈은 유난히 반짝였다.

 

“......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

 

강좌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주변 사물들이 이전과 달라 보인다고 엷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모든 사물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모든 낱낱의 상황에서 낯선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했고, 현재를 온전히 누리려 했다. 그날 이후의 아버지는 삶을 거의 탕진한 뒤 추억에 한사코 매달리는 노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과감하게 표현하고 제안했다. 가끔 거절당했지만 무덤덤했다. 아버지는 분명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변화가 기뻤다. 아버지의 요구에 나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응했다. 마땅한 일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현재를 공평히 누리는 방식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누구를 위한 헌신이나 희생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나 남을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탬버린을 치다가


노래방이었다. 나는 탬버린을 치고 있었다. 앞에서는 내가 일하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술에 취해 불콰한 얼굴을 어그러뜨리며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노래방 안은 에어컨을 풀가동시켜 시원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탬버린을 쳤다.


나는 제법 규모가 큰 주상복합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이었다. 아파트 위탁관리계약은 통상 2년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관리소 직원들은, 특히 나 같은 관리소장은 재계약에 온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재계약을 이루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나를 포함한 관리소 직원들은 직장을 잃게 되고, 또다시 이력서를 손에 들고 다른 아파트 관리소로 면접 보러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생계 결정되는 위탁 관리 재계약의 주도권은 입주자대표회의에 속한 동 대표들, 그 중에서도 대표 회장이 쥐고 있다.


그날은 재계약을 앞두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접대하던 날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술자리는 2차로 이어졌고 장소 역시 당연하다는 듯 노래 부르는 주점이었다. 술기운이 어지간히 뻗친 회장은 노래가 고팠는지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이크를 찾으며 소리치듯 말했다.

“어이 조 소장아, 비 내리는 호남선 눌러봐라.”

“네! 회장님.”

나는 노래책을 재빠르게 뒤적거려 비 내리는 호남선을 찾아냈고 이내 기계에 번호를 입력했다. 횟집 사장인 회장은 회를 직접 뜨다가 앞치마만 벗어두고 나온 듯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바지에는 회 찌꺼기가 붙어 있었고 생선 비린내를 풍겼다.

회장은 트레이닝복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주물럭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골반 아래를 천천히 휘돌리는 회장의 몸동작은 그 다음이었다. 뒤에서 서 있던 나는 억지웃음을 얼굴에 그려 넣으며 탬버린을 치기 시작했다.

기묘한 기시감을 나를 덮친 것은 그때였다. 지금 이 자리, 이 장면이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 경험한 일인 듯한 느낌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회장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이미 정해진, 아주 오래전에 예정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은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회장이 그 노래 일 절을 채 부르지 않았을 때, 술시중을 드는 여성들이 다소곳이 들어와서 옆에 일렬로 섰다. 짙은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쪽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는 그 여성들을 회장은 잠시 일별했다. 회장은 결심한 듯 여성 한 명을 골라 손짓으로 옆으로 불렀다. 다가온 여성의 허리를 와락 당겨 껴안고 쓰던 악을 계속 쓰며 노래를 계속 불러댔다. 나도 탬버린을 흔들며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회장이 노래할 때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는 지금까지 공들인 일들이 모두 허사가 될 것 같은 조급함에 나는 시달렸다.


살아남아야 했다. 쫓겨나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쫓겨나서는 왜 안 되는 것인지, 이 일을 그만두면 왜 안 되는 것인지, 내가 정말 이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숙고한 적이 없었다. 그냥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몸부림치며 살았다. 쫓겨나면 내 인생이 곧 끝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 1차로 갔던 갈비집에서부터 나는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렸었다. 회장이 권하는 술을 받아 마실수록 두통은 조금씩 더 심해졌다. 갈비집에서 나와 노래 주점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이, 근처 약국으로 잽싸게 뛰어 들어가 두통약을 사먹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노래주점에서 내가 흔드는 탬버린 소리에 내 머릿속은 더욱 윙윙 울렸고,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내 머리 측면을 집요하게 쪼아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탬버린으로 내 머리통을 박살내고 싶었다. 나는 쉬지 않고 탬버린을 쳤고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회장이 노래 부르는 도중 고개 숙인 채 머리를 흔들어대던 나를 한번 힐끗 돌아보았다. 자격지심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며 생각하곤 한다. 그때 그의 눈빛에 경멸과 조롱기가 묻어있다고 나는 느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회장은 입을 비틀며 웃었다. 회장이 나를 보고 비웃었다고 나는 느꼈다. 아니 분명 비웃고 있었다.

그 비웃음은 나를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내 굴욕, 비굴함, 먹고 살기 위해 무릎 꿇음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나는 탬버린을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비참한 기분에서, 원인 모를 두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내 몸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내가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 마신 것과 회장이 노래의 절정인 고음 부분에서 ‘삑사리’를 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자꾸만 멀어지는데~~히~”

 

회장의 그 돼지 멱따는 소리 같은 음이탈이 나에게 모종의 신호가 되었던 것일까. 그 순간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회장의 계속되는 노랫소리가 아주 멀고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술을 따르거나 춤추고 있는 여성들은 과장되게 웃고 있거나 괴성을 지르고 있는 듯했으나, 그들에게서 응당 들려와야 할 소리들이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회장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것인가? 그날 밤 나는 계속해서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나에게 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다음날 이 글과 함께 사직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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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2017.04.30 20:42
    수필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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